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ckoo living in early spring RAW novel - Chapter 3
03. 좋은 봄날에
시끄러운 음악 소리. 아이들이 웃는 소리. 평소라면 싫어했을 유치한 트로트 음악. 그 와중에 당당하게 무대에 올라 마이크를 잡은 여자애는 이상하게 나의 시선을 끌었다. 정말 이상하게도.
“안녕하십니까. 성황리에 순회공연을 마치고 온 배우림이라고 합니다.”
익살스러운 말에 깔깔 넘어지는 아이들이 싫었고, 분위기 살린답시고 어깨를 맞대며 부대끼는 것도 싫었다. 내가 남을 만지는 것도, 남이 나를 만지는 것도 싫었다. 사람이 싫었다. 장기자랑 대회에서 나는 부모의 상을 치른 장례식을 떠올리고 있었다. 나를 그 기억 속으로 빠트린 건 우스꽝스러운 반짝이 코트를 입은 여자애였다.
“괜찮다. 이제 큰 아빠만 믿어라.”
“울지도 않고 의젓하네. 역시 장남은 달라.”
콩고물이라도 떨어질까 싶어서 달려드는 사람들이 부모님을 죽였다는 것에 한 치의 의심도 없었다. 유일하게 정상적으로 자라나 할아버지의 기대를 한 몸에 받은 아버지와 달리 돈 쓰는 게 인생의 목표인 숙부들이었다. 돈은 버는 것보다 쓰는 게 중요하다고 염불을 외듯 하는 실패자들의 질투가 사람의 생목숨을 앗아간 경우였다.
할아버지는 사람 취급 안 해 줘도 되는 것들이라고 누누이 말했다. 장례식에 나타나 하는 말이라는 게 다음 사장이 누구니, 회장이 누구니, 상무가 누구니 하는 것들이었으니까 말이다. 나이가 어리지 귀가 없는 게 아닌데 참들 조심성이 없었다.
빗길에 일어난 교통사고라고 했지만 미심쩍은 게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큰아버지의 전화를 받고 달려 나간 두 분이 커다란 트럭에 치여서 사고를 당했고 그 트럭 운전수는 마침 전과자에 그날 처음으로 화물 트럭을 몰아 본 사람이었다. 응징보다는 진실이 궁금했다. 하지만 진실을 파헤칠 힘이 없었다. 유일한 동아줄인 할아버지는 그래도 핏줄은 핏줄이라며 묻어 두려는 감이 있었다.
나는 참을 수 있었다. 참고, 기다리고, 그리고 할아버지의 기대에 충족하는 그날이 오면 산 것보다 죽는 게 낫다는 걸 알려 줄 터였다. 삶의 목표가 무엇인지에 따라 사람은 사는 방향이 달라졌다. 내 삶의 방향은 첩첩이 암흑으로 감싸져 있어서 나조차도 앞이 보이지 않을 때가 있었다.
그럼에도 나아갔다. 아낀다고 말하면서 행하는 할아버지의 손찌검도 견딜 수 있었다. 아버지도 견딘 것이었다. 견디지 못하고 나가떨어진 패자들은 내 시체가 자기들 앞으로 굴러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시체가 될 순 없었다. 나는 살아야 했다.
배우림의 노래를 듣고 묘한 감정을 느꼈다. 아마 가사 때문에, 혹은 그 애의 구김살 없는 표정 때문일 거다. 묘한 감정은 그 아이를 다시 보게 만들었다. 배우림의 살 내음, 입술, 그리고 그 애가 나를 만지는 손길까지 전부를. 그것들은 왜 불쾌하지 않을까. 왜 나는 그 시끄러운 곳에서 너를 보았을 때 편안함을 느꼈을까. 당당한 네 표정이, 주눅 들지 않는 네 춤이 재밌다고 느낀 걸까. 나중에는 네가 컬러링으로 설정해 둔 트로트를 MP3에 넣어 듣기까지 했다.
무엇보다 한심한 건 여전히 이 낡아빠진 아파트로 돌아와 있는 나의 발이었다. 사람이 그렇게 한순간에 싫어질 리 없다는 게 나의 생각이었다만, 너에게 내가 쓸데없는 기대를 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살다가 보니 사람에게 기대란 것을 하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 너 유학 안 가겠다고 했다면서!
역시 김종선과 운전기사는 할아버지와 한패가 맞았다. 돈을 받고 할아버지의 수족 노릇을 하는 사람은 더러 있어 기분이 나쁘지 않지만, 간혹 어떤 이들은 나를 위한다는 이유까지 더해져 있어 구역질을 일으켰다. 할아버지는 다혈질인지라 한번 화가 나면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당신이 원하는 답을 듣기 전까지 사람을 몰아붙이는 통에 주변에 남은 사람이라곤 아버지와 어머니뿐이다.
– 할애비 소원이라고 그랬지. 요즘 대세는 한국보다 해외파라고 안 했냐. 할애비가 큰 거 바라? 너도 네 숙부들이랑 같은 놈이었던 거야? 어?
당연히 이런 소리를 들을 줄 알았고, 당연히 이런 말이 나올 줄 알았다. 그럼에도 나는 유학을 가지 않겠다고 선언한 당시 할아버지를 설득하기 위한 거창한 말들을 준비했었다. 여차하면 졸업 때까지는 할아버지의 도움 없이 살리라고 생각했었다.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정신 나간 짓들을 가능케 만든 것은 오로지 한 사람 때문이었다.
나는 준비해 둔 변명을 모두 잊어버렸다. 사실 그 모든 변명은 배우림의 옆에 있고 싶어서였다. 하지만 모든 건 끝이 있는 법이었다. 그런 하찮은 감정에 목매기엔 나의 삶은 방향이 정해졌다. 한 번의 실수도 용납해서는 안 되는 삶으로 돌아온 것뿐이었다.
“잘못 생각했습니다. 이달 내로 떠날 준비 할게요.”
– 참말이지?
“네.”
– 너는 꼭 할애비가 언성을 높이게 만들어. 와서 보자.
한 대 또 맞겠군. 맞는 것에 대해 아무런 감상이 들지 않을 나이가 됐음에도 나는 약통을 들고 뛰어오는 배우림이 감사했다. 무엇에 감사했는지 모른다. 그 애를 만나게 해 준 학교라든가, 그 애를 만져 볼 수 있게 비를 내려준 하늘이라든가. 감사할 건 많았다.
막상 유학을 결정하고 나자 그쪽으론 걸음도 하고 싶지 않았다. 어렸을 때 하던 생각이 또 들기 시작했다. 이렇게 쓰레기밖에 없는 세상 같은 것, 누가 나서서 쓸어 주면 안 되나. 어느 날 혜성이 떨어진다던가. 어느 날 홍수가 일어난다던가. 아니면 멸망의 징조라도 나타났으면 좋겠다. 그래서 아무 생각도 하지 않고 잠들 듯이 죽었으면 좋겠다.
매일 내가 여기로 출근 도장 찍는 것을 안 운전기사가 우산을 들고 차에서 내렸다. 이 기다림도 오늘이 마지막이었다. 이 아파트에 사는 멍청한 여자를 잊을 터였다.
“비도 오는데.”
우산도 없이 여기서 뭐 하냐는 뜻이겠지. 그 이유를 알면 내가 여기서 이러고 있지도 않을 터다. 나는 기사가 건넨 수건으로 물기를 닦고 우산을 받았다. 떠나는 길에 빗물 고인 시소가 보였다. 저기 앉아서 나를 노려보던 배우림이 떠올라 발길이 멎었다. 비에 젖은 시소를 보던 나는 운전 기사에게 손을 내밀었다.
“전화 한 통만 빌려줘요.”
네 핸드폰은 어쨌냐는 표정의 운전기사는 머뭇거리다가 뒷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내 주었다. 나는 빌린 핸드폰에 배우림의 번호를 입력했다. 정말, 이번이 마지막이었다. 두 번 다시는 전화하지 않을 거였다. 들이닥치는 비바람을 맞고 끼익, 끼익 움직이는 그네와 시소의 소리가 마음에 걸려서, 정말 단지 그 이유로 다시 한번 걸어봤을 뿐이었다.
한 번은 받지 않았다. 한 번에 받으리라고 기대하지도 않았다. 두 번째 전화를 걸었을 때는 아주 오랜 연결음 끝에 전화를 받았다. 나인 줄 알아서였을까.
– 여보세요.
의심과 불안에 찬 목소리가 핸드폰 스피커폰으로 흘러나왔다. 마지막이라고 말해 놓고서 이러는 나 자신이 한심해 말문이 막힌 참이었다. 그대로 전화를 끊을 것 같았던 너는 웬일인지 오래 핸드폰을 붙들고 있었다. 침묵을 바란 게 아니었다. 먼저 통화를 종료하려던 순간이었다.
– 혹시.
혹시. 그 말에 내 마음이 설렜다. 그러나 네 목소리가 찾은 것은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이었다.
– 나 낳아 주신 그, 아주머니세요?
뜻밖의 내용에 놀라 우산을 떨어트렸다. 운전기사는 눈이 휘둥그레져 바람에 굴러가는 내 우산을 잡으려고 뛰어갔다. 빗줄기에 눈앞이 가려졌지만 네 목소리는 점점 더 선명해졌다.
– 나는, 내 번호는 어떻게 알았는지 모르겠는데……. 다시는 이런 식으로.
꽤 매정한 척하던 너의 목소리는 작아지고 있었다. 끝을 흐린 목소리가 어떤 마음을 먹은 것처럼 지나치게 떨렸다.
– 민폐가 아니라면, 아니, 귀찮지 않으시면 가끔 이렇게 전화 주실래요. 부탁할게요.
“…….”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을 향한 말에 희망을 느꼈다. 이런 식으로 너와 끊어지고 싶지 않았다는 마음이 컸을 것이다. 비 나는 남의 기회를 훔쳐내었다.
– 아예 안 보고 싶은 건 아닌데. 그냥, 나는 지금 이대로가 좋고 또, 그래도, 낳아 주신 엄마한테 아무 말이라도 하고 싶을 때가 있었으니까.
한참을 뜸을 들이던 너는 이내 밝은 목소리로 마지막 인사를 날렸다.
– 또 할게요. 아니, 또 듣고 싶으면 언제든 전화는 주세요.
통화가 길어질수록 나는 너에게 했던 말을 돌리고 싶었다. 마지막. 그건 그렇게 쉽게 꺼낼 말이 아니었는데. 통화가 끊어진 핸드폰을 귀에서 내려놓자마자 우산을 들고 온 운전기사가 다 쓰셨냐며 물었다. 나는 유일한 연락 수단이 된 핸드폰을 주머니에 넣으며 말했다.
“돈은 드릴 테니 새로 사세요.”
여전히 내 세상은 어둡다. 그런데 하나뿐인 줄 알았던 길이 하나가 아니었다. 배우림이란 빛이 나타나 비추어주니 여러 갈래가 보였다. 여러 갈래 중 내 마음에 드는 것만을 선택해 걸어온 것을 하나라고 믿었다. 내가 쓰레기라고 비난한 숙부의 길이 내 것이 될 수도, 한계까지 몰아붙이는 걸 사랑이라고 믿는 할아버지의 길이 내 길이 될 수도 있었다.
과연 내 길은 어느 방향으로 나 있을까. 그 길 끝에 네가 있을까. 불 꺼진 아파트를 올려다보았다. 턱에서 흘러내린 빗방울이 핸드폰 위로 떨어졌다.
오늘은 몸을 씻을 기분이 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