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smic Heavenly Demon 3077 RAW novel - Chapter (326)
우주천마 3077 우주천마-327화(327/349)
48. 생존논리 Survivor Excuses (7)
48. 생존논리 Survivor Excuses (7) – Now What?
‘이건······.’
거대한 소용돌이처럼 사방을 감싸듯 회전하는 무수한 비도(飛刀)의 폭풍. 그것을 본 남궁수련의 미간이 살짝 좁혀졌다.
분명, 철군자 황보륭과의 생사결 중 마지막에 펼쳤던 무공이었던가.
생사결 영상을 보았을 때 어느 정도 짐작하긴 했지만, 이렇게 직접 그 무공을 마주하니 확실히 알 수 있었다.
‘역시, 만천화우의 어레인지인가.’
적절한 전략이다. 쇠약해진 그녀의 몸으로는 황보륭이 그러했던 것처럼 쏟아지는 무수한 비도들을 모두 막아낼 체력이 없었으니까.
이 절기로 그녀의 체력을 소모시키고, 철군자에게 그러했던 것처럼 결정적인 순간에 검을 찔러오는 것이 그녀의 노림수이리라.
‘허나······약간의 피를 내어주면 충분히 파훼할 수 있다.’
화경의 끝자락에 도달한 남궁수련이 익힌 무공은 제왕검형(帝王劍形). 남궁세가에서 오래도록 전해져 내려오는 극상의 무학이다.
패검(霸劍)의 정수가 담긴, 황보세가의 정직한 무공에는 찾기 어려운 날카로운 돌파력을 담은 제왕검형의 오의라면 제아무리 당문 제일의 오의라고 해도 능히 활로를 만들어낼 수 있었다.
기회는 오직 한 번. 붉게 물든 철의 폭풍이 그녀에게 쏟아져 내릴 때의 찰나의 순간 뿐. 절대고수인 그녀가 그 기회를 놓칠 이유는 없었다.
남궁수련은 온 몸의 기감을 곤두세운 채 만천뇌우를 받아낼 각오를 다졌다.
그러나.
그것은 그녀의 오판이었다.
“-흡!”
챙 하는 날카로운 소성. 동시에 그녀의 검에 휩쓸린 비도들이 튕겨 나간다.
하지만 남궁수련의 눈동자 속에는 희미하게 당혹스러움이라는 감정이 떠올랐다.
‘일제공격이 아니야?’
남궁수련의 요혈을 노리고 쇄도해온 비도의 숫자는 고작 수십여 개. 주변을 휘돌고 있는 비도 무리의 숫자에 비하면 채 십분지 일도 되지 않는다.
쉬이익!
허공을 가르는 예리한 소리와 함께 그녀가 생각할 틈을 주지 않겠다는 듯 다시 한번 폭풍 속에서 한 무리의 비도들이 쏘아진다.
이번에도 그 숫자는 수십여 개. 그 모습을 본 남궁수련은 세령의 전략이 무엇인지 깨달았다.
무수한 물량을 앞세워 소나기처럼 상대를 몰아치는 철군자와의 대결 때와는 달리 숫자의 이점을 살려 치고 빠지는 식의 차륜전을 구성한 것이다.
쯧. 남궁수령이 눈살을 찌푸리며 혀를 찼다. 어느 정도 염두에 두긴 했지만, 그녀의 생각 이상으로 악랄한 수가 아닌가.
세령의 의도대로 체력을 빼앗기느니 차라리 조금 무리해서라도 무공을 파훼하는 편이 낫다. 빠르게 판단을 마친 남궁수련은 재차 쏘아지는 비도들을 검을 휘둘러서 걷어내며 과감하게 폭풍 쪽으로 몸을 날렸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사방에서 그녀를 압박하던 만천뇌우의 비도들이 넓게 간격을 벌렸다.
“-!”
그와 동시에 기다렸다는 듯 그녀가 나아갈 앞을 견제하는 비도들. 절묘한 타이밍에 들어오는 비도의 견제에 남궁수련은 몸에 배인 창궁무애검법의 초식을 펼쳤다.
화경의 끝자락에 도달할 때까지 무수한 수련을 거쳐 완벽(完璧)의 경지에 이른 초식. 최상의 타이밍을 파고 들어온 비도들이었지만 애초에 급이 다른 초식 앞에서는 무의미하다.
그러나, 결과는 조금 달랐다.
‘······반응했다?’
이 초식 한 번으로 모조리 떨어트릴 수 있으리라 여겼거늘, 고작 팔 할의 비도만이 튕겨 나가고 나머지 이 할은 그녀의 검을 피해낸 것이다. 현재 세령의 부족한 성취로는 감히 보일 수 없는 기예였다.
물론 그 작은 변화가 결과를 바꿀 수는 없었다. 이어진 남궁수련의 연계 초식에 남은 비도들마저 모조리 땅에 떨어졌으니까.
하지만 반응할 리 없으리라 여겼던 그녀의 검에 세령의 비도가 반응한 것은 분명한 사실이었다.
다시금 간극을 조이며 그녀를 압박해오는 비도들을 쳐낸 남궁수련이 미간을 좁혔다.
‘그러고 보니······이 진법(陣法), 정확히 남궁의 보법이 움직이는 만큼 거리를 벌렸어.’
남궁수련은 조금 전의 공방에서 느꼈던 기이한 위화감의 정체를 깨달았다.
그녀가 몸을 날리자 곧바로 넓게 퍼지며 절묘하게 거리를 벌리고, 정확한 타이밍에 견제가 들어온다.
마치, 남궁세가의 보법이 어딜 향하는지 알고 있는 것처럼.
그렇다면 결론은 하나뿐이었다.
남궁수련은 깊게 침잠한 눈으로 휘몰아치는 비도의 폭풍 너머에 있는 당세령을 응시했다.
“개량했군.”
공교로운 일이었다. 그녀가 그렇게 읊조리던 순간, 그녀의 목소리를 들을 수 없던 세령 또한 같은 말을 중얼거리고 있었으니까.
“······남궁세가에 딱 맞는 맞춤형으로 개량했지.”
만천뇌우(滿天雷雨) 비오의(祕奧儀), 태결비인진(颱結飛刃陣).
오늘 이 순간을 위해 지난 며칠 동안 필사적으로 준비한 비장의 카드다.
창천폭룡 남궁천과의 대결 이후, 그와의 전투데이터를 기반으로 남궁세가의 무공에 대응되게 새로 프로그래밍한 대(對) 남궁세가용의 비오의였으니 말이다.
‘벽검성의 체력을 깎을 수만 있다면 여기에서 모든 비도를 다 소모해도 남는 장사다.’
이 정도면 그간 고생한 보람은 충분하고도 남을 정도로 유의미한 성과다. 세령은 남궁수련의 행동을 예의주시하며 키네시스 어검술의 컨트롤에 더욱 집중했다.
그리고 그 순간.
남궁수련을 휘감은 붉은 폭풍 사이에서 한 줄기 높은 소리가 울려퍼졌다.
– 휘이이-.
폭풍과는 어울리지 않는, 무척이나 높고 청아한 한 줄기의 휘파람 소리가 말이다.
“뭣-.”
내공을 끌어올렸는데도 불구하고 미약하게 감각이 교란되는 느낌.
남궁세가의 대표적인 음공인 창룡후(昌龍吼)였다.
‘아니, 남궁천이 펼쳤던 일반적인 창룡후와는 달라.’
세령의 판단은 옳았다.
남궁수련이 펼친 무공은 창룡후가 아니라 거기에서 비롯된 파생 음공인 창룡소(昌龍嘯)였으니까.
창룡소의 감각교란 효과는 원본인 창룡후에 비해 미약했다.
하지만 세령은 느낄 수 있었다.
그 음(音)에 담긴 남궁세가의 절기 청천파동검기(靑天波動劍氣)의 오의(奧義)를.
‘미친······이딴 짓도 가능하다고?!’
개량된 초진동 블레이드를 통해 청천파동검기에 대한 대응은 충분하리라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만천뇌우를 펼치기 위한 비도들에까지 그런 조치를 취할 수는 없지 않은가.
단순한 휘파람 소리를 매개로 퍼진 것이기에 원래의 청천파동검기처럼 강기를 흩어버리는 위력은 없다.
그러나 이기어검술이 아닌 키네시스 어검술 따위로 움직이는 비도들 따위를 순간적으로 무력화시키기에는 충분하고도 남았다.
원을 그리며 매섭게 휘몰아치던 비도들에 맺힌 기가 아주 잠시 흩어진 찰나의 순간.
절대고수의 검은 정확히 그 틈을 꿰뚫었다.
-!
거대한 빌딩을 뒤덮고 있는 무수히 많은 유리창들이 일제히 박살 날 때 들릴 소리가 이러할까.
천에 달하는 비도들이 단 한순간에 유리처럼 산산이 부서져 버리는 광경은, 작금의 상황과는 어울리지 않게도 무척이나 아름답기 그지없었다.
“······.”
세령은 사방으로 흩어지는 쇳조각들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그녀가 펼칠 수 있는 최강의 초식을 파훼한 일검.
그것은 찌르기였다.
고작 반의 반 호흡에 천의 칼을 쏘아 떨어트리는 압도적인 속도의 찌르기.
비도가 떨어질 때까지 막아내는 것도, 주변을 압박하는 폭풍에서 빠져나오는 것도 아닌, 정직하게 정면에서 무너트린 초월적인 무공에 그녀는 저도 모르게 하나의 단어를 떠올렸다.
‘괴물.’
한때 그 서천검후조차 한 수 아래로 두었던 검성의 진면목은 그 세령조차도 순간 주춤하게 만들 정도였다.
그러나.
병들어 죽어가는 몸으로 과거와 같은 영광을 재현한 남궁수련 또한 그에 대한 대가를 치러야만 했다.
“콜록-!”
한층 더 창백해진 얼굴을 한 남궁수련의 입에서 붉은 핏물이 왈칵 쏟아졌다.
이미 죽어버린 검붉은 피가 아니라 살아있는 선홍빛의 핏물. 그녀의 몸이 죽어가고 있다는 마지막 경고였다.
“후우-. 후-.”
두어 차례 선홍색 피를 게워낸 남궁수련이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그녀는 아연한 표정의 세령을 바라보며 검을 겨누었다.
바들거리는 경련을 숨길 수조차 없는 죽어가는 육체.
그러나 검의 기세에는 조금의 흔들림조차 없다.
자신을 응시하는 자줏빛 검수의 눈동자를 본 세령은 더 이상 피할 수 없다는 것을 직감했다.
이제는 검을 맞대야 할 때였다.
“하-!”
작은 기합성과 함께 붉은 강기를 두른 검을 쥔 세령이 전광보를 밟으며 남궁수련을 향해 쏘아져나갔다.
이제는 완전히 몸에 익은 섬뢰사독검식의 초식을 따라 기이한 궤도로 구부러지며 파고드는 세령의 검.
그리고 그에 맞서 패도적인 기세를 흩뿌리며 다가오는 남궁수련의 검.
두 검수 사이에 수차례의 공방이 오가는 데에는 그저 찰나의 시간이면 족했다.
‘처음보다 약해졌다.’
세령은 서로의 숨결이 느껴질 정도로 가까운 거리에서 공방을 벌이며 남궁수련의 초식이 처음 그녀의 가슴을 베었을 때와는 달리 불안정해졌다는 것을 느꼈다.
하지만.
그럼에도 세령은 그녀의 검을 넘어설 수 없었다.
쇠약해진 육체에 만천뇌우로 체력을 소모시키고, 오랫동안 남궁세가의 검술에 대한 대응법을 연구했는데도 여전히 그녀의 역량으로는 절대고수의 벽을 넘기에 역부족이었던 것이다.
“크-!”
숨막히는 공방이 이어질수록 세령의 몸에 상처가 늘어난다. 그러나 세령의 검은 남궁수련에게 닿지 못하고 있었다.
본능에 새겨진 목진의 훈련과 강자들을 상대해 온 그동안의 경험을 양분으로 어떻게든 치명타는 피해가며 버티고는 있지만, 확연한 실력의 격차를 넘어설 수는 보이지 않았다.
‘이대로는 진다.’
남궁수련의 체력이 떨어질 때까지 버틸 수 없다. 남궁수련의 몸은 빠르게 죽어가고 있었지만, 그녀의 검은 더욱 매서움을 더해가고 있었으니까.
결국 이번에도, 도박을 피할 수 없다. 세령은 결단을 내렸다.
‘아저씨는 목숨 건 도박에 의지하는 건 일찍 죽는 지름길이라고 했지만······어차피 지면 죽잖아?’
철군자 황보륭 때와 마찬가지다.
더 이상 이길 수 있는 수가 남아있지 않다면 목숨을 판돈으로 도박이라도 걸어야 했다.
‘공격을 보는 걸 포기한다.’
점차 따라가기도 벅차오고, 어차피 봐도 이해할 수 없다. 세령은 주저 없이 남궁수련의 검에서 시선을 돌렸다.
이제 그녀의 시선이 고정되는 곳은 오직 남궁수련의 자줏빛 눈.
세령은 무영탑에서의 기억을 떠올렸다.
잠도 휴식도 없이 계속해서 싸우기만 했던 무영탑주 시그마와의 지도대련을.
눈앞에서 검을 휘두르는 적과는 차원이 다른, 목진이 과거의 자신에게 가장 가까이 도달했다고 평한 궁극의 절대고수.
끝도 없이 그녀의 목숨을 앗아갔던 시그마의 무자비한 공격은 남궁수련의 검과는 비교할 수조차 없을 정도로 빠르고 강했다.
그때 그녀는 어떻게 대응했던가.
‘초식을, 느낀다.’
보지도 않고, 이해하지도 않는다. 다만 느낀다.
당시에는 수십 번의 시도에서 운이 좋아야 한 번 성공할까 말까 했던 수. 그리고 생사결에선 실패는 곧 죽음과 다름이 없다.
하지만 세령은 가능성 따윈 계산하지 않았다.
해야만 하는 일에 가능성을 논하는 것은 의미가 없었으니까.
그리고, 기적이 일어났다.
‘보인다. 아니, 느껴진다.’
원래라면 화경(化境)의 영역조차 도달하지 못한 평범한 무인은 감히 넘볼 수 없는 영역.
그러나 평범하지 않은 재능과 경험, 그리고 가르침은 아주 잠시나마 허락되지 않은 지고의 경지를 엿볼 수 있게끔 그녀를 이끌었다.
남궁수련의 검이 느껴진다.
그리고, 더 이상 세령의 몸에는 상처가 더해지지 않았다.
이제 다음은 뭘까.
이 생사결의 대의도 잊고, 나아가 생사결을 치르는 것조차 잊은 채 무아(無我)에 접어든 세령의 머릿속에 떠오른 생각이었다.
그녀의 눈앞에서 검을 휘두르고 있는 누군가의 위로 한 사내의 모습이 덧씌워진다.
한때 남궁천이라 불리웠던 이를 상대로 그녀는 무엇을 했었지?
마치 그때와 같이, 공방을 이어나가는 그녀의 검이 변화를 품었다.
변초(變招)와는 근본적으로 다른, 초식의 틀을 벗어나는 변화.
그리고 그 변화는, 분명 언젠가 본 적이 있는 모습에 닿아있었다.
그것이, 언제였더라?
‘아-.’
그때였지.
세령의 앞에서 검을 쥔 여인으로부터 남궁천의 환영이 벗겨졌다.
그리고 이번에는, 세령 자신에게 다른 환영이 덧씌워졌다.
한쪽은 단 한 번 마주쳤던, 낡고 추레한 강철의 검객.
다른 한쪽은 그녀가 언제나 봐오던, 검은 무복의 사내.
두 사람의 환영을 뒤집어쓴 세령의 몸이 저 스스로도 이해할 수 없는 불가해한 궤적을 따라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 순간, 세령은 감히 담을 수 없는 것을 담은 제 머릿속이 폭발할 듯이 부풀어버리는 듯한 감각에 휩싸였다.
무인 당세령은 감히 이해할 수 없는,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수한 기적이 겹쳐 아주 잠시 동안 엿보기를 허락된 금단의 영역.
그 영역의 이름은 투로제형(鬪路製形)의 경지라고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