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smic Heavenly Demon 3077 RAW novel - Chapter (59)
우주천마 3077-58화(59/349)
10. 기물경주 Deadly Hover Bike Rally (4)
10. 기물경주 Deadly Hover Bike Rally (4) – 아무것도 모르면서
토투가 랠리 모함선 안에서도 인적이 드문 구석 공간. 두 명의 여인이 그곳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평균보다 약간 큰 키에 검은 머리카락을 뒤로 묶은 날카로운 인상의 당세령.
작은 키에 백금발을 길게 늘어트린 채 한쪽 눈에 안대를 한 차가운 인상의 백사희.
“······.”
“······.”
평소 서로를 못 잡아먹어서 안달인 두 사람이지만, 지금만큼은 사적인 감정을 잠시 뒤로 밀어둔다. 두 사람 모두 이 상황이 마음에 들지는 않지만 어쨌든 일적으로는 같은 목표를 두고 협력해야 할 처지였으니까.
주변을 살펴 아무도 없는 것을 확인한 것도 모자라 경계용 드론까지 띄워놓을 정도로 철저한 준비성. 백사희는 가늘고 긴 선을 꺼내 한쪽 끝을 귀 뒤에 대고 반대편을 세령에게 내밀었다.
“자.”
“······그냥 근거리 통신으로 주지 그렇게까지 해야 해?”
보안처리가 된 유선 케이블이라니. 그렇게까지 유난을 떨어야 하나. 세령의 물음에 백사희가 그녀를 노려봤다.
“이 모함선이 완전히 우리 통제 하에 있는 줄 알아? 만에 하나라도 통신이 새나가서 저쪽에 꼬투리 잡히면 네가 책임질 거야?”
알았다 알았어. 쌍심지를 치켜올린 백사희의 말에 세령이 마뜩찮은 표정으로 케이블을 받아들어 마찬가지로 귀 뒤에다 댔다. 세령이 가볍게 혀를 찼다.
“이렇게 너랑 이어지는 건 사양하고 싶은데.”
“헛소리 지껄이지 말고 데이터나 받아.”
백사희가 고개를 숙인 채 차가운 목소리로 쏘아붙였다. 어쩐지 그 목소리가 살짝 떨리는 것도 같았지만 세령은 딱히 신경쓰지 않았다.
“바이러스나 스파이웨어 같은 거 전송하다 걸리기만 해 봐.”
“너야말로 역해킹같은 짓 하면 가만 안 둬.”
데이터를 전송하는 와중에도 으르렁거리며 투닥거리던 두 사람이 동시에 케이블을 떼어냈다. 보안검사가 끝나고 데이터를 확인한 세령이 눈살을 찌푸렸다.
“오십 팀? 뭐 이렇게 많아?”
“정보원들을 풀어서 알아낸 염천성이랑 관련된 참가조들이야. 보이는 족족 다 제거해.”
이 쥐톨만한 게 이젠 하다하다 명령질이네? 고압적인 백사희의 말에 세령이 발끈하며 입을 열었다.
“야, 너 내 말은 쳐 듣긴 했냐? 많다고 했잖아. 레이싱에 신경쓰기도 바빠 죽겠는데 이걸 어느 세월에 다 처리해. 장난하냐?”
다 큰 장정도 절로 움찔할 만큼 위협적인 모습. 하지만 백사희도 결코 호락호락한 여인은 아니다. 한 발자국 가까이 다가와 내려다보는 세령을 똑바로 올려다보며 그녀가 눈을 부라렸다.
“남의 말 제대로 안 들은 건 자기면서 어디서 큰소리야. ‘보이는 족족’이라고 한 말 못 들었어? 아니면 무슨 뜻인지 이해를 못 해? 네 목 위에 있는 건 장식용 박제니?”
“이 콩알만한 게 진짜 말끝마다······일을 하자는 거야 말자는 거야? 우승 노리기도 바쁜데 그딴 잔챙이들 신경 쓸 짬이 있을 줄 알아?”
“지 말투 지랄맞은 건 생각도 안 하네? 그리고 뭐? 우승? 벌인 일은 나몰라라 하고 아주 지 밖에 모르지?”
순식간에 얼어붙는 분위기. 세령의 손이 검자루에 올라가고, 백사희의 소매에서 칼날이 스륵 하고 모습을 드러낸다. 서로의 눈을 노려보며 대치하길 십여 초. 두 사람은 미리 짜기라도 한 듯 동시에 한숨을 내쉬었다.
“하아. 내가 참아야지.”
“하아. 진짜 피곤해 죽겠네.”
백사희가 짜증스럽게 머리를 쓸어올리며 입을 열었다.
“어쩐지 고 선생도 니가 그 난리 칠 거라고 예상하시더라. 조당 5천 크레딧에서 2만 크레딧. 반올림 없이 다 처리한 것만 계산할 거니까 찌꺼기 남기지 말고 깔끔하게 다 처리해. 무슨 말인지 알아듣겠어?”
“······진작 그렇게 말하지 쓸데없이 시비 걸고 지랄이야.”
세령이 퉁명스럽게 중얼거렸다. 팀당 5천에서 2만. 그 정도면 꽤 짭짤한 부수입이니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유일한 문제라면, 현 최대 전력인 목진이 이런 시시콜콜한 일에 관여할 이유가 없으니만큼 모조리 세령 혼자서 감당해야 할 몫이라는 점이랄까. 염화나찰이라는 별호로 나름 이름을 날리는 세령이라도 염천성의 주력 고수들을 모두 감당할 무공수준은 아니다.
하지만 이곳은 토투가 랠리. 무공이 중요하긴 해도 결국은 레이싱 실력으로 승부하는 곳이다. 목진의 보호로 직접 들어오는 공격만 막을 수 있다면, 어설픈 흑적의 라이더들 따위는 세 자릿수가 몰려와도 그녀의 상대가 아니었다.
“이번에 회에서도 몇 팀 나올 거야. 나도 나갈 거고. 그러니까 요령 피우지 말고 제대로 일 해.”
“네 호버 바이크 실력으로?”
삼극회주의 딸로 부족함 없이 자란 백사희가 호버 바이크를 탈 일이 얼마나 되겠는가. 어이없다는 감정이 담긴 세령의 말에 살짝 얼굴을 붉힌 그녀가 변명하듯 말했다.
“그, 그럴 리가. 전투원으로 들어가는 거야. 호버 바이크 조종은 마하 언니가 협력해주기로 했어.”
“마하? 그 여편네가 나름 실력이 있는 건 인정하는데, 내 말은 왜 굳이 네가 나가냐고. 레이싱 대회라고 쉽게 생각하면 너 진짜 훅 간다?”
세령은 걱정 같은 게 아니라, 정말로 이해가 가지 않는 표정으로 물었다.
백사희가 딱히 실력이 부족한 편은 아니지만, 그녀 외에도 흑적들과 싸울 인재들이 없는 것도 아니다. 삼극회주의 딸로서 나름 귀한 몸이신 그녀가 굳이 위험을 감수하고 참여할 필요는 없었다.
라는 것은 물론, 단지 세령의 생각일 뿐이었지만.
“······너가 생각하는 것처럼 이 자리가 편하기만 한 자리는 아니야.”
잠시 입을 다물었던 백사희가 착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녀의 하나뿐인 눈동자가 형언하기 힘든 복잡한 감정을 담아 세령을 올려다봤다. 세령은 어째서 그녀가 그런 눈으로 자신을 보는지 알 수가 없었다.
“뭐야, 왜 그렇게 보는데.”
“됐어. 지저분한 승계 문제니까 훈수질 할 거면 집어치워.”
삼극회주의 자식은 백사희만 있는 게 아니다. 그녀의 위로만 세 명의 오라비와 한 명의 누이가 있고, 그들은 각자 아버지의 권력을 승계받기 위해 치열하게 서로를 견제하고 있다. 모르긴 몰라도 삼극회 내에서 영향력을 늘리기 위해 무리해서 참가하는 것이리라.
다만 다른 사람도 아니고 백사희가 그럴 줄이야. 평소 삼극회의 권력 승계보다는 삼극회를 벗어나 자신만의 조직을 만들려던 그녀가 삼극회에서의 존재감을 늘리려 하는 건 제법 의외인 일이었다.
‘뭐, 내 알 바 아닌가.’
하지만 그것은 결국 백사희 자신의 사정일 뿐이다. 노골적으로 밝히는 이유에 잠시 당혹스럽게 그녀를 바라보던 세령은, 이내 비스듬히 시선을 피해 그녀를 외면했다. 그녀에게 딱히 백사희의 사정을 신경 써 줄 오지랖은 없었으니까.
애써 무안함을 감추듯, 세령은 급히 말을 돌렸다.
“그냥 물어본 거 가지고 정색은······. 그런데 각 팀별로 따로 체크가 되어있는 놈들이 있는데 그놈들은 또 뭐야?”
“······요주의해야 할 무인들이야. 대부분 평균 이상의 고수이거나 아니면 호버 바이크 레이스에서 치명적인 무공을 쓰는 놈들이지.”
따로 그 놈들에 대한 데이터는 첨부했으니까 확인해 봐. 싸울때는 되도록 방심하지 말고. 백사희의 말에 세령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먼저 가 봐. 난 아직 처리할 게 남아있으니까.”
“그래, 간다 가. 너 잘 먹고 잘 살아라 그래.”
빨리 꺼지라는 듯 손을 휘휘 휘젓는 백사희를 본 세령이 자리를 뜨며 중지를 치켜들었다. 백사희는 떠나가는 세령의 뒤에서 잠시 망설이다 입을 열었다.
“조심하는 게 좋을 거야. 섬광열권이 너한테 현상금을 걸었어. 레이스 중에 널 노리는 놈들이 한둘이 아냐.”
“오게 둬라. 우리 영감님이 싸움에 굶주리셨다.”
그 양반이면 좋다고 두팔벌려 환영하지 않을까. 호버 바이크를 타고 씨름하느라 한껏 스트레스 상태인 목진을 떠올리며 세령이 생각했다. 적어도 이 경기 중이라면, 섬광열권이 아니라 섬광열권 사조가 와도 두렵지 않았다.
“하아······.”
백사희는 세령이 자리를 떠날 때까지 한참 그 뒤를 지켜보다가, 길게 한숨을 내뱉고는 어딘가로 통신을 연결했다.
“······말했던 대로 리스트에 아홉 명 추가했어. 약속 지켜.”
– 물론이지. 내 깜찍한 동생아. 약속대로 그 현상금사냥꾼은 토투가를 나갈 때까지 안전할 거야. 이 언니 믿지?
전화를 받은 것은 그녀의 손윗누이. 백사희는 거슬리는 그녀의 높은 목소리에 이를 악물었다.
‘약점 쥐고 흔드는 주제에 생색은.’
딱히 티를 내지는 않았다고 생각했는데 하필이면 저 여자에게 걸릴 줄이야. 감 하나는 쓸데없이 좋은 여자다. 생각지도 못하게 토투가 랠리에 참가하게 된 그녀로서는 고운 말이 나올리가 없었다.
“차라리 혈교도를 믿지. 잊지 마. 이번만큼은 어쩔 수 없이 끌려가지만, 약속을 어기면 백사회를 이끌고 오빠들한테 붙을 테니까.”
– 흐응. 자기를 지지하는 하부조직을 수술하라고 팔아넘긴 널 받아줄 것 같아?
“셋째 오빠는 몰라도 큰오빠랑 둘째오빠는 싱글벙글 웃으며 받아줄 걸?”
– ······.
서로를 치열하게 견제하는 남매들 사이에서 그녀가 이끄는 백사회는 단일세력으로서는 무시할 수 있을만큼 작지만, 한쪽 세력에 붙는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백사희는 통신 너머의 누이를 향해 차갑게 말했다.
“댁만 가만히 있으면, 이번을 마지막으로 당신네들 승계 문제에서 완전히 빠질거야. 그게 댁한테도 좋잖아? 괜히 변수 늘릴 여지 남기지 말고 깔끔하게 거래를 끝내자고.”
– ······이렇게 써먹긴 아쉬운 패지만 뭐, 깜찍한 동생을 위해서라면야. ······그런데 참 재미있네. 겉으로는 그렇게 으르렁대면서 정작 뒤로는 이렇게 헌신적이시다니. 너를 애꾸로 만든 것도 그 여자 아니었어? 정말이지 요즘 애들이란 알다가도 모르겠다니까?
“남이사.”
쓸데없이 주절거리는 누이의 말을 무시하고 통신을 끈 백사희는 그대로 벽에 기대어 바닥에 주저앉았다. 아까 전과는 조금 다른 의미를 담은, 깊은 한숨이 그녀의 입술로부터 새어나왔다.
“후······.”
못해먹겠네 진짜. 누구에게도 말 못할 불평을 내뱉으며, 그녀는 힘없이 자신의 머리카락을 쓸어올렸다.
“어때, 멋지죠?”
“으음. 태는 확실히 좋긴 하다마는······.”
목진은 싱글벙글한 표정으로 묻는 세령의 말에 고개를 주억거렸다.
한 마리의 매가 떠오를 정도로 날래게 잘 빠진 차체와 매끄러운 곡선을 따라 이어지는 프레임을 가진 커스텀 호버 바이크. 카본블랙으로 칠해진 베이스와 차체 아래쪽의 검푸른색이 불꽃 모양의 그라데이션으로 이어진 모습은 탈것에 대한 조예가 없는 목진이 봐도 썩 멋진 모습이었다.
지난번 프레임이 드러난 채로 시험운행을 할 때도 범상치 않은 물건이라고 생각했는데, 차체를 마저 완성하고 도색까지 마치니 생김새는 완전히 다를지라도 마치 기계로 된 명마를 보는 듯한 기분이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목진은 세령의 말에 완전히 동의할 수가 없었다. 도무지 그의 취향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 하나 존재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헌데 저 숭한 그림은 좀 어떻게 안되겠느냐?”
차체 정면에 떡하니 붙은 악마 같은 해골 데칼. 서역의 야만인도 아니고 피에 미친 마인도 아닐진대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사람의 해골 그림을 그려넣은 것인지 그로서는 도무지 이해할 길이 없었다.
“예? 저게 제일 멋진 부분인데 무슨 섭섭한 소릴 하는거에요? 디자이너한테 저거 의뢰하느라 돈이 얼마가 들었는데!”
“더 멋진 그림이 많지 않느냐. 용이라던가. 대호라던가.”
“고대무협 좋아하는 노친네도 아니고 누가 그런 촌스러운 데칼을 붙여요.”
“······.”
이 시대 애들이란. 의도찮게 가슴에 상처를 입은 목진이 꿍얼거렸다. 과거 외형에 대해 별 생각 없이 세령에게 맡긴 것이 이다지도 후회될 수가 없었다.
‘비싼 돈 들여서 흉흉한 해골 그림이나 그리다니. 무림에 있을 때 젊은 것들도 저런 흉측한 것을 보며 멋지다고 말하지는 않았거늘······.’
남 일이면 모를까 잠시 후에 저걸 타고 토투가 랠리에 나가야 하는 입장에선 영 꺼림직할 뿐이다. 그런 그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세령은 신이 나서 호버 바이크를 만지작대고 있을 뿐이었지만.
– 한 시간 뒤에 레이스 시작이에요. 컨디션 체크 다 끝났죠?
“물론. 상태 최상이야. 그쪽도 준비 됐지?”
– 네. 오퍼레이팅용 장비들이 좀 구형인 게 아쉽지만, 그럭저럭 써먹을 만 하게 세팅은 해 놨어요.
호버 바이크의 정면 패널에 순자의 모습이 나타났다. 무공 빼면 못 하는 게 없는 전천후 안드로이드인 그녀는 이번에 따로 배정된 오퍼레이팅 룸에서 두 사람의 레이스를 보조하는 역할이었다.
“아저씨도 준비 됐어요?”
“이를 말이겠느냐.”
“굿. 그럼 우승하러 가죠.”
겸사겸사 용돈벌이도 좀 하고. 세령의 입에 진한 미소가 걸렸다.
정보)
보통 사람끼리 정보를 교환할 때는 무선 통신으로 데이터를 교환한다. 물론 그쪽도 기본적인 보안 처리는 되어있지만, 본격적인 보안을 위해서는 유선 케이블이 사용된다. 보통 귀 뒤쪽과 손목 부근에 통신용 단말이 이식되어 있다. 통신용 단말에는 보안과 안전을 위해 방화벽이 탑재되어 있으나, 싸구려는 가끔 뚫린다.
세령은 염천성의 고수들을 상대할 수 없다. 하지만 무공이 아니라 더티 레이싱으로 들어가면 전문 라이더도 아닌 그들쯤은 혼자서도 모두 폭사시킬 수 있는 재능충이다.
마하는 백사회 소속의 무인으로, 무인이라기보다는 파일럿 쪽에 좀 더 적성이 있는 여인이다. 백사희와는 꽤 사이가 돈독한 편이다.
삼극회주에게는 백사희 외에 네 명의 자식이 더 있다. 대부분 삼극회주의 자리를 이어받기 위해 서로 치열하게 암투를 벌이고 있으며, 백사희는 그런 경쟁구도에 환멸을 느껴 스스로 따로 조직을 세우려 하고 있다. 다른 남매들은 그런 백사희의 행보에 만족하는 편이나, 때때로 그녀를 이용하려 꿍꿍이를 꾸미는 경우도 있다.
섬광열권이 세령에게 건 현상금은 십만 크레딧이다. 21세기의 기준으로 약 1억원 수준의 거금이다.
백사희는 세령과 사이가 나쁘다. 그녀의 한쪽 눈을 앗아간 것은 세령이다. 하지만 지금 그녀는 어째서인지 세령을 위해 움직이고 있다.
세령의 취향은 살짝 펑키한 스타일이다. 반면 목진이 원하는 용이나 호랑이 같은 스타일은 요즘 젊은 세대한테는 언젯적 고전 취향이냐는 취급을 받는다.
목진은 세령의 별 생각 없는 한 마디에 적잖이 마음에 상처를 입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