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smic Heavenly Demon 3077 RAW novel - Chapter (318)
우주천마 3077 우주천마-319화(319/349)
47. 자문의심 Self Questioning (5)
47. 자문의심 Self Questioning (5) – 우리가 가오가 없냐?
“아버지! 이건 음모에요! 량이 형과 누나와 짜고 저를 배신한 겁니다! 아버지!”
“······.”
백무정은 호위들에게 붙들린 채 끌려나가는 데이빗을 무심한 눈으로 바라봤다. 제 능력이 감당하지 못하는 욕심을 부리다가 이 지경까지 온 셋째 아들이 안타까우면서도 한심했지만, 그는 지금 아버지가 아닌 삼극회라는 대문파의 문주로서 이 자리에 있는 것이기 때문이었다.
“후······.”
물론 친자식에게 죄인의 혐의를 덮어씌운 부모의 마음이 마냥 무심할 리는 없는 법. 소회의실에 홀로 남은 그는 데이빗이 끌려나간 문을 보고 작게 한숨을 내쉬며 사소한 감정들을 털어냈다. 그의 얼굴이 다시금 냉철한 지도자로 돌아오는 데에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백무정은 탁자 위에 깍지를 낀 채 턱을 괴었다. 미간에 깊은 골이 패인 그의 입이 열린 건 잠시의 시간이 지난 뒤였다.
“데이빗은 아무 것도 모른다.”
네 생각은 어떻지? 백무정이 물었다. 혼잣말이 아닌, 특정한 누군가를 향해 던진 물음이었다.
그리고 그에 대한 답은 아무도 없는 것이 분명한 한쪽 구석으로부터 들려왔다.
“회주님 말이 맞아요. 아마 진짜로 혈교랑은 관련 없을걸요.”
정교하게 위장된 홀로그램 환영 안에서 세령과 고 선생이 걸어 나왔다. 세령은 쯧하고 가볍게 혀를 찬 뒤 데이빗이 끌려나간 방향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딱히 혈교에 감염된 느낌이 들지도 않고, 이야기하는 내내 핀트 나간 얘기만 하니까요. 자기도 왜 끌려온 건지 갈피를 못 잡는 눈치던데.”
“그런가.”
백무정이 고개를 끄덕였다. 본인 스스로는 깨닫지 못하고 있었지만, 어쩐지 조금은 안심한 기색이었다.
“그럼 직접적으로 오염이 확인된 건 남궁천과 남궁세가 무인들뿐이라는 소리군.”
“그리고 남궁천을 구원투수로 부른 건 제갈희죠.”
별안간 제갈희를 걸고 넘어지는 세령의 말에 백무정이 인상을 찌푸렸다.
“······남궁천의 오염 사실을 알면서도 불렀다? 제갈희가 오염되지 않았다는 건 네가 직접 확인했을 텐데.”
“하지만 제갈희는 데이빗이랑 량을 속였죠. 남궁천 하나만 부른다고 해놓고 암천수호령까지 불러들였잖아요. 거기다 지금은 어디로 갔는지 코빼기도 안 보이고. 여러모로 수상하지 않아요?”
사실 세령은 암천수호령과의 대화를 통해 제갈희가 그들을 불러들인 게 아니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진실이고 뭐고 알 게 뭐란 말인가. 같이 엮을 수 있으면 엮어버려서 큼직한 엿을 먹여주는 게 바로 제갈희와 제갈세가에 대한 그녀의 성의였다.
“남궁천과 암천수호령을 이곳으로 유인해 우리와 분쟁을 붙이려 했다?”
“그럴 가능성도 충분히 있다는 거죠.”
난 그랬으면 좋겠는데. 세령이 어깨를 으쓱이며 시니컬하게 덧붙였다. 어딜 어떻게 봐도 사심이 가득가득 담긴 말투였다.
하지만 그녀의 작은 소망은 가만히 이야기를 듣고 있던 고 선생이 나서면서 사라져버리고 말았다.
“남궁천이 정식 절차를 밟고 토투가에 들어온 것과는 달리 암천수호령은 회의 통상 경계 레벨에 걸리지 않을 정도로 은밀하게 들어왔습니다. 가주의 명령만을 따르는 수호령들이 고작 직계 후기지수 정도의 술수에 놀아날 만큼 호락호락한 이들은 아니죠. 세가의 일에 깊이 관여할 수 없는 새파란 후기지수가 굳건한 동맹인 남궁세가를 골탕 먹이는 꼴을 승룡제와 현 제갈가주가 가만히 두고 볼 리도 없고 말입니다.”
“쯧. 꼭 지금 말할 필요는 없잖아.”
“······쓸데없는 수작은 부리지 마라.”
고 선생의 정확한 분석에 백무정이 세령을 째릿 노려보며 경고했다.
다른 건도 아니고 혈교다. 토투가 내에서 혈교의 오염체가 발견되었다고 하는데 판단에 혼선을 줄 수 있는 편향된 정보는 사양이었다.
‘안 그래도 요즘 흑도연맹 커뮤니티에서 혈교 이야기가 부쩍 많이 나돌고 있어 뒤숭숭한 분위기이거늘, 하필 이 토투가에서······.’
무림을 지탱하는 네 축인 정사마흑 중 흑도는 유독 혈교의 오염에 취약하다. 혈교 컬트가 파고들기 쉬운 대상은 언제나 가장 낮은 곳, 부랑자와 빈민층이었으니까. 그들의 뿌리가 어둡고 은밀한 뒷골목에서 비롯된 이상 역병처럼 번져나가는 혈교 컬트를 막기 어려운 것은 어쩔 수 없는 숙명이었다.
때문에 흑도의 수많은 문주들이 접속하는 네트워크인 흑도연맹 커뮤니티에서 혈교 이야기가 나돌기 시작한다는 건 절대 가볍게 넘어갈 만한 일이 아니었다.
“알았어요. 알았어.”
세령이 백무정의 날 선 반응에 가볍게 손을 휘적였다.
“근데 단순히 걔들 엿먹이려고 이 얘기 꺼낸 건 아니에요. 막말로 남의 집안싸움에 끼어들어서 침 바르려고 한 건 저쪽이 먼저잖아요? 혈교 건수 가지고 좀 쑤셔보면 이것저것 얻어낼 게 많을 것 같은데?”
남궁세가 쪽이야 가주의 최측근인 암천수호령들이 오염된 걸 생각하면 머잖아 인류정부의 대대적인 감사를 받겠다마는, 제갈세가는 적어도 직접적인 연관은 없다. 세령은 그런 제갈세가를 삼극회로 견제하기 위해 그런 말을 꺼낸 것이다.
“쯧.”
백무정이 가볍게 혀를 찼다. 세령의 의도가 눈에 뻔히 보이긴 하지만, 그녀의 말이 마냥 헛소리로 치부할 것은 아니기 때문이었다.
후계경쟁에 숟가락을 올리려는 것 하나도 거슬리는 상황인데 남궁세가까지 끌어들이다니. 삼극회의 입장에서 보면 오대세가들이 작당해서 빨대를 꼽으려 한다는 합리적인 의심을 할 수밖에 없지 않은가.
안 그래도 세령의 건으로 은근히 견제를 걸어오고 있는 마당에 굳이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려고 목을 맬 필요는 없다. 제아무리 최전성기를 구가하는 오대세가 중 하나라 한들, 삼극회 또한 육적 중 일좌를 차지하고 있는 흑도의 주축인 대문파가 아닌가. 적어도 힘으로는 꿇릴 이유가 없었다.
우리가 역사와 전통이 부족하지 실력이 부족하냐.
흑도 특유의 깡이 발동한 백무정이 흉흉한 기색을 숨기지 않은 채 고 선생을 돌아봤다.
“고 선생은 어찌 생각하지?”
“우리가 아쉬울 것도 없는 입장이고, 멀리 있는 남의 집까지 찾아와서 깔짝깔짝 간을 보고 있으니까 잽 정도는 때려도 정당방위죠. 혈교 정도 되는 건이면 충분히 이것저것 뜯어낼 수 있습니다.”
증거만 확실하다면요. 고 선생이 흉흉한 눈빛을 번뜩이며 세령을 돌아봤다.
유순한 선비처럼 생긴 외모에 다들 잊고 있는 사실이지만, 고 선생은 과거 후계경쟁에서 백무정을 따르며 온갖 경쟁자들을 제거해 온 엄연한 흑도의 최고간부다. 냉철한 이성에 가려져 있긴 하지만 호전성만 두고 본다면 여타 흑도인들과 크게 다를 것이 없는 인물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우리야 세령 소저의 판단과 증언을 충분히 신뢰하고 있지만, 남궁천의 시체는 암천수호령 측에서 모두 회수해간 상황입니다. 그가 혈교에 오염되었다는 확실한 증거가 없으면 제갈세가를 압박할 카드가 없어요.”
“증거······증거라······.”
잠시 눈살을 찌푸린 채 중얼거리던 세령이 말했다.
“그러면 당분간은 홀드하면서 모을 수 있는 증거만 좀 모아놔 봐요. 방법이 생길 수도 있으니까.”
“방법이란 건 어떤 걸 말씀하시는지?”
“조만간 혈교 하면 이를 가는 인류정부의 높으신 분한테 이 이야기를 찌를 생각이거든요? 그럼 남궁세가를 한바탕 뒤집겠죠? 보안 유지야 하겠지만 소문이 퍼지는 것까진 못 막을 테니 그 타이밍에 찌르면 좀 아플 거에요.”
남궁세가를 타겟으로 찍고 강도 높은 감찰을 하는 일등 집행관. 그리고 혈교에 연루되었다는 소문. 그 정도면 확실한 증거가 없더라도 충분히 압박할 수 있으리라.
고 선생이 고개를 끄덕였다.
“좋군요. 참고하죠. 그런데 괜찮으시겠습니까? 남궁세가에는 소저가 볼 일이 있지 않습니까. 정부에서 들쑤시면 일이 복잡해질 텐데요.”
“그러니까 그 전에 먼저 가서 해결해야죠.”
세령이 뚜둑 하고 목을 풀었다. 현재는 몰락했지만, 이십여 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당대 최고의 검수로 손꼽히던 벽검성을 상대로 생사결을 하겠다는 말을 꺼내는 태도로는 턱없이 여유로운 모습이었다.
백무정은 그런 세령의 다리에 매어진 붕대팩을 바라보았다.
“이틀 뒤에 떠난다고 했었지. 설마 부상을 입은 상태로 벽검성을 상대할 생각인가?”
“아 이거요? 칼침 좀 맞긴 했는데, 기혈은 멀쩡한 상태라 회복포트 좀 들어가 있으면 문제없어요.”
세령이 제 다리를 툭툭 두드리며 별 거 아니라는 듯 대답했다.
그녀가 이식한 내공 드라이브의 출력은 준 노심 급. 그것도 알파 프라임 급 코어에 출력 효율이 95%까지 뜬 최고급품이다. 어지간한 절대고수 상대로도 출력에서 밀릴 리가 없는 최상급인 만큼 일개 후기지수에 불과한 제갈희와 남궁천을 상대하면서도 기혈에 무리가 갈 정도로 내공 드라이브를 혹사시킬 일은 없었다.
‘과연 S+랭크는 S+랭크인가······.’
백무정은 평소와 같은 무감정한 얼굴 위로 내심 감탄을 터트렸다.
설마 정파에서도 손꼽히는 후기지수들인 백선무희 제갈희와 창천폭룡 남궁천의 협공을 상대하고도 고작 이 정도 부상만을 입은 채 승리를 거둘 줄이야.
‘사희의 말로는 거의 절대고수의 영역에 근접했다고 했던가.’
그만하면 아무리 벽검성이라고 해도 병으로 골골대고 있다면 충분히 승부를 점쳐볼 만 하다. 백무정은 내심 세령의 복수행이 성공할 가능성을 조금 더 높게 조정했다.
복모유호와 철군자를 해치우고 그 벽검성을 상대로 생사결을 거는 이 시대 최대의 풍운아가 고작 이년 전까지만 해도 폐기물 급의 내공 드라이브를 달고 다니며 빌빌댔다니. 그야말로 충격적이기 그지없는 급성장이 아닐 수 없었다.
과연 그 급성장은 그녀의 재능이 우주구로 손꼽히는 재능이기 때문일까, 아니면 그녀의 스승이 우주구 급 고수이기 때문일까. 어쩌면 둘 다일지도 몰랐다.
확실히 나한테 투자의 안목이 있긴 있나보군. 백무정의 입가가 희미하게 위로 휘어졌다.
“의원에는 내가 따로 말해둘 테니 떠나기 전에 최대한 몸을 회복하고 가도록 해라.”
“뭐야, 갑자기 왜 신경써주고 그래요. 사람 무섭게.”
평소랑 다른 백무정의 호의에 세령이 대놓고 몸을 뒤로 뺐다. 고 선생이 그녀의 어깨를 툭툭 두드리며 가볍게 웃었다.
“그만큼 세령 소저가 거물이 됐다는 소립니다.”
“어우, 다른 사람은 몰라도 회주님이 저러니까 적응 안 되네.”
세령이 백무정의 뜨듯미지근한 시선으로부터 눈을 돌리며 부르르 몸을 떨었다. 어릴 적부터 이십 년 가까이 찔러도 피 한 방울 안 나올 것처럼 굴던 이가 별안간 살갑게 굴고 있으니 영 부담스러운 모양이었다.
“그보다, 참룡검제 대협께선 어떻게 지내고 계시지?”
“······아저씨요? 어제부터 여전히 방안에 짱박혀서 깨달음을 정리하는 시간을 갖고 계시죠 뭐.”
떠나기 전엔 나오려나 몰라. 세령이 한 차례 어깨를 으쓱였다. 말하는 것과는 달리 별로 걱정하는 기색은 보이지 않았다. 목진이 제 방에 들어가기 전에 이틀 정도면 나올 테니 괜히 들어와서 방해하지 말라고 미리 못박아두었기 때문이었다.
“흐음······. 명상 수련법이라······절대고수들이 그렇게 수련한다고 듣긴 했다만, 참룡검제께서도 그런 방식으로 수련을 하시나 보군.”
“글쎄요? 지금까지 아저씨가 하루 넘게 명상하는 건 거의 못 봤는데.”
지금까지의 경험에 비추어보건대, 그녀가 아는 절대고수들의 수련 방법은 대부분 대련이었다.
‘아저씨 말로는 명상도 그만한 계기가 있어야 의미가 있다고 했었지.’
그녀가 알기로 지금까지 목진이 하루 이상 명상에 잠긴 것을 본 것은 두 번이었다. 하나는 첫 만남에서 대기권을 돌파한 목진이 처음으로 우주의 존재를 마주했을 때였고, 하나는 철시귀옹 리첼 아카몬드와의 싸움 직후 처음 궤도폭격을 목격했을 때였다.
설마 검마와의 대결이 일전의 사건들에 비견될 정도로 목진에게 큰 영향을 주었던 걸까? 검마와의 대결에서 과거 천마신교 부교주 존과의 대결, 라이디와의 대결과 큰 차이를 느끼지 못한 세령이 아리송한 얼굴로 고개를 갸웃거렸다.
당연한 반응이었다. 그녀의 재능이 아무리 대단하다고 한들 아예 다른 차원에 있는 경지의 싸움을 꿰뚫어보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으니까.
그리고 지금, 그녀의 의문에 대답을 해 줄 수 있는 유일한 인물은 자신의 방 안에서 스스로를 향해 끊임없이 물음을 던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