Cosmic Heavenly Demon 3077 RAW novel - Chapter (289)
우주천마 3077 우주천마-290화(290/349)
43. 후계전쟁 Succession Struggle (6)
43. 후계전쟁 Succession Struggle (6) – 박살난 평화는 토투가의 전통이다
“······.”
백무정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목진의 눈가가 미세하게 꿈틀거리고, 세령의 얼굴이 굳어졌다. 함께 대화에 참여하던 고 선생은 갑자기 튀어나온 예상 밖의 발언에 적잖이 놀란 듯 했으나, 이내 백무정의 추론이 어디서 기인했는지를 깨닫고 세령과 목진의 기색을 살폈다.
잠시 입을 다물고 있던 목진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어찌하여 그리 생각하시는가?”
적당한 경계와 냉정함을 품은 목소리. 다행히 노여움은 담기지 않은 듯 보인다. 마른침을 삼킨 백무정은 그의 눈을 똑바로 바라본 뒤 가볍게 고개를 숙이며 대답했다.
“오늘 이야기를 나누면서 작은 단서들이 보였습니다. 그동안 대협과 저 아이의 행보와 그 단서들을 짜맞추어 보니 그런 추측에 도달했죠. 그저 추측에 불과했으나, 어쩐지 촉이 느껴져서 실례를 무릅쓰고 대협께 질문하게 되었습니다. 괜한 이야기로 대협의 심기를 불편하게 만들었다면 사과드리겠습니다.”
목진은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불편하게 느껴질 정도는 아니네. 다만 생각지도 못한 질문이어서 그랬지. 하면 그 질문은 자네의 추론을 확인하고자 함이라는 말인가? 달리 누군가에게 언질을 받은 것이 아니라?”
“그렇습니다. 대협.”
“안목이 대단하군.”
다른 이들은 거기까지 생각하지 못했거늘. 새삼스러운 눈으로 백무정을 바라보며 목진이 속으로 감탄했다.
비록 입으로는 감에서 비롯된 추측이라고는 하나, 그는 백무정이 사천당가의 재건을 확신하고 있다고 느꼈다.
사파 성향에 가까운 흑도의 인물이라 이문 걸린 일에 대한 감이 좋은 걸까. 목진은 슬쩍 시선을 돌려 세령을 바라봤다.
“······.”
당혹스러움은 아직 가시지 않은 표정이나, 목진의 시선을 받자 곧 미세하게 고개를 끄덕인다. 적어도 이 일에 있어서는 충분히 믿을 만한 인물이라는 의미였다.
목진은 다시 백무정을 바라보며 담담한 목소리로 말했다.
“부정하진 않겠네.”
“그러했군요. 무례한 물음임에도 답을 해주신 점 감사드립니다.”
“나는 딱히 무례하다 느끼지 않았네. 굳이 감사를 하려거든, 세령이 저 아이에게 하시게.”
“예.”
실례를 했군. 백무정이 세령을 돌아보며 사과했다. 세령은 대체로 사람들에게 고압적인 분위기를 풍기기만 하던 백무정의 젠틀해진 모습에 묘한 어색함을 느끼며 절레절레 고개를 흔들었다.
“아 네, 뭐 그렇게까지 실례는 아니에요. 회주님이 내 사정 모르는 것도 아니니까 물어볼 수도 있지······.”
“고맙군.”
이 양반한테 이런 소리를 듣는 날이 올 줄은 몰랐는데. 폭발하는 어색함을 참지 못한 세령이 데구루룩 눈알을 굴려 시선을 피했다.
“외람된 질문이나, 만약 사천당가를 재건하게 된다면 대협께서는 정식으로 그곳에 머무실 생각이십니까.”
“흐음.”
정식으로 머문다. 묘한 단어 선택에 목진이 팔짱을 꼈다.
사천당가 재건의 명분은 세령에게 있으며, 기본적으로 혈족을 중심으로 하는 세가 형태의 문파가 된다.
그리고 그 말은 곧, 아마도 그 문파 내 최고수의 지위를 차지하고 있을 목진이 수장인 가주가 될 수 없다는 뜻이기도 했다. 외인에 불과한 목진이 가주 자리를 꿰찬다면 그것을 어찌 사천당가라 할 수 있겠는가.
문파의 주인은 결국 문주이며, 공식적으로 그보다 높은 서열은 존재하지 않는다. 재건될 사천당가 내에서 목진의 위치는 가주인 세령의 아래일 수밖에 없다는 뜻이었다.
그런데도 정식으로 사천당가에 적을 둘 것인가. 백무정이 묻는 물음의 요지를 알아챈 목진이 잠시 생각에 잠겼다.
확실히, 가만히 생각해 보면 꽤나 골치가 아픈 문제이긴 했다. 단순한 객으로 머물기엔 그가 짊어져야 할 제약이 너무 치명적이었으니까.
당장 손님의 신분으로 입문자들에게 내가기공을 가르칠 수 없는 것은 당연한 일이요, 언제든 떠날 수 없는 입장이기에 그의 인맥으로 사천당가 재건에 대한 지지를 끌어오는 일도 차질을 빚게 될 터였다.
‘허나 그렇다고 세령이의 아래로 들어가는 것도 마냥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고.’
목진 쪽이야 별로 불만은 없다. 남들이 사회적 지위 따위에 목을 매는 성격도 아닌 데다가 세령이 자신에게 가주의 권위를 내세우며 이래라저래라할 리가 없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하지만 문제는 그의 존재 자체만으로도 가주가 될 세령의 위신이 깎인다는 점이었다.
사천당가와 관련이 없고, 문외(門外)의 무공을 가르치며, 가주보다도 강한 외인(外人). 상식적으로 생각해도 어느 문파가 그런 존재를 용인하겠는가.
그뿐일까, 가만히 생각해 보면 그보다 더 큰 문제도 있었다.
바로 천마신교의 존재.
비록 세간에 공표되진 않았을지언정, 목진은 천마신교 내에서 시조로 추앙받고 있는 입장이었다.
그런 그가 아무리 명문세가의 후신이라 한들 이제 막 개파한 신생 문파의 문주 아래로 들어간다면 그들의 위신에 먹칠을 하게 되는 격이 아닌가.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문제를 떠올린 목진이 미간을 좁혔다.
‘차라리 새 문파를 세우는 것이······아니, 그쪽도 골치가 아픈 건 매한가지인가.’
내공 드라이브 체제를 배척하고 내가기공만을 고집하는 문파는 현대 무림에서 도태될 수밖에 없다. 지난날 순자와의 대화를 기억해낸 목진은 순간 떠오른 생각을 머릿속에서 지웠다.
‘아무래도 이 이야기는 나중에 순자와 논의를 해 보아야겠군.’
애초에 이 이야기를 제시한 것이 순자였던 만큼 나름의 묘수가 있을 터. 고민을 잠시 접어둔 목진은 자신의 대답을 기다리는 백무정을 향해 솔직하게 답했다.
“자세한 방도는 아직 숙고하는 중이네만, 자네의 질문에는 대답할 수 있겠군. 내 답은 긍정일세.”
어차피 눈앞의 상대가 원하는 건 재건된 사천당가에 참룡검제 이목진이 항구적으로 머무는지 여부일 터.
어떤 형태가 될지는 모르지만, 사천당가의 보호를 받으며 내가기공의 부흥에 힘쓸 것이라는 결심에는 변함이 없으니 그의 물음에 대한 답으로는 충분하리라.
“이해했습니다.”
그런 목진의 의도를 읽은 걸까. 백무정은 예상이라도 한 듯 목진의 대답에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목진과 세령을 번갈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미리 말씀드리겠습니다. 저희 삼극회는 사천당가의 재건을 적극 지지하며, 추후 재건이 이루어질 시 사회적, 물적으로 지원할 의향이 있습니다.”
상호간의 인연이 작은 것도 아니니 말이지요. 백무정이 세령을 바라보며 희미한 미소와 함게 덧붙였다.
‘얼씨구, 일이 안 풀린다 싶으면 이때다, 하고 손절할 거면서 생색은.’
세령은 어처구니없는 표정을 지었다.
원래부터 백무정이 득이 될 일과 실이 될 일을 칼같이 구분하는 참된 흑도인이라는 것은 잘 알고 있었지만, 아무리 그래도 사람이 너무 노골적인 거 아닌가.
그런 감상은 목진 또한 마찬가지인지, 그 또한 백무정의 반응에 피식 웃음을 흘렸다.
“이문에 그리 민감한 것을 보니, 확실히 사파답긴 하군.”
목진의 말에 백무정이 씨익 웃음을 지었다.
“칭찬으로 듣겠습니다.”
흑도의 세가 무시할 수 없을 정도로 커진 현대 무림에서는 사파와 흑도를 달리 구분하긴 하나, 원래 흑도는 사파의 한 갈래에서 파생된 부류다. 단지 승리를 위한 이해득실을 따지는지, 금전을 위한 이해득실을 따지는지의 우선순위에서 차이가 있을 뿐.
“일단 자네와 삼극회의 입장은 잘 알았으니 염두에 두고 있겠네. 추후, 때가 무르익을 때 자네의 말이 지켜질 수 있길 바라지.”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누기엔 아직 시기상조이니 이 이야기는 여기까지 하는 게 좋겠군. 목진이 세령을 향해 고갯짓을 하며 말했다.
“이제 겨우 넷 중 두 개의 일을 끝마쳤을 뿐일세. 아직은 갈 길이 많이 남아있지.”
이러니저러니 말을 해도 결국 세령이 복수행을 다 끝마치지 못하면 김칫국만 들이키는 꼴이지 않은가. 목진의 말에 세령이 슬며시 시선을 피했다.
“물론 그렇겠지요. 하지만 저는 좋은 결과가 나오리라고 믿고 있습니다. 다름아닌 참룡검제 대협께서 직접 무공을 지도해 주시지 않았습니까.”
공식적으로 증명된 사실은 아니긴 하지만, 전 우주강호에서 목진이 세령의 무공을 지도했다는 사실을 모르는 이는 없다. 막말로 그가 무공을 지도한 게 아니라면 세령의 말도 안 되는 성장을 어찌 설명한다는 말인가.
백무정의 노골적인 접대멘트에 목진이 피식 웃었다.
“뭐어, 그렇기는 하지.”
들었느냐? 그는 고개를 돌려 세령을 바라보며 말했다.
세령은 거북한 표정을 한숨을 푹 내쉬었다.
“······기대감이 무거워서 깔려 죽어버릴 것 같네요.”
“알면 열심히 정진하거라.”
얄밉기 그지없는 말에 세령이 목진을 마구 노려봤다. 물론 목진은 손톱만큼도 신경쓰지 않았지만 말이다.
세령은 미처 알지 못했지만, 목진은 내심 지금의 그녀를 마음에 들어 하고 있었다. 어젯밤 백사희와 술을 마셨을 때 무슨 이야기를 들었던 건지는 몰라도, 황보륭과의 생사결 이후로 흔들리고 있던 세령의 의지가 단단하게 굳어진 것을 느꼈기 때문이었다.
‘역시. 말로는 서로를 못 잡아먹어 안달이긴 해도 어린 시절을 같이 보냈으니 나름의 정이 있는 게지.’
아무래도 이곳 토투가에 오기를 잘한 것 같다. 목진은 세령에게 보이지 않게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이야기의 주제를 다른 곳으로 돌렸다.
“그나저나 회주께서는 요즘 잘 지내고 계시는가? 내 지난번도 그렇고 매번 회주의 호의를 받고 있자니 도움이 될 만한 일이 있다면 한 손 보태고 싶네만.”
참룡검제가 한 손을 보탠다고? 흑적 놈들이랑 전쟁이라도 해야 하나? 백무정의 머릿속에 순간 엉뚱한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아니, 이게 아니지. 재빨리 잡생각을 지운 그는 옅은 미소를 지으며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재작년 흑적과의 소규모 항쟁 이후로 이곳 토투가는 썩 평화로운 편이니, 협의가 충만한 대협의 마음만 받도록 하겠습니다.”
후계경쟁에 제갈세가가 숟가락을 얹으며 간을 보고 있고, 낭인시장에서는 하루가 멀다하고 사고들이 터져나갔지만 아무튼 토투가는 평화로웠다. 박살난 평화는 토투가의 전통이었다.
“아, 생각해 보면 문제가 하나 있긴 했습니다.”
백무정이 막 생각났다는 듯 고개를 들며 말했다. 문제가 있다는 말과는 달리, 그의 표정에선 별다른 우려가 느껴지지 않았다.
그런 백무진의 모습에 목진이 의아한 듯 한쪽 눈썹을 치켜 올렸다.
“음? 무슨 문제이길래 그러는가?”
“요즘 낭인시장에서 저희 문도들을 습격하고 돌아다니는 괴인이 하나 있습니다. 특이하게도 죽이기는커녕 몽둥이로 적당한 부상만 입히면서 제압한다고 하더군요.”
“애들 습격하는 놈이야 잊을 만하면 한 번씩 튀어나오잖아요.”
토투가 명예 토박이인 세령이 심드렁하게 말했다. 토투가에서 삼극회 문도들만 노리는 습격자들은 거의 연례행사마냥 나타나는 게 보통이었고, 그런 놈들의 대부분은 다른 경쟁세력으로부터 사주를 받은 이들이었다.
그렇긴 하지. 백무정은 딱히 그녀의 말을 부정하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이번엔 제법 실력이 있는 놈인 모양이더군. C랭크를 단 녀석조차 그놈의 한 수를 받아내지 못했다고 한다.”
당한 문도들의 증언으로는 몽둥이를 휘두르는 솜씨가 아주 예술적이라더군. 백무정이 가볍게 어깨를 으쓱였다.
“흐응, C랭크를 한 방에······최소 A랭크는 된다는 뜻이겠네요.”
“상한선을 잡아도 A랭크일 거다. 토투가에 들어온 것으로 파악된 S랭크 무인들은 리스크 관리를 위해 전담인력들이 붙어있으니.”
암림성의 암시장과 마찬가지로 토투가에서도 S랭크 급의 고수쯤 되면 혹시 모를 불상사를 차단하기 위해 전담팀이 붙는다. 어줍잖게 어깨에 힘을 준 애매한 고수들이 S랭크를 몰라보고 시비를 걸기라도 하면 당사자들은 둘째치고 주변의 재산 피해가 어마어마하게 늘어나기 때문이다.
굳이 예외를 찾자면, 그 누구도 막을 수 없는 토투가의 명물이자 일종의 인간재해 취급인 아수라 붓다 정도일까.
“음······. 내 A랭크라고 해도 가벼이 볼 수준은 아닌 것으로 알고 있네만, 회주께선 어찌 그리 여유로우신가?”
“믿을만한 아이들을 보냈기 때문입니다.”
백무정이 여유만만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저희 삼극회의 정예들을 풀어 놈을 잡기로 했지요.”
“정예? 누구를 보냈는데요?”
“회사(會社)의 부장(部長)급들을 보냈다. 여덟 명을 보냈지.”
“아아. 그 정도면 별 문제 없겠네요.”
백무정의 대답에 세령이 납득했다는 듯 고개를 주억거렸다. 삼극회에 대해서 잘 알지 못하는 목진이 고개를 갸웃했다.
“회사? 회사라는 것은 상단과 같은 집단을 말하는 게 아니었더냐?”
아, 아저씨가 보기엔 좀 특이하겠구나. 목진의 물음에 세령이 간단하게 설명을 시작했다.
“삼극회라는 문파는 보통 세 파벌로 나뉘는데, 그중 한 파벌을 회사라고 불러요. 이름처럼 조직 구조도 기업이랑 비슷하죠. 거기서 부장급 무인이라고 하면 보통 A랭크는 돼요.”
“끄응, 헷갈리는구나.”
“여기 전통이라고 하는데 어쩌겠어요.”
난 잘 모르지만. 세령이 양 손을 들어 올리며 어깨를 으쓱였다.
“아무튼 여덟이라. 확실히 회주가 걱정을 덜 만한 전력이긴 하군 그래.”
“그렇습니다. 거기에 여덟 중 하나는 A+랭크의 실력자입니다.”
그만하면 감히 회의 문도들을 습격한 흉수를 잡아오기에 충분하고도 남는다. 백무정의 눈이 스산하게 빛났다.
별일 아니었군. 목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간 후한 대접을 받았기에 뭐라도 해주려고 했건만, 아무래도 이번에는 빚을 청산할 기회를 얻지 못할 모양이었다.
“뭐, 만약 이곳에 머무르는 동안 내 도움이 필요하거든 언제든 말씀하시게.”
“그렇게 말씀해 주시니 든든합니다.”
아쉬운 듯 입맛을 다시는 목진의 말에 백무정이 고개를 숙여 감사를 표했다.
물론, 말하는 것과 달리 그로서는 이런 사소한 일 따위로 목진의 도움을 받을 생각이 추호도 없었지만.
고작 A랭크 무인 따위를 잡는 데 최상위권 절대고수의 힘을 빌리는 건 명백한 오버킬. 고작 맹수 하나 잡자고 핵미사일을 쏘는 격이지 않은가.
어린아이도 셈할 수 있을 만큼 단순한 문제. 백무정은 그걸 끝으로 습격자에 대한 생각을 머릿속에서 완전히 지웠다.
당연한 이야기였지만, 그의 계산에는 오류가 없었다.
단 하나, 전제조건부터 틀렸다는 것을 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