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smic Heavenly Demon 3077 RAW novel - Chapter (81)
우주천마 3077-80화(81/349)
13. 제갈공주 Princess of the Great Jegal (3)
13. 제갈공주 Princess of the Great Jegal (3) – 나째는 그렇게 안 했어
오대세가에 복수라니. 제정신이냐?
당연한 반응이었다. 문파라고 해 봐야 구멍가게 수준이던 고전무협 시대면 모를까, 세상 어떤 미친놈이 산하 세력만 수백 수천만에 이르는 우주세기의 거대문파와 맞선다는 말인가. 정신이 제대로 박힌 놈이라면 현실을 받아들이고 새 인생을 사는 게 정상일 것이다.
그래서 반골 기질 가득한 세령은 복수행을 선택했다. 단신으로 오대세가를 무너트리는 것은 불가능하겠지만 강호의 불문율을 등에 업은 복수행이라면 실낱같은 가능성이라도 있었으니까.
하지만 현실은 그리 녹록치 않았다.
그녀는 최근 몇 년 동안 질리도록 실감했다. 아무리 복수행이니 뭐니 해도 현실적으로는 이뤄질 수 없는 허깨비 같은 소리라는 것을.
사천당문의 마지막 직계혈족 당세령. 허울은 그럴 듯 하나, 그녀의 현실은 제대로 된 내공 드라이브조차 없는 반푼이 현상금 사냥꾼이다. 당장 제대로 된 내공 드라이브조차 구하지 못해서 허덕이는데 무슨 놈의 복수란 말인가.
그렇기에 세령은 언제부터인가 자연스럽게 체념하게 되었는지도 모른다. 공허하게 닿지 않는 복수를 쫓으며 의미 없는 자존심에나 집착하게 된 것이다.
적어도, 수천년 전 고대의 고수와 조우하는 기연을 얻기 전까지는 그랬다.
목진과 함께한 짧은 여정 중에 세령은 가능성을 보았다.
복수, 어쩌면 정말로 가능하지 않을까. 하고.
때문에 그녀는 제갈희의 도발조차도 웃으며 받아넘길 수 있었다.
‘그깟 자존심, 못 팔 게 뭐야.’
미래세가회라 했던가. 영 재수가 없어보이는 이름의 도련님들 모임 앞에서 공언한 말이니만큼 체면에 목숨을 거는 제갈희라면 자존심 때문에라도 다른 말은 못 할 것이다.
아마도 두번 다시는 오지 않을, 최상급 내공 드라이브를 얻을 수 있는 귀중한 기회다. 고작 내상 좀 입고 자존심 좀 팔아먹는 정도로 저 집요한 미친년의 수작질을 막을 수 있다면 썩 남는 장사였다.
······라고 생각했었다.
전혀 예상치 못하게, 목진이 돌발행동을 보이기 전까지는 말이다.
“······사사로운 은원이 걸린 일에 대선배께서 나서실 줄은 몰랐습니다만.”
돌아간 고개를 천천히 되돌리며 제갈희가 입을 열었다. 갑자기 따귀를 맞았음에도 대단히 침착한 목소리였다.
고작 후기지수간의 사적인 은원관계일 뿐이다. 분별 있는 강호의 선배라면 자세한 사정을 알지 못하는 한 되도록 끼어들지 않고 당사자들 간에 해결하도록 관망하는 것이 무림의 법도.
함께 여행하는 일행인 만큼 어쩌면 목진이 개입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지만 이런 식으로는 아니다. 머릿속으로는 냉정하게 이 상황을 어떻게 타개할까를 궁리하는 제갈희였지만 불쾌한 기분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사사로운 은원치고는 지나치게 음습하다고 생각하지 않느냐? 내가 그간 봐 온 제갈씨들이 계략에 능했던 것은 사실이나, 무인으로서 최소한의 품위와 기개가 있었다. 헌데 네 언행은 무인이 아니라 못된 어린아이나 다름없구나. 네가 무가의 여식이 맞다면 무인답게 행동하거라.”
“······소녀가 무인답게 행동했다면 저 여자가 여지껏 살아있었겠습니까?”
목진에게만 보이도록, 시니컬한 웃음과 함께 제갈희가 되물었다. 그녀가 본 실력의 절반, 아니 삼 할이라도 드러낸다면 세령 정도의 반푼이 무인은 십초지적도 되지 못할 테니까. 목진의 말대로 무인답게 그녀를 죽인다면 어쩌겠냐는 지적이었다.
그러나 목진이 개입한 이유에 대한 그녀의 짐작은 잘못 짚어도 한참은 잘못 짚은 것이었다.
“진정 목숨을 거둬야 할 만큼 원한이 깊다면 응당 그리 했었어야겠지.”
“······진심이신지요?”
“무인간에 은원이 있다면 무공으로 해결하는 것이 강호의 법도가 아니더냐. 무인의 삶이란 본디 그러한 것이지. 아무리 원한이 깊다 한들 무인으로서의 예조차 잊는다면 강호의 그 누가 너를 무가의 자제라 하겠느냐?”
뼈가 있는 목진의 말에 제갈희의 눈빛이 착 가라앉았다. 목진의 말은 명문세가의 일원이 듣기에 다분히 모욕적인 말이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갈희의 머리는 현 상황에 대해 냉정하게 사고하고 있었다. 그 서천검후를 상대로 압승한 동안우공 이목진의 무위가 잘 가늠이 되지 않기 때문이기도 했고, 수많은 미래세가회의 사람들이 그녀를 바라보고 있기 때문이기도 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무림의 선배답게 한 발 물러서 사태를 관망하던 그가 왜 갑자기 끼어든 걸까. 제갈희는 그 이유를 확실히 파악하기 위해 질문을 던졌다.
“하면 단지 그 때문에 나서신 것이온지.”
당세령과의 사적인 인연 때문에 나선 게 아니라 단순히 보기 불편해서 나선 것이라면 괜찮다. 다짜고짜 뺨을 맞은 입장에선 기분은 좀 나쁘지만, 우주무림에 괴팍한 고수가 어디 한둘이던가.
그렇지만 목진이 나선 이유는 단순히 그 때문만은 아니었다. 그는 가만히 고개를 가로저었다.
“물론 그렇지만은 않느니라. 짧지 않은 사정이라 이 자리에서 풀어놓을 수는 없으나, 이 아이와 제갈과의 은원에는 나도 외인이 아니라고만 말해두마.”
에둘러 말하지 않고 직설적으로 제갈의 대척점에 서겠다는 목진의 선언에 제갈희의 눈빛이 일변한다.
이 자는 세가의 적이다.
제갈희의 목소리에 한기가 실린다.
“······정녕 제갈과 척을 지시려 하시는지요. 대협께서 고명하신 고수임에는 이견이 없사오나, 그렇다 해도 홀로 무림세가와 대적하시는 것은 그리 현명하신 선택이 아니라 생각됩니다만.”
수천년 전 고대인이 도대체 무슨 이유가 있어서 제갈세가와 당세령의 은원에 끼어드는 것인지는 모른다. 하지만 그가 세가에 대적하려 한다는 것만큼은 결코 가벼이 여길 수 없음이라.
무림세가는 정파지만, 그 권위에 도전하는 이들에게는 그 마교에 버금갈 정도로 가혹하다. 혈족이라는 한계를 넘어 거대한 무림의 조직으로 발돋움하기 위해서는 절대적인 구심점이 필요한 법이니 말이다.
설령 상대가 절대고수라 해도 마찬가지다. 제아무리 무공이 드높다 해도 그것조차 덮을 수 있는것이 바로 문파와 세가의 힘. 그 힘에 맞서는 것은 다른 세력을 등에 업지 않는 이상 불가능한 일이니까.
그렇기에 제갈희는 자신보다 고수임이 분명한 상대를 눈앞에 두고도 물러서지 않고 경고할 수 있었다.
동안우공 이목진의 무위가 우주무림에 명성을 날릴 정도로 대단하다고는 하나, 그래봐야 제갈세가와 적대하는 절대고수 중의 하나일 뿐이다.
그리고 세가와 연대하는 절대고수는 그보다 더 많았다.
“허허.”
허나 눈앞의 사내는 웃었다. 그녀의 경고가 농처럼 들린다는 듯이.
“틀렸느니라.”
그 목소리는 부드럽지만 단호했다. 마치 자랑스레 오답을 내민 어린아이를 훈계하는 것처럼.
“그 물음은 네가 아니라 내 입에서 나와야 할 것이었다.”
“······무슨 말씀이시온지.”
영문 모를 소리에 제갈희는 표정을 관리하며 되물었다. 선문답을 싫어하는 것은 아니지만,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는 그리 긍정적인 신호가 아니었다.
그러나 뒤이어 들려온 목진의 말을 듣자, 그녀는 저도 모르게 고운 눈매를 와락 일그러트릴 수밖에 없었다.
“너희 제갈세가가 감히 나와 척을 지려 하는 것이냐고 묻는 것이다.”
사천당가 최후의 생존자 세령이 한순간이나마 품고자 했던, 그러나 감히 품을 수 없던 말.
그것은 산하 문파들을 포함해 그 수가 천만에 달하는 거대 무림세가를 상대로 일개 개인이 입에 담기에는, 지나치게 광오한 말이었다.
하지만 그 자리에 있는 그 누구도 목진의 말을 가벼이 여길 수 없었다. 그저 당연한 것을 말한다는 듯 지독한 확신과 자신감에 찬 그의 얼굴 때문이었다.
가감 없이 진심으로 무림세가를 홀로 대적할 수 있다 말하는, 고대에서 온 절대고수의 기백은 단지 무공만 높을 뿐인 후기지수들이 감당할 수 있는 영역의 것이 아니다.
이해할 수 없는 생물을 보는 듯 자신을 바라보는 제갈희의 눈을 똑바로 마주보며 목진이 빙그레 웃었다.
“어린 제갈의 아이야, 그러니 그 전에 한 가지만 묻자꾸나.”
네가 제갈의 의지를 대변하여 내게 도전할 만큼 충분한 자격을 가지고 있느냐?
“으, 읏······.”
얼핏 인자하게도 보이는, 완만하게 휘어진 눈매 사이로 보이는 스산한 안광. 그 앞에 선 제갈희가 순간적으로 압도된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는지도 모른다.
다만 목진은 잠시 잊고 있었다. 이곳에는 그녀만이 자리하고 있는 게 아니라는 것을.
“대협.”
청명한 목소리와 함께 목진과 제갈희의 사이를 가로막은 한 사내.
창천폭룡 남궁천.
하늘을 닮은 푸른 빛이 감도는 눈동자를 지닌 그는 강호의 대선배를 대하는 것치고는 매섭기 그지없는 얼굴로 목진을 보았다.
“대협께서는 그녀와 제갈가와의 은원에 관계가 있다 하셨습니다. 하면 조금 전 그 말씀, 오대세가를 아울러 무림세가 전체를 향한 것이라 보아도 되겠습니까.”
“신경쓰이더냐?”
“······.”
질문에 대한 대답 이외엔 듣지 않겠다는 듯 입을 다문 채 그를 노려보는 남궁천을 보며, 그가 픽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렴. 그리 받아들여도 상관없느니.”
그것은 선전포고였다. 제갈세가를 위시한 오대세가를 향한 선전포고.
어차피 사천당문의 부활을 천명한 이상 언젠가는 맞닥뜨려야 할 일이다. 다만 목진은 그것을 조금 앞당겼을 뿐.
“그렇습니까.”
하면. 남궁천이 허리춤의 검을 뽑아든 채 목진을 향해 정중히 고개를 숙였다.
“상대가 아무리 고강한 고수라 하여도, 세가의 피를 이은 직계로서 신명을 다해 그 명예를 지켜야 하는 바. 지금 이 자리에서, 대 남궁세가를 대표하여 무림말학 남궁천이 이목진 대협께 비무를 신청합니다.”
그 서천검후를 패퇴시킨 초신성과 같은 절대고수다. 당연히 가문에서도 이야기가 나왔고, 만약 인연이 닿는다면 되도록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방향으로 지침이 잡힌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사천당가의 생존자와 함께하며 현 오대세가 체제를 향해 이빨을 들이댄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은원으로 얽힌 관계에 회유가 통할 확률은 희박. 지금 이 순간부터 동안우공 이목진은 오대세가 공동의 적 리스트에 이름을 올리게 되리라.
물론 그들이 먼저 손을 대지는 않을 것이다. 그들은 명실상부한 정파였으니까. 목진이 남궁세가에 직접적으로 적대하지 않는 이상은 주요 관찰대상자로서 지켜볼 뿐이다.
하지만 그와 별개로 남궁천이 목진에게 검을 향한 이유는 따로 있었다.
선전포고를 들었다면 응당 그에 대한 답을 해야하지 않겠는가. 하물며 그들의 목숨을 바쳐 수호해야 하는 세가의 권위와 명예를 향한 선전포고라면 더더욱.
정파의 이름을 짊어진 이는 누구든지 명분을 좇는다. 그것이 구파일방든, 오대세가든 마찬가지. 명분 없는 검을 뽑지 않는 것이야말로 그들이 정파임을 증명하기 때문이다.
허나 정파의 두 기둥을 이루는 구파일방과 무림세가의 사이에는 결정적인 간극이 있다.
구파일방이 대의에 목숨을 건다면, 무림세가는 세가의 명예에 목숨을 건다는 것.
설령 상대가 까마득히 강한 절대고수라 할지라도, 세가의 일원인 그들만큼은 물러서서는 안 되었다.
“······저 또한, 대 제갈세가를 대표하여 무림말학 제갈희가 이목진 대협께 비무를 신청하겠습니다.”
뒤늦게 평정을 되찾은 제갈희 또한 남궁천을 따라 철선을 내밀며 포권했다. 그런 두 사람을 본 목진이 조금 전과는 달리 미미하게 흡족한 웃음을 보였다.
“그래, 이제 조금은 무가의 핏줄답게 구는구나.”
막 목진이 그들의 비무요청에 응하려는 찰나였다. 꾸욱. 하고 누군가가 목진의 옷소매를 끌어당긴 것은.
지금까지의 상황을 지켜보면서도 주화입마 때문에 아무런 행동도 할 수 없던 단 한 사람.
세령이었다.
“그만, 둬요······.”
내상으로 인한 선홍빛 피가래를 울컥 뱉어내면서 세령은 끊어질 것만 같은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누군들 배알이 없어서 원수의 핏줄에게 굴욕을 당하면서도 고개를 숙였겠는가.
자존심밖에 남지 않은 그녀가 제 자존심을 팔아치우려 한 것은 소탐대실하지 않고 더욱 큰 목적을 손에 넣기 위해서였다.
자존심 좀 팔아서 제대로 된 내공 드라이브만 얻을 수 있다면, 그리고 힘을 길러 오대세가의 원수들에게 복수할 수만 있다면 그건 굴욕이 아니라 투자다.
그 결과에 이르기까지 얼마나 많은 고뇌가 있었던가. 말은 하지 않았어도 그간 그녀가 느낀 내적 갈등은 쉬이 입에 담을 만큼 가벼운 것이 아니었다.
그런데 그런 고뇌 끝에 얻은 결심을, 아무것도 모르는 눈앞의 목진이 저 멀리 걷어차버린 것이다.
자신을 위해 화를 내 주는 것은 고맙다. 하지만 지금은 그러지 말아야 했다.
지금 목진이 저들을 쓰러트리는 것에 관계없이, 앞으로 제갈세가는 그녀가 내공 드라이브를 얻지 못하도록 온갖 수단을 써서 막으려 들 테니까. 세령은 그것이 못내 원망스러웠다.
“세령아.”
목진은 허리를 약간 숙여 고마움과 원망이 한데 뒤엉킨 듯한 그녀의 눈동자를 마주하며 입을 열었다.
“네가 한 걸음이 아니라 그 너머를 보고 있음은 알고 있느니라.”
허나 무인이라면 때로는 그 무엇보다 우선해야 할 것도 있다는 것을 알거라. 그의 목소리는 딱히 따뜻하진 않았지만, 차분하게 가라앉아 있었다.
“작금의 시대의 방식은 알지 못한다.”
목진의 오른손은 어느새 허리의 검 위에 올라가 있었다.
“하지만 내 시대에는 이리 하였느니라.”
소리없이 뽑힌 검이 서늘한 궤적을 그리며 제갈희와 남궁천을 향했다.
그가 말했다.
“비무를 받아들이마.”
단순한 우연과 은원이 서로 엮여 태풍의 전조가 되는 순간이었다.
정보)
무림세가는 혈족으로 이루어진 특성 상 우주무림 시대의 문파들처럼 그 규모를 키우는 데 한계가 존재한다. 그래서 보통은 방계로 이어진 문파나 세력권 내의 정파 계열 문파들을 산하로 들여 세력을 키운다. 보통 세가의 세력은 수만에서 수십만 정도지만 오대세가 정도 급에 이르면 산하 세력만 수백만에 이른다.
제갈세가는 과거 사천당가의 축출을 주도한 이후로 인류정부의 지원을 등에 업고 오대세가에서도 독보적으로 영향력을 키웠기 때문에 산하 세력이 천만이 넘어가기에 이른다.
가진 전 쥐뿔도 없이 간신히 먹고살기만 하던 세령은 복수에 대해 반쯤 포기상태였다. 하지만 목진과 만나고 난 뒤 여러 사건들을 겪고, 큰 돈을 벌어들이게 되면서 생각이 바뀌었다.
구파일방과 무림세가는 모두 정파에 속하지만 무림인들에게 비춰지는 시선은 조금 차이가 있다. 구파일방이 고루하다는 이미지와 어느 정도의 적폐라는 이미지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정의의 편이라는 인식이 박혀있다면, 무림세가는 정의의 편이긴 하지만 그 범주 내에서 사적인 이익을 추구하는 경향이 강한 일종의 재벌세력과 같은 느낌이다.
실제로도 구파일방은 보다 대의를 추구하는 경향이 강하고, 무림세가는 명예를 추구하는 경향이 강하다. 물론 그런 경향이 있다는 것일 뿐 절대적인 특징은 아니다.
무림세가는 적대세력, 특히 세가의 명예에 도전하는 상대에 대해 매우 가혹하다. 그래야만 제각각 근본이 다른 휘하 세력을 제대로 이끌 수 있기 때문이다.
무림세가의 입장에서 목진은 친분을 만들면 좋은 고수 중 하나이지만, 바꿔 말하면 그것뿐이다. 무림세가나 문파들에서는 대개 절대고수를 ‘적대하지 않는 것이 최선이지만, 만약 적대하게 되더라도 정치적, 무력적으로 충분히 대응 가능한 전략적 일인전력’으로 두는 경향이 강하다.
만약 무림세가의 대외부서에서 철시귀옹이 요새화한 행성을 단신으로 공략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면, 목진을 일반적인 절대고수들과 달리 ‘조건부로 무림세력에 유의미한 전략적 타격을 줄 수 있는 비대칭 전력’으로 상향 조정했을 것이다.
남궁세가는 목진과 적대한다고 해도, 아직까지는 관창대상으로 둘 뿐 직접적으로 치고받지 않는 이상 전투부대를 파견할 의향은 없다.
남궁천과 제갈희 두 사람 모두 목진이 자신들보다 강하다는 것을 안다. 그럼에도 비무를 신청한 것은 목진이 대놓고 오대세가의 권위에 도전했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무림세가 직계들은 설령 패배가 정해져 있다고 해도 세가의 직계라면 세가의 권위에 대한 도전을 묵과해서는 안 된다고 교육받는다.
보통 남궁천과 제갈희 같은 세가의 직계가 패배를 무릅쓰고 도전한다면 아주 악랄한 사파의 마두가 아닌 이상 대개는 목숨까지 거두지는 않는 것이 강호의 불문율이다. 평판적인 문제도 있지만, 만약 덤벼든다고 진짜 죽여버리면 직계혈족의 사망에 눈이 뒤집힌 무림세가가 복수를 천명하고 달려들기 때문이다.
물론 죽이거나 아예 재기불능으로 만들지만 않는다면 괜찮다. 정파라면 모를까 사파 계통 고수라면 팔다리를 한두 개 자르는 정도는 업계 관행으로 생각하고 넘어간다. 어차피 생명공학적 치료를 받거나 사이보그 수술을 받으면 일상생활은 물론 전투에도 큰 지장 없다.
제갈희와 남궁천은 목진이 그들보다 고수라는 것은 인지하고 있지만, 그렇다고 승산이 아예 없지는 않다고 생각하고 있다.
목진은 단지 제갈희의 어그로 때문에 개입한 것만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