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ily Priesthood RAW novel - Chapter 107
제 2 장 니가 사람이냐
난리가 났다는 화승당까지 원호가 급히 걸음 했을 때에는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던 차였다.
일하던 일꾼들은 물론 승려들까지 백여 명이 모여 웅성댔다.
굉운도 막 도착했는지 자리를 잡고 있었다.
“왔는가?”
여유 있게 인사를 건네는 굉운이 왠지 얄미운 원호였다.
원호는 애써 마음을 추스르며 물었다.
“대체 무슨 일입니까?”
“보면 알지 않나.”
굉운이 눈짓한 곳은 사람들의 시선이 모두가 쏠려 있는 화승당의 너른 마당이었다.
거기에는 일로일소가 탑이 놓인 마당을 빙 둘러 원을 그리며 뛰고 있었다. 그것이 장건과 오황임에는 틀림없는데, 그 모습이 참으로 우스꽝스러웠다.
오황은 한 걸음을 내디딜 때마다 둥실 하고 구름 위를 노닐듯 앞으로 날아가고, 장건은 거의 미동도 없이 빙판 위를 미끄러지듯 나아가는 형국이다.
그렇게 오황이 장건을 뒤쫓는다.
‘이게 뭐야!’
정말 뛴다.
뛰고 있다.
뛴다는 게 무슨 말인가 했더니, 그냥 말 그대로 뛰고 있다!
기괴하게 뛰기 대회라도 한다면 일, 이등을 두고 앞다툴 만했다.
‘도대체 왜 여기서 저리 이상한 짓들을 하고 있는 거야!’
원호는 차마 소리까지는 지르지 못하고 속으로만 비명을 질러댔다.
그런 원호의 속마음을 알았는지 굉운이 껄껄 웃었다.
“얼굴 좀 펴게. 재미난 구경을 하고 있는데 그렇게 정색을 하면 쓰겠나.”
“제가…… 지금 웃게 생겼습니까? 대관절 왜 저런 이상한 행동들을 하고 있는 거랍니까? 장건이야 그렇다 치더라도 오황 선배까지 이런…….”
“아, 오황 선배가 화난 모양이네.”
그때 장건이 소리쳤다.
“왜 이러시는 거예요!”
오황도 소리쳐 대꾸했다.
“그만 도망가고 어서 이리 오지 못해?”
“싫어요!”
둘의 대화에 원호는 더 당황했다.
‘뭐냔 말이다, 뭐냐고!’
오황은 장건을 뒤쫓다가 문득 고개를 돌려 굉운과 원호를 보았다.
걸음은 멈추지 않은 채였지만 굉운이 먼저 인사를 건넸다.
“나무아미타불. 오랜만에 뵙습니다. 별래(別來)에 무양(無恙)하셨는지요.”
오황도 손을 들어 흔들었다.
“아, 방장 대사. 사람이 살다 보면 이런 일도 있고 저런 일도 있고 그러는 건데 내내 별래무양하면 억지스럽지. 그냥저냥 잘 지냈다네.”
“허허, 그러셨군요. 한데 건이와는 벌써 안면을 익히신 모양입니다?”
“이런 망할, 자네의 못된 꾐에 넘어가서 이 고생이잖은가!”
굉운이 말없이 웃었다.
오황은 여전히 걸음을 멈추지 않은 채 말했다.
“할 얘기가 많긴 한데, 그건 나중에 다시 하기로 하고. 나 얘 좀 빌려가겠네.”
굉운이 아니라 원호가 놀라서 되물었다.
“넷? 뭘 빌려가신다구요?”
그러나 굉운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하십시오. 하지만 건이가 제 말을 들을지 모르겠습니다.”
뛰고 있던 장건이 소리쳤다.
“방장 대사님! 원호 사백님! 이 할아버지 좀 말려주세요!”
오황이 장건을 향해 버럭 소리를 질렀다.
“시끄럽다, 이놈아! 지금 네놈을 빌려가겠다는데 방장이 허락하는 거 못 들었느냐!”
장건이 울 듯한 표정으로 굉운을 쳐다보았다.
“방장 대사님…….”
굉운은 웃으며 말했다.
“오황 선배는 강호의 큰 어른이시며 존경받는 무인이시다. 하지만 네가 따라가기 싫으면 따라가지 않아도 좋다.”
오황이 울컥해 외쳤다.
“방장 대사! 나중에 나한테 혼 좀 날 테니까 그런 줄 알고 있어!”
굉운은 여전히 웃는 채였다.
“알겠습니다.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원호가 어이가 없어 조그만 소리로 굉운에게 물었다.
“뭐하시는 겁니까?”
굉운이 장건과 오황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으며 대답했다.
“이 방법이 서로를 가장 빨리 알 수 있는 길인 듯해서 말일세.”
원호는 한숨만 푹푹 내쉬었다.
☆ ☆ ☆
장건은 기가 막혔다.
상관이 있을 거라고 말하자마자 갑자기 오황이 장건을 향해 손을 쓴 것이다.
그냥 평범한 수법도 아니었다.
손을 쓱 내미는데 한순간에 소름이 쭉 끼쳤다. 본능적으로 몸을 피했더니, 장건이 서 있던 공간에서 ‘팍!’소리가 났다.
동상을 부수었을 때 쓴 그 수법이다. 장풍을 쏘는 것도 아닌데 마치 공명검처럼 공간을 격하고 공격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만약 그 수법을 한 번도 보지 못했다면 피하는 것조차 불가능했을지 몰랐다.
“어쭈?”
벼락같은 속도였는데도 장건이 아슬아슬하게 공격을 피해내자 오황은 눈가에 힘을 주었다.
사실 장건을 괴롭히거나 다치게 할 생각은 아니었다. 그저 점혈을 해서 움직이지 못하게 한 후 보따리처럼 짊어지고 갈 생각이었다.
좋은 말로 따라오라고 해봤자 바쁘다고 안 따라올 게 뻔했으니 말이다.
한데 민망하게도 장건이 오황의 한 수를 피해낸 것이다. 강호에서 자신의 기습적인 수를 피해낼 수 있는 이가 몇이나 될까 생각해 보면 다소 당황스럽기까지 한 일이다.
“야, 임마! 안 아프게 할 테니까 그냥 가만히 있어!”
“싫어요. 할아버지 같으면 가만히 있겠어요?”
“그럼 그냥 조용히 나 따라갈래?”
당연히 장건은 생각할 필요도 없다는 투로 대답했다.
“그것도 싫은데요?”
“그럼 어쩔 수 없지!”
오황이 손가락을 퉁겼다.
장건은 기겁해서 보법을 밟았다.
팍!
겨우 손가락 한 마디 정도의 거리를 두고 오른쪽 어깨 옆에서 공기 터지는 소리가 났다.
“진짜 왜 이러시는 거예요!”
“너 데려가려고.”
“그러니까 절 왜 데려가시려는 건데요!”
“으익! 방금 그 보법은 정말 보기 좋지 않구나. 아, 그래. 우선은 그 걷는 모양새부터 좀 고쳐야겠다.”
자기 하고 싶은 말만 하는 오황이라 장건은 그의 생각을 종잡을 수가 없었다.
“제가 걷는 게 어디가 어때서요?”
“어디서 이상한 보법을 배워가지고, 부자연스럽게 그게 뭐냐?”
“이상한 보법 아니에요. 이렇게 걸어야 힘이 덜 든단 말예요.”
“웃기고 있네. 일부러 그렇게 걷는 게 더 힘들겠다.”
“그렇지 않다니까 왜 자꾸 그러세요? 전 할 일이 많아요. 놀고 싶으면 오황 할아버지 혼자 노세요.”
“혼자 노세요?”
오황이 욱했다.
“오냐. 그럼 어디까지 피할 수 있는가 보자. 이 나쁜 놈, 건방진 놈, 부자연스러운 놈.”
이제는 오기마저 발동했다고나 할까?
오황은 공력을 잔뜩 끌어올렸다.
부우우!
오황의 장포가 크게 부풀며 펄럭인다.
장건은 ‘이래서 무림인은 싫어!’하고 외치면서도 자신 역시 급하게 공력을 끌어올렸다.
몸에서 기를 움직이는 건 장건에게 별로 어려운 일이 아니다. 단전에서 흘러나온 기가 순식간에 임독맥을 타고 기경팔맥을 순환했다.
장건에게서 느껴지는 기운에 오황이 깜짝 놀랐다.
“……뭐? 벌써?”
오황이 의심의 눈초리로 장건을 보았다. 갑자기 눈빛이 맑아지고 정광이 흘러나오는 걸 보니 단순히 내공을 단전에서 몸으로 끌어낸 정도가 아니었다.
몸으로 끌어낸 내공을 소주천까지시켜 전신에 활력이 가득하다.
고작 눈 한 번 깜박일, 아니, 눈 한 번 깜박이기에도 부족한 틈에 벌어진 일이었다.
“흐음.”
이번만큼은 오황도 감탄했다.
단전을 열어 공력을 끌어내는 건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지만, 그 짧은 시간에 소주천까지 해서 전신 근육과 혈을 활성화시키는 건 어려운 일이다.
할 수 있다면 그리하는 게 좋긴 하다. 급하게 필요한 것만 준비하느냐 완벽히 준비를 하느냐, 하는 차이가 생긴다.
그러나 어지간한 고수도 짧은 시간 내에 일주천을 시키지 못한다. 수십 년 수련한 고수도 보통 일 다경의 시간은 필요로 한다.
그런데 장건은 눈 깜짝할 사이에 완벽하게 소주천을 마치고 공력을 전신에 퍼뜨려 준비를 마쳤다.
‘한 가닥 한다는 게 이유가 있긴 있었군. 흥!’
그래봐야 애다.
오황은 땅을 박차고 몸을 날렸다.
“순순히 잡혀라!”
“싫다니까요!”
오황이 순식간에 장건에게 날아가 손을 뻗었다. 현란하지는 않지만 신묘한 무리가 담긴 금나수법이 펼쳐졌다.
그런데 장건은 선 자세 그대로 뒤로 쓱 미끄러지더니만 갑자기 몸을 돌려 달아나기 시작했다.
“응?”
오황은 황당해했다.
장건도 사실 그 순간 잠시 고민을 했다. 맞서야 할까, 그냥 달아나는 게 나을까.
결론적으로 달아나는 게 속 편하고 귀찮은 일에 휘말리지 않는 길이라고 판단했다. 이제 귀찮은 건 질색이었다. 그래서 달아났다.
반대로 허공에 헛손질을 한 셈이 된 오황은 많이 무안해졌다. 전신을 완전히 활성화시켜놓고 그냥 튈 거라고는 생각도 못 했다.
“이놈이? 어딜 달아나!”
오황이 번개처럼 빠르게 장건을 뒤쫓았다.
소림 내원으로 달아나면 오황도 더 쫓기는 뭐하다. 그래서 오황은 장건이 샐 것 같은 방향으로 미리 지풍을 날렸다. 신기하게도 장건이 딱 가려고 마음만 먹으면 그 방향으로 지풍이 날아온다.
장건은 할 수 없이 방향을 틀어 달렸다.
펑펑!
“으앗!”
펑펑!
장건이 편하게 달아날 수 없게 마구 지풍을 날려대다 보니 결국 장건은 화승당의 마당을 뱅글뱅글 도는 꼴이 되어버렸다.
☆ ☆ ☆
오황의 한 걸음은 보통 성인의 서너 걸음과 맞먹는다. 여유롭게 노니는 듯하면서도 일반 사람이 달리는 것보다 몇 배는 더 빠르다.
속도가 그렇게 빠른데도 힘을 많이 쓰지 않는 게 오황의 특징이다.
자연의 흐름을 읽는 오황의 무공 특성상 경공을 쓸 때에도 바람을, 바람의 흐름과 결을 타는 것이다.
돛을 달고 구름 위를 순항하듯 바람을 타고 나아간다.
희한하게도 마치 나뭇잎이 바람에 흔들리듯 전혀 몸무게가 없는 이처럼 휙휙 날린다. 곧장 앞으로 직진하는 게 아니라 바람의 방향대로 이리저리 흔들거리는데도 가만 보면 어느샌가 저 앞쪽 멀리 나아가 있다.
그럼에도 딱히 무공을 쓰는 것 같지도 않고 시골 촌로가 뒷짐을 지고 산책 나가는 듯 자연스러운 모습이다. 신선처럼 과한 모습도 아니고 멋을 부린 것도 아니다. 그저 ‘걷는다’는 동작에 충실한, 있는 그대로의 동작이다.
원호가 감탄했다.
“과연! 오황의 경공술이 견식할 기회는 적으나 강호의 일절임에는 틀림없다더니, 그 말들이 사실이었군요.”
굉운도 적이 놀라고 있었다.
“정말 대단하네.”
평범하기 그지없는 동작임에도 현묘한 무리가 담겨 있으니 오황이 얼마나 고절한 경지에 올라 있는지 가늠하기도 어렵다.
검성이 손가락을 들어 가리키는 동작 하나만으로 홍오를 쓰러뜨린 것 또한 같은 맥락이 아닌가!
“그나저나…….”
원호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도대체 이게 무슨 짓인지.”
굉운이 담담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너무 걱정할 것 없네. 오황께서도 내 의도를 어느 정도 받아들이신 것 같으니.”
오황이 장건을 맡기로 결심했다는 의미다. 하지만 원호는 그게 그리 잘될 것 같지 않았다.
“글쎄요…… 어떻게 될는지.”
원호는 가만히 오황과 장건을 지켜보고 있다가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저는 이만 돌아가서 남은 일을 해야겠습니다.”
굉운이 물었다.
“왜? 결과가 궁금하지 않은가?”
“궁금하지요. 궁금하지만 그것보다 더 급히 해결해야 할 일이 있어서 말입니다. 나중에 알려나 주십시오.”
왠지 투정을 부리는 듯한 말투였다.
굉운이 웃었다.
“아주 바쁘지 않으면 마저 보고 가게. 재미있을 것 같은데?”
원호가 심드렁하게 대꾸했다.
“이미 결과는 대충 알 것 같기도 해서 말입니다.”
“결과를?”
“예. 어떤 결과든 간에 적어도 제가 예상하는 것과는 정반대일 겁니다. 그러니 그걸 이 자리에서 보고 복장이 터지느니 나중에 듣고 터지겠습니다.”
“껄껄! 그건 자네 스스로에 대한 결과로구먼.”
“무슨 결과든 어떻습니까? 어차피 예상할 수도 없는 것을요. 그럼 저 갑니다.”
원호는 승복 자락을 한 번 탁! 떨치더니 해탈한 승려처럼 휘적휘적 집무실로 돌아가버렸다.
굉운은 빙긋이 웃으며 다시 오황과 건이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 ☆ ☆
장건이 흘낏 뒤를 쳐다보았다.
오황이 왠지 화난 얼굴로 마구 쫓아오고 있었다.
‘장난 아니네!’
겨우 오황의 속도만큼을 내서 달리고 있는데 오황이 더 속력을 낸 것이다.
사이가 빠르게 좁혀지고 있다. 오황은 정말로 엄청나게 빨랐다. 지풍을 날리면서 조금도 흐트러지지 않고 쫓아온다.
“이놈아! 그것밖에 안 되면서 달아나려고? 일찌감치 꿈 깨거라. 크허험.”
장건은 더 빠르게 달렸다. 있는 힘을 다해 달렸다. 옷자락이 마구 펄럭이고 머리가 휘날렸다.
거의 장건을 따라잡을 뻔했던 오황은 장건이 다시 멀어지자 혀를 내둘렀다.
“저 망할 놈이?”
오황도 뒤질세라 장건을 욕하면서 속도를 높였다. 자신의 경공도 강호에서는 손꼽히는데 장건을 쉽게 따라잡지 못해서 적이 놀라던 중이었다.
스스스슥.
착시나 환상을 보는 것처럼 가만히 선 채 슥 미끄러지며 달리는 장건을 보면 어떻게 그런 속도가 나오는지 신기할 따름이다.
‘정말 희한한 놈이라니까. 저 괴상망측한 동작만 어떻게 좀 하면 좋겠는데.’
지금도 일반 무인은 쫓아오기조차 힘든 속도다.
절로 짜증이 치미는 것은 어쩔 수 없다.
그런데.
“응?”
오황의 눈이 이채를 발했다.
장건의 경공술이 변화한 것이다.
이전까지 장건의 경공은 – 사실 오황은 그것을 경공이라 부르고 싶지도 않았지만 – 불영신보의 묘리를 담고 있었다. 불영신보에서 한 오 할 정도를 덜어내면 딱 장건의 경공이었다.
소림에서 유명한 신법 중의 하나니 그건 쉽게 알아보았다.
한데 지금은 거기에 한 가지의 묘리가 더해졌다.
오황은 눈을 가늘게 뜨고 장건의 걸음을 주시했다. 흙먼지조차 거의 일으키지 않는 가벼운 걸음인데 어딘가 모르게 진중한 힘이 깃들어 있다.
‘저게 뭐더라? 왠지 익숙한데.’
불영신보야 워낙 소림승들이 자주 쓰니 알아보았는데 지금의 경공은 본지가 좀 되어 기억이 잘 나지 않았다. 더욱이 장건의 경공은 제대로 된 경공도 아니지 않은가!
잠시 끙끙대던 오황이 마침내 떠올렸다.
‘으잉?’
설마설마했는데 정말 그거였다.
‘니미럴! 저거 대나한선보였어?’
소림의 보법 중에서도 신묘하여 제대로 배우기가 어렵다는 그 대나한선보가 경공으로 쓰이고 있다니!
‘어떤 미친 땡중 놈이 보법을 경공으로 쓰라고 가르친 거야!’
불영신보도 그렇고 대나한선보도 보법인데 둘 다 경공으로 쓰고 있는 장건이었다. 불영신보야 그렇다 치더라도 이치가 오묘한 보법을 경공으로 쓰니 쉽게 못 알아본 것도 당연하다. 아니, 알아본 게 더 신기한 노릇이다.
그나마 홍오가 잘 쓰던 보법이라 알 수 있었던 것이다.
오황은 장건의 혼합된 경공을 보며 참으로 미묘한 감정에 휩싸였다.
보법이라는 게 상대의 공격을 흘리고 좋은 방위를 선점하는 것이니만큼, 좋은 방위에서 단숨에 상대와의 거리를 좁혀 공격을 가할 수 있는 – 가장 빠르게 움직이는 – 수법도 한 가지쯤은 내재되어 있기 마련이다.
장건은 불영신보에서 몸의 움직임을 최소한으로 줄이는 발놀림만을 이용했고, 대나한선보에서는 순간적으로 속도를 높이는 걸음만을 이용하고 있다.
그 두 개를 합쳐놓았는데도 전혀 이상하지가 않다. 내공의 운용이 꼬여서 힘들어하는 모습도 보이지 않는다. 그냥 나무토막처럼 꼿꼿이 서서 달릴 뿐이다.
장건은 불영신보와 대나한선보에서 가장 빠르고 힘을 절약하는 방법만을 골라내 자신만의 경공술로 만들어낸 것이다.
마치 내기를 시작하기 전에 장건이 ‘공명검’이라며 당가의 섬절과 백보신권의 묘리로 지풍을 쏘아낸 것처럼, 지금도 이런저런 무공의 묘리를 섞어버렸다.
그것이 오황을 놀라게 만들었다.
불영신보나 대나한선보나 하나의 완성된 보법이다. 수천 년 소림의 역사가 지속되는 동안 두 보법은 점점 더 완벽해져왔다.
그 두 완벽한 보법 중에서 일부만 뚝 떼어 사용한다는 건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다. 각기 다른 집에서 주춧돌만 빼오고 기둥만 빼와 지은 새 집이 멀쩡할 수 있겠는가?
그런데 장건이 지금 그것을 해내고 있는 것이다.
심마에 든 아이가 할 수 있는 행동이라고는 조금도 생각할 수 없었다.
그러나 한두 번은 우연으로나마 잘 되었다고는 해도, 계속해서 그런 행동을 한다면 무슨 일이 생길지는 명확하다.
‘소림은 어째서 저리되도록 아이를 방치한 것이냐! 어이구, 내 복장이 다 터지네.’
안타까움 반, 답답함 반.
오황이 자기도 모르게 소리를 높였다.
“네가 무슨 대종사라도 되냐!”
“예?”
오황은 장건의 뒤를 따라오며 또다시 소리쳤다.
“이 멍청한 녀석아!”
장건이 참지 못하고 대꾸했다.
“왜 자꾸 욕하세요? 제가 뭘 잘못했는데요!”
참다못한 오황이 장건의 움직임을 지적했다.
“사람이 빨리 달리다 보면 자연스럽게 팔다리도 흔들고 허리도 굽히고 그러는 것이야! 자연스러운 건 다 이유가 있어! 너처럼 필요한 것만 골라 쓴다고 그게 다가 아니란 말이다!”
오황의 말을 듣고 장건이 입을 삐죽 내밀었다.
‘난 이렇게 달리는 게 자연스러운데.’
하지만 그런 말을 들으니 조금 신경이 쓰이긴 했다.
‘팔다리를 흔들고 허리를 굽히려면 기운을 써야 하잖아. 그게 어디가 자연스러운…….’
신경이 쓰이니 오황이 말한 부분이 의식되었다.
팔, 다리, 허리…….
그런데 순간.
‘어?’
장건은 머리에 번개를 맞은 것 같았다.
오황의 말에도 맞는 데가 있었다.
‘바람!’
그랬다.
달리며 부딪히는 바람에 저항하느라 상당한 힘이 소모되고 있었다.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허리를 꼿꼿이 펴느라 힘을 주고 있었다.
그게 당연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미처 고쳐야 한다고 의식하지도 못했다.
‘이제껏 이렇게 센 바람을 맞으면서 뛰고 있었다니…….’
장건은 이제껏 움직이지 않으면 당연히 힘이 덜 든다고 생각해왔다.
그런데 빨리 달리면 달릴수록 움직이지 않는 게 쉽지 않다. 머리카락이 마구 휘날리고 옷자락이 펄럭대는 소리가 북을 두드리는 것처럼 날 정도다.
그렇게 거센 바람을 받으면서도 상체를 꼿꼿이 세우고 있으려면 허리에 잔뜩 힘을 주어야 한다.
‘내가 왜 이런 생각을 못했지?’
장건에게는 실로 놀라운 깨달음이었다.
움직이지 않아도 힘이 들 때가 있다!
지금처럼 빨리 달릴 때에는 맞바람에 거세게 부딪히니 오히려 움직이지 않으려 버티는 데에 힘이 드는 것이다. 그것을 미처 인식하지 못하고 이제껏 쓸데없는 데에 힘을 쓰고 있었다.
‘아아, 그랬구나…….’
과소비는 즉시 고쳐야 하는 것.
장건은 즉시 실행에 나섰다.
‘일단 허리에서 힘을 빼자. 바람에 버티려 하지 말고…….’
목에서부터 등까지 이어지는 근육들을 완전히 이완시키고 허리를 지탱하는 근육에서 힘을 뺐다.
곧장 상체가 무너졌다.
꼭 허리가 없는 사람처럼 상체가 흐느적거리다가, 달리는 속도 때문에 허리가 뒤로 확 꺾였다.
전신의 근육과 뼈를 모두 조정할 수 있는 장건이다. 보통 사람이 도저히 따라할 수 없는 각도까지 허리가 휘어졌다.
덜렁!
장건의 허리가 꺾여서 고개까지 뒤로 젖혀졌다. 양팔이 휘리릭휘리릭 마구 너덜거렸다.
이렇게까지 확 젖혀질 줄은 몰랐던 장건이 비명을 질렀다.
“으악!”
바로 뒤에 따라오던 오황도 전혀 예상하지 못한 일에 경기를 일으켰다.
“으허억!”
앞에서 달리고 있던 장건이 허리를 젖히고 팔을 휘두른 순간, 오황은 본능적으로 최고의 신법을 발휘해 몸을 네 갈래로 나누었다.
파파파팟!
그렇게 자신이 할 수 있는 최고의 방어 수법을 펼쳤지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장건은 그냥 계속 덜렁거리고 있을 뿐이었다…….
순식간에 오황은 뻘쭘해지고 말았다.
그러나 이내 마구 용암을 내뿜는 화산처럼 화가 치밀었다.
덜렁덜렁.
나풀나풀.
장건의 몸이 완전히 젖혀져 대롱거리는 바람에 장건의 시선과 오황의 시선이 마주쳤다.
‘으드득!’
앞에서 달리고 있는 사람과 시선이 마주친다는 있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난 것이다!
근 백 년 세상을 살아오며 볼 꼴 못 볼 꼴을 모두 보아온 오황이었지만 이 같은 상황은 처음이었다.
세상에나!
다리는 달리고 있는데 상체는 뒤로 젖혀져서 늘어진 버드나무 가지처럼 휘청휘청거리고 있는 것이다!
꼭 누군가 상체의 뼈를 모두 조각조각 분질러버린 것처럼!
검성이 일검을 날린다 해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을 오황이었지만 지금만큼은 심장이 다 떨렸다.
멀쩡하게 달리다 말고 허리가 뒤로 접혀서 거꾸로 자신을 빤히 바라보고 있으니……. 백 번을 죽었다 깨어나도 전혀 예상할 수 없는 일이 일어났으니 그라고 해도 놀랄 수밖에 없었다.
‘죽었나?’하고 보니 죽지 않았다. 다리는 지금도 열심히 뛰고 있었으니까. 그 상태로 십여 장을 더 뛰어갔으니까.
막상 자기도 해놓고 머쓱했는지 장건이 오황을 보고 히 웃는다.
오황은 화가 머리끝까지 솟구쳤다. 목에 간신히 붙어서 대롱거리는 듯한 장건의 웃는 머리통을 그냥 쑥 뽑아버리고 싶은 욕구에 휩싸였다.
처절한 원한을 담은 목소리로 오황이 부르짖었다.
“야, 이 새끼야! 니가 사람이냐!”
놀란 것은 오황뿐만이 아니었다.
지켜보던 모든 이들이 경악하며 낮은 비명을 질러댔다.
“헉!”
“으으음!”
몇몇은 얼굴이 시퍼렇게 질려서 자리에 주저앉기도 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다리는 달리고 있는데 허리는 뒤로 확 꺾여서 팔과 머리를 덜렁거리고 있으니…….
굉운과 각대원주들도 난감한 얼굴로 서로를 마주볼 뿐이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장건은 곧 상체를 일으켜 세웠다.
그리고는……
다시 한 번 굉운과 각대원주들의 입에서 신음성이 터져 나오게 만들었다.
그것은 눈으로 보고도 도저히 믿을 수 없는 일이었다.
평범한 이들은 보고도 믿을 수 없었다.
각대원주 이상의 무위를 가진 이들만이 그 현상을 알아보고 경악하였다.
아마도……
아니, 단언컨대!
강호 역사상 이런 경공법은 나온 적도 없었고, 앞으로도 나오지 않을 게 분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