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smic Heavenly Demon 3077 RAW novel - Chapter (79)
우주천마 3077-78화(79/349)
13. 제갈공주 Princess of the Great Jegal (1)
13. 제갈공주 Princess of the Great Jegal (1) – 아주 으마으마한 썅년이야.
“뭐야, 뭐가 어떻게 된 건데?”
어처구니 없는 표정으로 굳게 닫힌 철문을 바라보는 흔투가. 뭔가 일이 제대로 꼬였다는 것을 직감한 세령이 그를 향해 물었다.
“모르겠어요. 갑자기 마이스터 쪽에서 조건 상관없이 의뢰를 받지 않겠다고 했다는데요. 그 돈 좋아하는 양반이 이럴 리가 없는데······.”
“······뭐?”
흔투가의 말에 별안간 세령의 얼굴이 심각해졌다. 어째 익숙한 방식의 전개이기 때문이었다.
“타이밍이 너무 딱 들어맞긴 한데, 아니 그래도 그 년이 그럴 깜냥이 되나······?”
그런 세령을 보며 목진이 물었다.
“뭔가 짚이는 게 있느냐?”
“······짐작가는 게 없진 않은데, 확실하진 않아요. 정말로 그 마이스터라는 작자가 변덕을 부렸거나, 뭔가 일이 터졌을 수도 있으니까요.”
“혹시, 제갈희를 말하는 거에요?”
세령의 말에 순자가 마찬가지로 심각한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 세령이 대답 대신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상황이 그렇잖아. 어디 이런 일이 한두 번이야?”
“제갈희라면 여기 오기 전에 잠깐 이야기했던 그 제갈가의 여식을 말하는 것이냐?”
“네.”
제갈희. 제갈세가 가주의 무남독녀이자 뛰어난 무공으로 다른 경쟁자들을 제치고 소가주의 자리를 노리고 있다는 떠오르는 후기지수.
그 청초한 외모와 흰 부채를 사용하는 무공으로 인해 백선무희(白扇武姬)라는 별호가 붙을 정도로 명성을 떨치고 있다 했던가. 유난히도 불쾌함을 내비치는 세령의 반응에 당시에는 더 캐묻지 않았지만, 반응을 보니 가문간의 일을 제외하고서도 무언가가 더 있는 것 같았다.
“어떤 곡절이 있길래 그러느냐?”
“······하아.”
목진의 물음에 세령이 땅이 꺼져라 한숨을 내쉬었다.
“곡절이랄 것도 없어요. 뭐 사연이라도 있었으면 억울하지라도 않지, 그 년이 그냥 나를 죽도록 미워하거든요. 뭔 건수만 있으면 사사건건 훼방을 놓을 정도로요.”
“훼방?”
순자가 평소답지 않게 이를 갈며 대답했다.
“아주 악질이에요. 그간 왕언니가 내공 드라이브를 업그레이드 할 기회가 몇 번 있었는데, 어떻게 알았는지 처음에는 사람을 시켜서 내공 드라이브를 빼돌리거나 망가뜨리더니, 나중엔 아예 토투가의 뒷세계 업자들한테 왕언니가 내공 드라이브 수술을 할 때 수작을 부려놓으면 크게 사례하겠다고 소문을 퍼트렸어요.”
내공 드라이브 이식 수술은 소화기관을 일부 들어내고 내공 드라이브를 이식하는 대수술이다. 아무리 요즘 세상이 좋아져서 야매 의사조차 AI의 도움을 받으면 어지간한 수술은 문제 없이 완료할 수 있다지만, 작정하고 수작질을 한다면 막을 방법이 없다.
“보통 내공 드라이브 이식수술은 소속 문파에서 자체적으로 해결하거나 전문가한테 맡기는데, 왕언니 같은 경우는 그렇게 할 수 없으니까요. 그렇다고 삼극회에 들어갈 수도 없고.”
업자들 사이에서 그렇게 소문이 나 버리니 토투가든 토투가 밖이든 믿을 수 있을 리 없다. 정식으로 면허를 가진 이식수술 전문의들이라고 해도 마찬가지. 수술 중 사고사 처리를 하면 뒤탈도 없다. 명성이 좀 있다고 한들 결국 세령은 소속 없는 낭인일 뿐이니까.
전문의들조차 믿을 수 없는 마당에 누굴 믿을 수 있겠는가. 세령이 괜히 명공이나 그에 준하는 장인들을 찾는 게 아니다. 그 정도 급이 된다면 사소한 청탁 따위는 통하지 않을 테니까.
“그것 뿐만이 아니에요. 의뢰를 받으면 어떻게 알았는지 그 의뢰를 방해하는 경우도 있고, 일부러 사람을 써서 거짓 정보를 흘리기도 하고요.”
자초지종을 들은 목진이 눈살을 찌푸렸다.
“그것 참 지저분한 수를 쓰는구나. 그런 요물을 가만히 두느냐?”
“겉으론 착하고 이쁘장한 신진 후기지수니까요. 자기 평판을 깎아먹거나 대놓고 증거를 남길 정도로 멍청한 년도 아니고.”
“힘으로라도 해결할 수는 없느냐?”
목진의 입장에선 답답한 이야기였다. 실제로 그는 과거 천마로서 활동하던 시절 명분에 크게 개의치 않고 대뜸 무력으로 때려잡는 경우가 왕왕 있었으니까.
하지만 그건 세령에겐 해당이 안 되는 이야기였다.
“그게 되면 내가 이렇게 당하고 있겠어요?”
목진의 말에 세령이 날 선 말투로 대답했다. 자존심 상하는 이야기지만, 제갈희와 붙으면 패배하는 것은 그녀일 테니까.
수작질이 지저분해서 그렇지, 객관적으로 보면 제갈희와 세령의 실력 차이는 압도적이다. 어렸을 적부터 세가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으며 무공을 수련한 제갈희와 이류무공으로 간신히 하루하루를 연명하던 세령의 실력은 같은 선상에 놓을 수조차 없으니까. 설령 세령의 재능이 제갈희의 것을 상회한다 해도 말이다.
“혹 그 일에 제갈세가가 연루되어 있느냐?”
“직접적으로 나서진 않았어요. 그렇다고 제갈희 그년을 자제시키는 건 또 아니지만.”
목진의 물음에 세령이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가전무공이고 뭣도 없이 간신히 목숨만 부지한 그녀다. 그런 그녀에게 관심을 둘 가치가 있을 것 같지는 않았다
“쯧쯧. 정파라는 것들이······.”
“구대문파면 모를까 오대세가가 무슨 정파에요. 그냥 대놓고 나쁜 짓은 안 하니까 어거지로 정파 취급 해 주는 거지.”
“그래도 아직 속단하긴 이르지 않아요?”
이야기가 점점 제갈희가 이번 일의 배후라는 식으로 진행이 되자, 순자가 분위기를 환기시키며 말했다.
“상대는 기공방에서도 손꼽히는 최상급의 장인이잖아요. 제갈희가 어떻게 해볼 수 있는 상대가 아니에요.”
“걔는 못해도 걔네 가문은 가능하지 않을까?”
“지금까진 세가에서 직접 나선 적은 없었잖아요?”
“그건 그렇긴 한데, 지금까지 우리가 여기에 온 걸 그 교활한 년이 모르고 있을까? 내가 보기엔 그년이 맞아. 촉이 온다고.”
“잠깐, 잠깐만요.”
가만히 이야기를 듣고 있던 또 한 사람, 흔투가가 별안간 일행의 대화에 끼어들었다.
“지금 돌아가는 판에 제갈세가가 엮여 있다는 건가요? 백선무희 제갈희 여협이 염화나찰 소저와 갈등관계에 있고요?”
“그 년은 여협인데 왜 난 소저냐? 뒤질래? 그리고 아직 확실한 건 아냐.”
“그건 죄송한데요, 만약 제갈세가가 엮인 게 사실이라면 전 상황이 무척 곤란해 진단 말입니다. 저 개방 소속이에요. 같은 정파 사람이랑 문제 생기면 징계위원회 열린다구요.”
정말로 곤란하긴 한 모양인지, 흔투가는 정색하며 말했다. 세령으로선 어처구니가 없는 말이었지만 말이다.
“야, 니네가 그렇게 좋아하는 무림의 가십거리인데 뭘 그렇게 빼고 그러냐. 반대로 달려들어야 정상 아냐? 이 기회에 제갈희 그 여우같은 년 인성 논란이나 지펴 보자고. ‘또래 무림인을 수 년간 악의적으로 괴롭혀 온 백선무희의 실체!’같은 제목으로.”
“그건 제가 당사자가 아닐 때 이야기죠! 그리고 제갈세가 같은 세가는 잘못 건드리면 정말로 인생을 말아먹을 수 있다고요.”
“아 그래? 그럼 나는 존나게 만만했나 보네?”
세령이 검 위에 손을 올리며 스산하게 중얼거렸다. 하지만 이번만큼은 흔투가도 물러서지 않고 도끼눈을 뜨며 앞으로 나섰다.
칼부림까진 아니더라도 주먹질 정도는 오갈 것 같은 흉흉한 분위기. 그 상황을 정리한 것은 잠시 입을 다물고 있던 목진이었다.
“누군가 우리를 향해 오는구나. 아마도 저들이 이번 일의 배후렷다.”
목진이 바라보는 작은 거리를 따라 일행의 시선이 모였다, 저 멀리서 그들을 향해 다가오는 몇 명의 사람들. 안력을 돋워 그들의 선두에서 걷고 있는 사람을 본 세령이 나직이 욕설을 내뱉었다.
“시발, 이럴 줄 알았어.”
어디서부터 악연이 시작되었는지는 모른다.
아마도 그녀가 아주 어렸을 때, 그러니까 사천당가가 멸문하기 전에 무언가 계기가 있었으리라고 짐작할 뿐.
솔직히 말하자면, 그렇게 옛날 일을 이십 년이 넘게 지난 지금까지도 기억하고 있을 리가 없지 않은가.
하지만 분명 무언가가 있긴 했을 것이다. 그게 아니라면 제갈희는 아무 이유 없이 사람을 미워할 수 있는 사이코패스일 테니까.
중요한 건 제갈세가 가주의 직계혈족이자 세령과 동갑내기인 그녀가, 그녀를 죽도록 미워한다는 점이었다.
아주 어렸을 때는 그 악의를 느끼지 못했다. 세령의 유년시절은 삼극회라는 흑도 무리에서 어떻게든 살아남으려던 발버둥의 연속이었으니.
하지만 성인이 되어 무림에 나왔을 때, 십 년도 넘게 그녀를 미워하는 마음을 키우고 있던 이가 있을 줄 그 누가 알았겠는가. 정작 세령은 그녀가 제갈가의 사람이란 점 외에는 아무런 관심이 없었는데도 말이다.
제갈희는 머리가 좋았고, 집요했으며, 무력 또한 가지고 있었다. 그녀는 잊을 만 하면 나타나서 세령이 하는 일에 훼방을 놓거나 꼬아놓곤 했다.
아무리 관심이 없었다 한들, 그런 일을 세 번 네 번 겪는다면 없던 관심도 생기기 마련이다. 당연히 좋지 않은 쪽으로.
누군가 자신을 미워하게 만들 짓을 한다면 그 의도를 헤아려 성심성의껏 미워해주는 것이 당연한 도리가 아닐까. 하물며 그 자가 원수의 집안 사람이라면 말할 것도 없다.
그래서 제갈희가 그녀를 미워하는 만큼, 세령도 그녀를 혐오했다.
하지만 그 끝에서 언제나 웃는 쪽은 정해져 있었고, 분노를 삼키며 이를 가는 쪽도 정해져 있었다.
마치 지금처럼 말이다.
“어머. 이런 곳에서 보게 될 줄은 몰랐네.”
“아 결국 저 낯짝을 보게 되네.”
세령은 구태여 치솟아 오르는 짜증을 숨기지도 않고 이마를 짚었다. 여기 온 뒤로 저 빌어먹을 여자와는 최대한 마주치지 않으려고 했는데 결국 이렇게 만나게 되고 말았다. 악연도 이런 악연이 없었다.
아니, 엄밀히 말하면 우연은 아니었다. 모르긴 몰라도 제갈희는 이곳 기공방에 자신이 왔다는 이야기를 들은 순간 사람을 풀었을 테니까. 굳이 정정하자면 이건 인연이 아니라 설계라고 부르는 게 맞았다.
눈처럼 새하얀 백색 경장을 입은 제갈희는 미인도를 찢고 튀어나온 듯 단아한 아름다움을 지닌 미녀였다. 단지, 세령을 보는 그 눈초리에 차가운 적의가 맺힌 점이 흠이었지만 말이다.
여우 같은 상이로다. 제갈희를 본 목진의 첫인상을 그러했다. 확실히, 생긴 것만 봐도 세령과는 상극일 것 같았다.
제갈희는 세령의 옆에 선 목진과 순자, 흔투가를 흘긋 바라보고는 입을 열었다.
“소식은 들었어. 이번에 운 좋게 과분한 물건을 얻었다며?”
옥구슬이 굴러가는 것처럼 청아한 목소리 속에 숨겨진 건 지독한 멸시의 감정. 세령이 눈살을 찌푸렸다.
“소식도 빠르지. 스토커도 아니고 언제까지 그러고 살 거냐? 너는 너대로, 나는 나대로 서로 신경 끄고 살면 좀 좋냐? 철 좀 들어라.”
“흐응. 너 같이 재미있는 걸 어떻게 무시할 수 있겠어? 그렇게 당하면서도 끝까지 기죽지 않고 발버둥치는 꼴을 보는게 얼마나 즐거운데.”
대놓고 독설이 오가는 훈훈한 광경에 흔투가의 얼굴이 창백히 질렸다. 아닌 게 아니라 그 제갈세가의 소가주가 될 지도 모르는 거물이다. 호기심은 둘째 치고 지금 이 자리부터가 가시방석 같았다.
“아 공주님의 변태성욕에는 관심이 없고요. 내가 지금 좀 바쁘거든? 그러니까 서로 못 본 척 하고 갈 길 가자. 응?”
“바쁜 건 이쪽도 마찬가지야. 미래세가회 모임이 있어서 너를 신경써 줄 시간이 없거든.”
“그거 잘 됐네. 그럼 나 간다. 바이바이, 아듀, 사요나라.”
의혹은 있지만 최소한의 실마리도 없이 대뜸 네 짓이냐고 물어볼 수는 없는 노릇. 세령은 노골적으로 자리를 피하려는 기색을 보이며 몸을 돌렸다.
일단 자초지종을 알아보기 전에 괜히 저 여자를 자극하는 건 좋을 게 없으리라. 그리고 무엇보다도, 저 여자를 상대하는 상황 자체가 견딜 수 없이 불쾌하다는 점도 있었다.
하지만 제갈희는 세령을 놔 줄 생각이 없는 모양이었다.
“그냥 보낼 수는 없지. 오랫만에 만났는데 이야기도 없이 가기야?”
“······미친년인가 진짜.”
“마침 저쪽에서 내 일행이 다가오고 있네. 시간도 없고, 번거롭게 서로 떠 볼 것 없이 심플하게 할까?”
더 들을 것도 없다. 세령은 일행을 향해 눈짓하며 반대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아니, 발걸음을 옮기려 했다.
제갈희가 내뱉은 말을 듣지만 않았더라면 말이다.
“좋은 코어를 얻었으니, 이제 좋은 장인에게 제작 의뢰를 맡기는 것만 남았겠네? 그렇지?”
예를 들어, 네 눈 앞에 있는 철방의 주인이라던가.
그녀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세령의 검이 빛살처럼 제갈희를 향해 쏘아졌다.
정보)
세령이 무림에 나온 뒤 약 5년간, 제갈희는 갖은 방법을 통해 잊을 만 하면 세령의 일에 훼방을 놓았다. 그 과정에서 직접적인 증거는 단 하나도 남긴 적이 없을 정도로 주도면밀했으며, 세령의 앞에서도 언제나 은유적으로 그녀를 도발했다. 그럼에도 어째서인지 대놓고 세령을 습격하거나 사설 현상금을 걸거나 하지는 않아서 세령도 완전히 적대할 명분을 찾지는 못하고 있었다.
세령은 제갈희의 수작질 때문에 여태까지도 내공 드라이브를 교체하지 못했다. 수술을 하는 이를 믿을 수 없기 때문이다. 세령이 상급 내공 드라이브라는, 당시로선 터무니없는 목표를 잡은 것도 그런 제갈희의 수작질로부터 자유롭기 위해서였다.
세령의 무공은 제갈희와 비교할 바가 되지 못한다. 명문세가의 후기지수로서 영재교육을 받은데다 무공에 대한 재능도 뛰어난 제갈희의 무력은 후기지수 중에서도 상위권에 가볍게 들 정도로 강하다. 단, 무공에 대한 재능 자체는 세령 쪽이 더 높다.
확실하게 정파로서 무림인들에게 존경받고 있는 구파일방과 다르게 세가는 명목상 정파이긴 하지만 정파로서 구파일방만큼의 인정은 받지 못하고 있다. 아무래도 세속적인 분위기가 강한데다 혈족 위주의 폐쇄적인 성향과 기업적인 성향이 더해진 탓이 강하다.
흔투가의 입장에선 제갈세가와 트러블이 일어나면 매우 곤란해지는 상황인 것은 맞다. 존재감이 다르긴 하지만 어쨌든 제갈세가도 정파의 큰 기둥이다 초거대 문파이기 때문이다. 일개 개방도가 건드려서 뒷감당을 할 수 있는 상대는 아니다.
설령 여론전을 펼친다 해도 제갈희를 끌어내릴 가능성은 매우 적다. 제갈세가의 홍보부서는 절대 호락호락한 상대가 아니기 때문이다.
제갈희와 세령의 악연은 매우 오래 전부터 이어졌다. 다만 세령은 잊은 지 오래이며, 제갈희가 그녀를 저격하기 전까지는 제갈세가 놈이구나 하는 생각 외엔 별 생각이 없었다.
제갈희는 예쁘고 강하고 똑똑한데다 금수저이기까지 해서 강호넷에 인기가 매우 많다. 팬클럽도 꽤 큰 편이다.
제갈희는 세령의 앞에서만큼은 본성을 드러내며 매우 노골적으로 도발을 건다. 물론, 녹음이나 녹화를 대비한 예방책 정도는 대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