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smic Heavenly Demon 3077 RAW novel - Chapter (307)
우주천마 3077 우주천마-308화(308/349)
46. 검마초월 Transcendence of Bladewalker (2)
46. 검마초월 Transcendence of Bladewalker (2) – 기묘한 이인조
“야.”
백사희를 부른 세령이 발소리가 들려오는 방향을 향해 가볍게 턱짓했다. 이미 그녀처럼 누군가가 다가오고 있음을 느낀 백사희가 고개를 끄덕이고는 경계 섞인 목소리로 외쳤다.
“그쪽은 누구냐? 숨어있지 말고 나와!”
백사희의 물음에 발걸음 소리가 뚝하고 멈췄다. 이윽고, 가로등 빛으로 가려진 그림자 안에서 두 개의 그림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낡고 두꺼운 망토를 뒤집어쓴 정체불명의 괴인이 하나. 그리고 어린아이처럼 작은 체구에 고양이 같은 짐승의 귀와 꼬리를 가지고 있는 여인이 하나.
묘한 조합의 이인조였다.
코 위에 걸친 자그마한 안경으로도 날카로운 눈매를 감추지 못한 여인이 먼저 입을 열었다.
“딱히 숨어있을 생각 없었어.”
애초에 난 무림인도 아니거든. 여인은 담배를 꼬나문 채 무심한 목소리로 말했다. 하지만 그녀의 시선은 백사희가 아니라 세령 쪽을 향하고 있었다.
딱히 숨길 생각도 없어 보이는 그녀의 시선에 세령이 미간을 좁혔다.
“말로는 무림인이 아니라고 해도······어째 우리 쪽에 용건이 있는 거 같은데, 내 착각인가?”
“뭐, 그쪽에 용건이 있는 건 맞아. 근데 그 전에, 그 칼로 뭘 하려고 했는지 물어봐도 괜찮으려나?”
언뜻 보니까 칼침이라도 한 대 놓으려는 거 같던데. 여인이 세령을, 정확히는 세령이 쥔 검을 가리키며 물었다. 쓰러진 제갈희 앞에서 검을 꼬나쥐고 있었으니 썩 합리적인 질문이었다.
“뭐, 별거 아니야. 그냥 이발이나 좀 해주려고 했지.”
세령은 그녀의 질문에 능청스럽게 납검하며 어깨를 으쓱였다. 여인이 살풋 눈가를 찡그렸다.
“······초면에 말하긴 좀 그런데, 좀 악취미스럽네.”
“아, 얘랑 나 사이에 좀 깊디깊은 원한이 있거든. 이런저런 사정으로 관대하게 머리카락만으로 봐주는 거야. 이 정도면 고마워 해야지.”
그래서 그쪽은 누구? 세령이 되물었다. 상대가 무림인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음에도 그녀는 조금도 긴장을 풀지 않고 있었다. 그녀의 신경은 여인이 아니라 그녀의 옆에 서 있는, 로브로 전신을 가리고 있는 괴인에게 집중되어 있었다.
“내 이름은 코코. 프리랜서 해커야.”
“어째 애완용 고양이 같은 이름이네.”
“뭐, 그런 이야기 자주 듣긴 해.”
세령의 도발 아닌 도발을 가볍게 흘려넘긴 여인, 코코가 이번에는 그녀의 옆에 서 있는 괴인을 향해 턱짓을 했다.
“이쪽은 무명(無名). 자기를 지칭하는 이름 같은 건 처음부터 없었다면서 마음대로 불러달라더라. 그래서 그냥 야, 너, 아니면 무명이라고 부르고 있어.”
“컨셉 희한하게 잡은 양반이네. ······뭐 그래서, 우리 쪽 소개도 필요한가?”
“됐어, 그쪽에 대해선 대충 들었거든.”
“우리 이야기를 들었다라······데이빗 쪽 사람이냐?”
아니면 이쪽? 세령이 검 끝으로 쓰러진 제갈희를 가리켰다.
“거기 자빠져 있는 제갈세가 아가씨 쪽. 그런 의미에서 해코지를 하는 건 웬만하면 좀 자제해 줬으면 좋겠어.”
“피 한 방울 안 묻힐 테니까 잠깐 이발 좀 시켜주는 것도 안 될까?”
“······왜 그렇게 머리카락에 집착하는지는 모르겠는데, 우리가 오기 전이었다면 모를까 지금은 좀 곤란한걸. 명색이 그 아가씨네 할아버지가 우리 물주이신데 아예 모른 척할 수는 없거든.”
할아버지라. 제갈희의 할아버지라면 하나뿐이다. 껄렁하던 세령의 태도에 날이 섰다.
“······제갈현 그 노괴가 보냈냐?”
“글쎄······. 보냈다기 보단 서로의 이해가 일치해서 거래를 했다고 표현해주면 좋겠는데. 사적인 감정은 없어.”
그리고 어차피 승부는 한참 전에 난 거 아니야? 하나같이 맞는 말만 하는 코코의 말에 세령이 와락 인상을 찌푸리며 벅벅 머리를 긁었다. 아무리 제갈희에게 맺힌 원한이 깊다고는 하지만 공사 구분은 확실히 해야 뒤탈이 없었다.
“하 씨, 올 거면 일 분만 늦게 좀 오지.”
시간이 조금만 더 있었다면 제갈희 이 망할 년에게 통쾌한 굴욕을 안겨줄 수 있었을 텐데. 세령은 서두르지 않은 과거의 자신을 원망하며 아쉬움이 가득한 얼굴로 손을 휘적였다.
“시발 그래, 맘 바뀌기 전에 얼른 이거 데리고 가라.”
같이 온 남궁천은 지네 세가 놈들한테 모가지가 따였는데, 제갈희는 해봐야 죽빵 한 대 맞고 땡이라니. 하여간에 지지리도 운이 좋은 년이 아닐 수 없었다.
하지만 정작 코코와 무명은 제갈희에게는 관심이 없는 듯 물끄러미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우리 목적은 아직 이야기도 안 꺼냈는데?”
뭐? 세령이 고개를 모로 기울였다.
그녀는 어리둥절한 표정을 한 채 검집 끝으로 제갈희를 가리켰다.
“이거가 너네 목적 아니었냐?”
“거기 제갈세가 아가씨를 챙기는 게 일단은 거래조건에 포함되긴 하는데, 우리 목적은 그거랑 별개거든.”
어쩐지 예상과는 다르게 이야기가 돌아간다. 양쪽의 대화를 살피던 백사희가 끼어들어 그들의 목적을 물었다.
“그럼 너희 목적은 뭔데?”
이쪽. 코코는 가만히 손가락을 들어 세령 쪽을 가리켰다.
“······제갈현이? 나를?”
생각지도 못하게 지목당한 세령이 얼굴을 와락 찡그렸다. 제갈세가 관계자로 왔는데 자신이 목적이라고 한다면 그 의도야 뻔한 게 아닌가.
그러나 코코는 가만히 고개를 가로저었다.
“말했잖아. 이해관계가 일치했을 뿐이라고. 제갈세가나 그쪽과는 관계없는 용건이야.”
“그러면 더 모르겠는데. 애초에 너네랑 만난 기억도 없고.”
“정확히 말하자면 우리 용건은 네가 아니야. 네 동료 쪽이지.”
“동료······아, 순자 말하는 거야? 해커라면서.”
세령이 그제야 이해했다는 듯 다소 누그러진 기세로 아 하는 소리를 냈다. 세령의 동료라고 해봐야 순자와 목진뿐이니 프리랜서 해커가 찾아올 쪽이라면 어느 쪽인지 고민할 것도 없다.
세령의 말에 코코가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다.
“······설마 했는데 그때 그게 정말로 금귀나찰이었나보네. 그런데 잘못 짚었어. 우리 용건은 참룡검제한테 있거든.”
“아저씨한테?”
아니 도대체 왜? 세령이 다시금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메일도 제때제때 읽을 줄 몰라서 자기한테 대신 관리를 맡기고 있는 양반이 도대체 해커랑 무슨 접점이 있다는 말인가.
그녀의 의문에 대한 대답은 코코가 아닌, 줄곧 침묵을 지키고 있던 무명에게서 들려왔다.
“일이 예상했던 것과는 다르게 풀리긴 했지만 상관없겠지.”
보통 사람의 목소리와는 사뭇 다른, 기계적인 느낌이 섞인 목소리. 무심하면서도 이질적인 목소리였다.
“참룡검제를 만나고 싶다.”
그러니 협조를 부탁하지. 딱히 공손함과는 거리가 먼 무명의 말에 세령이 슬쩍 얼굴을 찡그렸다.
“발소리나 목소리 보니까 강체곡(强體谷) 출신 사이보그 무인 같은데, 아저씨는 왜 찾냐?”
“검(劍).”
“······아, 그쪽 양반이셨군.”
평범하게 호승심이 넘치는 무림인.
자주 만날 수 있는 부류는 아니지만, 무림인이라면 딱히 생소하지도 않은 타입이다. 세령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제갈현이 보냈다는 말에 뭔 수작이라도 부리는 게 아닐까 하고 경계했건만, 아무래도 쓸데없는 걱정인 모양. 한결 긴장이 풀린 세령이 팔랑팔랑 손을 내저었다.
“비무가 하고 싶으면 그냥 호텔로 찾아와. 굳이 그렇게 무게잡으면서 날 찾아올 필요는 없으니까.”
그녀가 아는 목진이라면 저런 타입은 어지간히 싸가지를 말아먹지 않은 이상 흔쾌히 비무를 받아줄 것이다. 다른 건 몰라도 무공에 대해서만큼은 항상 진심인 양반이 아니던가.
하지만 코코는 그녀의 말에 동의하지 않는다는 듯 어깨를 으쓱였다.
“글쎄? 무명은 하하호호 훈훈한 분위기의 비무를 바라고 온 게 아니라서 말이지. 그리고 일단은, 제갈세가를 대신해 백룡대의 복수를 하러 왔다는 명분이 있기도 하고.”
“······야, 아까랑 이야기가 좀 다르지 않냐?”
복수라는 말에 정색한 세령의 눈이 스산하게 빛났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제갈현의 명령을 받아 온 게 아니라더니, 갑자기 백룡대니 복수니 하는 소리는 왜 들먹인다는 말인가.
뭐, 혼란스러워하는 것도 이해가 가니까 간단하게 설명해 줄게. 코코가 머리를 긁적이며 설명했다.
“제갈세가는 더 이상 참룡검제한테 전력을 소모할 생각이 없어. 하지만 참룡검제에게 몰살당한 백룡대의 가족과 지인들은 복수를 원하고 있지. 제갈세가 입장에선 그 사람들 말을 마냥 무시할 수는 없으니까 뭐라도 액션은 취해야 하는 상황이었어.”
그런데 상대가 상대이니 어지간한 전력으로는 생색도 못 내잖아? 코코가 말을 이었다.
“참룡검제랑 급이 맞는 고수도 없고, 그렇다고 백룡대 급의 전투대를 하나 더 갈아넣었다간 정말로 세가 허리가 박살나겠지. 그런데 짜잔. 마침 참룡검제랑 목숨 걸고 한판 떠보겠다고 지원만 좀 해달라는 검객이 하나 나왔네? 아마 승룡제 입장에선 이게 웬 떡이냐 싶었을 거야.”
“······하, 그럼 저쪽 양반은 그 급이 되고?”
세령이 가소롭다는 듯 무명을 향해 턱짓했다.
천마신교의 부교주와 뇌신유녀의 합공도, 무수한 수의 절대고수도 상처 하나 없이 이겨낸 목진이다. 아마 우주의 그 어떤 절대고수를 데려와도 목진과 진심으로 자웅을 겨룰 만한 이는 찾기 어려우리라.
“그쪽 사문을 모욕할 생각은 없긴 한데, 지금 무림에서 강체곡 출신 절대고수가 나타났다는 이야기는 들어본 적이 없단 말이지. 그러면 잘 쳐 줘야 나랑 비슷하거나 조금 위 정도라는 건데, 고작 그정도 가지고 복수니 뭐니 할 급은 되나?”
상대의 신경을 긁는 도발적인 발언이긴 했으나, 판단 자체는 충분히 합리적이다. 세령이 서늘한 미소를 지었다.
“백룡대 갈릴 때 참호노병도 같이 당한 거 알지? 그 양반, S+랭크였는데도 시간 잠깐 끌고 죽었어. 얼마 받고 이 짓 하는 건지는 모르겠는데, 객기 부리지 말고 돌아가서 제갈현 그 노친네한테 전해. 개수작 부리지 말고 내가 찾아갈 때까지 모가지 잘 씻고 있으라고.”
“······쩝. 대화로 풀 수 있나 싶었는데 아무래도 협조해 줄 생각은 없는 것 같네.”
그냥 계획대로 할까? 아쉽다는 듯 입맛을 다신 코코가 무명을 돌아보며 말했다.
무명은 그녀의 말에 살짝 고개를 끄덕이며 한 발짝 앞으로 나섰다. 철컹 하고 쇠가 바닥을 딛는 소리가 선명하게 울려퍼졌다.
무명이 예의 쇳소리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마지막으로 제안하지. 참룡검제를 호출해라. 그럼 위해를 가하진 않겠다. 나는 참룡검제와 싸우기 전에 너를 상대할 만큼 여유로운 상황이 아니야.”
“엿이나 드세요. 그리고 참룡검제 이름이 뉘 집 개 이름인 줄 아냐? 누구 맘대로 오라가라야.”
무명의 최후통첩을 듣는 둥 마는 둥 그에게 중지를 치켜올린 세령이 납검했던 검을 다시 뽑아 들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그녀의 몸 상태는 빈말로도 좋다고는 할 수 없는 상태이긴 했다. 제갈희에게 한 방 먹은데다가 그 상태로 남궁천까지 연이어 상대한 상태였으니까.
하지만 세령은 조금의 불안감도 느끼지 않았다. 믿는 구석이 있기 때문이었다.
‘슬슬 아저씨가 올 때가 됐거든.’
제갈희가 자신을 꼬여내느라 외곽지역으로 터를 잡은 탓에 예상보다는 조금 늦는 감이 있지만, 그래봐야 고작 몇 분. 그 정도의 시간쯤은 현재의 몸상태로도 충분히 벌 자신이 있었다.
전신을 가린 로브 속에서 날카로운 검 한 자루를 꺼내 그녀를 겨눈 무명을 마주하기 전까지는, 분명 그러했다.
“굳이 손해 보는 길을 가겠다면 어쩔 수 없지. 네가 부르지 않겠다면, 너를 인질로 잡으면 되겠군.”
“미안하지만 그건 안되겠는데.”
감히 누구 맘대로 우리 구역에서 회의 손님을 노려? 백사희가 호기롭게 나서며 양팔의 소매 속에서 사복검을 뽑아냈다.
하지만 그 전에, 세령이 그녀의 어깨를 덜컥 붙잡았다.
“······야, 잠깐만 좀 있어 봐.”
아무래도 우리 좀 좆 된 거 같다. 싸울 생각 만만이던 말과는 달리, 갑자기 정반대의 말을 꺼내는 세령의 말에 백사희가 얼굴을 찡그렸다.
“뭐? 그게 갑자기 무슨 소리······너 표정이 왜 그래?”
세령을 돌아본 백사희가 한쪽 눈썹을 치켜올렸다. 세령의 얼굴이 조금 전과는 달리 잔뜩 긴장한 기색으로 굳어있었기 때문이었다.
세령은 그녀에게 눈길조차 주지 않은 채, 무명의 검에서 눈을 떼지 않고 말했다.
“저거 절대고수야. 우리가 죽었다 깨나도 못 이겨.”
그동안 목진을 포함한 여러 절대고수들과 수도 없이 지도비무를 했고, 무영탑에서는 아예 며칠 내내 죽기살기로 생사결만 치러온 세령이기에 기수식만 보고도 알 수 있었다.
눈앞에 있는 이름 없는 검객은, 그동안 그녀가 만나온 절대고수들 중 한 손에 꼽힐 정도의 고수라는 것을.
‘최소 서천검후······아니 만화검존 이상······?’
목진을 제외하고 그녀가 봐온 가장 강한 검수들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하지만 그들조차도 눈앞의 사내를 이길 수 있으리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까마득한 하수인 그녀조차 느낄 수 있을 정도라면, 그 실력의 차이는 고작 한두 수 정도로 가늠할 수 없을 정도일 터.
지금까지 그녀가 만난 이들 중 이런 느낌을 받은 고수는 목진 외에 단 한 명뿐이었다.
무영탑의 탑주, 시그마.
정점의 자리에 올랐으나, 그마저도 뛰어넘고자 했던 초월적인 고수.
내공을 끌어올리지도 않은 채 단지 검을 쥐기만 했음에도, 눈앞의 사내에게선 분명 그에 못지않은 고수의 기백이 흘러나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