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smic Heavenly Demon 3077 RAW novel - Chapter (324)
우주천마 3077 우주천마-325화(325/349)
48. 생존논리 Survivor Excuses (5)
48. 생존논리 Survivor Excuses (5) – 누구나 그럴듯한 계획을 가지고 있다
‘······무신이 그동안 남궁세가에 머물고 있었다고?’
그것도 이 타이밍에?
공손혁흔을 알아본 세령의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남궁세가가 혈교에 오염되었는데 그 중심에 무신이 있었다니. 아무리 생각해도 수상하기 그지없는 이야기가 아닌가.
공교로워도 너무 공교롭다. 지극히 합리적인 의심이 그녀의 뇌리를 스쳤다.
‘이거······괜찮은 거 맞아?’
어중간한 절대고수 수준이면 모를까 상대는 그 천마신교 부교주 존 로갈과 동급, 혹은 그 이상으로 평가받으며 우주제일인이라는 자리에 가장 근접해 있는 인물. 아무리 세령이 목진의 강함에 한 치의 의심도 없다 한들 상대가 상대인 만큼 본능적으로 긴장을 끌어올리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만약 저 둘이 눈깔 뒤집어져서 편먹고 덤비기라도 하면······.’
꼴깍. 저도 모르게 머릿속으로 떠오른 생각에 세령이 저도 모르게 마른침을 삼켰다.
목진이야 뭔 짓을 해도 멀쩡할 양반이니 괜찮다 쳐도, 과연 그녀와 순자의 안전도 장담할 수 있을까? 세령의 마음속에 일말의 불안감이 슬금슬금 피어올랐다.
그때였다.
– 내 사소한 일에는 신경 쓰지 말라고 하였거늘.
엄하지만 한편으론 믿음직스러운 전음이 그녀의 귓가에 파고든 것은.
– 너는 오롯이 네 상대에게만 집중하거라. 그걸 위해 내가 이곳에 있는 것이니.
이 우주의 수많은 무인들 중에서 정점에 이른 절대고수인 공손혁흔. 그런 고수를 목전에 두고 논하면서도 손톱만큼의 긴장조차 담겨있지 않은 목진의 목소리에 혼란스럽게 흔들리던 세령의 마음이 거짓말처럼 차분히 가라앉았다.
‘······그래, 뭐 평소대로 아저씨가 알아서 잘 지켜주겠지.’
단순히 약간의 은원과 서로의 이득을 위해 시작된 동행이었지만, 지금은 그런 이해득실을 떠나 서로가 서로를 믿고 의지하는 동료다. 그런 목진을 믿지 못하면 누굴 믿는다는 말인가.
그녀는 지금 눈앞의 상대, 벽검성 남궁수련만 감당하기에도 벅찬 처지였다.
“······.”
세령은 무표정한 얼굴로 그녀를 응시하는 여인을 보며 주먹을 꾹 쥐었다.
여성치고는 약간 큰 편인 세령과 비슷한 키에 쪽빛 옷과 푸른 구름무늬가 수놓아진 흰 장포를 걸치고 있는 고귀한 분위기의 중년 여성. 허리에 여러 겹 두른 흰 띠와 손목에 감은 흰 천은 마치 병자의 모습을 연상시킨다.
아니, 실제로 남궁수련은 병자였다.
병색이 완연한, 가면으로 절반을 가린 얼굴은 그녀의 병이 세간에 알려진 것 이상으로 깊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었으니까.
창백하게 물든 피부와 눈 밑에 짙게 드리운 그늘은 삶의 가망이 없는 이들에게서 으레 볼 수 있는 모습이다.
그러나 세령은 감히 안심할 수 없었다.
보았기 때문이다.
허리까지 흘러내리는 긴 검은 장발 사이로 보이는 자줏빛 눈.
마치 검(劍)의 끝을 마주하고 있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키는 그 눈을 말이다.
‘저게······검성(劍聖).’
오대세가 제일의 검가인 남궁세가에서도 정점에 이른 자만이 얻을 수 있는 이름을 당당하게 거머쥔 자.
그녀가 꺾어야 할 상대는 그런 자였다.
일행이 연무장 중앙으로 다가오자 건조한 눈빛의 남궁수련이 세령을 보며 먼저 입을 열었다.
“사천당가의 후예, 염화나찰 당세령.”
세령은 칼날처럼 날카로운 여인의 눈을 피하지 않고 똑바로 마주보며 말했다.
“남궁세가 가주, 벽검성 남궁수련.”
두 사람은 마치 눈싸움이라도 하는 양 잠시간 서로를 응시했다. 그러나 그녀들의 입은 풀이라도 바른 것마냥 딱 붙은 채 떨어지지 않았다.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시간이 흐른 뒤, 먼저 시선을 돌린 것은 남궁수련 쪽이었다.
그녀는 목진을 돌아보며 가볍게 목례했다.
“참룡검제 대협의 위명은 익히 들었습니다.”
목진은 자신을 돌아보는 남궁수련의 모습을 살폈다. 그의 미간에 옅은 골이 패였다.
“······놀랍구나. 그 몸으로 여지껏 명을 붙잡고 있다니.”
어떻게든 숨기려고 하지만 결국 숨길 수 없는, 전신에 배어있는 짙은 죽은 자의 기운.
목진이 보는 남궁수련은 이미 걸어다니는 시체와도 같았다.
그는 마지막으로 그녀의 눈을 들여다보았다. 암천수호령과 마찬가지로, 그녀의 뿌리는 아직 혈교에 물들어있지 않은 듯 보였다.
“생에 대한 미련이 얼마나 깊기에 그런 흉한 것을 받아들이면서까지 살고자 하는가.”
목진의 말에는 씁쓸함이 깃들어 있었다.
눈을 보면 안다.
오직 검, 그리고 남궁세가에 모든 것을 바친 뿌리까지 남궁세가의 무인이라는 것을.
이와 같은 자가 조잡한 야망이나 하찮은 물욕 따위로 흔들릴 리가 없거늘, 어째서 혈교와 같은 불길한 것까지 받아들인 걸까.
남궁수련은 목진의 말에 작게 고개를 숙였다.
“흉한 모습을 보인 것은 부끄러우나, 태어나 살아가는 이가 살고자 발버둥치는 것이 죄는 아니라 생각하기에 후회는 없습니다.”
“······그런가.”
목진은 구태여 말을 이어가지 않고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선배에 대한 예우와 공경을 거두지는 않되, 스스로의 선택에 단호히 선을 그었으니 이 이상 논하는 것은 과한 일이다.
서로간에 얽힌 은원이 없으니 이 이상은 세령과 남궁수련의 영역. 목진은 남궁수련과 더 대화를 이어가는 대신 그녀의 옆에 서 있는 공손혁흔을 바라보았다.
“간만이로구나.”
기이한 인사였다.
만나보긴커녕 누군지조차 알지 못하던 상대에게 건네기에는 말이다.
“······?”
세령과 남궁수련, 그리고 순자와 암천수호령의 리더까지 의아함을 담은 눈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그러나 단 한 사람, 공손혁흔만은 의아한 기색을 드러내지 않았다.
그의 입가에 짙은 호선이 걸렸다.
“선배라면 꿰뚫어보실 줄 알았소.”
자신이 혈교의 의지와 합일(合一)하여, 그 일부가 된 것을 단 한 번 보자마자 간파했다.
핏물이 뚝뚝 떨어질 것 같은 검붉은색 동공이 천천히 목진을, 그리고 그 너머를 들여다보았다.
“무영탑에서는 보이지 않았건만, 이렇게 직접 보니 이제야 그 윤곽이 보이는구려. 내게 선배와 같은 심안(心眼)이 없는 것이 참으로 아쉽군.”
“무영······!?”
공손혁흔의 말에 순자가 흠칫 놀랐다. 그가 한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이해했기 때문이었다.
목진은 그런 공손혁흔을 묵묵히 바라보았다.
그가 말했다.
“완전히 합쳐지진 않은 모양이로군.”
“그것까지 알 수 있소? 대단하군.”
공손혁흔이 껄껄 웃음을 터트렸다.
“선배의 말대로요. 나라는 개체의 자아는 아직 합일로 가는 도중에 있는 미완의 상태이지. 세상엔 아직 즐길 것이 많이 남아있어서 말이오.”
운명의 때가 도래하기 전에 이 여흥을 실컷 즐겨두어야 하지 않겠소.
그렇게 말하는 공손혁흔의 시선이 아주 잠시 동안 남궁수련에게 머물렀다. 무표정으로 일관하던 그녀의 미간이 살짝 찡그려졌다.
목진이 가볍게 혀를 찼다.
“취미가 고약한지고.”
“오래 살다 보면 가끔은 새로운 자극이 고파지는 법이지.”
“구태여 여기에 온 것도 그 때문이더냐?”
“그렇지는 않소이다.”
이젠 흥미를 잃었거든. 공손혁흔이 살짝 고개를 저었다.
즐거운 듯한 미소를 머금은 채, 그는 목진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대신, 선배께 흥미가 있소만.”
“······호오.”
무인이라면 그 말의 의미를 이해하지 못할 리가 없다. 목진의 눈이 가늘어졌다.
무영탑에서 마주했던 혈교의 의지와는 달리, 눈앞에 있는 이는 지금껏 만난 이들 중 손꼽힐 정도로 높은 경지에 도달한 고수. 무를 논하기에 부족함이 없는 상대이긴 하다.
허나, 생사결이라면 그 결과는 정해져 있다.
가늘어진 목진의 눈 사이로 스산한 기운이 흘러나왔다.
“죽음이 두렵지 아니하더냐?”
공손혁흔이 답했다.
“더 높은 경지를 위해서라면.”
목진의 검은 눈동자가 그의 눈을 꿰뚫어 보았다.
“······너는 네가 죽을 것이라 생각하지 않는구나.”
흐. 공손혁흔이 바람 빠지는 듯한 웃음소리를 흘렸다.
“들켰소?”
무신 공손혁흔은 더 이상 죽음이라는 결말을 떠올리지 않는다.
그것이 더 이상 그에게 존재하지 않는 개념이기 때문이다.
공손혁흔은 순순히 고개를 끄덕여 목진의 말을 긍정했다.
“선배의 생각이 맞을 거요. 설령 선배의 검이 내 심장을 꿰뚫는다 한들 나는 그저 합일이 이끄는 대로 그의 일부로 환원될 뿐이지. 물론 더 이상 내 자아는 구분되지 않게 된다는 건 조금 아쉽소만.”
하지만 뭐 어떻소? 공손혁흔이 과장되게 어깨를 으쓱였다.
“내 평생을 갈망한 경지에 도달한 선배의 무를 견식할 수 있는데, 그 정도 대가면 공짜나 다름없는 것이지.”
공손혁흔의 붉은 눈이 짙은 갈망을 담고 목진을 응시했다.
익숙한 눈이었다.
목진은 그런 공손혁흔의 눈을 바라보며 일말의 고민도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오는 검은 막지 않느니라.”
허나. 목진이 말을 이었다.
“사사로운 일을 논하기 전에 순서와 절차를 먼저 지켜야겠지.”
“아, 물론 그래야지.”
공손혁흔이 눈을 돌려 남궁수련과 세령을 바라보았다.
“실례가 많았소, 후배님들. 이것 참, 이 무대의 주인공들을 놔두고 주책맞게 굴었군그래.”
그렇게 말한 그가 한 발짝 뒤로 물러섰다. 더 이상의 잡담은 없을 것이라는 의미였다.
서로간에 통성명이 끝난 것을 확인한 암천수호령의 리더가 순자에게 스트리밍용 단말을 건네며 가주 전용 연무장 한켠에 자리한 관람석을 가리켰다.
“바로 진행하겠습니다. 생사결의 당사자와 입회자들을 제외한 참관인 분께선 자리를 옮겨주시지요.”
“네.”
리더와 순자가 관람석 쪽으로 자리를 옮겼다.
짧은 시간이라 할지라도 오염체와 함께 있는데 혹여 영향을 받지는 않을는지. 목진은 흘긋 리더와 함께 걸어가는 순자 쪽을 쳐다봤다.
그런 그의 시선을 눈치챈 공손혁흔이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저 안드로이드 소녀를 걱정할 필요는 없소. 우리가 선배를 상대로 조잡한 수작을 부릴까.”
“흥.”
목진은 가벼운 콧방귀로 대답을 대신했다.
“이제 시작하지.”
연무장의 중앙에 세령과 남궁수련이 서로를 마주 본 채 서고, 목진과 공손혁흔은 그 둘로부터 거리를 둔 곳에 섰다.
“사천당가의 당세령에게 복수행의 입회와 감독을 위임받은 이목진이다. 지금부터 두 사람의 생사결을 감독하겠다.”
“남궁세가의 남궁수련에게 복수행의 입회를 위임받은 공손혁흔이오. 금일 생사결의 입회인으로서 자리하였소.”
“인정한다.”
목진은 공손혁흔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세령과 남궁수련의 위치를 재차 확인한 목진이 두 사람의 선언을 기다렸다.
복수행을 선언한 세령이 말했다.
“사천당가의 당세령.”
사천당가의 멸문에 대한 대가를 그대의 목숨으로 요구하여 생사결을 청한다.
“남궁세가의 남궁수련.”
생사결에 동의한다.
“이로서 생사결이 성립되었다.”
양측의 동의를 확인한 목진이 검집에서 반쯤 뽑은 검의 검신을 튕겼다.
여느 때보다 날카롭게 들리는 검울림.
그것을 효시로, 세 번째 생사결이 그 막을 올렸다.
“······.”
검을 들고 기수식을 취한 세령은 전신을 긴장시킨 채 남궁수련을 바라봤다.
검을 든 채 가만히 서 있는 순수한 자연체(自然體).
가느다란 호흡 속에서 무감정한 자줏빛 눈동자가 그녀를 응시하고 있었다.
그 눈을 마주하며, 세령이 마른침을 삼켰다.
‘승산은······생각보다는 조금 높아.’
남궁수련의 호흡에서 희미하게 느껴지는 불협(不協).
최대한 억누르려고 하고는 있지만, 세령의 날카로운 감각은 그 작은 균열을 놓치지 않았다.
‘벽검성의 몸상태가 예상보다 더 좋지 않다.’
그 사실을 확인한 직후, 그간 무수한 경험으로 단련된 세령의 감각이 최적의 전술을 도출해냈다.
‘플랜A. 내공 드라이브의 출력으로 압박한다.’
세령은 자만하지 않았다.
그녀는 잘 알고 있었다. 순수한 검으로는 쇠약해진 그녀라 할지라도 감히 당해낼 수 없다는 사실을.
아무리 약해졌다고는 하나 그렇다고 지금껏 쌓아올린 절대고수의 무(武)가 사라지는 건 아니지 않은가.
그러나 내공 드라이브의 출력으로 가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준 노심급의 내공 드라이브를 가지고 있는 자신에 비해, 남궁수련은 약해진 몸이 버티지 못하기 때문에 고작 베타 플러스 급 출력의 내공 드라이브를 사용하고 있었으니까.
“후······.”
세령은 천천히 숨을 골랐다.
지금 이 순간만큼은 자만도, 방심도 머릿속에서 완전히 지워야 했다.
상대가 좀 더 약해졌다고 해서, 그녀가 강해진 것은 아니지 않은가.
눈앞의 상대는 복수행을 선포한 이들 중 최고의 경지에 오른, 명실상부한 최대의 난적(難賊)이었다.
한껏 곤두세운 세령의 날카로운 감각이 남궁수련의 호흡을 읽었다.
그리고 호흡이 흐트러지는 찰나의 순간.
“-!”
극성으로 전개한 전광보(電光步)와 함께 세령의 몸이 화살처럼 쏘아졌다.
사월섬뢰(倳月閃雷) 일중사(一中倳).
준 노심급 내공 드라이브에서 뿜어져나오는 내공을 검 끝에 한계까지 담아 찌른다.
호흡이 흔들리는 순간에 들어가는 쾌속의 일격은 쇠약해진 몸상태로 피할 수 있을 리가 없다.
‘막아라!’
이 일격으로 치명상을 입힐 수 있으리라는 기대 따위는 언감생심 떠올리지도 않는다.
다만 막대한 내공이 담긴 이 일격을 막은 반동이 그 몸에 쌓이기를 기대할 뿐.
압도적인 내공 출력으로 지구전을 펼치며 체력을 고갈시키고 약해진 육체에 리바운드를 누적시킨다.
그것이 바로 세령의 전략이었다.
무인다운 정정당당함 따위는 손톱만큼도 존재하지 않는, 사도지계(邪道之計).
하지만 생사결에서 정도를 논할 자격이 있는 것은 오로지 승자뿐일지니.
사천당가의 무인 당세령은 일말의 망설임 없이 사도의 길을 택했다.
그러나.
그녀는 한 가지 사실을 간과하고 있었다.
통상적으로 무림인을 분류할 때 그들을 절대고수로 분류하며 논외 취급을 하는 이유에 대해서 말이다.
그 답은 누구나 알고 있다.
그리고 그들 대부분이 알지 못한다.
“-.”
명치 아래 거궐혈(巨闕穴)을 분쇄할 기세로 쇄도하는 검끝.
검환(劍丸)에 가까울 정도로 농밀하게 밀집된 강기가 당장에라도 그녀의 가슴을 꿰뚫어버리려던 바로 그 순간.
남궁수련의 검이 움직였다.
‘아?’
세령의 성취로는 존재 자체를 이해할 수 없는 불가해한 궤적을 따라 번뜩이는,
한 줄기의 푸른 섬광.
그리고 그 직후-.
세령의 가슴에서 붉은 피보라가 뿜어져나왔다.
“끄-?!”
그들의 호칭에 절대(絶對)’라는 단어가 들어가는 근본적인 이유.
그것은 그들의 무(武)가 인간의 인식을 초월하는 영역에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