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smic Heavenly Demon 3077 RAW novel - Chapter (53)
우주천마 3077-52화(53/349)
9. 낭인시장 Rusty Ebay Tortuga (6)
9. 낭인시장 Rusty Ebay Tortuga (6) – 누가 부녀 아니랄까봐
백사희의 손에 이끌린 세령이 도착한 곳은 낭인시장이 위치한 쌍둥이 행성 중 삼극회의 본성이 위치한 토투가 알파. 순자와 함께 이 일에 직접적인 관계가 없는 목진을 따로 호텔에 머물게 한 뒤 세령은 홀로 삼극회의 본성으로 향했다.
삼극회 회의전의 분위기는 우중충했다. 딱히 비장하지도, 그렇다고 너무 풀어지지도 않은 분위기. 굳이 그 분위기를 설명하자면, ‘아 흑적놈들 또 발작하네’ 하는 분위기에 가까웠다.
고작해야 지부 급에 불과한 타 흑도 세력들과는 달리, 유일하게 본성이 위치한 삼극회는 그깟 도발 한두 번쯤은 가볍게 흘려넘길 만큼 여유가 있었다. 실질적으로 토투가 낭인시장을 지배하는 삼극회의 영향력은 타 세력들 모두가 연합해야 간신히 동수를 이룰 만큼 강대할 정도였다.
어 오랜만이다. 세령을 알아본 간부 하나가 그녀를 보며 손을 흔들었다. 그의 목소리에 다른 간부들의 시선이 그녀에게로 몰리며 한 마디씩 건넸다.
너 또 무슨 사고를 쳤길래 쟤들이 저 지랄이냐. 비동에서 뭐 좋은 거 좀 건졌냐. 그동안 돈은 많이 벌었냐. 화산에서 뭔 일이 있었다던데 아는 거 있냐. 등등. 항쟁이니 뭐니 심각해보이는 상황에 비해 묘하게 친근한 태도들이었다.
당연하다면 당연한 일이었다. 여기 있는 대부분은 세령이 어릴 때부터 십 년 가까이 이 바닥에서 부대끼며 봐 온 이들이었으니까.
세령이 정식으로 삼극회에 몸을 담은 건 아니지만, 실질적으로 오랜 시간 삼극회의 사람들과 함께해온 것은 사실이기에 그녀는 반쯤 삼극회의 소속인 것처럼 대접받고 있었다. 이번에 흑적 염천성에서 삼극회에게 그녀의 신병을 내놓으라 말한 이유도 바로 거기에 있었다.
보통 때였으면 오랜만에 본 이들과 함께 회포라도 풀었겠으나, 지금은 친목을 다지기에 적절한 상황이 아니다. 세령은 간부들의 말에 대답하지 않고 시선을 정면으로 향했다.
그곳에 있는 이는 마치 산과 같은 거대함을 가진 남자였다. 이 미터가 훌쩍 넘는 키에 옷 사이로도 알 수 있을 정도로 크고 단단한 근육을 가진 중년의 사내. 백사희의 아버지이자 백적 삼극회의 회주인 백무정이다.
“오랜만이네요. 회주님.”
“이 년 만인가. 간간히 소식은 들었다.”
그 몸집에 어울릴 만큼 우렁우렁한 목소리가 회의전 안에 울려퍼졌다. 그는 서늘한 눈으로 세령을 내려다보며 말을 이었다.
“최근엔 서천검후와 마주쳤다지. 그 비무영상은 굉장히 인상 깊게 보았다. 그 동안우공이라는 자와는 어떤 관계지?”
‘혹시나 했더니 역시나.’
세령이 속으로 혀를 찼다. 흑적으로부터 그녀를 내놓으라는 요구를 받았대서 왔는데, 정작 회주의 관심은 그쪽이 아닌 다른 쪽에 가 있었다.
서쪽 우주에서 손꼽히는 절대고수인 서천검후를 압도적으로 제압한 신비고수. 사람에 대한 욕심이 많은 백무정으로서는 그냥 보고 지나칠 리가 없는 이야기다. 요즘도 가끔 세령에게 은근슬쩍 러브콜을 보내는 마당에 그만한 고수가 소속도 없이 나타났는데 오죽하겠는가.
모르긴 몰라도, 호텔에서 기다리고 있을 목진의 마음을 얻기 위해서 온갖 지극정성을 다하고 있을 것이 분명했다.
뭐 그런다고 그 자기 잘난 맛에 사는 양반이 순순히 남 밑으로 들어가겠냐마는. 그의 속셈을 어느 정도 짐작하면서도 세령은 별 걱정 없이 대답했다.
“지구에 봉인되어있던 그 양반을 깨운 게 저에요. 지금은 잠시 목적이 겹쳐서 동행 중이고요.”
“호오. 수천년 전의 고대인이라는 소문이 진짜였군 그래.”
그렇다면 아직 아무도 침 바르지 않은 무소속이라 이말이렷다? 백무정의 눈이 번뜩 빛났다.
사문의 족보니 정품무공이니 따지면서 눈앞에 인재를 두고도 데려가지 못하는 정파와 사파의 문파들과는 달리, 그 근본이 도적떼인 흑도는 인재 영입에 있어서는 그 어느 곳보다 열려있는 곳이다. 물론 그만큼 문도간의 소속감이나 단결성은 옅어지지만, 애초에 도적떼에게 정식문파만큼의 소속감을 기대하는 이는 없었다.
근본이 정파건 사마외도건, 다른 문파에서 파문되건 말건, 악명 높은 무공이건 말건, 힘만 세면 그만. 흑도의 인재 영입 기준은 의외로 대단히 유연한 편이었다. 당연히 상대가 그 근본을 알 수 없는 고대인이라는 것은 고민할 가치도 없는 문제였다.
“고 선생.”
“접대등급을 특급으로 올리겠습니다.”
백무정의 말에 회의실 한쪽에 앉아있던 마른 사내가 안경을 밀어올리며 대답했다. 특급의 접대등급이라면 말 그대로 귀빈 이상으로 극진히 대접한다는 의미였다.
사내란 무릇 자신을 알아주고 대접해주는 이를 위해 움직이는 법. 아니, 애초에 삼극회에 영입까지는 바라지도 않았다. 그 서천검후를 발 아래 두는 절대고수인데 아무리 육적의 일원이라 해도 일개 흑도 문파의 밑으로 들어가겠는가.
하지만 동안우공 이목진과 우호적인 관계를 다져둘 수만 있다면 그깟 접대비용 쯤은 아무 것도 아니다. 현대 무림의 이해관계에 얽히지 않은 절대고수란 백 년에 한 번 나올까말까 한 기회. 백무정은 넓게 보고 과감하게 그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을 배팅했다.
사람을 얻기 위해 천금을 부을 수 있는 남자. 백무정은 의리를 중히 여기는 흑도의 기준에서는 더없이 그릇이 큰 사내였다. 세령은 노골적으로 사람 욕심을 내는 그가 부담스러우면서도 한편으로는 그 배포를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백무정의 시선이 조금 부드러워졌다. 그로서는 목진을 데려온 세령에게 상이라도 주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가 세령을 향해 입을 열었다.
“부탁 하나 하마.”
“싫어요.”
“······아직 이야기도 꺼내지 않았다.”
“보나마나 동안우공이랑 연결다리를 놓아달라고 할 거 아니에요.”
쯧. 백무정이 가볍게 혀를 찼다. 하루이틀 본 사이가 아닌 만큼, 세령은 이미 그가 할 부탁이 무엇인지 간파하고 있었다. 고 선생이라 불리었던, 삼극회의 책사 역할을 맡고 있는 마른 사내가 입을 열었다.
“삼극회에 들어오라고 설득하라는 게 아닙니다. 물론 그게 가능하다면야 더할 나위 없겠지만, 현실적으로 무리가 있지요. 회주님께서는 그저 동안우공과의 개인적인 친분을 원하실 뿐입니다. 소저께 바라는 것은 단지 동안우공의 옆에서 약간의 바람만 잡아주시면 됩니다.”
“나 그런 거 잘 못 해요. 거기에 그 양반한테 빚진 게 있어서 수작 부리기도 마음에 걸리고.”
세령은 미간을 좁히며 고개를 저었다. 얼굴도 모르는 머나먼 선조의 빚을 갚기 위해 처음 보는 자신의 복수를 돕겠다는 목진이다. 그런 그에게 수작질을 벌일 만큼 세령은 낯짝이 두껍지 않았다.
‘차라리 어디 촌구석 행성에 가서 돈 될 물건을 찾아오라는 부탁이 마음이 편하지. 이걸 어떻게 거절한다······.’
사실, 삼극회주의 부탁은 그녀로서도 부담스럽긴 했다. 삼극회로부터 명령을 받는 입장은 아니지만, 그들과의 친분 덕에 이래저래 호의를 받아 온 것은 사실. 이런 식으로 애매한 청탁을 한다면 거절하기가 쉽지 않았다.
세령이 핑계거리를 떠올리기 위해 머리를 굴리는 것을 간파한 백무정의 눈길이 다시 차갑게 가라앉았다.
“됐다. 억지로 시켜봐야 일만 그르칠 뿐이지. 특히 너처럼 반골인 사람은 더 그렇고. 그 일은 우리가 알아서 할 테니 없던 일로 하겠다. 어차피 너는 회의 사람이 아니라 외인일 뿐이지 않는가.”
백무정의 서늘한 눈길을 받은 세령이 움찔 몸을 떨었다. 괜히 대놓고 거절했다는 생각이 그녀의 뇌리를 스쳤다. 아직 본론은 시작하지도 않은 상황이었으니까.
‘설마 이거 하나 거절했다고······?’
그리고 세령의 예감은 적중했다.
백무정은 사람을 얻고자 할 때는 대범하게 투자하는 남자였지만, 그와는 별개로 뒤끝 하나는 끝내주게 강한 남자였다.
“네 바람대로 공사는 철저히 해야겠지. 본론을 말하마. 며칠 전 염천성주로부터 네 신병을 양도하라는 요청이 왔다. 그 머저리는 곧 죽어도 네가 삼극회의 소속이라 생각하더군. ······물론, 우리에게 회의 사람도 아닌 너를 보호해 줄 의무는 없다는 건 알고 있겠지.”
“······진짜 이렇게 나오시기에요? 지금까지 내가 해준 게 얼만데.”
세령이 어처구니없다는 듯이 되물었다. 흑도의 종자들이 노골적으로 이해득실을 따라 움직이는 경향이 있다지만, 아예 협상의 여지도 없이 말하는 건 좀 아니지 않은가.
애초에 세령도 삼극회 측에서 순순히 그녀를 보호해 줄 거라고는 기대하지도 않았다. 단지 전후사정을 듣고싶다 하며 협상을 하자는 신호를 보내기에 따라왔을 뿐.
‘이 인간이 진짜.’
세령의 눈에 반발심이 담겼다. 물론 장소가 장소인 만큼 대놓고 들이받을 생각은 없었지만, 은연중에 불편한 심기가 드러나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그녀가 이래저래 편의를 받은 게 많다곤 하지만, 세령도 그만큼 삼극회 측에 도움을 줬다. 삼극회로부터 정식으로 의뢰를 받은 건 아니었지만 친분이 있는 이사진들의 의뢰들을 해결해 줬으니 결국은 삼극회에 도움을 준 셈이라고 볼 수 있으니까.
그동안 나름 받은 만큼은 해 주면서 살아왔다고 생각했는데, 그깟 사소한 청탁 한 번 거절했다고 대번에 태도를 바꿔버리니 세령의 기분이 확 상하는 것도 무리가 아니었다.
그녀의 심기가 불편해진 것을 알아챈 고 선생이 재빨리 두 사람 사이에 끼어들며 중재를 했다.
“자. 회주님, 일단 처음에 정한 대로 이야기부터 듣고 나서 생각하지요. 세령 소저도 일단 비동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부터 이야기해 보시고. 서로 모르는 사이도 아닌데, 서로의 상황을 잘 활용해서 윈-윈 하는 게 좋지 않겠습니까?”
끼어드는 타이밍이 좋다. 고 선생의 말에 세령이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백무정은 여전히 그의 부탁을 거절한 건에 대해 꽁해 있는 느낌이었지만, 괜히 쓸데없는 말로 상황을 악화시킬 정도로 생각이 없는 인물은 아니었다.
“그래, 일단은 비동에서 흑적 놈들하고 무슨 일이 있었는지부터 말해 봐라.”
“맞아. 저 놈들이 왜 또 저러는지 이유부터 파악해야 할 거 아냐.”
“흑적 놈들 요즘 자꾸 신경 거슬리게 하는데 한번 밟아 줄까?”
이런 상황에 익숙한 간부들이 분위기 전환을 위해 한 마디씩 하며 고 선생의 말을 거들었다. 세령은 그들에게 미리 오는 동안 정리해 두었던 이야기를 꺼냈다.
“비동에서 필츠버그인가 뭔가 하는 놈을 만났어요. 자기 아빠가 염천성 본성에 원로로 있다면서 잘난 척을 오지게 하던 놈인데, 수하들을 줄줄이 끌고 왔더라고요. 동행하면서 하도 성질을 긁어대길래 담식검귀의 비급을 손에 넣을 때 반쯤 죽여놨죠.”
그게 전부에요. 세령이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정말 별거 아닌 놈이었다. 나름 좋은 내공 드라이브도 끼고 있는 주제에 세령에게 일방적으로 두드려맞았을 정도니까.
솔직히 말하자면, 오늘 흑적에 대한 이야기를 듣기 전까지 그녀는 필츠버그라는 놈에 대해서 까맣게 잊고 있었다. 그런 잔챙이 하나하나까지 기억하기엔 그동안 그녀가 겪은 일들이 워낙 스펙터클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녀의 생각과는 달리 필츠버그라는 놈이 마냥 잔챙이인 것만은 아닌 듯, 간부들 중 몇몇이 아는 체를 했다.
“필츠버그? 필츠버그면 섬광열권의 막내아들 아냐?”
“아 그 망나니?”
“섬광열권이 첫째랑 둘째는 잘 키웠어도 막내 농사를 거하게 말아잡수셨다던데, 정말인가보네.”
섬광열권이라면 염천성 본성에서도 염천성주 다음갈 만큼의 영향력이 있는 원로급 간부다. 간부들의 말에 세령이 마른침을 삼켰다. 말하는 것에 비해 워낙 무공이 한심해서 별 거 아니겠거니 하고 넘어갔는데, 정말로 거물급의 아들내미였던 것이다.
“고작 그 정도로 이몸에게 이빨을 드러냈다? 염천성주 그놈이?”
백무정이 눈가를 꿈틀거렸다. 염천성주 자신의 자식도 아니고 고작 간부의 자식 때문에 그가 직접 움직일 리가 없다. 그런데도 그가 움직였다면, 분명 다른 꿍꿍이가 있다는 의미이리라.
요즘들어 점점 노골적으로 세력을 불리고 있는 염천성. 그리고 다른 육적들 사이에 흐르는 미묘한 분위기. 이제야 조금 그림이 그려진 백무정이 와락 미간을 찌푸렸다.
“그간 조용하다 했더니 감히······.”
세령의 일은 단지 구실에 불과하다. 본격적으로 분쟁을 키우기 위한 구실 말이다.
그들은 판을 흔들려 하고 있었다. 삼극회가 주도하는 토투가의 세력 판도를 뒤바꾸기 위해.
“항쟁을 원한다면 해 줘야지.”
흑도의 세계에서 걸어오는 도전을 피할 수는 없다. 그들을 유지하는 가장 중요한 근간인 체면이 상하기 때문이다. 체면을 지키지 못한 흑도가 어찌 이 바닥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까.
이곳 토투가에서 감히 삼극회의 이름에 도전하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그들의 뼛속까지 새겨주리라. 백무정의 눈이 스산하게 번뜩이고, 간부들 사이에 흉흉한 기색이 풍기기 시작했다.
그러나 삼극회의 일원 중 오직 단 한 사람만은, 차가운 냉정을 유지하고 있었다.
“안 됩니다.”
고 선생의 단호한 부정에 백무정의 눈이 휙 돌아갔다. 감히 흑도의 체면을 지키는 일에 찬물을 끼얹은 고 선생을 보는 그의 눈에 살기가 담겼다.
하지만, 삼극회의 지낭으로서 산전수전을 다 겪은 고 선생은 고작 그 정도로 겁먹을 만큼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그는 손톱만큼도 당황하지 않고 동그란 안경을 슥 밀어올리며 입을 열었다.
“지금 토투가 낭인시장에 풀려있는 매물량은 금년 최대치입니다. 낭인시장에서 들어오는 수익이 최고점을 찍는 상황에서 문파 간 항쟁으로 상권을 침몰시킬 일 있습니까? 거기에 이번에 사재기해 놓은 우주선 연료들도 한가득입니다. 항쟁이 시작되고 판로가 막히면 이번에 만기되는 어음은 어떻게 막고요?”
“······.”
회의전이 삽시간에 조용해졌다.
체면이고 나발이고, 흑도에게 있어 가장 중요한 건 결국 돈이다. 그런 의미에서 고 선생의 말은 고작 찬물이 아니라 아예 얼음물을 끼얹은 꼴이나 마찬가지였다.
돈 문제 앞에서 감히 항쟁 이야기를 꺼낼 만큼 체면이 머리를 지배한 이는 없다. 심지어 삼극회주인 백무정조차도 말이다.
자본주의 앞에서 강제로 진정당한 백무정이 어쩐지 조금 주눅든 목소리로 물었다.
“······하지만 우리가 싫대도 저들이 항쟁을 시작할 텐데.”
그들이 싸우기 싫다고 해결되는 문제가 아니다. 저들은 이미 항쟁을 부르짖고 있었으니까. 아마 삼극회가 침묵한다면 무슨 구실이든 만들어서 전면적인 항쟁을 시작하리라.
하지만 방법은 있다. 고 선생이 안경을 번뜩였다.
“공식적인 항쟁은 안됩니다. 하지만 비공식적으로 그들이 항쟁을 벌이려는 의지를 꺾을 수는 있지요.”
“무슨 말이지?”
“조만간 토투가 랠리가 시작됩니다. 알고 계시지요?”
토투가 랠리.
오 년에 한 번씩 토투가의 폐허와 위험지대들을 무대로 벌어지는 호버 바이크 경주로, 어마어마한 상금으로 인해 수많은 무림인들이 참여하는 우주 최대의 레이스였다.
매 회차마다 낭인시장에서 제공하는, 상식을 가볍게 뛰어넘는 우승상품들로 인해 육적일채는 물론 때때로 정사마의 무림인들도 참가할 만큼 거대한 규모의 레이스. 이 자리에서 토투가 랠리가 열리는 것을 모르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섬광열권은 물론, 염천성을 포함한 육적 대부분의 주력들이 이번 토투가 랠리에 참가한다고 합니다. 여기까지 이야기했다면 회주님께서도 알아채셨겠지요.”
“······대회 중에 그들을 최대한 처리해 주전파의 기세를 꺾자는 건가.”
“그렇습니다.”
토투가 랠리에서 사람이 죽어나가는 것은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다. 아니, 오히려 지극히 정상적인 일이랄까. 이 토투가 랠리는 사상율이 절반을 넘어서는 죽음의 레이스였다.
토투가 랠리는 그냥 레이스가 아니라 무림인들의 레이스다. 요컨대, 약간의 제한이 가해지긴 하나 마음껏 무기와 무공을 사용할 수 있다는 이야기. 무서울 정도로 대회의 사상율이 치솟는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었다.
위험한 코스를 돌파하기 위한 호버 바이크 조종실력은 기본에 경쟁자들과 싸우기 위한 무공실력까지 요구되는 배틀로얄 레이스. 이곳 만큼 당당하게 누군가를 척살하기 좋은 곳이 어디 있을까.
실제로 원한의 청산을 위해 레이스에 참가하는 이들도 적지 않았다. 하지만 그럼에도 막대한 상금과 우승상품으로 인해 매 회마다 참가자가 끊이지 않는 대회. 그것이 바로 토투가 랠리였다.
“좋다. 그렇게 하지. 토투가 랠리에 참가할 간부들과 문도들을 선별하도록.”
머릿속으로 계산을 마친 백무정이 고개를 끄덕였다.
토투가 랠리 안에서 일어난 일이라면 대회 밖으로 끄집어내지 않고 조용히 마무리가 가능하다. 물론 그쪽에서도 비슷한 생각을 할 수도 있지만, 그건 실력으로 누르면 그만인 이야기였다.
“그리고 이번 일에는 세령 소저도 참가해 주셔야 겠습니다.”
“······나요?”
고 선생이 이번에는 고개를 돌려 사태를 관망하고 있던 세령을 바라봤다. 세령은 떨떠름한 얼굴로 자신을 가리켰다. 고 선생이 옅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세령 소저의 솜씨야 말할 것도 없고, 두 명 혹은 세 명이 한 팀이니 동안우공 대협과 함께 하면 더욱 좋겠지요. 그리고 무엇보다.”
소저께서는 이 대회에 반드시 참가해야 할 이유가 있습니다. 고 선생의 말에 세령의 미간이 좁혀졌다.
“이유요?”
“백사희 아가씨께 듣기론, 소저께서 드디어 새 내공 드라이브를 구하고자 이곳에 오신 거라고 들었습니다만.”
“······그렇긴 한데요.”
그 이야기가 여기서 왜 나오지? 세령이 떨떠름한 얼굴로 그의 말에 수긍했다. 갑자기 왜 내공 드라이브 이야기를 꺼내는 건지 몰라도, 그게 토투가 랠리와 무슨 상관이라는 말인가.
고 선생이 빙긋 웃었다. 마치 당신은 이 일에서 빠질 수 없다고 말하는 듯한 미소였다.
“이번 레이스 우승상품이 바로 알파 프라임 급 내공 드라이브 코어입니다.”
그 말을 듣고, 세령은 처음부터 자신에게 선택지가 없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정보)
토투가 낭인시장은 쌍둥이 행성인 토투가 알파와 베타 양쪽에 자리잡고 있다. 두 행성의 사이에 있는 지형들은 서로를 끌어당기는 인력 때문에 매우 불안정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