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smic Heavenly Demon 3077 RAW novel - Chapter (329)
우주천마 3077 우주천마-330화(330/349)
49. 상호주살 Death Match (1)
49. 상호주살 Death Match (1) – 결과지상주의의 폐해
“한낱 사교에 귀의했다 하여 제가 그 신이라도 된 양 구는구나.”
목진이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
아수라 붓다의 말마따나 불가에서 말하는 죄마라는 것인지, 아니면 그저 혈교에서 믿는 어딘가의 잡신인지는 모른다. 하지만 그가 보았던 혈교의 의지는 분명 신이라 불리울 만한 격이 있었다.
그런데 그것에 흡수당한 주제에 마치 저도 그만한 격에 올라간 양 굴다니. 간접적으로나마 혈교의 의지를 직접 마주했던 목진으로서는 기가 찬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공손혁흔은 목진의 말에 어깨를 으쓱였다.
“나는 그와 합일한 몸이라 하지 않았소?”
“허나 미완이지.”
그건 그저 네 타고난 성정이 아니더냐? 목진이 말했다.
그 말을 들은 공손혁흔은 잠시 대답을 않고 두 눈을 꿈벅였다. 그러더니-.
이내 진한 미소를 제 입꼬리에 걸었다.
“사실은 그렇소.”
내 성격이라는 게 원래가 이러하지. 공손혁흔은 옆을 향해 손을 쭉 뻗으며 말했다. 어디선가로부터 사람 키만큼 긴 외날도가 날아와 그의 손으로 빨려 들어갔다.
“그런데, 그게 잘못인가? 고수인데.”
그는 킬킬 웃으며 말했다.
“나는 약자의 사정을 헤아려주지 않소. 허나 사람들은 그런데도 나를 칭송하기 바쁘지. 어째서겠소? 내 무(武)가 이리도 강하기 때문이오. 그렇다면 그야말로 옳은 것이지.”
강하다. 그렇기에 내가 옳다. 목진에게 있어선 썩 낯익은 말이 아닐 수 없었다.
무림의 근본을 아우르는, 강자지의(强者之義)의 법도.
하여 목진은 그의 말을 기꺼이 긍정했다.
“그렇겠지.”
헌데. 목진이 가늘게 눈을 뜨며 말을 이었다.
“그것은 내 앞에서는 할 수 없는 말이라는 것은 알고 있느냐?”
강함의 옳음을 논하는 것은 오직 강자이기에 허락된 자격. 그와 마주하고 있는 것이 목진이라는 존재인 이상, 공손혁흔은 결코 그 말을 꺼낼 수 없었다.
서로 검을 맞대지도 않았건만 강함의 우열을 단정하는 데에 그 어떠한 의심도 없다. 목진의 말에 불쾌감을 느낄 법도 하건만, 공손혁흔은 의외로 담백하게 목진의 말을 긍정했다.
“그렇긴 하오.”
아직은. 공손혁흔이 덧붙였다.
“뭐어, 어차피 이 몸뚱이는 이제 제 쓸모를 다했소. 운명의 때가 지척에 이르렀는데, 육도에 얽매여있는 이깟 고깃덩어리가 무슨 가치가 있으리. 다만 내가 닿지 못했던 경지에 도달한 선배의 무(武)를 견식 할 수 있으면 충분히 남는 장사라 생각할 뿐이오.”
“······내 전력을 끌어내겠다?”
목진이 소리내어 웃었다.
그러나 그의 눈은 웃고 있지 않았다.
“참으로 오만하구나. 네 스스로가 그만한 자격을 가지고 있다 자부하는 것을 보니.”
“우주제일인(宇宙第一人)이라면 충분하지 않겠소?”
“글쎄.”
목진은 그의 말을 긍정하지 않았다.
공손혁흔이 이 시대 최고의 자리를 다투는 무인이라는 것을 부정할 생각은 없다. 그러나 그것이 이목진이라는 무인의 전력을 이끌어내기에 충분한가를 묻는다면, 목진은 고개를 가로저을 것이다.
그리고 공손혁흔은 그 함의를 읽지 못할 정도로 우둔하지 않았다.
“······이거야 원. 오만한 것이 어느 쪽인지 모르겠군.”
그는 슬쩍 미간을 찌푸리며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하지만 인정하지. 그대에겐 그리 말할 자격이 있으니. 어차피 그것을 증명하는 것은 내게 달린 것이 아니오?”
“시험의 대가는 네 목숨이니라.”
차라리 살기가 담겨있는 것이 나을 정도로 담담한 선고. 그러나 공손혁흔은 그런 목진의 선고에 픽 웃음을 흘렸다.
“말했잖소. 충분히 남는 장사라고. 그리고 설령 내가 부족하다고 해도, 다음에 만날 때는 그대가 내게 강자지의의 자격을 물어야 할 거요.”
자신이 혈교와 하나가 된다면, 지금의 입장이 역전될 것이라는 뜻이다.
목진은 그런 공손혁흔의 말에 가볍게 혀를 찼다.
“그 혈교의 악신이라 한들 내게 그 자격을 물을 수 있을 것 같더냐?”
“이를 말이겠소.”
공손혁흔이 대답했다. 조금의 망설임도 없는 즉답이었다. 그의 핏빛 눈동자 위로 광신(狂信)이 번들거렸다.
광인에겐 약도 없는 법이지. 목진이 절레절레 고개를 저었다.
“그렇다면 다음에는 그 악신의 눈으로 직접 보거라, 네 믿음이 얼마나 하잘것없는 것인지.”
그러나 그 전에. 목진은 허리춤에서 천천히 검을 뽑아들었다.
“지금껏 네가 이룬 것이 얼마나 대단하기에 그리 오만하게 구는지 한번 확인해보자.”
목진의 검 끝이 무신 공손혁흔을 가리켰다.
“오거라.”
내 네 목숨을 거두기 전에 한 번의 기회를 주마.
남궁세가 가주의 개인 연무장 위, 목진과 공손혁흔은 서른 걸음 정도의 간격을 유지한 채 서로를 마주봤다.
“유언은 먼저 들어두마.”
목진이 말했다. 상대의 목숨을 거두리라 마음을 정했고, 또 그렇게 행하리라 추호도 의심치 않는 목소리였다.
공손혁흔은 그의 말에 고개를 저었다.
“죽지 않으니 유언 같은 건 없소.”
다만······. 그가 말을 이었다.
“한 가지 묻고 싶은 것은 있군.”
“묻거라.”
목진의 말에 공손혁흔은 그의 검은 눈동자를 똑바로 바라보며 물었다.
“선배께선 끝을 보았소?”
“······.”
목진은 곧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불현 듯 그에게 같은 물음을 던졌던 이들을 떠올려서였다.
– 당신은 검의 끝에 도달했는가?
가장 먼저 떠올린 이는 검마였다.
고작 얼마 전에 단 한 번 마주한 인연이었는데도 평생 잊을 수 없는 기억을 남겨주었던 낡고 녹슨 안드로이드 검수. 그의 물음은 분명 지금의 물음과 비슷했다.
‘아니. 비슷하나 같지는 않다.’
검의 끝.
그리고 무의 끝.
한 검수와 한 무인의 길은 잠시 같은 길을 걸을지언정 그 끝은 분명히 다른 곳이었다.
하여, 목진은 그보다 더 공손혁흔의 물음에 가까운 물음을 던졌던 이의 이름을 기억해냈다.
– 그곳이 무의 끝이오?
그와 같은 물음을 그에게 던졌던 존재. 한때 저 스스로 무의 궁극을 이루었노라 말하던 지난 시대의 우주제일인.
그 이름은 바로, 무영탑의 탑주 시그마였다.
잠시동안 그와의 짧은 대담과 그 뒤의 대결을 추억한 목진이 느릿하게 입을 열었다.
“······이전에도 그와 같은 물음을 내게 던졌던 이가 있었지.”
“호오.”
공손혁흔이 흥미롭다는 듯 작게 감탄했다.
목진 정도 되는 고수가 단지 비슷한 말을 했다는 것으로 저와 같은 말을 할 리는 없으니, 분명 같은 속뜻을 담은 물음이었을 터.
바꿔 말하면, 그에게 같은 물음을 던졌다던 이 또한 자신 못지않은 고수라는 의미였다.
‘역시 우주는 넓고 알려지지 않은 고수는 많군.’
인연이 닿지 않아 운명의 날이 오기 전에 마주치지 못했으니 아쉬울 뿐이다. 공손혁흔은 속으로 가볍게 혀를 찼다.
그러나 목진의 말은 아직 끝난 것이 아니었다.
“헌데 그와 너는 다르군.”
“다르다라······. 무엇이 말이오이까?”
목진의 검은 눈동자가 덤덤히 그를 바라봤다.
“그는 내게 그 물음을 던진 뒤에 깊이 후회했는데, 너는 그와 달리 진심으로 내게 묻고 있구나.”
“······그렇소?”
공손혁흔이 삐뚜름히 고개를 기울였다. 그는 목진이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지 이해하지 못한 듯 보였다.
목진은 그를 보며 비릿하게 웃었다. 한심하다 비웃는 것인지, 안타깝다 동정하는 것인지는 알 수 없는 웃음이었다.
“너는 이미 네가 무의 궁극(窮極)을 얻었다 생각하고 있나 보군.”
공손혁흔은 목진의 말을 부정하지 않았다.
“아직은 아니지만, 곧 얻게 되겠지.”
“자신이 직접 얻는 것이 아니라 다른 누군가에게 하사받듯 얻는 것에 무슨 의미가 있더냐?”
하하. 공손혁흔이 낮게 웃었다.
“나는 과정에 연연하지 않소. 그런 것까지 신경 쓸 정도로 여유롭지는 않거든. 결과적으로 얻을 수 있기만 하면 그만이오.”
“······.”
목진은 그의 대답에 와락 미간을 찡그렸다.
궁극에 닿기 위해 스스로의 영혼을 갈아내고 감정을 버렸던 시그마조차 제 손으로 그것을 붙잡고자 했거늘, 어찌 그조차도 필요치 않다고 하는가. 목진은 공손혁흔이라는 무인을, 아니 무인이라고 불러야 할지조차 망설여지는 눈앞의 사내를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이만 되었다.”
단호함을 담아, 목진이 말했다. 더 이상 그와 논하는 것은 의미가 없었다.
“아까의 물음에 대한 답을 내어주마. 그 전에 내게 물었던 이에게 내어준 답과 토씨 하나 다르지 않은 답이니라.”
“경청하겠소.”
“말해도 너는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그것이 나의 대답이니라. 목진이 무심한 목소리로 말했다.
공손혁흔의 눈가가 꿈틀 움직였다.
“······농담이건 진담이건 기분이 썩 좋진 않군.”
“그러하더냐? 이전에 내게 이 답을 받았던 이는 내게 고맙다 말했다마는.”
목진이 한쪽 입꼬리를 끌어올렸다.
“아무래도 네가 쌓은 무는 그보다 부족한가보구나.”
“······.”
공손혁흔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 대신, 그는 두 손으로 긴 외날도를 고쳐잡았다. 외날도의 도신(刀身)을 따라 검은색과 흰색, 붉은색이 어지러이 섞인 검환들이 천천히 나선을 그리며 생겨났다.
그는 한 박자 늦게 목진에게 말했다.
“한번, 보고 판단해보시구려.”
한 발짝, 그리고 다시 한 발짝.
그의 발이 목진을 향해 앞으로 나아갔다.
답답할 정도로 천천히 나아가는 발걸음은 열 걸음째에 가서는 평범한 달음박질 정도의 속도가 되더니, 스무 걸음째에는 전력으로 질주하는 속도가 되었다.
느리지는 않으나, 무림의 기준으로 보았을 때는 결코 빠르다 할 수 없는 속도.
그러나 그의 발걸음이 서른 걸음째에 도달했을 때, 그의 속도는 눈으로 좇기 힘들 정도로 빨라져 있었다.
“-!”
공손혁흔의 외날도가 커다란 원을 그렸다.
그리고 목진 또한 그 원을 보았다.
‘······아니. 이것은 원이 아니다.’
구(球).
그것은 하나의 축을 중심으로 무수한 원이 중첩되어 형성된 하나의 완벽한 공이었다.
한 번의 베기는 원이다. 그러나 그 베기가 무한히 회전하며 중첩한다면 그것은 곧 구다.
목진의 눈은 그 무수히 많은 휘두름 하나하나를 꿰뚫어보았다.
극한의 극한에 다다른 깨달음이 담겨있는 베기. 그리고 그 휘두름의 뒤를 따르는 극상(極上)의 무리(武理).
그리고 결정적으로.
‘저 모든 베기 속에 담겨있는 무리들 중 같은 것이 하나 없구나.’
절대고수조차 기연이 따라주지 않으면 얻을 수 없을 지고(至高)의 깨달음이건만, 그 깨달음의 수가 무수히 많다.
목진은 인정했다.
저 많은 깨달음을 제 손으로 직접 얻었다면, 과연 무신이라는 이름이 붙을만한 무인이라 할 수 있지 않나.
그리고 인정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그가 이룩한 무는 그 끝을 논하기에 부족했기 때문이다.
목진은 제 앞으로 다가오는, 무수한 무(武)를 담은 구(球)를 향해 검을 찔러넣었다.
천천히, 그러나 느리지는 않게.
하지만 그 안에 담긴 찌르기의 수는 결코 공손혁흔의 것에 비해 부족함이 없다.
그리고 그 뒤를 뒤따르는 깨달음조차도.
구파일방(九派一幇)과 오대세가(五大世家).
사황성(邪皇城).
천마신교(天魔神敎).
새외무림(塞外武林).
과거 목진이 마주했던 무인들이 펼친 무공의 극의(極意)들이 모이고 모여 광대하고 빼곡한 숲을 이룬다.
그 검식(劍式)의 모습은 지난날 무영탑주 시그마가 펼쳤던 것을 꼭 닮았으니-.
그것의 이름은 거짓(僞) 만종(萬宗).
그렇게,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무(武)가 거대한 수해(樹海)가 되어 공을 휩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