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smic Heavenly Demon 3077 RAW novel - Chapter (57)
우주천마 3077-56화(57/349)
10. 기물경주 Deadly Hover Bike Rally (2)
10. 기물경주 Deadly Hover Bike Rally (2) – 세상에 꼴이 그게 뭐니 남사스럽게
“근 두 달여 만이군요.”
“······별로 반갑지는 않은데.”
사무적인 표정으로 인사를 건네는 김성범을 보며, 세령은 떨떠름하기 그지없는 표정을 지었다. 고작 두 달 전까지만 해도 목숨 걸고 우주선 추격전을 펼쳤던 상대를 눈앞에 두고 반가울 턱이 있을리가.
“흥. 이쪽이 할 소리입니다.”
그것은 김성범 쪽도 마찬가지였다. 그들이 습격한 쪽이긴 하지만, 수많은 부하들과 우주선들을 저세상으로 보내버린 흑표채의 원수가 바로 눈앞의 여인이다. 세령을 보고 대꾸조차 않고 고개를 돌린 그는 목진을 보며 가볍게 포권을 했다.
“대협께서 주신 기연 덕분에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뒤늦게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나도 그때의 무공을 견식하여 얻은 것이 적지 않았으니 그렇게 말할 것 없느니라.”
“그리 말씀해주신다면 다행입니다.”
반면, 목진에 대한 성범의 태도는 깍듯하기 그지없었다. 당시 세령의 우주선에 타고 있기는 했지만 일행이라기보다는 단순한 객에 불과한 위치였고, 오히려 성범과의 비무를 통해 기연을 준 은인이기 때문이었다.
물론, 반쯤은 서천검후조차 쓰러트린 목진을 적대할 수 없다는 지극히 현실적인 판단에서 비롯한 핑계였지만 말이다.
“볼 일이 있어 토투가에 왔는데, 마침 대협께서 이곳에 거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어 인사도 드릴 겸 해서 찾아오게 되었습니다. 갑작스런 방문이 대협께 실례가 되지는 않았을 지 걱정이군요.”
겁나 실례인데. 세령이 다 들리게 중얼거렸지만 성범은 그녀를 무시했다. 다만 그의 이마에 핏줄이 한 가닥 솟았다.
“그럴 리 있겠느냐. 내 이곳에 와서 맺은 몇 없는 인연인데 잊지 않고 찾아와 주니 고마울 따름이구나.”
반면 목진은 성범이 찾아와 준 것이 못내 기꺼운 모양이었다. 어째 있지도 않은 손자를 보는 느낌이라고나 할까. 세령이 그런 목진의 뒤에서 중지를 치켜올렸다.
성범의 누이인 팔척투귀 엘레나 김에 대해서는 건방지다며 그리 좋지 않은 인식을 가지고 있는 목진이었지만, 오히려 성범에겐 훨씬 좋은 인상을 가지고 있었다. 남녀노소 불문하고 호쾌한 행보로 인기있는 엘레나에 반해 흑도문파인 녹림의 채주로서 그리 좋은 인식이 박혀있지 않은 성범을 생각하면 아이러니한 일이었다.
애초에 마인으로 불리우던 천마신교의 무인들과 부대끼며 살아가던 목진에게 흑도라는 것은 그다지 거슬릴 것도 아니거니와, 부족한 스스로를 알고 있음에도 고수인 자신과의 비무에서 투지를 잃지 않고 최선을 다해 임했다는 점에서 목진은 성범에게 제법 후한 점수를 주고 있었다. 물론 엘레나는 그 투지가 넘치다못해 정도를 넘어섰지만 말이다.
“헌데 이곳에는 무슨 일로 왔느냐? 뭔가 사러 온 것이냐?”
토투가라면 당연히 낭인시장에 볼 일이 있는거겠지. 목진의 생각과는 달리, 성범은 가만히 고개를 가로저었다.
“보통은 그런 용무로 오지만, 이번은 조금 다릅니다. 혹 얼마 후에 열리는 대회인 토투가 랠리에 대해 알고 계십니까?”
“엥?”
성범의 말에 세령이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녀가 설마 하는 표정으로 성범을 쳐다봤다. 목진이 의외라는 표정을 지었다.
“대충은 알고 있다. 헌데 그 대회에 나가는 것이더냐? 기마술에도 재주가 있을 줄은 몰랐구나.”
“알고 계시다면야 이야기가 쉽겠군요. 이번에 상금이 꽤나 크게 걸려서 말이죠.”
성범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얼마 전 세령과 엮이며 일어난 일련의 사건들 때문에 흑표채의 재정이 영 마땅치 않은 상황. 이런 때 토투가 랠리 같은 대규모 대회의 상금은 꽤나 짭짤하기 마련이다. 특히나 각종 호버 바이크 대회에서 꾸준히 상위권에 들고 있는 성범 같은 경우라면 더더욱.
“일이 재미있게 돌아가는구나. 세령이도 그 대회에 참가하게 되었는데.”
“호오, 염화나찰 소저께서도 말입니까?”
성범이 세령 쪽을 흘긋 바라봤다. 과거와는 달리 염화쾌검이 아니라 염화나찰이라고 부르는 성범의 어투에 세령의 눈가가 꿈틀 움직였다. 그런 그녀를 놀리듯, 성범의 입가가 비죽 올라갔다.
“조종실력이야 나무랄 데 없어 보입니다만, 과연 그녀의 무공실력이 버텨줄 수 있을런지 모르겠군요. 토투가 랠리는 다른 호버 바이크 대회랑은 달리 무공도 받쳐줘야 하는데 지금의 그녀로선······.”
“너 씨바 방금 뭐라 그랬냐?”
“왕언니 진정 좀 해요!”
대놓고 무공이 부족해서 힘들 거라는 이야기를 들은 세령이 발끈하며 앞으로 나서자 순자가 그녀의 허리를 붙잡았다. 성범이 깨달음을 얻어 한층 높은 경지에 올랐다지만, 아직까지는 세령의 분노를 조절시키기에 부족한 모양이었다. 목진은 혀를 차며 세령을 뒤로 밀어냈다.
“세령이 너는 그 불같은 성미부터 좀 고치거라. 누가 그 핏줄 아니랄까봐······. 그리고 김가야, 무공 쪽은 걱정할 것 없느니라. 내가 세령이와 같이 대회에 참가하기로 했으니.”
“······그러셨습니까?”
이거 실례했습니다. 성범이 즉각 태세를 전환하며 꾸벅 고개를 숙였다. 확실히, 목진이 함께라면 가진 무공이 취약한 세령이라고 해도 전혀 꿇릴 게 없었다.
“그래도 다행이군요. 비록 비무에서는 부족한 모습만 보였지만, 이번에는 최선을 다하여 대협의 기대에 부응하겠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성범은 주눅들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대담하게도 세령-목진 페어와 겨뤄 보겠다는 의사를 내비쳤다.
도저히 승산이 보이지 않는 무공과 달리 충분히 해볼만 한 대결. 무인으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을 만큼 고강한 경지에 이른 목진이지만, 고수의 무공에 강한 제한이 걸리는 토투가 랠리에서는 큰 변수가 될지언정 도저히 이길 수 없는 벽까지는 아니다.
허허. 목진이 가볍게 웃었다. 비록 그에게 있어선 유희에 가까운 기분으로 참가한 토투가 랠리이지만, 그럼에도 어떻게든 이겨보겠다고 기운차게 덤벼드는 성범의 기세가 썩 마음에 들기 때문이었다. 어쩌면 첫인상 때문에 더욱 그렇게 느껴졌는지도 모르겠지만.
“어디 한번 즐겁게 놀아보자꾸나. 내 기대하고 있으마.”
“분명 실망하실 일은 없을 겁니다.”
아니, 오히려 놀라실 지도 모르겠군요.
성범이 냉막한 얼굴과는 어울리지 않게 짓궂은 미소를 지었다. 그 표정은 어쩐지 모르게, 할아버지에게 개구진 장난을 치는 손자 같은 느낌이었다.
그리고 목진 일행은, 대회 당일이 되어서야 성범이 한 말의 의미를 깨달을 수 있었다.
허어. 목진이 허탈한 표정을 지은 채 연신 헛웃음을 내뱉었다.
비단 그뿐만이 아니라, 벙찐 표정을 지은 건 세령도 마찬가지였다.
“오랫만에 뵙습니다. 선배님.”
두 사람은 그들 앞에서 장난기 있는 얼굴로 웃고 있는, 검은 생머리를 길게 늘어트린 여인을 보며 동시에 같은 생각을 떠올렸다.
‘댁이 왜 여기서 나와?’
웅성웅성. 주변의 시선이 이곳, 정확히는 눈앞의 여인을 향해 몰려들고 있었다.
당연하다면 당연한 일이었다.
그들의 눈앞에 있는 여인은, 서쪽 무림의 절대고수인 서천검후 김연화였으니까.
“야 저 사람 혹시······.”
“에이 설마. ······아니겠지?”
“확실히 부월흑표가 서천검후의 아들이긴 한데, 팔척투귀라면 모를까 아무리 그래도 서천검후 정도 되는 사람이 팀으로 참가할 줄은······.”
“쫄지 마, 고수들은 리미트 빡세게 걸리잖아. 그리고 정파 무인인데 먼저 살수를 펼치겠냐.”
“에이, 아무리 리미트가 걸려도 그 클라스가 어디 가겠음. 그리고 호버 바이크 경주에서는 살수가 아니라고 해도 골로 갈 수 있는 거 모름?”
“일단 저거랑은 무조건 거리 벌려. 잘못 걸리면 뼈도 못 추린다. 다른 놈들이 알아서 하겠지. 고래 싸움에 등 터질라.”
“······근데 솔직히 승산이 없는 건 아니지 않냐? 무공 대결은 아니라지만, 그래도 우리같은 하꼬가 서천검후를 이기면 지명도 엄청 오를텐데. 한번 간 보다가 질러 봐?”
“그래도 저건 좀······.”
주변의 참가자들이 술렁였다. 토투가 랠리가 아무리 호버 바이크 대회 중 최고로 큰 규모에 최고의 권위를 가지고 있는 대회라고는 해도, 설마하니 서천검후 같은 거물이 참가할 거라고 그 누가 생각했을까.
개중에서는 괜히 엮이지 않고 레이싱에 집중하려는 이들도 있었고, 명성을 위해 그녀를 노리는 이들도 있었다.
이색적인 것은, 그들 중 서천검후의 무공에 두려움을 가지는 이들은 생각보다 많지 않다는 것이다.
아무리 무공의 사용이 허용된다고는 해도 결국 토투가 랠리의 본질은 무공 대결이 아닌 레이싱. 강기는커녕 검기조차 상승무공으로 판정되어 모조리 제한되고, 내공 드라이브의 출력도 철저하게 리미트가 걸린다.
하물며 화경의 경지에 오르지 못한 보통의 고수들에게도 그럴진대, 화경의 끝자락에 머물고 있는 절대고수인 서천검후에게 걸릴 리미트는 얼마나 무겁겠는가.
‘이 정도면 해볼 만 한 거 아냐?’
그들은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경기 중 죽어나가는 자가 부지기수라고는 해도 결국 사고일 뿐, 토투가 랠리의 근본이 스포츠라는 사실은 참가자들로 하여금 본래는 상상도 못했을 무모한 도박수를 떠올리게 만들었다.
물론 몸을 움직이는 경신법이나 상승의 무공이 제한되는 것은 아니기에 그녀는 여전히 강하다. 하지만 수많은 변수들이 난무하며 다대일의 격전이 숨쉬듯 벌어지는 토투가 랠리에서 그 정도의 격차는 어떻게든 따라잡을 수 있었다.
하지만 그런 참가자들의 반응을 한데 받고 있음에도, 김연화는 여유롭기 그지없는 표정으로 목진을 향해 말을 걸었다.
“놀라셨나요? 선배님.”
“······놀라지 않았다면 거짓말이겠지. 설마 그대를 이 대회에서 보게 될 거라곤 상상도 하지 못했네.”
“소녀에게도 마찬가지랍니다. 지난 번 일로 성범이에게 약간의 빚을 지게 되어서 참가했는데, 설마 선배님께서도 이 대회에 참가하셨을 줄이야.”
이번 대회는 꽤 즐겁겠네요. 연화가 입가를 가리며 쿡쿡 웃었다. 돌아가는 상황이 퍽 재미있는 모양이었다. 어쩐지 주변의 몇몇 참가자들이 심장을 부여잡고 쓰러지는 모습이 보였다.
흠흠. 목진은 그녀를 보며 슬쩍 시선을 피했다.
뭔가 그녀에게 켕기는 것이 있거나 해서 그런 것은 아니었다. 단지, 그녀의 옷차림이 고대인인 목진의 시점에서 여러모로 파격적이었을 뿐.
“······헌데 그 차림새는 좀 어찌 안 되겠는가.”
흰 케이프를 두르고 있는 것은 이전과 마찬가지다. 상체에 입고 있는, 몸에 달라붙는 슈트도 그의 기준에선 남사스럽긴 하지만 이전에 한 번 본 적이 있으니 그럭저럭 평정을 유지할 수는 있었다.
하지만 하반신마저 몸의 굴곡을 그대로 드러내는 라이딩 슈트만큼은, 제아무리 부동심을 깨달은 목진이라고 해도 도통 그 모습을 담담히 볼 수가 없었다. 어찌 온 몸을 다 가렸는데도 나체로 있는 것보다 요염할 수 있단 말인가. 특히나 같은 재질의 상의와 함께 입으니 더욱 그러했다.
“······주책이야.”
목진의 옆에서 세령이 한심한 눈초리로 힐난했지만 목진은 차마 그 말에 반박할 수가 없었다.
정보)
세령과 김성범은 서로를 매우 싫어한다. 세령은 성범 때문에 죽을 뻔 해서 그렇고, 성범은 부하들과 우주선들을 잃어서 그렇다. 다만 근본이 녹림이라 동료애 같은게 거의 없기 때문에 원한을 가지거나 할 정도까지는 아니다.
흑표채는 채주를 포함해 대부분의 녹림도들이 이번에 생긴 금전적 손실을 메꾸기 위해 발바닥에 땀나게 뛰어다니고 있다.
세령의 분노조절잘해는 김성범 정도의 무공에는 반응하지 않는다.
은근히 알려지지 않은 사실이지만, 서천검후 김연화는 소싯적에 호버 바이크 좀 타 본 언니다.
서천검후가 김성범의 파트너로 참가하게 된 이유는 천령상단 소단주의 신병을 그녀가 보호하게 되어 흑표채가 이래저래 손실을 떠안게 되었기 때문이다.
목진에게 있어 몸에 착 달라붙는 레이싱 슈트란 31세기에서 본 것들 중 다섯 손가락 안에 들 정도로 컬쳐쇼크를 가져온 문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