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smic Heavenly Demon 3077 RAW novel - Chapter (98)
우주천마 3077-97화(98/349)
16. 용살흑마 Demon the White Dragon Slayer (4)
16. 용살흑마 Demon the White Dragon Slayer (4) – 래디컬 네고시에이션
사실 안드로이드라고 해도 해킹에 특화된 스페셜 모델이 아닌 이상 이만한 규모의 시설을 직접 해킹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하지만 그런 사실이 무색하게 순자의 해킹에는 거침이 없었다.
침입의 흔적을 남기지 않는 일반적인 해킹과는 달리 뒷감당을 생각지 않고 우악스럽게 보안망을 파괴하는 폭력적인 해킹. 연이어 이어지는 순자의 해킹공격에 공방의 보안 시스템이 비명을 지르기 시작했다.
– 외부 네트워크 연결 단절.
– 외부 방화벽 돌파. 내부 방화벽 작동 실패.
– 위험 자동 진단······시설 중추 시스템 간섭 위험. 시스템 격리 시도······격리 실패.
– 시스템 긴급 셧다운······셧다운 실패.
보안 시스템이 필사적으로 순자의 해킹을 방어하려 시도했지만 모조리 실패. 직념공방 전체를 통제하는 중추 시스템이 고작 안드로이드 하나에게 유린당하고 있었다.
그때 쿵 하는 소리와 함께 컨트롤 룸의 입구에서 진동이 울렸다. 습격자들이 벌써 컨트롤 룸의 문 앞까지 도달한 것이다.
“칫.”
순자가 가볍게 혀를 찼다. 시간이 부족했다.
컨트롤 룸의 특성 상 외부의 침입을 막기 위해 견고하게 만들어지긴 했지만, 장비를 갖춘 무림인을 상대로는 고작 몇 분 정도 버티는 것이 한계일 터.
– 중추 시스템 커널 강제 삭제 돌입.
설상가상으로 해킹 도중 시스템 자체를 지워버리는 시퀸스에 돌입해버린 상황. 공방의 기능을 상실할지언정 통제권을 빼앗겨 악용되지는 않겠다는 보안 시스템 최후의 발악이었다.
‘안 돼······!’
순자는 다급히 시스템에 과부하를 걸어 시간을 벌면서 삭제를 중지시켰다.
– 삭제 진행률 2%······5%······12%······12%······12%······삭제 중지. 시스템 커널 완전 삭제 실패.
– 시스템 커널 복구 성공. 작동 체크······작동 실패.
“으······.”
순자는 이를 악물었다.
어떻게든 시스템의 삭제는 막았지만, 복구에 실패하여 시스템 자체가 망가진 상황. 설상가상으로 굉음과 함께 돌파용 장비로 컨트롤 룸의 입구를 절단하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이대로라면 시스템을 장악하기도 전에 습격자들이 먼저 입구를 부숴버릴 상황이다. 순자는 주머니 속에서 손가락 한 마디만큼 작은 내공 배터리 팩을 꺼내들었다.
‘제 시간에 맞추려면 하이퍼클럭이라도 해야 돼.’
인간 혹은 근인간종의 전유물인 기공공학에서 몇 안 되는, 오직 안드로이드만을 위한 기술인 기공 하이퍼클럭(Hyperclock). 기를 사용해 연산모듈을 안정시키면서 순간적으로 연산능력을 끌어올리는 기술로 일종의 안드로이드 전용 도핑약이다.
인공 두뇌를 손상시키는 반영구적인 부작용 때문에 안드로이드로서는 자해행위나 마찬가지지만 마지막 수를 준비하기도 전에 허무하게 붙잡히는 것보다는 낫다. 순자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스스로의 목덜미에 내공 배터리 팩을 꽂았다.
“흐······.”
연산량이 말도 안 될 정도로 급격히 상승하지만 연산모듈의 회로는 기로 보호되기에 완전히 타버리지 않는다. 머리 안쪽에서 새어나오는 열기에 신음을 흘리는 순자의 이마에 구슬땀이 송골송골 맺혔다.
‘조금만 더.’
– 에러 코드 확인. 디버깅 모드 돌입.
– 재작성 코드 동기화 시작. 작동 체크······작동 성공.
시스템 전체에서 손상된 코드를 파악하고, 손상된 부분을 기존 시스템과 부딪히지 않도록 즉석에서 짜넣는다. 보안 시스템 최후의 발악이 수습되는 데에는 고작 수십 초 남짓한 시간이 걸릴 뿐이었다.
– 시설 중추 시스템 접근 성공. 루트 권한 [SUNJA] 부여 성공.
‘됐다.’
순자가 막 공방의 중추 시스템을 장악한 순간이었다. 꽝 하는 굉음과 함께 컨트롤 룸의 입구가 터져나간 것은.
“거기까지야.”
스산한 목소리와 함께 순자의 목덜미에 싸늘한 감각이 느껴진다. 인식조차 하지 못할 정도로 빠르게 다가온 비오르가 손톱 끝으로 순자의 목젖을 겨눈 채 경고했다.
“두번 말 안 한다. 거기서 손 떼. 당장.”
“하아······알겠어요.”
무공을 익히지 못해 일반인이나 다름없는 안드로이드지만, 시스템에 연결되어 있는 안드로이드는 언제라도 성가신 적으로 변할 수 있다. 경험에서 우러나온 비오르의 명령에 순자는 순순히 시스템과의 연결을 해제하며 두 손을 들었다.
‘뭐지?’
붉어진 안색에 연신 구슬땀을 흘리며 가쁜 숨을 내쉬는 순자를 본 비오르의 눈초리가 가늘어졌다. 뭔가 수작질을 벌인 것 같긴 한데, 그 수작질이 무엇인지 도통 가늠이 되질 않았다.
‘시스템과의 연결은 끊었으니 상관없겠지.’
“덕분에 아끼는 부하들이 제대로 싸워보지도 못하고 불귀의 객이 돼 버렸어. 무림의 일에 이만큼이나 관여했다면 일반인이라고 해도 보호받지 못하는 건 알고 있겠지? 곱게 죽을 생각은 버리는 게 좋을 거다.”
적지 않은 부하들을 잃은 비오르가 순자를 노려보며 으르렁거렸다. 하다못해 싸우다 죽었으면 모를까, 우주선 안에서 이렇다 할 저항도 못하고 폭사한 부하들을 생각하니 절로 울화가 치밀어오를 지경이었다.
하지만 순자는 살기등등한 비오르의 으름장에도 침착함을 잃지 않고 지친 기색이 역력한 목소리로 물었다.
“······어디 소속이죠? 제갈세가는 아닌 것 같은데.”
물론, 딱히 대답을 기대하고 던진 물음은 아니었다. 제갈세가의 사주를 받고 습격한 이들인데 동네 흑도 방파도 아니고 그렇게까지 어설프게 일처리를 하진 않을 테니까.
만약 강호넷을 사용할 수 있었다면 비오르의 독문무기를 토대로 검색이라도 해 봤겠지만, 악군방의 재밍으로 인해 강호넷과의 연결도 끊긴 상태였다.
“하.”
당연히 비오르는 순자의 물음에 대답도 하지 않고 코웃음을 쳤다. 그는 쓸데없는 이야기로 시간을 끄는 대신 빠르게 임무를 처리하기 위해 그녀를 협박했다.
“한 가지 곱게 죽을 방법을 알려주지. 지금 당장 무림공적 당세령이 있는 구역의 락을 풀어.”
마음 같아서는 부하들의 복수를 위해서 가능한 한 고통스럽게 죽이고 싶지만, 프로인 이상 임무가 먼저다. 그의 손톱 끝이 순자의 목을 살짝 파고들었다.
“하, 왕언니가 무림공적이라고요? 제갈세가 놈들이 그렇게 말하던가요?”
“제갈세가 이야기가 왜 나오는 지 모르겠네. 우린 정체를 숨기고 활동하던 무림공적을 격멸하고 강호의 정의를 바로세우기 위해 떨치고 일어선 협의지사들이다만?”
뻔뻔하기는. 순자가 헛웃음을 지었다. 그녀를 마주보며 비오르도 마주 웃음지었다.
“하여간 그쪽 사람들 마음에 안 들면 무림공적 붙여서 마녀사냥 하는 건 변하지 않네요.”
“글쎄다. 인류정부에게 멸문당한 사천당가 최후의 핏줄이 무림공적이 아니면 뭐지? 운 좋게 공표되지 않았다고 해서 몸속에 흐르는 피가 바뀌지는 않는다만.”
잠시 말을 멈춘 비오르가 네 속셈은 다 알고 있다는 듯 피식 웃으며 덧붙였다.
“······그리고 어설프게 시간 끌 생각은 집어치워라. 오해할까봐 못박아두는 건데, 나는 단지 좀 더 빠르고 효율적으로 일을 처리하고 싶어서 이런 제안을 건네는 거야. 딱히 너가 협조하지 않아도 약간의 시간만 더하면 이런 민간 공방의 폐쇄시설 정도는 금방 뚫을 수 있거든.”
비오르가 무감정한 눈으로 순자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그가 말하는 건 결코 허세 따위가 아니었다. 이미 남은 부하들을 보내 폐쇄된 구역을 뚫고 있는 중이었으니 한두 시간 안으로 당세령의 신병을 확보할 수 있으리라.
하지만 그의 말에서 순자가 집중한 부분은 다른 쪽이었다. 바로 세령의 출신에 대한 전후사정을 알고 있다는 것. 확실한 물증은 없지만, 아마도 세가에서 비밀리에 운영하는 비공식 산하 문파일 가능성이 컸다.
그리고 단순 외부인력이 아니라는 건, 이번 일을 주도한 제갈세가와 직접적인 채널이 있다는 의미다. 순자는 확신을 가졌다.
‘오히려 좋아.’
“······좋게 갈 생각은 없구나?”
순순히 협조할 생각이 없다는 건 눈빛만 봐도 안다. 비오르가 가볍게 혀를 찼다..
‘귀찮게 됐네.’
물론, 그저 조금 일이 귀찮아 질뿐이다. 단지 조금 더 땀을 흘리고 조금 더 시간이 걸리는 수준. 비오르는 쓸데없이 가망 없는 실랑이를 이어가는 대신 빠르게 일을 처리하기 위해 지체 없이 그녀의 목숨을 거두려 했다.
그가 출수하기 전에 순자의 입에서 흘러나온 한 마디가 아니었다면 말이다.
“팔레.”
“엉?”
“팔레(Parley). 협상이요. 협상을 하죠.”
갑자기? 순자를 바라보는 비오르가 미간을 찡그렸다. 절대 협조하지 않을 것처럼 굴더니 이제 와서 목숨이 아깝기라도 하다는 말이다.
뭐, 어쨌건 일이 쉽게 풀리면 환영할 만한 일이긴 하지. 비오르는 손을 내렸다.
하지만 순자가 건네는 제안은 그가 원하던 종류의 것이 아니었다.
“들려요?”
순자가 대뜸 위를 가리켰다. 비오르의 미간이 조금 더 찌푸려졌다.
“지금 뭐 하자는 거야?”
“들리냐고요. 이 소리.”
소리? 비오르는 쓸데없는 수작질을 대비해 순자에게 시선을 떼지 않으며 청각에 내공을 집중했다.
그리고, 쿠르릉 하고 무언가 거대한 것이 뒤틀리는 소리가 들렸다. 공방 전체를 울리는 불길한 소리. 일이 뭔가 이상하게 흘러가고 있다는 것을 직감한 비오르가 정색하며 순자를 노려봤다.
“너 방금 무슨 짓 했냐.”
“별 거 아니에요. 당신들이 들이닥치기 전에 공방의 병렬 원자로를 강제로 폭주시켰거든요.”
“······뭐라고?”
내가 잘못 들었나. 순간적으로 비오르가 두 눈을 깜박였다.
“요구사항은 말할 것도 없겠죠. 저랑 언니가 여길 탈출할 때까지 신변에 대한 안전을 보장해 주세요.”
“지금 자폭하겠다고 협박하는 거야? 협상하자며?”
“조금 과격한 협상이죠. 어차피 협상을 못 해도 죽는 건 매한가지일 텐데.”
비오르는 헛웃음을 지었다. 고작 자폭한다는 협박에 겁먹고 물러날 정도면 프로의 자격이 없었다. 저런 식으로 나오는 이들이야 이미 임무 중에 한두 번 만나본 게 아니다.
“어쩔 수 없지. 안타깝고 두려운 일이지만, 우리의 희생으로 무림공적을 처단할 수 있다면 이 한 몸 희생하지 못할 게 뭐 있겠어. 안 그래?”
그것만큼은 블러핑이 아니라 진심이었다. 광신에 가까운 감정으로 비오르의 눈이 번들거렸다.
악군방은 그 근본부터가 오직 제갈세가만을 위해 존재하는 곳. 세가의 영광을 위해 희생하는 것쯤은 그들에게 새삼스럽지도 않은 근본 사상이었다.
물론, 정말로 자폭을 한다면야 고작 두 사람 때문에 악군방의 주력 무인들을 모조리 잃는 만큼 손해가 큰 교환이긴 하다. 하지만 비오르는 무림인도 아닌 순자에게 그런 배짱이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칼로 대화하는 비정한 강호무림에서 한낱 자폭 따위로 협박을 할 만한 범부(凡夫)들의 의지가 강해봐야 얼마나 강하겠는가. 그는 분위기의 주도권을 가져오기 위해 일부러 기세를 흘리며 순자를 노려봤다.
하지만 순자는 광기어린 비오르의 압박을 마주하면서도 조금의 위축됨 없이 말을 이었다.
“한 가지 잊으신 게 있네요.”
“응?”
“여기엔 저희만 있는 게 아니거든요.”
뒤늦게 순자가 말하는 바를 깨달은 비오르의 동공이 거세게 흔들렸다.
“미친, 너 설마······.”
“백룡대가 기공성계에서 무력시위를 하는 건 이미 전 무림이 다 알 거에요. 그나마 아직은 공식적인 피해가 없으니 어찌저찌 밀어붙였지만, 이 정도로도 제갈세가에서 부담이 상당하겠죠? 그 상황에서 개공방의 진골 장인이 휘말려 희생된다면, 과연 기공방이, 그리고 무림이 가만히 있을까요?”
애초부터 정파로서의 정체성을 흔드는 중립지대에서의 무력시위를 제갈세가의 명성으로 억누르고 있는 상황이다. 이런 상황에서 기공방의 장인이 희생된다면 아무리 제갈세가라고 해도 감당할 수가 없으리라.
순자의 말에 비오르가 으르렁거리며 짓씹듯 내뱉었다.
“······야, 우리랑 제갈세가는 관련이 없다고 했을텐데.”
그 말대로였다. 본래 음지에서 제갈세가의 영광을 수호하기 위해 위해 키워진 문파인 만큼, 무림공적을 처단하기 위한 협의지사라고 선언하며 자신들이 오명을 뒤집어쓴다면 제갈세가에 대한 지탄은 최소화할 수 있다.
하지만 순자는 비스듬히 고개를 기울일 뿐이었다. 안드로이드 특유의 무기질적인 눈동자가 비오르를 똑바로 응시했다.
“죽은 사람이 무슨 말을 할 수 있죠?”
“······너 이 새끼.”
이건 자폭협박같은 게 아니에요. 지극히 기계적인 목소리로 순자가 덧붙였다.
“인질극이죠.”
작가의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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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 정보)들은 굳이 읽지 않아도 스토리 진행에 지장이 없는 잡다한 설정놀음입니다. 흐름이 끊기는 것을 원하지 않으신다면 읽지 않으셔도 무방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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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 기공 하이퍼클럭 기술은 기공공학에서도 몇 안 되는 안드로이드를 위한 기술로, 인공두뇌의 회로를 폭발적으로 오버클럭시킴과 동시에 기를 이용해 인공두뇌의 회로를 보호하여 부작용을 최소로 하는 기술이다. 하지만 기를 사용한다 해도 인공두뇌의 회로를 완전히 보호할 수는 없기 때문에 어느 정도의 손상은 불가피하며, 이 때문에 사용자인 안드로이드에게 반영구적인 장애가 남을 확률이 크다.
정보) 보통 우주를 여행하는 객들 사이에서 분쟁이 발생했을 때, 협상을 원하는 경우 팔레(Parley)라고 외친다. 이런 관습은 천 년 전 인류가 우주로 진출하던 시대에 초대 녹림왕으로 인해 시작되었으며, 그의 회고록에 따르면 오래된 고전 영화를 보고 따라한 것이라고 한다.
정보) 보통 우주시설의 에너지원은 핵융합 에너지를 사용하고 기공성계의 철방은 태양 에너지를 사용하지만, 내공 드라이브 제작기술을 사용하는 무림공방의 경우 특수한 이유로 인해 고도로 발전된 핵분열 에너지를 추가로 사용한다. 병렬 원자로는 대중적으로 많이 사용되는 기술이다.
정보) 제갈세가의 중립지대 무력시위는 이미 무림에 실시간으로 생중계되고 있으며, 무림맹 측에서도 우려 성명을 낸 상태다. 제갈세가의 사전공작으로 인해 목진과 백룡대의 싸움이 직접 중계되고 있지는 않다.
정보) 순자의 자폭 협박은 어느 정도 블러핑이 들어간 것이다. 순자는 자신이나 목진은 몰라도 세령의 목숨을 가지고 배팅하지는 않는다.
정보) 악군방과 같은 비공식 산하 문파에서 제갈세가를 위해 희생한 이들은, 유족들에게 제갈세가 산하 재단에서 금전적/제도적인 보상을 후하게 주는 편이다. 일부 자질이 뛰어난 이들은 제갈세가 산하의 문파에 들어가는 경우도 있다. 덕분에 비공식 산하 문파들의 제갈세가에 대한 충성도는 높은 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