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smic Heavenly Demon 3077 RAW novel - Chapter (314)
우주천마 3077 우주천마-315화(315/349)
47. 자문의심 Self Questioning (1)
47. 자문의심 Self Questioning (1) – 나는 과연 옳은가?
“······.”
세령은 멍하니 대결의 결과를 바라보았다.
할 말이 있을 리가 없었다. 그녀의 부족한 경지로는 두 사람의 대결이 어떻게 진행되었는지조차 쫓을 수 없었으니까.
서로를 향해 투로제형의 검을 펼치며 용호상박과 같은 양상을 보이던 대결이 어느 순간 목진 쪽으로 기우는가 하면, 채 몇 초 지나지도 않아 다시 검마 쪽으로 기울었다. 뒤이어 극한까지 다듬어진 검초가 점점 속도를 높여 난무하듯 움직이는가 하더니, 뭘 제대로 보지도 못했는데 갑작스럽게 승부가 끝나버리는 것이 아닌가.
하지만 그 이상으로 그녀에게 충격을 준 것은 다른 것이었다.
피, 그것도 사방에 핏물이 흩뿌려질 정도로 많은 피. 그것이 세령을 경악케 했다.
그녀의 눈에 몸 여기저기에 상처를 입은 채, 끝에 가서는 아예 가슴어림에 깊은 자상까지 입은 목진의 모습이 보였다. 지금까지 본 적 없는, 아니 상상도 해본 적 없는 모습이었다.
‘말도 안 돼.’
불신의 감정을 품은 세령의 눈동자가 목진의 얼굴을 향했다. 평온히 움직임을 멈춘 검마의 시신을 물끄러미 바라보는 목진의 표정은 마치 이 세상의 사람이 아닌 것 같았다.
세령은 저도 모르게 앞으로 달려가며 목진을 불렀다.
“아저씨······!”
목진은 천천히 고개를 돌려 그녀에게 시선을 옮겼다. 한달음에 그의 앞으로 다가온 세령은 더듬거리는 말투로 그에게 물었다.
“괘, 괜찮아요?!”
“그래. 괜찮다.”
몸 여기저기에서 피를 흘리는 사람의 것이라기엔 기이하리만치 태연한 목소리다. 세령이 손가락을 들어 그의 가슴팍을 가리켰다.
“아니, 그게, 상처가······.”
“내장까지 닿지는 않았다.”
자신의 몸에 점혈을 한 것은 오랜만이었는지, 목진은 조금 어색한 손놀림으로 상처들 근처의 혈도를 짚었다. 상처에서 흘러나오던 피는 혈도를 짚자 금세 멎어들기 시작했다.
“하······.”
담담한 모습을 보니 피투성이인 겉보기와는 달리 심각한 상처를 입은 것은 아니었던 모양이다. 세령은 차분히 가라앉아 있는 목진의 눈을 보고는 간신히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세령의 시선이 그제야 기능을 정지한 안드로이드 쪽을 향해 돌아갔다.
“저쪽은······죽은 거에요?”
“그래.”
“······도대체 얼마나 강한 고수였길래.”
세령이 믿을 수 없다는 듯 중얼거렸다.
여태까지 그녀에게 있어 이목진이라는 존재는 패배나 부상이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는 최강이자 무적의 존재였다.
맨몸으로 마그마 강에 빠졌을 때도, 단신으로 백룡대를 상대했을 때도, 우주에서 손꼽히는 고수인 천마신교의 부교주를 상대로 싸웠을 때도 상처는커녕 숨 하나 흐트러지지 않은 규격 외의 존재가 아니던가.
그런 목진이 상처를 입었다고? 그것도 몸 여기저기에?
현실적으로 말이 안 되는 이야기였다. 막말로 우주제일고수로 꼽히는 무신 공손혁흔이 온다고 해도 목진에게 이만한 상처를 입히는 것은 불가능할 테니까.
그런데 검마는 그것을 해냈다. 내공조차 쓸 수 없는 안드로이드였음에도 말이다. 세령은 도저히 그 사실을 믿을 수가 없었다.
그런 그녀의 불신어린 표정을 보았음일까. 그녀의 귓가에 담담한 목진의 목소리가 들렸다.
“글쎄. 네 생각처럼 대단한 강함을 지닌 자는 아니었다.”
검의 기술, 검기(劍技)만큼은 지금까지 봐 온 어떤 이보다도 뛰어났으나 그 외엔 보잘것없던 불완전한 반쪽짜리의 무인. 그것이 목진이 검마와 처음 검을 맞대었을 때 내렸던 평가였다.
“적어도 처음 검을 맞대던 순간까지는 그러했지.”
종합적인 무력을 두고 비교하자면 잘 쳐주어도 서천검후와 동수를 이룰 정도. 그 누구도 흉내내지 못할 것이라 여겼던 투로제형의 기예를 자유자재로 펼칠 수 있다는 것을 감안해도 검마의 무력은 그리 대단하다 평할 정도는 아니었다.
그 이유를 꼽자면, 절대고수와 자웅을 겨루기에는 힘이 부족하기 때문이었다.
아무리 강력한 기계의 육체를 가지고 있다 해도 고작해야 S랭크의 무인과 비견될 수준. 감히 환골탈태를 겪고 내공의 운용을 통해 인간이 지닌 육체의 한계를 가볍게 뛰어넘는 절대고수 레벨에 비할 수 있을까.
내공 캡슐을 사용한 것도 단지 일반적인 육체로 감당할 수 없는, 물리법칙을 거스르는 움직임을 위한 보조로 썼을 뿐이니 결국 힘은 그대로인 법이었다.
“······그럼 아저씨 몸은 왜 그 모양이 됐는데요.”
세령은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듯 미간을 좁히며 물었다. 별로 강하지 않다 평가할 정도였으면 목진이 저리도 상처입을 이유가 없지 않은가.
하지만 목진은 그녀의 말에 별안간 뜬금없는 물음을 던졌다.
“나와 처음 만났을 때를 기억하느냐?”
“처음 만났을 때 언제요?”
“지구를 떠나던 때 말이다.”
“아.”
당연히 기억하죠. 세령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우주선을 타고 대기권을 돌파하면서 깨달음을 얻고 환골탈태까지 하던 그 초현실적인 광경을 도대체 어떻게 잊을 수 있겠는가.
목진은 다시 검마의 시신을 돌아보며 입을 열었다.
“타인이 보기에는 여느 깨달음의 순간과 같았을지 모르나, 난생처음으로 우주의 존재를 자각한 내가 느낀 것은 단순히 깨달음이라는 단어만으로 치부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단 한순간에 그가 알던 세상의 근본부터가 송두리째 바뀌었는데 어찌 하나의 깨달음만을 얻을 수 있겠으랴.
하나의 깨달음이 또 하나의 깨달음을 낳고, 그 깨달음 또한 또다른 깨달음을 낳았다. 그렇게 이목진이라는 무인이 알고 있던 모든 무의 깨달음은 모조리 새로운 세상의 근본에 맞게 바뀌었던 것이다.
“짧은 시간에 불과했지만, 우주로 나아가던 그 순간 나는 무수히 많은 벽을 부수고 무수히 많은 깨달음을 얻었지.”
현경(玄境), 그리고 생사경(生死境).
단지 한 단계의 경지를 넘어섰다 말하기에 그 둘 사이에 있는 벽들은 너무나도 크고 많았다.
“내 평생 적지 않은 벽을 넘어왔다 자부했으나, 그 모든 깨달음을 세어도 그 찰나에 넘어선 벽의 수를 넘을 수 없었다.”
만약 목진이 우주를 영접하며 고대인의 사고관에서 완전히 탈피하지 않았다면 과연 그는 지금과 같은 경지에 닿을 수 있었을까? 목진 스스로가 생각해도 확신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때의 경험을 뜻을 가진 단어로 지칭하자면······초월(超越)의 영역에 발을 들였다. 라고 할 수 있겠지.”
목진은 당시를 회상하듯 희미한 아련함이 담긴 목소리로 말했다.
“초월······요?”
“음. 무인의 상식으로 볼 수 있는 경계 밖의 영역에 발을 들이는 것이니 그리 표현하는 것이 가장 적절할 것이다.”
목진의 말뜻을 가만히 풀이하 세령이 더듬거리며 되물었다.
“그러니까, 그 초월의 영역인지에 들어서면 무공의 경지가 막 말도 안 될 정도로 확 올라간다······그런 뜻이에요?”
“정확히 보았다.”
보통의 수련은 물론, 전설 속의 영약을 섭취하거나 일생일대의 깨달음을 얻는 일을 겪는다 해도 감히 엄두조차 낼 수 없는 폭발적인 성장. 목진의 말을 이해한 세령의 얼굴이 멍해졌다.
깨달음 하나 얻자고 우주선 타고 블랙홀 투어를 하는 시대에 그와는 비교조차 할 수 없는 성장의 길에 대해서 알게 되었으니 당연하다면 당연한 반응이었다.
“그럼 설마 저쪽도······?”
세령의 눈이 죽은 검마의 시신으로 향했다. 목진이 갑자기 이런 이야기를 꺼내는 이유가 달리 있을 리가 없지 않은가.
고대인이 대기권을 돌파하는 정도의 충격을 경험했을 때 정도는 되어야 간신히 닿을 가능성이라도 보이는 영역.
불완전한 안드로이드의 검으로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은 자의 몸에 상처를 내고자 한다면, 마땅히 그 정도의 성취는 이루어야 개연성이 있었다.
목진은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아무래도 저 치 또한 과거 내가 겪었던 초월의 영역에 발을 들인 듯싶구나.”
검을 섞는 중에 목진 자신이 얻은 성취도 결코 작지 않았건만, 그조차도 가뿐히 따라잡을 정도로 말도 안 되는 성장속도. 목진이 알기로 그런 성장을 가능케 하는 길은 오직 하나뿐이었다.
“그러면 저쪽도 그······생사경의 경지에 들었다는 말······인거죠.”
세령이 멍하니 물었다. 한 시대에 전설 속의 경지인 생사경의 고수가 목진 말고도 더 있을 줄이야.
“아니. 그것은 아니다.”
하지만 목진은 그녀의 물음에 단호히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는 검의 끝을 보았다고 하나, 나는 아직 무의 끝을 보기는커녕 그것이 어디에 있는지조차 짐작하지도 못하고 있다. 우리가 걷는 길이 서로 다른데 어찌 같은 경지를 논하겠느냐.”
단순히 동일선상에 두고 비교할 수는 없는 문제이니라. 그리 말을 이은 목진은 복잡한 눈으로 검마를 바라보았다.
“다만······이번의 비무로 제법 생각할 거리가 많이 생겼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구나.”
자신 외에는 그 누구도 도달하지 못했으리라 자부했던 미지의 영역에 발을 들이민 자가 보였다.
그는 그가 아는 어떤 무인보다도 이질적인 자였으며, 심지어 평범한 인간조차 아닌 기계인간이었다.
그러니 목진이 받은 충격이 결코 작지 않을 수밖에.
그의 기준에서는 불완전한 반쪽짜리에 불과한 미완(未完)의 무인조차 초월의 영역에 도달했거늘, 과연 내공 드라이브를 이식한 현대 무인이라고 불가능할까?
목진은 지난날 자신이 이 우주무림을 향해 내뱉었던 일갈을 떠올렸다.
– 너희는 틀렸다.
현대 우주무림의 무공으로는 생사경의 경지에 닿을 수 없다. 여태까지 그 믿음에 흔들림이란 없었다.
당연했다. 오직 그 자신만이 고금을 통틀어 유일하게 생사지경의 영역을 밟은 존재였으니까.
하지만 검마의 초월을 직접 겪은 뒤에도 그 믿음은 여전한가?
검마의 존재가 그의 생각을 완전히 부정하는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그럼에도, 목진은 스스로에게 물을 수밖에 없었다.
– 나는 과연 옳은가?
금강석과 같이 단단하던 무인 이목진의 심상에 한 줄기 실과 같은 의문이 그어졌다. 마치 제 혼이 반으로 쪼개지는 것 같은 기분에 목진이 왈칵 미간을 좁혔다.
절대지경에 오른 고수가 스스로를 의심하고 부정하는 것만큼 위험한 일은 없다. 자신이 무인으로서 쌓아온 모든 것들이 한순간에 무너져내릴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목진은 물어야만 했다.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현실에서 눈을 돌리고 스스로를 기만한다면, 그 끝에 기다리는 것은 벗어날 수 없는 심마(心魔)밖에 없다는 사실을.
목진은 기능을 정지한 안드로이드를 향해 물었다.
‘마지막에 내게 외면할 수 없는 난제(難題)를 던져주는구나.’
이것이 네 선물이더냐?
죽은 검마의 답은 들려오지 않았다.
그러나 목진은 이미 그의 답을 알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