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smic Heavenly Demon 3077 RAW novel - Chapter (294)
우주천마 3077 우주천마-295화(295/349)
44. 이중함정 Double tab (3)
44. 이중함정 Double tab (3) – 만반의 준비
데이빗 백.
삼극회주 백무정 슬하에 있는 다섯 자식들 중 삼남으로, 장남 백선봉과 장녀 로젤린에 이어 삼극회의 후계자 자리를 노리는 사내. 그가 품은 야망을 방증하듯, 한때는 세 명 중 가장 큰 세력을 일구며 후계자의 자리에 가장 가까이 다가가기도 한 인물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올 초 로젤린의 함정에 큰 타격을 입은 뒤 형과 누이의 집중공세에 지속적으로 압박당하며 세력이 와해될 위기를 맞고 있었으니까.
애당초 후계 경쟁에서 리타이어되었어야 할 그가 지금까지 어떻게든 세력을 유지하고 있는 건 완전히 실각하기 직전에 운 좋게 제갈세가의 협력을 얻은 덕분이었다.
물론 데이빗도 제갈세가를 끌어들인 대가가 결코 가볍지 않으리라는 것은 잘 알고 있었다. 삼극회의 후계경쟁에 개입해 이득을 얻으려는 속셈을 어찌 모르겠는가.
하지만 그에겐 다른 선택지가 없었다.
‘따서 갚으면 될 거 아니냐. 따서 갚으면.’
비록 제갈세가에 빚을 지게 될지언정 형과 누이에게 밀려 후계경쟁에서 탈락하는 것보다는 낫다. 그는 그렇게 생각했다.
그렇기에, 데이빗에게 있어 이번에 백무정이 내건 과제의 보상은 결코 놓칠 수 없는 달콤한 유혹이었다.
“정말? 아버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셨다고? 고 선생의 지지선언?”
솔깃한 이야기를 들은 듯, 고급진 의자에 기대앉아 있던 데이빗이 몸을 앞으로 기울이며 되물었다.
량은 그의 책상 앞에 선 채 고개를 끄덕여 긍정했다.
“네, 데이빗 님. 명목상이라고는 해도 고 선생의 공식적인 지지를 얻을 수만 있다면 느슨하게 협조 중인 파벌들을 확실하게 저희 편으로 굳힐 수 있어요.”
그렇게 된다면 얼마든지 재기해서 후계경쟁에 도전할 수 있다. 량은 굳이 당연한 이야기를 다시 입에 올리지 않았다.
로젤린에게 당한 이후로 최근 부진함을 보이고 있어서 그렇지, 데이빗이 일군 세력 자체는 백선봉과 로젤린의 세력들을 합해야 간신히 비등해질 수 있을 정도로 큰 규모를 가지고 있었다.
거기에 단순히 크기만 하고 실속이 없는 것도 아니다. 그의 세력에는 한때 후계경쟁 후보로 거론되던 거물급 인사들이 다수 포진되어 있음은 물론, 이미 후계경쟁에서 탈락한 후보들과 그 세력까지 흡수되어 있었으니까. 그 모두가 데이빗 특유의 높은 친화력과 인망 덕분이었다.
물론, 그런 거대한 세력을 일군 데 대해 아무런 대가도 지불하지 않은 건 아니다. 그만한 세력에 대한 반대급부로 그의 세력은 형과 누이의 세력에 비해 결속력이나 구심력이 부족했으니까.
당장 이번에 로젤린에게 거하게 한 방 먹은 뒤 고육지책으로 외부세력인 제갈세가의 도움을 받는 상황에 이르자 세력 내에서도 대놓고 불온한 움직임들이 포착되지 않았던가.
이들에 대한 지배력을 되찾기 위해 중앙의 핵심 간부인 고 선생의 지지만큼 확실한 카드는 없었다.
데이빗은 량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의 말대로 이번에 백무정이 낸 과제는 그들에게 있어 마지막 찬스였다.
“습격자의 배후를 밝히고 증거를 확보해라······하지만 그 습격자가 절대고수일 가능성이 높다. 라고.”
혹시 짐작가는 곳이 있을까? 가만히 책상 위를 두드리던 데이빗이 량을 향해 물었다.
잠시 생각을 정리한 량이 대답했다.
“······저희 회에 적이 한둘은 아니지만, 지금으로선 염천성 쪽일 가능성이 가장 높다고 봐요. 지난번 항쟁 시도가 실패로 돌아간 뒤로 이렇다 할 이득 없이 손해만 보고 있으니까요.”
타당한 가능성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그녀의 생각을 모두 말한 것은 아니었다.
량은 그녀의 머릿속에 들어있는 또 하나의 가능성을 이야기하는 대신 조심스럽게 시선을 옆으로 돌렸다.
사무실 한켠에 비치된 고급스러운 소파 위에서 자신들의 대화를 흥미롭게 듣고 있는 백색 무복의 여인, 제갈희.
데이빗의 전폭적인 신뢰를 받고 있는 그녀의 앞에서 대놓고 제갈세가가 수상하다는 이야기를 꺼낼 수는 없지 않겠는가.
데이빗은 그런 량의 행동을 못본 체 하며 고개를 주억거렸다.
“확실히 흑적 놈들이라면 우리 회를 습격할 이유가 충분하긴 하지. 굳이 절대고수 급을 섭외했다는 건 조금 의아하긴 하지만, 일을 크게 키우지 않을 걸 생각하면 납득은 할 수 있고.”
삼극회의 문도들 중 죽거나 불구가 된 이는 없다. 크게 피를 보지 않은 이상 절대고수 급, 그것도 외부인사와 굳이 죽자사자 싸울 이유가 없으니 염천성이 배후라면 딱 적당한 견제구라고 할 수 있었다.
“뭐 좋아, 일단 우리 쪽 아이들을 풀어서 정보를 모아보기로 하자고. 제갈세가 쪽 협조는······내가 따로 이야기할 테니까 량이 너는 각 파벌 사람들을 만나서 협조를 받아내 줬으면 좋겠네.”
데이빗이 제갈희 쪽을 돌아보며 량에게 말했다. 완곡한 축객의 의미가 담긴 말이었다.
“······네.”
제갈희를 향해 꿀이 뚝뚝 떨어지는 눈길을 보내는 데이빗을 보는 량이 지그시 이를 악물며 대답했다.
제 딴에는 빈말로도 사이가 좋다고 할 수 없는 그녀와 제갈희 사이를 배려한답시고 축객령을 내린 것이리라.
그러나 데이빗 세력의 참모인 그녀에게 있어선 그런 데이빗의 배려가 더욱 모욕적으로 느껴졌다. 보고하는 자리에 그녀가 있는 것부터가 문제인데, 직접 그를 보좌하는 그녀를 두고 엄연한 외부세력인 제갈희와 비밀스럽게 전략을 논의한다는 걸 어찌 달갑게 받아들일 수 있겠는가.
하지만 그런 불만을 대놓고 드러낼 수는 없었다.
소심하기 그지없는 그녀의 성격은 둘째치고서라도, 데이빗이 제갈희에게 푹 빠져있는 이상 이성적인 판단을 기대할 수 없을 테니까.
물론, 세력의 주 전력이라 할 수 있는 고수들이 로젤린의 수작질로 인해 리타이어된 상황에서 무력적인 면을 의존하고 있는 제갈세가와 대립각을 세울 수 없다는 이유가 가장 컸지만 말이다.
지금 제갈세가와 틀어지면 뒤가 없다. 량은 들끓는 불만감을 억누른 채 몸을 돌렸다.
하지만 그녀는 몇 걸음 걷지 않고 발걸음을 멈췄다. 아직 보고하지 않는 소식이 남아있기 때문이었다.
“그러고 보니 데이빗 님, 한 가지 말씀드릴 게 남아있어요.”
“응? 뭔데?”
“당세령이 백선봉 님과 접촉했다고 해요.”
“······당세령이라고?”
예상치 못한 이야기에 데이빗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량은 줄곧 여유롭게 빙글거리고 있던 제갈희의 얼굴이 미세하게 굳어진 모습을 보았다.
“네. 정보 출처는 로젤린 님 쪽인데, 정황상 양쪽이 협력해서 제갈세가 무인들 쪽을 노릴 것 같아요.”
“······.”
제갈세가 무인들을 노린다는 말에 결국 제갈희의 얼굴에서 미소가 사라졌다.
데이빗은 그런 그녀의 반응에 분통을 터트렸다.
“아니, 당세령 걔는 자기 일이나 신경 쓸 것이지 왜 우리 쪽에 발을 들이미는 거야?!”
‘거기 제갈희랑 원수를 졌으니까 그렇겠죠.’
량은 과거 데이빗으로부터 세령과 제갈희의 사이가 견원지간이라는 이야기를 들었던 적이 있었다.
당세령이 굳이 다른 말이 나올 걸 알면서도 복수행 도중에 삼극회의 일에 개입할 이유가 사적인 원한 외에 뭐가 있겠는가.
비록 입장 상 제갈세가 무인들을 죽이거나 할 수는 없겠지만, 그녀가 아는 명예 흑도인인 세령은 그들이 하는 일에 잿가루를 뿌릴 수 있다면야 기꺼이 발 벗고 나설 타입이었다.
하지만 량은 굳이 속마음을 입 밖으로 꺼내지 않았다. 그녀는 처음으로 데이빗이 아닌 제갈희 쪽을 바라보며 사무적인 목소리로 말했다.
“······출처가 출처인 만큼 완전히 신뢰할 수는 없지만, 최소한의 대책 정도는 세워두는 게 좋을 것 같네요.”
그럼 저는 이만. 살짝 고개를 숙여 인사한 량이 총총 사무실 밖으로 나갔다. 아무도 보지 못한 그녀의 입가에는 고소함이 가득한 미소가 담겨있었다.
“하······.”
량이 사무실에서 완전히 나간 것을 확인한 데이빗이 푹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고개를 돌려 제갈희를 돌아봤다. 그 얼굴에는 조금 전의 여유로움과는 달리 미미한 불안감이 담겨있었다.
“······희매, 혹시 습격자의 배후에 대해서 짐작가는 곳이 있을까?”
형과 누나에 비해 자질이 부족하긴 하지만, 그렇다고 아예 아무 생각 없이 사는 망나니인 것은 아니다. 데이빗은 제갈세가 또한 습격자의 배후가 될 가능성이 있다는 사실을 충분히 인지하고 있었다.
어쩌면, 정말로 어쩌면 제갈세가가 그 습격자의 배후가 아닐까.
그것이 합리적인 의심이라는 건 데이빗 그 스스로가 더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렇기에, 그에게는 그 의심이 틀렸다는 확신이 필요했다.
그의 물음에 제갈희가 답했다.
“······글쎄요. 토투가의 내부 사정을 잘 모르는 저희로서는 딱히 짚이는 곳이 없네요.”
거짓말. 그것도 천연덕스러운 거짓말이었다.
제갈희는 습격자의 정체에 대해서 토투가의 그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데이빗을 신뢰하지 않았다. 아니, 보다 정확히 말하자면 그의 야망을 신뢰하지 않았다.
데이빗은 분명 그녀에게 푹 빠져 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한들 그는 그녀를 위해 후계경쟁마저 포기할 만큼 로맨스에 목숨 건 부류의 인간은 아니었다.
아마 습격자의 배후가 제갈세가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면 그리 오랜 고민 없이 그녀와 제갈세가를 팔아넘기리라. 제갈희는 데이빗의 권력에 대한 집착을 결코 얕잡아보지 않았다.
‘어차피 의심을 받을만한 연결고리는 없어.’
세가의 무인들 중 습격자의 존재를 아는 이는 없다. 이 토투가에서 그와 제갈세가의 관계를 아는 것은 그녀가 유일하다는 의미였다.
철저하게 보안을 지킨 것은 그녀에게 습격자를 보낸 제갈현 또한 마찬가지. 삼극회에서 아무리 배후를 캐본다 한들 심증을 벗어날 수 없으리라.
물론 습격자의 역할을 생각하면 언젠가는 제갈세가와의 관계가 밝혀지긴 하겠지만 그쯤 되면 이미 모든 일이 끝났을 터. 삼극회의 항의쯤은 얼마든지 감당할 수 있었다.
‘지금까지 만난 건 세 번. 꼬리가 밟힌 적은 없지만······앞으로는 비밀통신으로만 연락하는 게 좋겠네.’
보안을 강화해서 손해 볼 건 없다. 제갏희는 앞으로 꼬리가 밟힐 일을 최대한 피해야겠다고 생각하며 아무것도 모르는 듯한 눈으로 데이빗의 시선을 마주했다.
“그래······음, 역시 그렇겠지.”
데이빗은 그녀의 대답에 안심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애석하게도, 그는 제갈희의 거짓말을 간파할 안목을 가지고 있지 못했다.
“그럼 혹시 제갈세가 쪽에서 뭔가 알게 되면 알려줘.”
“네, 그렇게요.”
“그리고······당세령 말인데.”
데이빗이 조금 우물쭈물하며 세령의 이야기를 꺼냈다.
제갈희에게 직접 자초지종을 듣진 못했지만, 과거 세령과 한잔 했을 적에 제갈희와 원수지간이라는 사실을 들은 적이 있었다. 때문에 데이빗은 세령의 이야기를 꺼내며 주저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제갈희는 그의 생각보다는 조금 더 냉정했다.
“그쪽은 그렇게 걱정할 필요 없어요.”
“응? 왜?”
“그 여자가 직접 나설 이유가 없으니까요. 접촉했다는 이야기 자체는 사실이겠지만, 정말로 나서지는 않을 거에요.”
당세령은 사적인 원한으로 큰일을 그르칠 만큼 경솔한 부류는 아니다. 고작 그 정도 그릇이었으면 그녀가 십 년이 넘도록 그녀에게 신경을 썼을 리가.
‘그 눈······.’
순간의 굴욕을 참으면서까지 이득을 취하려 했던 세령의 눈동자. 그녀는 아직 재작년의 일을 기억하고 있었다.
제갈희는 그녀가 말한 의미를 이해하지 못하는 데이빗을 위해 보다 알기 쉬운 설명을 덧붙였다.
“블러핑일 가능성이 높아요. 정말로 싸우면 서로 입장이 난처해지니까, 그 전에 순순히 손 떼고 물러나라는 소리겠죠. 그렇지 않다면 굳이 데이빗 당신의 수하인 량에게 대놓고 정보를 흘릴 이유가 없잖아요?”
“그런가? 하긴······.”
데이빗이 머리를 긁적였다. 하지만 그의 얼굴에 담긴 걱정은 여전히 가시지 않고 있었다. 아무리 가능성이 낮다고 한들, 사모하는 여인의 안전을 걸고 도박을 할 수는 없는 노릇이 아닌가.
“그래도 나는 희매가 걱정되는걸. 유비무환이라고, 만에 하나의 가능성이라고 해도 대비하는 게 좋을 것 같아. 솔직히 아직도 믿기지는 않지만······당세령은 S+랭크의 무인으로 평가받고 있으니까.”
듣기에 따라 자존심이 상할 수도 있는 말이다. 데이빗이 제갈희의 눈치를 보며 조심스럽게 말했다.
“S+랭크······.”
데이빗이 예상한 대로, 그의 이야기를 들은 제갈희의 고운 아미가 살풋 찡그려졌다. 프라이드 높은 그녀의 자존심을 대놓고 긁는 이야기이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와는 별개로, 데이빗의 말 자체는 충분히 합리적인 말이기도 했다.
‘후.’
고작 이 정도로 평정을 잃고 신경질을 내어서야 제갈세가의 직계라는 이름에 부끄러울 뿐이다. 제갈희는 치솟는 짜증을 억누르며 억지로 고개를 끄덕였다.
“당신의 말이 맞아요. 대비해서 손해 볼 건 없겠죠.”
“그래? 그러면 내 호위를 좀 붙여줄까?”
데이빗이 반색했다.
하지만 제갈희는 괜찮다는 듯 고개를 가로저었다.
“더 적절한 인사가 있어요.”
실력도 좋고, 명분도 충분히 만들 수 있는 인물.
그녀의 머릿속에 떠오른 이의 이름은 남궁천.
창천폭룡이라는 별호를 가진 S랭크의 초신성급 후기지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