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ckoo living in early spring RAW novel - Chapter 4
04. 우연한 밤에
“가벽을 여기 세우니까 달라 보인다.”
“어어, 이제 책상만 들여오면 얼추 된다.”
“이거 하느라 돈 좀 들였겠다?”
“모은 거 다 썼다.”
대학교 동기 김명윤은 학원에 놓은 전화기의 상태를 체크하고, 상가 창문에 붙일 스티커 색이 칙칙하나 바꾸라는 참견까지 했다. 상가 건물이 널찍한 것에 비해 월세가 싸다는 장점이 있지만 그 밖의 모든 것은 사비로 들여 해결해야 했다. 모아둔 돈을 다 썼지만 미련은 없었다. 몇 년간의 삽질 덕분에 내 학원이라고 부를 수 있는 곳을 차리게 됐으니 말이다. 갑질하는 원장 밑에서 모은 돈이 이렇게 쓰이는 것에 감격할 지경이었다.
“임용에 떨어져서 울고불고한 게 엊그제 같은데.”
“눈물만 뺐나. 그때 술 먹다가 빵꾸 뚫린 위가 아직도 회복이 안 된다, 회복이.”
“이제 3월 되면 아이들도 등록하겠네? 많이들 온대?”
“모른다. 온다고 확정한 애는 아직 다섯 명도 안 돼서. 점점 늘려가야지.”
마무리 청소를 하고 책상 들어 올 자리를 물걸레질로 닦아 뒀다. 명윤이가 준 화분을 들고 창문 앞에 두었다가, 원장실 책상으로 옮겨 보았다. 이것만, 이것만 하면서 학원을 떠나지 못하고 있자 문 앞에 있던 명윤이가 빽 성질을 냈다.
“가자, 가자. 너희 집에서 고기 사 준다며.”
“아니, 이게 나을까. 아니면 조금 더 옮길까.”
“몰라. 내일 와서 해. 어?”
“아, 책상 들어오면 전체적으로 손 좀 봐야 쓰겄다. 그치?”
“정신 차려라. 이러다가 애들 와도 계속 인테리어 하고 있을라.”
명윤이의 재촉에 못 이겨 학원을 나서면서도 마무리가 덜 된 자습실과 사물함을 어떻게 손봐야 좋을지 고민했다. 인테리어 얘기가 나왔으니 말인데 도배 맡긴 업체는 다른 색으로 잘못 페인트칠하고는 공짜로 수정을 해 주겠다더니 다음 날 연락이 두절 됐다. 혼자서 셀프로 어떻게든 해 보려다가 살이 3kg나 빠지고 아는 분에게 추천받은 업체를 통해 다시 칠했다. 가벽 세우는 사람도 비용이 더 드니 어쩌느니 하곤 중간에 도망을 쳐서 아빠 친구의 도움을 받았다. 약 몇 달간의 공사 끝에 만든 학원은 내 손길, 입김이 닿지 않은 곳이 없었다.
돈을 미리 다 받으면 공사 중에 얼마나 게을러지고 불평불만이 많아지는지 모른다. 아빠 말로는 시작할 때 반, 끝날 때 반을 주라고 했지만 협상 테이블에 앉으면 그 말이 차마 입에서 떨어지지 않는 거다. 왠지 사람 공짜로 부리는 기분도 나고, 서로 간 신뢰가 없는 것처럼 느껴져서 말이다.
“그런 걸 호구라고 하는 거야.”
“맞나. 왠지 전화도 점점 안 받드라.”
“그래도 끝났으니 망정이지. 온다는 애들도 있고. 너 윤정이도 같이 한다며.”
“응. 윤정이는 수학 맡아준대. 월급도 많이 못 준다고 했는데 벌써 미안하다.”
“잘 돼서 팍팍 올려주면 되지. 저기요, 배우림 씨. 그나저나 오늘 소주도 공짜인가요?”
“그럼. 많이 묵어. 나 전등 바꾸는 것도 도와주고. 너한테 신세 진 거 많아서 울 엄마 아빠도 고마워한다.”
“그래, 그래. 아, 우영이도 있으려나?”
“우리 공주님은 태권도 가서 늦게 온다.”
“이제 초등학교 들어가나?”
“응.”
명윤이와 서로 사는 얘기를 나누며 횡단보도를 건넜다. 도보로 15분 거리에 부모님이 운영하시는 돼지갈비집이 있었다. 엄마와 아빠가 퇴직금을 합쳐 차린 갈비집이 생각보다 더 잘 돼서 내년엔 상가 위층까지 빌려 가게를 확장하자고 말하던 중이었다. 오늘 명윤이도 데려간다고 미리 말을 해 두었으니 엄마와 아빠가 가게에 나오셨을 거다. 명윤이를 데려오면 배 터지게 먹여주겠다고 그랬으니 말이다.
공사 중인 학원에 짬짬이 들러 도움을 주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명윤이의 부모님이 학원을 운영하고 계셨기 때문에 여러 번 통화로 자문했다. 정작 명윤이는 사교육을 싫어해 교사가 되고 싶은 쪽이지만 자리가 가뭄에 콩 나듯 하는 게 이쪽 일의 문제였다.
“진짜 엿 같아. 고등학교 올라가니까 애들도 영악하고.”
명윤이의 불평 어린 목소리에 나의 고등학교 시절을 떠올렸다. 그때에 비하면 아이들이 스마트폰 때문에 험악해졌단 이야기가 많았지만 나는 그 시절 아이들과 지금의 아이들 사이에서 큰 차이점을 느낄 수 없었다. 언제나 그렇듯 영악한 아이들은 시대를 가리지 않고 영악하고, 순수한 아이들은 시대와 상관없이 순수했다.
영악하다, 라. 나는 봄비가 내리는 거리를 바라보며 생각에 빠졌다. 이제는 들춰보지 않는 추억은 봄만 되면 힘이 생겼다.
그 애는 어떻게 살고 있을까.
이십 대 후반이 되고, 서른을 목전에 두고도 나는 여전히 그 애의 이름을 떠올리면 가슴이 후벼 파이는 느낌이었다. 이래서 끝마무리가 좋지 않은 사람은 빨리 잊는 게 최선이었다. 속만 아프지, 내 속만.
“야, 잘생겼다?”
부모님의 가게 앞이었다. 우산에 시야가 가려 양복을 입은 남자의 하반신과 차에 타는 뒷모습만 보았다. 명윤이는 얼굴까지 본 모양인지 최고라며 엄지를 세워 보였다. 연예인 다녀간 것 아니냐고 김칫국 한 사발을 마시는 명윤이와 가게 안으로 들어갔다.
“엄마.”
“어.”
엄마와 아빠가 테이블 하나를 차지하고 앉아 심각한 표정으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직감적으로 사고가 벌어진 게 느껴졌다. 명윤이를 빈 테이블에 앉혀둔 다음 가방을 벗으며 엄마의 옆자리로 갔다.
“친구랑 술도 마실 거지?”
“엄마. 무슨 일 있죠.”
“일은.”
정신이 쑥 나간 표정으로 앞치마를 벗은 아빠는 선뜻 말하기를 주저했다. 엄마보다 공략하기 쉬운 아빠의 손을 꼭 잡았다. 하지만 아빠는 간판 바꾸듯이 활짝 웃는 얼굴로 바꾸어서 나를 안심시키려 들었다.
“아니, 우리 그 건물 주인이 바뀌었다고. 직접 찾아왔네?”
“주인이 바뀌어?”
천년만년 해 먹을 것처럼 난리를 피우던 건물 주인이 냉큼 팔고서 사라져 버렸다는 게 말이 되질 않았다. 새 주인이 나가라고 하면 꼼짝없이 그래야 했다. 심지어 계약 기간도 얼마 남지 않았는데 이제 막 자리를 잡아가는 갈비집에 이사는 치명적인 일이었다.
한가하게 고기를 먹을 분위기가 아니라서 마음 졸인 티를 냈다. 엄마나 아빠나 이럴 줄 알았다는 듯이 내 등을 쓰다듬었다.
“가서 친구랑 고기부터 먹어라. 설마 내쫒기야 하겠나. 내일 또 온다던데. 그때 잘 이야기하면 되지.”
“내일 다시 온다고 그랬어?”
고개를 끄덕인 엄마가 재운 갈비를 가져오기 위해 부엌으로 걸음 했다. 올해 운수가 좋으니 걱정 말라던 아빠는 물통과 밑반찬을 담으려고 일어섰다. 명윤이가 있는 자리로 돌아온 나는 영 고기 먹을 기분이 나지 않았다. 환기를 위해 열어 둔 문으로 봄의 시작을 알리는 빗줄기가 퉁퉁 튀어서 들어왔다. 대강 사정을 들은 명윤이가 수저를 놓으며 위로의 말을 건넸다.
“아직 나가라고 한 것도 아닌데 왜 그래.”
“그런 이야기 못 들었나. 장사 잘되면 주인이 한다고 이제 나가라 그러는 사람이 어디 한둘이가.”
“너무 비관적으로 생각하지 말자. 오히려 더 좋은 주인이 찾아왔을지 모르잖아.”
갈비 3인분을 들고 온 엄마도 걱정 같은 건 하나도 하지 말라고 말하며 웃었지만 나는 요즘 들어 사소한 일도 사소하게 지나치지 못했다. 왜 그런가 싶었더니 이유가 있었다.
봄이었다. 겨울이 언제 지나갔는지. 나는 날이 풀리고 꽃이 피기 시작하면, 특히 벚꽃이 피면 기분이 좋지 않았다. 벚꽃이 모조리 후두두 떨어지고 나서야 밖으로 다니는 나를 보며 사람들은 특이하다고 했었다. 봄을 맞는 게 아니라 봄을 떠나보내려고 사는 사람 같단다. 맞는 말이었다. 어느덧 고등학교를 졸업한 지 몇 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나는 그 후유증에 시달리고 있었다.
지나고 보니 그게 첫사랑인 줄 알았던, 그 첫 어설픔에 대한 후유증이었다.
***
오전에 택배가 온다는 소식에 학원 문을 열어두고 환기를 시켰다. 도착한다는 시간보다 10분 늦은 기사님들이 책상을 날라다 주고 배송료로 10만 원을 받아 갔다. 배송 온 책상을 재배치시키는 작업으로만 2시간을 썼다. 그러는 중에도 틈틈이 핸드폰을 만지작거리며 엄마의 연락이 오기를 기다렸다. 재계약이 안 되면 다른 곳으로 이사 가야 했다.
좋은 매물이 있을까 싶어서 검색을 해 보다가 마음이 심란해졌다. 막 단골이 많이 생기려는 차에 이런 일이 일어나니 하늘이 원망스러웠다. 엄마와 아빠 가게 근처에 학원을 차린 것도 도움이 필요할 때 언제든 들를 수 있게 하려던 것이었다.
오후쯤엔 수학 담당을 맡은 윤정이가 와서 같이 소독 작업을 하고 떠났다. 나는 학원에 마지막까지 남아 책장 속을 닦고 있었다. 걸레질에 쓸 정신이 없으니 같은 자리만 수십 번을 닦는 중이었다.
“아.”
결국 걸레를 바닥에 떨어트리고 나서야 이럴 게 아니라 엄마와 아빠의 가게로 가 보는 게 낫다는 생각이 들었다. 처음 가게를 차리고 장사가 어려웠을 때 부모님은 거무튀튀해진 안색으로 가게를 지켰다. 오픈 초기에는 문자 그대로 파리만 날린다는 말을 실감했다.
그러다 요 몇 년간 입소문을 타고 장사가 잘돼서 한시름 놓고 대출금도 갚는 중이었다. 대학을 다니는 내내 장학금을 타려고 노력했지만 일이 잘 안 풀려 실패했을 때도 부모님은 어떻게든 학비를 마련해 주셨다. 학원을 여는 데에 모아둔 돈도 다 쓴 이상 금전적인 도움은 어려웠다. 윤정이와 통장을 합쳐 차린 학원이었으니 갑자기 내 돈을 빼달라고 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막막한 마음을 안고 학원의 불을 껐다. 학원은 초반에 버티는 게 장땡이라는데 우리 학원은 첫 달부터 소수 정예로 시작했다. 전 학원에서 내 수업을 듣던 아이들 넷이 등록한다는 말에 학부모 면담까지 잡혔다. 입소문이 나기 전까지는 그 애들을 데리고 월세며 관리비며 내야 할 실정이었다.
차라리 무난히 임용을 통과해 교사라도 됐다면 부모님의 부담이 덜했을까. 말로는 내 선택을 존중한다고 하지만 모를 일이었다.
부디 새 건물 주인이 양심 바른 사람이라 나가라는 말만 하지 않았음 좋겠다. 날씨가 따듯해지니 학원 앞 가로수에 싹이 돋아났다. 갈비집에 인생을 건 부모님에게도 봄이 와 싹이 텄으면 좋겠다.
“오랜만에 전화하셨네.”
막 가게로 출발하려는데 핸드폰이 진동했다. 핸드폰에 뜬 이름을 보고 마음이 놓였다. 근래는 통 전화가 없어서 무슨 일이 생겼나 싶었다. 나를 낳아 준 친어머니는 당신이 내킬 때마다 전화를 걸어 내 목소리를 듣곤 했었다. 어차피 부모님 가게로 가는 길이니 잠깐 통화를 할까 싶었다.
“잘 지내셨어요? 요즘 전화가 없어서 걱정했는데.”
처음엔 아무 말도 안 하는 이유가 내게 마음이 상해서라고 생각했지만, 워낙 우리 사이에 주고받을 말이 없기에 말을 아끼는 걸 수도 있었다. 더더군다나 같이 살지 않겠다고 선언한 상태에서 가끔씩 이렇게 전화를 걸어 주는 것만으로도 나에게는 충분한 위안이 되었다. 우리 부모님 말고도 나를 생각해 주는 사람이 있다는 게 감사할 뿐이었다.
“저기, 저번에 다닌다던 학원은 그만뒀어요. 거기서 친구랑 같이 나와서 학원을 차렸거든요. 잘 될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응원해주시면 좋구요.”
친어머니의 존재를 확신한 것은 내 생일 때마다 보내지는 케이크와 꽃다발 때문이었다. 고맙다고 문자를 보냈지만 돌아오는 답은 없었다. 부모님은 매해 꽃과 케이크를 보내는 게 친어머니가 아닌 다른 사람일 거라고 생각하는 모양이지만 몰래 연락하고 있었다는 게 알려지면 곤란한지라 아는 분이라고 둘러대는 중이었다.
한창 공사 중인 전봇대를 올려다본 뒤 차도 쪽으로 가까이 붙어 걸었다. 인도에는 공사 중인 인부가 많아서 지나갈 틈이 없었다. 주위는 시끄럽겠다, 엄마 가게도 다 왔겠다, 나는 웃으며 전화 끊을 준비를 했다.
“그럼 다음에 또 전화 주세요. 학원 주소도 알려드릴 테니까 지나가다가 함 보셔도 좋구요.”
훈훈한 인사를 보내며 끊으려는 차였다. 갈비집 앞에 있는 새까만 승용차를 보자 기시감이 들었다. 통화 중인 남자의 뒷모습이 낯설지 않다 싶더니만 어제 가게에서 나와 차를 타고 떠난 그 남자였다.
저 남자가 바뀐 건물 주인이라는 직감이 들었다. 나는 킁킁거리며 카디건 냄새를 맡았다. 소독약 냄새가 심하지 않으니 합격이었다. 핸드폰을 가방에 넣어놓고 그에게 다가갔다. 남자도 전화가 끝났는지 천천히 팔을 내리는 중이었다. 헛기침 소리를 내며 그의 등 뒤에서 알짱거렸다. 그제야 뒤에 사람이 있다는 걸 인식한 남자가 등을 돌렸다.
“안녕하세요, 여기 왕점이 갈비집에 볼일 있으신 거 맞지요?”
최대한 상냥하게, 최대한 좋은 인상을 남겨야 했다. 젊은 나이에 건물 주인이 된 것을 보니 상속을 받았거나 운이 엄청 좋은 양반인가 보다. 요즘 트렌드다 뭐다 해서 음식점을 싹 밀고 프렌차이즈를 들이는 건물 주인이 엄청 많아졌다. 젊은 건물 주인의 등장은 보통 방 빼라는 소리를 몰고 올 것이 분명하기에 긴장을 놓칠 수 없었다.
“안녕하세요.”
어깨에 멘 에코백이 미끄러져 내려가 흙탕물 위로 떨어졌다. 날씨가 따듯해지니까 헛것이 보인다. 회색 양복바지에 하얀 셔츠, 푸른색 넥타이까지 맨 남자는 기억하는 것보다 키가 더 컸다. 앳된 티가 나던 눈은 성인으로 접어들면서부터 도마뱀 눈처럼 음험한 느낌이 주를 이뤘다. 칭찬은 아니지만 밥맛 떨어지게 차가운 눈동자가 제 손목에 찬 은색 시계와 잘 어울렸다. 달라지지 않은 게 하나 있다면 싹수 상실한 말을 툭 뱉던 저 입술뿐이었다.
그래, 장희태가 돌아왔다. 그것도 우리 왕점이 갈비집의 운명을 쥐고서 말이다.
“네. 볼일 있는데요.”
아, 목소리는 마음에 든다. 예전보다 훨씬 친절하고 정중하게 들렸다. 그래도, 그래봤자 장희태였다. 쌍심지 켜고 다시는 연락하지 말자던, 그래놓고 여름 방학이 시작하자마자 외국으로 날라버린 나쁜 놈이었다. 저쪽은 나를 모르는 게 아니라 모르는 척하는 거였다. 아니면, 세월이 세월이니만큼 나 같은 건 잊었을 수도 있었다. 하긴 우리가 동창인 양 뭐 해 먹고 사냐고 물을 나이는 지났긴 했다.
“건물 문제 때문에 오셨어요?”
“네.”
“저희 부모님 만나서 얘기는 했구요?”
“아니요.”
지금 막 들어가려던 참인지 그는 재킷을 팔에 걸치고 있었다. 좌우지간 들어가 얘기하자고 말하려는 순간 그가 주머니서 차 키를 꺼내 시동을 걸었다. 장희태는 삐빅, 소리와 함께 시동 걸린 차의 조수석 문을 열어 주며 말했다.
“내가 시간이 없어서. 저녁이라도 먹으며 얘기하는 게 어떨까 싶은데.”
“저녁이요?”
말하는 본새를 보니 나를 까먹은 모양이었다. 눈 뜨고 낮잠을 자는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현실성 없는 얘기였다. 그러나 내가 타든 말든 관심 없는 것처럼 제 시계를 보는 장희태 때문에 오기가 생겼다.
에코백을 챙겨 들고 조수석에 올라타자마자 장희태가 기다린 듯이 운전석 문을 열었다. 차 안에 배인 꽃 냄새를 맡자마자 속이 쓰라렸다. 향수로 머리 감는 게 아닌 이상 사람 몸에서 이만큼 꽃 냄새를 자아낼 수 있나 싶었다.
차에 탄 장희태가 유연한 움직임으로 차를 빼내어 차도로 들어갈 즈음 나는 땀이 삐질 나기 시작했다. 설마 이놈이 옛날 일에 앙심을 품고 건물을 사 들인 건 아니겠지. 장희태의 집이 뭐 하는지는 몰라도 잘 사는 놈이었다. 그 나이에 벌써 기사가 딸린 차로 등하교하는 놈이었으니까 말이다.
경고음이 울려 안전벨트를 메는 사이 차가 신호등 앞에 멈추었다. 밖에서 사 먹는 건, 아니, 제 기준에서 싸구려라고 느껴지는 건 더럽다던 놈이었으니 식당도 고급만 다니려나 싶다.
장희태는 핸들에 손을 올리고 한 손으로는 제 입술을 만지고 있었다. 신호를 기다리는 동안 관찰을 끝낸 나는 흙탕물 색으로 변한 가방을 다리 사이에 두었다.
“저기, 지금 어디 가는 건데요.”
“식사하러요.”
“그럼 식당은 제가 정해도 되죠?”
의외의 제안이었는지 장희태가 나를 바라보곤 슬며시 미소를 지었다. 자기는 모르겠지만 저렇게 미소 비슷한 것만 지어도 사람 인상이 달라졌다.
“곱창집 좋은 데 아는데.”
일부러 그가 경악할 만한 것을 골랐다. 길거리에서 떡볶이도 못 먹는 놈이 곱창을 먹을 리가 없었다. 하지만 장희태는 눈 한번 깜빡이지 않고 거짓말을 했다.
“주소는요.”
해 보자 이거지. 연기를 하는 거라면 그 가면을 벗겨 주겠다. 나는 바로 앞에 있는 골목길을 손톱으로 긁는 시늉 하며 가리켰다.
“저어어쪽으로 들어가서 차 세우고 걸어가면 되거든요?”
말없이 깜빡이를 켠 장희태가 핸들을 돌렸다. 반짝이는 네온사인으로 밤거리를 밝힌 골목길에 들어가 차를 세웠다. 주차를 마치고 내린 장희태를 따라서 나도 안전벨트를 끌렀다. 내가 문을 여는 것과 장희태가 문을 열어 주는 사건이 동시에 일어났다. 그동안 사람이 바꿔치기 당했는지 이상한 매너를 익혔다.
나는 가방에서 지갑과 핸드폰만 챙기고 내렸다. 재킷을 가지고 내린 장희태가 내 뒤를 쫓듯이 걸어왔다. 싫은 내색도 안 비추는 것을 보니 개과천선했나 싶었지만, 막상 시키면 젓가락으로 휘적거리기만 하지 먹지도 않을 것이었다. 이게 그리움일 리 없었다. 황당함, 어이없음, 불안함, 그런 것이었다.
저녁 시간에 붐비는 곱창집은 빈자리가 겨우 하나뿐이었다. 메뉴판에 머리를 들이받기 좋은 자리에 앉아 장희태가 오기를 기다렸다. 가게 내부를 둘러보며 들어온 그는 앉자마자 메뉴판부터 들여다보았다. 저 얼굴은 기억 속 시간표 보는 얼굴과 똑같았다.
“주문하실래요?”
“네. 저희 곱창 2인분 주세요.”
“술은요.”
장희태와 술을 나누어 마실 생각도 없거니와 얘가 여기서 소주나 마시고 있을 이미지는 아니었다. 그러나 장희태는 내 예상을 깨듯이 냉장고 쪽을 바라보며 말했다.
“소주 두 병이요.”
“예.”
바쁜 일이 있는 양 연신 핸드폰 화면을 보던 장희태는 메시지 몇 개를 보낸 뒤 전원을 꺼 두었다. 어른이 된 지금도 밖에서 무얼 먹는 걸 더럽다고 생각하는지. 멍청하게 웃는다던 나하고 세입자 관계로 만나서 기분이 나쁠지. 사적으로든 공적으로든 이 만남을 파하고 싶은 이유는 많았다.
“저기.”
“먹고 얘기하는 게 어때요.”
직원이 미리 구운 곱창을 들고 나타났다. 불판 위에 올리자마자 지글지글 빗방울 떨어지는 소리가 났다. 직원이 나서서 잘라 주고 구워 주는 동안 우리는 단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나의 경우에는 방 빼라면 빼야 하는 을이 된 현실을 깨달아서였고, 그의 경우는 내가 알 수 없는 것이었다.
소년은 어느새 내가 짐작할 수 없는 어른으로 자라나 있었다. 스물 후반. 조금만 더 있으면 서른. 고등학교 졸업식이 까마득할 나이에 나타난 과거의 편린은 내게 달가운 것이 아니었다. 날이 따듯해졌다고 가게의 히터를 끄고 문을 열어두었다. 가게 안으로 들어오는 바람에는 겨울의 힘이 아주 미약하게 남아 있었다. 저녁이 되면 곧잘 쌀쌀해지지만 못 견딜 정도는 아니었다.
어느 정도 곱창이 알맞게 익자 직원은 불을 끄고 다른 테이블로 떠나갔다. 다 구워진 곱창을 젓가락으로 집어 든 나는 참기름에 찍어서 입 안에 넣었다. 내가 먹는 것을 유심히 지켜보던 장희태는 따라 하듯이 곱창 하나를 집어 기름장에 찍었다. 입으로 가기까지는 한참이 걸렸지만, 휴지에 싸서 뱉을까 싶어 지켜보고 있으니 먹기는 먹는다. 나는 손도 대지 않으려고 했던 소주병을 집어 들었다.
“입에 맞으신지 모르겠네.”
내 잔에 소주를 따르고 병을 내려놓자마자 장희태가 제 잔을 내밀었다. 저녁 분위기에 취해 시끄러운 사람들 속에서 장희태와 나만이 동떨어져 있었다. 술을 한 방울도 마시지 않은 맨정신으로 그의 잔에 술을 가득 따랐다.
새삼 이 느낌을 다시 느끼게 될 줄은 몰랐다. 교복을 입고 다니던 아이들이 모여 술을 마실 때의 어색함 말이다. 그때의 느낌은 이 애들과 정말 술을 마셔도 되는 것인가 하는 감상이었다. 지금도 그때와 똑같이 정말 이 애와 술을 마실 줄 몰랐기에 드는 감상이 있었다. 신기하면서 낯설었다.
가볍게 술잔을 부딪친 우리는 가게의 소음을 담은 소주를 입 안에 털어 넣었다.
“차 가져온 건 어쩌고요.”
“사람 부르면 됩니다.”
간단하게 말을 끝낸 그가 이번엔 병을 가져가서 제 잔을 채웠다. 나는 더 두면 탈 것 같은 곱창을 골라내 그의 앞접시에 놓아 주었다. 문득 그의 날카로운 콧날에 안경 자국이 보였다. 시력이 나쁘지 않음에도 오래 책을 보면 눈이 피로하다는 이유로 안경을 쓰던 남자였다.
앞접시에 놓아 준 곱창을 질겅질겅 맛없게도 씹는다. 무리하는 장희태를 보며 나는 집게를 놓았다.
“우리 갈비집. 나가야 돼요?”
술을 몇 잔 마시지도 않았는데 벌써 취기가 도는 기분이었다. 고등학교 시절 복수를 이 나이 먹고 하고 싶은 거냐고 묻고 싶었지만 서로 아는 척 안 하기로 했으니 그건 말하지 않는다. 술잔을 비운 장희태는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나가지 않아도 된다고요?”
“네.”
“그럼 왜 오셨는데?”
“너 보러.”
소주잔을 든 손등이 움찔거렸다. 연기를 그만둔 장희태는 반찬으로 나온 칼칼한 부추무침을 아주 소량 집어서 먹고 있었다. 입이 짰는지 초록색 소주병을 빼앗아 든 그는 두 개의 빈 잔을 술로 채웠다.
“사귀는 사람은. 있어?”
소주잔을 입술에 댄 장희태가 손목을 꺾듯이 기울였다. 우연히 만나서 반가운 거라면 이해하겠으나 그와 나는 반가울 사이도 아니었다. 나는 그가 나를 기억하고 있었다는 것에 큰 의미를 두려고 하지 않았다.
“있어.”
가볍게 소주를 목으로 넘긴 그가 제 입술을 만지작거렸다. 사실 남자친구 같은 건 없었다. 스무 살 때 학교 선배를 만나보기는 했으나 일 년도 안 돼서 헤어지고 그 이후로는 임용 고시에 매달렸다. 오로지 먹고 살 생각밖에 없어서 한가하게 연애나 하고 있을 짬이 없었다. 갈비집 일로 바쁜 부모님 대신 우영이의 학교생활에 관심을 갖는 것도 내 몫이었다.
하지만 같은 사정이 있는 친구들은 대학 4년 내내 남자친구를 잘만 사귀었다. 오히려 공부에 목을 매고 사는 내 쪽을 이상하게 봤다. 그래서 웬만해선 남자친구가 있다고 말하는 게 사회 생활하기 편했지만 장희태에게 있다고 말한 것은 그런 이유에서가 아니었다.
무언가 창피했다. 또는 자존심이 상했다. 확실한 건 우리가 했던 그런 연애도 아닌 것들에 내가 오늘날까지 묶여 있다고 생각할까 봐 그랬다.
“어떤 사람인지 궁금하네.”
있지도 않은 연인 이야기를 하는 게 불편해진 나는 지갑을 들고 일어날 준비를 했다.
“이사 가라고 말하는 거 아니면, 괜찮다. 뭐, 보증금 올리거나 월세를 올려도 되고. 그건 네 맘이니까.”
“한번 보고 싶은데. 네 남자친구란 사람.”
“네가 왜.”
“앉아. 아직 남았잖아.”
소주병을 들고 흔든 장희태가 제 빈 잔에 술을 따랐다. 몇 년 만에 만나 이렇게 술잔을 기울이리라고는 생각지 못했지만, 저쪽은 아무렇지 않은데 나 혼자 씩씩거리는 모양새가 썩 보기 좋지 않았다.
속이 말이 아닌 나는 술만 비우고 가자는 마음으로 다시 앉았다. 하기야. 과거에 어린 애들끼리 그랬던 일로 아직까지 얼굴을 붉히는 건 나밖에 없긴 했다. 어쩌다가 동창들을 만나도 장희태가 화두에 오르면 나 혼자 끼지 못하고 겉돌았다.
“우리는 너희 사귀는 줄 알았는데.”
“거의 붙어 다녔잖아.”
그러면 나는 가장 잘 먹히는, 성적이라는 변명을 방패로 썼다.
“우리 전교 1, 2등 아니었나. 그래서 그랬지, 뭐.”
“그런가?”
자리에 없는 사람에 관한 이야기는 오래 흥미를 끌지 못해 보통 한두 번 안줏거리로 삼고 끝났지만, 장희태의 존재감은 워낙 확실한 터라 생각보다 자주 입에 오르내리곤 했었다. 그래서인지 원래도 뜸하게 참석하던 동창회에 참석 안 한 지 2년이 넘었다. 장희태의 영향이 하나도 없다곤 못하겠다.
“너는. 애인 있나.”
“없어.”
단호한 장희태의 말이 끝나고 나는 식어가는 곱창을 집어 먹었다. 씹히는 식감이 꼭 껌 같았다. 식으니 맛이 없었다.
“우리 부모님이 운영하는 갈비집인 거. 알고 샀나.”
마지막 남은 의문, 과연 이 만남이 우연인지 우연이 아닌지였다. 그러나 소주로 가볍게 입을 헹군 장희태는 고개를 흔들흔들 저었다.
“몰랐는데.”
“그럼 왜 나 아는 체 안 했는데. 떡하니 얼굴까지 알고 있으면서.”
그 말에 장희태가 피식 웃으면서 술잔을 내려놓았다. 뺨이 불긋한 게 벌써 취한 건가 싶었다.
“너도 나 아는 체 안 했잖아.”
“너…….”
취했다. 입꼬리가 사정없이 위로 방긋방긋 솟았다. 한 병도 다 안 깠는데 가 버린 그를 보며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모르겠다. 메뉴판에 머리를 기댄 그가 내리깐 눈으로 바닥을 보고 있었다.
그 앞에 앉아서 혼자 소주를 까게 된 나는 장희태를 눈요깃거리 삼았다. 센 척하더니 소주 한 병에 가 버리게 된 것이 어이없지만 겉모양은 나름 봐 줄만 했었다. 가슴이랑 어깨가 더 넓어졌다. 옛날에도 생긴 거는 어디 가서 빠지지 않았다. 심장이 뛰는 건 설레서가 아니라 옛날의 일 때문에 생긴 화병일 것이다.
대학교를 졸업하고 사회 초년생 시기도 무사히 넘겨 이젠 안정을 찾아가는 시기였다. 중학교 때부터 고등학교 때까지 거의 1등을 놓친 적이 없었다. 세상이 만만하다고 볼 수 있었다. 고등학교 교사가 되고 싶었던 것도 내가 가장 활개 치고 다녔던 것이 학교란 장소였기 때문이었다.
선생님들의 인정, 학부모들의 선망, 아이들의 부러움까지 한 몸에 받았던 내가 고작 임용고시라는 관문 앞에서 세상을 다시 봤다. 1등은 너무나도 많았고, 그 많은 1등 중에서도 특출난 1등을 가려내야 했다. 암만 월급쟁이가 잘 벌어봐야 남한테 월급 주는 사람이 제일이라는 것도 일하면서 알게 됐다. 아무 일 안 하고도 통장에 돈이 꽂히는 사람은 전교 1등을 했다고 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그 수많은 과정에서 무릎이 깨지고 다쳤다. 학원을 나온 뒤 동기와 동업을 선택하기까지 무수한 고민과 다툼도 있었다. 그런데 학원도 차렸겠다, 고개 좀 펴고 사나 싶을 즈음 또 다른 폭탄이 나타났다.
장희태는 목이 조이는 듯 넥타이를 풀었다. 술기운이 가신 얼굴을 기울여 치대듯 쳐다봤다. 어묵탕을 가지고 온 직원이 우리 사이에 냄비를 두고 떠나갔다. 식어서 질겨진 곱창 대신 어묵 국물을 떠먹었다. 간간한 어묵 국물 맛은 소주로 씻어냈다.
술기운이 도니 사형 선고를 받은 감정이 죄 뛰쳐나왔다. 좋은 감정뿐만이 아니라 원망의 고목에서 싹을 틔운 감정들도 탈옥하는 중이었다.
지독하고 질긴 인연으로 건물 주인이 되어 나타난 그를 질리는 양 바라보았다.
“내가 다시는 보지 말자고 안 했나.”
엄마, 아빠 가게에 문제가 생긴 게 아니면 더 만날 이유가 없었다. 겨우 먹고 살 만한 때에 나타난 폭탄을 1순위로 제거하고 싶었다. 풀린 눈을 윙크하듯 찡그린 장희태가 한쪽 입꼬리를 비틀었다.
“그랬지.”
담백한 그의 말에 나는 속이 베베 꼬였다.
“네 이렇게 나타난 거 내가 우연이라고 봐야 되나? 새삼 이제 와 나랑 할 얘기가 뭐 있다고 이 난리인데.”
“할 얘기는 없고. 동창으로서 네가 보고 싶기도 했고.”
동창으로서. 동창으로서란다. 한 번도 동창회 비슷한 것도 참석한 적 없는 놈이 말이다. 장희태가 온다는 얘기에 이제나 올까 저제나 올까 은근히 술집 문간 쪽을 바라보던 이십 대 초반의 내가 가여웠다.
“나쁜 새끼.”
소주로 찰랑이는 잔을 죽 마셔버리자 목이 화해지는 게 느껴졌다.
“여자로서는 너만 한 사람이 없다 싶기도 했고.”
쓴맛을 없애기 위해 국물을 한술 뜨다가 고장이 나버렸다. 나는 눈을 부릅떴으나 그래봤자 술에 취해서 위협적이지도 않을 거다. 속지 마라. 쟤는 이제 보니 저런 말 하는 게 습관이었다. 스트레스 풀자고 키스하는 놈의 진심 같은 건 알고 싶지도 않았다.
“또 나 같고 놀지 마라. 이제 안 속는다.”
저랬던 적이 어디 한두 번이래야지. 아무것도 모르던 열여덟에는 통할지 모르겠으나 지금에서는 아니다. 남자들이 생각 없이 하는 말이 어떤 결과를 낳는지 너무도 수많은 사례를 통해 보았었다. 더욱이 그가 내 마음을 가지고 놀았다는 걸 알게 된 후에는 말이다. 장희태는 소주잔을 엄지로 가벼이 만지작거리며 말했다.
“김종선이랑은. 연락해?”
김종선. 장희태가 유학 가고 나서부터는 그와 말 한 마디 섞지 않았다. 종선이에게는 미안하지만 그가 장희태가 남기고 간 유산처럼 느껴졌다. 필사적으로 그와 관계된 것들을 전부 피하고 다녔으니 종선이에겐 기회가 된다면 사과하고 싶었다.
“내가 왜.”
싸늘한 미소를 머금은 그가 느슨히 풀어진 넥타이를 손에 감아 끌렀다.
“다행이네.”
“뭐가.”
“네 인간관계에서 제거된 게 나만이 아니잖아. 기왕 좆 되려면 다 같이 좆 되는 게 낫지.”
봄이 오니 마음도 분갈이하고 씨를 뿌리나 보다. 오래전 짝사랑했던 김종선을 삽으로 퍼낸 자리엔 한겨울에도 푸르를 독종이 자리 잡았다. 봄이 오나 싶었지만 그 봄은 너무도 이르고, 너무도 차가워 나 같은 유약한 사람은 그 안에서 살 수 없었다.
나는 나를 싫어하는 사람에게 약했다. 그래서 그들을 피해 다니려고 악을 쓰는 반면 조건 없는 사랑을 약조한 사람에겐 충견처럼 꼬리를 흔들었다.
대학에 입학하자마자 사귀었던 선배도 나를 좋아한다고 하기에 관심이 갔었다. 아니, 마음이 편했다. 이리 재고 저리 재지 않아도 나를 좋아한다고 온몸으로 티를 내는 사람들이 편하고 좋았다. 장희태는 너무도 어려운 사람이었다. 여전히 달라지지 않았다.
“참 너는…….”
스무 살 초반에 그를 만나서 하고 싶었던 것은, 그저, 갑자기 사라져 버린 그의 안부가 궁금해서였다. 그런데 그때 만나지 않기를 잘했다. 어느 정도 어른의 대열에 들어섰다고 생각한 지금도 나는 장희태가 아팠다.
끊긴 내 말을 잠자코 기다리던 장희태는 제 뺨처럼 붉어진 입술에 술잔을 기울였다. 술값이 금값인 건 아는지 한 방울도 남김없이 해치웠다.
“질투가 덜 나서 다행인 줄도 알고. 여기서 더했으면 잘 먹고 잘살고 있는 김종선만 불쌍해질 뻔했어.”
“엉뚱한 소리 하는 건 여전하다. 걔랑 학교 다닐 때도 말 몇 번 안 해봤는데…….”
술기운이 오르는 듯 제 얼굴을 감싸 쥔 장희태의 귀가 분홍색이었다. 쟤는 술에 취하면 분홍색으로 변하는구나.
“오래 얼굴 볼 사이도 아니고. 이만했음 가자. 여긴 내가 계산할게.”
손을 천천히 내린 장희태가 눈을 깜빡거렸다. 제대로 취한 것 같아 카운터로 가서 카드를 꺼냈다.
“여기, 대리 불러주죠.”
“예, 예. 잠깐만 기다리세요.”
계산을 마친 사장님이 영수증을 뽑으려는 차였다. 뒤에서 향긋한 봄 내음이 훅 불어왔다. 그의 가슴팍이 내 등에 툭 기대왔다. 아니, 어쩌면 쓰러졌다고 표현하는 게 좋을지도 몰랐다. 무거운 몸에서 벗어나고자 자연스레 그의 팔 하나를 내 어깨에 둘렀다.
“누가 보면 한 박스는 거덜 낸 줄 알겠다.”
찬바람을 쐬면 정신이 돌아올까 싶어 그를 데리고 밖으로 나갔다. 몸을 가누지 못하는 것에 비해 걷기는 잘 걷는다. 취한 척하는 것인가 의심했지만 장희태가 그럴 만한 위트도 없는 사람이라는 걸 누구보다 잘 알았다.
“대리 부르셨어요?”
“네.”
대리 기사와 주차해 둔 차 앞으로 걸어가는 동안 그의 팔을 흔들었다. 장희태는 감은 눈을 슬몃슬몃 뜨며 반응을 보였다.
“차 키 어딨는데.”
“주머니.”
“꺼내라.”
“꺼내 봐.”
어금니를 꽉 깨물고 그의 바지 주머니 속으로 천천히 손을 넣었다. 가장 가까운 오른쪽 주머니에 손을 넣었지만 아무것도 잡히는 것이 없었다. 면 하나를 사이에 두고 그의 허벅지를 만지는 기분이라 유쾌하진 않았다.
“그 반대편에 있네. 꺼내라, 좀.”
천천히 손을 내린 장희태가 이번에는 아예 두 팔을 내 어깨에, 제 턱을 내 머리통에 두었다. 잘못하면 포옹이라도 할 것 같은 자세에 뒤로 물러날까 싶었다. 뒤에서 가래침을 뱉는 대리 기사의 눈치가 보여서 그의 왼쪽 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잡히는 게 있자마자 곧바로 꺼내서 오픈 버튼을 눌렀다. 대리 기사는 콧노래를 부르며 운전석으로 가고 나는 뒷좌석을 열어 그의 몸을 천천히 밀어 넣었다.
“주소는요.”
기사님이 창문을 열고 고개를 빼꼼 내밀었다. 나는 곯아떨어진 장희태를 보고 한숨이 나왔다. 게다가 힘은 어찌나 센지 내 카디건을 잡은 손은 떼어낼 수도 없다. 하는 수 없이 장희태의 옆자리에 올라탔다.
“어디로 가요.”
대리 기사가 백미러로 힐끔거리는 게 느껴졌다. 모텔이라도 데려가야 하나 싶은 차에 장희태가 폭 안기듯 기대어왔다. 그의 머리카락에서 나는 샴푸 향에 마음이 불편해졌다. 장희태는 내 어깨를 제 것인 양 빌려 쓰며 작게 중얼거렸다.
“범동로 128.”
자는 와중에 귀는 밝다. 나는 그의 말을 앵무새처럼 따라 했다.
“범동로 128이요.”
예에, 대답하고 대리 기사는 운전대를 잡았다. 곱창에 소주 한 잔으로 시작한 만남이 어쩌다가 여기까지 왔는지 모르겠다. 그래. 이대로 내버려 두면 대리비 계산도 못 할 것 같아서 따라 나온 것뿐이었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는 측은지심이 발휘됐나 보다.
창밖 구경을 하는데 목련이 벌써 피었다. 보신각 종소리가 울린 지 얼마나 됐다고 꽃 피는 봄이었다. 올해도 온 지도 모르게 지나갔으면 좋겠다.
“애인이에요?”
“네?”
“아니, 옆에. 남자친구가 많이 취해 보여서.”
애인은 무슨. 아니라고 말하려는 차에 몸을 뒤집은 장희태의 손이 내 허리에 둘러졌다. 아예 나를 죽부인으로 쓰려고 하는 행태에 짜증이 났다. 밀어내려고 안간힘을 썼으나 술에 취하면서 힘도 세진 건지 꿈쩍도 안 했다.
“몇 분 남았어요?”
“차만 안 막히면 한 15분 걸릴 것 같은데요.”
“15분…….”
“그래도 여기 대교만 건너면 금방이에요.”
모양새가 술 취한 남자친구를 데려다주는 여자친구처럼 돼 버렸다. 뭐 하나 예쁜 게 없는 놈이라 대리비까지 내주고 싶진 않았다. 그의 재킷 주머니를 뒤져 까만 가죽 지갑을 찾아내었다. 대리 기사의 말대로 대교를 지나자 목적지까지는 교통 체증 없이 수월하게 들어가고 있었다.
“여기 맞죠?”
“네.”
아파트 단지로 들어서는데 주차 차단기가 자동으로 올라갔다. 입주민 외 출입 금지라고 적혀있는 걸로 봐선 이미 등록해 둔 차량이 맞나 보다. 사람 마음이 참. 살 것도 아니면서 아파트 평수나 집값을 가늠해 보게 된다. 좋은 데도 사네. 깔끔한 단지 내부를 보며 억울한 생각이 들었다. 신도 불공평했다. 뭐 하나는 얘한테 주지 않아야지 나도 신앙심이 생길 것 아닌가.
“도착했습니다.”
“아, 여기요.”
“예.”
망설임 없이 그의 지갑에서 5만 원짜리 지폐 세 장을 팍팍 꺼내었다.
“잔돈 안 주셔도 돼요.”
“아, 아이고. 감사합니다.”
차에서 내린 대리 기사가 횡재했다는 얼굴로 떠나갔다. 대리비 문제는 해결했으니 남은 관건은 장희태를 어떻게 들어서 옮기느냐였다. 다른 사람을 부르지 않는 이상 업고 가는 건 불가능했다. 시도를 해 보려고 해도 나는 거의 그의 품에 덮여진 수준이었다.
“일어나라. 이제 집 가야 된다고.”
한 10분을 그러고 있었을까. 잠자리가 불편한지 눈을 뜬 장희태는 흐릿한 정신임에도 지하 주차장에 온 것을 알아차렸다.
“일어났으면 나와라.”
장희태가 깨어난 틈을 타서 몸을 굴려 빠져나갔다. 뒷문을 열어 준 나는 아직 잠이 덜 깬 장희태를 줄다리기하듯 잡아당겼다.
“나와.”
웬일로 고분고분하게 말을 잘 듣는 장희태가 비틀거리며 차 밖으로 빠져나왔다. 비서가 된 기분에 마음이 옹졸해졌지만 여기까지 했으면 사람으로서의 도리는 다 했다 싶었다. 그런데 그가 휘청거리며 다시 내 어깨에 손을 둘렀다. 뿌리칠까 싶었는데 주차장 바닥이 미끄러웠다. 혹시 머리를 다칠까 싶어 엘리베이터까지는 데려다줄 마음이 생겼다.
그래, 어차피 건물 주인이 된 이상 나쁘게 보이면 안 된다. 봉사하는 마음으로 그를 지하 주차장에 있는 엘리베이터까지 데려갔다.
아까부터 느낀 것이지만 술에 취해도 참 바르게 걷는다. 부축하랴. 엘리베이터 잡으랴. 열림 버튼을 누른 나는 꺼져 가는 목소리로 물었다.
“몇 층인데.”
장희태는 술 취한 티를 내지 않으려는 것처럼 또박또박 발음했다.
“17층.”
“높이도 산다, 씨.”
엘리베이터 안으로 들어가 17층을 누르자마자 엄청난 속도로 엘리베이터가 올라가기 시작했다. 재개발을 기다리는 우리 집 엘리베이터랑 속도가 달랐다. 그것조차 은근히 짜증이 나 장희태의 팔을 아무도 모르게 치웠다. 엘리베이터 벽에 등을 기대고 선 장희태의 모습을 보니 내일 숙취로 꽤나 고생 좀 하겠다. 집 앞까지 데려다줬으니 나중에 딴소리할 리도 없고.
이만큼 나이를 먹으면 모든 일에 무던해질 줄 알았으나 나는 나이에 상관없이 모든 일을 힘겹게 받아들이고 힘겹게 넘어가고 있었다. 17층에 도착하자마자 마음이 놓였다. 장희태도 어느 정도 정신을 차린 것처럼 핸드폰을 꺼내 현관문 앞까지 걸어갔다.
휴대폰을 대자마자 도어락이 삐로롱 거리며 열렸다. 들어가는 것까지 보고 떠나기 위해 엘리베이터를 잡아두고 있었다.
“들렀다 가.”
“아니다. 술 깼지?”
“그럼 도와줘.”
쟤 입에서 도와달라는 말이 나오다니. 무심코 엘리베이터 버튼에서 손을 떼었다. 곤란한 상황이 생겼나 싶어 현관문 앞으로 걸어갔다. 들어올 수 있게 열어둔 문으로 예의상 발만 들였다.
“뭐를 도와.”
그때 나의 어깨를 감싸 안은 장희태가 문을 쾅 닫았다. 신발장 앞까지 들어오게 된 나는 손바닥에 난 땀을 청바지에 닦았다. 남자의 집에 단둘이 있게 된 것도 오랜만이었다.
집 안으로 들어가지 않고 버티고 서는 장희태 때문에 쭈뼛쭈뼛 신발을 벗고 안으로 들어갔다. 깔끔 떠는 성격이 어디 가진 않았는지 바닥에 머리카락 한 올도 없었다. 하얀 실내화로 갈아신고 있는 장희태를 돌아보았다.
“뭐 도와달라고.”
말없이 안으로 들어온 장희태는 부엌으로 갔다. 집이 넓어서 그런지 부엌으로 가 냉장고를 열기까지 한참 걸리는 느낌이었다. 부엌으로 따라 들어가 훔쳐본 냉장고 안에는 생수병과 샐러드밖에 보이지 않았다. 저걸 먹고 힘이 나긴 하는 것인지 궁금했지만 개인 취향이니 캐묻지 않았다. 목의 단추까지 끄른 장희태는 식탁의 의자를 끌고 와 앉았다. 냉장고에서 꺼낸 물병을 내 쪽으로 스윽 밀었다.
“이거 뭐.”
“열어 줘.”
“허.”
예전부터 느낀 거지만 부잣집 도련님이라 그런지 남 부리는 게 자연스러웠다. 명윤이 말대로 남한테 싫은 소리 못 하는 내가 호구였다. 나는 단숨에 물병의 뚜껑을 열어 그에게 내밀었다. 받아 드는 그의 손이 방향을 잘못 잡았는지 내 손등을 움켰다.
“거기 말고 병이라고. 병을 잡아라.”
물병 윗부분으로 올라가 주둥이를 움킨 장희태가 천천히 고개를 젖혀 물을 마셨다. 만족스러운 양 그의 목젖이 꿈틀거렸다. 양껏 수분을 채운 장희태는 제 손등으로 입술을 닦은 뒤 비틀비틀 일어났다.
“나 간다.”
갈 시간이 됐다. 아니, 떠날 타이밍이었다. 앞으로 나는 승승장구할 학원 일에만 집중해야 한다. 부모님이랑 우영이도 포함해서 말이다. 카디건 단추를 여미며 거실로 나가는데 실바람 같은 손길이 내 손목을 잡았다.
“배우림.”
뿌리칠 수 있을 만큼 가벼운 손길이었음에도 나는 움직이지 못했다. 그의 입에서 나온 내 이름이 이토록 낯설 수 없었다. 장희태의 발이 한 발짝 더 다가오는 소리가 들렸다. 팔뚝을 잡는 손이나 위압감을 주는 큰 키가 헤어진 시간을 어림잡게 했다. 못 본 사이 청년이 됐다.
“너는, 안 보고 싶었어?”
그에게서 도망치기 위해 몸부림치듯 어깨를 털었다. 가볍게 떨어진 손길을 느끼며 뒤돌아보았다. 술기운 없이 말짱한 그의 눈동자를 보니 또 속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말했지. 나, 너 싫다고. 다신 보지 말자고. 말 잘 듣던데? 동창회건 뭐건 아무것도 안 다니면서 잘 피해 다니데. 근데 왜 이제 와서 아는 척일까.”
“아는 척을 해야 할 때니까.”
“왜.”
“네가 보고 싶어졌어.”
안 된다. 엄마를, 아빠를 떠올려야 한다. 그 두 분에게 내가 얼마나 소중하고 자랑스러운 딸인지, 우영이에게 얼마나 믿음직한 언니인지를 생각해야 한다. 이놈은 내 세상에서 전과자였다. 또 같은 일을 반복할 가능성이 농후했다.
“보고 싶었냐고?”
장희태에게서 한 걸음 물러나며 싸늘하게 말했다.
“한 번도. 단 한 번도 없었다.”
“그런 것치고 한 번에 알아보던데.”
“쫌!”
몇 년 만에 다시 만난 장희태에게 발이 빠져 휘둘리리라곤 상상조차 해 본 적 없었다. 양아치 같은 놈. 나쁜 놈. 우는 꼴을 보여 주고 싶지 않아 현관문 쪽으로 무작정 달려가는데 쫓아오는 발소리가 들렸다. 팔뚝이 잡히는 느낌이 들자마자 뒤돌아 그의 가슴팍을 퍽 때렸다.
“놔라!”
참았던 눈물이 터졌다. 나도 내가 왜 우는지 모르는데 장희태라고 별 수 있겠나 싶었다. 염치없는 그를 위한 눈물 한 방울이 툭 떨어져 뺨 위를 굴러갔다. 밤새 대치할 기세던 장희태가 손의 힘을 풀었다. 다급히 현관으로 달려 나가 신발을 신었다. 이번엔 잡지 않는다.
엘리베이터를 기다리지 못하고 비상계단을 이용했다. 혹시나 멍청하게 보일까 봐 남자 앞에선 웃지도 않았었다. 첫 만남 때 트로트 의상을 입고 있었던 게 바보처럼 보였을까 봐 집에서든 밖이서든 그 좋아하던 트로트를 부르지 않았다. 부모님은 내 취향이 바뀌었다고만 생각하고 있었다. 내가 좋아하던 사람한테 멍청하게 보였다는 것만큼 나를 아프게 하는 건 없었다. 또 나를 얼마나 멍청하게 봤으면 못 먹는 감 찔러 보듯이 그러고 있을까.
멍청이. 나는 정말 장희태가 싫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