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smic Heavenly Demon 3077 RAW novel - Chapter (301)
우주천마 3077 우주천마-302화(302/349)
45. 은원청산 Payback (3)
45. 은원청산 Payback (3) – 자존심의 우선순위
“······야.”
가세할까? 서슬퍼런 세 사람의 분위기에 슬슬 옆으로 피해 있던 백사희가 세령만 들을 수 있도록 작게 속삭였다.
사실 그녀가 이 싸움에 끼어들 이유는 없다. 사적인 원한이 그득그득 얽혀있어 보이는 세 사람과는 달리 백사희는 개인적인 은원이 없었기 때문이다.
굳이 따지자면 몇 번 마주친 적이 있는 제갈희를 싫어한다는 감정 정도일까. 하지만 그런 사감과 세령과의 친분 아닌 친분만 가지고 칼부림을 할 정도까지는 아니었다.
하지만 백사희는 굳이 그럴 필요 없음에도 세령에게 가세하겠다는 의향을 내비쳤다.
사실, 왜 그랬는지는 그녀 스스로도 알 수 없었다.
‘그냥 예의상이지, 예의상.’
설마 쟤가 나한테 순순히 도와달라고 하겠어? 백사희는 세령의 똥고집을 믿었다.
“아니.”
그럼 그렇지. 세령의 대답에 백사희는 고개를 끄덕이며 한결 가벼운 표정으로 뒤로 물러섰다.
그러나 아직 세령의 말은 끝난 게 아니었다.
“내가 좀 밀린다 싶으면 붙어.”
“······뭐?”
백사희가 어처구니없다는 듯한 표정으로 세령을 돌아봤다. 세령의 얼굴은 뻔뻔하리만치 변화가 없었다.
“저 새끼들 두 명이잖아. 수는 맞춰야지.”
“그렇게 큰소리쳐놓고? 넌 자존심도 없니?”
“저 년놈들한테 지는 게 더 자존심 상한다고는 생각 안 해 봤냐?”
아 그러세요. 백사희가 떨떠름한 표정을 지은 채 뒤로 물러났다. 이야기를 듣고 보니 그게 또 그럴싸했다.
백사희가 자리에서 물러나자 세령은 정면을 노려봤다. 그녀의 호박색 눈동자가 심연처럼 깊은 빛으로 물들었다.
꿈속에서 몇 번이고 몇 번이고 마주했던 두 남녀가 그녀의 눈앞에 서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꿈이 아니라 현실이었다.
꿈속의 세령은 그녀 자신이 상상할 수 있었던 가장 강력하고 멋진 무공을 뽐내며 두 사람을 쓰러트리곤 했다. 현실은 시궁창이었지만, 꿈속에서 그녀는 두 사람은 발끝에도 미치지 못할 무림고수였다.
그러니 이제, 그 꿈을 현실로 만들 때다.
세령은 그녀의 단전에 품고 있던 준 노심급 내공 드라이브의 출력을 끌어올렸다. 평소 출력의 반의 반도 내지 않던 모습과는 달리, 한껏 끌어올린 내공 드라이브가 트레노프 현상을 일으키며 피부조차 뚫고 섬뜩한 붉은 빛을 줄줄이 뿜어냈다.
동시에 세령의 검 위를 코팅하듯 덮는 붉은색 검강. 최근 들어 여러 고수들과의 생사결을 겪으며 일취월장한 그녀의 무공을 비추듯, 그녀의 검강은 원숙한 고수의 그것처럼 흠잡을 곳 하나 없이 안정적인 모습이었다.
“······.”
그 모습을 본 남궁천의 눈이 더욱 깊게 가라앉았다.
강기를 형성하는 수준만 봐도 알 수 있다. 당세령은 확실히 그보다 반수 위의 실력이었다.
인정하고 싶지 않았건만, 이리 눈앞에서 대면하고 나니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고작 이 년 전까지만 해도 감히 자신과 눈높이를 나란히 할 수 없는 실력이었거늘, 내츄럴인 참룡검제의 지도가 그리도 대단한 것이라는 말인가. 남궁천의 가슴 한 구석이 꽉 막히기라도 한 듯 답답했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뱃속 깊숙한 곳이 부글부글 끓는 것도 같았다.
그것의 이름은 질투였다.
남궁천은 문득, 언젠가 벽검성 남궁수련이 그에게 내렸던 가르침을 떠올렸다.
‘너보다 강한 자를 시기하는 것을 내보이지 말되, 부끄러워하지도 말거라. 다만, 그를 뛰어넘기만을 열망해야 한다.’
– 누군가를 시기하는 마음은 그 무엇보다 강한 불을 지피는 원동력이니. 무(武)의 길을 걷고자 한다면 그조차도 양식으로 삼을지어다.
남궁천은 그제야 존경하는 가주께서 하신 말의 의미를 이해하고 느낄 수 있었다.
태어난 이후를 통틀어, 지금의 그는 강함에 대한 가장 큰 열망을 느꼈다. 지난날 참룡검제에게 무력하게 패하고 폐관수련을 결심했을 때조차 이 정도는 아니었다.
그래도 나는 뛰어넘을 것이다. 스스로에게 읊조린 그의 검에 파도처럼 일렁이는 푸른 기운이 맺혔다.
“우우우우-!”
대결의 시작을 알리듯, 남궁천의 목구멍으로부터 커다란 용의 울음이 터져 나왔다.
“윽, 역시.”
내공을 끌어올려도 막을 수 없는, 감각을 교란시키는 창룡후(昌龍吼).
음공에 작정하고 대비하지 않는 한 절대고수조차 잠시 주춤하게 만드는 포효를 세령이 막을 수 있을 리가 없다.
때문에, 세령은 막겠다는 발상 자체를 포기했다.
어차피 내공으로 미리 방비한다면 창룡후의 효과는 감각의 교란뿐이며, 그 시간은 길어야 수 초 가량에 불과하다. 막을 수 없다면 차라리 익숙해지는 게 낫지 않겠는가.
목진을 만나기도 전부터 제갈희와 남궁천을 무릎 꿇리겠다는 일념으로 수도 없이 전뇌공간 대련 프로그램을 돌려왔다. 수백 번이 넘게 경험한 창룡후의 감각 교란 정도는 그녀의 움직임을 방해할 수 없었다.
‘저번에도 이 패턴이었지. 그러면 다음에는······.’
세령은 남궁천으로부터 시선을 떼고 그녀의 앞을 보았다. 아니나 다를까, 양 손의 백청강 쌍수철선(雙手鐵扇)에 톱날 같은 우윳빛 쇄거강기(鎖鋸罡氣)를 형성한 제갈희는 이미 민첩한 보법으로 두 사람 사이의 거리를 좁히고 있었다.
아니, 정확히는 제갈희‘들’이라고 표현하는 편이 정확했다.
우주미리보(宇宙迷離步)를 펼치며 바닥을 달리며, 뒷골목의 벽을 타며, 건물의 난간을 박차며 제갈희와 그 분신들이 세령을 향해 달려든다.
“······!”
전신의 긴장감을 한껏 끌어올리며, 세령은 두 눈을 부릅뜨고 제갈희들을 노려봤다.
목진은 말했다. 제갈희의 보법에 대한 경지가 아직 미숙하니, 주의 깊게 살피면 기의 흐름이 없는 분신들을 구별할 수 있을 거라고.
그러나 그녀는 자신을 향해 쇄도하는 여섯 개의 분신들을 한 번에 구별할 능력이 없었다.
‘시팔, 그럼 그렇지.’
혹시나 하는 마음에 시도해 봤지만, 목진이 알려준 파훼법을 따르기에는 그녀의 경지가 아직 많이 부족하다. 세령은 속으로 혀를 차며 검을 들지 않은 손으로 비도를 한 웅큼 꺼내들었다.
목진의 파훼법을 쓸 수 없으니 플랜B를 쓸 때다. 세령은 시야에 잡히는 제갈희인지 분신인지 모를 것들을 향해 비도들을 던졌다.
진연십삼투(震鳶十三投)의 초식인 비은전격(飛隱電擊)의 응용. 번개처럼 번뜩이는 기를 품은 비도들이 제갈희의 분신들을 향해 쏘아졌다.
“흣!”
날아오는 비도를 쳐냈다간 실체가 들키니 피하는 수밖에 없다. 여섯 명의 제갈희가 우주미리보의 신비로운 발걸음을 보이며 회피기동을 실시했다.
하지만 단순히 쏘아보내기만 하는 것이라면 그걸 거창하게 초식으로 만들어 이름붙일 리가 있을까?
비도를 던진 세령의 손가락들이 미세하게 까딱임과 동시에 쏘아진 비도들의 방향이 비틀린다.
“윽?!”
갑작스런 방향의 전환에 넷의 분신이 꿰뚫렸다.
이제 남은 것은 둘. 좌측 아래와 위를 점하고 달려드는 제갈희 중 어느 쪽이 본체인지는 아직 알 수 없다.
그러나 괜찮다.
여섯이 아니고 둘이라면, 둘 중 하나가 진실인지만 구별하면 그만이니까.
‘왼쪽은 가짜. 그럼 진짜는······!’
위다. 확신을 담은 세령의 검이 머리 위를 내려찍는 제갈희의 철선을 향해 휘둘러졌다.
공중을 나는 제갈희, 땅을 딛은 당세령.
두 사람의 시선이 찰나의 시간 동안 허공에서 교차했다.
‘어?’
세령의 눈이 꿈틀 움직였다.
두 눈이 마주친 순간, 그녀는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이건 본체가 아니었다.
‘왼쪽이 가짜인데 위쪽도 가짜라고······?’
그렇다면 진짜는 어디에?
그에 대한 답을 떠올리기도 전에, 세령의 목덜미에 돋은 솜털들이 쭈뼛이 섰다. 무영탑에서 수도 없이 죽었을 적에 느꼈던, 바로 그 감각이었다.
감각의 의미를 헤아릴 시간도, 감각의 진위를 판단할 시간도 없다. 세령은 단지 본능을 쫓아 초식을 강제로 중단시키고 고개를 확 비틀어 숙였다.
“흡!”
갑작스런 자세의 변환에 기이하게 비틀린 그녀의 몸이 허공으로 떠오른다. 세령은 떠오른 제 앞머리를 자르고 지나가는 우윳빛 강기를 보며 허공에서 몸을 뒤집었다. 뇌흔보와 함께 그녀의 트리키한 움직임을 가능케 해주는, 목진과 라이디가 개량해 준 신법(身法)이 아니면 펼칠 수 없을 기예(技藝)였다.
끼긱-!
오른손의 검으로 땅을 걸고, 그 탄력으로 몸을 뒤집어 왼손으로 착지한다. 먹이를 덮치기 전의 살쾡이와 같이 한껏 자세를 낮춘 세령의 눈에, 그녀의 등 뒤를 점하고 철선을 휘둘렀던 제갈희가 보였다.
장담컨대, 그것은 자신이 보았던 여섯 분신 중의 하나가 아니었다.
그렇다면 답은 하나였다.
‘염병, 벌써 흑동의 경지에 닿았어?’
우주미리보를 원숙하게 익혔을 때 도달하는 단계인 흑동(黑洞)의 경지.
블랙홀의 한자명을 본따 지어진 이름에 걸맞게, 흑동의 경지에 이르게 되면 분신들을 눈으로 관측할 수 없게 된다. 제갈세가의 진법과 광학위장기술의 조합으로 초인적인 감각을 지닌 무림인조차도 간파할 수 없는 정교한 은신술이 펼쳐지는 것이다.
‘예전에 목진 아저씨랑 싸울 때는 못 썼는데······그래도 근 이 년 동안 놀지만은 않았다는 건가.’
하여간 쓸데없이 성실한 썅년이라니까. 세령이 속으로 씨근거렸다. 승룡제 제갈현이면 몰라도 제갈희가 그만한 경지에 닿았을 줄은 상상도 못 하고 있었다.
그나마 다행인 점이라면, 아직 원숙한 경지에 오르지는 못했는지 자유자재로 분신들을 은신시키는 수준은 아니라는 것 정도일까.
그리고 어차피 이 이상 걱정할 필요도 없다. 그녀에게 뒤를 잡힌 이상, 제갈희는 확실하게 리타이어될 테니까.
“······!”
한 발 늦게 몸을 돌리며 세령을 돌아보는 제갈희의 눈에는 당혹스러움이 담겨있었다. 기껏 무리해서 회심의 수를 두었건만, 빠져나갈 곳이 없는 상황에서 그런 아크로바틱한 움직임을 보이며 빠져나갈 거라고는 예상치 못햇기 때문이었다.
넌 뒤졌어. 세령이 눈으로 말했다.
그러나 그녀는 제 상대가 둘이라는 사실을 잠시 망각하고 있었다.
“헙!”
낮은 기합성과 함께 우측에서 날아오는, 푸른 기운을 휘감은 검 끝. 창룡후를 내뱉은 뒤 제갈희를 따라 세령을 노리고 달려온 남궁천이었다.
‘젠장, 이놈이 있었지!’
타이밍 한번 거지같네. 세령은 아쉬운 대로 제갈희에게 내공을 듬뿍 담은 비도를 집어던지며 곧바로 남궁천의 검을 받아냈다.
까가각! 검날을 서로 맞댄 채 이리저리 비틀리며 순식간에 십여 번에 가까운 공방을 주고받는 두 사람의 검 사이로 쇠를 깎는 듯한 소음이 비명처럼 울렸다.
남궁천의 미간에 깊게 주름이 새겨졌다.
‘······너무 잘 버티는군. 어째서지?’
남궁세가의 절기인 청천파동검기(靑天波動劍氣)는 상대가 형성한 강기의 주파수를 읽어 들여 기의 결속을 무너트린다.
그의 계산으로는 이 정도로 딱 맞붙은 채 공수를 이어갔으면 세령의 강기가 눈에 띄게 줄어들었어야 정상이다. 그러나 지금도 그의 검과 힘을 겨루고 있는 세령의 검에 맺힌 강기는 조금은 불안정해졌을지언정 여전히 그 강맹한 위세를 잃지 않고 있었다.
기에 대해 거의 절대적인 제어력을 발휘하는 절대고수의 강기조차도 이 정도로 맞붙어 있으면 삼 할 정도는 흩어버릴 수 있는 절기이이거늘, 아직 그에 닿지 못한 당세령이 도대체 어떻게.
그것은 실수였다.
검수의 마음은 언제나 확신에 차 있어야 그 검 끝이 흔들리지 않는 법이니까.
세령의 날카로운 눈은 그의 검 끝에 맺힌 날카로움이 아주 약해진 틈을 놓치지 않았다.
서로 검을 뒤섞을 만큼 가까이 붙은 간격. 그리고 어지럽게 엮인 두 자루의 검.
이 상황에 적절한 초식은 하나뿐이다.
독리생사박(毒彲生死博)의 일초(一招)인 전교퇴(前嚙腿).
아무런 전조도 없이 솟구친 세령의 발끝이 남궁천의 턱 아래를 꿰뚫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