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smic Heavenly Demon 3077 RAW novel - Chapter (66)
우주천마 3077-65화(66/349)
11. 지저혈곡 Bloodbath Underworld Maze (1)
11. 지저혈곡 Bloodbath Underworld Maze (1) – 화난 맹수는 건드리는 게 아니다.
아수라 붓다와 김연화가 제압당한 뒤 세령 일행이 당당히 첫 번째로 결승선에 입성한 것은 말할 것도 없었다. 서천검후라면 모를까 김성범이 세령의 조종실력보다 뛰어난 것도 아니었고, 그렇다고 아수라 붓다의 AI 조종 시스템이 이길 수 있는 것도 아니니 당연한 귀결이었다.
조직을 먹여살리기 위해 상금과 상품을 노리고 있는 성범이야 아쉬워하는 기색이 역력했으나, 패배한 마당에 무슨 변명을 할 수 있겠는가.
“다음 라운드에서는 꼭 이길 겁니다.”
다만 그렇다고 해서 그가 완전히 전의를 꺾은 것은 아니었다. 이 대회는 레이싱 대회이지 비무대회가 아니었으니까. 무력이 부족해 불리하긴 할지언정 역전의 기회는 여전히 남아있었다.
물론, 첫 라운드에서 일등을 차지한 세령은 그런 성범의 말을 귓등으로도 듣지 않았지만 말이다.
“제 1 라운드 일등 입성을 위하여!”
“위하여!”
숙소로 돌아온 세령은 기분 좋게 맥주캔을 따서 들어올렸다. 옆에서 드물게 들떠 있는 순자가 추임새를 넣었다. 유일하게 차분한 건 목진뿐이었다.
“······흠.”
“아 뭐에요 아저씨, 이럴 땐 장단 좀 맞춰줘요.”
“그래봐야 이제 겨우 세 개 중에 하나를 끝낸 것이 아니냐.”
“에이, 분위기 떨어지게. 그래도 기분은 내야죠.”
목진에게 슬쩍 투덜댄 세령이 대답은 듣지도 않고 벌컥벌컥 목구멍에 맥주를 들이부었다. 당장 내일 모레가 두 번째 경기이건만 컨디션 관리는 필요치 않은 모양이었다. 아니면 아예 별 생각이 없거나.
뭐 여튼. 세령이 목진을 향해 엄지를 치켜들었다.
“아저씨가 제 역할을 잘 해 준 덕분이에요. 확실히 공격당할 걱정이 없으니까 든든하네.”
아 물론 우리 순자도. 세령이 버번 위스키를 병나발로 꼴꼴 들이마시는 순자의 머리를 살살 쓰다듬었다. 순자는 붉어진 얼굴로 기분이 좋은 듯 세령의 손을 따라 머리를 까닥였다. 완전히 풀어진 두 사람의 모습을 보며 목진이 물었다.
“다음 경기는 준비하지 않느냐?”
아무리 레이싱에 문외한인 목진이라 하더라도 수많은 참가자들이 경쟁하는 이상 어느 정도의 준비는 필요하다는 것 정도는 안다. 그런데 두 사람의 상태를 보자니 아예 다음 경기에 이길 생각조차 보이지 않는 게 문제다.
당장 우승상품인 알파 프라임 급 코어를 얻기 위해 모든 노력을 쏟아부어야 할 판에 술판이라니. 목진은 슬슬 세령이 진짜 코어를 얻을 생각이 있기나 한 것인지에 대해 의문이 들었다.
하지만 세령으로서도 할 말이 없는 건 아니었다.
“제 2라운드는 버리는 패에요.”
“버리는 패?”
“우리 머신은 2라운드 경기구역에 최악의 상성이거든요. 그걸로는 다른 머신들이랑 도저히 경기가 안 돼요.”
제 2라운드 경기구역의 이름은 지저혈곡(地低血谷). 불안정한 지반 아래 미로처럼 형성된 대규모 화산동굴로, 피처럼 붉은 마그마들이 사방팔방으로 분출되기 때문에 혈곡이라 이름붙은 1급 위험구역이었다.
“지저혈곡에서 좋은 성적을 내려면 실드랑 장갑만 믿고 마그마 폭포를 뚫거나 해야하는데, 우리 머신은 아무리 강화장갑을 덧대도 그게 안 돼요. 오히려 장점만 다 죽지. 결국 어느정도 안전이 보장된 루트로만 움직여야 하는데, 그걸론 상위권 입성은 택도 없죠.”
“그러면 우승을 못한다는 말이로구나. 네 분명 내게 내공 드라이브 코어를 위해서 이 경기에 참가한다 하지 않았더냐?”
설마 마음에도 없는 거짓말을 했던 걸까? 그런 생각에 인상을 구기는 목진의 말에 세령이 고개를 저었다.
“그럴 리가요. 세 라운드 중에서 가장 낮은 기록은 합산에서 빠지니까 이렇게 여유를 부릴 수 있는 거죠. 애초에 처음부터 그걸 상정하고 머신을 만든 거고. 우리는 세 번째 라운드에서만 잘 하면 돼요.”
“······그건 또 무슨 소리냐.”
다 상술이죠. 세령이 남은 맥주를 들이키며 설명했다.
“토투가 랠리 자체가 호버 바이크들끼리 이리저리 치고받는 대회인데, 한 번 리타이어 당한다고 순위권에서 밀려나면 억울하잖아요. 그러니까 한 번의 기회를 주는 거죠.”
“기회라.”
패배는 곧 죽음으로 직결되는 일이 대부분인 무림인으로서는 퍽 낮선 말이다. 도산검림의 무림에서 기회란 대개 숨기고 있던 비장의 한 수를 의미하는 말에 가까웠으니까.
하지만 이건 생사결이 아니다. 조금 과격하긴 해도 명목상으로는 일단 스포츠 경기. 생소한 개념에 떨떠름한 느낌이 들면서도 목진은 수긍할 수밖에 없었다.
“원래 다들 이런 식으로 전략을 짜요. 각자 자신 있는 라운드에 특화시킨 거죠.”
목진은 조금 맥빠진 얼굴로 술잔을 기울였다.
“쯧. 그렇다면 다음 경기는 별로 할 일이 없겠구나.”
“네 뭐. 최대한 안전하게 가야겠죠. 순위 상관없이 완주만 하면 페널티 받을 일은 없으니.”
그러니까 아저씨도 맘 편하게 즐겨요. 그렇게 말하며 막 세령이 목진의 잔에 술을 따라주려던 순간이었다.
“어림없는 소리 마.”
방 입구에서 들려오는 차가운 한 마디. 익숙한 목소리에 세령이 인상을 쓰며 고개를 돌렸다. 백금발을 길게 기른 외눈의 여인, 백사희였다.
“아 씨 술맛 떨어지게. 야, 넌 기본적인 매너도 안 배웠냐? 남의 방 들어갈 땐 노크부터 하라고 부모님이 안 가르쳐주든?”
“매너는 지킬 만한 사람한테나 지키는 거야. 너 같은 양아치한테 뭐 하러?”
“뒤진다 진짜.”
도어락은 또 어떻게 뚫은 거야. 씨근덕거리는 세령을 무시하며 백사희는 눈앞에 패널을 띄웠다.
“오십 팀 중에 열다섯 팀 아웃. 아직 서른다섯 팀 남았어. 마지막 라운드에서 레이스에 집중하려면 이번 라운드에서 최대한 줄여야 해.”
“쯧. 좀 편하게 가나 했더니.”
“요령 피울 생각 말라고 했지? 첫번째 라운드에서는 너가 빨리 치고 나가서 괜찮았지만, 지저혈곡에선 아니야. 그 놈들도 단단히 벼르고 있다고. 그리고 이번에 염천성 끄나풀들 못 줄이면 너도 손해야. 대회 끝나고도 쫓기고 싶지 않으면 철저하게 해.”
“알아, 안다고. 알았으니까 그만 좀 땍땍거려. 니가 우리 엄마냐?”
“이 년은 끝까지······.”
사사건건 시비를 거는 세령의 태도에 백사희의 눈가에 살기가 피어올랐다. 물론 세령이 정말로 나몰라라 자기 일을 내팽개 칠 만큼 막장은 아니라지만, 중간에 낀 입장인 백사희로서는 작정하고 비협조적으로 나오는 그녀의 태도를 보며 속이 터질 지경이었다.
진짜 고수 앞이고 나발이고 한 푸닥거리를 해? 순간적으로 든 충동에 백사희가 슬쩍 목진의 눈치를 봤다. 하지만 정작 목진은 그런 것보다는 두 사람이 나눈 대화 쪽에 더 관심이 있는 모양이었다.
“끄나풀이라니, 그건 무슨 소리냐?”
“네?”
목진이 알기로 염천성이라면 세령과 적대적인 관계에 있다고 하는 단체다. 그런데 이야기를 들어보면 이번 지저혈곡에서 그런 염천성과 싸울 것처럼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게 아닌가. 목진으로서는 처음 듣는 이야기였다.
백사희가 어처구니없다는 듯 그녀를 쳐다봤다.
“너, 설마 대협께 이야기 안 드렸어?”
“이 아저씨랑은 상관 없는 일인데 뭐하러?”
“무슨 소리야? 언제는 대협이 지켜줄 거라서 현상금 사냥꾼들 걱정 없다더니!”
백사희가 저도 모르게 빽 소리를 질렀다. 분명 목진이 싸움에 굶주렸다며 현상금 사냥꾼들을 오게 두라고 했지 않았던가.
하지만 세령은 오히려 한쪽 눈썹을 치켜올리며 그녀에게 대꾸했다.
“이 아저씨가 나를 지켜주는 건 맞긴 한데, 그거랑 이거랑은 별개의 문제지. 정치적 문제 해결 겸 부수입 벌이로 흑적 놈들 처리하는 일이잖아. 이건 내 일이야. 아저씨는 관계 없어.”
“그게 그거지! 당장 너랑 같은 호버 바이크를 타는 한 팀이잖아! 어떻게 그걸 말하지 않을 수 있니!?”
탁. 술잔을 탁자에 내려놓는 소리가 울렸다. 내공을 담은 듯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존재감에 두 사람의 입이 동시에 다물어졌다.
“그만.”
설명부터 해 보거라. 목진이 조금 불쾌함을 담은 목소리로 말했다. 아무리 직접적인 관계가 없다고는 하지만, 자신이 모르는 새 무언가 꿍꿍이가 오가고 있었다는 건 그리 유쾌한 이야기가 아니다.
그리고 두 여인은 그런 목진의 말을 감히 거역할 수 없었다.
“······어째서 말하지 않았지?”
잠시 뒤, 대략적인 설명을 들은 뒤 목진은 추궁의 뜻을 담아 세령을 돌아봤다, 세령은 그런 목진의 시선을 똑바로 마주보면서 대답했다.
“엄밀히 말하면 이건 내 일이니까요. 내 사정에 남이 엮이게 두면 찝찝하다고요.”
남이라. 목진은 속으로 그녀의 말을 곱씹었다. 그녀가 가진 마음의 벽은 생각보다 조금 더 두터웠는지, 그간 적잖은 일들을 동고동락했음에도 아직 그는 타인의 영역에 있는 모양이었다.
물론, 그것은 목진의 입장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아득한 과거의 연이 닿아 그녀의 행보를 돕기로 결정하긴 했으나, 아직 당세령이라는 개인과 쌓은 유대는 그리 깊지 않았으니까.
그러나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 목진은 고개를 저으며 그녀가 한 말을 정정했다.
“이미 난 이 일에 깊게 관여해 있다만.”
“알아요. 그 놈들과 맞부딪히는 이상 아저씨도 어느 정도 관계된다는 것 정도는. 하지만 엮이는 거랑 직접 도움을 요청하는 것과는 다르잖아요.”
“적어도 대략적인 상황은 알려줄 수 있지 않느냐.”
“그건······.”
처음으로 세령의 말문이 막혔다. 목진은 굳이 대답을 듣지 않아도 그녀가 무슨 생각으로 그런 행동을 했는지 알 것 같았다. 자신의 선에서도 충분히 정리할 수 있는 일인데 굳이 자신의 후견인과 같은 입장인 목진에게 도움을 요청할 수 없다는, 일종의 오기였으리라.
무인이라면 응당 가져야 할 오기. 목진은 그녀가 아직 무인의 뿌리를 잃지 않았다는 것에 기꺼워 해야 할 지, 그럼에도 결국은 자신이 엮일 수밖에 없게 된 일에 노여워해야 할 지 알 수가 없었다.
‘굳이 몰아세울 필요는 없겠지.’
목진은 이쯤에서 그만두기로 마음먹었다. 서로 어느 정도의 선은 긋고 있지만 그렇다고 또 세령과 사이가 나쁜 건 아니었으니까. 무림의 선배로서 후배의 치기에서 비롯된 실례 정도는 너그러이 받아넘길 수 있었다.
그래도 제 딴에는 정치적인 은원에 엮이지 않도록 나름대로 신경을 쓴 것이 아닌가. 이미 세령의 일에 깊이 개입하기로 마음먹은 목진이지만 딱히 그녀의 배려가 싫기만 한 것도 아니었다.
“되었다. 네 속내가 아주 짐작이 가지 않는 것도 아니니 이 이야기는 이쯤 해 두자.”
하지만 목진은 미처 알지 못했다. 세령이 이번 일에 대해서 그에게 말하지 못했던 데에는, 하나의 이유가 더 있었다는 것을.
“······아저씨가 호버 바이크 조종을 익히느라 빡쳐있지만 않았어도 귀띔은 해 드렸을 거라고요.”
“······.”
꿍얼거리듯 말하는 세령의 말에 목진은 입을 다물었다.
솔직히 말해서, 그 스스로가 생각해도 그땐 진짜 짜증이 머리끝까지 치솟아서 ‘건드리면 다 박살내 버리겠다’라고 생각하고 있었으니까.
정보)세령의 호버 바이크는 현재 엔지니어인 글로리의 메인터넌스를 받고 있다. 더불어 2라운드인 지저혈곡의 마그마로부터 최소한의 방호력을 유지하기 위해 기본적인 추가 장갑을 덧대는 중이다.
세령은 의외로 술이 약한 편이라 맥주를 좋아한다.
반면 순자는 술이 상당히 세다. 알딸딸한 상태로 끝도 없이 술이 들어간다. 안드로이드도 술 정도는 마실 수 있다. 순자는 버번 위스키를 좋아한다.
토투가 랠리에서 가장 떨어지는 기록을 제외하면서까지 참가자들의 싸움을 유도하는 이유는 당연히 시청률 때문이다. 치고받고 폭발도 해 줘야 시청율이 오르는 것은 이 시대도 마찬가지다.
백사희가 세령의 방에 들어올 수 있었던 것은, 세령이 깜박하고 문을 닫지 않았기 때문이다.
세령이 백사희의 말에 비협조적으로 나오는 것은 사실 그냥 꼬장이다.
목진은 아직 세령을 빚을 갚을 대상 이상으로 보고 있지 않고, 세령은 목진을 완전히 일행으로서 받아들이지 못한 상태이다. 세령은 과거 몇 년간 동고동락한 로버트에게마저도 완전히 마음을 열지 않았다.
세령이 목진에게 염천성 이야기를 하지 않은 것은 무인으로서의 오기가 30%, 목진을 삼극회와 염천성 사이의 이해관계에 엮이지 않도록 하기 위한 배려가 20%, 씩씩거리는 목진에게 말을 거는 게 무서워서가 50%이다.
호버 바이크 조종을 익힐 때 목진은 매우매우 짜증이 나 있었어서, 무시무시한 살기를 줄기줄기 피워냈기에 주변에서 기겁을 하며 다가가지도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