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smic Heavenly Demon 3077 RAW novel - Chapter (313)
우주천마 3077 우주천마-314화(314/349)
46. 검마초월 Transcendence of Bladewalker (8)
46. 검마초월 Transcendence of Bladewalker (8) – 내 생에 최고의 생일
검이 날아온다.
일평생 무인의 길을 걸으며 셀 수도 없이 많은 적을 맞이하여, 그 모두를 무릎 꿇려 온 그조차도 처음으로 마주하는 형태의 검이다.
당연했다.
그것은 적을 해하는 검이 아니라 벽을 부수는 검이었으므로.
천마 이목진은 검마 무명의 벽이었다. 그리고 목진은 기꺼이 그 역할을 받아들였다.
내가 너의 벽이 되어줄 터이니, 나 또한 너를 나의 벽으로 삼겠노라.
그러니 누군가 한 사람이 극의(極意)에 달할 때까지, 영원토록 서로를 넘어서자.
갑작스레 맞이한, 목숨까지 걸고 벌이는 결전에 각오를 다질 시간 따위는 필요치 않았다. 마도(魔道)에 뜻을 둔 무인이 성취를 이루기 위하여 목숨을 거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었으니까.
그리고 이목진이라는 사내의 각오는 무(武)에 뜻을 둔 이래로 단 한 번도 물러진 적이 없었다.
목진은 그의 깨달음, 만종을 담은 검을 뻗었다. 그의 검은 검이자 도였으며, 창이자 권이 되어 검마의 검을 마주했다.
극도로 정제된, 생사지경에 이른 무인이 쌓아올린 무의 정수. 제아무리 인세의 영역을 벗어난 검이라 하더라도 결코 쉬이 압도할 수는 없다. 한순간에 매서운 검격을 잡아먹은 만종이 검마의 외부장갑에 깊은 상흔을 남겼다.
예리한 검날이 훑고 지나간 외부장갑의 틈새에서 먹물을 연상시키는 검은 기운이 뿜어져 나왔다. 그 모습은 마치, 존재하지도 않는 피를 흘리는 것 같았다.
그러나 검은 피를 흩뿌리는 강철의 기계인간은 조금의 머뭇거림도 없이 지극히 차분한 움직임으로 다음의 검을 휘둘렀다. 이번에는 목진의 목덜미가 붉게 물들었다.
고작 종이 한 장 두께만큼이라도 더 들어갔다면 치명적이었을 상처였다. 살아있는 존재라면 죽음의 공포에 저도 모르게 몸이 움츠러들 법 한데도, 목진의 눈동자에는 단 한 줌의 두려움도 담겨있지 않았다.
그의 눈이 맞수를 보았다. 자신이 아닌 자신의 검만을 눈에 담고 있는 검마는 수백 년을 이어온 검에 대한 집념을 비로소 거대한 깨달음으로 승화시키고 있었다.
아마도 자신이 생사경의 벽을 돌파했을 때 느꼈던 깨달음과 같을, 어쩌면 그보다 더할 초월의 영역에 몸을 맡기고 있는 이름 모를 녹슨 강철의 검사가 그의 앞에 서 있었다.
검격을 거듭하고 거듭할수록 점점 더 심오해지는 검을 마주하면서도, 목진의 명경지수와 같이 고요한 심상에는 아주 작은 파문조차 일어나지 않았다.
비록 상대와 같이 거대한 깨달음에 대오각성하여 초월의 영역에 몸담지 않았으나, 그럼에도 능히 따라갈 수 있다. 다른 이들은 몰라도 그는 그러했다.
지금까지 그가 쌓아온 무와 깨달음은 그것을 가능케 했으니까.
전신에 상처를 더해가는 와중에도 목진의 검은 조금씩 더 완벽을 향해 나아간다.
때문에 그의 검은, 아니 그의 검에 담긴 무는 분명, 초월하는 검마의 검을 쫓으며 자웅을 겨룰 수 있었다.
어느새 목진과 검마의 몸에 새겨지는 상처가 하나둘 늘어나고, 허공을 수놓는 검은 기운과 피보라도 늘어났다. 붉은 핏방울을 품은 검은 폭풍은 그들의 사이에서 미친 듯이 몸부림을 쳐댔다.
때로는 베이고 때로는 베어내며, 한 줌의 살기도 품지 않은 채 묵묵히 서로가 서로의 생명을 깎아내는 평온한 죽음의 검무.
그러나 그들의 생명이 깎여나가면 깎여나갈수록, 그들의 검과 무는 더욱더 극의(極意)를 향해 완성되어가고 있었다.
이대로라면 언젠가는 끝에 이를 수 있으리라.
검의 끝에. 혹은 무의 끝에.
그러나 그것은 조금 이른 확신이었다.
‘······.’
언제부터였을까.
목진의 몸에는 더 이상 새로운 상처가 생기지 않았다. 그리고 그 대신, 검마의 몸에 생기는 상처는 늘어났다.
그는 문득 기억해냈다. 정말로 오랜만에 그의 맞수로 인정한 사내에게 허락된 시간은 그리 많지 않았다는 것을.
보였다. 한없이 완성되어가는 검과는 달리 점점 무너져가는 그의 몸이.
아무리 제갈세가의 최신기술로 보강했다 한들, 이미 한참 전에 한계를 넘어선 지 오래인 신체는 목진과는 달리 그 끝을 보이고 있었던 것이다.
목진은 인정해야만 했다.
아. 너는 여기까지로구나.
그와 검을 나누는 맞수로서, 목진은 가슴이 시큰거릴 정도로 진한 아쉬움과 슬픔을 느꼈다.
그러나 그의 검에는 여전히 감정이 담기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그의 검은 더욱이 완벽을 더해가며 빛을 잃어가는 검마의 몸뚱이에 깊은 검흔들을 새겨나갔다.
그것이야말로 자신이 인정한 맞수에게 목진이 보낼 수 있는 최고의 예우였다.
이윽고 그 쇠약한 육체가 검조차 제대로 쥘 수 없게 되었을 때-.
날카롭지만 금세 부서질 것 같은, 유리조각과 같은 검마의 검이 목진의 일격을 막지 못하고 산산이 부서졌다.
이름 없는 검수야.
이 이목진의 이름으로 인정해주마.
비록 검의 끝을 보지 못했을지언정, 너의 검은 내가 본 그 어떤 검보다도 뛰어났노라.
아마도 들리지 않을 검수에게 작별을 고하며, 무한한 깨달음을 담은 목진의 검이 강철의 육신을 갈랐다.
자신도 검도 잊어버린 무아의 공간 속.
검마라 불리운 사내의 의식은 끊임없이 자신을 채찍질하고 있었다. 아직 그의 찰나는 끝나지 않았다.
검을.
조금 더 완벽에 가까운 검을.
그 아득한 끝에 닿을 때까지.
첫 번째 벽을 깬 것을 기점으로 사내는 더 먼 곳을 향해 발돋움했다. 그의 검에 담긴 지극히 순수한 의념(意念)은 점점 더, 점점 더 깊어지고 정순해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에 비례하여, 그의 검은 더욱 빠르고 강해져만 갔다.
수십, 수백, 수천의 벽이 사내의 눈앞에서 산산이 깨져나갔다. 주위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그가 볼수 있는 것은 오직 영원할 것 같이 춤을 추는 두 자루의 검 뿐이었다.
내공 캡슐로부터 공급받는 내공은 이미 고갈되었고, 그의 신체 프레임은 이미 한계를 지나친 지 오래다.
그럼에도 그의 영혼은 아직도 검의 끝을 부르짖고 있었다.
때문에 그는 계속해서 검을 휘둘렀다. 제 몸뚱이가 검흔으로 뒤덮이든, 몸뚱이가 검을 따라가지 못하든 그는 개의치 않았다.
검마는 자신의 몸이 더 이상 검을 휘두를 수 없도록 쇠약해져 간다는 사실을 분명히 인지하고 있었다. 그러나 오로지 검만을 휘두르는 것을 바라보는 그에게는 아무래도 상관없는 문제였다.
그가 갈망하는 검의 극(極)까지는 아직 몇 걸음 더 나아가야만 했다. 검마는 다시 검을 휘둘렀다.
그러나 검은 움직이지 않았다.
검을 쥐고 있던 최후의 힘까지 모두 쥐어짜낸 것이다.
검마는 보았다.
무력한 자신을 향해 떨어져 내리는 거대하고 거대한 검을.
그것은 검이되 벽이었다. 그것도 지금까지 깨트려왔던 것들과는 차원이 다를 정도로 크고 단단한 벽.
그리고 그 벽을 마주한 자신에게는 한 줌의 힘도 남아있지 않았다.
– ······.
일찍이 사고를 멈추어버린 기계인간의 혼이 멍하니 벽을 올려다봤다.
그 무엇조차도 가벼이 짓눌러버릴 것 같은 거대한 검은 그의 손에 쥐어진 검을 산산이 조각내고도 모자라 그를 향해 떨어져 내렸다.
그리고 그것이 그의 미간을 세로로 쪼개버리는 순간, 그는 비로소 그 벽을 이해할 수 있었다.
아마도 유구한 인류의 역사 속에서 오직 한 사람만이 닿을 수 있었던 지고의 깨달음.
그것을 이해했을 때, 지금까지와는 비교도 하지 못할 아득한 깨달음이 그의 전신을 관통했다.
아-.
소리 없는 탄성과 함께 그의 팔이 스르륵 움직였다.
그의 손에는 검이 없었으나, 어쩐지 저 벽을 벨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여 그는 그렇게 했다.
막 초월의 영역에 들어선 지 십여 초.
마침내 그의 마음에 품은 검이 실체가 되어 벽을 갈랐을 때.
녹슨 안드로이드 검사는 극(極)을 보았다.
머리부터 사타구니까지 세로로 깊게 베어진 검마의 손이 움직였다.
그것을 본 목진은 느꼈다.
저것은 검이다.
그가 생사경의 경지에 들어서 얻은 심검(心劍)과 같은 깨달음을 품은, 마음에서 빚어낸 검.
산산이 부서져 손잡이만 남은 검자루만을 그러쥔 그의 손이 마치 검을 쥐고 있는 것처럼 그를 향해 쏘아졌다. 생사경에 다다른 목진조차도 간파할 수 없는 불가해(不可解)의 오의를 담은 채.
그 순간 목진의 머릿속에 떠오른 것은 하나였다.
지금까지의 무로는 대적할 수 없다.
그의 머릿속에 떠오르는 무수한 가능성들 중 저것을 막아낼 수 있는 방법은 존재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는 무력감을 느끼지 않았다.
아니, 그는 오히려 환희를 느꼈다.
그것이야말로 그가 초월의 영역에 들어선 검마에게 줄곧 바래마지 않던 것이었으므로.
목숨이 위험해도 좋다.
그러니 나는 벽을 넘고 싶다.
목진은 검마의 마지막 깨달음을 담은 최후의 일격을 보았다.
무인 이목진은 그것을 막을 방법을 알지 못했다.
그러나 그가 평생 쌓아온 무의 업(業)은 알고 있으리라.
그는 이것이 도박이라고 했던가.
그 말이야말로 분명 옳았다. 마침내 제 자신의 목숨을 판돈으로 올리며, 목진은 수긍했다.
실패하면 목숨을 잃을 것이요. 성공하면 벽의 너머에 도달할 수 있으리라.
목진은 머리와 마음을 모두 비운 채, 단지 그의 무가 이끄는 길을 향해 검을 움직였다.
검과 무의 건곤일척(乾坤一擲).
서로의 심장을 겨눈 두 자루의 검이 허공에서 엇갈렸다.
그리고 그 순간.
툭.
하고 무언가가 끊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신형 프레임조차 버티지 못하고 무너질 때 최후의 최후까지 주인을 위해 가쁘게 버티고 있던.
녹슨 구형 코어의 한계가 끊어지는 소리였다.
검마는 오랜 물음을 마주했다.
하검해검(何劍奚劍). 무엇이 검이고 어째서 검인가.
평생을 물어온 답에 이제는 답을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목진과 검마는 서로에게 검을 내민 채 가만히 서 있었다. 직전까지만 해도 보이지도 않을 정도의 검격을 주고받았건만, 지금은 마치 시간이 멈춘 듯 두 사람에게는 미동도 보이지 않았다.
보이지 않는 검이 파고든 목진의 심장어림에서 울컥 피가 흘러나왔다. 그러나 그의 검 또한 검마의 코어를 정확히 꿰뚫고 있었다.
겉으로 보기에는 승패를 알 수 없는 양패구상의 구도. 그러나 당사자들인 두 사람은 알고 있었다.
검마의 검은 얕았다. 그리고 목진의 검은 충분히 깊었다.
승패를 가르는 데에는 그것이면 충분했다.
바람소리 하나 들리지 않는 침묵 속에서 목진이 입을 열었다.
“아쉽구나.”
조금만 더 버텨줄 수 있었다면 다른 결과가 나왔을 가능성도 있었는데. 목숨을 잃을 뻔 했으면서도 목진은 못내 마지막에서 아쉬움을 느꼈다.
그러나 검마는 천천히 고개를 좌우로 움직였다.
“······아니. 이것이 내 최선이오.”
무인은 만약을 논하지 않는다. 설령 코어가 조금 더 버틸 수 있었다고 한들 결과가 바뀌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렇기에 그는 그의 패배를 받아들였다.
목진이 물었다.
“보았느냐?”
서서히 사그라드는 안구 렌즈의 푸른빛을 깜박이며, 검마가 고개를 끄덕였다.
“······분명히 보았소. 닿지는 못했지만.”
그런가. 목진은 담담한 축하를 담아 고개를 끄덕였다.
“기분이 어떠하더냐.”
평생을 찾아 헤메이던 검의 끝이다. 그것을 보았음에 만족할까, 아니면 그에 닿지 못함을 아쉬워할까.
목진은 순수하게 그것이 궁금했다.
그러나 검마의 답은 그의 예상과 달랐다.
“궁금하더군.”
“······무엇이?”
“끝의 다음이.”
끝의 다음이라. 목진이 작게 읆조렸다.
검마는 그런 목진을 향해 덧붙였다.
“언젠가 그곳에 닿는다면, 당신은 그 답을 얻을 수 있길 바라지.”
목진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것이 긍정의 의미인지 아닌지는 알 수 없었다.
검마는 딱히 개의치 않고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봤다.
머릿속이 새하얗게 변하고 있었다.
코어에서 더 이상 에너지가 공급되지 않자 기억모듈의 기억들이 삭제되고 있기 때문이었다.
문득, 기억모듈 한 구석에 박혀있던 오래고 오랜 기억이 하나 떠올랐다.
“······이제 기억났는데 말이지.”
오늘이 내 생일이었군. 검마가 툭 내뱉었다.
평생의 숙원을 이루었으니 썩 괜찮은 인생이다. 검마는 만족스런 웃음을 지으며 마지막 숨을 내뱉었다.
“정말이지, 내 생에 최고의 생일이야.”
그것으로 그의 입에서는 더 이상 아무런 말도 나오지 않았다.
목진은 묵묵히 검마의 눈에서 푸른 빛이 사그라드는 것을 지켜보았다.
수백 년의 방황 끝에 마침내 가동을 멈추고 안식을 맞이한 안드로이드가 보였다.
그를 바라보는 목진의 시선에는 경의와 존중, 그리고 조금의 부러움이 담겨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