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smic Heavenly Demon 3077 RAW novel - Chapter (5)
우주천마 3077-4화(5/349)
1. 천마출도 New World (4)
1. 천마출도 New World (4) – 멸망한 세계의 천마
서로가 상황을 파악하는 데에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당장 목진이 살던 시대의 연호를 찾아서 지금의 연도와 비교해 계산하면 그만이었으니까.
다만 그들이 한 가지 간과한 점이 있다면, 설마 그 간극이 2천년이나 될 거라고 예상하지 못했다는 점이었다.
“허······허어······.”
“······그러니까 저 고수가 2천 년 전 사람이라고?”
옷가지로 하반신만 대충 가린 채, 넋이 나간 표정으로 머리를 부여잡고 멍하니 석좌에 앉아있는 목진. 그런 목진을 보며 부러진 팔에 응급처치를 한 세령이 어이없는 표정을 지었다.
눈 깜짝할 새 팔이 부러지고 제압당해 짧은 인생 여기서 끝나는구나 싶었는데, 별안간 순자가 알아듣지도 못할 요상한 언어로 말을 걸더니, 갑자기 이 양반이 2천 년 전 고대인인 것 같다고 하는 게 아닌가.
– 네 왕언니. 일단 저 사람이 하는 말이 사실이라면요.
“10세기 고대인이면 거의 청동기시대 아냐? 생긴 건 그냥 평범한 황인종인데. 키도 꽤 크고.”
– 어휴. 청동기시대는 기원전 얘기에요. 10세기면 그래도 중세수준 문명을 유지하던 때라 지금이랑 별 차이 없다고요. 아무리 우주세기 전 역사는 기초교육과정에 없다지만 상식은 좀 익혀두세요.
순자의 타박에 세령이 머쓱하게 머리를 긁었다. 기초교육과정 뗐으면 그만이지 뭔 시시콜콜한 우주세기 전 역사까지 알아야 한다는 말인가.
물론 그 말을 입 밖으로 꺼내서 꼴랑 다섯 살짜리 안드로이드한테 비웃음을 사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세령은 다른 쪽으로 주제를 돌렸다.
“근데 살아있는 생명체가 2천년동안 살아있는 게 말이 돼? 냉동보존을 해도 2천년이면 동면기계가 먼저 망가지겠다. 아니, 애초에 2천 년 전에 냉동보존기술이 있긴 했나?”
– 저도 긴가민가하긴 한데, 정황상 가장 가능성이 높은 이야기에요. 당장 저 사람이 하는 말만 해도 언어통합이 이뤄지기 전에 쓰이던 언어거든요? 최소 500년 전에나 쓰던 말이라고요. 아마 지금은 고대 언어 연구자 아니면 구사자도 없을 텐데.
“그런데 용케도 번역이 되네.”
– 쓰는 사람이 없어서 그렇지 언어 데이터베이스는 멀쩡하니까요. 그런데 그마저도 데이터베이스에 등록된 언어보다 더 원시적인 형태인 걸 보면 정말 고대인일수도 있어요. 번역보정기능이 없으면 제대로 대화도 안 됐을걸요.
“아니, 아무리 그래도 2천년은 너무 판타지잖아. 상식적으로 생각해서.”
– 무림에 판타지 같은 일이 어디 한두 개에요?
“······뭐 틀린 말은 아니긴 한데. 어쨌든 이제 어쩌지?”
당연히 현상범이겠거니 하고 내려왔는데 진짜로 상상도 못했던 상황과 맞닥트렸다. 당장 팀의 리더인 세령조차도 도통 어떻게 해야 할지 갈피를 잡을 수 없었다.
– 그냥 놓고 가죠?
“아니, 아무리 그래도 우주선도 없는 사람을 이런 오지에 버리고 가는 건 너무하지 않아? 안 그래요 누님?”
툭 내뱉은 순자의 말에 로버트가 기겁했다. 당장 조금만 밖으로 나서면 방사능 폭풍이 휘몰아치는 죽음의 별에 놓고 가다니, 그게 죽으라는 거랑 뭐가 다르단 말인가. 그래도 로버트는 최소한의 인도적인 조치로 근처 행성에 데려다줬으면 하는 생각이었다.
물론 그런 시답잖은 이유로 남의 일이라면 피도 눈물도 없어지는 냉혈한으로 변하는 철혈의 안드로이드 순자를 설득하는 건 불가능에 가깝지만 말이다. 로버트는 그 대신 세령을 설득했다. 아닌 것 같으면서도 은근히 잔정이 있는 세령이라면 눈앞의 불쌍한 표류자를 아예 저버리지는 않으리라.
“내가 왜?”
당장 오 분 전에 그녀의 팔을 부러트린 게 저 치가 아니었다면 말이다.
“내가 저 놈이 뭐가 이쁘다고 택시기사 노릇까지 해 줘야하냐? 내 팔 작살낸 놈 족쳐도 모자랄 판에.”
– 말은 바로 해야죠. 족칠 실력이 안 돼서 못하는 거면서.
“순자 너 입 안 다물어? 하여튼 내 팔을 이 꼴로 만들었는데 내가 쟤를 왜 도와 주냐? 막말로 내가 사파출신이었으면 저 놈 그대로 구슬려서 어디 연구소에다 팔아먹었을 걸.”
하 씨. 이거 금창약 발라도 며칠은 일 못하겠는데. 세령이 급하게 응급처치를 한 팔을 보며 인상을 썼다. 그런 세령을 보며 로버트가 이게 아닌데 하는 표정을 지었다.
“그래도 고수 같은데 도와주면 뭔가 무공 같은 거라도 가르쳐주지 않을까요?”
“ 하 시발 환장 하겠네······. 아직도 그 엿 같은 무공에 대한 미련을 못 버리고 있었냐.”
– ······나쁘지 않은 거 같은데요?
엥? 순자의 말에 세령이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저 말이 어딜 봐서?
– 언니 팔이 부러졌는데 깽값이라도 챙기지 않으면 제가 억울해요. 덤으로 기껏 여기까지 왔는데 뭐라도 건지지 않으면 수지가 맞지 않는다구요. 독문무공까지는 몰라도 어디서 주워먹은 초식이나 무공 같은걸 알고 있을 가능성은 충분히 있죠.
“······할 수 있겠어? 어디서 튀어나왔는지는 모르겠지만, 저놈 무공경지가 최소 구대문파 최정예 장로급이야. 힘으로는 어림도 없다고.”
– 힘으로 못하면 말로 구워삶아서 뱉어내게 만들어야죠. 정 뱉을게 없으면 어디 개척기업에 소개료 받고 팔아도 되고요.
히끅. 스산한 순자의 말에 로버트가 저도 모르게 딸꾹질을 했다. 그는 슬슬 저 우주변태 고대인의 미래가 걱정스러워지기 시작했다.
세령이 얼굴을 구겼다.
“내가 사파냐? 인신매매를 하게?”
– 인신매매라뇨. 언니 말처럼 연구소에다 팔면 사파지만, 이건 봉사활동이라구요. 봉.사.활.동. 저희는 돈 벌어서 좋고. 저 사람은 연고지 하나 없는 척박한 우주에서 당장 먹고살 길 생겨서 좋고.
“어······.”
그럴싸한데? 세령은 순자의 말에 순간 반박할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그건 일단 넘어가고. 근데 잘 구슬려서 무공을 얻어낸다 치자. 근데 어차피 잘 해야 이류 무공일 텐데 그걸로 돈벌이가 되겠어?”
– 그건 별로 중요하지 않아요. 고대무공 프리미엄 붙여서 낭인시장에 팔아버리면 눈이 돌아가서 꽤 짭짤하게 부를 호구들이 참 많거든요.
세령이 저도 모르게 로버트를 돌아봤다. 로버트는 왜 자길 보냐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세령은 순자의 말이 납득이 갔다.
– ······그러니까 지금 고인께서 아시는 천하는 멸망한 지 오래고, 바깥세상은 지독하게 오염되어서 살아있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니까요.
“어리석은 소리! 너희는 본존이 바보로 보이느냐? 천 번 양보해 그 말이 사실이라고 한다면, 너희들은 대관절 어디에서 왔다는 말이냐. 세 살 어린아이도 믿지 않을 거짓은 집어치워라!”
– 아니, 진짜래도요? 저희는 우주에서 왔어요. 우주는 아시죠? 저 하늘 너며 별들이 있는 곳이요.
“하. 이제는 아예 저들이 천계에서 온 신선이라고 사기를 치려 드는구나. 이 세상에 서역인 신선도 있더냐? 본존의 한 수조차 감당해내지 못하는 애송이들이 신선이라니. 천하가 웃을 일이로다. 내 깨어난 지 얼마 안 돼 경황이 없어 믿었거늘, 이제 보니 2천년이 지났느니 어쩌느니 하는 것도 다 거짓부렁이렷다?”
– 아 진짜, 답답해 죽겠네.
단호하기 그지없는 목진의 말에 순자가 짜증을 냈다. 아무렴 대뜸 그녀의 말을 믿을 거라곤 생각하지 않았지만, 설마 이다지도 꽉 막혀있을 줄이야. 설득이 나발이고 일단 현대 세계관 자체를 부정하고 있으니 아예 대화를 이어갈 여지가 보이지 않았다.
하긴 행성을 벗어나기는커녕 나무배 타고 바다를 돌아다니던 시절 사람에게 뭘 바라겠는가.
입 아프게 말로 설명하느니 그냥 직접 보여주는 게 낫겠지. 순자는 생각했다. 때로는 충격요법이 더 효과가 있을 때도 있는 법이다.
– 그럼 아예 밖에 나가보시죠? 못 믿겠으면 직접 보시면 되겠네요.
“하! 말하지 않아도 응당 그리 할 생각이다. 대관절 몇 십 년이나 지났는지 몰라도, 내 직접 두 눈으로 태산에 올라 천하가 어찌 변했는지 봐야겠다.”
– 아 예 그러세요. 가기 전에 방사능 차폐장 받으시고요.
순자의 지시에 로버트가 주춤거리며 차폐장을 내밀었다. 목진이 둥글넙적하게 생긴 차폐장 발생장치를 들여다보며 물었다.
“이게 뭐지?”
– 방사능 차폐장이에요. 밖의 방사능······그러니까 오염된 대기를 막아주죠. 가슴이나 어깨에 대고 가운데를 꾹 누르면 돼요.
“······일종의 피독주라는 거군. 허나 내게는 필요치 않다. 본존은 이미 세상 그 어떤 독도 범접할 수 없는 만독불침의 경지에 올라 있으니.”
아니 만독불침이고 나발이고 방사능은 독이 아니라 못 막는다고요. 순자는 목구멍까지 올라온 말을 꾹 삼켰다.
하긴 절대고수쯤 되면 호신강기로 잠시동안은 피폭을 막을 수 있으니 차폐장이 필요없다는 게 아주 말이 안 되는 소리는 아니었다. 당사자가 그런 생각에서 한 말이 아니니까 문제지.
그래. 아무것도 모르는 고대인이니까 저럴 수 있지. 한 차례 심호흡을 한 순자가 짜증을 참는 기색이 역력한 목소리로 말했다.
– 고인께서 대단한 고수이신 건 알지만, 이럴 때는 저희 말도 좀 들어주시죠? 다 이유가 있어서 드리는 건데요.
“······음. 알겠다. 호의를 거절하는 것도 예가 아니긴 하지.”
목진은 순자의 말에 한결 순순히 차폐장을 어깨에 붙였다. 다른 이유가 있어서가 아니라, 아녀자의 짜증에 맞서면 필히 좋은 꼴을 못 본다는 오래된 삶의 지혜를 깨닫고 있기 때문이었다.
설령 이들이 나쁜 마음을 가졌다 한들 그런 것에 당할 목진도 아니고 말이다. 어설픈 산공독 쯤은 그의 내공을 버텨낼 수조차 없었다.
차폐장을 걸친 목진이 일행의 수하라고 판단한 로버트를 향해 손짓했다. 로버트와 세령은 순자에게 상황설명을 듣고 순순히 석굴 밖으로 목진을 안내했다.
그리고 마침내 목진이 마주한 것은-.
과연 이것이 산이었는지도 모를 정도로 황폐화된 폐허, 그 자체였다.
“이게······이게 도대체 어찌 된 일이냐······!”
그가 기억하는 태산은 분명 끝없이 이어지는 산자락들을 거느리고 수천 년 동안 중원의 영산으로 군림하며 웅장한 산세와 영험함을 자랑하던 거대한 산이었다.
풀 한 포기조차 보이지 않고 자갈과 모래만이 가득한 이런 폐허가 아니었다는 말이다. 이건 숫제 산맥이 아니라 사막에 가까운 모습이었다.
하지만 그 이상으로 그의 눈을 의심하게 만드는 것은, 생전 본 적 없는 불길한 잿빛으로 뒤덮인 하늘이었다.
청명한 푸른빛은 온데간데없고 누런 잿빛과 간간이 보이는 요사한 자줏빛의 하늘. 그 모습과 폐허가 된 태산을 본 목진의 머릿속에 떠오른 생각은 하나였다.
세상의 종말.
눈앞에 보이는 거대한 폐허를 보고 충격을 받은 목진이 휘청거리는 다리를 간신히 붙들었다.
충격을 받은 표정을 숨기지 못한 채 로버트의 부축을 받고 있는 목진을 보며 세령이 고개를 갸웃했다.
“왜 저렇게 유난이래?”
– 지구가 망하기 전 시대에 살던 고대인이잖아요. 정신이 들고 보니 갑자기 세상이 멸망해버렸으니 그럴 법도 하죠.
“세상이 망하면 딴 성계 가서 살림 차리면 그만이지.”
– ······저 사람은 다른 관점으로 봐야죠. 저 사람의 세계관에선 이 지구가 세상의 전부인데. 냉동수면에서 깨어났더니 인류정부고 무림맹이고 죄다 망하고 행성들은 하나같이 폐기되어 있다고 생각해 봐요.
하긴 그렇게 생각해보면 조금 무서울 것 같긴 하다. 세령은 조금은 측은해진 눈으로 목진을 쳐다봤다.
“뭐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지만. 그래서 언제 오는데?”
– 지금 도착 했어요.
순자의 대답과 함께 공중에서 우주선이 모습을 드러냈다. 처음에는 작은 소리에 불과했지만, 대기를 울리며 다가오는 우주선의 소음에 뒤늦게 정신을 차린 목진이 하늘을 올려다보고 기겁을 했다.
“용?!”
– 용 아닌데요. 우주선인데요.
하늘에서 굉음과 함께 내려오는 거대한 물체라고 한다면 그게 용이지 뭐란 말인가. 목진은 황망한 얼굴로 주변을 돌아봤다. 담담하다 못해 심드렁한 얼굴로 하늘을 보는 세령이나 용이 내려오건 말건 별다른 관심도 없이 그를 쳐다보는 색목인까지. 하나같이 이해할 수 없는 반응에 목진은 순간 자기가 이상한 건가 싶은 심정이었다.
– 잘 보세요. 이건 그러니까······하늘을 나는 자동차 같은 거에요.
제 딴에는 나름 고대인인 목진을 배려해서 비유한 순자였지만, 아쉽게도 그는 그보다 더 고대의 사람이었기에 자동차를 알지 못했다.
목진은 순자가 말하는 자동차가 뭔지 몰랐지만, 그 뉘앙스 자체는 어떻게든 알아들을 수 있었다. 그는 안력을 돋워 저 먼 하늘에서 어마어마한 속도로 내려오는 용을 자세히 관찰했다.
아무리 봐도 사람의 손으로 만든 것 같은, 용과는 거리가 있는 외관. 꽁무니로부터 길게 이어지는 푸른 빛줄기. 그리고 결정적으로 옆구리에 새겨진 선명한 ‘나찰(羅剎)’이라는 한자.
그것은 분명 용과는 거리가 있는 모습이었다. 목진은 혀를 내둘렀다.
“허.”
‘하늘을 나는 마차라니······. 정말 이 치들이 신선이란 말인가······?!’
어쩌면 정말 이들이 신선들이고 자신이 우화등선해 선계에 든 것일지도 모른다. 슬슬 가치관에 혼란이 오기 시작하는 목진을 뒤로하고 거대한 마차는 그들의 눈앞에 자연의 섭리를 거부하듯 사뿐히 내려앉았다.
“어찌 세상에 이런 거대한 마차가 하늘을 날아다닐 수 있는지······.”
상상도 못할 충격을 연속으로 경험한 목진은 로버트의 팔에 이끌려 우주선 안으로 들어갔다.
우주선의 문이 닫히고 간단한 제염조치를 끝낸 목진을 맞이한 것은 서역인 같기도, 중원인 같기도 한 미묘한 외모의 어린 소녀였다.
소녀가 그를 보며 어색한 중원어로 말을 걸었다.
“처음 뵙겠습니다. 나찰즈의 오퍼레이터 겸 메카닉을 맡고 있는 안드로이드, 순자에요. 잘 부탁드려요.”
목진은 생긋 웃으며 한 손을 내미는 순자를 보고 눈을 꿈벅였다. 좀 어색하긴 해도 알아듣기는 어렵지 않은 중원 말이었다. 그리고 봉인에서 깨어난 뒤로 그에게 중원말로 말을 건 것은 한 명뿐이었다.
“······정녕 네가 아까 내게 말을 걸던 밀교의 술법을 쓰는 여아가 맞느냐?”
네. 앙증맞게 고개를 끄덕이는 순자를 보며 목진이 혼란스러운 표정을 숨기지 못한 채 되물었다. 목소리를 가늠하여 젊은 여인일 거라 생각은 했지만 이건 젊다 못해 너무 어리지 않은가.
하지만 목진은 무림인이다. 그는 순자를 보며 합리적인 의심을 품었다. 무림인 중에선 젊은 동남동녀의 모습을 한 노괴들도 분명 존재하지 않는가.
문제는 자신의 기감에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아무리 무림에 기인이사가 즐비하다지만, 천하제일의 자리를 논했던 자신이 느끼지도 못할 정도의 고수라는 것은 있을 수가 없었다.
그렇기에 목진은 직설적으로 물어보는 방법을 택했다.
“네 진정한 나이가 몇이냐? 외견을 보기엔 잘 쳐 줘야 열 두셋 즈음의 여아로밖에 보이지 않는데, 혹 반로환동의 경지를 겪은 것이냐?”
“반로환동이요? 아뇨. 안드로이드가 반로환동 수술을 받을 이유가 있겠어요? 전 올해로 다섯 살이에요.”
“다섯 살!”
상상도 못한 대답에 목진이 기함했다.
오십 살, 하다못해 오백 살이라고 해도 믿을 수 있을 텐데, 다섯 살이라는 말은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다.
대관절 천하에 나이 든 사람이 무공을 배워 젊음을 되찾는 경우가 있을지언정 다섯 살 아이가 무공을 익혀 자라는 경우가 어디에 있다는 말인가.
“믿을 수가 없구나. 다섯 살이 어찌 이리 장성했으며 또 이리도 말을 조리 있게 잘 한다는 말이냐? 본존은 너를 해할 생각이 없으니 어서 사실을 말 하거라.”
“정말이라니까요? 애초에 저는 안드로이드라 무공은 못 배워요.”
“아까부터 그놈의 안드로이드인지 뭔지는 무엇을 말하는 것인지 도통 알 수가 없구나. 되었다. 그럼 이리 하자. 네가 정녕 무공을 익힌 게 아니라면, 내 직접 확인해 봐도 되겠느냐?”
까짓거 뭐, 해보세요. 목진의 말에 순자가 대뜸 팔을 내밀었다. 톡 건드리면 부러질 만큼 가늘고 얇은 팔이었다.
“······.”
목진은 반쯤 도발하듯이 내뱉은 말에 정말로 해보라는 듯 팔을 내민 순자를 무슨 속셈이냐는 듯한 표정으로 쳐다봤다. 그는 눈앞의 팔을 물끄러미 보다가 그녀의 손목을 잡았다.
‘무릇 어린아이의 체형은 땅딸막하고 젖살이 덜 빠져 팔다리가 통통하며 아랫배가 귀엽게 툭 튀어나와야 정상이거늘.’
눈앞에 있는 순자라는 아이는 키만 어린아이처럼 작지, 세세히 뜯어보면 어린아이라고 보기엔 무언가 이상한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팔다리는 아이답지 않게 가늘고 길게 뻗어있으며, 젖가슴이 없다뿐이지 전체적인 체형도 농익은 처녀의 그것처럼 굴곡이 져 있는데다 얼굴의 이목구비도 아이의 그것이라기보다는 성인의 것에 가까웠다. 아이 같으면서도 아이 같지 않은 모습이니 자연히 반로환동을 겪은 고수라고 생각할 수밖에.
그러나 의문도 이제 곧 풀리게 될 것이다. 아무리 기의 갈무리에 통달한 고수라고 한들 직접 내력을 주입하면 어떻게든 반응할 수밖에 없으니까. 목진은 그녀의 팔에서 느껴지는 근육의 감촉이 조금 이질적이라고 생각하며 천천히 내력을 흘려 넣었다.
“······음?”
뭔가 이상하다. 목진이 가장 먼저 떠올린 생각은 그랬다.
기혈이 없다. 아니, 기혈이 없는 수준을 넘어 내장이고 뭐고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는다.
심지어는 살아있는 것이라면 응당 가지고 있어야 할 한 줌의 생기조차 느껴지지 않았다.
그 말인즉, 그의 눈앞에 있는 것은 살아있는 사람이 아니라는 의미였다.
목진은 떨리는 눈으로 순자를 바라봤다. 어색한 어린아이의 껍데기를 뒤집어쓴 그것은 순진무구한 표정으로 의기양양하게 제 말이 맞지 않느냐는 듯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 모습은, 천하무림을 제패한 이후 단 한 번도 약한 모습을 보이지 않던 천마에게 처음으로 잠시나마 두려움이라는 감정을 떠올리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정보)
목진의 하반신을 가린 옷은 로버트가 입고 있던 외투다.
전 인류가 기본적으로 배우는 기초교육과정은 머리에 박힌 데이터칩으로 전송받는다. 단, 기초교육과정 이수를 증명하기 위해서는 매번 바뀌는 오픈북 테스트를 10회 이상 통과해야 한다. 어지간히 머리가 나빠도 꾸준히 공부만 하면 통과할 정도로 난이도가 그리 높지 않기 때문에 기초교육과정도 못 뗀 사람은 나이가 차도 성인이 아니라 덜떨어진 모지리 취급을 받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