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smic Heavenly Demon 3077 RAW novel - Chapter (296)
우주천마 3077 우주천마-297화(297/349)
45. 혈멸규약 Bloodcult Protocol (1)
45. 혈멸규약 Bloodcult Protocol (1) –
사흘 전, 인류정부 중추원.
탕!
화약이 폭발하는 소리와 함께 한 중년 여인의 머리가 터져나갔다.
족히 천 년도 전에 만들어졌을 클래식한 리볼버 권총을 손에 든 금발의 소년은 감정 하나 없는 표정으로 볼품없이 쓰러져 있는 여인의 시체를 내려다봤다.
“중추원 비상임의원 수진 보로실로프 제거 확인. 남은 리스트 인원이 있나요?”
“아니, 그걸로 끝이야.”
마찬가지로 권총을 손에 들고 있는 아테나가 대답했다. 소년과 같이, 그녀의 주변 또한 몇 구의 차갑게 식은 시체들이 늘어져 있었다.
“백 명의 중추원 의원 중 서른둘. 조금 더 늦었으면 정말로 위험했겠군요.”
“내부 정리가 빨리 끝나서 다행이었지.”
솔직히 너무 급하게 진행한 감이 있어서 불안하긴 하지만. 아테나가 고개를 까딱이며 중얼거렸다.
소년은 담담한 얼굴로 리볼버의 총알을 갈아 끼우며 말했다.
“상황이 상황이니까요. 아폴론이 만일의 사태를 대비해 감시하고 있으니 무림교류부 쪽은 걱정할 필요 없습니다.”
“알고 있어. 제우스 네 판단은 틀리는 일이 없으니까.”
가볍게 소년, 제우스의 말에 수긍한 아테나가 주변을 돌아봤다. 중추원 회의장 안에는 살아남은 의원들이 당혹스러움을 숨기지 못한 표정으로 그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무림교류부의 일등집행관들 중 절반이 무림인들을 이들을 대동한 채 인류정부의 중추원에 갑작스럽게 난입해서 의원들을 살해했다. 그야말로 전례 없는, 아니 그 전에 상상도 할 수 없는 초유의 사태가 아닌가.
지금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걸까. 그들 중 대부분은 눈앞에 벌어진 사태조차도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었다.
그때, 누군가가 외쳤다.
“쿠데타다! 무림교류부가 무림인들과 작당해 반란을 일으켰어!”
쿠데타. 지금의 의원들에게 그 이상으로 지금 상황을 명쾌하게 설명할 단어는 없었다. 넓은 회의장 안이 술렁거리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들의 혼란이 심화되기 전에, 중후한 목소리가 먼저 그들의 귓가를 울렸다.
“진정하시오.”
단 한 마디로 의원들의 웅성거림이 멎었다. 그만큼 그 목소리의 주인이 가지는 존재감은 거대했다.
천년 가까이 되는 역사를 자랑하는 중추원에서도 고작 열 명뿐인 상임의원이자 가장 오랜 시간동안 인류를 위해 봉사해온 중추원의 최고령 의원.
의원들의 주목을 한 몸에 받은 사내, 시길라이트는 여타 다른 의원들과는 달리 당황하는 기색 하나 없이 차분하게 앉아있었다.
“중추원의 권력은 절대적이나, 그만큼 만일의 상황을 대비한 안전장치들이 여럿 있지. 일등 집행관쯤 되는 이들이 그걸 모를 리도 없을 테고.”
단순한 반란은 아닐 거라는 말이오. 그는 덤덤한 얼굴로 아테나와 제우스, 그리고 다른 네 명의 일등 집행관들을 천천히 둘러보며 덧붙였다.
무림인이 아무리 인간을 초월한 초인이라 한들, 개인 단위의 무력으로는 아무리 중추원을 장악한다 한들 아무런 의미가 없다. 은하계 규모로 영향력을 뻗치고 있는 인류정부의 행정시스템이 그렇게 허술할 리가 없지 않은가.
“하지만 저들은 무림인을 동원해서 중추원을 점거하고 아무런 경고 없이 의원들을 살해하지 않았습니까! 이건 명백한 반역행위입니다!”
“그러니 더욱 진정하고 냉정하게 상황을 파악하라는 것이오.”
흥분한 의원의 말에 시길라이트가 고개를 저었다. 그의 목소리에는 조금의 흔들림도 담겨있지 않았다.
“중추원의 삼엄한 보안시설과 경비들을 모두 무력화시키고 여기까지 도달할 때까지 우리는 아무런 보고도 받지 못했소. 그렇다면 결론은 하나뿐이지.”
내부의 조력자가 있다는 것. 시길라이트가 고개를 들어 회의장의 중앙에 우뚝 서 있는 기둥을 올려다보며 말했다.
“아니 그렇소? 의장.”
그의 말에 의원들의 시선 또한 기둥 위로 향했다.
지금껏 들린 적 없는, 누군가의 이질적인 목소리가 들린 것은 바로 그 순간이었다.
– 그렇습니다.
회의장 안에 설치된 스피커를 통해 흘러나오는, 어쩐지 기계적인 느낌이 배어있는 목소리. 그와 동시에 기둥 위에 작은 사람의 형상을 한 홀로그램이 모습을 드러냈다.
“인공지성체 알레프······설마 살아생전에 직접 볼 일이 있을 줄은 몰랐는데.”
아테나의 개인 호위로 팔자에도 없던 인류정부 중추원에 발을 들인 심정웅묘 강현마가 감탄을 담아 중얼거렸다.
인류정부 중추원의 의장직을 맡는 존재는 기본적으로 사람이 아닌 인공지성체다. 그것도 현대의 안드로이드와는 달리 자아가 약한 비교적 구세대의 인공지성체.
히브리어의 첫 글자를 따 알레프라 이름 붙여진 이 인공지성체는 인류정부의 시작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수백 년의 세월 동안 중추원의 의장을 맡고 있는 현대 인류 역사의 산증인이었다.
– 제게 주어진 의장 권한으로 보안시설의 작동을 멈추고 경비인력들의 활동을 제한했습니다.
시길라이트는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며 물었다.
“역시 그랬군. 그렇다면 저들의 중추원 침입을 도운 합리적인 이유를 설명해 주시겠소?”
알레프가 답했다. 자아가 약하기 때문인지 그의 말투는 더없이 사무적이고 덤덤했다.
– 블러드컬트 프로토콜(Bloodcult Protocol)이 발동되었습니다.
그러나, 그가 꺼낸 단어는 그렇지 않았다.
“무슨······!”
같은 중추원의 의원들이 일등 집행관과 무림인들에 의해 살해당하는 와중에도 명경지수와 같이 평정을 유지하던 시길라이트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그는 부릅뜬 눈으로 알레프의 홀로그램을 바라보았다.
한 박자 늦게, 알레프가 꺼낸 단어의 의미를 기억해낸 의원들의 얼굴에서 완전히 핏기가 가셨다.
블러드컬트 프로토콜. 인류의 존망이 위협받을 때가 아니면 발동하지 않는 대 혈교 최종대응 규약의 이름이다.
가장 먼저 최상급 핵심보호기관인 중추원과 군부, 무림교류부의 혈교 오염에 대한 무결성을 확보하고, 이후 그들 세 조직을 중심으로 인류 전체에 비상계엄을 선포하여 총력전 단계로의 진입을 준비하는 규약.
이 프로토콜의 발동이 완료되고 나면 인류정부는 모든 대외활동과 내부 프로젝트들을 중지하고 모든 역량을 쏟아부어 오직 혈교의 격멸만을 위해 움직인다. 말 그대로 혈교에 대한 만인의 투쟁이 시작되는 것이다.
지금까지 단 한 번, 수백 년 전 인류정부의 태동기 때 일어난 혈교와의 대전쟁 때 발동된 이후로 형식상으로만 존재하는 프로토콜이 어째서 발동한다는 말인가. 시길라이트의 몸이 부르르 떨렸다.
“그런 말도 안 되는······.”
수백 년 이상 살아온 그조차도 기록으로밖에 접한 적 없는, 그러나 그럼에도 그 광기와 공포를 피부로 느낄 수 있는 혈교와의 두번째 대전쟁이 임박했다. 시길라이트는 도저히 그 사실을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블러드컬트 프로토콜이라니?! 혈교 문제는 준 지(地)급 경계태세에서 핸들링하고 있던 것이 아니었나!”
의원 중 누군가가 불신 가득한 목소리로 소리쳤다. 그 자리에 있는 모두의 의문을 대변하는 질문이었다.
일반적으로 도시 오염, 행성 오염같이 우주 전역에서 발생하는 혈교 사태들은 행성 행정부나 성계 총독부 선에서 주관하는 인(人)급 경계태세에서 정리되기 마련이다. 넓은 우주에서 이 정도의 사건은 수도 없이 일어나는 편이며, 그렇기 때문에 발생빈도가 급격히 올라가거나 하지 않는 이상은 중추원에 보고가 올라가지도 않는다.
하지만 그러던 와중 수십 년에 한 번꼴로 대규모 사태가 벌어지기도 하는데, 이 때 발동하는 것이 바로 무림교류부가 주관하는 지(地)급 경계태세. 그리고 거기에서 한 단계 더 나아가 인류정부가 주관하는 천(天)급 경계태세에 이르러야 발동하는 것이 블러드컬트 프로토콜이었으니까.
지금까지 중추원에 보고된 건 무림교류부가 유사시 지급 경계태세로 전환될 수 있는 준 지급 경계태세에 들어갔다는 소식뿐. 그런데 지급 경계태세도 가지 않은 상황에서 갑자기 웬 블러드컬트 프로토콜이라는 말인가.
“······최근까지 저희 무림교류부도 그렇게 판단하고 있었습니다.”
의원의 물음에 대답한 것은 아테나였다. 그녀는 의원의 물음을 일부 수긍하듯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그러나 얼마 전 혈교의 침식이 우리 인류정부가 파악한 것 이상으로 심각하다는 것을 인지했고, 인류정부의 핵심기관들 중 일부가 혈교에 오염되었다는 것 또한 파악했습니다. 때문에 저희는 긴급조항 B-66에 의거해 천(天)급 경계태세를 발동하고 극비리에 현 작전을 진행했습니다.”
아테나는 하북팽가와 공룡문에서 발견된 고독의 예를 들며 지금까지 알려진 적 없던 외계기생체에 의한 혈교의 오염 루트에 대해 간략히 요약해서 이야기했다.
그리고 잠시 후, 그녀의 설명을 들은 의원들의 표정이 해쓱해졌다.
“외계기생체······? 그럼 설마 지금 죽은 사람들이······.”
“네. 비밀리에 시행된 혈교 오염 테스트에서 양성 반응이 나온 자, 그리고 체내에 예의 외계기생체가 들어있다는 사실을 확인한 자들입니다.”
“······서른 명이 넘는 이들이 모두 혈교에 오염되어 있었다고? 그렇게까지 중추원 의원들에 대한 호위가 형편없었다는 건가?”
“평시에 인류정부 내의 혈교 오염 검사는 오염원을 기준으로 역학조사를 실시하여 관련자들에게 추가 검사를 실시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집니다. 미처 파악하지 못한 오염 루트가 있다면 극도로 취약해지죠.”
“혈교의 오염방식이 변화······아니, 진화했으니 기존의 대비책은 소용이 없었다는 말이로군.”
그렇습니다. 아테나가 시길라이트의 말에 굳은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갑작스러운 폭탄선언에 술렁이는 중추원 의원들을 향해 가만히 입을 다물고 있던 알레프가 덧붙였다.
– 일등 집행관 아테나의 주장은 사실로 확인되었습니다. 본 의장은 유전공학적으로 개량된 적대적 외계생명체에 의한 혈교의 오염에 대한 자료를 검증했으며, 혈교의 오염이 유기체의 정신침식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무기물에도 영향을 미침을 확인했습니다.
“잠깐, 지금 그게 무슨······무기물도 혈교에 오염된다고?”
그렇습니다. 도저히 믿을 수 없는 이야기를 들은 듯 당황하는 시길라이트의 반응에 알레프가 긍정의 대답을 내놓았다.
– 실제로 28시간 전 본 의장의 자아를 관장하는 코어 보관소가 물리적으로 침식당할 위협에 처해 있었습니다. 때마침 난입한 무림교류부의 지원으로 침식 직전에 코어의 대피를 완료할 수 있었기에 본 의장은 긴급상황임에 동의하고 블러트컬트 프로토콜의 발동을 승인했습니다.
“이런 미친······.”
누구인지 모를 의원의 입에서 절로 욕설이 튀어나왔다. 아마도, 그뿐 아니라 대부분의 의원이 그와 같은 감상을 공유하고 있으리라.
지금까지 인류는 혈교의 오염이 전파되는 대상이 인류 혹은 유사인류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지금까지 관측된 사례들이 그러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착각이었다.
혈교라는 존재의 본질을 이해하지 못한 인류의 착각.
혈교라는 것은 그들이 생각하는 단순한 사이비 종교가 아니었다. 그것은 인류의 상상을 아득히 초월하는, 물질과 정신 모두를 물들이는 끔찍한 역병이었다.
– 혈교의 오염이 살아있는 지성체와 그렇지 않은 사물을 막론하고 모두 침식할 수 있다는 것은 사실로 확인되었습니다.
“······그런 존재에 대한 대응방법이라는 게 있긴 한가?”
– 현재로서는 한 가지 방법만이 유효합니다.
“그게 뭐지?”
알레프가 무표정하게 대답했다.
– 오염체에 대한 격리, 그리고 소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