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smic Heavenly Demon 3077 RAW novel - Chapter (330)
우주천마 3077 우주천마-331화(331/349)
49. 격멸예고 Death Match Count (2) – 사파답게
완벽(完璧).
흠이 없는 구슬에서 기원하는 단어다.
그리고 그것이야말로 무신 공손혁흔이 추구하는 무(武)의 궁극이었다.
– 무의 궁극은 즉 완벽으로 귀결된다.
부족한 곳 따윈 존재하지 않는, 그 어느 곳도 흠잡을 수 없는 완전무결함. 오랜 경험과 수련, 그리고 사유의 끝에서 그가 내놓은 답이었다.
하여, 구(球)였다.
가장 작은 소립자부터 거대한 태양, 나아가 우리가 살아가는 우주까지 그 모든 것들이 따르고 있는 가장 원초적이고 완벽한 형태.
그렇다면 그 구는 어떻게 만들어낼 것인가? 과거의 공손혁흔은 스스로에게 자문했다. 검으로는 원을 그릴 수 있을지언정 구를 만들어낼 수는 없지 않나.
또다시 깊고 오랜 사유를 이어간 끝에 그는 다시 답을 내었다.
– 무한한 원을 쌓아 구를 만든다.
그 무엇도 베어내는 그의 칼끝이 지나가는 궤적으로 원을 그리고, 그것을 무한히 쌓고 또 쌓으면 그것이 곧 구가 되지 않겠는가.
기본적인 적분의 원리였다.
당연히 그러한 공상 속 이론을 무공으로 승화시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한낱 필부에게는 말이다.
그는 공손혁흔이었고, 그의 별호는 무의 신이었다. 그리고 그에겐 그런 광오한 별호가 붙을만할 자격이 있었다.
그의 나이가 백에 달하기 전 즈음에, 그는 그가 추구하던 완벽한 구를 만들어냈다.
허나 그것으론 부족했다. 그가 완벽(完璧)이라 이름붙인 그것은 분명 아득하니 높은 경지의 절세신공이었으나, 결코 무의 궁극은 아니었다.
공손혁흔은 깨달았다.
그의 도(刀)가 만들어낸 완벽의 형태는 분명 부족함이 없었으나, 그 속은 텅 비어있다는 것을.
그리고 확신했다.
이것을 채우는 것이야말로, 그가 갈구해 마지않는 무의 끝에 도달하기 위한 해답이라고.
– 그래. 무의 궁극에 다다르려면······응당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무의 형태를 먼저 깨달아야 하는 것이 이치에 맞겠지.
그러한 결론을 내린 공손혁흔은 망설임 없이 칼 한 자루만을 든 채 우주 전역을 유랑했다. 오직 이 우주에 존재하는 모든 무공을 정복하기 위해. 그리고 그의 완벽을 완성시키기 위해.
세상 모든 무공을 정복하다니, 허무맹랑하기 그지없는 이야기가 아닐 수 없었다. 적어도 상식적으로는.
하지만 궁극(窮極)에 닿고자 하는 이에게 상식의 틀이 무슨 소용일까. 그는 무의 끝에 달하고자 했기에 그러한 허무맹랑함조차도 기꺼이 받아들였다.
그가 만난 무수한 무인들은 그들이 평생을 갈고닦은 무공을 펼쳤다. 그리고 공손혁흔은 그 정수들을 모조리 이해하여 자신의 것으로 만들었다. 그가 타고난 관안(貫眼)과 지고의 경지에 오른 무공의 성취가 그것을 가능케 했다.
그렇게 그는 텅 비어있던 완벽과 그것을 이루는 무한한 휘두름 하나하나에 그가 마주하고 이해한 무의 깨달음을 담아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오랜 시간이 흘렀다.
십 년, 이십 년, 그리고 오십 년.
그 기나긴 세월의 무게 속에서 그의 초심은 무뎌지고 변색되었다. 앞선 세 개의 천년기 속 그와 같은 길을 걸었던 오래고 위대한 선배들이 예외 없이 그러했듯이.
언제부터인가 그의 입에서는 한탄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 내 남은 일평생을 모두 바친다 한들 이 반의 반의 반이라도 채울 수 있겠는가.
수십 년의 세월 동안 한 시도 쉬지 않고 온 우주의 무공을 탐구했건만, 그럼에도 구를 이루고 있는 수없이 많은 원 중에서 채워진 것은 극히 적은 일부일 뿐. 그에게 백 년의 시간이, 아니 설령 천 년의 시간이 더 주어진다고 한들 이 이 완벽을 모두 채우기는 요원해 보였다.
그리고 그 즈음에, 그는 불현듯 깨달았다.
– 이건······처음부터 내게 허락된 길이 아니었군.
이 길을 따라 무의 끝에 닿는 것은, 처음부터 그에게 허락된 역할이 아니었다는 것을.
애초에 이 텅 빈 구를 채우는 방법은 하나밖에 없었다.
대를 이어가는 축적.
후대에게 그가 얻은 모든 깨달음을 전하고 그 후대의 후대에게 그것이 이어지도록 한다면, 언젠가는 이 완벽의 공백을 모두 채울 수 있으리라.
그것을 깨달은 공손혁흔의 입에 텅 빈 미소가 걸렸다.
– 이것이, 겨우 이것이 나 공손혁흔에게 주어진 역할이었단 말이냐······.
무의 끝을 보고자 했거늘, 고작 주춧돌이 그의 역할이라고?
지독한 허탈감이, 그리고 배신감이 그를 엄습했다.
그러나 그럼에도 그는 멈출 수 없었다. 이제와서 그걸 깨닫는들 그가 무엇을 할 수 있다는 말인가?
무신 공손혁흔의 세상에서 다른 길 따위는 더 이상 존재치 않았다. 그는 이미 너무 멀리 와 있었다.
– ······.
절망 속에 초심을 묻은 그는 그저 관성적으로 끝이 보이지 않는 외길을 영원히 걸어나갔다.
아니, 걸어나갈 터였다.
‘그것’과 마주하기 전까지는.
공교롭게, 혹은 필연적으로 마주한 그것을 일컫는 말은 여럿이었다.
악신(惡神). 이면차원의 괴이(怪異). 혹은 혈교(血敎).
그러나 사물의 본질을 꿰뚫어보는 영혼의 눈, 관안을 타고난 그는 다른 명칭으로 그것을 정의했다.
죄마(罪魔).
온 우주의 지성체가 품은 과거의, 현재의, 그리고 미래의 죄로부터 비롯된 다섯 번째 마(魔)의 이름.
그것은 하찮은 육도의 중생이면서도 그 자신의 본질을 똑바로 관측하는 공손혁흔에게 흥미로움을 느끼며 제안했다.
– 내 일부가 되어라. 하면 네게 다른 중생들과는 다른 특별한 자리를 약속하노라. 그리하면 네 죄는 기꺼이 사함받으리라.
공손혁흔은 고개를 저었다.
– 그것은 내가 원하는 것이 아니오.
죄마가 물었다.
– 무엇을 원하느냐.
그가 답했다.
– 이 우주에 존재했고, 존재하고, 그리고 존재할 모든 무(武).
죄마는 잠시 그의 답을 헤아렸다. 그리고 그가 가장 바래마지않던 답을 내놓았다.
– 너는 마땅히 그것을 얻을지어다.
그 말에 공손혁흔이 웃음을 터트렸다.
– 좋소. 이대로 내게 주어진 주춧돌이라는 역할을 따르는 것이 순리라면, 나는 기꺼이 그 순리를 벗어나리라.
순리를 따르는 것은 정도(正道)요, 순리를 벗어나는 것은 사도(邪道)일지니, 처음 무를 꿈꾸었을 때부터 그의 답은 정해져 있었음이라.
그의 이름은 공손혁흔.
사파의 절대고수다.
무신 공손혁흔은 보았다.
아마도 참룡검제의 시대를 풍미했을 무수한 무공의 정수들이 목진의 검 끝에서 쏟아져 나오는 것을.
그 절대적인 숫자만큼은 그의 완벽에 비할 바가 되지 못한다. 아무렴 이백여 년의 세월과 오십년도 채 되지 않는 세월이 겪은 무공의 수를 비할 수 있으랴.
허나, 그 깨달음의 깊이는 감히 그의 완벽이 견주어볼 수준이 아니었다.
마치 수백 수천 년을 묵은 단단한 고목과 같은 무(武).
그에 비하면 그의 휘두름이 품은 무는 얇고 낭창거리는 들풀에 불과했다.
그의 완벽이 수많은 들풀로 뒤덮인 끝없는 들판이라면, 목진의 거짓 만종은 빽빽한 거목으로 이루어진 울창하고 광대한 삼림이라 해야 할까.
수십 수백의 들풀이 스러져야 겨우 고목 하나가 꺾인다. 그러니 들풀이 아무리 많다 한들 고목의 바다를 감당할 수 있을 리가 없다.
끝이 없을 것만 같던 들판이 울창한 숲에 잡아먹히고, 거짓 만종이 완벽을 뒤덮는다.
‘아아······.’
눈앞에서 그것을 마주한 공손혁흔은 알 수 있었다.
저 무의 수해(樹海)야말로, 그가 그토록 도달하고자 갈망하던 목적지였다는 것을.
그렇기에 그는 더없이 환희했다.
‘나는, 결국 옳았구나.’
저 아득한 나무의 바다가 생사지경이라는 전대미문의 경지에 도달한 자의 무라면.
그리고 그 너머가 무의 끝이라면.
그렇다면 그걸로 충분했으니까.
그것은 그에게 무의 궁극이 약속되었다는 명백한 증거였다.
‘나는 틀리지 않았다. 단지 부족했을 뿐.’
거짓 만종에 휩쓸리며, 무신은 비로소 거짓된 답을 얻었다.
단 한 합.
똑같이 절대고수로 불리는 이들조차 감히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없는 아득한 두 고수의 승부를 결정?는 데에는 고작 한 번의 공방이면 충분했다.
전신에 빼곡한 검흔(劍痕)이 새겨진 공손혁흔의 손에 쥔 검이 가루가 되어 흩날렸다.
그는 우두커니 선 채로 입을 열었다.
“······목숨을 거두지 않는군.”
목진은 검을 거두지 않은 채 물었다.
“이것으로 끝이라 생각했더냐.”
“하면? 원하던 대로 선배의 무공을 견식하였는데 더 미련을 가질 것이 무엇이겠소.”
“나의?”
목진의 고개가 천천히 옆으로 기울어졌다.
“무슨 말인지 모르겠구나.”
지독히도 무심한 그의 눈이 피투성이의 공손혁흔을 응시했다.
“나는 네게 나의 무를 내보인 적이 없거늘.”
“······그게 무슨 말씀이시오.”
잠시의 공백 뒤, 딱딱히 굳은 목소리가 공손혁흔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그는 목진을 향해 다그치듯 물었다.
“방금 나의 완벽을 파훼한 무공을 보여주시지 않았소? 지금 그것이 선배가 생사지경에 들면서 얻은 깨달음이 아니라고 말하는 것이오?”
목진이 말했다.
“그러게, 내 말하지 않았더냐.”
너는 이해할 수 없을 것이라고.
목진은 혼란스러움을 감추지 못하는 공손혁흔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그것은 내게 너와 같은 질문을 하였던 이의 무공이다.”
“무-.”
그 말의 의미를 깨달은 공손혁흔의 얼굴이 형언할 수 없을 정도로 무참히 일그러졌다.
‘그 압도적인 무의 수해가······생사경의 무공이 아니었다고?’
그렇다면 조금 전 자신은, 생사경조차 들지 못한 누군가의 무공을 보며 어리석게도 멋대로 착각하고 기뻐했다는 말인가.
그 사실을 깨닫자, 전신에서 느껴지는 고통조차 잠시 잊게 만들 격한 구토감이 그의 폐부를 휘저었다.
“웩-.”
지독한 주화입마라는 것을 알 수 있을 정도로 검게 죽은 피가 바닥에 흩뿌려진다.
목진은 그런 공손혁흔을 바라보며 천천히 말을 이었다.
“네 무공이 천하를 논하기에 부족함이 없음은 인정하마. 모르긴 몰라도 이 시대의 무인들 중 너와 맞수를 이룰 수 있는 이는 손꼽을 정도로 적을 테지. ······허나 그뿐이다.”
연신 죽은 피를 게워내는 공손혁흔의 귓가에 목진의 목소리가 깊이 틀어박혔다.
조롱하는 것도, 그렇다고 한심히 여기는 것도 아니다. 그는 다만 감정 없이 진실만을 말하고 있었다.
그가 말했다.
“너의 무(武)는 그 종점을 논할 자격이 없느니라.”
섬뜩하리만치 담담한 목소리였다.
어느 시대이던지간에 천하를 논하는 이들은 존재하기 마련. 그러나 그것이 반드시 무의 끝을 논할 자격인 것은 아니라는 의미였다.
“-.”
털썩. 소리 없는 절규와 함께 공손혁흔이 힘없이 무릎을 꿇었다. 지금까지 쌓아온 무인으로서의 정체성이 일언지하에 부정당한 그는 더 이상 몸을 가눌 여유는커녕 오롯이 정신을 붙잡고 있기도 어려울 정도였다.
그러나 목진은 심마에 물들어가는 그를 내려다보며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애초에, 그가 공손혁흔을 살려둔 이유는 고작 그의 정신을 부수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고개를 들어라.”
목진이 감정 하나 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숫제 명령과도 같은 목소리였다.
“······.”
그 목소리에 반응한 공손혁흔이 고개를 들었다. 흐리멍텅한 그의 눈동자에서는 더이상 이지(理智)를 찾아볼 수 없었다.
그러나 그것은 중요치 않았다.
요는 그의 목숨이 붙어있기만 하면 충분했으니까.
목진이 용건을 가지고 있는 것은 공손혁흔이 아닌, 그 너머다.
그는 천천히 눈을 감았다.
그리고 또다른 눈을 떴다.
마음의 눈, 심안(心眼).
거대하게 확장된 인지의 시야 속에서 목진은 공손혁흔을 보았다.
한때 무신이라 불리었던 무인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 대신, 더없이 흉측하고 혐오스러운 무언가가 대신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그것은 인간성의 거죽을 뒤집어쓴 검은 그림자의 가닥이었다.
‘지난번에 본 것과는 다르구나.’
무영탑에서 보았던 광경은 혈교에 오염된 오염체의 전신에 무수한 그림자의 실들이 얽혀있는 모습이었다.
그러나 공손혁흔은 달랐다.
그림자의 실과는 비교조차 할 수 없는, 거대한 촉수와 같은 가닥이 그의 모습을 흉내내고 있는 모습.
아마, 심마에 정신이 잡아먹힌 탓에 그들이 말하는 합일이 가속화되었을 따름이리라.
목진은 그 꿈틀대는 가닥이 뻗어온 곳을 향해 시야를 돌렸다.
그리고, 마침내 보았다.
세상 모든 죄업을 품은 다섯 번째 마(魔)를.
가늠하는 것이 무의미할 정도로 광대한 별들의 바다 속 지성체들을 향해, 깊고 깊은 이면차원의 틈새로부터 무한의 가닥을 뻗고 있는 죄의 군체를.
목진은 그것의 이름을 떠올렸다.
“너는 죄마(罪魔)로구나.”
그것의 중심에서 불길한 핏빛이 천천히 명멸했다.
그가 그것을 보듯, 죄마 또한 그를 보고 있었다.
소통은 필요치 않다. 본디 소통이란 서로를 이해하기 위한 것이 아니던가. 목진은 저 흉험한 것을 이해할 이유가 없었다.
목진은 그것이 그가 구축해야 할 숙적임을 재차 확신했고, 그것은 목진이 자신을 구축하고자 하는 것을 깨달았다.
목진이 입을 열었다.
“내가 지난번에 경고하지 않았더냐.”
목진은 그의 심상에 깃든 검을 꺼냈다. 베고자 하는 것은 그 어떤 것이든 벨 수 있는 마음의 검이 그의 손에 잡혔다.
그는 그 검을 들어 죄마를 향해 겨누었다.
“현세로 나오지 말고 그곳에 영원히 처박혀 있으라고 말이다.”
죄마는 대답하지 않았다.
다만 그 대신, 목진의 의지에 곤혹스러움이 담긴 파동을 발할 뿐이었다.
오-오-오-.
불길한 핏빛이 광채를 발하자 죄마를 이루는 무수한 그림자의 가닥이 꿈틀거렸다. 셀 수 없이 많은 가닥들이 목진을 향해 뻗어오기 시작했다.
목진은 이면차원으로부터 뻗어지는 가닥들을 보았다. 그것들로부터는 아무런 적의도 느껴지지 않았다. 여전히 그를 조금 특출난 개미로 보고 있다는 방증이었다.
목진은 소리 없는 헛웃음을 흘렸다. 끝까지 오만하기 그지없는 존재가 아닐 수 없었다.
어디, 과연 그 오만함을 끝까지 고수할 수 있는지 보자꾸나.
목진은 검을 뻗었다.
심검(心劍)이 죄(罪)들을 꿰뚫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