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smic Heavenly Demon 3077 RAW novel - Chapter (304)
우주천마 3077 우주천마-305화(305/349)
45. 은원청산 Payback (6)
45. 은원청산 Payback (6) – 이거 정당방위야 이 개새끼야
언젠가, 새 무공을 배우기 전 목진과 대련을 할 때의 일이다.
몇 시간 내내 온갖 발악을 하고도 목진이 대강 휘적이는 쇠막대기 하나를 뚫어내지 못한 채 끙끙거리던 그녀를 향해 목진이 혀를 차며 말했더랬다.
“쯧쯧쯧. 그런 겉껍데기인 검으로는 평생을 휘둘러도 내 옷깃 하나 건들지 못할 것이거늘.”
“헥, 저기요, 아저씨 상대로 유효타를 낼 실력이면 내가 지금 이러고 있겠어요? 거기다 이 검법도 그렇게 좋은 검법이 아니라면서요.”
세령이 툴툴댔다. 담식검귀의 검법은 분명 그녀가 쓰던 싸구려 검법보다는 훨씬 좋긴 했지만, 목진의 눈에는 차지 않는 모양이었다.
하지만 목진은 그런 세령을 보며 크게 꾸짖었다.
“갈! 네 실력이 부족한 것을 두고 애꿎은 무공 탓을 하느냐? 초식 속에 들어있는 함의(含意)는 싸그리 무시한 채 그 머릿속의 콤퓨-타인지 뭔가 하는 것이 시키는 대로 원숭이처럼 따라하기만 하니 그런 검을 쓰는 것이 아니더냐.”
아니 남들 다 이렇게 하는데 왜 나만 갖고 그래. 세령으로선 억울하기 그지없는 이야기였다.
“아니 그거나 이거나······. 오히려 초식 다운로드 인터페이스가 시키는 대로 하는 게 더 깔끔하게 움직이잖아요.”
“그거야 네가 평소에 수련을 수련답지 않게 건성으로 했으니까 그렇지! 미련하게 반복만 하면 그게 무슨 의미가 있다고······에잉.”
“그럼 제대로 수련하는 게 뭔데요.”
“생각을 하면서 초식을 반복하라는 말이다. 이 초식을 왜 쓰는지, 초식에 이 동세가 왜 들어있는지, 그 동세의 의미는 무엇인지. 초식을 따라하면서도 그런 것들을 계속해서 고민하고 또 고민해야 비로소 그 초식을 온전히 네 것으로 익힐 수 있는 것이거늘, 아무 생각 없이 몸만 움직이니 어설픔을 벗어던지지 못하는 것이 아니더냐.”
“······그게 그렇게 말처럼 쉬운 줄 알아요?”
“나 때는 다 그렇게 했느니라.”
“아니, 옛날에는 뭐 천재밖에 없었대요?”
“무인이라면 마땅히 거쳐가야 하는 과정이거늘 무슨 천재 타령을 하느냐.”
씨. 세령이 제 얼굴을 구깃거리며 분한 목소리를 내뱉었다. 목진에게 화가 나서가 아니라, 그의 말이 옳다는 것을 알고 있음에도 그가 요구하는 것을 따라갈 수 없는 저 자신에게 화가 났기 때문이었다.
그런 세령의 모습을 본 목진이 그녀에겐 들리지 않도록 작게 한숨을 쉬었다. 그는 조금 전보다는 한결 부드러워진 목소리로 그녀를 타이르듯 말했다.
“······물론 이것이 만만하게 생각할 일은 아니니라.”
“그게 만만하면 우주에 나 무림인이요 하고 거들먹대는 놈들은 다 접싯물에 코박고 죽어야지······.”
세령이 들릴락 말락하게 꿍얼거렸다. 목진은 그런 그녀의 말을 못 들은 체 하며 말을 이었다.
“본래 무공을 수련하는 정도(正道)는 초식 하나하나를 매일 백번 천번씩 반복하며 자연스럽게 체득하고 이해하는 것이다. 허나 너는 목적하는 바가 있으니 의식적으로 초식이 품은 함의를 궁리해서라도 빠르게 무공을 쌓아야 하느니라.”
목적. 오대세가에 대한 복수를 말함이다. 세령의 태도가 조금 누그러졌다.
“그렇게 말하면 할 말은 없긴 한데요······이거 효과가 있는 건 확실해요?”
뭐든 도움이 되긴 하겠다마는, 막 수십 년 동안 생고생을 해야 간신히 작은 결실을 얻을 수 있다면 수지가 안 맞지 않은가.
목진은 세령의 물음에 자신 있게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이다. 기간이야 네 노력하기에 달려있으나, 얼추 오 년 정도만 꾸준히 수련을 이어나가도 스스로 변화를 실감할 수 있을 터.”
세령이 알 턱은 없으나, 목진이 내린 조언은 최소 화경의 경지에 오른 이가 아니면 해줄 수 없을 정도로 값진 조언이었다. 화경의 경지에 닿기 위한 필요조건 중 하나가 바로 초식에 대한 심도 깊은 이해이기 때문이다.
물론 그 조언을 얼마나 제 것으로 만들지는 오직 세령의 몫이었지만 말이다.
“네 무재가 제법 뛰어난 편이니 수련을 게을리하지 않으면 크게 도움이 될 것이다.”
“······뭐야 갑자기, 괜히 띄워주려고 그러는 거 아녜요?”
갑자기 훅 들어온 후한 평가에 세령이 슬그머니 시선을 피하며 삐죽이자 목진이 태연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너를 부추긴다 한들 내 득 볼 게 무어라고.”
저렇게까지 말하는데 안 하겠다고 할 수는 없지 않은가. 그녀는 칭찬에 약했다.
“으······. 알았어요. 한다고. 하면 될 거 아냐.”
그날 이후로, 세령은 무공을 수련할 때마다 가능한 한 목진의 조언을 따르며 검을 휘둘렀다.
목진이 말한 변화는 느끼지 못했다. 단지 까마득한 고수의 조언이니 뭐든 도움은 되겠지라는 막연한 생각에서 수련을 이어나갔을 뿐.
그러나 지금 이 순간.
세령은 분명히 그 수련으로부터 비롯된 변화를 체감하고 있었다.
‘이게······되잖아?’
아직 부족한 그녀의 공부로는 즉석에서 변초를 만들어내거나 하는 신기(神技)를 보일 수는 없다.
하지만 단지 아주 작은 동세를 빼거나 더하는 것만으로도 초식 자체에 충분한 변화를 줄 수 있으니.
눈앞의 미숙한 검수의 검에 맞서기에는, 다만 그 정도로도 부족함이 없었다.
“크······?!”
남궁천의 맹렬한 공세에 밀려 주춤하던 세령의 검에 점차 여유가 깃든다. 그녀의 검을 따라 펼쳐지는 초식들은 이미 남궁천이 예측할 수 있는 영역을 벗어나 있었다.
이미 공수의 천칭은, 타오르는 불길이 사그라드는 불씨를 잡아먹듯 거꾸로 역전되고 있었다.
– 초식의 껍데기에 얽매이지 아니하고, 그 안에 품은 뜻을 이해하거라.
신들린 듯 초식들을 쏟아내며, 세령은 불현 듯 기억 한 구석에서 목진의 조언을 떠올렸다.
‘아저씨가 말하던 게 이거였구나.’
초식을 구성하는 동작 하나하나에 담긴 의미를 이해하니, 상대의 초식에 따라 그 형(形)을 바꾸는 것이 어찌 불가능한 일이랴. 한 줄기 깨달음이 그녀의 뇌리를 스쳐 지나갔다.
이미 세령의 눈에는 남궁천도, 그의 검도 보이지 않았다. 그녀는 그저 제 검에 홀려 아무런 생각도 떠올리지 않고 제 손에 잡힌 검을 놀렸다.
이윽고, 끝나지 않을 것만 같던 그녀의 검무가 끝에 도달했을 때-.
그녀의 앞에 서 있는 것은 오직 반으로 잘린 검을 든 초라한 검수뿐이었다.
“아······.”
아쉬움인지, 경탄인지 모를 탄성이 세령의 입술 사이로 나지막이 흘러나왔다. 고작 일 분도 지나지 않았건만, 그녀의 전신은 물에 젖은 솜처럼 무거워져 있었다.
전신에서 흘러나온 땀에 푹 젖은 채, 그녀는 고개를 들어 남궁천을 바라봤다.
“이 무슨······말도 안 되는······.”
그는 세령이 아니라 반듯하게 잘린 그의 검을 바라보며 혼이 나간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그의 눈동자는 풍랑 속 조각배처럼 갈 곳을 찾지 못하고 어지러이 흔들리고 있었다.
직접 검을 섞고 있던 그이기에 누구보다도 확실하게 이해했다. 세령의 무공은 자신과 합을 겨루면서 놀랄 만한 진전를 이루어냈다는 것을 말이다.
한창 비무를 치르는 중에 깨달음을 얻어 일취월장하다니. 무협지도 아니고 현실에서 그게 가당키나 한 일이던가.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일. 하지만 지금까지 그녀가 걸어온 행보 중에 상식적인 것이 얼마나 되던가.
이제 남궁천은 인정해야만 했다. 그녀의 무공을 지도한 것은 참룡검제였으며, 그녀의 무재는 그의 가르침을 소화할 수 있을 정도로 출중했다는 것을.
스스로의 재능에 강한 프라이드를 가지고 있던 그는 좀처럼 세령의 폭발적인 성장을 인정할 수 없었다.
하지만 그 이상으로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은 따로 있었으니.
바로 그녀의 검 그 자체였다.
확률계산 따위의 잡기로는 감히 예측할 수 없는, 보통 무인의 영역을 벗어난 초식.
그는 이전에도 그러한 초식을 경험한 적이 있었다.
무인으로서 공경해 마지않는 대 남궁세가의 가주인 남궁수련.
믿을 수 없게도, 그녀의 검에서 느껴진 감각이 눈앞에 있는 제 또래의 후기지수의 검에서도 느껴지고 있었던 것이다.
‘그럴 리 없어.’
남궁천은 부정했다. 그러나 그의 이성은 달리 말했다.
분명 세령의 검은 존경하는 가주의 검에는 감히 비할 수 없을 정도로 조잡하고 미숙했다.
그러나 그녀의 검은, 분명 그가 존경해 마지않는 푸른 검성(劍聖)의 영역에 닿아있었다.
‘불쾌하다.’
감히 위대한 남궁의 검에 닿았다고? 고작 이 년 전까지만 해도 밑바닥 이류 낭인에 불과하던 쓰레기가?
세령의 재능이 자신을 넘어선다는 사실 이상으로 불쾌한 생각에 남궁천의 얼굴이 흉신악살처럼 일그러졌다.
“웩-.”
남궁천은 뱃속에서 올라오는 화끈한 감각을 입 밖으로 내뱉었다. 선홍빛 핏물이 바닥을 물들였다.
심마(心魔)였다.
하지만 남궁천은 개의치 않았다. 아니, 관심이 없었다는 점이 조금 더 정확하리라.
탄탄대로를 걸어온 그로서는 한 번도 경험해본 적 없는 깊은 심마. 그 음습함을 마주한 남궁천의 자아는 저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방어기제를 작동시켰다.
그의 머릿속에서 범인은 결코 이해할 수 없는 몇 번의 비약이 이루어지고, 그의 일그러진 자아가 마침내 결론을 내놓았다.
‘죽여야 한다.’
당세령이라는 존재 자체를 용납할 수 없다. 그러니 여기에서 무슨 수를 써서든 목숨을 끊어버려야 했다.
다행히 눈앞의 적은 깨달음을 소화하는 과정에서 힘을 다했기에 반격은커녕 그의 공격을 막을 여유조차 없어 보였다.
참으로 좋은 기회였다. 핏빛 목소리가 그의 귓가에 속삭였다.
결론을 내었으니 더 이상의 생각은 필요치 않다. 남궁천은 홀린 듯 내공을 끌어올려 부러진 검을 휘둘렀다.
그는 붉어진 눈동자로 세령의 눈이 경악으로 벌어지는 것을 보았다.
그런가, 예상하지 못했구나.
잘 되었다.
남궁천의 입가에 흉한 미소가 걸렸다.
그는 목을 향해 휘둘러지는 그의 검이 세령의 살거죽을 가르기 위해 다가가는 순간을 음미했다.
그리고-.
뱀과 같이 쏘아진 새하얀 빛줄기가 그의 검을 깨트렸다.
‘뭣-?’
따앙! 하고 쇠를 두드리는 소리와 함께 또다시 반으로 부러지는 검. 어느새 그와 세령의 사이에는 작은 체구의 인영 하나가 들어와 있었다.
그동안 까맣게 그 존재를 잊고 있던, 그들의 비무를 관전하고 있던 이.
바로 쌍사마녀(雙蛇魔女) 백사희였다.
백색 사복검(蛇腹劍)을 쏘아내 남궁천의 기습을 막아낸 그녀는 남궁천이 무언가 다른 생각을 떠올리기도 전에 번개와 같은 몸놀림으로 그의 명치 깊숙이 일권(一拳)을 쑤셔 박았다.
“커억!”
딱 죽지 않을 정도로 듬뿍 내공을 담은 주먹에 남궁천의 몸이 줄 끊어진 인형처럼 뒤로 나뒹굴었다.
백사희는 세령의 앞을 지키듯 가로막고 선 채 하나뿐인 눈을 부리부리하게 치켜올렸다.
“이 미친새끼가! 승부가 났는데도 기습을 해?! 그것도 살초를 써서?!”
정사마흑을 떠나 제대로 된 무인이라면 해서는 안 되는 금기(禁忌). 백사희의 양쪽 소매 안에서 살아있는 뱀처럼 움직이는 한 쌍의 사복검이 모습을 드러냈다.
“기록 남겼어 개새끼야, 이제 내가 널 죽여도 할 말 없는 거 알지?!”
분노한 백사희가 씩씩거리며 당장에라도 남궁천을 죽여버릴 듯한 기세로 기수식을 취했다. 아무리 금기를 어겼다고는 해도 그를 죽여버렸다간 남궁세가와의 관계가 크게 악화될 것은 확실했으나, 제대로 눈이 돌아간 그녀에겐 아무래도 상관없는 문제였다.
“······.”
바닥에 쓰러진 채 숨막히는 고통에 꿈틀거리던 남궁천이 비척비척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는 백사희의 물음에 대답하지 않고 검게 죽은 피를 토해내며 두 사람을 노려봤다. 실핏줄이 터진 것인지,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는 것인지는 몰라도 그의 눈은 마치 피처럼 붉게 변해있었다.
그리고, 세령은 분명 그와 같은 눈을 본 적이 있었다.
“야.”
“뭐. ······혹시나 해서 말해두는데, 너 때문에 끼어든 거 아니거든?”
“아니 그거 말고.”
세령은 평소와는 달리, 지극히 무겁고 냉정한 목소리로 말했다.
“째자.”
“뭐? 왜? 쟤 지금 병신이야. 나 혼자서도 상대할 수 있어.”
“나중에 설명할테니까 일단 째자고.”
세령이 왼손을 내밀었다. 그녀가 팔목에 차고 있던 긴급호출신호기가 붉은 빛으로 점멸하고 있었다.
“야, 이걸 지금 왜······.”
“저 새끼 상태부터 보고 말해.”
세령의 손가락이 남궁천을 가리켰다. 백사희가 그를 향해 시선을 돌리니, 어느새 그는 전신의 핏줄이 부풀어오른 채 괴기스럽게 얼굴을 일그러트리고 있는 상태였다.
암만 봐도 정상이라고는 부를 수 없는 모습이다. 백사희의 눈이 흔들렸다.
“뭐야, 저거 왜 저래.”
시발, 아무래도 도망치긴 글른 거 같은데. 세령이 욕설을 내뱉었다.
“크······죽이겠다······.”
짐승처럼 그르렁거리는 목소리에 배어있는 지독한 살기. 정도(正道)를 걷는 정파인의 것이라기엔 믿을 수 없는 진한 살기에 백사희가 당혹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이제는 검이라기보단 단검에 가까울 정도로 짧게 줄어든 검을 꼬나쥔 남궁천, 아니 남궁천이었던 것이 당장에라도 달려들 것처럼 몸을 웅크렸다. 백사희는 저도 모르게 마른침을 삼키며 그에게 맞서듯 자세를 취했다.
마침내 그것이 막 두 사람에게 달려들려던 찰나-.
“멈춰라. 남궁천.”
낯선 목소리와 함께 세 개의 그림자가 남궁천의 앞을 가로막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