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smic Heavenly Demon 3077 RAW novel - Chapter (300)
우주천마 3077 우주천마-301화(301/349)
45. 은원청산 Payback (2)
45. 은원청산 Payback (2) – 꼬우면 뜨자니까?
– 2번 팀 쪽에 염화나찰 출현! 긴급지원 요청! 오래 못 버팁니다!
원거리 통신을 통해 전해진 다급한 보고에 제갈희는 고운 아미를 와락 찡그렸다.
“지난번도 그렇고 이번에도······확실히 우연은 아니군요. 자기 처지도 잊고 들이댈 정도로 아무 생각 없다고는 예상 못 했었는데 말이죠.”
예상치 못한 상황이었다. 아무렴 복수행 중이라는 정치적 부담감을 지고 있는 상황에서까지 미친개처럼 들이받을 줄이야.
만에 하나라도 당세령이 이성적인 판단을 하지 못한다고 해도 참룡검제 이목진이 있으니 적당히 말려줄 것이라 생각했건만, 아무래도 그녀의 예측이 빗나간 모양이었다.
“만약 그대와 마주친다고 해도 살초를 쓰지 않고 제압할 수 있다는 자신감일 것이오. ······오만한 생각이지.”
방 한쪽 벽에 기대댄 채 팔짱을 끼고 있던 남궁천이 말했다.
“기연을 얻게 되었다고 저와 같이 오만방자하게 구는 모습을 보니, 얼마 전까지만 해도 가주님을 걱정하던 내가 어리석게 느껴지는 기분이구려.”
나중에 치를 생사결의 결과는 볼 것도 없겠어. 남궁천은 입가에 시니컬한 웃음을 내보였다.
제갈희는 그런 그를 물끄러미 바라보더니 조금 의외라는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남궁 공자께선 그동안 성격이 꽤 변하셨군요.”
당세령을 욕하는 것 자체는 딱히 불만이 없다. 하지만 악독한 마인들을 상대하면서도 웬만하면 기본적인 품위와 예의를 잃지 않던 남궁천이 저리 노골적으로 적대감을 보이는 모습은 제갈희가 보기에도 꽤나 생소한 광경이었다.
참룡검제를 상대로 함께 비무를 벌여 패배한 지도 어언 이 년여. 당시의 패배를 토대로 폐관수련을 했다고 들었는데, 그동안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몰라도 그의 성격은 꽤나 냉소적으로 바뀌어 있었다.
‘아니면 남궁가주님께 복수행을 선포해서 그런 걸지도.’
자신만 해도 감히 존경하는 조부에게 생사결을 선포한 당세령에 대한 적대감이 어마어마한데, 그의 심정은 어련하겠는가.
제갈세가의 번영을 이룩한 승룡제 제갈현에 대한 제갈세가 사람들의 존경심도 결코 작다고는 할 수 없지만, 벽검성 남궁수련에 대한 남궁세가 사람들의 존경심은 그 정도를 넘어 거의 숭배에 가까울 정도다. 무(武)와 검(劍)을 숭상하는 풍조가 유독 강한 남궁세가에서 간만에 배출한 절대고수이기 때문이다.
특히나 창천폭룡 남궁천은 그런 남궁세가 사람들 중에서도 유독 벽검성에 대한 존경심이 깊은 사내. 그러니 평소와는 달리 당세령에 대한 노골적인 적의를 드러내 보여도 전혀 이상할 게 없었다.
“성격이 변했다. 라······어쩌면 그럴지도 모르겠소만.”
남궁천은 제갈희의 말에 대수롭지 않게 고개를 주억거렸다. 말과는 달리 딱히 본인은 스스로의 성격이 변한 것을 자각하지는 못한 기색이었다.
“희매, 설마 당세령이랑 한판 붙으러 갈 생각인 건 아니지?”
조금 불안한 기색으로 남궁천을 힐끔거리던 데이빗이 제갈희에게 물었다. 그녀에게 푹 빠진 데이빗은 이미 제갈희와 친분이 있던 것 같은 남궁천의 존재가 여간 신경쓰이지 않을 수가 없었다.
물론, 그런 말을 꺼낸 것은 진심으로 그녀를 걱정했기 때문이다. 아무리 창천폭룡 남궁천이 가세한다고 한들 S+랭크의 초신성급 신진고수인 당세령을 상대로 우세를 점할 수 있다는 보장은 없으니까.
‘괜히 불 피우는 곳에 화약을 들이밀어 봐야 손해만 볼 텐데.’
안 그래도 제갈세가에 지우는 빚이 점점 늘어나고 있는 상황. 세령과의 충돌을 명분으로 제갈세가의 무인들을 물리는 것도 나쁜 선택은 아니다. 흑도답게 손익계산에 능한 데이빗은 그렇게 판단했다.
그러나 제갈희는 아니었다.
“가야죠.”
그녀는 미리 준비해두었던 세가의 독문병기인 백색 철부채를 손에 쥔 채 자리에서 일어섰다.
“세가의 무인들이 공격받고 있어요. 그런데 제가 일신을 건사하고자 그들의 위협을 도외시한다면 장차 강호의 호사가들이 뭐라 하겠어요?”
당세령을 이길 수 있을지 없을지는 중요하지 않다.
세가의 무인들이 위험에 빠졌는데 다른 이유가 필요하랴. 당세령이 제갈세가의 무인들을 습격한 이상, 제갈희에게 남은 선택지는 그녀와 맞서는 것뿐이었다.
명분을 준 것은 저쪽이다. 살초가 나오지 않는 이상, 응전하는 것은 그들로서도 정치적 부담이 없었다.
“하지만 상대가······.”
“······랭크가 꼭 절대적인 지표는 아니죠.”
안 그래요 남궁 공자? 제갈희가 남궁천을 돌아보며 말했다. 남궁천은 이미 사무실의 입구에서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다.
“물론이오.”
남궁천은 과거, 그와 그녀가 참룡검제 이목진의 실력을 오판하고 비무를 청했을 때의 일을 떠올렸다. 그들이 했던 행동은 분명, 아무것도 모르는 얼치기의 객기에 불과했다.
다만 이번은 다르다.
그는 참룡검제의 지도를 받아 일취월장한 당세령의 무공이 자신보다 높을 거라는 가능성 자체는 부정하지 않았다.
그러나 강함이라는 것은, 승부라는 것은 단지 무공실력만으로 판가름나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우세하다고 허풍을 떨 생각은 없소.”
남궁천은 솔직하게 당세령의 무공을 인정했다.
“허나 승산은 충분하지.”
승산은 반반. 명분도 충분하다. 승부를 걸어보기엔 차고도 넘치는 조건이었다.
감히 위대한 남궁의 가주에게 검을 겨눈 자. 이 손으로 직접 그 자격을 시험하리라.
남궁천의 눈이 붉게 빛났다.
“끄악!”
우득 하는 소리와 함께 손에 든 검을 놓친 무인 하나가 옆구리를 부여잡은 채 뒤로 고꾸라졌다. 그가 쓰러진 곳 주변에는 같은 제갈세가 소속의 무인들이 신음을 흘리며 힘없이 쓰러져 있었다.
막 무릎차기로 무인의 갈비뼈를 박살 낸 세령은 휘적이는 발걸음으로 걸어가 쓰러진 무인의 앞에 쪼그려 앉았다.
“야, 지난번에 너네애들 박살난 거 보고도 아직도 돌아다니냐? 제갈희 그년 상황파악 안 된대? 치매라도 걸렸나?”
“크······그분을 욕되게 말하시 마시오······!”
지랄하네. 세령이 손바닥으로 무인의 머리통을 후려치며 말했다.
“니들 걔가 내 욕 할때는 좋다고 맞장구쳤을 거 아냐. 근데 내가 걔 욕 좀 한다는데 꼽냐? 꼬우면 힘으로 쟁취해 보시던가.”
세령이 손가락을 들어 고통스런 신음을 흘리는 무인의 머리를 쿡쿡 밀어댄다. 백사희는 그 모습을 보며 혀를 내둘렀다.
“······와. 흑도인인 내가 봐도 넌 진짜 양아치 같다.”
“이젠 너까지 시비냐? 뒤질래?”
“내가 어디 틀린 말이라도 했니? 솔직히 우리 쪽 애들 중에서도 너처럼 껄렁한 애들은 거의 없거든?”
“빅터네 패거리 있잖아. 내가 걔들만큼은 아니지.”
“토투가 골목상인들한테 행패부리면서 뒷돈 차다가 제명당한 애들? 너 지금 핑계랍시고 걔들 이름을 대는 거야?”
“······.”
어처구니없는 기색이 완연한 백사희의 말에 세령이 입을 다물었다. 생각해보니 그녀가 말한 사례는 양아치 중에서도 너무 양아치였다.
“······아니 그건 그렇고, 니들은 왜 아직도 설치고 다니는데?”
“윽!?”
괜한 변명을 했다가 할 말이 궁해졌다. 세령은 갈비뼈를 부여잡은 채 끙끙거리는 무인의 뒤통수를 한 대 더 때렸다.
“제갈희 그년이 철수명령 안 내렸어? 이쯤 되면 니네들 철수시키던가 아니면 지가 직접 나오던가 해야 하는 거 아냐?”
어둑한 뒷골목에 청아한 목소리가 울린 것은 막 세령의 말이 끝나가던 순간이었다.
“-그렇게 원한다면야.”
세령이 번쩍 고개를 들었다. 잊을 리 없는, 듣기만 해도 뱃속에서 열불이 솟구치는 듯한 목소리였다.
어두운 골목 그림자 아래에서 두 사람이 모습을 드러냈다.
백선무희 제갈희. 그리고 창천폭룡 남궁천.
예상치 못한, 그러나 반갑기 그지없는 또다른 원수의 등장에 세령의 눈이 번뜩였다.
“이야, 솔직히 진짜 나올 확률은 거의 반반이라고 생각했었는데 이걸 나와주네.”
“그래. 네 말대로 직접 나왔어. 그러니 우리 무인들을 희롱하는 건 그만두지 그래?”
아 그러셔. 세령이 보란 듯이 무인의 뒤통수를 한 대 더 때리고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 모습을 본 제갈희의 눈이 한층 더 매서워졌다.
“보니까 혼자 싸우기는 쫄리니까 남궁천 그놈 믿고 온 거 같은데, 넌 어째 예나 지금이나 졸렬한 건 변하질 않냐. 아주 지 할애비를 빼다박았어.”
으득. 승룡제 제갈현까지 싸잡아서 들먹이는 세령의 노골적인 조롱에 제갈희가 이를 악물었다. 독을 품은 듯한 표정으로 노려보는 그녀의 주위에서 흉험한 살기가 넘실댔다.
“감히.”
“이야. 살기로는 그냥 아주 사람 하나 죽이고도 남겠네. 근데 어쩌냐? 그 기세를 받쳐 줄 힘이 부족하네? 옛날에 누구한테 들은 이야기인데, 무림에서 힘 없이 의욕만 앞서다가는 객사하기 딱 좋다더라.”
과거 제갈희가 했던 말을 그대로 돌려주니 이렇게 기분이 고소할 수가 없다. 세령은 실실 웃으며 여유롭게 그녀를 조롱했다.
제갈희의 옆에 있던 남궁천이 나선 것은 그때였다.
“······그대는 여전히 강호의 대선배들에 대한 예의가 부족하군.”
“글쎄요. 까마득한 대선배이신 목진 아저씨한테 개겼던 니들이 할 말인가 그게?”
아주 그냥 지들 식 예의라니까. 세령이 평소처럼 시니컬한 어조로 빈정거렸다.
하지만 그에 대한 남궁천의 반응은 평소와는 조금 달랐다.
“그간 그대의 딱한 사정을 감안하여 눈감아주고 있었으나, 더 이상은 참고 넘어가기 힘들군. 오늘 그대는 경솔하게 입을 놀린 대가를 치러야 할 것이오.”
남궁세가의 검수답게 잘 졍련된 날카로운 적의. 그를 눈치챈 세령의 눈이 가늘어졌다.
“오. 평소에 혼자 고고한 척 잘난 척 굴던 거랑 다르게 오늘은 좀 해볼 생각 만만인가 보네?”
하긴 나랑 싸우지 않고 입이나 털어댈 거였으면 애초에 나오지도 않았겠지. 세령의 손이 허리춤의 검을 매만졌다.
“그리고 시발, 뭐? 딱한 사정? 눈감아? 참아? 아주 개지랄을 떨고 있네 진짜. 제갈희 저 썅년보다도 니가 더 재수없다는 거 아냐?”
세령의 입에서 걸쪽한 욕설이 튀어나왔다. 그간 목진과 함께 다니면서 한동한 얌전하게 교정되나 싶더니, 결국 원수들과 마주하니 도로아미타불이 된 것이다.
“야, 더 이상 아가리 털어봤자 성질만 나니까 그만하고 뜨자. 어차피 니들 보니까 한판 뜨러 온 거 아냐?”
더 이상 이야기를 이어가면 화병 나서 먼저 죽어버릴 거 같다. 세령은 아무런 주저 없이 검을 뽑았다.
“내가 관대한 아량을 베풀어서 죽이진 않을게. 너넨 시발 내가 너네 대빵들한테 복수행 선포한 걸 고맙게 생각해야 한다 진짜.”
죽이지만 않으면 된다. 죽이지만 않으면.
어차피 어떻게든 뒷수습은 할 수 있으니 일단 조져놓고 보자. 세령은 그렇게 생각했다.
그리고 그건, 상대 또한 마찬가지였다.
“이쪽도 마찬가지외다. 가문의 이름을 더럽힐 수 없으니 살초(殺招)를 쓰지는 않는 것을 감사히 여기시오.”
“감사는 니들이 해야지.”
“상대를 죽이지 않고, 이곳의 일은 이곳에서 묻는다. 너도 나중에 괜한 말이 나오는 것은 원하지 않을 테니 동의한다고 봐도 되겠지?”
“당연.”
서로 싸워봐야 정치적인 이득은커녕 손해만 보는, 가성비라곤 맞지 않는 대결.
하지만 상관없다.
눈앞의 거슬리는 놈들을 합법적인 명분으로 조질 수 있는 기회가 아닌가.
가성비고 나발이고, 이만하면 충분히 싸울 보람이 있지.
서로에게 무기를 들이밀며, 그들의 생각이 처음으로 일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