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smic Heavenly Demon 3077 RAW novel - Chapter (93)
우주천마 3077-92화(93/349)
15. 노병불사 Trench Veteran Never Die (3)
15. 노병불사 Trench Veteran Never Die (3) – 악어사냥
“후우.”
수지가 안 맞는데. 돌은 흑각비수를 역수로 쥔 채 호흡을 고르며 속으로 푸념했다.
처음부터 쉬운 일이라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다른 곳도 아니고 그 제갈세가에서 의뢰하는 일이었으니까.
일반인들도 알고 있는 S급 무림단체가 스스로의 무력을 사용하는 대신 자신과 같은 외부인력을 고용하는 데에는 다 이유가 있는 법이다.
외부에 알려지면 곤란한 비합법적인 일이라던가, 혹은 고기방패가 필요하거나.
그리고 이번 일은 아마도 양쪽 모두에 해당되는 일이었다.
애초에 좋게 말해 외부인력이지, 평범한 낭인보다 조금 더 무공이 높을 뿐이다. 좋은 조건의 일이라면 구태여 자신에게 맡길 이유가 있을까.
물론 돌에게는 아무래도 상관없는 이야기였다.
강호의 도리에 어긋나는 일이라 한들 돈이 우선인 그녀에게 거부감이 있는 것도 아니고, 고기방패로 간다 한들 제 한 몸 건사하지 못하는 것도 아니다. 아무렴 그 정도 믿는 구석도 없이 절대고수를 상대하는 의뢰를 받았을 리 있겠는가.
모래알처럼 많은 고수들이 도사리고 있는 도산검림의 강호무림에서 대 고수 결전을 대비한 전문가로 인정받는다는 것은 그만큼 고수를 상대하는 전술적 감각이 뛰어나다는 뜻이다.
최대한 시간을 끌면서 목진의 전투 데이터를 끌어내는 것. 그녀가 맡은 역할은 딱 거기까지였으니 그렇게까지 어려운 일도 아니었다.
‘······라고 생각했다만.’
직접 맞서보니 알 수 있었다.
동안우공 이목진은 터무니없이 저평가되어 있었다는 것을.
돌은 지금까지 대 고수 외부인력으로서 적지 않은 고수들을 상대해 왔음에도 이 정도로 아득한 무력감을 느껴본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거리낌 없이 서슬 퍼런 살초를 흩뿌리는 목진의 검을 마주하고도 지금까지 그녀가 살아남을 수 있었던 건 그저 운이 좋았을 따름이었다. 만약 목진이 현대 무공에 대한 이해가 전무하다시피 한 고대인이 아니었다면 첫 수에 머리가 터져나갔을 테니까.
하. 돌은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스스로의 최후를 직감한 탓이었다.
‘오늘이 내 마지막이구나. 언젠가 이런 날이 올 거라고는 알고 있었지만······.’
저리도 정련된 살기를 흩뿌리는 고수를 적으로 두게 된 이상, 살아남는 것을 기대하는 것은 미련한 짓이었다.
‘그래도 임무는 완수해야겠지.’
병사는 죽을 때 죽더라도 임무를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하는 법이다. 선금을 받은 이상, 참호노병이라는 이름에 부끄럽지 않게 임무를 완수하는 것이 그녀가 지켜야 할 도리였다.
물론, 그 제갈세가가 자신의 목숨값을 가벼이 치르지 않을 것이라는 계산도 깔려 있었지만.
흑각비수를 고쳐쥐며 다시금 전의를 다지는 돌. 목진은 그런 그녀를 바라보며 고개를 주억거렸다.
“출수할 순간이면 이 안개가 끈적한 덫처럼 변하는군. 이 안개가 닿는 곳에는 기도 잘 모이지 않고. 기묘한 술법이야.”
“······음.”
진짜 너무하는군. 돌이 낮게 침음성을 흘렸다. 아무리 그래도 고작 검 두어 번 휘두른 정도로 황개독무의 역할을 간파당할 줄이야.
하지만 돌은 절망하지 않았다. 눈앞에 서 있는 이가 고대인인 이상, 황개독무의 자세한 공략법을 알 수는 없으리란 예측 때문이었다.
그녀의 성명절기인 황개독무는 먼 옛날 고대의 화학병기인 겨자가스에서 모티브를 따오긴 했지만, 실제로는 그런 단순한 독가스가 아니다.
대부분의 독을 체내 나노봇으로 중화 가능한 절대고수들에게 독가스는 유의미한 타격이 되지 못하는 만큼, 황개독무는 과감히 직접적인 공격능력을 포기하고 다른 기능에 집중했다.
그 기능이라 함은 바로 기에 대한 극도의 상성우위.
황개독무의 정체는 바로 안티-내공 코팅 처리를 거친 나노봇 군체들이었다.
상대의 QIOS를 해킹하고 내공의 순환을 흐트러트리는 나노봇 독공과는 달리 직접적으로 대기의 기를 교란시키는 무공이 바로 황개독무의 본질이었다.
굳이 비유를 하자면, 상대에게 불리한 환경을 조성하는 일종의 디버프 무공. 어떻게 보면 산공독(散功毒)의 후예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완전히 전개된 황개독무로 통제되는 공간 안에서는 기를 체외로 방출해 형상을 이루는 검기(劍氣)나 강기(罡氣)등을 형성하기가 극도로 어려워진다.
무릇 고수들의 가장 큰 무기란 바로 대체 불가능한 압도적인 공격력을 자랑하는 강기를 자유자재로 휘두르는 것. 황개독무는 그런 고수들을 상대하기에 대단히 효과적인 무공이었다.
그뿐인가, 필요할 때마다 나노봇들을 집중시켜 만들어내는 물리저항은 상대가 펼치는 무공의 위력을 대폭 경감시키기까지 한다.
황개독무를 파훼하지 못하는 이상 상대의 전력은 대폭 줄어든 상태. 이만한 조건이라면 데이터를 얻어낼 시간 정도는 어떻게든 벌 수 있으리라.
물론 상대는 그녀의 인지를 초월한 영역에 있는 초인이니 상상도 못한 방법으로 파훼할 수도 있다. 돌은 긴장을 놓지 않고 그의 행동에 신경을 곤두세웠다.
“하!”
목진이 짧은 기합성과 함께 폭발적인 기파를 뿜어냈다. 기파로 자욱한 안개를 걷어내기 위함이었다.
피부가 따끔거릴 정도로 패도적이고 흉포한 기파. 그 기파를 느낀 돌이 질린 표정을 지었다. 기를 뿜어내는 것쯤이야 여타 다른 고수들도 할 수 있는 일이지만, 그 기파에 실린 기세가 상식을 벗어난 수준이었다.
하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목진의 기파는 안티-내공 코팅 처리가 되어있는 황개독무에는 별다른 효과가 없었다.
‘역시, 파훼법을 모르고 있나.’
황개독무와 같은 나노봇들을 처리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전자기파를 다루는 전격계의 무공, 혹은 비슷하게나마 EMP 효과를 낼 수 있는 무공이다. 나노봇은 전자기 펄스에 극상성을 띠기 마련이니까.
하지만 바꿔 말하면, 그런 방법이 아니라면 마땅히 나노봇 군체에 직접적인 타격을 줄 방법이 없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생각대로 되지 않아서일까, 눈가를 꿈틀 움직인 목진이 내공이 담긴 검을 한 번 크게 휘둘렀다.
스르륵 검의 궤적을 따라 출렁이는 겨자색 안개. 하지만 마치 칼로 물을 가르듯, 나노봇 군체는 금제 원래대로 돌아왔다.
“쯧.”
양 손에 트렌치 나이프를 쥔 채 자신을 향해 다가오는 돌을 보며 목진이 가볍게 혀를 찼다. 돌 뿐만이 아니었다, 조금 전 튕겨냈던 제갈홀이 어느새 몸을 추스리고 있기까지 했다.
“편하게 숨을 끊어주려 했거늘, 결국 번거롭게 손을 쓰게 하는구나.”
그리도 죽고자 한다면 소원대로 들어줄 수밖에. 목진은 검을 집어넣고 손마디를 꺾었다. 여전히 이 요상한 술법이 무슨 원리인지는 알 길이 없었지만, 안개 때문에 몸을 운신하기 불편하다면 굳이 검을 고집할 필요도 없었다.
돌은 목진을 보며 마른침을 삼켰다.
‘최대한의 데이터를 얻으려면······전술전은 의미가 없겠지.’
상대가 어지간한 수준이라면 황개독무를 최대한 활용하는 전술전을 쓰는 게 맞겠지만, 저만한 고수를 상대로는 안 하느니만 못하다.
스으윽. 목진과 돌 사이의 안개가 갈라지며 좁은 길이 생겨난다. 좌우로 피할 수 없는 일직선의 길을 가운데 두고 목진과 돌은 서로를 마주했다.
“······.”
목진은 주변을 에워싸고 있는, 한층 짙게 운집한 안개 속으로 손을 집어넣었다. 답답한 저항감이 느껴졌다. 마치 깊은 바닷속 아래에 들어온 것만 같았다.
아마 목진 정도의 고수라면 이 정도라면 통과하는 것이 불가능하진 않을 것이다. 다만 안개 속에서의 운신이 상당히 불편해질 뿐.
“허. 오만한지고.”
목진은 헛웃음을 흘렸다. 마치 정면에서 붙어보자는 것 같지 않은가.
굳이 피할 이유가 없지. 목진은 기꺼이 노병의 도발에 어울려주기로 마음먹으며 앞으로 걸음을 내딛었다.
저벅이는 소리 사이로 서로를 향해 걸어가는 두 사람의 거리가 점차 줄어들었다. 노병의 긴장한 눈과 목진의 고요한 눈이 허공에서 부딪혔다.
이윽고 두 사람의 거리가 팔을 뻗으면 닿을 거리까지 좁혀졌을 때-.
“흡!”
너클을 낀 돌의 주먹이 목진을 향해 빛살같은 속도로 튀어나갔다. 정직한 투로보다는 어떻게든 상대의 피를 보려는 듯 정석과는 거리가 먼 변칙적인 투로. 정파가 아닌 사파 무공과 닮은 느낌이다.
그러나 셀 수도 없이 많은 무인들을 겪어 온 목진에게 고작 그 정도의 잔재주가 통할 리 있겠으랴. 다소 신선함은 있을 지 모르나, 그보다 변화무쌍하고 위력적인 무공들은 차고도 넘치는 것이 강호였다.
“조잡하다.”
우득. 마치 파리를 쫓아내듯 휘두른 목진의 손짓 한 번에 돌의 왼손이 그대로 튕겨나가며 피보라가 튄다.
“큭!”
돌의 마른 입술 사이로 고통을 참는 숨이 흘러나왔다.
단번에 다진 고깃조각이 되었을 팔을 어떻게든 형태라도 유지시키는 것. 목진과 같은 규격 외의 고수를 상대로 황개독무의 물리저항이 경감시킬 수 있는 순간 데미지는 그 정도가 한계였다.
그러나 이 한 번의 공방이 단지 무의미하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지금!’
“크아!”
돌의 통신과 함께 이 틈만을 노리고 있던 제갈홀이 안개 속에서 튀어나왔다.
힘을 숨길 수 있는 상대가 아니다. 제갈홀은 일말의 주저함도 없이 자신이 펼칠 수 있는 최고 위력의 무공인 야악참륙삼조(野鰐斬戮三爪)를 펼쳤다.
강화 합금으로 만들어진 서슬퍼런 양 손톱이 상하를 점하고, 그 중앙에 상어같은 이빨의 악어 주둥이가 목진의 목을 향해 쇄도한다.
신체를 강력한 사이버네틱스 바디파츠로 교체해 보다 강력한 육체를 손에 넣는 신육체사상외공(新肉體思想外功)을 익힌 제갈홀에게 신체 외부의 내공을 무력화시키는 황개독무와의 상성은 최상이다. 단지 피부장갑에 패스코드를 부여함으로서 나노봇 안개 속에서도 아무런 제약 없이 최대의 위력으로 무공을 펼칠 수 있으니까.
다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갈홀과 목진 사이의 깊은 격차를 메우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황개독무로 인해 기를 응집시키기 어렵다곤 하나, 하수를 상대로 검기까지 필요할까. 목진의 양 손이 역으로 제갈홀을 향해 뻗어나갔다.
승부의 결착이 나는 것은 찰나의 순간. 피륙으로 이루어진 손과 합금으로 이루어진 손이 마주함과 동시에 와드득 하고 쇠가 구겨지는 소리가 나며 제갈홀의 양 팔과 턱이 박살났다.
가진 바 견고함이 사람의 피륙과는 감히 비할 바 없는 바디파츠이지만, 그러한 차이를 메꾸는 것이 바로 무(武)의 본질일지니.
스스로의 무공이 패배했다는 것을 제갈홀이 인식했을 때는 이미, 목진의 손바닥이 그의 무방비한 복부에 닿은 뒤였다.
목진이 제갈홀을 올려다보며 무감정한 목소리로 말했다.
“겉은 질기다만, 속도 그만큼 질기더냐.”
“······!“
사람의 몸에서 나서는 안 될 폭발음이 들리고, 거대한 악어의 등가죽이 문자 그대로 터져나간다.
척추가 분쇄되고 내장이 갈기갈기 찢어질 정도로 가공할 위력의 내가중수법(內家重手法).
절명(絶命)이었다.
작가의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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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 정보)들은 굳이 읽지 않아도 스토리 진행에 지장이 없는 잡다한 설정놀음입니다. 흐름이 끊기는 것을 원하지 않으신다면 읽지 않으셔도 무방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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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 현대 무림에서 참호노병 돌과 같이 상당한 무공을 지닌 고수임에도 돈에 따라 움직이는 낭인들은 적지 않다. 자본주의적 사회상의 영향을 받아서이기 때문이기도 하고, 작게는 내공 드라이브부터 크게는 이동용 우주선까지 돈 들어갈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기 때문이기도 하다.
정보) 참호노병 돌은 이미 화경의 경지에 이른 절대고수들과 여럿 맞붙어 본 경험이 있을 정도로 베테랑의 낭인이다.
정보) 고작 독성 가스는 고수들에게 씨알도 안 먹힌다. 그렇다고 나노봇을 이용해 해킹을 시도하자니, 전문적인 해킹 독공을 수련하지도 않은 어설픈 실력으로는 대형문파의 자체 방화벽도 뚫을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정보) 완전히 전개된 황개독무 안에서는 보통 검기, 검강은 물론 검환이나 이기어검조차도 펼치기 어렵다. 단, 목진처럼 규격 외의 경우는 안티-내공 소자고 뭐고 내공에 대한 강력한 제어력으로 밀어붙여서 어거지로 펼치는 것도 가능은 하다.
정보) 황개독무는 전격계 무공이나 EMP 속성을 지닌 무공 앞에서 허무하리만치 무력한 것이 가장 큰 약점이다. 심할 경우 호신용 전기충격기 정도의 전격으로도 무력화될 수 있을 정도다.
정보) 참호노병 돌이 익힌 독문무공인 트렌치 나이프 권법, 참살흑각권(塹殺黑角拳)은 참호와 같이 좁은 길에서 최고의 효율을 발휘하는 무공이다. 참살흑각권의 특징은 본능 속 야수성을 끌어올려 펼치는 변칙적이고 치명적인 연계공격이며, 주로 너클을 통한 권법으로 상대를 몰아붙인 뒤 송곳과 같은 뾰족한 나이프로 상대의 방어를 무시하고 급소를 찌르는 전법을 사용한다.
정보) 악군패왕 제갈홀의 절기인 야악참륙삼조(野鰐斬戮三爪)는 양 손으로 상대의 움직임을 봉한 뒤 악어같은 턱으로 상대를 물어뜯는 무공이다. 매우 잔혹하여 어린아이들 정서에 좋지 않다.
정보) 적극적인 신체개조로 육체를 강화하는 신육체사상외공(新肉體思想外功)은 지속적인 약물 투입을 통해 육체를 강화하는 강화육체사상외공(强化肉體思想外功)과 함께 현대 외공 무공학을 지배하는 양대 주류 외공사상이다. 그 외의 사상으로는 과학적 근거에 입각해 철저한 커리큘럼에 따라 육체를 단련하는 극한류외공(極限流外功)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