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smic Heavenly Demon 3077 RAW novel - Chapter (337)
우주천마 3077 우주천마-338화(338/349)
49. 격멸예고 Death Match Count (9)
49. 격멸예고 Death Match Count (9) – 불가항력
“······저는 알파 섹터 소속의 연구원으로서, 그 그릇의 제작에 참여했었습니다.”
죄마에 대한 긴 설명을 마친 위어 박사는 지친 얼굴로 말했다.
“처음에는 아무런 의심 없이 국방실험국 내의 기밀 프로젝트 중 하나라고 생각했지요. 하지만 프로젝트에 참여하면서도 계속 어딘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마치······프로젝트의 진짜 목적은 따로 있는 것 같았죠.”
은하 전체에 퍼진 인류들 중에서도 천재들만이 모인 국방실험국. 그런 국방실험국에서 스스로를 천재라고 자부할 정도로 머리가 비상한 위어 박사만이 알아챌 수 있는 이상성.
그러나 위어 박사가 그 이상성에 대한 확신을 가졌을 때는, 이미 늦은 뒤였다.
“뭔가 이상하다는 확신이 들었을 때는 이미, 이 국방실험국 전체가 혈교에 오염된 뒤였습니다. 이미 혈교에 오염된 오염체들이 제대로 된 판단을 내릴 수 없도록 저를 방해하고 있었던 거죠.”
위어 박사가 뭔가 대책을 세울 틈도 없이, 국방실험국은 곧바로 최종침식단계에 접어들었다.
“······저는 그제서야 저 자신조차도 오염되고 있었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어설프게 탈출을 시도했다간 죄마의 주의를 끌 수도 있으니 탈출은 엄두도 내지 못했죠.”
“그래서 우리가 올 때까지 몰래 숨어서 농성한 건가.”
위어 박사가 고개를 끄덕였다.
“네. 그나마 개인 연구실에 있는 상비약들을 합성해서 정신오염을 막을 마약을 만들어낼 수 있었죠.”
“······대단하네.”
아테나는 위어 박사에 대해 순수하게 감탄했다.
혈교의 오염을 자각하는 것부터가 비범하기 그지없는데, 그런 극단적으로 불리한 상황에서 마약을 합성해 정신오염을 견뎌낸다니. 과연 스스로를 두고 천재라고 할 만한 능력을 가진 인물다웠다.
“그나저나 아까부터 그릇이라고 말하고 있는데, 그 그릇이라는 게 구체적으로 뭘 말하는 거지?”
그릇. 이라고 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상징적인 표현일 터. 그러나 아테나는 위어 박사가 말하는 그릇이라는 게 도대체 뭘 말하는 건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말하는 걸 보면 일종의 인공생명체나 생체포드 같은 개념 같은데······그러면 군용 병기를 개발하는 국방실험국이 아니라 바이오테크 부서를 보유하고 있는 기술선도국 쪽에서 만드는 게 맞지 않나?’
하지만 그에 대한 위어 박사의 대답은 전혀 예상 밖의 이야기였다.
“죄마의 그릇이라는 건······병기입니다. 성계 단위 생태계 섬멸병기.”
“······뭐?”
병기라고? 전혀 예상치 못한 위어 박사의 말에 아테나는 머리를 한 대 맞은 표정으로 되물었다.
“무림교류부 쪽과는 별개의 영역이긴 합니다만, 일등집행관쯤 되면 들어보셨을 텐데요. 중앙정부에서 외우주의 적대적 외계종들에 대한 최종해결책으로 강력한 신병기를 연구하고 있다는 소문 정도는요.”
“······.”
아테나는 입을 다물었다.
들어본 적이 없다면 거짓말이리라. 하지만 워낙 인류정부에서 추진하는 일에 대해 이런저런 연막용 가짜 프로젝트들이 많기 때문에 실제로 진행되고 있으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했을 뿐.
“중추원의 일부 중진들의 허가를 받아 기술선도국과 국방기술국이 개발한 전함 형태의 섬멸병기. 그것이 알파 섹터에서 비밀리에 연구하던 바이데(BYDE) 프로젝트의 정체입니다.”
“바이데 프로젝트······. 고작 전함 사이즈의 병기로 성계 범위의 섬멸이 가능하다고? 그런 출력은 현대 기술로 가능한 영역이 아닐 텐데.”
“물리적인 섬멸이 아닙니다.”
뭐? 쉽사리 이해가 가지 않는 위어 박사의 말에 아테나가 미간을 좁혔다.
위어 박사는 당연하다는 듯 말했다.
“물리적 섬멸을 통해 성계 하나를 소멸시킨다면 그 안의 자원을 얻을 수 없지 않습니까. 바이데 프로젝트의 목적은 물리적 섬멸과는 조금 다릅니다.”
잠시 뜸을 들인 위어 박사가 다시 입을 열었다.
“워프로 신병기를 목표 행성계의 중심에 돌입시켜, 범위 내에 있는 모든 지성체를 상대로 정신침식에 기반한 파괴공작을 벌이는 것. 그것이 바이데 프로젝트에서 만든 신병기의 역할입니다.”
지성체에 대한 정신침식.
무척이나 낯이 익은 이야기다. 아테나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그건······.”
“네.”
위어 박사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혈교의 정신오염패턴과 무척 흡사하지요.”
“처음부터 섬멸병기라는 핑계를 대고 죄마의 강림을 위한 그릇을 만들었다는 뜻이군.”
성계 단위로 인류에게 적대적인 지성체들만 골라서 섬멸시키는 병기. 듣기만 하면 무척 매력적으로 들릴 수밖에 없는 이야기다.
“이것이 저희 알파 섹터에서 건조한 기술실증기인 바이데급 섬멸전함입니다.”
위어 박사의 말과 함께 탁자 위에 전함의 모습을 나타낸 홀로그램이 떠올랐다.
얼핏 보기엔 인류정부가 운용하는 일반적인 전함과 크게 다르지 않은 형태. 전함의 모습을 확인한 아테나의 눈이 가늘어졌다.
“전함? 그러면 이 전함을 파괴하면 되는 거 아닌가? 보니까 기술실증기라고 변변찮은 무기도 안 단 모양인데.”
“불가능합니다. 바이데급 섬멸전함의 배리어는 행성 방위급을 능가하는 출력이거든요.”
“······뭐?”
행성 방위급의 배리어를 전함 사이즈로 압축했다는 막나가는 스펙에 아테나의 눈에 불신의 감정이 떠올랐다.
“말도 안 되는 소리 마. 일개 함선이 그런 출력을 내는 건 불가능해.”
그 정도 출력이면 밖에서 경계 중인 중앙군 전함들의 포격을 하루 이상 버텨낼 수 있을 정도다.
하지만 그에 대한 위어 박사의 대답은 그녀의 상상을 아득히 초월하는 이야기였다.
“가능합니다. 동력원으로 축퇴로를 사용하고 있거든요.”
“축퇴로······?!”
아테나가 경악을 숨기지 못하고 소리쳤다.
축퇴로. 다른 말로는 블랙홀 엔진.
워프 항법을 개발하고 은하 전체를 개척하고 있는 현대 인류의 기술로서도 아직 공상의 영역으로 치부하고 있는 기술의 이름이다.
“인류가 그런 기술을 보유하고 있었다고?”
아테나가 믿을 수 없다는 듯 재차 물었다. 아무리 그녀가 기술 쪽과는 별 연이 없는 무림교류부의 사람이라지만, 축퇴로가 얼마나 말도 안되는 기술인지도 모르지는 않았다. 현대 우주선들이 쓰는 유사 워프기술이 아니라 진짜 워프를 함선 단위에서 사용할 수 있다는 뜻이 아닌가.
그러나 위어 박사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우리 인류의 기술로는 아직 축퇴로를 제어할 수 없습니다. 바이데급 전함은······예외지요.”
“그게······무슨 뜻이지?”
“이걸 보시죠.”
위어 박사의 말과 함께 전함의 동력부를 확대하던 홀로그램의 시점이 조금 옆으로 옮겨갔다.
그런 홀로그램이 비춘 것은, 우주전함과 같은 병기에 있으리라고는 생각하기 어려운 기이한 형태의 생체 포드였다.
“이건······.”
생체 포드 안에서 꿈틀거리고 있는 무언가를 본 아테나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마치 뇌와 비슷한 모양새를 띠고 있는 기괴한 형태의 유기체. 아테나는 어쩐지 모르게, 그 유기체가 무림인들의 몸에 기생하던 고독과 비슷한 것 같다는 생각이 떠올랐다.
할 말을 잃고 홀로그램 속 영상을 노려보는 아테나를 향해 위어 박사가 말했다.
“기술선도국이 보유한 생체공학 기술의 정수를 담아 만든 생체모듈입니다. 축퇴로를 제어하기 위해 탑재되었죠.”
당연한 이야기지만, 고작 생체공학으로 만들어진 유기체 따위가 축퇴로를 제어할 수 있을 리가 없다.
그러나, 그 생체모듈에 죄마가 강림한다면 어떨까?
저 깊은 이면차원의 심부에 도사리고 있는, 현대 과학으로 설명할 수 없는 불가해한 신적 존재. 만약 그런 존재라면 인류가 이해할 수 없는 방법으로 축퇴로를 제어하는 게 가능할지도 몰랐다.
“······그럼 근접해서 전함을 탈취하는 건?”
아테나가 물었다. 군용 무공과 장비로 강력한 근접전 능력을 보유한 병사들을 전함 안에 침입시켜 제어권을 빼앗는 전술은 현대 우주전에서 흔히 사용되는 전술이었다.
하지만 위어 박사는 이번에도 고개를 가로저었다.
“축퇴로를 동력원으로 삼는 함선입니다. 웜홀 워프를 딜레이 없이 몇 번이고 쓸 수 있다는 뜻이죠. 접근 자체를 허용하지 않을 겁니다. ······그리고 설령 운이 좋아서 전함을 파괴시킨다 해도, 죄마가 강림한 생체모듈까지 파괴시킬 방법이 없으니 잠깐 시간을 버는 게 고작이지요.”
“어째서?”
“생체모듈은 이미 이면차원에 있는 죄마와 동화된 상태입니다. 지금 당장은 죄마의 본체를 강림시키기 위해 에너지를 비축하며 안정화를 꾀하고 있을 뿐, 이미 죄마의 일부라고 봐도 무방하죠.”
위어 박사가 말을 이었다.
“죄마는 물리적인 실체 없이 에너지이자 파동인 존재입니다. 물리적으로 구축한다거나 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에요.”
전함은 그저 편리한 워프 이동을 위한 껍데기일 뿐. 죄마의 본체가 강림할 생체 모듈은 소멸시켜도 계속해서 부활할 것이다.
“현실 우주에 강림한 죄마를 설명할 수 있는 말은 오직 하나, ‘절대 생물’이라는 단어뿐입니다. 생명과 사물을 포함한 모든 물리적 존재를 가리지 않고 먹어치우며, 사념이나 에너지, 가상공간 같은 무형의 영역까지 침식하지요. 늙지도 죽지도 않으며, 이 우주의 모든 지성체를 집어삼킬 때까지 결코 멈추지도 않을 겁니다.”
“······그러면 도대체 어쩌라는 거지?”
이것도 안 된다. 저것도 안 된다. 무조건 불가능하다고밖에 할 수 없는 위어 박사의 말에 아테나가 인상을 썼다.
위어 박사의 이야기만 놓고 보면 그 어떠한 대책조차 세울 수 없는 불가항력적 존재 그 자체이지 않은가.
그녀는 이곳에 대책을 구하러 온 것이지, 이런 식으로 꿈도 희망도 없다는 소리 따위나 들으러 힘들게 침식지대를 지나온 게 아니었다.
“당신은 길을 제공할 수 있다고 말했어. 그렇다면 이 사태에 대해 해결방법이 있다는 소리겠지. 그 말이 틀렸어?”
위어 박사는 아테나의 말에 가만히 그녀를 바라보더니, 툭 내뱉었다.
“도망치십시오.”
“······뭐?”
아테나가 멍하니 되물었다.
위어 박사는 그런 그녀를 항해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지금까지 인류가 보유한 지식과 기술들을 가지고 이 은하계를 떠나 우주 저편으로 도망가야 합니다. 최대한 멀리.”
“도망가라고? 우리 은하계를 버리라는 뜻인가?”
“네. 인류를 포함한 이 우주의 문명들은 현실에 강림한 죄마를 감당할 수 없습니다. 그러니 지금은 먼저 생존을 꾀하고, 후일을 기약해야 합니다.”
미친 소리였다.
하지만 위어 박사의 얼굴은 더없이 진지했다.
“다행히 우리에게 시간은 있습니다. 우주는 넓고, 죄마의 강림으로 인한 우주침식은 수십······아니 어쩌면 수백 년의 시간이 걸릴 테니까요. 이면차원에서 존재하던 죄마에게 그 정도의 시간은 찰나에 불과합니다.”
“······그럼 사람들은? 인간이라는 종의 생존을 위해서 은하계 전역에 퍼진 민간인들을 버려야 한다고?”
“그들은 못 구합니다. 이미 인간 사회 여기저기에 혈교의 씨앗이 파고들어 있기 때문이지요. 최소한의 인원들만 선별해서 생존기반시설들과 함께 우주 각지로 파종선을 보내야 합니다. ······죄마의 그림자가 닿지 않은, 우주의 가장 어두운 영역들을 향해서요.”
죄마가 서서히 이 은하계와 사람들을 먹어치우는 동안, 외우주로 탈출선들을 보내 죄마와 대적할 방법을 연구하라.
그것이 위어 박사가 말한 인류가 가야 할 ‘길’이었다.
“······미친 소리군.”
아테나가 싸늘한 얼굴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혈교의 본체인 죄마의 기원과 정체에 대한 정보는 분명 충분한 가치가 있었다. 하지만 그에 대비해 내놓은 대응법이라는 건, 차마 대응법이라고 말할수조차 없을 정도로 형편없었다.
인류가 태어나고 자란 이 은하계를 버리라고? 그리고 그 안의 무수한 행성들에 터전을 잡고 살아가는 사람들도?
말도 안 되는 소리다. 그렇게 무책임하게 사람들을 버릴 거라면 애초에 인류정부라는 것이 존재할 필요가 없지 않은가.
“재고의 가치도 없는 방법이야. 우리는 인류를 버리지 않아.”
“뭐, 그렇게 말하실 것 같았습니다.”
위어 박사는 그녀의 반응을 예상했다는 듯 덤덤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도 제가 말씀드린 이야기를 중추원에 전달해주실 수는 있으시겠지요?”
아테나가 살짝 눈가를 찡그렸다.
“······보고는 사실 그대로 전달할 거야. 하지만 중추원에서 당신의 미친 계획을 받아들이진 않겠지.”
“그걸로 충분합니다. 곧 죄마의 본체가 강림하고, 그것과 맞서다 보면 제가 제시한 길이 옳다는 것을 이해하실 테니까요.”
죄마를 상대로 인류가 취할 수 있는 대응은 오직 이것뿐이다. 위어 박사는 그렇게 확신하고 있었다.
“혹시 더 이야기해줄 정보가 있나?”
위어 박사가 고개를 저었다.
“중요한 정보는 이게 전부입니다. 개인적으로 혈교에 대해 연구한 내용이나 은하 각지의 혈교 조직들에 대해 정리한 자료도 있습니다만, 그건 이야기로 전달드리기엔 너무 많으니 여기에 정리했습니다.”
그는 아테나에게 저장단말을 넘기며 말했다.
“제가 따로 확인하긴 했습니다만, 오염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으니 안전하게 격리된 환경에서 데이터를 확인하는 걸 추천드립니다.”
“안 그래도 그렇게 할 거야.”
저장단말을 받아든 아테나가 물끄러미 위어 박사를 바라보다가 물었다.
“함께 이곳을 빠져나갈 생각은 있나?”
위어 박사가 피식 웃으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전 이미 오염된 몸입니다.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을 가지고 나갈 생각이신지요?”
처음부터 나갈 생각은 없었을 것이다. 아테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위어 박사를 향해 가볍게 고개를 숙였다.
“위어 박사. 인류정부는 당신의 조력과 헌신을 잊지 않을 것입니다.”
비록 그가 제시한 죄마에 대한 대응방안은 받아들일 수 없는 광인의 것이지만, 그렇다고 그가 말해준 죄마에 대한 정보와 혈교에 대한 자료들은 무척이나 귀중하고 값진 것들이다. 아테나는 적어도 이 지옥 속에서 제 몸속에 마약까지 투약해가며 버텨낸 위어 박사의 의지에 대해서는 존중하고 있었다.
“별 말씀을.”
위어 박사가 옅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이제야 해야 할 일을 마무리지었다는 안도감 때문일까, 그의 얼굴은 당장이라도 사라질 듯 허허로운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러나 그 순간-.
– 까-아-아-아-!
거대하고 소름끼치는 절규가 그들을 강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