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smic Heavenly Demon 3077 RAW novel - Chapter (94)
우주천마 3077-93화(94/349)
15. 노병불사 Trench Veteran Never Die (4)
15. 노병불사 Trench Veteran Never Die (4) – She Die Standing
“······!”
비명조차 지르지 못한 채 두 눈을 부릅뜬 제갈홀의 신형이 천천히 무너져내렸다.
턱. 목진이 제갈홀을 상대한 틈을 타고 파고든 돌의 주먹을 가볍게 잡아챘다. 가공할 힘으로 돌의 주먹을 죄며 그녀를 향해 고개를 돌린 목진이 덤덤한 목소리로 말했다.
“신기하긴 하나 결국 잔재주일 뿐이지.”
“아으윽!”
“네게 딱히 개인적인 감정은 없느니라. 듣자하니 제갈씨들에게 고용된 몸이라고.”
그저 돈에 고용되었을 뿐인 낭인. 목진의 감정 없는 눈이 고통으로 일그러진 돌을 내려다봤다.
“제갈의 족속이 아니니 내 기회를 주지. 무기를 놓고 자비를 구하면 목숨은 살려주마.”
목진의 말은 진심이었다.
다만 목숨을 구걸한 순간부터 무인으로서 최소한의 존중도 사라질 테지만.
“흐.”
돌은 피식 웃었다. 잡히지 않은 왼손이 쥔 흑각비수가 목진의 목을 노리고 파고들었다. 목진의 제안에 대한 그녀의 대답이었다.
“그래. 그게 대답이렷다.”
뱀처럼 파고든 목진의 손이 그녀의 왼손을 잘라냈다. 제아무리 황개독무라 해도 피부와 직접 맞닿아 도려내는 수법에는 대응할 방도가 없었다. 검도 들지 않았을진대, 목진의 손이 잘라낸 단면에서는 피도 흐르지 않았다.
목진이 사납게, 그리고 만족스럽게 웃으며 말했다.
“훌륭하다.”
목진은 붙들고 있던 돌의 손을 꺾어 그대로 그녀의 가슴팍으로 돌렸다. 돌이 급하게 주변의 황개독무를 집중시켰지만 초월적인 괴력 앞에서 약간의 물리력은 단순한 발버둥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푸욱 하고 살가죽이 찢어지는 소리와 함께 돌이 들고 있던 흑각비수가 제 자신의 명치 속으로 파고들었다.
송곳과 같은 단검의 날이 꽂힌 곳은 사혈(死穴)인 당문혈(當門穴). 돌의 입에서 쿨럭 하고 선홍색의 피가 터져나왔다.
자동보호 프로토콜에 따라 체내의 나노봇들이 응급처치를 시작했지만, 치료 정도로 살 수 있다면 사혈이 아니다. 약간의 말미를 얻을 수 있을 뿐 예정된 죽음은 피할 수 없는 법. 돌의 눈에서 점점 초점이 사라졌다.
“정답(正答)이니라, 노병. 돈 때문이든 뭐든, 살심을 품고 검을 겨누었으면 생사를 가려야지.”
돌은 간신히 고개를 들어 목진을 바라봤다. 붉게 물든 시야 속에서 그녀의 가슴을 꿰뚫은 사내가 웃고 있었다.
“남길 말은 받아주마. 답을 고른 상이라 생각하거라.”
남길 말이라. 돌은 가슴을 파고드는 아릿한 고통 속에서 천천히 입술을 움직였다. 자동으로 주입된 마약성 진통제 탓인지 그녀의 목소리는 어쩐지 몽롱함을 담고 있었다.
“······노병은 죽지 않아.”
다만 새 병사가 그 자리를 대신할 뿐.
“하지만 그 아이들이 온다 해도, 결과는 달라지지 않겠지.”
그녀 이상으로 뛰어난 자질을 지닌 제자들이지만 상대가 너무 나쁘다. 그녀의 복수랍시고 달려들어봐야 결국 개죽음일 뿐이겠지.
후회는 없다.
돈에 팔려 무기를 드는 삶을 선택한 이상 언젠가 이런 최후를 맞으리라는 것은 알고 있었으니까.
오히려, 이만한 고수의 손에 최후를 맞는다면 무인으로서 썩 괜찮은 죽음이 아닐까. 돌, 아니 돌로레스는 생각했다.
다만 그녀의 진전을 이은 제자들까지 그녀의 전철을 밟게 둘 수는 없으리. 돌이 가늘게 떨리는 손으로 품속에서 무언가를 꺼내 내밀었다.
낡은 군번줄이었다. 돌은 쇠를 긁는 목소리로 가쁘게 숨을 쉬며 말했다.
“내 이름을 대는 아이들이 오거든, 이것을 주고 돌려보내 주면 좋겠어.”
목진은 고개를 끄덕였다. 마음에 드는 답을 낸 무인에게 그만한 예우쯤 못해줄 것도 없었다.
“제자인가······. 좋다. 내 목숨은 거두지 않도록 하지.”
돌의 입가가 희미하게 올라갔다. 그것이 그녀의 마지막이었다.
목진이 손을 놓자 생명이 빠져나간 돌의 몸이 그대로 무너져내렸다. 그와 함께 주변을 가득 메우고 있던 겨자색의 안개가 서서히 흩어졌다.
이제야 전초전이 끝났는가. 목진은 감흥 없는 얼굴로 기를 일으켜 손에 묻은 피를 태워 없앴다.
참호노병 돌의 최후는 나름 인상적이긴 했지만, 그 이상의 감흥은 없었다. 이런 무인 하나하나의 사연에 감상을 갖기엔, 그가 걸어온 피 묻은 수라의 길이 너무나 길었다.
그의 담담한 시선이 저 멀리 서 있는 제갈무준을 향했다.
천선군주의 눈은 쓰러진 제갈홀을 향해 있었다. 혈족의 시신을 마주한 그의 얼굴은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목진이 그를 향해 물었다.
“그래, 제 혈육을 바쳐 번 시간은 요긴하게 잘 썼느냐?”
그의 목소리는 짙은 조롱을 담고 있었다.
이러한 경우의 수를 계산하지 못했다면 거짓말이리라.
다만 그 확률이 지극히 낮았기에 작전을 강행했을 뿐.
그러니, 눈앞의 이 광경은 그가 오롯이 감당해야만 할 결과였다.
“······.”
제갈무준은 침통한 얼구로 제갈홀의 시신을 내려다봤다. 내장이 모조리 터져 죽은 혈육의 몰골은 차마 봐주기 힘들 만큼 참혹하기 그지없었다.
‘소교(小巧)······급이었던가.’
제갈세가의 그림자 속 무력집단 중 하나인 악군방을 이끄는, 제갈이라는 이름의 명예조차 마다하고 오직 세가를 위해 헌신하고 있는 직계의 혈족.
같은 직계이긴 하나 이번 임무에 투입되기 전까지는 사적인 대화 한 번 나눠본 적 없을 만큼 거리가 먼 인물이었다. 거대 무림세가인 제갈세가는 가문의 직계라고 해도 그 수가 수천에 달할 정도였으니까.
제갈무준에게 있어 그는 수많은 직계 중의 하나일 뿐이었다. 정을 주기는커녕 임무가 끝나면 기억 한 구석에 묻어 둘 평범한 직계.
서열로 치면 최고위 바로 아래인 제팔위계(第八位階) 좌조(坐照)의 위(位)에 있는 제갈무준에게 고작 네 번째 등급인 소교 급의 직계란 그런 존재였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를 당숙이라 부르던 혈족이 이리도 무참히 살해당한 것을 보고 아무런 감상도 들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내 탓이로다.’
제갈무준의 눈이 심유하게 가라앉았다. 그가 화염용사 이목진의 전력을 오판하지 않았더라면 제갈홀이 이리도 참혹하게 최후를 맞이하진 않았을 것이다.
예측오차를 한참 상회하고 있는 목진의 무공. 심지어 전력조차 이끌어내지 못했다.
그러나 제갈홀과 돌의 죽음이 무의미한 것은 절대 아니었다.
이 몇 분 간의 격돌로 백룡대는 그 무엇보다 소중한 데이터를 얻을 수 있었으니까.
[ 전 백룡대원은 여의정을 투여하고 내공 드라이브의 오버클럭 제한을 해제하라. ]제갈무준은 전술 전뇌망을 통해 미리 백룡대의 역량을 한계 이상으로 끌어낼 수 있도록 명령했다.
반사신경과 전투능력을 극대화시키는 강화제인 여의정과 내공의 출력을 일시적으로 증가시키는 내공 드라이브의 오버클럭. 비록 전투가 끝난 뒤에 치러야 할 부작용이 큰 편이긴 하지만, 눈앞의 사내를 확실히 처단하려면 그들이 가진 모든 힘을 이끌어내야 했다.
애초에 이 진법은 여러 절대고수들을 한꺼번에 상대하기 위한 것이었거늘, 고작 한 사람에게 대적하기 위해 사용하는 것도 모자라 비장의 수까지 동원하게 될 줄이야.
그는 다시 발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마지막까지 임무를 완수하겠다는 듯 눈조차 감지 못하고 절명한, 암중에서 세가의 이름을 떠받치던 젊은 제갈. 그의 부릅뜬 눈이 자신은 임무를 완수하였느냐 묻고 있었다.
제갈무준은 흰 백의가 피에 젖는 것에도 아랑곳 않고 한쪽 무릎을 꿇었다. 그는 존중을 담아 제갈홀의 눈을 덮어주며 중얼거렸다.
“네 의기를 헛되이 쓰지 않으마.”
머잖아 우주무림에 널리 이름을 떨치게 될 절대고수, 화염용사 이목진.
창천으로 비상하는 그를 다시 땅으로 떨어트리기 위한 대계의 마지막 한 조각이 비로소 제 자리를 찾았다.
자리에서 일어선 제갈무준이 목진을 바라봤다.
그의 눈은 냉철함을 담았으나 그 심지는 고요히 타오르고 있었다.
“······그대는 명실공히 제갈과 같은 하늘을 이고 살 수 없는 적이 되시었소.”
제갈의 피가 흘렀다. 그것은 제갈세가와 목진의 사이에 복수의 굴레가 생겼다는 뜻이었다.
제갈희와의 비무는 단지 세가의 명예를 욕보인 것에서 끝났었다. 물론 명예야말로 세가에게 있어 목숨만큼 중한 것이긴 하지만, 그래도 그 대가로 반드시 피를 볼 필요까지는 없었다는 뜻이다.
하지만 제갈씨의, 그것도 직계의 피가 흐른 이상 제갈세가는 반드시 그 핏값을 물어야만 했다. 그것이야말로 세가의 명예이며 전 무림인이 신봉하는 강호의 정의였으니까.
목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그 누구보다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적이라······. 그래, 적이지. 더 이상 쓰잘데기 없는 대화를 할 필요가 없으니 좋구나.”
적(敵)이란 대저 죽고 죽이는 사이일 뿐이니 말을 섞음이 무의미하다.
그리고 그것은 진즉 손에 피를 묻히기로 결정한 마인(魔人)에게는 더없이 간단명료한 관계였다.
무릇 강호를 살아갈 적에 적을 만듦은 신중해야 하나, 한번 적이라 정했다면 조금의 자비도 보이지 말아야 할지니.
새로운 시대에 구태여 천마의 이름을 지고 살아갈 생각은 없지만, 그렇다고 해서 은원을 두려워 할 생각도 없다.
목진은 여유로운 태도로 다시금 검을 꺼내들었다.
자연스럽게 검을 늘어트린 목진이 주변을 둘러봤다. 어느새 백이십팔 명의 백룡대가 그를 가운데 둔 채 수십 장의 거리를 두고 그에게 검을 겨누고 있었다.
제오위계(第五位階) 용지(用智)의 자리에 오른 스물의 정예가 오행(五行)을 맡아 사방(四方)을 점하고, 제삼위계(第三位階) 투력(鬪力)의 자격을 지닌 백팔명의 대원이 육합(六合)의 여섯 축을 이은 십이지(十二支)의 방위에 구궁(九宮)을 따라 자리한다.
진법에 대한 조예가 없는 목진이 보기에도 결코 범상치 않은 자리의 배치. 아직 본격적으로 개진하지 않았는데도 그 기세는 목진이 겪은 어떤 진법보다도 무게감이 있었다.
본능적으로 느껴지는 짜릿한 압박감. 목진은 알 수 있었다. 눈앞의 진법은 그가 적으로 삼기에 모자람이 없다는 것을.
그렇기에 목진은 입꼬리를 끌어올렸다.
“적어도 제갈의 이름을 내걸 자격은 있는 모양이로구나.”
“강선(罡扇) 전개!”
제갈무준이 양 팔을 크게 펼치며 외치자, 바람을 가르는 소리와 함께 넓은 품의 소매에서 수도 없이 많은 빛살들이 솟구쳐 나왔다.
어림잡아 수백, 어쩌면 천 이상.
육안으로도 보일 정도로 진하게 밀집된 강기를 머금은 철판들이 그의 소매 속에서 끝도 없이 튀어나온다. 과거 제갈희가 펼쳤던 것과는 비교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연마된, 극한의 경지에 이른 강모어선술(罡母馭扇術)은 고작 한 사람이 펼친 것이라기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거대했다.
마치 벌떼처럼 비무선 위를 가득 메운 채 꿈틀거리며 대기를 울리는 백색 군단.
천선군주 제갈무준이 그 중심에 오연히 선 채 목진을 응시하고 있었다.
작가의말
.
<아래 정보)들은 굳이 읽지 않아도 스토리 진행에 지장이 없는 잡다한 설정놀음입니다. 흐름이 끊기는 것을 원하지 않으신다면 읽지 않으셔도 무방합니다.>
.
정보) 참호노병 돌은 수많은 고향 무인들에게 무공과 가르침을 전파했지만, 직접 거둔 제자는 세 명 뿐이다. 이 세 명은 참호노병의 무공들을 하나씩 이어받아 익혔다.
정보) 제갈세가의 직계혈족은 무공실력과 무림에서의 활동실적, 그리고 그 외의 여러 요소들을 토대로 평가되어 아홉 개의 위계로 나뉜다. 각각의 위계는 바둑의 품계를 따라 제 1위계인 수졸(守拙)부터 제 9위계인 입신(入神)까지 존재하며, 9위계는 제갈세가의 역사에도 몇 없는 전설적인 고수에게만 수여되는 일종의 명예직이라 실질적으로는 8위계 좌조(坐照)가 최고의 위계이다.
정보) 악군패왕 제갈홀과 제갈희는 제4위계인 소교의 위계이다. 이 정도의 위계라면 어지간한 제갈세가 내의 무력집단에서 부단주 정도, 규모가 작은 곳에서는 단주까지도 오를 수 있는 수준이다.
정보) 제갈무준은 목진의 무공을 세간에 알려진 것 이상일 거라고 예상했고, 목진의 무공을 대폭 상향해 예측했음에도 제갈홀이 죽을 확률이 3% 미만이었기에 작전을 감행했다. 하지만 목진은 제갈무준의 예상보다 한참은 더 강했다.
정보) 여의정은 복용한 무인의 각성 효능 외에도 일종의 마약성 진통효과를 부여해 전투지속성을 높인다. 다만 자주 복용할 경우 여의정 중독에 빠질 수 있다.
정보) 내공 드라이브는 오버클럭을 통해 일반적인 출력 이상의 내공을 운용할 수 있다. 하지만 자체적으로 오버클럭 기능을 지원하는 일부 고급 내공 드라이브가 아닌 이상 폭주의 위험이 크고, 오버클럭을 자주 사용할 경우 내공 드라이브에 영구적인 손상이 누적될 수 있기 때문에 어지간히 목숨이 경각에 달하지 않는 이상은 사용하지 않는다. 돈이 많은 거대문파에서는 손상된 내공 드라이브를 오버홀해서 교체하면 되기 때문에 비교적 리스크가 적으나, 비용이 상당하기 때문에 웬만해서는 오버클럭을 하지 않는다.
정보) 십성에 이른 강모어선술은 천 개가 넘는 강선들을 모두 직접 컨트롤하기 때문에 내공과 기의 운용에 상당한 부하가 걸리지만, 그 이상으로 두뇌 연산력에 대한 부하가 끔찍하게 심하다. 그 정도가 어마어마하기에 어지간한 제갈세가 고수들은 강모어선술을 십성 전개하기 위해 내공으로 두뇌를 보호함과 동시에 보조 연산장치들을 주렁주렁 달고 사용하거나 제갈세가의 특수 심공인 광대정보처리심결(廣大情報處理心訣)을 익혀 사용한다.
정보) 제갈무준은 스스로 개발한 강모어선술 알고리즘을 통해 광대정보처리심결의 연산량을 획기적으로 줄여서 보조 연산장치를 사용하지 않고도 강모어선술을 자유자재로 펼칠 수 있다. 다만 현재로서 그 알고리즘들을 실전에 활용할 수 있는 건 제갈무준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