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smic Heavenly Demon 3077 RAW novel - Chapter (306)
우주천마 3077 우주천마-307화(307/349)
46. 검마초월 Transcendence of Bladewalker (1)
46. 검마초월 Transcendence of Bladewalker (1) – 저거 혈교야
“다음 만남은 얼어죽을······.”
두 연놈들 때려잡을 때까진 그렇게 기분이 좋을 수가 없었는데, 막판에 영 골치 아픈 일이 생겼다. 세령이 신경질적으로 머리를 긁어댔다.
‘토투가 뒷골목에 혈교 끄나풀이 대놓고 돌아다니는 것도 소름이 끼치는데, 그게 남궁세가 놈들이라고?’
그것도 가주 직속의 정예조직이라는 놈들이다. 그 말은 곧, 남궁세가의 가주인 벽검성 남궁수련마저 혈교에 오염되었을 가능성이 적지 않다는 소리였다.
하북팽가의 소가주도 혈교에 오염되어 있더니 도대체 왜 만나는 오대세가 놈들마다 이 꼬라지인지. 세령이 심각한 얼굴로 입술을 잘근 깨물었다.
백사희는 그런 세령의 표정을 보며 그녀의 어깨를 툭 쳤다.
“야, 너 이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 건지 알고 있지.”
“뭐가?”
“뭐든.”
백사희는 평소와는 달리 한껏 진지한 목소리로 빠르게 말을 이었다.
“남궁세가가 끼어든 건 그렇다 쳐. 그런데 명색이 명문정파인 오대세가의 유명 후기지수인데 무슨 무협지 속 마공이라도 익힌 것처럼 갑자기 미쳐 날뛴다고? 거기에 그런 창천폭룡을 남궁세가의 가주 직속부대인 암천수호령이 감시하다가 아무런 절차도 없이 숙청해 버리고? 이게 정상적인 상황이니? 그리고 신고는 또 무슨 소리인데?”
뭔가 사건이 벌어지고 있다. 그것도 아주 위험한 사건이. 백사희는 설명을 요구하는 눈으로 세령의 눈을 똑바로 노려봤다. 어설픈 변명 따위를 꺼냈다간 바로 주먹부터 날아올 것 마냥 단호하기 그지없는 눈초리였다.
하. 세령이 한숨을 내쉬었다. 안 그래도 남궁세가가 오염되었을 가능성 때문에 골치가 아파 죽겠는데 백사희에게까지 설명을 해야 하니 속이 막막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미 볼 거 다 본 상황에서 마냥 모르쇠로 일관할 수도 없는 노릇. 거기에 쓸데없이 꼼꼼한 백사희의 성격상 막연히 둘러대 봐야 금방 들통이 날 게 뻔하리라.
‘뭐, 엄청난 극비까진 아닌데 이렇게 된 이상 그냥 말해주는 편이 낫나.’
세령은 주변을 슥 둘러봤다.
“······.”
암천수호령들이 미리 손을 썼었는지, 그나마 기절하지 않고 비무를 관전하던 제갈세가의 무인들은 어느새 전부 정신을 잃은 상태. 주변에 듣는 귀가 없는 것을 확인한 세령이 백사희만 들을 수 있도록 작은 목소리로 툭 내뱉었다.
“저거 혈교야.”
“그건 또 무슨 개소리······.”
“남궁천 그놈 혈교에 오염된 상태라고. 나중에 나타난 남궁세가 떨거지 놈들도 마찬가지고.”
처음에는 헛소리로 치부하려던 백사희는 이어지는 세령의 말에 입을 다물었다. 세령의 태도를 보고 단순한 핑계나 헛소리가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혈교? 혈교몰이 할 때 그 혈교라고?”
“어. 그 광신도 놈들.”
“······진심이야?”
“나도 장난이라고 하고 싶은데, 상황이 영 그렇지가 못하네.”
“확실해?”
“좀 있다가 아저씨 오면 물어보던가.”
“이런 미친.”
목진까지 들먹일 정도라면 거짓말일 리는 없다. 그제야 세령의 말을 믿은 백사희가 욕설을 내뱉었다. 하긴 남궁천과 암천수호령의 이상행동을 설명하기에 그보다 적절한 이유도 없긴 했다.
백사희가 가늘게 눈을 좁히며 세령을 바라봤다.
“너 설마, 전에도 혈교 추종자랑 만난 적이 있어?”
“말해도 못 믿을걸.”
혈교 추종자가 아니라 거의 인류 역사상 최초로 혈교의 하이브마인드 비스무리한 것까지 마주치기도 했다.
하지만 세령은 거기까진 말하지 않았다. 그 아테나조차 쉽사리 믿지 못했던 이야기인데 그걸 어느 세월에 하나하나 설명해준다는 말인가.
백사희는 굳이 세령에게 설명을 조르지 않고 심각한 얼굴로 생각에 잠겼다. 그리고 그때, 그녀의 뇌리에 얼마 전에 들었던 이야기 하나가 스쳐 지나갔다.
“······잠깐, 그럼 하북팽가가 혈교 때문에 봉문했다는 것도 사실이야? 루머가 아니라?”
“어. 팽상원 그 새끼가 지 애비한테 이상한 벌레 같은 거 심어서 조종하고 있더라.”
“······누가 누구를 벌레로 조종을 했다고?”
심각한 이야기라고는 생각했지만 이 정도는 예상 못 했다. 백사희의 얼굴이 푸르죽죽해졌다.
“그럼 혹시 암천수호령들도······하지만 벽검성이 그 꼴을 가만히 두고 볼 리는 없을 텐데.”
“왜 그년은 멀쩡할 거라고 생각하냐?”
“······.”
적어도 남궁세가 전체가 오염된 건 아닐 것이다. 지금까지 무림에 남궁세가의 상태가 이상하다는 이야기는 나돈 적이 없었으니까.
하지만 몇 번이고 자기네들 가주의 명이 어쩌고를 들먹일 만큼 가주에 대한 충성심이 충만한 놈들이 혈교에 오염되어 있다면, 가주인 벽검성 남궁수련조차 오염되었다고 보는 게 합리적인 의심 아닌가.
‘팽상원 때를 생각하면 혈교에 오염되었다고 딱히 뭐 엄청난 파워업을 하는 거 같진 않으니까 그나마 다행이긴 하지만······진짜로 오염된 거면 좀 찝찝한데.’
팽상권과 싸우고도 멀쩡한 걸 보면 자신까지 오염될 가능성은 희박하다고 보는 게 맞다. 하지만 사람 일이란 게 또 모르는 거 아닌가. 세령이 눈가를 찌푸렸다.
‘뭐······벽검성이 혈교에 오염됐건 말건 생사결을 해야 하는 건 변하지 않으니까 최악의 상황만은 아니길 빌어야겠네.’
일단 아저씨랑 순자한테 알리는 게 먼저겠지. 세령이 나름대로 생각을 마치자 기다렸다는 듯 백사희가 다시 말을 걸었다.
“그러고 보니······아까 신고한다고 했었잖아. 혈교에 오염된 게 사실이라면 인류정부 쪽에 남궁세가를 신고하면 해결되는 거 아니야?”
“아, 그거 그냥 블러핑이었어. 왜 아까 저놈들이 그랬잖아, 이미 다 대비해두고 있다고. 인류정부에서 집행관을 파견해도 어지간하면 꼬리를 잘라 버릴걸.”
“우리 회를 통하면 좀 윗선에다 찌를 수도 있는데.”
삼극회가 선이 닿은 윗선이래 봐야 일등 집행관보다 높을 리는 없지. 세령은 속으로 생각하며 가만히 고개를 저었다.
“······뭐, 높으신 분한테 연줄이 없는 건 아니긴 한데, 그쪽도 지금 바빠서 남궁세가에 신경을 쓸 틈이 있을지는 모르겠네.”
그리고 진짜 문제는 그쪽이 야니야. 세령이 말했다.
“내가 지금 뭐 하고 있는 중인지 까먹었냐?”
“그야······아, 너 복수행 중이었지.”
백사희가 그제야 깨달았다는 듯 고개를 주억거렸다.
“지금 타이밍에 내가 정부에다 남궁세가를 찔러 봐라. 벽검성한테 겁먹어서 비겁한 수를 썼다는 소리 듣는 건 둘째 치고, 지금까지 한 일들 전부 부정 당할 걸.”
세령이 사천당가의 복수를 명분으로 오대세가라는 거대문파의 수장이었던 이들과 일대일로 생사결을 치를 수 있는 건, 그들이 살아가는 세상인 무림이 그녀의 복수행과 그 명분을 긍정하고 지지하기 때문이다.
지지기반 하나 없는 밑바닥 출신의 혈혈단신 무인과 수천 년의 역사를 이어오며 여러 성계들을 거느리고 있는 거대 무림문파. 이 둘 사이에 대립구도가 성립하는 것이 가능할 리가 없지 않은가.
그렇기 때문에 그녀의 복수행은 무인으로서 순결해야 했다.
그리고 그 순결이란, 그 누구의 손도 빌리지 않고 스스로의 무공만으로 지목한 원수들을 꺾는 것을 의미했다.
그녀의 복수행을 긍정하는 것은 보편적 정의가 아니라 무림의 정의. 만일 그녀가 남궁세가를 신고한다면 그 이유가 무엇이건 간에 그녀의 복수가 정당성을 잃게 되리라.
“신고를 때리려면 복수행이 끝난 다음에 때리던가 해야지. 지금으로선 다른 방법은 없어.”
“······괜찮겠어? 혈교 놈들 소굴로 들어가는 걸수도 있잖아.”
“뭐······. 아저씨가 있으니까 괜찮겠지.”
경험상 혈교고 나발이고 아저씨 앞에선 의미 없더라고. 목진이 무영탑에서 까마득한 절대고수들을 가차 없이 진압하던 일을 떠올린 세령이 어깨를 으쓱였다. 화산의 전 장문인인 용적산과 동급이거나 그 이상의 고수들이 줄줄이 목이 날아가는 모습은 지금 생각해도 현실감이 없었다.
“기왕 말 나온 김에 너네도 한번 확인해 봐라. 삼극회 안에도 혈교 놈들 끄나풀이 있을 수 있으니까.”
“갑자기 그건 또 무슨······아니, 근데 너는 지금까지 이런 중요한 이야기를 말도 안 하고 있던 거야?”
“이렇게 상황이 심각할 줄은 몰랐으니까 그렇지. 팽가가 이상한 줄 알았는데 남궁세가까지 저 꼬라지일 줄 낸들 알았겠냐.”
한 번이면 몰라도 두 번이다. 혈교의 움직임이 심상찮다는 것을 어느 정도 인지하고 있기는 했지만 설마 이 정도로 심각할 줄은 생각지도 못하고 있었다.
“아무튼 회주님한테 말씀드려서 비밀리에 위부터 아래까지 싹 다 훑어보는 게 좋을걸. 일단 회주님이나 너는 아저씨랑 자주 마주쳤는데도 별다른 말 못 들었으니까 오염되지 않은 건 확실해.”
세령의 말에 백사희가 미간을 좁혔다.
“네 말대로면 제일 위험한 건 데이빗 쪽 아냐? 남궁천이 그쪽 소속으로 들어온 거잖아.”
“그럴 수도 있지. 뭐, 그놈이 혈교랑 관계가 있건 없건 너네 첫째 오빠는 참 좋아할 건수긴 하네.”
생각해보면 후계경쟁 구도에서 경쟁자 하나를 합법적인 명분으로 공격할 수 있는 정보를 준 셈이 아닌가. 백선봉의 성격상 그만한 정보를 받아먹고 입 싹 닫지는 않을 테니 나름 쏠쏠한 보상을 기대해도 괜찮으리라.
“그러고 보니 너는 후계자 경쟁에서 일찍이 빠진 애가 왜 백선봉 선배 밑으로 들어갔냐?”
“밑으로 들어간 거 아니거든. 잠깐 협력하고 있는 거거든.”
“그거나 그거나. 너 원래 그런 거 하기 싫다고 거리 뒀었잖아.”
백사희가 눈을 흘겼다.
“내가 후계 경쟁이 싫은 거지 삼극회 사람이 아닌 건 아니거든? 데이빗 그 멍청이가 제갈세가를 끌어들여서 잠깐 협력하고 있는 거야.”
다 저년 때문이라는 소리지. 그녀는 고개를 홱 돌려 아직 정신을 잃고 있는 제갈희 쪽을 노려봤다.
“야, 근데 혹시 저년도 오염된 거 아냐?”
“······솔직히 맘 같아선 그렇다고 하고 싶긴 한데, 일단 느낌상으론 아닌 거 같더라.”
“그 느낌 믿을 만 한 거야?”
“혈교 끄나풀들이랑 좀 마주쳤어야 말이지.”
세령이 어깨를 으쓱였다. 팽상원 때도 그렇고, 무영탑에서도 그렇고 그동안 징하게 혈교 오염체들을 겪어본 덕에 완벽하진 않을지언정 나름대로 이놈이 오염된 놈이구나 아닌가 하는 것 정도는 느낄 수 있었다.
그런데 이년을 어찌한다. 쓰러진 제갈희를 내려보던 중 무슨 음흉한 생각이라도 떠올랐는지 묘한 기색으로 주변을 살핀 그녀가 중얼거렸다.
“보는 눈도 없는데, 지금 손 좀 봐줄까······?”
“······나는 눈 아니니?”
“그래서, 말릴 거냐?”
“그건 아니지.”
그럼 뭐가 문젠데. 세령은 검을 쥔 채 성큼성큼 제갈희를 향해 다가갔다. 그런 그녀의 등을 향해 백사희가 나직하니 말했다.
“뒤탈 없게 잘 처리해.”
“에이, 내가 무슨 흑도 사람도 아니고 정신을 잃은 사람 팔다리를 자르고 막 그러겠냐? 나중에 뒷말 나오면 나도 곤란하다고.”
그냥 머리만 깔끔하게 싹 밀어줄 거야. 세령이 사악한 웃음소리를 흘리며 말했다.
“······미친년 진짜.”
백사희가 질린 얼굴로 중얼거렸다.
그러나 그런 언행과는 달리, 그녀는 딱히 세령을 말릴 생각이 없었다. 제갈희를 싫어하는 건 그녀도 마찬가지이기 때문이었다.
굴욕은 굴욕대로 줄 수 있되, 그렇다고 딱히 엄청나게 무림의 법도를 어기는 것도 아니니까 이 정도가 딱 좋다. 백사희는 슬며시 안대에 딸린 녹화 기능을 켰다.
이왕 이렇게 된 거 죽을 때까지 술안주로 써먹을 수 있을 세기의 정의구현을 영원토록 동영상으로 남겨야 하지 않겠는가. 그녀는 흥미진진한 표정을 한 채 능동적인 방관자가 되었다.
하지만 그녀의 기대와는 달리 제갈희의 머리를 맨들맨들 빛나도록 만들어주겠다는 세령의 웅대한 야망은 이뤄질 수 없었다.
세령이 제갈희의 코앞에 도착할 즈음부터, 저 멀리서부터 희미하게 발자국 소리가 들려왔기 때문이었다.
“······.”
심술궂은 표정으로 제갈희를 바라보던 세령이 별안간 표정을 싹 바꾼 채 골목 저편을 향해 고개를 들었다.
‘정확히 이쪽 방향으로 오고 있다······두 명인가?’
멀리서도 알아챌 수 있을 정도이니 무공을 익힌 무림인일 리는 없다. 아마도 길을 잘못 든 일반인이리라.
하지만 세령은 왠지, 그들을 향해 걸어오는 이들이 마냥 무관한 이들은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둑한 골목 저편으로부터 가까워지는 발자국 소리.
그 발자국 소리들 사이에서 희미하게 철컹이는 쇳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