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smic Heavenly Demon 3077 RAW novel - Chapter (54)
우주천마 3077-53화(54/349)
9. 낭인시장 Rusty Ebay Tortuga (7)
9. 낭인시장 Rusty Ebay Tortuga (7) – 바이크는 로망
“토투가 랠리? 그게 무엇이냐?”
최고급 소파에 몸을 뉘인 채 와인을 홀짝이던 목진이 한쪽 눈썹을 치켜올렸다. 이런 호화로운 대접이 익숙한 듯 편안하기 그지없는 모습이었다.
“호버 바이크 타고 하는 배틀로얄 레이스요.”
“호버 뭐?”
세령의 말을 알아듣지 못한 목진이 눈을 꿈벅이자 순자가 알아듣기 쉽게 통역해 줬다.
“엄청 빠른 마차를 타고 도착점까지 누가 더 빨리 가는지 경주하는 거에요.”
“흠······경주라.”
목진의 머릿속에 전설 속 적토마가 끄는 화려한 황금색 마차를 타고 상대와 함께 대로를 휘날리는 그림이 그려졌다. 세령이 딴지를 걸었다.
“무슨 생각하는 지 대충 상상은 가는데, 그런 거 아니에요.”
“지난번 대회 영상인데 한번 보실래요?”
목진은 순자가 건넨 패널을 받아들었다. 지난번 토투가 랠리의 하이라이트를 담은 편집 영상이었다. 영상을 보는 목진의 눈동자가 아득해졌다.
다리 없이 공중에 떠 있는 거대한 강철의 기계 위에 말처럼 올라탄, 수천에 달하는 무림인들이 엎치락 뒤치락 하며 질주하는 모습. 목진이 상상했던 경주와는 우주적 단위로 차이가 나는 광경이었다.
“저기 저 치는 암기를 던지는 것 같은데, 저쪽에선 아예 검을 맞대고 있고. ······분명 경주라 하지 않았더냐?”
“네 뭐, 경주죠. 사람 여럿 죽어나가는.”
“경주가 아니라 기병들 간의 싸움 같다마는.”
“그 시대 기병들도 남이 타고 있던 바이크에 막 올라타고 그랬어요?”
“······.”
허이고. 범퍼카처럼 밀쳐진 호버 바이크 하나가 절벽에 돌진해 거대한 폭발에 휩싸이는 광경을 본 목진이 저도 모르게 인상을 찡그리며 뒤로 물러섰다.
“말은 터지지라도 않지 저 기관장치는 무슨 화약이라도 들었나······.”
“뭐 들어가는 연료가 폭발물 비스무리하긴 하죠.”
“······보기에 재미는 있어보이는구나.”
영상을 다 본 목진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겪어본 적 없는 새로운 방식의 경주에 나름 흥미가 동하기는 하는 모양이었다.
하지만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다. 한낱 유희거리 때문에 본래의 목적을 망각할 수는 없는 법. 목진이 조금 진지해진 목소리로 물었다.
“헌데 어째서 저 경주에 나갈 생각이더냐? 내 분명 내공 드라이브를 사러 이곳에 온다 들었는데.”
“그 내공 드라이브 때문이에요. 우승 상품인 코어가 최상급 내공 드라이브를 만들기 위한 핵심 부품이거든요.”
그냥 다른 곳에서 사면 되지 않느냐? 목진이 영 마뜩찮은 표정으로 물었다. 우주 제일의 규모라는 낭인시장인데 그깟 부품 하나 못 구하는 것도 이상하지 않은가. 아니면 아예 완성된 물건을 사도 되고 말이다.
“상급의 내공 드라이브는 원래 사용자한테 맞게 주문제작을 해야 돼요. 근데 문제는 베타급 이상의 코어가 이 낭인시장에도 몇 개 없다는 거죠. 가격은 둘째치고 희귀하거든요. 그리고 지금 올라온 매물들을 봐도 영 상태가 안좋은 것들 뿐이고요.”
“왕언니는 돈 굳을 생각에 참가하는 거잖아요. 그거 외에 상금도 많이 주고.”
“너 조용히 안 해?”
순자의 뼈아픈 일침에 세령이 고개를 홱 돌렸다. 목진이 그럼 그렇지 하는 눈초리를 보냈다. 혹여 최상급 내공 드라이브를 살 돈을 모으느라 돈에 집착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했지만, 그냥 천성이 돈귀신이었던 것이다.
세령이 조금 붉어진 얼굴로 변명했다.
“아니 그런 이유도 없는 건 아니긴 한데요, 변명이 아니라 진짜 상황이 그래요. 그나마 좀 써볼만한 것들은 염천성 쪽 매물들이라 건들 엄두도 안 나고요.”
베타 등급이라도 약간의 출력 저하는 있을지언정 최상급 내공 드라이브를 제작하는 데에는 부족함이 없다. 하지만 문제는 그나마 있는 괜찮은 매물들이 대부분 염천성이나 그와 관련된 조직의 매물들이라는 것.
최상급 내공 드라이브의 재료는 기본적으로 낭인시장에서도 특급으로 분류되는 중요 상품들이다. 보통 때도 아니고 본격적인 항쟁을 준비하는 지금 상황에서 그들이 미쳤다고 삼극회 쪽 인물인 세령에게 그 물건을 팔겠는가.
“말은 그렇게 하긴 했지만, 왕언니 말도 일리가 있어요.”
세령의 말대로, 현재로서 그녀가 내공 드라이브를 구할 가능성이 가장 높은 쪽은 토투가 랠리를 우승하는 것이다. 아니면 경기 중 최대한 다른 조직들의 주력을 처리해서 항쟁의 여력을 강제로 없애던가. 과열된 항쟁의 분위기만 가라앉는다면 그들도 다시 거래를 시작할 것이다. 흑도의 근본은 자본주의였으니까.
“흐음······좋다. 내 너와 함께 그 랠리인지 뭔지에 나가 주마.”
순자의 객관적인 설명을 들은 목진이 잠시 생각에 잠긴 뒤 고개를 끄덕였다. 돈귀신인 세령의 말은 믿을 수 없어도 순자의 객관적이고 분석적인 말은 비교적 믿을 만 했다.
그리고 솔직한 속내를 말하자면, 영상으로 본 토투가 랠리의 모습에 구미가 당기는 것도 있었다.
굉음을 토해내며 전설 속 적토마조차 감히 겨루지 못할 빠른 속도로 공중을 질주하는 호버 바이크의 위용. 그 모습을 보며 어쩐지 가슴이 두근거렸던 것이다.
목진의 말에 세령이 함박웃음을 지었다.
“잘 생각했어요 아저씨. 아저씨가 도와준다면야 우승도 노려볼 만 하거든요.”
“좋은 자세다. 기왕 나가는 것이니 우승을 해야지.”
하면 이제 무엇부터 해야 하겠느냐. 목진이 모처럼 의욕적인 모습을 보이며 물었다.
“당연히, 우리가 탈 머신부터 만들어야죠.”
세령이 씨익 웃으며 창 밖을 가리켰다. 창 밖 저 멀리 토투가 낭인시장의 모습이 보였다.
“레이싱용 호버 바이크는 기성품도 많이 있지만, 역시 자기 스타일에 맞게 튜닝하는 게 제일 중요하죠. 제일 중요한 건 프레임이랑 엔진. 제가 나름 여기서 자라가지고 이래저래 아는 파츠숍이랑 튜닝 전문가들이 몇 명 있는데······.”
미로처럼 복잡한 토투가 낭인시장의 거리를 거침없이 거닐며 세령이 호버 바이크 튜닝에 대한 이야기를 줄줄이 늘어놓았다. 목진은 처음부터 알아듣지도 못할 이야기를 흘려넘기며 호기심어린 얼굴로 사방을 둘러보는 중이었다.
제각각 중구난방으로 자리잡은 건물들과 그런 건물들 사이로 다닥다닥 자리잡은 상인들. 그 용도조차 알 수 없는 별의별 물건들을 가져와 흥정을 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면, 과거 관아의 눈을 피해 은밀하게 열렸던 흑시장이 떠올랐다. 단지 흑시장과 다른 점이 있다면, 머리 위까지 온통 장사치들과 손님들로 가득하단 점 정도일까.
건물 윗층에선 재주도 좋게 낭인시장까지 들어온 소형 우주선들을 상대로 장사를 하고, 하늘 위에서는 그보다 큰 우주선들을 대상으로 방문 판매상들이 정신없이 돌아다닌다. 일부 손님들은 아예 경공을 쓰거나 소형 부스터를 써서 직접 위쪽의 층으로 올라가는 이들도 보일 정도였다.
하지만 목진의 시선을 잡아끄는 것은 그런 광경보다는 장사치들이 진열해놓은 상품들. 특히 무림에 관련된 상품들 쪽이었다.
‘행운의 무공비급 뽑기 단돈 500 크레딧’이라 적힌 상자. 핏자국도 채 닦지 않고 올려놓은 중고 외장형 내공 드라이브. 수류탄 쯤은 가볍게 막아낼 수 있다는 배리어 코팅 무복. VR강의가 첨부된, 색곡 인증마크가 붙은 S급 색공비급. 외공 강화용 장갑패널과 인공골격. 방사능 마크를 붙여 꽁꽁 밀봉시킨 독병. 캡슐형 전뇌 수련기구 세트. 칼날에 플라즈마 톱날이 붙은 개조 환도. 마약성 진통제와 각성제를 블렌드한 특제 금창환. 일류의 무공 초식이 입력된 외골격 강화슈트 등등······.
하나같이 이건 무슨 물건인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기기묘묘한 상품들이었다. 도무지 어디에 쓰이는 물건인지 감도 잡히지 않는 신비한 것들. 목진은 연신 감탄을 터트리며 신나게 토투가 낭인시장을 관광하는 중이었다.
“저기 아저씨, 내 말 듣긴 했어요?”
“세령아. 저기 ‘우주무림고수대사전 3077년 개정판’이란 책이 있구나. 잠깐만 기다리거라. 저걸 좀 사서 읽어봐야겠다.”
“하······.”
“포기해요 왕언니. 목진 님은 아까부터 왕언니 말 하나도 안 들었거든요.”
그리고 솔직히 호버 바이크 튜닝 이야기 하나도 재미없어요. 가차없는 순자의 말에 세령의 어깨가 축 처졌다. 받아줄 사람 없는 취미 이야기란 으레 그렇듯 공허한 법이었다.
낭인시장 외곽 지역에 들어선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세 사람은 한 건물 앞에 도착했다. 겉보기로는 단순히 커다란 창고로만 보이는 투박한 건물. 만약 입구에 ‘글로리 바이크 공방’이라고 새겨진 작은 나무패가 없었다면 공방인지도 몰랐을 것이다.
삑삑삑. 세령은 제 집에 들어가듯 자연스러운 동작으로 공방 문에 비밀번호를 입력한 뒤, 문을 열며 소리쳤다.
“로리 할배! 여기 있지? 나 세령이야!”
“······비밀번호 누를 때부터 너인 거 알고 있었으니까 소리 좀 지르지 마라. 이 망할 꼬맹이.”
세령의 말에 화답하듯, 공방 한쪽에서 들려오는 걸걸한 남자의 목소리. 목진과 순자의 시선이 목소리가 들려온 쪽으로 향했다.
그곳에 서 있는 건 대머리와 덥수룩한 턱수염이 인상적인, 눈에는 고글을 쓰고 입에는 시가를 꼬나문 사나운 인상의 노인이었다. 노인은 세령이 달갑지 않은 듯 그녀를 보며 대놓고 인상을 찌푸리고 있었다.
“로리 할배. 오랜만.”
“내 이름은 글로리라고 몇 번을 말해야 알아듣냐. 그리고 오랜만은 얼어죽을. 현상금 사냥꾼으로 지 혼자 잘 먹고 잘 사는 놈이 이 거지소굴에는 무슨 일로 왔어.”
노인, 글로리는 세령의 인사에도 얼굴을 구기며 퉁명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나 메카닉이요’하고 선언하기라도 하듯, 노동으로 다져진 팔뚝의 문신이 그가 입을 열 때마다 꿈틀거렸다. 세령의 태도와는 달리 그리 친밀한 관계로 보이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런 반응은 세령에게만 한정된 것이었을까. 세령을 보자마자 뭐 씹은 얼굴을 하던 글로리는 이내 그녀의 뒤에 서 있는 목진과 순자를 보며 조금 누그러진 표정을 지었다.
“뭐야, 의뢰 알선이냐? 웬일로 네가 일거리를 물어다 주는지는 모르겠지만, 마침 타이밍이 좋군. 요즘 분위기가 어수선해서 그런가 영 장사가 시원찮아.”
“이 두 사람은 동료. 내가 넣는 정식 튜닝 의뢰야 할배. 토투가 랠리에 나갈 머신이 필요해.”
세령의 말에 글로리의 얼굴이 다시 와락 구겨졌다. 그는 세령을 향해 중지를 들어올렸다.
“이거나 먹어. 만약에 상금 타서 갚는다는 개소릴 또 지껄이면 호버 바이크 엔진 뒤에다 매달아버린다.”
“뭐야, 고객한테 이래도 돼?”
“돈 없는 놈은 고객으로 취급 안 해. 동네에 굴러다니는 멍멍이란 소리지.”
“흐, 과연 그럴까?”
세령이 씨익 웃으며 글로리의 앞에 단말기를 내밀었다. 단말기 패널에 표시된 것은 뱅크 오브 갤럭시 전장의 계좌 화면. 그 안의 숫자를 읽은 글로리의 눈이 지진이 일어난 듯 세차게 흔들렸다.
“이건······?”
보면 몰라? 세령이 자신만만하게 고개를 치켜들었다. 목진이 보기에도 영 재수가 없는 몸짓이었다. 하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계좌 잔고의 힘은 막강했다.
“잔고가 말하고 있잖아. 할배 눈앞에 의뢰주님이 계시다고.”
“······하.”
그녀의 말에 잠시 침묵한 글로리는 이내 거칠게 시가를 빼 재떨이에 비벼 껐다. 거기까지 걸린 시간이 대략 오 초. 이내 세령을 향해 돌아온 그의 눈은, 조금 전과는 완전히 딴판으로 변해 있었다.
그가 입을 열었다.
“어디까지 알아보시고 오셨어요, 고객님?”
그의 목소리는 지독히 어울리면서도 지독히 어울리지 않는, 친절하기 그지없는 목소리였다.
정보)
토투가 랠리에서는 소형 화기와 암기의 사용은 물론, 아예 대놓고 상대방 바이크에 뛰어올라가 공격하는 것도 허용이 된다.
행운의 무공비급 뽑기에는 수백 개의 삼류~이류 무공과 한두 개의 절정급 무공이 있다. 말 그대로 뽑기다.
전국구 무림인에게 배리어 코팅 무복은 기본 아이템이다. 기껏 고생해서 무공을 익혔는데 운 나쁘게 총알 맞고 죽으면 그만큼 억울한 일이 없기 때문이다.
이 시대의 외공은 수련 사상에 따라 여러 가지의 계파가 있다. 순수 육체를 단련하는 순수파부터 해서 약물로 육체강화를 시도하는 강화파, 신체를 사이보그로 개조하는 개조파 등이 가장 메이저한 계파다.
개조파 외공고수들은 피부 아래에 작은 장갑패널 조각들을 이식하여 방어력을 얻고, 뼈를 인공골격으로 교체해 상상을 초월한 강도를 얻는다.
무림고수대사전은 패전가에서 매년 갱신하여 발간한다. 내년 갱신본에는 동안우공 이목진 항목이 추가될 예정이다.
세령은 호버 바이크를 상당히 좋아하고, 또 그만큼 잘 다룬다. 다만 조금 매니악한 덕후 끼가 있어 순자나 목진에게는 좀처럼 이해받지 못한다.
글로리 모건은 세령이 어릴 때부터 이어온 인연이다.
세령은 과거 글로리에게 상금 따서 호버 바이크 제작비용을 값겠다는 개소리를 했다가 머리에 3층짜리 혹이 생긴 적이 있다.
글로리가 자본주의에 굴복한 것은 돈이 많아야 호버 바이크 덕질을 수월하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순정 비용부터 부품 비용, 튜닝 비용까지 호버 바이크 덕질은 상상 이상으로 돈이 많이 깨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