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smic Heavenly Demon 3077 RAW novel - Chapter (320)
우주천마 3077 우주천마-321화(321/349)
48. 생존논리 Survivor Excuses (1)
48. 생존논리 Survivor Excuses (1) – 아니 왜 풀이 죽고 그러세요
“······뭐가 많이 변한 것 같지는 않은데.”
하룻동안의 명상을 끝내고 나온 목진을 요리조리 뜯어보며 세령이 중얼거렸다. 목진은 그런 세령의 말에 말 같지도 않은 소리를 한다는 듯 쯧쯧 혀를 찼다.
“깨달음을 얻었다고 한들 그게 겉으로 드러나는 일이 흔하겠더냐?”
“왜 전에는 환골탈태도 하시고 아주 난리시더만.”
과거 처음 만났을 때 목진이 별안간 가부좌를 틀고 붕 떠올라서 환골탈태니 반로환동이니 무협영화에서 CG로나 나올 법한 광경을 직접 본 적이 있어서인지, 세령은 이번에도 내심 뭔가를 기대하고 있던 모양이었다.
“명상하면서 뭐 대단한 깨달음 같은 거라도 얻었어요? 아저씨가 이 정도로 길게 명상한 건 전에 아테나 집행관을 처음 만났을 때 이후로 처음인 거 같은데.”
“명상은 깨달음을 얻기 위함이 아니라 얻은 깨달음을 정리하기 위한 것이다. 깨달은 것을 정리하였으니, 이제 답을 구해야 할 차례지.”
물론, 그 답을 구하기까지 얼마만큼의 시간이 걸릴지는 목진 그 자신도 알지 못했다. 평생을 노력해도 답을 얻지 못할 수도 있고, 당장 내일 깨달음을 얻어 답을 얻을 수도 있으니까. 본래 깨달음이라는 것은 그러한 법이었다.
“······무슨 말인지 못 알아듣겠는데요.”
언젠가는 다 알게 될 것이다. 아리송한 표정으로 고개를 갸웃거리는 세령을 보며 목진이 피식 웃었다.
“그보다 뒷마무리는 잘 되었느냐?”
목진은 토투가를 떠날 준비를 위해 물자들을 확인하고 있는 순자 쪽을 흘긋 바라보며 물었다.
세령이 가볍게 어깨를 으쓱였다.
“삼극회 쪽 일은 대충 마무리됐어요. 후계자 쟁탈전에서 셋째 데이빗이 탈락했다는 거 정도? 좋다면 좋은 일이긴 한데, 사실 우리 일은 아니긴 하죠.”
“제갈과 남궁의 일은?”
“제갈세가는 삼극회에서 맡아서 견제해주기로 했고, 남궁 쪽은 집행관님한테 연락해서 공권력을 좀 빌리기로 했어요.”
이 기회에 혈교랑 엮어서 확 뒤집어 엎어버리려고요. 세령이 사나운 웃음을 머금은 채 말을 이었다.
“관의 힘을 빌린다라······흐음. 솔직히 내키는 일은 아니다만, 혈교라는 치들이 원체 위험한 자들이니 그 방법이 가장 낫긴 하겠구나.”
공권력을 빌린다는 점이 마뜩찮게 느껴지는지 슬쩍 미간을 구기면서도, 목진은 순순히 세령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이번 일은 세령의 판단이 옳다고 판단했기 때문이었다.
과거엔 단순히 별 것 아닌 존재들로 치부하던 것과는 달리, 혈교의 의지를 직접 마주하는 경험을 한 목진은 더 이상 그들을 일개 사교도 집단이라며 가볍게 여길 수가 없었다.
“물론 그 전에 벽검성과의 대결부터 예정대로 진행해야겠지만요.”
“그래. 네겐 주어진 시간이 많지 않다.”
“아, 무슨 말인지 알아요.”
순자한테 대강 얘기 들었어요. 세령이 순자 쪽을 엄지로 가리키며 말했다.
“블러드뭐시기 프로토콜이라는 게 발동해서 전 인류에 계엄령이 떨어질 거라던데. 그 전에 빨리 남궁세가와 제갈세가와의 일을 끝내야죠.”
기껏 말도 안 될 정도의 행운들을 얻어 원래 그녀의 처지에서는 상상조차 할 수 없던 복수의 기회를 얻었다. 혈교고 나발이고를 떠나 이런 다시 오지 않을 기회를 놓칠 수는 없었다.
“그러고 보니 남궁가의 후기지수와 검을 겨루었다고 했었지.”
검마와의 싸움이 끝난 뒤에 세령으로부터 간단히 제갈희와 남궁천과 싸운 이야기를 들었던 것을 기억해낸 목진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남궁천이라······재작년에 기공방 성계에서 제갈가의 여식과 함께 내게 비무를 청했던 그 청년이었던가.”
“맞아요. 창천폭룡 남궁천.”
“쯧쯔. 앞길이 창창하던 자가 어쩌다 혈교 같은 흉한 것에 물들게 되었는지.”
목진이 가볍게 혀를 찼다. 비록 좋은 인연이라기보다는 악연에 가까운 인연이었지만, 그래도 제법 싹수가 있는 무림의 후학이 초라하게 목숨을 잃었다는 사실은 그리 달가운 소식이 아니었다.
“남궁세가는 오대세가 중에서도 그 기개가 꼿꼿하기로 이름 높은 곳이거늘, 어찌 그곳이 혈교의 소굴이 되었다는 말이냐.”
“정파라고 뭐 혈교 내성 있는것도 아닌데 걔들이라고 별 수 있겠어요? 인류정부한테 안티-혈교 인증마크 받은 소림사라면 모를까.”
‘근데 거기 스님 상태 보면 차라리 혈교가 나을지도······?’
껄껄 웃어대며 레이서들을 용암 아래로 집어 던지던 아수라 붓다를 떠올린 세령이 저도 모르게 슬쩍 얼굴을 구겼다.
“마음을 단단히 먹도록 하거라. 남궁세가조차 안전하지 않다면, 팽가 때와 같이 남궁의 가주 또한 혈교에 잡아먹혔을지 모르는 일이니.”
“충분히 가능성 있는 상황이긴 하죠.”
목진의 말에 세령의 표정이 조금 심각해졌다.
가주의 친위대나 다름없는 암천수호령이 혈교에 오염되었으니, 그 수장인 남궁수련 또한 오염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제아무리 고아한 고수라고 해도 혈교 오염체에 장기간 접촉한다면 오염을 피할 수 없을테니까.
“뭐, 그래도 혈교에 오염된다고 막 더 세지고 그런 건 아니니까 상관없어요. 생사결 좀 한다고 막 내가 오염되는 것도 아니고.”
세령은 설령 벽검성이 오염되었다 하더라도 그녀에게 그 오염이 전이될 가능성이 거의 없다는 것을 확신하고 있었다. 고작 잠깐 칼부림 하는 정도로 오염될 거였으면 이미 무영탑에 있을 적에 오염되지 않았겠는가.
무슨 좀비영화마냥 물리거나 피 같은 체액이 묻는다거나 하는 방식으로 오염되는 거면 모를까, 혈교의 오염은 매우 은밀한 대신 장시간에 걸쳐 서서히 이루어지는 게 특징이었다.
“벽검성 그 여자가 혈교에 오염되었건 말건, 내가 할 일은 바뀌지 않을 거에요.”
혈교니 인류멸망이니 하는 거창한 건 무림의 높으신 분들이나 인류정부에서 알아서 할 일이지. 일개 무림인인 그녀에겐 복수행이 훨씬 중요한 일이었다.
“좋은 마음가짐이다.”
만족스럼다는 듯 고개를 끄덕인 목진의 입가에는 슬며시 미소가 걸려있었다. 검마와의 대결 직후에도 확인하긴 했지만, 처음 이곳 토투가에 왔을 때와는 달리 조금의 미혹도 내보이지 않고 복수에 집중하는 세령의 각오가 마음에 들기 때문이었다.
“다만, 승패를 가르는 것이 마음가짐뿐인 것은 아니지.”
입가에 떠오른 미소를 지운 목진이 조금 진지한 눈으로 세령을 쳐다보며 물었다.
“다행히도 네겐 운이 따라서 미리 남궁의 검을 견식해 볼 기회를 얻었다. 그와 검을 겨루며 얻은 깨달음이 적지 않겠지. 그를 잘 활용해야 다음의 대결에서 조금이나마 승산이 있을 것이다.”
“조금이나마?”
세령이 미간을 좁혔다. 마치 자신의 승산이 희박하리라고 말하는 것 같지 않은가.
목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황보세가의 태상가주와 겨루어 본 너이기에 잘 알지 않느냐. 세간의 평가는 그저 겉으로 보는 평가일 뿐, 무인이 평생 쌓아올린 무공은 직접 검을 맞대보기 전에는 속단할 수 없다는 것을 말이다.”
“······벽검성이 저희 예상보다 강할 거라는 뜻이에요?”
여기서 더? 세령이 미간을 좁혔다.
이미 벽검성 남궁수련의 무력에 대한 평가는 기존에 수집된 데이터보다 몇 수는 높게 잡은 상태. 덕분에 처음 복모유호 팽상원과 싸울 때에 비해 훨씬 원숙해진 세령의 무공으로도 벽검성을 상대로 승리할 확률은 반반은커녕 사 할에도 미치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여기서 더 강할 수도 있다니. 아무리 복수행 대상들 중 독보적으로 강한 경지에 오른 고수라고는 하지만, 현대 의학으로도 고치지 못할 중병으로 십 년도 더 전부터 외부활동을 중단한 병자를 너무 과대평가하는 거 아닌가? 세령은 목진의 충고를 쉽게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하지만 목진의 생각은 조금 달랐다.
“내 벽검성이라 불리우는 여인에 대해 잘 알지는 못하나, 아무리 중한 병에 걸렸다고는 해도 현경의 경지를 목전에 두었다고 평가받던 무인이다. 짧은 단기접전에선 네 생각보다 훨씬 뛰어난 기량을 보여도 이상하지 않을 터.”
거기다 다른 곳도 아니고 그 남궁의 검이고. 목진은 마지막 말을 입 밖으로 내뱉지 않고 조용히 삼켰다.
제왕지검(帝王之劍) 남궁(南宮).
괜히 정파무림에서 검을 상징하는 문파로 정파의 아홉 대문파들을 제치고 오대세가 중 하나인 남궁세가가 꼽히겠는가. 정파의 검을 대표한다는 드높은 자긍심과 그를 뒷받침하는 뛰어난 무학(武學)들은 남궁세가의 앞에 제왕의 이름을 두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과거 강호위키의 평을 찾아봤을 때 현대의 남궁세가 또한 목진이 살던 시대에 못지않게 검의 명가로 이름이 높다 하였으니 과거의 저력이 퇴색되진 않았을 터.
세령의 무공이 아무리 일취월장했다고는 해도 한때 현경의 경지를 앞두었던 남궁세가의 검수를 상대로는 사 할의 승률조차 터무니없는 낙관론이라는 것이 목진의 우려였다.
희망을 주기는커녕 점점 막막한 이야기나 하는 목진의 말에 세령이 와락 얼굴을 구겼다.
“아니 그럼 아저씨 생각엔 내 승률이 얼마쯤 될 거 같은데요.”
목진은 세령을 보며 손가락을 한 개 펼쳐 보였다.
“일 할.”
“······아무리 그래도 너무 짠 거 아니에요? 벽검성은 지금 병 걸린 상태라는 거 잊은 건 아니죠?”
“허, 오만한 소리를. 온전한 상태였다면 네가 이길 확률은 한 푼도 못 될 것이다.”
지금 상태로 싸우면 승률 십 퍼센트, 온전한 상태일 경우는 일 퍼센트. 터무니없이 낮은 승률이다. 세령이 조금 분한 눈초리로 째릿 목진을 쏘아봤다.
‘벽검성을 만나본 적도 없는데 어떻게 단언하는 거야, 도대체.’
하지만 기분이 상한다고 가만히 넘겨들을 수만은 없는 이야기였다. 다른 이도 아닌 목진의 평가가 아닌가.
적어도 무공에 있어서만큼은, 목진보다 더 나은 안목을 가진 이는 이 우주에 존재하지 않는다. 세령은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
사실 내심 목진의 말이 맞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그녀는 이미 무영탑에서 현경의 경지에 오른 절대고수들을 상대로 셀 수도 없이 패해 본 경험이 있었으니까.
비록 현경의 경지에는 들지 못했으나, 그에 한없이 근접했다고 평가받는 절대고수다. 아무리 병에 걸려 골골대고 있다지만 그 저력은 결코 무시할 수 없었다.
‘음, 너무 엄하게 말했나.’
조금 전의 자신감은 어디로 갔는지 금세 시무룩해진 세령의 모습에 목진이 머리를 긁적였다. 생사를 건 싸움이니 황보륭 때처럼 방심하지 말고 만전을 기하라는 의미에서 충고를 할 생각이었는데 아무래도 조금 과했던 모양이었다.
목진은 조금 어색한 손길로 세령의 어깨를 슬쩍 두드려주며 말했다.
“그래도 이번에 남궁의 무공을 견식해 볼 기회가 있었으니 그보다는 조금 더 사정이 나을 것이다. 충분히 해볼 만 하니 그리 주눅 들지 말거라.”
“······일 할이 뭐가 높아요.”
세령이 부루퉁한 목소리로 쫑알거렸다. 하지만 말투와는 달리 조금 얼굴이 밝아진 걸 보면, 목진의 격려에 조금은 기운이 차긴 한 모양이었다.
목진은 그런 세영의 말에 픽 웃으며 답했다.
“네 옛 시절에 비해 그 정도면 충분하고도 남지 않더냐.”
과연 세령은 그의 대답에 수긍할 수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