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smic Heavenly Demon 3077 RAW novel - Chapter (317)
우주천마 3077 우주천마-318화(318/349)
47. 자문의심 Self Questioning (4)
47. 자문의심 Self Questioning (4) – 찐남매
와장창!
삼극회 후계자 쟁탈전에 참가하고 있는 후보 중 하나인 데이빗의 집무실에 일련의 무인들이 들이닥쳤다.
하나같이 예사롭지 않은 기세에 흉흉한 분위기. 세령을 찾아나선 제갈희를 걱정하는 마음 반, 예기치 않은 다크호스 남궁천의 등장에 초조한 마음 반으로 책상에 앉아 술잔을 기울이던 데이빗이 화들짝 놀라 자리에서 일어섰다.
“뭐, 뭐야?! 너네 어디 소속이야!”
그러나 데이빗의 물음에 대답한 건 입을 꾹 닫고 있는 삼극회 소속 무인들이 아니었다.
“어머, 태평하네. 밖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도 모르고 술이나 마시고 있다니.”
문 너머에서 들려오는 낯익은 목소리. 문으로 들어오는 이들의 모습에 데이빗의 눈이 희등잔만하게 커졌다.
“로젤린······선봉 형님까지?!”
‘밑에는 애들이 지키고 있을 텐데 어떻게?’
데이빗이 아래에 있을 심복들에게 통신을 걸었다. 하지만 통신에 응답하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헛수고다.”
그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알만하다는 듯, 백선봉이 가늘게 뜬 눈으로 데이빗을 노려보며 말했다.
“데이빗. 네 호위를 맡은 수하들은 전부 제압됐다. 아마 연락을 받을 사람은 없을 거다.”
“제압이라니?! 교전이 벌어졌다는 보고도 안 올라왔는데 도대체 무슨 수로······.”
“하아. 정말 아무 생각 없이 술만 먹고 있었나 보네.”
저런 얼치기가 경쟁상대라니, 아무리 콩깍지에 눈이 돌아갔다지만 최소한 일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는 파악해야 할 게 아닌가. 로젤린이 한숨을 쉬며 관자놀이를 꾹 눌렀다.
그런 감상은 백선봉 또한 마찬가지인 듯, 그는 한층 서늘해진 눈길로 입을 열었다.
“이 일대에 통신 재밍이 걸린 지 삼십 분은 됐는데, 몰랐던 거냐?”
재밍이라고? 믿을 수 없다는 듯 데이빗의 미간에 역팔자가 새겨졌다.
“미쳤어?! 후계경쟁에 재밍용 장비를 쓰는 건 금지잖아! 아버지께서 이 일을 아시면 가만두지 않으실 텐데?!”
삼극회의 후계경쟁이 유독 살벌하다고는 하나 어디까지나 일정한 규칙 안에서 진행되는 정당한 경쟁이다. 구역 전체에 재밍을 걸 정도의 고급 장비같은 걸 사용하는 건 명백한 룰 위반이었다.
하지만 로젤린은 데이빗의 말에 코웃음을 쳤다.
“데이빗 이 멍청한 동생아. 아직도 상황 파악이 안 되니? 아빠 몰래 재밍을 건 게 아니라, 지금 상황 자체가 아빠 오더라는 걸 아직도 파악 못 했어?”
“······어?”
한심하단 듯 말하는 로젤린의 말에 데이빗이 두 눈을 꿈벅였다.
“제갈세가도 모자라 남궁세가까지 끌어들인 걸 모를 줄 알았나? 외부에서 끌어오는 힘에도 선은 지켰어야지.”
남궁천의 존재를 들켰다. 백선봉의 말에 데이빗이 흠칫 몸을 떨었다.
그러나 데이빗은 물러서지 않았다. 그에게도 할 말은 있었기 때문이다.
“창천폭룡은 제갈소저와의 개인 호위로 온 거야, 후계경쟁이랑은 관계 없다고!”
당장의 상황을 면피하기 위한 거짓말이 아니었다. 남궁천은 정말로 세령과의 싸움에 대비해서 제갈희의 호위로 불러들인 것이었으니까. 의심을 받아도 할 말이 없는 그림이긴 했지만 적어도 데이빗 자신은 남궁세가까지 끌어들일 생각일랑은 추호도 없었다.
그러나 그의 해명을 들은 백선봉과 로젤린의 반응은 싸늘했다.
“웃기지도 않는 변명은 집어치우지 그래. 방금 말했잖아. 아빠 명령이라고. 큰오빠랑 나는 지금 후계경쟁 때문이 아니라 삼극회의 문도로서 온 거야. 도대체 무슨 멍청한 사고를 친 건지는 몰라도, 너를 바로 포박해서 데려오라는 명령이 떨어졌어.”
“그게 무슨 개소리야! 아버지가 왜······?!”
“궁금한 건 우리도 마찬가지다. 회주님께서 다시 명령을 내릴 때까지 후계경쟁을 중단하겠다고 선언하셨어.”
도대체 그들을 끌어들이면서 무슨 짓을 저지른 거냐. 백선봉이 성큼 앞으로 나서며 말했다.
그와 로젤린이 백무정으로부터 데이빗을 포박해오라는 이야기를 들은 것은 고작 한 시간 전의 일. 회주만 사용할 수 있는 직통 보안회선으로 그들을 호출한 백무정은 데이빗이 무슨 짓을 저질렀는지에 대해서는 알려주지 않은 채 명령을 내렸다.
– 재밍 장비 사용 허가를 내줄 테니 지금 당장 로젤린과 함께 데이빗을 잡아서 내 앞에 데려오도록. 믿을 만한 놈들로 소수만 데려가고, 주변에 알려지지 않게 조용히 처리해라. 팔다리 정도는 잘라와도 불문에 부치겠다.
의아한 명령이었다. 보통 뭔가 문제가 생긴다면 공적으로는 중앙 핵심 간부진에도 소속되지 않은 그들이 아니라 직속 수하들을 보냈을 테니까.
혈육인 자신들을 통해 데이빗의 신병을 확보하고, 거기에 재밍 장비까지 써서 소수정예로 움직이라니. 뭔가 그들이 알지 못하는 골치 아픈 일이 터진 게 분명하지 않은가.
“그게 무슨 말도 안 되는······. 난 아무것도 모른다고!”
뭔가 일이 잘못 돌아가고 있다. 데이빗은 그제야 지금의 상황이 단순히 후계경쟁 때문에 벌어진 게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아무것도 모른다는 말은 진심이었다. 그는 형제들을 향해 호소하듯 절박하게 외쳤다.
그러나 그의 형제들은 냉담했다.
“리더의 자리는 그런 무책임한 말이나 내뱉으라고 앉아있는 게 아니다. 네가 알고 있는 일이든 그렇지 않은 일이든 너는 책임을 져야 한다.”
“됐어, 오라버니. 이 멍청한 놈한테 이제와서 그런 훈계를 한다고 씨알이나 먹히겠어?”
이제는 아예 경멸의 감정까지 내비치는 기색을 보이는 두 사람을 보며 데이빗이 주춤주춤 뒤로 물러섰다.
그러나 몇 걸음 물러서기도 전에 커다란 사무용 탁자가 그의 뒤를 가로막았다. 화들짝 고개를 돌려 책상 위, 정확히는 그가 마시고 있던 술잔을 눈에 담은 데이빗의 고개가 벌컥 위로 들렸다.
“제갈소저······제갈소저와 만나게 해 줘. 그녀라면 뭔가 알고 있을지도 몰라.”
데이빗은 흑도인이다. 그리고 흑도인은 누구든 쉽게 믿지 않는다. 설령 그것이 한 눈에 반한 상대라도 말이다. 그는 지금 상황에 대한 열쇠를 제갈희가 쥐고 있다는 것을 어렵사리 짐작할 수 있었다. 정확히 무슨 일인지는 몰라도 무언가 뒤로 일을 꾸미는 듯 의뭉스러운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지 않은가.
그간 사랑에 눈이 멀어 애써 눈을 돌리고는 있었지만, 상황이 이 지경까지 왔는데도 끝까지 모른 척할 만큼 데이빗은 미련하지 않았다.
물론 그것이 정확한 판단을 내릴 수 있다는 뜻은 아니었지만 말이다.
‘뭔가 심각한 오해가 생긴 게 분명해. 제갈소저를 만나서 자초지종을 들어야 돼.’
최근 제갈세가의 위세가 어마어마하다고는 하나 여긴 토투가, 삼극회의 안방이다. 둘 다 살아남기 위해선 자신이 직접 나서야 했다.
그러나 그의 기대는 애초에 이뤄질 수가 없었다.
“백선무희와 제갈세가의 무인들은 지금 행방이 묘연한 상태다. 곧 특급 수배령이 떨어진다고 하더군.”
“뭐?! 그게 무슨 소리야! 특급 수배령이라니!”
“회주님께서 결정하신 일이다. 회의 존속에 위협을 줄 정도로 큰 대죄를 지었다고 하더군.”
대죄? 백선봉의 말에 데이빗의 얼굴이 멍해졌다. 막말로 그녀가 회주의 암살 기도라도 계획하지 않은 이상 이해할 수 없는 처사였다.
그는 사시나무처럼 떨며 초점 없는 눈으로 중얼거렸다.
“뭔가······뭔가 오해가 생긴 거겠지. 분명 그런 거야. 제갈소저는 세가 내의 입지도 그렇고 능력도 그렇고 엄청 대단한 여자라고. 그런 그녀가 대죄 소리를 들을 만큼 심각한 문제에 엮일 리 없잖아?”
이쯤 되면 현실부정이다. 한심하게 자신의 동생을 바라보던 로젤린이 절레절레 고개를 저었다.
“쯧, 이 지경에 와서도 공사 구분을 못 하는 게 아주 그냥 해바라기가 따로 없네. 저러니까 량이한테도 버림받았지.”
뭐, 그 애가 내 생각보다 좀 더 야심만만했던 건 예상 밖이지만. 로젤린이 백선봉 쪽을 흘긋 보며 중얼거렸다.
“뭐······?”
하지만 데이빗은 그 중얼거림을 듣지 못했다. 그에겐 량이 그를 떠났다는 사실부터가 어마어마한 충격이었으니까.
데이빗도 바보가 아니니 알고 있었다. 제 능력으로는 삼극회의 후계자라는 욕심에 미치지 못한다는 것을 말이다. 뛰어난 무재와 카리스마를 지닌 큰형과, 그런 큰형에게 밀리지 않을 정도의 지략을 가진 누나와 비교되면 누구든 알 수밖에 없으니까.
하지만 그는 후계자 자리를 포기하는 대신 그의 부족한 능력을 보완해줄 부하를 찾는 쪽을 선택했다. 그리고 다행히 그에게는 량이라는 오랜 인연이 있었다.
그는 능력이 필요했고, 량에게는 야심이 있었다.
그 두 가지 수요와 공급이 들어맞는 이상 둘의 연계는 굳건하리라. 데이빗과 량은 그렇게 생각했고, 실제로도 딱히 틀린 말은 아니었다.
데이빗 쪽에서 일방적으로 신뢰관계를 저버리지만 않았다면 말이다.
그리고 데이빗은 여태까지도 제 실수를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
그는 멍하니 중얼거렸다.
“량이······배신을 했다고?”
가지가지 한다. 로젤린이 도저히 못봐주겠다는 듯 머리를 짚었다.“
“예전에도 똘똘한 거랑은 거리가 멀긴 했지만 제갈희 그년을 만난 뒤로 아주 바보가 다 됐어.”
오죽 못났으면 자기 최측근이 딴 줄을 잡는 것도 모르고 있을까. 더 이상 대화를 나누는 것이 무의미하다는 걸 느낀 로젤린이 뒤에 대기하고 있는 부하들을 향해 손을 까딱였다.
“내공 드라이브에 제압장치 걸고 연행해. 회주님이 직접 심문하실 테니까.”
“예!”
성큼성큼 다가오는 떡대들이 데이빗의 단전에 제압장치를 붙인 뒤 양팔을 구속했다.
“······.”
다행인지 불행인지는 모르지만, 데이빗은 딱히 저항하는 모습은 보이지 않고 순순히 연행되었다. 현명하다면 현명한 대처였다. 로젤린 하나만 있어도 승산을 장담할 수 없는 마당에 백선봉까지 있다면 정말로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추태만 보였을 테니까.
“나 참. 도대체 일이 어떻게 돌아가는 건지.”
연행되는 데이빗에겐 신경도 쓰지 않은 채 로젤린이 머리를 벅벅 긁었다.
회주인 백무정이 아무런 정보도 넘겨주지 않았기에 지금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모르는 건 데이빗 뿐 아니라 그녀와 백선봉도 마찬가지였다. 아니, 애초에 지금 이 토투가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제대로 알고 있는 삼극회 사람부터가 거의 없으리라.
“네가 꼽아놓은 빨대 쪽에서도 들어오는 정보가 없나?”
가만히 데이빗이 앉아있던 책상을 바라보던 백선봉이 물었다.
로젤린은 가볍게 고개를 저었다.
“없어. 오라버니도 알고 있다시피 중앙 간부 쪽에도 선이 있어서 그쪽으로도 찔러봤는데, 딱히 나오는 게 없더라고. 뭐 들은 게 있긴 한지 중앙에서도 혼란스러워하는 모양이긴 한데······암만 봐도 입을 열 기색은 안 보이더라.”
중앙 간부들의 반응을 보면 뭔가 심각한 일이 터진 건 사실인 듯하다. 하지만 회주의 혈육일 뿐 중앙 간부급에는 미치지 못하는 두 사람에게 허용된 정보는 극히 제한적이었다.
이번엔 로젤린이 백무정을 향해 은근한 목소리로 물었다.
“애들 말로는 막내가 뭘 좀 아는 눈치던데, 오라버닌 뭐 좀 들은 거 없어? 걔 일단 오라버니 쪽 사람이잖아.”
전혀. 백무정이 고개를 저었다.
“일방적인 통보만 하고 바로 회주님께 갔더군. 그리고 너도 알다시피 막내는 후계 구도에 관여하는 걸 꺼리고 있었다. 제갈세가가 개입했으니 당세령을 핑계로 잠시 끌어들였을 뿐이지.”
“흐응. 사이가 참 좋네.”
그렇게 티격태격거리면서도 말이야. 로젤린이 가볍에 어깨를 으쓱였다.
“참 대단해. 걔 애꾸 만든 게 세령이 걘데 말이지.”
“뭔가 우리가 모르는 사정이 있지 않겠나.”
“좀 질투가 나는걸. 어째 친형제인 우리보다도 더 사이가 좋은 거 같단 말이지.”
“흐, 우리가 보통 형제관계는 아니지 않나.”
백선봉이 피식 웃었다. 후계 자리를 놓고 피터지게 싸우는 관계면서 무슨 형제간의 우애를 기대한다는 말인가. 다른 이라면 몰라도 로젤린이 꺼낼 말은 절대 아니었다.
“왜그래~. 이 기회에 우리도 남매의 정을 좀 돈독히 쌓아볼 생각 없어?”
로젤린이 답지않게 애교를 부리며 백무정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그러나 백무정은 그녀의 눈동자가 평소처럼 음험하게 빛나는 것을 보지 못할 만큼 눈치가 없진 않았다.
그는 작은 미소를 지으며 로젤린의 손을 떼어냈다.
“내가 후계자가 되고 나면 생각해 보지.”
“에이, 그냥 솔직하게 사이좋아질 생각 없다고 말하는 게 낫지 않아?”
뭐 상관없나. 로젤린이 가볍게 기지개를 폈다.
“상황이 정리되면 다시 한번 시작해 보자고.”
어차피 지금은 강제 휴전 상태니까 말이야. 로젤린이 백선봉을 보면서 뱀과 같은 미소를 지었다.
“물론.”
백선봉 또한 그의 여동생을 향해 새하얀 이빨을 드러내며 사납게 웃었다.
여느 때와 같은 남매의 모습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