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smic Heavenly Demon 3077 RAW novel - Chapter (303)
우주천마 3077 우주천마-304화(304/349)
45. 은원청산 Payback (5)
45. 은원청산 Payback (5) – 짜릿해! 늘 새로워! 복수가 최고야!
누가 그랬던가.
복수란 지극히도 허무한 자기파괴행위라고.
세령이 단언컨대, 그딴 소리를 한 놈은 복수를 해본 적 없는 놈이 분명했다.
그게 아니면 복수를 할 능력이 없는 놈이던가.
“햐.”
환희 가득한 얼굴로 세령이 탄성을 내뱉었다. 십수 년 묵은 원한이라 그런가, 기나긴 시간 숙성된 복수의 쾌감은 참으로 그윽하기 그지없었다.
그녀는 괜히 자칭 군자라는 양반들이 복수를 십 년 동안이나 기다렸던 건지 이제야 좀 알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허무함은 개뿔이, 이렇게 끝내주는 걸. 한 차례 짜릿함에 부르르 몸을 떤 세령은 정신을 잃고 바닥에 널브러진 제갈희를 내려다봤다.
“쯧, 약해빠져가지고는.”
이왕이면 팔다리를 아작내든 눈깔을 쑤시든 어디 하나 병신을 만들어주고 싶었는데 고작 죽빵 한방에 기절이라니. 하여간 어디 귀한 집 딸래미 아니랄까 봐 연약하기 그지없는 근성이 아닐 수 없었다.
만약 주변에 다른 사람들만 없었으면 눈 딱 감고 ‘천마님, 오늘만 정의로운 흑도인이 되는 걸 용서해 주세요.’ 하고 기도한 다음 평생 잊지 못할 장애를 하나 선물해 주었으리라.
그래도 후회는 되지 않았다.
제갈희의 고운 턱주가리를 날것 그대로의 주먹질로 돌려버린 감각은 그녀가 태어나서 맛본 감각 중 최고의 만족감을 선사해 주었으니까.
“윽.”
허벅지에서 느껴지는 화끈거리는 고통에 세령이 낮은 신음을 흘렸다. 조금 전 제갈희에게 입은 상처에서 선홍색 피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무슨 초식이지? 분신으로 공격도 할 수 있나?’
솔직히 말하자면, 제갈희가 펼친 마지막 수법은 좀 위험하긴 했다. 만약 비은전격의 초식을 펼칠 때 보이지 않는 비도를 보험 삼아 깔아두지 않았다면 팔 한 짝 정도는 내어줘야 했으리라.
세령의 날카로운 시선이 빠르게 주변을 훑었다. 자세히 보니, 제갈희로부터 조금 떨어진 곳에 그간 보지 못했던 부채살 하나가 떨어져 있는 모습이 보였다.
세령은 그제야 제갈희가 썼던 수법이 무엇인지 깨달을 수 있었다.
‘아······강모어선술로 부채살을 분신 안쪽에 숨겨놨었던 거구만.’
은밀성을 높이기 위해 강기조차 두르지 않은 키네시스 어검술 위에 분신의 모습을 덮어씌우고 있다가, 상대가 방심한 틈에 사각에서 공격을 가하는 수법. 그 원리를 짐작한 세령이 눈가를 찡그렸다.
만약 살초를 쓰는 생사결이어서 급소를 노렸다면 한순간에 명을 달리할 수도 있었을 정도로 치명적인 수법이다. 정파의 초식보다는 차라리 사파의 것에 가깝달까.
‘정파라는 년이 교활하기는······.’
아마 그녀의 생각을 제갈희가 알았다면, 네가 펼친 초식은 생각지도 않고 말하느냐고 어이없어했으리라.
세령이 짜증과 후련함이 반쯤 뒤섞인 눈으로 제갈희를 내려다보고 있자니, 그제야 정신을 차린 남궁천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크······이런 실책을 보이다니······.”
쯧. 명문가 놈 아니랄까봐 회복 하난 빠르다니까. 가볍게 혀를 찬 세령이 몸을 돌렸다. 발차기의 충격을 받긴 한 건지, 왼쪽 눈에서 피를 흘리며 그녀를 노려보는 남궁천의 얼굴 위로는 숨길 수 없는 고통이 드러나 있었다.
“이제 정신 차렸냐? 어차피 개망신당할 건데 그대로 기절해 있는 게 나았을 텐데.”
세령은 퉁명스럽게 말하며 상처를 입은 허벅지의 혈도를 짚었다. 지난날 천마신교 습격 때도 그렇고, 그녀는 목진에게 배운 점혈법을 상당히 쏠쏠하게 써먹고 있었다.
냉정하게 자신의 상태를 파악한 세령이 마른침을 삼켰다.
‘······여기서 더 붙으면 좀 부담스러운데.’
제갈희의 수법에 당해 허벅지 부상을 입은 상태. 그리 치명적인 상처는 아니지만, 하체의 힘을 온전히 쓸 수 없는 상태로 남궁천을 여유롭게 상대할 수는 없었다.
마음 같아선 제갈희처럼 남궁천 또한 제대로 한 방 먹여주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긴 하다. 하지만 그녀에겐 남궁천 따위가 문제가 아니지 않은가.
만전의 상태로 벽검성과의 생사결에 임해도 모자랄 판국에 이런 비공식 비무에서 부상을 입는 일만큼은 피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녀의 바램과는 달리, 두부(頭部)를 당했음에도 불구하고 남궁천의 전의는 전혀 사그라들지 않은 듯 보였다.
“······그럴 수는 없지.”
턱뼈가 부서진 탓에 지독한 고통이 느껴짐에도, 남궁천은 끝끝내 어눌함이 남아있는 말투로 말을 이었다.
“본인은, 제대로 결착을 내기 전까지는 검을 놓지 않을 것이오.”
“아 그러셔.”
그러면 그쪽 팔도 마저 박살 내 줘야겠네. 차가운 한기가 서린 눈으로 세령이 검을 고쳐쥐었다.
남궁천은 그런 세령의 검을 가만히 바라보더니 그제야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초진동 블레이드······. 참룡검제의 수법을 흉내냈군.”
잘 아네. 세령이 고개를 끄덕이며 비꼬듯이 말했다.
“아저씨만큼 능숙하진 못해서 좀 불안하긴 했는데, 너 정도는 상대할 만하더라고.”
끊임없이 기의 결을 흐트러트리는 말도 안 되는 신기(神技)로 남궁세가의 절기인 청천파동검기를 무력화시켰던 목진의 파훼법.
비록 목진의 그것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순자가 개조한 초진동 블레이드의 보조를 받은 세령은 어설프게나마 청천파동검기를 파훼할 수 있었다.
‘아무리 초진동 블레이드의 보조를 받는다고 해도 결코 실전에서 쓸 수 있을 정도는 아닐 터인데······.’
남궁세가와 낭인 밑바닥이라는, 성장기반의 차이조차 뛰어넘어버리는 무공에 대한 재능의 차이.
자신이면 불가능할 기교를 태연히 해내는 세령을 보며 남궁천이 으득 이를 악물었다. 박살 난 턱뼈에서 정신을 잃을 것 같은 고통이 밀려왔지만 남궁천은 느낄 수 없었다.
“하아-!”
내공을 한껏 품은 기합성과 함께 남궁천의 신형이 세령을 향해 쏘아졌다. 왼손을 희생해 살린 오른손의 검 끝에서 가장 익숙한 창궁무애검법(蒼穹無涯劍法)의 초식이 펼쳐졌다.
무수한 수련을 통해 얻게 된, 최적의 타이밍에 펼쳐진 초식.
“윽.”
남궁천의 공격을 막아낸 세령의 얼굴이 찌푸려진다. 제갈희에게 당한 허벅지에서 느껴지는 고통 때문이었다.
‘일단 인파이트로 붙자.’
검에 제대로 힘을 싣을 수 없게 된 이상, 남궁세가에서도 검의 기재라 불리우는 남궁천과 검 대결을 펼치는 건 하책이다. 그녀가 검 하나에 목숨을 건 검객도 아니지 않은가.
검객을 상대할 때 가장 좋은 전법은 아까 전과 같이 숨결이 느껴질 정도로 가깝게 달라붙은 근접전을 펼치는 것이다.
남궁세가의 권각술 또한 일품(一品)의 무공이라 하나, 그녀가 익힌 독리생사박에 비하면 손색이 있는 것은 당연한 이치. 거기에 남궁천이 검법을 익히는 데 집중한 것에 비해 세령은 싸움 중에 박투술을 자유자재로 섞을 만큼 변칙적인 스타일이니 더욱 승산이 높았다.
“흡!”
검을 받아친 세령의 반대쪽 손이 쭉 뻗어졌다. 제갈희를 붙잡을 때 썼던 금나(擒拿)의 초식, 독리속박이었다.
검에 베여 만신창이가 된 왼손을 붙잡는다면, 어렵지 않게 남궁천을 제압할 수 있으리라. 세령은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세령은 남궁세가의 무공을 너무 얕보고 있었다.
“-훕!”
기합성과 함께 남궁천이 미세하게 몸을 퉁기자, 세령의 손이 닿기도 전에 남궁천의 팔이 순식간에 뒤로 빠져나간 것이다.
제 눈앞에서 감쪽같이 사라지는 남궁천의 왼팔에 세령이 속으로 기함했다.
‘뭐 이딴 신법이 다 있어?!’
몸의 탄성을 활용하는 것도 유분수지, 어떻게 저런 미세한 동작으로 저만한 움직임을 이끌어낸다는 말인가.
하지만 그 원리를 탐구할 시간은 없다. 회심의 금나수가 실패한 이상 명백한 그녀의 손해였으니까. 세령이 출수한 손을 거두는 틈에 남궁천의 검이 다시금 맹렬하게 그녀를 노리고 쏘아졌다.
‘고작 손을 뻗는 것으로 창천(蒼天)의 용을 잡을 수 있으리라 생각했는가!’
남궁세가라 한들 검수의 약점을 어찌 모르겠는가.
그들이야말로 이미 수천년도 더 전부터 검수의 약점을 극복하기 위해 각고의 노력을 기울여 온 이들이거늘.
검수가 권사에게 붙잡혔을 때 불리한 없는 것은 물이 위에서 아래로 흐르듯 당연한 이치.
그렇다면 아예 붙잡히지 않으면 그만이 아닌가?
하여 남궁세가의 보법(步法)은 근접할 거리를 내어주지 않도록 발전했고, 신법(身法)은 상대의 금나술을 피하는 방향으로 발전했다.
그러니 아무리 세령의 독리생사박이 뛰어난 권각술이라고 해도, 남궁천이 쉽게 잡히지 않을 수밖에.
뜨겁게 끓어오르는 가슴과는 달리, 남궁천이 세령을 상대하는 전법은 지극히 냉철했다. 과연 우주무림의 무수한 후기지수들 중 손꼽히는 초신성으로 평가될 만한 평정심이었다.
턱과 왼팔에서 느껴지는 정신이 나갈 것 같은 고통을 인내하며, 남궁천은 침착하게 창궁무애검법의 초식을 펼쳐내며 세령을 압박했다.
‘형세가 기울고 있다. 이대로 틈을 내주지 않고 침착하게 밀어붙이면 충분히 이길 수 있어.’
지금까지의 전투에서 얻은 데이터로 세령의 대응을 예측하고, 찰나의 시간 동안 초식 다운로드 인터페이스를 통해 그에 대한 대응 초식을 계산한다.
무수한 실전 속에서 정련된 무인의 직감은 그렇게 도출된 초식들 중 올바른 것을 취해가며 최적의 투로를 만들어내고 있었다.
“큭!”
검을 휘두르는 남궁천의 코에서 울컥 피가 터져나왔다. 안 그래도 충격을 받아 정상이 아닌 상태의 두뇌에 어마어마한 부하가 걸려 무리가 갔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는 정수리가 쪼개지는 듯한 격통을 느끼면서도 검을 휘두르는 손을 멈추지 않았다. 잠시의 틈이라도 보이면 금세 역전당할 수 있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이었다.
살초만 쓰지 않았다 뿐이지 생사결과 같은 마음가짐으로 검을 휘두르는 남궁천.
허나 자신보다 강한 S+랭크의 고수를 쓰러트리기 위해서는 그만한 각오를 품어야만 했다.
그러나.
그는 한 가지 사실을 간과하고 있었다.
그의 검을 받아내고 있는 세령은, 일반적인 무인들이 얻은 것과는 근본부터 다른 가르침을 따라 성장해 왔다는 것을.
‘무언가······이상하군.’
비단 창궁무애검법뿐 아니라, 그가 아는 남궁세가의 절학들을 쏟아내며 세령을 밀어붙이던 남궁천은 어느 순간부터 기이한 위화감을 느꼈다.
‘······예측이 빗나가고 있어?’
상대의 대응을 예측하는 것은 단지 확률론적인 계산일 뿐이니 빗나갈 확률은 반드시 존재하고, 그 오차 또한 유의미한 수치다. 그러한 오차를 경험과 실력으로 보완하는 것이 바로 절정의 고수에게 요구되는 기량이고 말이다.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그 오차의 범위가 점점 늘어나고 있었다.
위험한데. 여전히 날카롭게 정련된 검으로 초식을 펼치고 있으면서도, 남궁천의 가슴 한구석에서 초조함이 스멀스멀 피어났다.
어째서 오차가 늘고 있는 걸까.
그 원인을 파악하는 데에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초식이······변하고 있다?’
자신의 초식에 대응해 세령이 펼치는 무공의 초식들이 조금씩 변하고 있다. 변하기 전의 구 데이터를 기반으로 대응을 예측하니 오차가 늘어나는 것은 당연할 수밖에.
하지만 그럼에도 남궁천은 이해할 수 없었다.
검을 섞는 와중에 초식을 변화시킨다는 것이, 도저히 상식적으로 가능한 일이 아니기 때문이었다.
현대 무림의 상식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현상.
그렇다면 그 답을 구할 곳은 하나밖에 없었다.
‘설마, 참룡검제가······!’
초식 다운로드 인터페이스 따위가 존재하지 않는, 오직 무수한 반복과 탐구를 통해 몸에 초식을 익히는 원시의 무림.
그 시대의 정신 그 자체라 할 수 있는 존재에게 가르침을 받은 자의 검이 어찌 현대 무림의 검과 같길 기대하겠는가.
단순히 초식 다운로드 인터페이스의 안내를 따라 펼치는 것으로 끝나지 않고, 목진으로부터 제가 펼친 초식에 대한 끝없는 고민과 이해를 요구받았던 무인.
저 스스로도 모르는 사이 먼 과거의 편린을 이어받은 세령의 검이, 조금씩 초식의 틀을 벗어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