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smic Heavenly Demon 3077 RAW novel - Chapter (87)
우주천마 3077-86화(87/349)
14. 무림동도 Old Old Age Buff (3)
14. 무림동도 Old Old Age Buff (3) – 동지여, 오 동지여!
“남자 아니었어? ······요?”
마이스터 정의 말에 세령이 두 눈을 꿈벅였다.
마이스터 정은 한심하다는 눈초리로 세령을 흘기며 가볍게 혀를 찼다.
“전뇌공간 속 아바타의 모습을 그대로 믿었나? 어리석군.”
“아니 말투가······.”
“내 말투에 불만이라도 있나?”
싸가지 없는 도련님같은 말투를 하길래 당연히 남자인 줄 알았다. 특히나 할아버지들의 상징이라 할 수 있는 고전무협 취향이 아니던가. 세령이 생각했던 마이스터 정의 이미지는 좀 많이 올드한 취향을 가진, 명문 장인집안 출신의 오만한 청년이었다.
더군다나 마이스터라는 칭호가 장인들 중에서도 대단히 뛰어난 이들에게만 내려진다는 것을 생각하면 제아무리 천재라 해도 서른 즈음은 될 거라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눈앞의 마이스터 정은 젊다 못해 새파랗게 어린 수준의 여성이다. 세상만사 외모만으로 판단할 수는 없다지만 그래도 눈앞의 상대는 너무 예상 밖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정식으로 소개드립니다. 진념공방의 주인이자 수석 장인이신 파비올라 정 님이십니다. 작년에 마이스터의 이름을 얻으셨지요.”
“어?”
청원의 소개에 순자가 반응을 보였다.
“······파비올라라면.”
“누군지 알아?”
“이름만큼은 꽤 유명해요. 내공 드라이브 제작 부문 최연소 마이스터 자격을 얻어서 기공방 성계에서도 꽤 이슈가 되었었다고······일단 실력은 확실히 검증되신 분이에요.”
세령이 무슨 말을 꺼내기 전에 순자가 재빨리 덧붙였다.
상식적으로는 말도 안 될 정도의 어린 나이로 마이스터가 되었기에 이런저런 루머가 끊이지 않았었지만, 실력으로 그런 소문들을 종식시킨 인물이다. 최소한 내공 드라이브 제작에 있어서는 명공까진 아니더라도 그에 근접한 실력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당시를 제외하고 대외적인 활동은 없는 걸로 알고 있었는데 설마 글로리 씨가 알고 계실 줄이야······.”
“글로리와는 나름의 인연이 있는 편이다. 좋은 매너를 가진 그에게 감사하도록.”
‘좋은 매너? 그 영감이?’
세령의 황당함을 뒤로하고 파비올라는 청원에게 고개를 돌리며 물었다.
“그래서, 뭐 때문에 협상을 질질 끌고 있던 거지?”
“죄송합니다. 아무래도 서로에 대한 신뢰가 부족한 상태이다 보니 약간의 의견 조율의 과정이 필요했습니다.”
“신뢰라······?”
파비올라는 불쾌한 표정을 숨기지 않은 채 일행을 흘겨봤다. 감히 일개 현상금 사냥꾼이 내게? 라고 하는 듯한 시선이었다.
“······.”
당장에라도 독설을 쏟아낼 것처럼 입술을 달싹이던 파비올라였지만 그녀는 이내 입을 다물었다. 그녀의 시선은 세령이나 순자가 아니라 차를 음미하며 느긋하게 인테리어를 감상하고 있던 목진을 향하고 있었다. 그녀의 밝은 옥빛 눈동자가 반짝 빛났다.
“혹시 그쪽 분께서는 화염용사(火炎勇士) 이목진 대협이 아니십니까?”
“음?”
“화염용사?”
목진과 세령이 동시에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동안우공이라는 별호를 얻은 지 몇 달 되지도 않았거늘, 그 사이에 또 별호가 바뀐 모양이었다.
“내가 이목진은 맞다마는.”
“아직 모르고 계셨던 모양입니다. 토투가 랠리에서 대협의 활약을 본 이들이 붙인 새 별호입니다.”
“흐음. 화염용사라. 내 무공과는 관계없긴 하다만 그래도 제법 멋들어진 별호로구나.”
“크흡.”
목진은 새 별호가 마음에 드는 듯 기꺼운 반응을 보였지만, 세령은 슬쩍 고개를 돌리며 입을 틀어막았다. 화염용사라니, 화염용사라니!
대충 무슨 활약을 보고 그런 별호를 붙인 건지는 짐작이 간다. 아마 지저혈곡의 마그마 강에서 뛰쳐나왔을 때의 영상이 인기를 끌었으리라.
확실히, 어울리긴 어울리는 별호이긴 했다. 저도 모르게 피식 웃을 정도로 유치찬란해서 그렇지. 그런 그녀의 속내를 알지 못하는 목진은 고개를 돌린 채 어깨를 들썩이는 세령을 보며 고개를 갸웃거릴 뿐이었다.
“대협께선 이 공간이 마음에 드시는 모양입니다. 듣기론 머나먼 과거로부터 오신 분이라 들었는데, 대협께서 살던 시대와 비교하면 어떠십니까.”
“참으로 마음에 드는군. 세세한 부분까지 익숙한 느낌이 들어. 마치 과거로 돌아간 기분이니라.”
“설계자에겐 최고의 찬사로군요. 그리 말해주시니 더없이 기쁜 마음입니다. 감사드립니다.”
“그대가 직접 이 공간을 만들었는가? 감사는 오히려 내가 해야겠지. 먼 과거를 느낄 수 있게 해 주어서 정말로 고맙네.”
뭐야. 뭔데 이 반응. 세령은 얼떨떨한 표정으로 화기애애함이 넘쳐흐르는 두 사람을 바라봤다. 그만큼 의외의 광경인 까닭이었다. 등장했을 때부터 줄곧 고압적인 모습을 보이던 파비올라가 목진에게 말할 때만큼은 눈에 띄게 공손한 태도이지 않은가.
‘설마 저 인간, 그냥 고전 무협 팬이라서 저렇게 친한 척 구는 거야?’
어렴풋이 파비올라의 마음을 유추한 세령이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정답이었다.
얼마 전까지 토투가 랠리고 동안우공이고 아무런 관심도 없이 작업에만 집중하던 파비올라였지만, 세령을 만난 뒤 그녀에 대해 조사하면서 목진의 존재에 대해 알게 된 것이다.
소문이 이르길, 이십세기 전 고대 무림으로부터 타임슬립해 온 진짜배기 고대 무림인이란다. 심지어 그 서천검후를 꺾을 정도로 대단한 절대고수라지 않은가.
현대 무림에는 도태된 지 오래인 내가기공을 익힌 채 현대 무림인들을 쓰러트리는 내츄럴의 절대고수. 고전 무협지를 찢고 튀어나온 목진의 존재는 그녀와 같은 고전 무협 팬에게 있어 그야말로 살아 있는 영화 속 주인공이나 마찬가지였다.
압도적인 신위로 서천검후와의 비무에서 승리한 뒤 카메라를 통해 일갈하는 목진의 영상을 본 파비올라는 그대로 목진의 팬이 되었다.
제갈세가와 척지며 시한폭탄이나 마찬가지로 변한 세령의 의뢰. 그런 의뢰를 거절하지 않고 받아들인 데에는 알파 프라임 코어라는 희귀한 소재를 다룰 수 있다는 이유도 한몫했지만, 그보다는 목진에 대한 호감이 더 큰 비중을 차지할 정도였다.
“마이스터, 아직 마무리짓지 못한 이야기가 남아있으니 담소는 나중에 시간을 내서 느긋하게 나누는 편이 어떠십니까.”
“아? 그렇군. 아직 협상 중이었지. 미안하다.”
희미한 미소까지 지은 채 고대 무림의 향취 대해 목진과 주거니 받거니 대화를 나누던 파비올라는 청원의 말에 뒤늦게 이 자리가 의뢰에 대한 협상을 위한 자리였다는 것을 떠올리고 고개를 끄덕였다.
“실례했군. 고전파 무협 감수성에 대해 공감할 수 있는 동료는 오랜만이라 조금 흥분했다. 그래, 신뢰가 문제라고 했었나?”
“네. 현재로서는 서로 신뢰가 부족한 상황이니까요.”
신뢰라. 순자의 말에 파비올라는 팔짱을 끼고 눈을 감았다. 잠시 생각에 잠겨 있던 그녀는 얼마 지나지 않아 목진을 돌아보며 말했다.
“대협, 대협께서 현재 저기 있는 염화나찰과 함께 하고 있다고 보아도 되겠습니까?”
“그래. 당분간은 세령이와 함께 할 생각이니라.”
“그렇다면 내공 드라이브 제작 도중에 제갈세가에서 무력 도발을 해 올 경우 이곳 진념공방의 방어에 손을 보태주시렵니까?”
“아무렴. 당연한 것이 아니더냐.”
그럼 그쪽의 신뢰는 해결됐군. 쌈박한 파비올라의 해결방법에 세령이 입을 뻐끔거렸다. 그야 목진이 절대고수이긴 하다마는, 뭐 계약이나 그런 것도 없이 이렇게 대충 구두로 때우는 경우는 듣도보도 못했다. 심지어 청원마저 당혹스러운 기색을 숨기지 못하고 있지 않은가.
“······그걸로 괜찮으시겠어요?”
파비올라의 폭탄선언에 순자가 떨떠름한 얼굴로 물었다. 나찰즈로서는 무조건 이득인 이야기였지만, 정말 이래도 괜찮은가 싶은 조건이기 때문이었다.
파비올라가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겼다.
“물론이다. 강호의 협객이 내뱉는 말에는 그만한 무게가 있는 법. 진정한 사내들의 약조에 무슨 검증이 더 필요하겠나.”
댁은 사내가 아닌데요. 순자는 목구멍까지 나온 말을 꼴깍 삼켰다.
“마이스터께서는 여성이십니다만.”
“청원, 분위기를 좀 읽지 그러나.”
“실례.”
전혀 미안하지 않은 표정으로 한 발짝 뒤로 물러선 청원을 흘겨보며 파비올라가 다시 입을 열었다.
“이제 우리가 그쪽에게 신뢰를 보여줄 차례로군. 어떤 게 적당할까······흠. 그게 좋겠군.”
명공의 보증이면 충분하겠지? 파비올라의 말에 순자와 세령의 입이 함지박만하게 벌어졌다.
“명, 공이요?”
“내가 아직 명공은 아니지만, 명공의 이름 정도는 잠깐 빌릴 수는 있지. 플레임스틸 공방연합의 명공, 화덕진군(火德振君) 불카누스가 내 실력을 보증할 거다.”
“마이스터, 갑자기 그런 말씀을 하시면······!”
파비올라의 돌발행동에 청원이 기겁하며 그녀를 말리기 위해 손을 들었다. 세살에 하다하다 명공의 이름을 팔려 하다니. 플레임스틸 공방연합에 알려졌다간 줄줄이 소송을 먹어도 할 말 없을 만큼 위험한 발언이었다.
하지만 파비올라는 조금도 상관없다는 듯 청원의 말을 일축했다.
“괜찮다. 불카누스 영감 성격에 이 정도는 신경도 안 쓸 인물이지. 어차피 받아야 할 사소한 빚도 있으니 이름 정도는 팔아도 괜찮다.”
정 불안하면 내가 직접 연락이라도 해 주지. 황당스러울 정도로 거침없는데도 파비올라의 행보에는 이상하리만치 신뢰가 갔다.
하지만 다른 것도 아니고 소중한 왕연니인 세령의 내공 드라이브다. 고작 감을 믿고 일을 진행시킬 수는 없는 노릇. 순자는 파비올라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좋아요. 명공의 보증이라면 믿을 수밖에 없겠죠. 정청원 님과 계약서를 작성할 때 항목에 집어넣어주시기만 한다면요.”
“쯧. 센스가 없군.”
“이 다음은 실무자들에게 맡겨 주시면 좋겠네요.”
파비올라의 핀잔에도 불구하고 순자는 철벽같은 표정을 지으며 단호하게 선을 그었다. 돈과 계약에 있어서는 칼도 안 들어갈 정도로 철저한, 금귀나찰이라는 별호에 걸맞는 처신이었다.
덧붙여, 그런 순자의 태도에 청원이 남몰래 안도의 한숨을 내쉰 것은 아마도 은연중에 동질감을 느꼈기 때문이었으리라.
결정이 끝났으니 이제 신속하게 진행만 시키면 되겠군. 한두 번 해본 일이 아닌 듯, 파비올라는 놀라울 정도로 능숙하게 지휘를 시작했다.
“필요한 자재를 주문하면 내일 쯤에는 도착할 거다. 그 동안에 정식 계약서를 작성하는 것으로 하지. 청원. D-AP-V53의 리스트대로 발주를 넣도록.”
“예. 마이스터.”
“거기 염화나찰은 나를 따라와라. 내공 드라이브를 신체에 맞게 세팅하려면 해야 할 테스트가 한두 가지가 아니니까. 최상급 내공 드라이브는 완전 맞춤형이라 제작과정 내내 시술자의 협조가 필요하거든.”
“······그러죠.”
“그리고 대협께선······.”
마침내 목진에게까지 온 파비올라의 시선. 파비올라는 목진을 보며 조금 더 정중한 태도로 물었다.
“손님 거주용 부속 콜로니에서 느긋하게 쉬고 계시겠습니까?”
물론 부속 콜로니 또한 이곳처럼 직접 인테리어를 신경썼습니다.
목진은 파비올라의 말에 기꺼이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정보)
무협지 자체는 우주적으로 인기가 많지만, 고전 무협의 경우는 소수의 매니아층만 좋아한다. 보통은 나이 지긋한 문파의 원로급, 개중에서도 남성에게 인기가 많은 편이다. 여성 원로들은 신고전풍 로맨스 무협을 좋아한다.
마이스터 칭호는 장인 중에서도 명장들이 인정할 만큼 뛰어난 실력을 가진 이들만이 달 수 있다. 기공방 전체에서 마이스터 칭호를 받은 이들은 이백 명이 되지 않는다. 마이스터들은 대부분 무림인의 별호처럼 별명을 가지고 있다.
파비올라 정이 열여덟의 나이로 마이스터 칭호를 받기 전, 최연소 마이스터 기록은 스물여섯이었다. 때문에 파비올라의 마이스터 자격 취득에 대해 말이 많았으며, 파비올라는 나이에 걸맞지 않는 출중한 실력을 뽐내며 스스로를 증명했다.
파비올라가 말한 글로리의 ‘좋은 매너’는 팀 게임을 하면서 절대 남탓을 하지 않는 것을 두고 말하는 것이다. 글로리는 팀원 중에 트롤이 있어도 묵묵히 최선을 다하는 강철 같은 부처멘탈을 가진 천연기념물이다.
파비올라는 목진이 아니었다면 세령에게 ‘어디 감히 현상금이나 타먹는 떠돌이 주제에 나한테 신뢰 운운하냐’라며 면박을 줬을 것이다. 그녀의 성격은 결코 좋다고 할 수 없는 편이다.
목진은 웅심을 자극하는 화염용사라는 별호가 상당히 마음에 들었다.
진념공방 내부 응접실과 손님 거주용 부속 콜로니를 포함한 여러 시설은 고전 무협풍 인테리어로 꾸며져 있으며, 그런 인테리어들은 파비올라가 직접 지휘해서 꾸민 것이다.
파비올라가 목진을 보는 시선은 영화나 만화 속 주인공이 현실로 튀어나온 것을 보는 시선과 비슷하다.
파비올라가 의뢰를 받아들이는 이유는 ‘알파 프라임 코어를 다루고 싶어서’가 4, ‘목진이 마음에 들어서’가 5, ‘돈’이 1 정도가 된다.
‘고전파 무협 감수성’은 상당히 매니악한 감수성으로, 파비올라의 주변에는 비슷한 이야기를 나눌 상대가 거의 없다. 그래서 파비올라는 목진과의 대화가 매우 감명깊고 즐거웠다. 목진의 말을 믿고 의뢰를 수락한 데에는 그런 감상도 많은 영향을 끼쳤다.
파비올라는 강호넷에서 고전파 무협 감수성을 이어가는 모임의 운영자다.
기공방의 명공인 화덕진군 불카누스는 노년의 나이임에도 근육근육한 육체의 소유자로, 장인적 가치관이 잘 맞는 파비올라와는 막역한 사이다. 나이차가 4배가 넘게 나는데도 서로를 친구로 여기고 있다.
플레임스틸 공방연합은 플레임스틸 공방을 중심으로 여러 장인들이 뭉친 공방들의 연합체이다. 공방연합 소속의 공방들은 기본적으로 개인 플레이를 하고 살지만, 때때로 큰 규모의 의뢰가 들어올 때는 연합한다.
기공방 성계는 산업 구조가 굉장히 체계적으로 잡혀 있기 때문에 자재를 주문하면 하루만에 로켓 배송이 온다. 여기서 말하는 로켓은 비유적인 의미가 아니라 회수와 재사용이 가능한 진짜 로켓이다.
최상급 내공 드라이브는 엄청난 기술집약이 이루어지는 물건이기 때문에 시술자와 조금이라도 어긋나는 부분이 있어서는 안된다. 수많은 미세조정이 필요함은 물론 설계 단계부터 시술자에 맞춤형으로 만들어지는 것이다.
목진은 세령의 내공 드라이브가 제작되는 동안 부속 콜로니에서 살며 양껏 힐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