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smic Heavenly Demon 3077 RAW novel - Chapter (319)
우주천마 3077 우주천마-320화(320/349)
47. 자문의심 Self Questioning (6)
47. 자문의심 Self Questioning (6) – 미완의 초월
지난날, 이목진이라는 이름의 무인이 처음으로 우주라고 불리우는 별의 바다를 눈동자 속에 담았을 때, 그가 마주한 것은 생전 단 한 번도 느껴본 적 없는 거대한 충격이었다.
산산이 부서진 것은 지금까지 그가 알고 있던 세계와 그것을 가득 채우고 있던 상식들이었고, 허무하게 무너진 것은 그 위에서 쌓아 올린 모든 깨달음이었다.
세상을 이루는 당연한 이치이며 모든 것의 근원이라 생각했던 하늘과 땅이 그저 검고 공허한 별의 바다 속 티끌처럼 존재하는 지구라는 행성의 일부에 불과했다는 사실.
그것은 고대사회를 살아가던 지극히 평범한 고대인의 상식관을 근본부터 무너트리기에 충분하고도 남는 깨달음이었다.
혼원(混元)을 이르는 일원(一元).
음양(陰陽)을 이르는 이극(二極).
천지인(天地人)을 이르는 삼재(三才).
사상(四象), 오행(五行), 육합(六合), 칠성(七星), 팔괘(八卦), 구궁(九宮).
현세에서 감히 견줄 자 없는 지고의 경지에 올라선 이후에도, 세상 모든 무학들의 근간이 된 이 개념들이 하늘과 땅의 당연한 이치로부터 비롯되었음을 의심해본 적은 없었다.
헌데, 그 당연한 이치가 단지 우물 밖 세상을 알지 못하는 우둔한 고대인의 식견에 지나지 않았다니.
그렇다면, 그가 지금까지 얻었던 무(武)의 깨달음들은 모두 덧없는 허상이었다는 말인가?
당연한 듯 찾아온 의문에 그는 답했다.
그럴 리 없다.
-라고.
무인 이목진은 기억하고 있었다. 세는 것이 무의미할 정도로 휘두른 검의 감각을. 일평생 그와 자웅을 겨루던 무인들이 펼치던 각양각색의 무학을. 그리고 삶과 죽음의 경계 위에서 어울린 무수한 생사지결(生死之決)의 순간을.
그 모든 것이 거짓과 허상이라고?
그럴 리가 없지 않은가.
그것들은 진짜였다.
그러니 그가 얻은 깨달음 또한 진짜일 터였다.
이목진은 그 자신의 무를 의심치 않았다.
설령 하늘 밖 천외천의 세상을 알지 못했다 할지언정 어찌 그 깨달음들이 모두 그릇되었다 할 수 있으랴?
한낱 꽃 한 송이를 보고도 깨달음을 얻어 무의 이치에 닿을 수 있거늘, 하늘과 땅을 보고 저 깊은 우주의 이치에 닿지 못할 것은 또 무엇이란 말인가.
하면 남은 것은 하나뿐이었다.
그가 얻었던 깨달음을 새로운 세계관에 맞춰 재정립하는 것.
천마 이목진이 깨달은 모든 무의 이치를 더 이상 나눌 수 없을 때까지 잘게 부수고, 새로이 깨우친 세상에 들어맞도록 다시 쌓았다.
처음 깨달음 하나를 정립하는 과정은 지독히도 혼란스럽고 고통스러웠다. 그가 쌓아온 모든 것들을 부정해야 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는 그것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무릇 그가 걷는 마도(魔道)라는 것은 사람의 도(道)와는 다르기에 우뚝 서서 그 어떤 것도 두려워하지 않는 자의 길이니. 설령 그 앞이 가시로 뒤덮여 있다 해도 도망칠 수는 없는 노릇이 아닌가.
때문에 그는 그 지독한 혼란과 고통을 오롯이 감내했다. 그의 길, 마도를 걷는다는 것은 그러한 것이었다.
그리고 그 길은 틀리지 않았다.
찰나 속 기나긴 인고를 거쳐 최초의 깨달음을 새로 쌓았을 때, 그는 그의 앞을 가로막고 있던 거대한 벽이 산산히 부서지는 환희를 느꼈다.
그것은 보상이었다. 두터운 알껍질을 깨고 바깥세상을 마주한 고대인의 선택과 용기, 그리고 노력에 대한 보상.
보상이 주어짐을 알았으니 더이상 거리낄 것도 없었다. 처음으로 우주를 마주한 찰나이자 무한인 시간 속에서 그는 저 자신조차 잊어버린 채 오직 스스로의 깨달음을 부수고 쌓기만을 반복했다.
이윽고 마침내 그가 쌓아온 모든 깨달음을 부수고 새로 만들었을 때.
그는 비로소 자신이 그 누구도 닿은 적 없는 전대미문의 경지에 올라서 있음을 깨달았다.
그 이름은 생사경(生死境).
협소하기 그지없는 고대인의 세계관을 벗어나 광대한 우주를 마주하고, 비로소 그 안에 담긴 생명의 삶과 죽음을 논할 자격을 얻은 경지의 이름이었다.
그리고 동시에.
그가 이루어낸 것이 완전하지 아니함을 상징하는 이름이기도 했다.
목진은 자신이 경험한 것을 두고 초월(超越)의 영역이라 하였다.
그 한 단어 이상으로 그가 겪은 것을 함축하기에 적절한 표현을 알지 못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는 이미 알고 있었다.
자신이 겪었던 것은 온전하지 않은, 미완(未完)의 초월이었다는 것을.
그가 걷는 길 앞에 남은 벽은 아직 무수히 남아있었으나, 정작 그들을 깰 원동력인 깨달음은 부족했다.
그는 세상 그 누구보다 많은 것을 깨달았다고 자부했으나, 무(武)의 끝을 향하는 그의 앞을 막아선 벽은 그보다 더 많았던 것이다.
때문에 그는 초월을 완성하지 못했고, 생사경의 경지에서 멈추었으며, 그가 가는 길의 끝에 닿지 못했다.
목진은 그것이 못내 안타까웠다.
초월의 영역에 들어선다는 것은 무수한 억겁의 윤회 속에서 단 한 순간 주어질까 말까 한 천운(天運)임을 알기 때문이었다.
한 번의 행운은 있어도 두 번은 기대할 수 없는 법. 아마 그가 다시 초월에 드는 행운을 얻긴 요원한 일이리라.
그가 검마의 이름을 내건 안드로이드에게 부러움을 느낀 것은 그런 이유에서였다.
자신만이 도달했다 여겼던 초월의 영역에 발을 내딛은 자.
그리고 마침내 제가 걷는 길의 끝에 도달한 자.
그러나 질시는 느껴지지 않았다.
목진은 그와 검마의 길이 같지 않음을 알기 때문이었다.
검(劍)의 길. 그리고 무(武)의 길.
근본이 다르니 그 극도 같지 아니하며, 그러니 고하를 논하기를 무용하다.
재능이 있던 과거의 그는 검의 길을 걸어갈 수 있었음에도 구태여 모든 무공의 집대성이자 가장 깊은 뿌리인 무의 길을 걷길 선택했고, 그것이 그를 생사지경의 경지로 이끌었다.
그러니 그가 느끼는 것은 후회도 질시도 아닌, 단지 안타까움뿐일 수밖에.
하지만 얻은 것이 아무것도 없는 것은 아니었다.
고대인의 알껍질을 깨고 우주로 나온 이후로 처음으로 겪은, 백척간두의 치열한 생사결전.
그 안에서 그는 하나의 깨달음을 얻을 수 있었으니까.
다만, 그 깨달음이 지금까지 무인 이목진이 쌓아온 무와 충돌하는 것이라는 것이 문제였다.
‘내공 드라이브는 오랜 시간 내공을 쌓을 필요가 없게 만들어주는 귀물이나 근본적으로 육(肉)과 괴리되어 있으며, 내공통합운영시스템은 사람의 의지로 움직이는 것보다 정확하나 영(靈)이 담기지 않는다. 초식다운로드인터페이스는 고수의 반영에 오르면 무용하니 논할 가치조차 없다.’
목진이 지금까지 품고 있던 내공 드라이브와 QIOS, ADI에 대한 평가는 그러했다.
단지 싸움을 위해서라면 현대의 기물들을 사용하는 것이 효율적이나, 깨달음을 얻어 더 높은 무의 경지에 도달하고자 한다면 그런 것들에 의지하는 것은 틀린 길이다.
보이지 않는 것을 볼 수 있는 심안(心眼)을 개안한 그의 눈에는 그것이 확연히 보였기에, 그의 판단은 더없이 확고했다.
허나 지금까지 그 확신에 변함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서천검후와 검을 나누며, 천마신교의 부교주와 사투를 벌이며, 뇌신유녀에게 깨달음을 전해주며, 무영탑주의 만종에 종지부를 찍으며.
지금까지의 여정에서 만난 무인들이 그의 확신을 흔들었기 때문이었다.
어쩌면 이들의 길로도 닿을 수 있지 않을까. 목진의 가슴 속 깊숙한 곳에서 그러한 의문이 자라났고, 그는 그들의 길을 부정하는 대신 어느 정도 인정하면서 판단을 유예하기로 했다.
하지만 검마와의 결전을 치른 목진은 더 이상 그런 유보적인 입장을 견지할 수 없었다.
그의 존재는 목진이 가지고 있던 무에 대한 관념을 정확히 부정하는 반례이기 때문이었다.
‘정녕 그간 내가 깨달았노라 생각하던 무는 그저 빙산의 일각에 불과했던 것인가.’
내공도 제대로 쓰지 못하며, 육체조차 가지고 있지 않은 어설픈 흉내쟁이 무인.
그러나 그런 반쪽짜리 무인은 분명 그와 같은 초월의 영역에 도달했다.
그것은 일종의 분수령이었다.
그는 이제 선택해야 했다.
직접 목격한 눈앞의 현실로부터 눈을 돌려 외면하던가. 아니면 지금까지 그가 걸어온 길에 의심을 품던가.
무엇이 옳은지는 명약관화했다.
전자를 택한다면 영원히 지금의 경지에서 정체될 테지만, 후자를 택한다면 새로운 가능성을 얻을 테니까.
그러나 목진은 쉽사리 선택을 내릴 수 없었다.
그는 마도인이기 때문이었다.
– 너희는 틀렸다.
– 그리고 오직 옳은 것은 나뿐이다.
천마 이목진은 오만했고, 그의 길은 흔들리지 않았다. 그것이야말로 정도(正道)도 사도(邪道)도 아닌, 마도(魔道)의 본질이었다.
그가 무인 이목진임과 동시에 천마(天魔) 이목진인 것은 바로 그 마도의 종주이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후자를 택한다면 그는 천마 이목진을 부정해야만 했다.
그리고 그건 과거 초월지경에 이르렀을 때 그가 쌓아온 깨달음을 부정했던 것과는 결 자체가 다른 이야기였다.
안돈하여 천마로서 남을 것인가, 아니면 스스로 마도를 부정하고 가능성을 얻을 것인가.
아무리 생각해도 답을 알 수 없는 난제 사이에서 고민하던 목진의 머릿속에 문득, 기억 하나가 떠올랐다.
– 뭐 어쩌겠어요. 답은 정해져 있는데. 그리고 사천당가가 검 좀 쓰면 뭐 어때요. 내가 사천당가의 전통에 맞춰야 하나? 어차피 나밖에 없는데 나 꼴리는대로 하면 그게 사천당가지.
언젠가 독이든 암기든 남은 무공 하나 없이 근본 없는 검법을 쓰면서 사천당가의 재건을 논하는 것이 남들 보기에 부끄럽지 않으냐의 물음에 대한 세령의 대답이었다.
단순히 평소와 같이 이야기를 나누던 중에 지나가듯 흘러갔을 뿐인 말.
어째서 지금 그때의 말이 떠올랐는지는 몰랐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그로부터 목진이 깨달음을 얻었다는 것이었다.
‘지금까지 걸어온 무의 길에 의심을 품는 것이, 과연 마도를 벗어나는 것이던가?’
무도(武道)와 마도(魔道)는 다르다. 목진의 뇌리에 벼락이 내리쳤다.
지금껏 그 누구도 도달하지 못한 길을 홀로 만들어나가고 있었기에 같다고 여겼으나, 실제로는 그렇지 않았다.
마도란 무엇인가. 두려워하지 않는 것이다.
하면 지금까지 걸어온 무도를 의심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고 당연히 행하는 것은 마도라 할 수 있지 않을까.
그는 그저 그가 원하는 것을 행하니,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마도일 것이다.
혼란이 가득한 심상 속에 파묻혀 있던 목진이 눈을 떴다.
그러나 그 모든 혼란스러움은 원래부터 없었던 것인 양 사라져 있었다.
목진은 웃었다.
이미 한번 고대인의 가치관을 꺾었거늘, 무인의 가치관을 꺾지 못할 것은 또 무엇인가.
그는 선택했다.
그리고 스스로에게 물었다.
“나는 과연 옳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