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smic Heavenly Demon 3077 RAW novel - Chapter (33)
우주천마 3077-32화(33/349)
6. 철시귀옹 Iron Zombie Necromancer (3)
6. 철시귀옹 Iron Zombie Necromancer (3) – 순자는 기도중
검을 쥔 채로 공중에 떠오른 자신의 오른팔을 보는 감상은 형언할 수 없는 기묘한 느낌이었다. 쇼크사로 죽어도 이상하지 않을 것 같은 고통에도 불구하고 부스터로 각성한 세령의 의식은 사고를 이어갔다.
어느새 한쪽 다리를 높이 들어올리고 있는 묵혈강시의 모습이 보였다. 놈의 발뒤꿈치에 달린 예리한 칼날에는 핏방울 하나조차 묻어나지 않았다.
허공을 유영한 오른팔이 바닥에 떨어짐과 동시에 잘린 오른팔에서 뒤늦게 피분수가 솟았다. 소리 없는 비명이 뒷골목을 울렸다.
“으극!”
어느새 뒤로 돌아간 묵혈강시가 강제로 그녀의 무릎을 꿇렸다. 세령은 아득해져가는 의식과 불로 지지는 듯 화끈거리는 고통 사이에서 허우적거리느라 반항조차 할 수 없었다.
“결국 이렇게 될 운명이었거늘.”
철시귀옹은 천천히 그녀의 앞으로 걸어와 손가락을 까딱였다. 묵혈강시가 거칠게 세령의 머리채를 잡아 들어올렸다. 세령의 눈이 노인의 눈과 마주쳤다. 어마어마한 고통에 초점조차 제대로 맞지 않는 눈이었지만 여전히 그 속에는 꺼지지 않는 불꽃이 이글거리고 있었다.
하지만 그녀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묵혈강시에게 제압당하지 않았다 하더라도 팔이 잘린 검수가 무엇을 할 수 있겠는가.
“노부를 원망하지 말거라, 약한 자는 강한 자에게 잡아먹히는 것이 강호의 순리이니.”
철시귀옹이 푸르게 빛나는 손을 세령의 오른팔에 대자 서서히 피가 멎었다. 그녀가 죽지 않도록 수많은 나노머신 군체를 다뤄 응급지혈을 한 것이다. 물론, 그녀가 고마워할 리는 없었다.
“죽······여, 버릴거야······!”
“독기는 제법이다만, 그에 걸맞은 힘이 없다면 고작해야 미물의 발버둥일 뿐이지. 노부가 너 같은 소체를 한둘 다뤄본 줄 아느냐?”
철시귀옹은 무심한 눈길로 그녀를 내려다보며 입을 열었다. 그의 손에는 어느새 정체 모를 주사앰플이 들려있었다.
“안 돼······!”
바늘 끝을 피하기 위해 몸부림치는 그녀의 몸을 묵혈강시가 지긋이 눌렀다. 천천히 그녀의 목에 파고들어가는 주사앰플의 바늘. 철강시들을 앞에 두고도 투지를 잃지 않던 세령의 눈에 공포라는 감정이 떠올랐다.
철시귀옹은 담담한 얼굴로 세령의 목에 주사를 밀어넣으며 말했다.
“잠시 잠들고 일어나면 모든 것이 다 끝나 있을 게다.”
더 이상 네 의지로 네 몸을 움직일 수는 없겠지만 말이다. 노인의 말과 함께 그녀의 정신이 아득히 가라앉기 시작했다.
‘씨발.’
이대로 끝날 수는 없는데. 세령이 떠올린 생각은 그것이 마지막이었다.
“흘흘, 아주 마음에 드는 소체로구나.”
의식을 잃은 세령을 내려다보며 철시귀옹이 웃었다. 열악한 여건에서 이만큼까지 선전한 무인이라. 최상급 연산장치를 붙여 호스트 생강시로 삼으면 못해도 수백의 철강시들을 운용할 수 있는 고급품이 나오리라.
앞으로 조금만 더 모으면 대업의 완성이 코앞에 있다. 삼십년의 은둔생활을 보상받을 생각에 그의 입가가 절로 휘어졌다.
하지만 그 전에 뽑아낼 수 있는 것부터 뽑아내야겠지. 세령의 잘려진 팔을 주워든 철시귀옹은 귓가에 손을 대 대기하고 있던 수하들과 통신을 연결했다.
– 삐빅.
“그래, 노부이니라. 쥐새끼는 잘 처리했다. 지금 생체코드를 보낼 테니 배후를 캐보도록······뭐라? 다시 왔다고?”
통신으로부터 들려온 뜻밖의 소식에 철시귀옹이 눈썹을 치켜올렸다.
도시 상공을 배회하다 통신재밍을 걸자마자 빠르게 사라진 세령의 우주선. 배후를 들킬 것을 염려해 꼬리를 자른 줄 알았는데 설마 다시 돌아올 줄이야. 의외의 행동에 그가 하늘을 바라봤다. 과연, 하늘 높은 곳에 낮익은 모습의 우주선이 보이는 것도 같았다.
“흘흘, 지원군이라도 불러왔는가 보구나. 괜한 훼방 놓지 말고 항구에 정박하게 두거라. 정보를 뽑아낼 좋은 기회가 아니냐.”
어차피 열 명도 태우지 못할 소형 우주선. 절대고수라도 붙어있지 않는 한 수십의 철강시를 부리는 그의 상대가 될 수 없다. 아니, 설령 절대고수가 왔다 하더라도 그는 제 한 몸 쯤은 온전히 빼낼 자신이 있었다.
아예 주변을 초토화시키는 광역공격이라면 모를까, 이런 시가지에서 민간인의 피해를 무릅쓰고 광역공격을 할 수는 없으니 강시들로 시간을 벌고 빠져나가면 그만이니 말이다.
다른 것은 몰라도 생존에는 자신이 있다. 그 치열한 정사대전을 겪고도 살아남은 것은 운이 아니라 실력이었다.
하지만 통신을 통해 들려온 정보는, 그의 생각과는 전혀 다른 내용의 것이었다.
“······그게 무슨 소리냐. 항구로 들어오지 않는다니? 저 위에서 뭘 할 수 있다는 말······?!”
오싹. 철시귀옹은 말을 하다 말고 몸을 딱딱하게 굳혔다.
별안간 그의 몸을 휩쓸고 지나간 소름기치는 감각. 그것은 분명, 대기를 훑으며 퍼져나가는 누군가의 기감이었다.
그리고 그가 잘못 느낀 것이 아니라면, 그 기감의 근원은 저 하늘 높이 있는 우주선임이 확실했다.
“설마.”
상공 수천 미터 위에서 도시 전체를 뒤덮을 정도로 펼쳐지는 기파? 현실감이 없는 이야기였다. 기감을 펼치는 데 들어가는 막대한 내공은 둘째치더라도, 그 많은 정보량을 어찌 사람의 머리로 컨트롤한다는 말인가. 컴퓨터의 연산 보조를 받는다 해도 어림도 없는 이야기였다.
철시귀옹은 믿기지 않는 표정을 지으면서도 고개를 들어 우주선을 쳐다봤다. 줌인 기능으로 확대된 시야 속으로 보이는 우주선. 그리고 그 우주선의 뒤쪽 해치가 열리며, 한 사내가 모습을 드러냈다.
꿀꺽. 철시귀옹은 저도 모르게 마른침을 삼켰다.
그는 볼 수 있었다. 시퍼런 안광을 줄기줄기 흩뿌리며 정확히 그를 직시하고 있는 한 사내의 모습을.
‘저건 위험하다.’
강호출도 이후 팔십 년에 가까운 세월은 허투루 산 것이 아니다. 백 살에 가까운 늙은 노괴는 본능적으로 저 사내가 건드려선 안 될 위험한 존재라는 것을 직감했다.
사내가 우주선 아래로, 정확히는 자신을 향해 몸을 날렸다. 그는 여전히 철시귀옹을 향해 시선을 고정하고 있었다.
육감이 보내는 맹렬한 경고음. 그리고 그는 자신의 감을 신뢰하지 못할 만큼 어리석지 않았다. 그는 통신을 열어 딱딱한 목소리로 명령을 내렸다.
“······적(赤)등을 뿌려라. 모든 활동을 중단하고 몸을 숨기도록.”
위험을 감지한 순간, 그는 신속하게 움직였다. 철시귀옹이 손가락을 까딱이자 두 구의 묵혈강시와 다섯 구의 강화 철강시가 그의 옆에 섰다. 그리고 그 뒤를 잇는 십수 구의 철강시들. 현재 이 행성에서 그가 부릴 수 있는 강시의 전부였다.
‘저것과 마주하면 필패다.’
그가 직접 조종하는 강시가 일곱에 생강시를 통해 부릴 수 있는 강시가 총 열셋. 웬만한 문파 하나는 그대로 갈아버릴 수 있을 만큼 막강한 전력이었지만 철시귀옹은 고작 이 정도로는 저 사내를 막을 수 없음을 알았다.
‘하지만 시간벌이 정도는 충분하리.’
“요격해라. 무슨 수를 써서든 저 자를 막아.”
철강시들을 조종하는 생강시에게 명령을 내린 그는 철강시 하나의 제어권을 가져온 뒤 정신을 잃은 세령을 안아들게 했다. 강시들이 시간을 버는 사이에 몸을 피할 심산이었다. 설사 절대고수라 할지라도 그 한 몸 피할 시간 정도는 벌어줄 수 있으리라.
헛된 자존심 따위는 생존에 손톱만큼의 도움도 되지 않는다. 그는 망설이지 않고 몸을 돌렸다.
하지만 그것은 착각에 불과했다.
‘벌써?!’
마치 심장에 검을 겨누고 있는 듯한 섬뜩한 감각. 철시귀옹은 상황을 파악하기도 전에 온 힘을 다해 몸을 비틀었다.
퓩. 어깨를 꿰뚫는 한 줄기의 섬광. 그와 동시에, 수십 줄기의 섬광이 철강시들 사이에 내리꽃혔다.
“크헉!”
비명과 함께 바닥을 구르는 철시귀옹. 그런 그를 향해, 얼어붙을 것 같이 차가운 남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어딜 가려 하느냐.”
철시귀옹은 고통조차 잊고 귀신을 본 것 같은 표정으로 목소리가 들려온 쪽을 바라봤다. 그곳에는 사내, 이목진이 있었다. 절제된, 하지만 은은한 분노가 담긴 목소리로 그가 말했다.
“본존의 기감에 걸리고도 감히 도망칠 수 있으리라 생각했더냐.”
‘이 먼 거리를 도대체 어느 새에······!’
철시귀옹이 입술을 깨물었다. 무슨 수를 쓴 것인지는 몰라도, 고작 한순간에 철강시의 대부분과 세 대의 강화 철강시들을 잃었다. 문제는 이조차도 저 사내의 전력이 아니라는 점이었다.
전설 속 경지인 심검(心劍)을 마주한다면 이러할까, 피부가 따끔거릴 정도로 날카로운 살기는 철시귀옹으로 하여금 싸울 의지조차 앗아갈 정도였다.
그는 섣불리 입을 여는 대신 좀 더 확실한 방법을 택했다. 상대의 실력을 가늠하고 자시고 할 것도 없이, 곧바로 모든 강시들을 목진에게 달려들게 함과 동시에 온 힘을 다해 도주한 것이다. 적어도 지금 상황에서, 그보다 최선의 판단은 없었다.
그래봐야 얻을 수 있는 시간은 찰나에 불과했지만 말이다.
“이까짓 장난감으로 막을 수 있을 성 싶으냐?”
새카만 강기로 뒤덮인 손을 한 번 휘두르니 강시들이 모조리 찢겨나간다. 검기조차 버텨내는 강화 철강시의 막강한 방어장갑조차 형태를 이룰 정도로 압축된 강기 앞에선 종잇장과 다를 바가 없었다.
– 기이이이잉!
“헛수작을.”
철강시들이 시간을 버는 틈을 타 강화 철강시들이 코어를 폭주시켜 자폭을 시도하지만, 불길함을 느낀 목진이 강기를 두른 손으로 코어 자체를 지워버리자 불발되고 만다.
‘상상 이상이다.’
철시귀옹이 도주하며 식은땀을 흘렸다. 강하다는 것은 예상했지만 이렇게까지 차이가 날 줄이야.
그가 직접 조종하는 강화 철강시조차 무엇 하나 해보지 못하고 평등하게 찢겨나간다. 이유는 단순했다. 뭔가 펼치기라도 하며 기회를 도모하기에 지나치게 스펙이 부족한 것이다. 모르긴 몰라도 묵혈강시 정도 수준은 되어야 그나마 뭔가 해보는 시늉이라도 할 수 있으리라.
남은 철강시들이 정리되는 데 걸린 시간은 고작 오 초 남짓. 이제 남은 것은 두 구의 묵혈강시 뿐이다. 철시귀옹의 명령에 따라 두 구의 묵혈강시가 앞으로 나서며 목진의 앞을 가로막았다.
기괴할 정도로 크고 날카로운 손톱을 가진 것이 한 구, 그리고 세령의 팔을 잘라냈던, 발뒷꿈치에 단분자 커터를 단 것이 한 구.
목진은 묵혈강시들을 향해 달려들며 똑같이 강기를 휘감은 손을 휘둘렀다. 그러나 상대는 여타 다른 강시들과는 그 궤를 달리하는 특제품이었다.
콰득.
“음?”
강기를 두른 손이 묵혈강시의 손과 맞닿아 처음으로 멈추자 목진의 눈가가 꿈틀 움직였다. 처음으로 자신의 공격에 반응하기도 했거니와, 기계 주제에 알 수 없는 능력으로 강기를 막아낸 것이다.
목진의 강기를 막아낸 것은 막대한 출력의 코어로 생성해낸 에너지 실드였다. 강력한 출력을 통해 압축된 에너지 실드는 강기조차도 막을 수 있으니까. 애초에 고수들을 상대하는 것을 상정하고 제작된 묵혈강시에게는 필수적인 기능이기도 했다.
‘통했다!’
철시귀옹은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그 틈을 놓치지 않고 또 다른 묵혈강시의 쾌속한 발 공격이 목진의 목을 향해 쇄도한다. 그 끝에 달린 것은 고수들의 호신강기조차 베어낼 수 있는 단분자 커터. 그는 이번에야말로 목진에게 일격을 먹일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다.
허나 그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천마 이목진이라는 남자의 강함과 빠름이, 그의 상상의 범주를 넘어서고 있다는 것을 말이다.
“막은 건 의외다만.”
목진의 말과 함께 그의 목 앞에서 묵혈강시의 발이 멈춘다. 어느새, 묵혈강시의 발목은 마치 처음부터 그랬다는 듯이 목진의 오른손에 막혀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있었다.
묵혈강시가 아무리 빠르다 한들 찰나의 시간을 지배하는 목진의 빠름에 비할까. 묵혈강시의 발을 단단히 잡은 목진이 이번엔 그의 강기를 막은 묵혈강시를 보며 말을 이었다.
“힘을 더 주면 그만이다.”
까득까득 소름끼치는 소리와 함께 목진의 강기가 에너지 실드를 파고들기 시작한다. 강기의 밀도가 높아져서 생기는 것과는 다른 현상. 그것이 단순히 공업용 프레스를 연상시키는 무지막지한 힘으로 인해 생기는 현상이라는 것을 깨달은 철시귀옹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콰창! 본격적으로 힘을 준 지 삼 초도 지나지 않아 금속이 깨지는 듯한 소리와 함께 에너지 실드가 부서진다. 그와 동시에 목진의 손이 묵혈강시의 손을 잡아뜯고, 또 다른 손으로는 묵혈강시의 다리를 박살낸다.
무언가 발악해 볼 틈도 없이 무자비하게 두 강시를 유린하는 목진의 손. 일수에 머리와 몸통이 완파된 두 묵혈강시가 번 시간은 고작해야 십여 초에 불과했다.
목진은 건물들 사이를 넘나들며 자신으로부터 멀어지고 있는 철시귀옹을 보았다. 목진이 그를 향해 손을 뻗자 소매에서 검은 빛줄기가 섬광처럼 뻗어나갔다.
“제기랄.”
이번엔 피할 수 없었다. 심장을 꿰뚫은 검은 번개의 실을 내려다본 철시귀옹이 나직히 욕설을 내뱉었다.
그것으로 끝이었다.
뱀과 같이 그의 전신을 휘감은 검은 번개가 그의 육체를 조각내고, 골목에 침묵이 내려앉았다.
이제 장내에 남아있는 것은 오로지 목진과 강시의 잔해들 뿐. 목진은 바닥에 쓰러진 세령을 향해 다가갔다.
“······흠?”
세령에게 다가가던 목진의 발걸음이 덜컥 멈췄다. 그가 아는 세령의 기운이 느껴지지 않았다.
목진이 손을 뻗어 그녀를 잡으려 하자 세령의 모습이 허깨비처럼 사라졌다. 그 자리에 남은 것은 작은 홀로그램 장치와 불길한 붉은빛을 내뿜는 쇠로 된 공. 목진이 그것을 미처 처리하기 전에, 한발 앞서 새빨간 섬광이 터져나왔다.
콰아아앙!
작디작은 구체에서 뿜어졌다기엔 상상도 할 수 없는 거대한 폭발. 마치 과거 목진이 살던 시대의 벽력탄을 연상시키는 폭발이었다.
고작 그 정도로는 목진의 호신강기(護身罡氣)를 뚫을 수 없다. 하지만 잠시동안 그의 시야를 가린다는 목적은 충분히 달성했다. 목진은 일그러진 얼굴로 상처 하나 없이 화염 속에서 걸어나왔다.
어디선가 사이렌 소리가 들려왔다. 목진은 개의치 않고 다시 기감을 퍼트렸다. 저 먼 곳에서 세령의 기운과 함께 뭔가 낯익은 기운이 느껴졌다. 분명 조금 전 죽었음이 분명한, 철시귀옹의 기운이었다.
조금 전 목진의 손에 죽은 쪽은 대외활동을 위한 더미이고 지금 느껴지는 쪽이 본체였지만, 그로서는 알 길이 없었다.
다만 목진은 또 신기한 미래기술이겠거니 하고 넘어갈 뿐이었다. 그가 살던 과거의 시대에도 제 죽음을 숨기는 수법은 적지 않았으니까.
“잔재주를.”
목진은 곧바로 기운이 느껴지는 쪽을 향해 몸을 날렸다.
그가 도착한 곳은 그리 멀리 떨어지지 않은 우주선 정거장. 정거장에 막 도착한 목진의 앞에 웬 철강시 하나가 불쑥 몸을 들이댔다. 막 손을 들어 철강시를 부수려던 목진의 손이 덜컥 멈췄다.
“······다 죽어가는 이를 두고 인질이라니. 부끄러운 줄 알거라.”
철강시의 손에 들린 것은 오른팔이 잘리고 목에 주사앰플이 박힌 채 의식을 잃고 있는 세령이었다. 이번엔 가짜가 아니라 진짜였다. 그녀의 목에 손톱을 들이댄 철강시의 입을 통해 철시귀옹이 말했다.
– 거래를 제안하오.
인질인가. 목진은 들었던 손을 거둬들이고 가만히 철강시를 노려보았다. 목진이 대화를 들으려는 기색을 보이자 철시귀옹은 재빨리 말을 이었다.
– 이 아이를 돌려주겠소. 아직 죽지 않았으니 데려가면 어렵지 않게 살릴 수 있을 것이오.
“······.”
– 단 내가 이 행성을 떠날 때까지 잠시 기다려 주셔야겠소. 그것이 조건이외다.
철시귀옹은 고작 소체 하나를 위해 목숨 걸고 도박을 걸 생각 따위는 없었다. 때문에 마지막 수단으로 세령의 목숨을 조건으로 거래를 제안한 것이다.
이 행성을 벗어나기만 한다면 저 괴물같은 정체불명의 고수의 손아귀에서 도망칠 수 있으리라. 목숨이 가장 중요한 그로서는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이윽고, 잠시 입을 다물고 있던 목진이 말했다.
“내 말하지 않았던가.”
그는 철강시, 아니 그 너머의 철시귀옹을 보았다. 그의 목소리는 여전히, 진득한 살기로 점철되어 있었다.
“너는 이곳에서 죽을 것이라고.”
그 말과 함께 세령의 목을 위협하던 철강시의 머리통과 손이 사라졌다. 철강시가 채 인식조차 하지 못할 정도의 쾌속한 연격이었다.
고수의 앞에서 인질극이라니 아무리 시간벌이가 필요해도 멍청하기 그지없는 짓이다. 목진은 쓰러지는 철강시로부터 세령을 안아들었다.
“······음.”
척 봐도 상태가 좋지 않다. 세령의 상태를 본 목진이 인상을 찌푸렸다. 잘려나간 오른팔에서는 응급처치를 했음에도 여전히 울컥거리며 피가 뿜어져나오고 있었고, 무슨 약을 주입했는지 두 눈에 초점이 없이 의식을 잃고 있었다. 목진은 재빨리 혈도를 짚어 잘린 팔에서 흐르는 피를 멈추었다.
당장이라도 죽을 듯 창백한 얼굴. 사람을 죽이는 법은 누구보다 잘 알아도 살리는 법을 알지 못하는 목진으로서는 조금이라도 빨리 그녀를 의원에게 데려가는 것이 최선이었다.
그 악독한 마두가 설마 이것까지 계산하고 있었을까. 눈으로 내공을 끌어올려 안력을 돋우니 저 멀리 활주로 저편을 가로지르는 철시귀옹의 모습이 보였다. 순자가 있는 우주선은 저 반대편이었다. 치졸하기 그지없는 술수에 목진이 미간을 좁혔다.
“그리 수치스러움을 안고도 살고 싶더냐.”
목진은 세령의 잘린 오른팔이 쥐고 있는 부러진 초진동 블레이드를 들어 그 끝을 뾰족하게 부러트린 뒤, 저 멀리 철시귀옹을 향해 던지고 미련 없이 순자가 있는 우주선을 향해 몸을 날렸다.
“뭣?!”
자신의 우주선을 향해 달리던 철시귀옹이 등 뒤에서 날아오는 검을 보고 대경하며 몸을 비틀었다. 정체불명의 절대고수가 펼치는 마지막 한 수답게 대단히 빠르고 위협적인 투검(投劍)이었다. 아슬아슬하게 몸을 비껴나가는 검을 본 철시귀옹의 얼굴에 안도가 깃들었다.
하지만, 그것은 섣부른 오판이었다.
“크헉!”
갑자기 방향을 바꾸며 물리법칙을 거스르는 움직임으로 그의 심장을 꿰뚫은 검. 철시귀옹의 몸이 우주선을 눈앞에 두고 풀썩 쓰러졌다. 그의 눈에 불신의 감정이 떠올랐다.
‘이기어검술······?’
말도 안 돼. 그 생각을 마지막으로, 철시귀옹의 의식은 끝없는 무저갱 속으로 가라앉았다.
나노머신 독공은 응급처치 용도로 뛰어난 외상 치료술이기도 하다.
철시귀옹이 세령에게 주사한 앰플은 마약성 진정제와 항정신성 약물 등이 조합된 약물로 정신에 해롭다.
호스트 생강시는 소체에 따라 최소 10여 구부터 많게는 수백여 구의 강시들을 조종할 수 있다. 보통 동남동녀라면 더 효율이 좋다.
철시귀옹은 정사대전 이후 사혈곡의 비호 아래에서 삼십년간 은둔하며 힘을 길렀다.
단분자 커터가 달린 각법을 무기로 쓰는 묵혈강시의 이름은 멜라니, 손톱을 무기로 쓰는 묵혈강시의 이름은 밀시아다.
묵혈강시의 코어를 오버클럭 시키면 순간적으로 강기를 막을 수 있을 만큼 고밀도의 에너지 실드를 생성 가능하다. 물론, 목진과 같이 더 강한 힘으로 실드 자체를 파괴하거나 더 높은 밀도의 강기로 뚫을 수 있다.
고수에게 인질극 따위는 통하지 않는다.
순자는 재밍으로 인해 제대로 상황도 파악하지 못하고 발만 동동 구르며 세령의 무사를 위해 기도하고 있다.
목진의 마지막 일격은 이기어검술 중 눈으로 보이는 곳 어디든 검을 움직일 수 있는 목어검의 수법이다.
철시귀옹은 심장이 파괴되어 죽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