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smic Heavenly Demon 3077 RAW novel - Chapter (335)
우주천마 3077 우주천마-336화(336/349)
49. 격멸예고 Death Match Count (7)
49. 격멸예고 Death Match Count (7) – 너 혹시 약빨았니?
아테나는 생각했다.
‘이상해.’
남자의 추레한 모습 때문은 아니었다.
아니, 오히려 반대였다. 최종침식단계까지 진행된 구역에서 살아남은 생존자라면 더욱 상태가 나빠 보여야 정상이었으니까.
하지만 남자는 깡마르고 초췌해 보일지언정, 차림새는 깔끔했고 몸에 상처나 기형적인 변이 따위도 보이지 않았다.
혈교에 잠식된 공간에서 만난 존재라기에는 기이하리만치 멀쩡한 모습.
아테나는 사내를 바라보며 긴장을 풀지 않은 채 말했다.
“당신은······생존자인가?”
“생존자라, 그렇다고 해 두죠.”
묘한 대답이다. 아테나의 눈가가 꿈틀 움직였다.
“무슨 의미지? 그리고 나는 어떻게 알고 있지?”
“목숨을 오래 붙들고 있기 어려우니 생존자라고 하기엔 조금 무리가 있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당신을 어떻게 알고 있느냐면······크윽?!”
말을 이어가던 남자가 갑자기 고통스러운 신음소리와 함께 자신의 머리를 부여잡았다.
“이봐?! 괜찮나?!”
“가까이 다가가지 마십쇼. 집행관님.”
갑자기 이상행동을 보이는 남자의 모습에 아테나가 앞으로 나서려 하자 현마가 그녀의 앞을 가로막았다.
그의 목소리는 차갑게 가라앉아 있었다.
저건 위험하다. 5단계의 유전형질 발현으로 동물과 다르지 않을 정도로 예민해진 그의 생존본능이 경고하고 있었다.
“크으, 으, 끄으으······!”
고통스럽게 신음하던 그의 눈이 잠시 일행과 마주쳤다.
그리고 그들은 볼 수 있었다. 피처럼 붉게 물든 남자의 눈동자를.
“오염체 확인!”
‘이런.’
아테나의 얼굴에 낭패감이 서렸다. 설마, 정말로 생존자의 모습을 흉내낸 채 함정을 파고 기다리고 있었을 줄이야.
“내가 처리한다!”
남자가 신음을 흘릴 때부터 경계를 최고조로 끌어올리고 있던 현마는 곧바로 앞으로 달려나갔다. 그리고 그 순간-.
“잠깐······!”
필사적인 목소리와 함께, 남자가 손을 뻗어 그를 제지했다.
“······!”
혈교의 발악일까, 아니면 일말의 이성이라도 남아있는 걸까. 그 목소리에 담긴 필사적인 감정에 현마가 저도 모르게 멈칫했을 때, 빠르게 상황을 파악한 아테나가 곧바로 외쳤다.
“멈춰! 잠시 대기! 이대로 상태를 봅니다!”
이 혐오스럽게 변한 혈교 오염지대에서 지금까지 버텨온 사람이다. 만에 하나라도 제정신을 차릴 가능성이 있다면 어느 정도 도박을 걸어볼 만한 가치가 있었다.
‘어차피 일반인이니 무림인의 상대는 안 돼.’
아테나는 냉정하게 상황을 계산했다.
혈교의 오염이 무서운 건 저도 모르는 사이에 사람의 정신을 오염시키기 때문이지, 딱히 호러 게임이나 영화마냥 강력한 괴물로 변이시킨다거나 하는 건 아니다. 그러니 그가 아무리 혈교에 오염된다고 해도 무림고수인 그녀의 호위들을 뚫을 수는 없었다.
지금까지 최종침식단계에 들어간 구역 내에서 버텨왔으니 뭔가 숨겨둔 한 수가 있을 터. 아테나는 날카로운 눈으로 남자를 주시했다.
그리고 그녀의 생각대로, 남자는 고통스런 신음을 흘리며 품속에서 무언가를 꺼내 들었다.
‘주사팩?’
남자가 꺼내든 것은 몸에 꽂으면 자동으로 약물을 주입하는 즉발성 주사팩이었다. 그는 덜덜 떨리는 손으로 망설임 없이 주사팩을 자신의 목에 꽂았다.
푸슉 하고 압축된 공기가 빠져나가는 소리와 함께 주사가 주입되자 남자의 몸이 덜컥 멎었다.
시간이라도 멈춘 듯 부릅떠진 남자의 눈. 그 눈동자 속에서 붉은 핏기가 서서히 밀려나며 원래의 흰자위로 돌아오고 있었다.
“후······우우우······!”
무언가 해방감이 느껴지는 듯 긴 날숨. 굳은 얼굴로 그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던 현마가 중얼거렸다.
“사이케델릭 미러?”
사파의 고수인 심정웅묘 강현마는 단순한 은행털이범일 뿐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가 발을 담그고 있는 뒷세계 일에 무지한 것은 아니다. 그는 몇 가지 작은 특징만으로 남자가 스스로에게 무엇을 주사한 건지 알아챌 수 있었다.
“그게 뭐죠?”
“······마약입니다. 거울 속 자신을 보는 것처럼 인격을 분리시키는 효과를 내는 강력한 마약이죠. 그냥 비유적으로 하는 말이 아니라, 진짜로 골수를 갉아먹는 지독한 놈이라고 들었습니다.”
현마는 살짝 몽롱한 초점으로 바닥을 내려다보는 남자를 바라보며 말했다.
“집행관님, 이런 상황에서까지 마약을 할 정도면 완전히 맛이 갔다는 소립니다. 저건 정상적인 대화를 할 수 있는 상대가 아니에요.”
비싼 정제비용 때문에 뒷골목에 돌지 않을 뿐, 효과만 따지면 흑도 마약굴에서도 아주 밑바닥까지 떨어진 인생막장 놈들이나 쓸 법한 독한 마약이다. 그런 마약을 저렇게 무분별하게 사용할 정도면 이미 뇌가 녹아버린 것이나 다름없다는 뜻이었다.
그런 현마의 말에, 누군가가 대답했다.
“-맞는 말입니다. 지독한 마약이죠.”
남자였다.
혈교 특유의 핏빛 기운이 가신 눈으로, 남자는 느릿하게 아테나와 일행들을 돌아보며 말을 이었다.
“하지만 이놈이 아니면 저 빌어먹을 혈교의 오염에서 버틸 수 없거든요.”
혈교의 오염에서 버틸 수 있다? 남자의 말에 아테나가 눈을 빛냈다.
“지금 그 말은······그 마약으로 혈교의 오염을 막을 수 있다는 뜻인가?”
“아뇨. 보통은 불가능합니다.”
남자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제가 예외 케이스인 거죠.”
이래 봬도 실험국에서 손꼽히는 천재거든요. 그는 자조적인 미소를 머금으며 말을 이었다.
“그나마 저니까 마약의 힘이라도 빌어서 어떻게든 정신이 장악되는 걸 피하고 있는 겁니다.”
아테나가 물었다.
“너는 누구지?”
남자가 대답했다.
“고등국방연구실험국 알파 섹터 수석연구원, 위어 박사입니다.”
그렇게 말한 남자, 위어 박사는 식은땀으로 흥건히 젖은 이마를 쓸어넘기며 자신의 등 뒤에 있는 연구실을 향해 고갯짓을 했다.
“후우, 나름 여유가 있을 거라고 계산했는데 부끄러운 꼴을 보였군요. 일단 제 연구실 안으로 들어오시겠습니까?”
“······당신이 혈교의 오염체라는 걸 알고도 들어가라고?”
“제가 오염체라는 건 부정하지 않겠습니다만, 제 의식만큼은 아직 혈교에 침식되지 않았습니다.”
“그걸 어떻게 증명하지? 혈교에 오염된 오염체들은 자신이 오염되었다는 사실조차 자각하지 못한다는 건 알고 있을 텐데.”
“증명할 방법은 없습니다. ······하지만 그래도 따라와 주시죠. 이곳은 보는 눈이 많습니다.”
보는 눈이 많다? 위어 박사의 의미심장한 말에 아테나가 미간을 좁혔다.
주변을 뒤덮고 있는 불쾌하기 그지없는 피와 육괴들. 혈교의 일부인 그것들을 두고 암시한 것이다.
하지만 선뜻 그의 제안을 따라 연구실 안으로 들어갈 수는 없었다.
상대에게 대화를 하고자 하는 의지가 있다는 건 알겠다. 그리고 그녀에겐 조금이라도 더 많은 정보가 필요했다. 하지만 과연, 혈교의 오염체를 따라갈 만큼의 리스크를 감수할 필요가 있을까?
“함정입니다, 집행관님. 따라가지 마시죠.”
고민하는 그녀의 모습에 현마가 낮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가을과 자매들 또한 그런 현마의 말에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호위들의 부정적인 반응. 그에 아테나는 위어 박사를 보며 물었다.
“위어 박사, 당신이 제공할 수 있는 정보는?”
잠시 주변을 흘긋거린 그가 대답했다.
“기원, 그리고 길입니다.”
저게 대체 뭔 개소리야? 수수께끼 같은 위어 박사의 말에 호위들이 인상을 와락 찡그렸다.
그러나 아테나는 미간을 좁힌 채 잠시 생각하더니, 번쩍 고개를 들며 말했다
“······좋아. 당신을 따라가겠어.”
“집행관님?!”
가을이 기겁하며 아테나를 돌아봤다. 그러나 결정을 내린 아테나의 표정은 단호했다.
“그가 말한 것이야말로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정보입니다. 위어 박사의 연구실로 진입하겠어요.”
기원이란 혈교의 정체. 그리고 길이란 인류가 앞으로 혈교에 대비해 나아가야 할 방향. 그녀는 위어 박사의 수수께끼같은 은유를 정확히 해석했다.
비록 혈교에 오염된 위어 박사를 전적으로 신뢰할 수는 없지만, 그런 정보라고 해도 리스크를 감수하고 얻을 필요가 있다. 아테나는 아직도 주저하고 있는 호위들을 뒤로하고 앞으로 성큼 걸어 위어 박사의 연구실 안으로 들어갔다.
들어가자마자 날카로운 눈으로 연구실 안을 둘러본 아테나가 중얼거렸다.
“꽤 오랫동안 버텼나보네.”
최소 몇 개월 이상 사람이 살아온 흔적. 육안으로 보이는 혈교 오염흔적은 보이지 않는다.
연구실 안으로 들어온 아테나와 호외들을 보며 위어 박사가 접대용 탁자를 가리켰다.
“앉으시죠. 마음 같아선 뭐라도 대접해드리고 싶지만, 딱히 반기실 것 같진 않군요.”
“오염구역 내에서 얻는 음식물을 덥썩덥썩 받아먹을 순 없지.”
아테나가 탁자 앞의 의자를 향해 턱짓하자 여름이 조심스럽게 다가가 의자를 살폈다. 잠시 툭툭 건드리거나 냄새를 맡아보던 그녀가 고개를 끄덕였다.
“문제 없어요.”
“좋아요. 겨울, 당신은 주변을 확인하세요.”
“네.”
겨울에게 연구실 내를 수색하도록 지시한 아테나가 그제야 성큼성큼 걸어 탁자 앞에 앉았다. 위어 박사는 그런 아테나의 모습에 불쾌해할 법 한데도 오히려 미소를 지었다.
“신중하시군요. 좋은 판단입니다. 이제 본격적으로 이야기를 시작하죠.”
“그전에 한 가지 질문에 대답해, 위어 박사.”
아테나는 위어 박사가 이야기를 시작하기 전에 손을 들어 그를 제지했다.
“당신이 혈교의 오염으로부터 의식을 유지할 수 있는 구체적인 이유는 뭐지?”
그녀의 물음에 위어는 어려울 것 없다는 듯 곧바로 자신이 가지고 있던 주사팩을 들어올리며 말했다.
“이 마약, 사이케델릭 미러의 효과 덕분입니다. 이 마약은 일종의 해리성 장애, 그러니까 인격을 분열시키는 효과가 있죠. 혈교의 오염이 제 정신까지 장악하려 한다면, 그렇게 만들어진 또 다른 인격을 대신 희생시키면 약간의 시간을 벌 수 있습니다. 물론, 영원히 버틸 수는 없지만요.”
“······미친. 자기 정신을 분열시켜서 오염의 희생양으로 삼는다고?”
제정신으로 떠올릴 수 있는 발상이 아니다. 한 박자 늦게 위어의 설명을 이해한 아테나는 질린 눈으로 그를 바라봤다.
위어는 그런 아테나의 말에 덤덤한 목소리로 대꾸했다.
“스스로를 정확히 관조하고, 인격의 주체를 정하는 통제권을 제대로 장악할 수 있다면 이론적으론 가능한 일이지요. ······하지만 그마저도 저 끔찍한 혈교의 의지, 죄마가 제게 아무런 관심을 두지 않고 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일 뿐입니다.”
“죄마······통신 메시지에도 그 단어를 썼었지. 위어 박사, 당신은 그 단어를 어디서 들었지?”
“호오, 죄마에 대해 알고 계셨었습니까?”
위어는 아테나가 그 이름을 꺼낸 것이 무척 의외라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그러더니, 이내 이해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참룡검제 이목진에게 들은 모양이군요. 그는 단지 죄마와 한 번 마주한 것만으로도 이미 거기까지 도달한 겁니까?”
“뭐······!”
참룡검제 이목진.
무림과는 전혀 관계없는, 제삼자의 입에서 나올 것이라고는 생각도 못한 이름에 아테나와 호위들의 몸이 멈칫했다.
그러나 당황스러운 기색을 보이는 호위들과 달리, 아테나는 속으로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
‘참룡검제와 우리의 연결관계를 알고 있다······?’
아니 그전에, 무림과는 아무런 관계도 없는 국방실험국의 연구원이 참룡검제 이목진에 대해서 알고 있는 거지?
눈앞에 있는 위어라는 자가 도대체 무엇을 알고 있는 것인지, 그리고 어떻게 알고 있는 것인지 도저히 사고가 따라가지 못한다.
미처 혼란스러움을 숨기지 못한 아테나를 보며 위어가 말했다.
“밀스를 기억하십니까?”
“밀스······?”
“공룡문의 혈교 포교자, 밀스 연구원을 말하는 겁니다.”
문주 타이란과 문파 구성원의 삼분지 일을 오염시켰던 혈교의 끄나풀. 그의 이름이 위어의 입에서 나오자 아테나의 눈이 크게 벌어졌다.
“······설마.”
“네. 혈교의 기억을 보았습니다. ······저는 혈교가 뻗은 가닥의 일부가 되었으니까요.”
위어가 자조적인 목소리로 말했다. 그의 목소리는 희미하게 떨리고 있었다.
그 말의 의미를 파악한 아테나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혈교와 연결되어 있다는 소리군. ······이제 알겠어. 기다리고 있었다는 말은 국방실험국 내에 있는 오염된 감시장치들을 통해 우리를 보고 있었다는 뜻이었던 거지?”
“그렇습니다.”
“그렇다면······혈교 또한 박사를 통해 우리를 보고 있다는 소리네.”
“아뇨, 그렇지는 않습니다.”
위어는 아테나의 말을 딱 잘라 부정했다.
“저는 그의 일부가 되었기 때문에 혈교를 읽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제 의식은 오염을 피하고 있기 때문에 혈교는 저를 읽을 수 없죠.”
“일방적인 연결이라······형편 좋은 이야기처럼 들리네.”
위어는 쓴웃음을 지었다. 정말 그녀의 말마따나 형편 좋은 이야기였다면 그렇게 필사적으로 외부에 통신을 보냈겠는가.
“혈교의 의지가 제게 아무런 관심을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지요. 만약 그것이 저를 인지하고 조금이나마 관심을 기울인다면, 이런 눈속임은 물론 그 어떤 저항도 통하지 않을 겁니다.”
“······혈교가 오염체 하나하나를 완전히 지배하고 있지는 않다는 건가?”
제법 의미 있는 정보다. 아테나의 눈이 번뜩였다.
“정확합니다.”
위어가 고개를 끄덕였다.
“혈교의 마수는 이 광대한 우주에 존재하는 모든 지성체들에게 뻗어있습니다. 그 가닥 하나하나를 모두 인지하는 건 무척 비효율적인 일이죠. 혈교의 의지······그러니까 죄마는 스스로가 뻗은 무수한 실 중 그때그때 필요한 것을 사용하는 것뿐입니다.”
“그래서 공용망으로 보낸 메시지가 그렇게 다급했었군.”
“언제 어느 순간에 제 존재를 들켜서 오염되어버릴 줄 모르는 일이니까요.”
위어가 쓰게 웃으며 말했다. 만약 죄마가 그의 존재를 인지한다면, 그 순간 간신히 버티고 있는 그의 영혼은 아무런 저항조차 하지 못하고 혈교에 오염되어버리고 말리라.
“······그런 심각한 상황치곤 지금은 꽤 침착해 보이는데. 위어 박사.”
그렇게 말하는 아테나의 눈은 여전히 경계를 지우지 않고 있었다. 상황이 상황인 만큼, 몇 번이고 의심을 거듭해도 부족함이 없었기 때문이다.
“지금 그것은 다른 곳에 신경을 쓸 틈이 없기 때문이죠.”
무척 흥미로운 대상을 찾아냈거든요. 위어가 말했다.
“무척 흥미로운 대상?”
“무림인, 참룡검제 이목진입니다.”
“참룡검제······?”
또다시 참룡검제의 이름이 나왔다. 아테나는 기이함을 느꼈다.
지금까지 그녀와 인류정부에 있어 참룡검제 이목진 일행이라는 존재는 오대세가를 견제하는 강력한 절대고수이자 혈교에 대한 기밀급 정보를 제보해주는 중요한 정보원 정도로 여겨지고 있었다.
하지만 위어 박사의 이야기를 듣고 있자니 혈교, 아니 죄마조차도 예상 이상으로 참룡검제 이목진이라는 존재에 대해 주목하고 있는 상황이지 않은가.
아테나의 머릿속에 과거, 공룡문에서 혈교의 끄나풀이었던 밀스가 목진을 향해 했던 말이 스쳐지나갔다.
– 그분께선 아직 당신의 존재를 모르신다. 하지만 머잖아 그분도 당신을 바라보실 것 같군.
설마 그게 이런 의미였던 걸까. 아테나는 위어 박사에게 물었다.
“어째서 죄마가 참룡검제를 흥미롭게 느끼는 거지?”
“자신과 같이 이 세상을 초월한 존재라는 것을 느꼈기 때문입니다.”
초월? 다분히 추상적인 단어에 아테나가 미간을 좁혔다.
“죄마는 이 우주가 아니라 이면차원에 본체가 존재하는 초월적인 존재입니다. 쉽게 말해 신과 같은 존재라고나 할까요.”
“······신이라.”
아테나가 조금 당혹스런 목소리로 읊조렸다. 그런 오컬트적 분야에 대해 불가지론적 관점을 견지하고 있는 인류정부이긴 하지만, 단순히 오염체들이 뭉쳐 만들어진 하이브마인드라고 생각하던 죄마의 정체가 그 신이라고 하니까 좀처럼 쉽게 받아들이기가 어려웠다.
하지만 위어 박사는 아테나의 반응과 상관없이 계속 말을 이었다.
“그것은 지금까지 자신과 같은 초월적인 존재를 마주한 적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무영탑에서 참룡검제 이목진을 보고 그가 자신처럼 초월적인 존재라는 것을 꿰뚫어 보았죠.”
무영탑? 직접 가보기까지 한 낭호교 자매와는 달리 무영탑의 존재를 알지 못하는 현마가 얼떨떨한 표정을 지었다.
“그는 참룡검제 이목진에게 이례적일 정도로 큰 호기심과 호감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자신과 일부가 된 무신 공손혁흔의 눈을 빌려 남궁세가에서 그를 기다리고 있죠. 그래서 당장은 제게 신경을 쓸 겨를이 없을 겁니다.”
“잠······?!”
“뭐라고요?!”
무신 공손혁흔이 혈교에 오염되었다.
현 무림의 최강자라고 알려진 그 무신까지 혈교에 오염되었다니. 아무렇지도 않게 던져진 초대형 폭탄에 아테나는 물론, 현마와 낭호교 자매들까지 기함을 터트렸다.
하지만 위어 박사는 태연한 표정으로 고개를 갸웃했다.
“흐음? 이제 와서 놀랄 이유가 있습니까? 중추원에서도 그 많은 의원들이 오염되어 있던 마당에 무림고수라고 다를까요. 절대고수가 오염에 대한 내성이 조금 강하다고 한들, 개미와 사슴벌레의 차이일 뿐입니다.”
“······중추원? 그거 인류 정부 말하는 거 아니에요?”
“이런.”
현마와는 달리 인류정부의 상황에 대해 알지 못하는 낭호교 자매들이 혼란스러운 반응을 보이자 아테나가 낭패한 표정을 지었다.
“······나중에 설명해줄 테니 지금은 넘어가요.”
혼란스러워하는 낭호교 자매들을 억지로 진정시킨 아테나가 다시 위어 박사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
“아무튼 좋아. 박사의 말대로 죄마가 지금 다른 데 신경을 쓰고 있다는 건 이해했어. 그러니까 이제 본론으로 돌아가지.”
그러죠. 그녀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 위어 박사가 입을 열었다.
“조금 전 말씀 드렸다시피, 지금 저는 굉장히 특수한 상황에 처해 있습니다. 혈교의 일부이지만 오염되지 않은 자아를 유지하고 있죠. 그래서 저는 이 특수한 상황을 이용해 죄마의 기억을 읽으며 혈교를 영원히 물리치고 인류를 구하기 위한 방법을 모색하려 했습니다.”
“······!”
혈교를 물리치고 인류를 구할 방법. 인류에게 있어 간절하기 그지없는 이야기에 아테나의 눈이 반짝 빛났다.
아직 혈교에 대해 정확히 파악하지도 못한 인류와는 달리, 그 혈교의 중추인 죄마의 기억을 읽을 수 있다면 혈교의 완전박멸에 대한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녀의 기대와는 달리, 현실은 무정했다.
위어 박사는 침통한 얼굴로 고개를 가로저었다.
“하지만 실패했습니다. 아니, 저는 오히려 혈교와 죄마는 박멸이 불가능한 존재라는 결론에 도달했습니다.”
“뭐라고······?”
위어 박사는 단호한 얼굴로 단언했다.
“기술적인 문제를 떠나, 이 우주에 지성체가 존재하는 이상 죄마는 사라지지 않습니다. 그것에는 죽음이라는 개념 자체가 존재하지 않아요.”
“그게 대체 무슨······.”
“지금부터 알려드리지요.”
제가 그것으로부터 읽어낸 진실을. 아연한 얼굴을 한 아테나와 호위들을 향해, 위어 박사가 말했다.
“······저 저주받을 혈교와 죄마의 진짜 정체에 대해, 그리고 그들의 기원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