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smic Heavenly Demon 3077 RAW novel - Chapter (85)
우주천마 3077-84화(85/349)
14. 무림동도 Old Old Age Buff (1)
14. 무림동도 Old Old Age Buff (1) – 진념일직선
섬서성계, 제갈세가.
새하얀 백단목 장식 덕에 단아하면서도 고풍스러운 멋이 절묘한 조화를 이루고 있는 거대한 대전의 이름은 와룡전(臥龍殿). 그곳에서 가장 높은 상석에 한 노인이 앉아있었다.
주름이 자글자글한 외견에도 불구하고 그 허리는 꼿꼿하며, 두 눈에서는 형형한 빛을 발하는 노인. 그는 눈앞에 부복한 중년의 여인을 보며 조용히 입을 열었다.
“나이를 먹으니 귀가 잘 들리지 않는군. 이 늙은이가 제대로 들은 건지 잘 모르겠어.”
“송구합니다. 태상가주님.”
노인의 말에 여인, 제갈세가의 장로가 식은땀을 흘리며 고개를 숙였다. 차마 조금 전 전했던 참담한 소식을 다시 입에 담을 자신이 없었다.
“흐음.”
특히나 눈앞에 있는 노인의 앞에서는 말이다.
고작 수십 년 만에 제갈의 이름을 반석 위에 올리고, 오대세가의 말석이던 세가를 천하제일세가로 발돋움하게 만든 위인.
일선에서 물러난 지금도 말 한 마디로 백만이 넘는 무인을 움직일 수 있는 살아있는 전설.
그리고 이천 년 유구한 역사를 이어온 또다른 명문세가 사천당가를 무림에서 축출해낸 철혈의 가주.
머나먼 옛날 천하를 논하던 선조의 재림이라 불리우는 그 앞에서 어찌 정체도 모를 일개 무인에게 제갈의 핏줄이 치욕을 당하였다 말할 수 있겠는가.
“송구할 것 없네. 조금 의외이긴 하다만, 그리 화날 일도 아니지 않는가.”
하지만 정작 노인, 제갈현은 아끼는 손녀가 패배하였다는 말에도 그리 분노하진 않는 모습이었다.
이목진. 제갈현은 탁자를 톡톡 두드리며 기억을 더듬었다. 들어본 적 있는 이름이었다.
“서천검후를 꺾은 사내가 그런 이름을 가지고 있었지.”
화경의 경지에 막 들어선 수준이면 모를까, 그 이상의 경지에 닿았을 지도 모르는 고수를 상대로는 패배하는 것이 그리 놀라울 일은 아니다. 막대한 내공과 뛰어난 신공절학으로 극복할 수 있는 차이에는 한계가 있으니까.
“남궁의 셋째와 협공했음에도 본신전력조차 끌어내지 못했다라. 하긴, 강호는 넓고 숨은 고수는 모래알처럼 많지. 희아에게도 좋은 경험이 되었을 게야.”
그렇기에 제갈현은 별다른 분노를 내비치지 않았다. 아니, 반대로 그의 반응은 기꺼움에 가까웠다. 상처 하나 입지 않고 온전한 실력의 격차를 보여주며 그녀를 제압할 수 있는 고수가 세상에 몇이나 되겠는가.
“그 아이는 나를 닮았어. 고작 이 정도로 꺾일 정도로 작은 그릇이 아니지.”
그는 미래에 제갈을 이끌어 갈 그의 손녀가 이번의 패배를 자양분으로 삼아 한층 더 성장할 수 있으리라 확신하고 있었다.
“하오면 추가적인 조치는 필요치 않겠습니까?”
“필요 없네. 손녀에게 귀한 경험을 시켜주었다고 상이라도 주면 모를까.”
제갈현이 가볍게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고작 이 정도로 보복조치를 할 만큼 제갈세가가 치졸한 문파는 아니었다.
하지만, 뒤이어 들려온 여인의 말은 그냥 듣고 넘길 수 있을 만큼 가벼운 것이 아니었다.
“하온데······. 동안우공 이목진이 사천당가의 이름을 입에 담았습니다.”
“······사천당가?”
과거의 망령이 아직도 남아있었는가. 제갈현의 눈이 깊게 침잠했다.
“그가 당가의 마지막 생존자와 함께 움직이고 있었다고 합니다.”
“그 어린 것이 아직 살아 있었군. 희아도 마무리가 어설퍼.”
본디 싹을 자르기 위해서라도 한참 전에 처리했어야 할 변수였다. 무슨 이유에선지 그녀를 직접 짓밟고자 하는 손녀의 요청 때문에 살려두었지만, 아직까지도 살아있을 줄이야.
여흥은 언제든 정리하고 그만둘 수 있어야 여흥인 법이다. 제갈현은 가볍게 혀를 차며 여인을 향해 물었다.
“그 자가 뭐라 했지?”
“그것이······세가에 직접 찾아와 당가의 일에 대한 책임을 묻겠다 하였습니다.”
“허어. 당돌하기 그지없군.”
지극히 오만한 선전포고에 제갈현이 헛웃음을 지었다.
제 실력에 자신이 있는가, 아니면 현실을 보지 못하는가. 어느 쪽이든 어리석다는 것에는 차이가 없다.
“본가가 그리 만만해 보였나 보이.”
“제 힘에 취한, 조금 강한 원시인일 뿐입니다.”
여인이 서늘한 목소리로 내뱉었다. 제갈세가의 장로이자 노인의 충복인 그녀로서는 광오하다못해 현실감각조차 없는 목진의 말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설령 그가 정말로 현경의 경지에 오른 절대고수라 하더라도 상관없다. 제갈현이 이끈 이래 역대 최전성기를 구가하고 있는 제갈세가라면 능히 그만한 고수를 감당할 수 있으리라.
“가주께선 어찌 하시겠다던가?”
“상대할 필요가 없는 자이니 내버려두라 하셨습니다. 지금은 얼마 전 세력권으로 편입한 개척지대의 안정에 세가의 전력을 기울여야 할 때이니까요.”
쯧쯧. 제갈현은 조금 전과 달리,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 혀를 찼다.
“가주는 욕심이 너무 많군. 인류정부의 최고위원회는 본가가 개척지대를 모두 삼키도록 둘 만큼 호락호락한 자들이 아니거늘. 그 늙은 여우들이 가만히 있을리가.”
“가주님께서도 계획이 있지 않겠사옵니까. 개척지대를 온전히 세가의 세력권으로 만들 수 있다면 세가의 미래는 탄탄대로일 것입니다.”
“그것이 아니야. 어느 쪽이 중한지 아직도 모르겠는가.”
우리의 근본이 무가(武家)임을 잊지 말게. 제갈현이 고개를 내저으며 입을 열었다.
“자고로 무가란 가문의 이름에 도전하는 자를 가만히 두어서는 안 되는 법이야. 그것을 지키지 못해서야 가문의 명예에 부끄러운 일이지.”
“하오면 사람을 보내오리까?”
“백룡대(白龍隊)를 보내게. 가주는 이 늙은이가 설득해 보겠네.”
“백룡대······를 말입니까.”
제갈현의 말에 여인이 마른침을 삼켰다. 백룡대는 자타공인 제갈세가 최고 전력 중 하나. 보통은 문파 단위, 혹은 A랭크 이상의 전투부대를 상대하는 이들이었다.
“고작 사람 하나에게 백룡대는 과하지 않은지······.”
하지만 제갈현의 생각은 달랐다. 그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했다.
“그 서천검후를 여유롭게 제압할 만한 고수일세. 지고한 경지에 발을 딛었다고 해도 억측이라 할 순 없겠지. 제갈의 이름에 더는 누를 끼칠 수 없네.”
괜히 간을 보겠답시고 어중간한 이들을 보내 봤자 희생자만 늘어날 뿐. 차라리 처음부터 전력을 다해 상대를 꺾는 것이 효율적이다.
제갈세가를 상징하는 기수 중 하나인 백룡대라면 굳이 보험까지 필요하진 않으리라. 제갈현이 스산한 목소리로 말했다.
“아까운 인재임을 분명하지만, 멸문한 당가를 운운하며 제갈의 이름에 도전하는 이를 살려둘 이유는 없지. 생사는 불문에 부칠테니 더는 그 자와 당가의 생존자에 대한 이야기가 강호에 들리지 않도록 하게.”
존명. 여인은 비장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태양 주변을 에워싼 채 저마다의 빛을 발하는 기공방 콜로니 군집 중에서도 무구나 내공 드라이브를 제작하는 철방(鐵房)은 태양과 가까운 곳에 자리하고 있다. 태양에서 뿜어내는 막대한 에너지를 최대한 활용하기 위해 가깝게 접근하는 것이다.
그리고 여기서 가깝다는 것은, 거대한 청색 태양이 시야를 가득 채울 정도로 가까움을 의미한다.
“장관이로군.”
특수 차광처리된 콕핏 밖으로 청색 태양을 바라보며 목진은 감탄에 감탄을 거듭했다. 살면서 하늘에 떠 있는 태양에 이리도 가까이 다가갈 수 있을 줄이야. 아마 선계에 올랐다던 선인들도 이러한 체험은 해 보지 못했으리라.
“장관이긴 한데, 좀 무섭죠.”
팔짱을 끼고 목진의 옆에 서 있던 세령이 떨떠름한 목소리로 말했다.
견인 우주선에 매달린 채 열기가 차단되는 방열 항로를 따라가고 있는 중이라 느긋하게 태양 구경을 할 수 있는 거지, 항로에서 조금이라도 이탈한다면 저 태양의 열기에 우주선채로 흐물흐물 녹아내리게 되리라.
이런 극한의 환경에서 철방을 차리고 장사하는 놈들은 머리에서 나사가 몇 개쯤 빠진 게 아닐까. 그런 생각이 세령의 머릿속에 떠오른 건 당연한 반응인지도 모른다. 운 나쁜 사고로 방열 역장이 무너진다면 콜로니고 뭐고 태양이 내뿜는 고열에 그대로 타버릴 테니까.
“그런데 그 마이스터가 의뢰를 받을까요? 일단 약속을 잡긴 했으니까 찾아왔지만, 철방 콜로니 하나를 통째로 굴릴 정도면 어제 일을 모를 리가 없을텐데요.”
“네 의뢰를 거절할 요량이었다면 약속을 잡을 이유가 없지 않느냐. 무언가 흥정을 걸어 올 수는 있겠다마는, 의뢰 자체를 거절할 일은 없을 것이다.”
“목진 님 말이 맞을 거에요. 개방 쪽에 조사의뢰를 넣어 봤거든요. 알파 프라임 공정 기록은 없지만, 90sp인증을 받은 최상급 내공 드라이브를 아홉 개 제작했었다니 실력은 충분하다고 봐야겠죠.”
견인 우주선에 유도되는대로 우주선의 미세 조정을 맡고 있던 순자가 목진의 말을 받아 대답했다.
공정효율 90퍼센트는 장인의 경지에 이른 솜씨로만 도달할 수 있는 영역. 그만한 내공 드라이브를 여럿 제작했다면 실력 면에선 의심의 여지가 없으리라.
“그리고 좀 애매한 정보이긴 한데요, 기공방의 진골(眞骨)이라는 이야기가 있어요.”
“진골?”
“기공방의 정점인 스무 명의 최고 장인들을 성골(聖骨)이라고 하는데, 그들의 진전을 이은 직계 제자들을 진골이라고 불러요. 그들 중에서 선택받은 일부만이 스승의 자리를 이어받게 되는거죠.”
그 싸가지 없는 놈이? 세령이 믿을 수 없다는 듯 인상을 찌푸렸다.
“제자라고 해서 다 실력이 좋을 리는 없잖아.”
“그래도 신뢰도는 어느 정도 보장되지 않겠어요?”
“······시발. 알았다고.”
순자의 말에 결국 세령이 입을 다물었다. 개인적인 감정은 차치하고서라도, 당장 매달릴 곳은 그 싸가지 뿐이었기 때문이었다.
십여 분쯤 지났을까, 저 멀리 방열 항로 너머에 보이는 콜로니 철방을 보며 세령이 목진을 툭 건드렸다.
“도착했어요.”
내열 패널을 덕지덕지 붙인, 거대한 원통 모양의 콜로니. 별 생각 없이 우주선 도크를 바라보던 세령이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저건 또 뭐야.”
우주선 도크 위쪽에 커다란 나무 현판이 달려있었다. 콜로니랑은 어울리지 않게 멋들어진 한자가 새겨진 현판. 한자라서 무슨 뜻인지는 알 수 없지만, 문외한인 그녀가 봐도 범상치 않은 기운이 느껴지는 서체였다.
우주 무림에서도 하이 테크놀로지로 무장한 철방 콜로니와는 어지간히 어울리지 않는 게 문제였지만 말이다.
취향 하고는. 세령은 가볍게 혀를 찼다. 전뇌공간 상태가 그 짝일 때부터 대충 짐작은 했었지만, 막상 저 악취미스러운 모습을 보자니 한층 더 믿음이 가질 않는다.
하지만 반대로, 그런 것이 취향에 제대로 꽂혀버린 이도 있었다.
“직념공방(直念工房)이라. 마음에 드는 이름이구나.”
“직념?”
“올곧은 마음이 좋은 검을 벼리는 법이다. 저 이름에 걸맞는 장인이라면 실력도 믿을 만 하겠지.”
“올곧게 싸가지가 없던데요.”
“장인이라는 이들이 본래 자존심으로 사는 이들이 아니더냐.”
맙소사. 세령이 이마를 짚었다. 지금껏 그녀가 말한 것은 모조리 한 귀로 흘렸는지, 목진은 이미 얼굴도 본 적 없는 마이스터 정에 대한 호감도가 한가득 올라가 있는 것 같았다.
“도킹 완료했어요. 마중이 나와있네요.”
“마중?”
세령의 뜻에 따라 외부 카메라로 보이는 바깥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곳에는 온화하게 생긴 한 잘생긴 청년이 있었다. 무슨 고증 철저한 무협물에나 나올 것 같은 푸른 장포를 두른 그는 카메라를 향해 가볍게 목례하며 입을 열었다.
– 반갑습니다. 직념공방의 최고경영책임자 정청원입니다. 직념공방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정보)
제갈세가에서 남궁현이 기거하는 와룡전은 반쯤 성지화 된 상태다. 남궁현 본인은 신성시되는 것을 반쯤 즐기고 있다.
제갈현이 두각을 드러내기 전까지 제갈세가는 오대세가 중에서 말석에 가까웠다. 제갈현은 강한 무공과 치밀한 심계, 과감한 결단을 모두 동원해 제갈세가를 크게 부흥시켰는데, 과거 사천당가를 수술한 것도 제갈현의 대전략이었다.
현재 크게 몸집을 불린 제갈세가는 산하 문파들의 무인들만 백만이 넘어가는 대규모를 자랑한다. 물론, 그만큼 실력의 편차는 큰 편이다.
제갈현은 손녀인 제갈희가 패한 것에는 별 감정이 없었다. 다만, 뒤늦게 사천당가의 일을 끄집어내며 제갈세가에 도전하는 것은 참을 수 없었다.
제갈현의 아들, 제갈희의 아버지인 현 제갈가주는 제갈세가의 부흥에 집중하고 있다. 개척지역으로의 확장 또한 그 일환이며, 인류정부는 그런 제갈세가에 우려의 시선을 보내고 있다.
백룡대는 제갈세가에서도 한 손에 꼽힐 정도의 전력을 자랑하는 최정예부대이다. 현재 백룡대주는 제갈가주의 동생으로, 그 무공에 대한 재능이 뛰어난 남자다. 백룡대는 문파를 상대로도 수많은 승리를 거둘 만큼 강력한 전력이다.
제갈현은 목진을 현경의 경지에 오른 고수라고 짐작하고 있다. 백룡대를 보낸 것은 그들이 준비만 철저하다면 절대고수조차 제압할 수 있을 정도로 정예화 된 부대이기 때문이다.
에너지 포집 장치를 이용해 태양의 에너지를 직접 흡수해 동력으로 삼는 기공계의 철방은 사소한 사고로도 대참사가 일어날 수 있기에 매우 안전에 신경을 쓰는 편이다. 물론, 그래도 사고는 종종 일어난다.
태양의 에너지량은 상상을 초월해서, 방열 역장이 아니라면 당장에 콜로니 자체가 불타올랐을 것이다. 창문에 차광 필름 코팅을 하는 것도 강력한 빛으로부터 우주선 내부를 보호하기 위해서이다.
일반적인 우주선은 철방 콜로니에 가기 전에 태양의 열기를 견디지 못한다. 그 때문에 철방을 방문하는 고객들은 기본적으로 특수 방열역장으로 보호되는 방열 항로를 이용할 수밖에 없다. 우주선의 기어를 중립에 놓은 채 대기하면, 견인 우주선이 우주선을 끌고 인도하는 구조다. 그래서인지 상당히 비싸다.
90sp는 공정효율 90퍼센트가 넘는 명품 내공 드라이브에만 붙는 인증마크다. 그만한 효율을 뽑는 데에는 장인의 솜씨는 기본이고 어느 정도의 행운도 필요하다.
목진은 올드한 감성이 물씬 풍기는 현판을 보고 조금 감동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