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smic Heavenly Demon 3077 RAW novel - Chapter (86)
우주천마 3077-85화(86/349)
14. 무림동도 Old Old Age Buff (2)
14. 무림동도 Old Old Age Buff (2) – 레디메이드 마이스터
“처음 봤을 때부터 짐작은 하고 있었지만······.”
이건 ‘진짜’다. 직념공방 내부의 응접실에 들어온 세령이 질린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전뇌공간 안을 고전 무협 풍으로 꾸며놓고 스스로 코스프레를 할 만큼 푹 빠진 남자라는 건 익히 알고 있었지만, 설마 현실에서조차 그러고 있었을 줄이야.
“미친 진짜 목재로 만들었네.”
이전 마이스터 정을 만났을 때와 같이 창 밖으로 푸른 호수가 보이는 고대 무협풍의 인테리어. 지난번과 다른 점이 있다면, 왁자지껄한 객잔이 아니라 조용하고 고풍스러운 독실이라는 점 정도일까. 어쨌든 유달리 매니악한 컨셉 디자인임은 부정할 수 없었다.
정파의 늙다리들도 아니고 요즘 세상에 무슨 고전 무협 컨셉이란 말인가. 세령은 마이스터 정이 사실 백 살도 넘게 먹은 늙은 할아버지가 아닐까 하는 합리적 의심부터 들었다.
반면 세령과 정 반대되는 감상이 드는 사람도 있는 법이다. 당연하다면 당연한 이야기였지만, 목진의 이야기였다.
“오오······.”
목진은 응접실 여기저기를 살펴보며 감탄에 감탄을 거듭하고 있었다. 세령의 의뢰 때문에 온 자리였지만, 순간적으로 그 목적을 잊을 만큼 목진은 진심으로 놀라고 있었다.
사실 이전 화산파에 들렸을 때도 비슷한 분위기를 느끼긴 했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과거의 전통적인 분위기를 현대적인 인테리어로 재해석했을 뿐, 지금까지 목진이 가 본 어느 곳도 이곳 진념공방의 응접실처럼 철저한 고증을 지키며 과거 시대의 공간을 재현한 적은 없었다.
목진은 반쯤 홀린 것 같은 얼굴로 창 밖의 푸른 호수를 바라봤다. 혹여 이대로 창 밖으로 나가기만 하면 그가 살던 시대로 돌아갈 수 있지 않을까. 문득 그런 생각이 든 목진은 자신도 모르게 창 밖으로 손을 뻗었다.
“허.”
손가락이 닿자 허깨비처럼 일렁이는 창 밖의 풍경. 허탈한 얼굴로 제 손가락을 바라보는 목진의 어깨를 세령이 토닥였다.
“입체영상일 뿐이에요.”
“······그래, 그렇겠지.”
‘의외로 향수가 심하나 보네.’
아닌 척 해도 실망한 기색이 역력한 목진을 보며 세령이 딱하다는 듯 머리를 긁적였다. 그동안 여유로운 고수로서의 풍모만 보여서 그렇지, 원래 목진은 수천년 전의 고대인이다. 자신이 살던 시대에 대한 향수가 느껴지는 건 그리 이상할 것도 아니었다.
‘이번 일만 잘 끝나면 맛집 투어라도 해 볼까.’
향수병 걸린 고대인을 위로하는 방법은 잘 모르는 세령이지만, 기분이 안 좋은 사람을 위로할 때는 돈을 쥐여주며 고기를 먹이면 된다는 것 정도는 안다. 세령은 조만간 팀의 리더로서 목진의 멘탈 케어를 해 줘야겠다고 마음먹었다.
물론 당장은 눈앞에 닥친 문제부터 해결하는 게 먼저다. 세령은 목진을 데리고 정청원과 순자를 따라 응접실 중앙에 위치한 탁자에 앉았다.
일행의 맞은편에 앉은 청원이 가볍게 화두를 던졌다.
“이미 마이스터와 이야기를 하셨다고 들었습니다. 토투가의 글로리 모건에게 소개를 받고 오셨다고요.”
“네. 모건 씨에게 뛰어난 장인이라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설마 알파 프라임 급 코어를 다룰 수 있을 정도로 대단하신 분이었는지는 몰랐지만요.”
순자는 비즈니스적인 미소를 지으며 일행을 대표해 말했다. 당장은 이곳 직념공방 외에 마땅한 해결책이 없으니만큼 당연한 판단이었다. 마이스터 정을 껄끄럽게 생각하고 있는 세령이나 아예 아는 게 없는 목진을 앞세울 수는 없지 않은가.
실제로 목진이 오기 전에도, 이러한 공적인 자리는 세령보다는 순자가 주도하는 편이었다.
외견적으로 보면 어린아이가 앞으로 나서는 꼴인지라 영 미덥잖음을 느낄 수 있었는데도, 청원은 오히려 가볍게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저희 공방의 마이스터는 외부 활동이 거의 없으니까요. 굳이 드러내지 않더라도 신뢰할 수 있는 거래처는 여럿 있습니다. 공방 운영을 위해서는 그 정도의 일감으로도 충분하죠. 저희 마이스터께서는 돈보다는 당신의 기술을 발전시키는 것을 가장 중요시 여기는 진정한 장인이십니다.”
“기술의 발전······. 대단하시네요.”
“어느 정도 짐작하셨겠지만, 신중하게 거래처를 정하시는 마이스터께서 의뢰를 받아들인 데에는 그런 이유도 있습니다. 높은 등급의 소재를 다루는 것은 장인에게도 기회이니까요.”
자기한테 도움이 되는 일이 아니었다면 받아들일 생각이 없었다는 뜻이다. 대놓고 이용해먹겠다는 이야기에 세령이 입가를 씰룩였다. 이미 그런 의도일 것이라 예상하고 있었는데도, 막상 눈앞에서 들으니 썩 유쾌한 기분은 아니었다.
그것은 순자 또한 마찬가지. 하지만 그에 항의하는 대신, 순자는 비즈니스적인 미소를 지우지 않은 채 고개를 끄덕였다.
“이해해요. 다만 그 전에 한 가지 부탁을 드릴 수 있을까요?”
“부탁이라 하시면?”
“다소 실례가 될 수 있지만, 저희에게 확신을 주셨으면 해요. 마이스터의 실력을 의심하는 건 아니지만, 코어의 등급이 등급인 만큼 저희가 지는 리스크도 적지 않으니까요.”
청원의 입가가 살짝 꿈틀거렸다.
“확신이라. 어떤 식으로 확신을 드리면 좋겠습니까?”
“실패 시 배상금을 높이는 쪽은 어떠세요?”
“미리 말씀드리자면, 출력 효율이 80퍼센트 밑으로 나오는 경우 반환하는 배상금은 기공방에서 정해둔 업계 표준인 의뢰금의 5할을 넘지 못합니다.”
“그쪽의 마이스터께서는 출력효율 92퍼센트를 보증하신 걸로 아는데요.”
“······음.”
순자의 말에 청원이 미간을 찌푸렸다. 기분파에 제멋대로인 그의 마이스터가 뒷 일 생각 않고 대뜸 저질러버리는 게 하루이틀은 아니었지만, 출력효율 92퍼센트라니. 이건 좀 너무 나갔다.
하지만 그런 마이스터가 저지른 일을 어떻게든 수습하는 것이 자신의 일. 청원은 얼굴에 철판을 깔고 입을 열었다.
“그 부분에 있어서는 사죄드립니다. 저희 마스터께서 말씀하신 것은 잊어주시길. 업계 표준을 어긴다면 기공방 총단에서 직접 패널티를 주기 때문에 공방 차원에서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마스터께서는 공방 운영에는 관여하지 않으시기 때문에 그 부분에 있어 오해가 있었던 것 같군요.”
역시. 순자가 보이지 않게 주먹을 꾹 쥐었다.
이상하리만치 좋은 조건이 마이스터의 독단이었던 건 이미 짐작하고 있었다. 기공방에서 제시하는 업계 표준 가이드라인은 장식이 아니었으니까.
아무리 구두 약속이라지만 이만한 클래스의 장인이라면 신용만큼 중요한 건 없다. 제멋대로 움직이는 마이스터를 모시게 된 것은 유감이지만, 순자는 그 실수를 그냥 넘어가 줄 생각이 없었다. 순자가 입꼬리를 살짝 끌어올리며 말했다.
“사정은 이해해요. 다만 마이스터님의 호언장담만 믿고 온 저희 쪽의 입장도 생각해서 약간의 편의 정도는 봐 주실 수 있지 않을까요?”
주도권은 잡았지만 당장 급한 것이 이쪽인 이상 지나치게 밀어붙이는 것은 하책. 적당히 타협의 여지를 내보이는것이 상책이다.
그러나 청원은 호락호락 순자의 의도에 넘어가 줄 생각이 없었다.
“리스크를 지는 것은 저희도 마찬가지입니다. 최근 제갈세가와 분쟁이 일어난 적이 있었다지요.”
“······다소 불미스러운 일이 있긴 했죠.”
“다소라고 하기엔 분쟁에 엮인 이들이 평범하지 않더군요. 성계 앞마당에서 일어난 일이니만큼 자세한 사정까지는 몰라도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정도는 알고 있습니다.”
제갈세가의 태상가주가 아끼는 손녀인 백선무희와 남궁세가의 슈퍼 루키 창천폭룡. 배분도 배경도 보통의 무림인은 쳐다볼수조차 없는 두 사람과 갈등을 빚었다는 것은 곧 정파무림에서 발붙일 곳이 없게 될 수도 있다는 뜻이다.
아무리 기공방이 무림의 진영논리에서 벗어난 회색지대이긴 하지만, 제갈세가로부터 사소한 견제 정도를 받는 것까지는 어쩔 수 없다. 청원이 언급한 리스크란 그런 점을 두고 말하는 것이었다.
“그럼에도 저희와 만나주셨다는 건 의뢰를 수락하실 생각이 있다고 생각했는데요.”
이 정도는 예상 내의 견제다. 마른침을 삼킨 순자가 침착하게 대답했다. 청원은 그녀의 말에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말씀대로, 그럴 의향이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저희 마이스터께서는 외부 활동은 거의 하지 않으시지만, 평범한 장인들과 달리 설령 상대가 무림세가라 하더라도 사소한 갈등 정도는 충분히 감당하실 수 있는 분이니까요. 단, 그렇다고 그것이 리스크가 아니라는 건 아닙니다. 막말로, 당장 제갈세가가 여기에 들이닥칠수도 있지 않습니까.”
“그렇게까지 심각한 문제는 아니에요. 그리고 기공방에서는 비무 외의 무력 사용은······.”
“그건 단순한 협약일 뿐입니다. 오대세가 정도의 거대문파라면 단발적인 소규모 무력도발 쯤은 얼마든지 무마시킬 수 있지요.”
물론 이건 좀 극단적인 예시일 뿐, 오대세가에서 기공방과의 마찰을 감수하면서까지 무리하게 무력을 행사할 확률은 희박하지만 말입니다. 청원이 어깨를 으쓱였다.
“어쨌든 저희 측에서도 그 정도의 리스크를 감수하고 있는 이상, 굳이 여기서 더 양보할 필요가 있을까 싶군요.”
완곡하지만 단호한 거절이다. 역시 너무 욕심을 부렸나. 순자가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자신들의 입장이 불리한 것은 분명한 사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검증도 되지 않은 장인에게 알파 프라임 급의 코어를 넘기는 건 도박이나 마찬가지였다. 운 나쁘게 출력 효율이 70퍼센트 아래로 떨어진다면 일반 알파는커녕 베타 레벨이랑 비교해야 할 판이었으니 말이다.
앞으로 이만한 코어를 얻을 일은 다시는 없으리라. 그런 기회인 만큼 어떻게든 리스크를 최소로 줄이고 싶은 것이 순자의 본심이었지만, 청원은 이만한 공방을 전문적으로 경영하는 사람인 만큼 그리 호락호락한 상대가 아니었다.
차라리 가격이라도 깎아볼까. 순자가 막 입을 열려던 참이었다.
“아직까지 협상이 안 끝났나? 아직도 제 처지를 모르고 있나 보군.”
별안간 응접실의 입구에서 들리는 낮선 목소리. 일행의 시선이 한 곳으로 향했다.
칙칙한 더티 블론드색의 머리카락을 엉덩이께까지 땋아내린 채 구깃구깃한 흰색 의사가운을 입고 있는, 여인인지 소녀인지 애매한 정체불명의 여성.
귓가에 피어싱을 주렁주렁 매단 채 문가에 비스듬히 기대 있던 그녀는 날카롭지만 다크서클이 늘어진 눈으로 일행을 바라보고 있었다.
“혹시 다른 공방을 구할 생각이라면 일찌감치 머리에서 지우는 게 좋을 거다. 규모가 좀 되는 장인들은 무림인 사이의 은원관계에 끼는 걸 꺼려하고, 소규모 장인들은 애초에 실력이 안 돼. 기공방 소속 장인이 바닷가 모래알처럼 많다지만 지금 상황에서 그쪽 같은 폭탄덩어리의 의뢰를 받아 줄 만한 공방은 없을 거다.”
음. 어째 말투부터 기분을 긁어대는 게 기묘하게 익숙한데. 세령은 낯선 이에게서 익숙한 분위기를 느꼈다. 어쩐지 최근에 비슷한 캐릭터를 만난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그쪽 분은 누구신지······.”
“보면 모르나?”
이 진념공방의 주인이다. 여성, 마이스터 정의 말에 세령의 입이 헤 벌어졌다.
정보)
마이스터 정은 진념공방 내 여러 공간의 인테리어를 실제 고대 무림과 비슷한 환경으로 꾸몄다. 대부분의 인테리어는 최대한 역사적 고증에 맞도록 신경을 썼다.
핵전쟁으로 인해 지구가 황폐화되었기 때문에 지구산 목재는 양식이라도 매우 비싼 편이지만, 마이스터 정 정도 되는 장인에게는 그리 부담이 크지 않은 가격이다.
굳이 인연이랄 것도 없는 과거로 돌아가고 싶은 생각은 없지만, 목진은 그가 살던 시대의 문화에 대한 그리움은 꽤 느끼고 있다.
마이스터 정은 공식석상에 자리를 드러내지 않고 보통은 개인적인 루트로 들어오는 의뢰 위주로 일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워낙 실력이 좋기 때문에 의뢰당 단가는 대단히 높은 편이다. 덕분에 마이스터 정은 돈이 많다.
마이스터 정은 자유로운 영혼이다. 나쁘게 말하자면, 지멋대로다.
기공방 성계는 기본적으로 비무용 콜로니 외의 지역에서 무력 사용이 금지되어 있다. 어설프게 무력을 쓰다가는 기공방 전체로부터 보이콧을 당할 수 있음은 물론 현상금도 걸릴 수 있다. 다만 구파일방, 오대세가, 사도삼련, 팔곡, 육적일채, 마교 등의 세력 별 거대 문파들은 다소의 손해를 감수한다면 국지적인 무력 도발 정도는 일으킬 수 있다. 물론 그만큼 도발 직후에라도 기공방 총단에 금전적으로 양해를 구하긴 해야 한다.
진념공방의 주인인 마이스터 정은 세월과 실력이 비례하는 편인 장인의 세계에서도 이례적으로 어린 나이인 열아홉의 소녀다. 그녀의 별명은 레디메이드 마이스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