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ily Priesthood RAW novel - Chapter 135
제 4 장 소림 공습
뎅―뎅―뎅―
땡땡땡!
웅장한 종소리를 뚫고 작고 날카로운 종소리가 빠르게 울렸다.
나한승 한 명이 쏜살같이 대웅전으로 달려간다.
마당이고 안이고 사람들로 북적거린다.
그러나 나한승이 그 많은 사람들을 뚫고 원주들에게까지 달려갈 필요는 없었다.
이 같은 급한 타종은 어지간한 일로는 울리지 않는다. 이미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느낀 백의전주 굉충이 대웅전의 밖으로 나와 있었다.
굉충은 향객들에게 반장을 하며 한쪽 옆으로 비켜난 후 전음으로 물었다.
[무슨 일이냐.] [무장한 관군이 산 아래에 몰려와 있다고 합니다. 그 수가 수천을 헤아립니다.] [뭣이!]그럴 리가 없었다. 사자로 갔던 오황이 도독부의 문제에 대해서는 허무할 정도로 쉽게 얘기가 끝났다고 하지 않았던가?
이유는 아직 모른다. 그러나 관부의 목적이 무엇이든 진산식을 방해하게 둘 수는 없다. 대부분의 제자들이 진산식을 보기위해 이곳에 몰려 있기 때문에 더욱 불안한 느낌이 든다.
[창칼을 든 병사들 다수를 본사에 들일 순 없다. 무공을 익히지 않은 민간인들이 다칠 수도 있어.]굉충은 곧바로 지시를 내렸다.
[남아 있는 나한전과 백의전의 모든 나한들을 끌고 나가 막아야 한다. 입구를 막는다면 그들도 함부로 들어오지는 못할 것이다.] [알겠습니다!]굉충은 사람들이 동요하지 않도록 승려들을 밖으로 불러내었다. 어떻게든 진산식만은 무사히 끝내야 했다.
저벅! 저벅!
종암과 유장경은 거침이 없었다.
둘이 앞장서서 소림의 일주문으로 향하는 계단을 오르고, 그 뒤를 누런 비단옷 위에 갑주를 걸친 금의위 무사들이 따랐다. 가장 뒤쪽에서는 수천의 일반 병사들이 뒤를 쫓는다.
일주문의 아래에는 이미 백의전주 굉충과 나한전주 굉소가 나한들을 데리고 나와서 이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나한들도 곤을 들고 무장을 했다.
곧 굉소가 외쳤다.
“멈추시오!”
하지만 종암과 유장경은 걸음을 멈추지 않으며 일정한 속도로 계속해서 계단을 올라왔다.
굉충과 굉소가 잠시 시선을 교환했다. 한눈에 보기에도 완벽한 무장을 하고 그러한 병사들이 수천을 아우르니 좋은 의도가 아님은 분명한데, 확실한 이유를 알아야 했다. 그러나 상대가 아무런 대답을 하지 않으니 답답하기 그지없었다.
백의전주 굉충이 반장하며 나섰다.
“나무아미타불. 두 분께서 본사의 진산식을 위하여 일부러 찾아 주신 거라면 조금 더 예의를 갖추어 주셔야 할 것입니다.”
금월사자 유장경이 보란 듯 피식 웃었다.
“우리가 진산식을 축하라도 하기 위해서 온 것으로 보이나? 머저리도 이런 머저리가 없군?”
다짜고짜 튀어나오는 좋지 않은 소리에 굉소의 민머리 가득 힘줄이 돋았다.
“그 말은! 좋은 뜻으로 본사를 찾은 게 아니라고 받아들여도 되겠소이까!”
“그러든지.”
“어떻게 협약을 깨고 이러한 행위를 저지를 수 있단 말이오!”
그사이에 종암과 유장경은 이미 일주문 앞의 널찍한 공간에까지 올라왔다.
굉충이 굉소를 만류하며 다시 한 번 사정했다.
“본사의 진산식이 아직 끝나지 않았소이다. 알다시피 이것은 본사에게 있어 대를 계승하는 중요한 자리요. 혹여 본사에 볼일이 있다 하더라도 조금만 참고 기다려 주시길 부탁드리오.”
“웃기는군.”
유장경은 냉소를 지으며 걸음을 멈추었다. 그러나 그것은 진군을 멈춘다는 의미가 아니었다. 그가 거대한 월도를 치켜들어 바닥을 찍었다.
으직.
박석이 두부처럼 으깨지고 금이 간다. 그의 행동에 뒤따르던 금의위 무사들이 걸음을 멈추고 자세를 낮추었다.
촤라랑!
일제히 무기를 뽑아 들었는데 한 손에는 두툼한 도를, 또 한 손에는 굵은 오랏줄을 들었다.
유장경이 단호하게 말했다.
“사람들을 속이고 세상을 어지럽혀 혹세무민(惑世誣民)하는 무리들이 말이 많구나!”
“그게 무슨 말이오! 혹세무민이라니!”
찾아온 뜻이 명확했다. 굉소와 굉충은 낭패한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유장경의 말을 들어 보면 도독부 문제 때문은 아닌 것 같았다. 그렇다고 좋다고 말할 수는 없다. 도독부의 문제보다도 더 좋은 핑계거리가 있으니까 당당하게 쳐들어왔다고 봐야 한다.
굉소와 굉충은 서로 마주 보았다.
단순히 관부에서 나온 게 아니라 금의위 무사들이 전면으로 나선 것이라면 얘기가 달라진다.
금의위는 황궁의 친위군.
관부에 대항하는 것과 금의위에 대항하는 것은 격이 다르다. 금의위는 형부의 법적인 구애를 받지 않는 초법적인 조직이고, 거기에는 황궁 직속이라는 강력한 직권이 작용한다.
그러니 금의위의 행사에 반한다는 건 황궁의 의지에 반하는 것으로 간주되고 마는 것이다. 또한 황궁의 의지에 반한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굉소와 굉충은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둘은 동시에 앞으로 나설 수밖에 없었다.
“너희들은 물러나 있거라.”
뒤에 따라온 이백의 나한들이 어리둥절해했다.
“예?”
“끼어들지 말란 말이다!”
그 이상 무슨 명령을 내려야 할지 굉소와 굉충도 알 수 없었다. 그저 다가오는 금의위 무사들을 상대로 어떻게든 시간을 끌어서 진산식만은 무사히 마쳐야 한다는 것만 떠올릴 뿐이다. 만약 금의위와 맞선 책임을 져야 한다면 둘이 모든 책임을 질 생각이었다.
“포박하라!”
유장경이 재차 명령을 내리자 금의위 무사들이 굵은 오랏줄을 던진다. 두께가 손가락 두 마디나 되는 묵직한 오랏줄이 채찍 혹은 창처럼 날아드는데 하나같이 계산된 듯 피하기 어려운 각도로 짓쳐들어왔다.
금의위의 특성상 한 명 한 명이 황궁의 무공을 익힌 얕볼 수 없는 고수들이다. 오랏줄이 날아오는 모양새만 보아도 결코 방심할 수 없었다.
“타합!”
굉소와 굉충은 동시에 진각을 밟으며 일기가성으로 공력을 끌어 올렸다. 굉충은 쇠로 된 묵빛 염주를 꺼내 들었고, 굉소는 둥그런 고리가 있는 선장(禪杖)을 떨쳤다. 허공에서 날아오는 오랏줄을 쳐 내어 튕겨 낸다.
터텅!
오랏줄과 염주, 선장이 부딪치는데 쇠 종을 치는 둔탁한 소리가 났다. 어지간히 공력이 담겨 있는지 부딪칠 때마다 뿌연 먼지가 산산이 흩어진다.
다시 십여 개의 오랏줄이 쉬지 않고 둘을 향해 날아들었다.
“흠!”
굉충은 왼손 소맷자락을 단단하게 만들어 어깨로 날아오는 오랏줄 두 개를 휘감듯 쳐 내고, 가슴으로 날아오는 오랏줄을 염주로 막았다. 채찍을 휘두른 것처럼 정수리로 휘갈겨 오는 오랏줄은 오른발을 차올려 발바닥으로 민다.
터터텅!
잠깐 사이에 네 개의 공격을 튕겨 냈지만 그사이 달려온 금의위 무사 둘이 도를 벼락처럼 떨구었다. 굉충은 마보에서 몸을 틀어 괘면각의 수법으로 발날을 이용해 무사 한 명의 가슴팍을 찼다. 무사는 내려찍던 기세 그대로 도를 놓아 버리고 가슴을 양팔로 보호했다. 퍽 소리와 함께 무사가 가슴을 보호한 자세 그대로 길게 밀려난다.
그 후 굉충이 다른 무사의 공격을 방어하려 하는데, 허공에서 주인 없이 놓아 버린 도가 거슬린다. 거기다 뒤로 밀려나던 무사가 시야가 가려짐을 이용하여 오랏줄을 창처럼 꽂아 오고 있다.
굉충은 반 바퀴를 회전하여 오라를 피하면서 오른손의 중지와 약지로 주인 없는 도의 날을 붙들고, 다른 무사가 내려친 도는 절묘하게 염주알의 사이에 끼워 비틀었다. 쩡 소리를 내며 도의 이빨이 깨지더니 방향이 빗나갔다.
몸을 돌리던 그대로 멈추지 않고 앞발을 들어 뒤꿈치로 무사의 옆구리를 내질렀다. 무사가 도의 한 면에 손바닥을 대고 방어해 보았으나, 금이 가 있던 도는 여지없이 깨져 나간다.
콰창!
동시에 무사도 발돋움을 하며 반동을 이용해 몸을 회전시켜서 굉충의 선풍각에서 벗어났다.
굉충은 쫓으려고 하지 않았으나, 마치 쫓아오는 걸 기다렸다는 듯 여섯 개의 오랏줄이 동시에 날아들고 있었다. 한 걸음만 더 나아갔어도 분명히 어딘가는 묶였을지도 몰랐다.
굉충은 두 번을 빙그르르 몸을 돌려서 오랏줄을 피해 내고는 한 손 뒷짐을 지고 한 발을 내밀어 굽힌 상태에서 장을 뻗은 상태로 안정되게 자세를 갖추었다. 일련의 공격을 모두 방어해 내긴 하였으나 속으로는 내심 혀를 내두를 수밖에 없다.
‘과연 금의위로구나. 이제 갓 서른 중반이나 될까 해 보이는데 이 내가 한 명도 제압하지 못하다니.’
실력 차는 분명히 있었다. 하지만 합종연횡(合縱連衡)의 식으로 서로 간의 단점을 보완하고 합동 공격을 해 오면 굉충이라도 단번에 제압할 수가 없었다.
굉소 역시 공격을 막아 내고 호흡을 고르는 중이었다. 어차피 제압이 목적이 아니라 버티는 게 목적이다.
금의위의 무사들은 일련의 공격이 실패로 돌아가자 갑자기 오랏줄의 한쪽 끝을 돌려서 매듭을 짓기 시작했다. 그러고는 유성추처럼 오랏줄을 빙글빙글 돌린다.
부웅―부웅―
공력까지 담긴 오랏줄이 무거운 파공음을 내며 회전한다.
굉소와 굉충은 서로 눈빛을 교환했다.
한두 개가 아니라 여러 개의 유성추를 제자리에서 상대하기는 굉장히 어렵다. 움직여야 한다.
그때 앞줄의 금의위 무사들이 일제히 오랏줄을 던졌다. 끝에 매단 매듭이 추의 역할을 하여 좀 전의 공격과는 위력이 다르다.
굉소와 굉충은 기민하게 옆으로 움직였다.
퍼퍽!
굉소와 굉충이 지나간 자리에 썩은 두부를 짓이기듯 오랏줄의 매듭이 박혀 들었다.
굉소와 굉충은 나한보와 선문보로 이리저리 오라의 창을 피하며 그 위에 올라타기도 했다.
퍼퍼퍼퍽―
수십 개의 오랏줄이 바닥에 박히며 바닥의 돌들이 박살이 났다. 마치 긴 창을 찔러 넣은 듯한 모양새였다.
셋째 열의 무사들까지 오랏줄을 내던졌고 그것들은 모두가 굉소와 굉충을 지나쳐 바닥에 박혀 있는 상태다. 그런데 갑자기 오랏줄을 땅에 박은 채로 좌우의 무사들이 우르르 서로 교차해 이동한다. 오랏줄을 고의적으로 엉키게 만들 태세다.
굉소와 굉충이 몸을 빼내려 했지만 늦었다.
“회(回)! 포(捕)!”
그와 함께 금의위 무사들은 달리면서 일거에 오랏줄을 당겼다.
파팍!
박혀 있던 오랏줄들이 뽑혀 나오면서 크고 작은 호선(弧)을 그린다. 그냥 뽑아서 회수하는 것이 아니라 오랏줄이 반원 형태로 돌아오면서 굉소와 굉충을 감싸고 있는 것이다.
“아차!”
굉소와 굉충은 사방을 휘휘 두르고 있는 오랏줄을 보면서 대경했다.
황궁 무공이 강호의 무공과는 궤를 달리하는 걸 알고 있었지만 금의위의 이런 포박술은 경험해 본 적이 없다.
좌우로 갈린 무사들이 달려 나간 중앙으로 또 다른 금의위 무사들이 뛰쳐나와 오랏줄을 던지고 있다. 사방팔방이 오랏줄로 가득해져 피할 곳이 없다. 몇 개를 쳐 낸다고 하더라도, 한 점이 아니라 긴 선의 형태로 감아 오는 오랏줄을 다 피하긴 어려웠다.
승라포박술(繩邏捕縛術)!
경마자라는 풀에서 채취한 실을 수백 번이나 꼬아 만들어 어지간한 칼로 쳐도 끊어지지 않는 오랏줄이다. 특히나 내가공력을 탄력적으로 흡수하고 반탄하는 성질이 있어서 내공이 깊은 무림인들에게도 치명적이다.
승라포박술은 한번 펼쳐지면 오랏줄끼리 서로 마구 엉켜서 그 안에 있는 자가 빠져나갈 길이 없다. 아마도 오랏줄에 몸이 꽁꽁 매이거나, 매듭에 담긴 공력에 몸이 부서져 죽을 것이다.
굉소와 굉충이 온 힘을 다해 오랏줄과 매듭을 튕겨 내 보지만 튕겨 난 오랏줄은 다른 오랏줄에 얽히거나 되튕겨서 다시 날아들었다.
휘리리릭!
오랏줄이 거미줄처럼 얽혀 간다. 굉소와 굉충이 얼마 지나지 않아 고치가 되거나 고깃덩이가 될 것 같다.
“사백님!”
“저희들도 돕겠습니다!”
보다 못한 나한들이 곤을 들고 달려들었다. 호선으로 날아들며 좁혀지는 오랏줄을 곤으로 튕겨 내며 굉소와 굉충을 구해 내려 했다.
뒤쪽 후열에 있던 금의위 무사들이 이를 가만히 두고 볼 리 없었다. 매듭진 오랏줄을 크게 휘둘러 던졌다. 곤으로 쳐 내려 해도 공력이 부족하면 곤이 박살 나고, 겨우 쳐 내도 또 다른 오랏줄이 날아든다.
“그냥은 안 된다! 나한진으로!”
곧 나한들은 세 명이 한 조가 되어 하나처럼 힘을 합쳐 오랏줄을 걷어 내기 시작했다. 세 명이 안 되면 네 명, 네 명이 안 되면 여덟이 힘을 모은다. 나한들은 여러 합격술과 진법을 익혔고 그건 지금 같은 때에 큰 위력을 발휘할 수 있다.
하늘을 온통 뒤덮고 사방을 폭풍처럼 감아 오던 오랏줄이 조금씩 걷히기 시작한다.
괜히 소림이 아니고, 소림의 나한이 아니다. 금의위의 자랑인 승라포박술을 차근차근 해체해 나가고 있었다. 날고 긴다는 금의위 정예를 상대로 소림의 나한 이백도 전혀 밀리지 않는다.
“흥. 그래도 한가락 한다 이건가?”
유장경이 코웃음을 쳤다.
동시에 종암이 땅을 박찼다.
종암이 허공으로 뛰어올라 승라포박술이 펼쳐지는 진의 한가운데로 떨어진다. 마치 기다렸다는 듯 금의위 무사들이 움직임을 뚝하고 멈추었다.
“음?”
굉충은 바로 옆에서 종암의 기척을 느끼고 몸을 돌렸다. 종암이 하늘에서부터 떨어지는데 오른 주먹을 왼쪽 귓가에까지 끌어 올려 두고 있었다. 그러더니 바닥에 내려서며 벼락처럼 사선으로 주먹을 내리친다. 주먹을 쥔 손등이 굉충의 턱을 강타한다.
굉충이 무쇠 염주를 들어 양팔로 막았다.
쾅!
사람의 주먹이 쇳덩어리와 부딪쳐서 나는 소리가 아니었다. 그러나 굉충의 염주는 박살이 났다. 종암의 주먹은 염주를 산산조각 내고도 힘이 줄지 않았다. 굉충의 턱이 휙 하고 돌아갔다. 흰자위가 보이며 눈이 뒤집힌다. 염주알이 사방으로 비산하며 굉충은 그대로 쓰러졌다.
탱, 탱그르르.
찌그러진 염주알이 바닥을 굴렀다.
뒤에서 굉소가 보고도 믿지 못할 광경이었다. 단순하게 휘두른 주먹을 피하지 못하고 막은 것도 기이한데, 무식하게 힘으로 방어를 뚫어 버렸다.
“이런 지독한!”
굉소가 뒤늦게 선장을 휘두르며 달려들었다. 종암이 팔을 아래로 내리고 소매를 흔들었다.
불쑥, 소매 안쪽에서 세 뼘 길이의 짧은 육모곤이 튀어나온다. 끄트머리를 육각형으로 깎아 둥그런 징을 박아 넣었다. 종암은 무표정하게 손잡이를 잡고 육모곤을 하늘로 한껏 치켜들었다가 그대로 내려친다.
구―웅―!
그 단순한 일 초식에 굉소는 헛숨을 들이켰다. 가공할 압박이 느껴지며 다리가 땅으로 꺼져 버릴 듯 무거워졌다. 선수는 굉소가 잡았는데 그 한 초식에 도리어 주도권을 빼앗긴 셈이 되어 버렸다.
으직, 으직.
발밑의 박석에 금이 가기 시작하고 몸이 바닥으로 파묻힐 것 같은 중압감이 짓누른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종암은 우내십존의 한 명이며 무적이라고까지 불리는 무인. 방어만 해서는 어차피 승산이 없다.
굉소는 입술을 깨물어 피를 냈다. 조금이나마 압박이 사라진 느낌이다. 종암에게 달려가면서 연속으로 두 번 발을 굴러서 진각을 밟았다. 순간적으로 뒷발과 앞발을 동시에 차서 진각을 두 번 밟은 힘을 내는 신묘한 수법이다.
선장으로 종암의 비어 있는 오른쪽 허리를 후려쳤다. 팔을 들고 있기 때문에 완벽하게 비어 있다. 설사 굉소의 머리가 부서진대도 종암 역시 갈비뼈가 부러지고 내장이 진탕될 상황이다.
그러나 종암은 아무런 표정의 변화도 없었다. 그저 육모곤을 쭉 내려칠 뿐이다.
하지만 굉소는 어딘가 모르게 선장의 무게가 갑자기 무거워진 듯한 착각에 빠졌다. 선장을 휘두르는 게 아니라 물속에서 밀어내는 것 같은 강한 저항이 느껴졌다. 공기의 흐름이 세로로 수백 겹이나 차단되어 있어 가로로 선장을 후려치는데 뭔가 계속해서 가닥가닥 부딪치는 듯하다.
‘크윽!’
호신기공인가 싶었는데 그게 아니다.
허공에서 내려치고 있는 육모곤이 수십 개로 갈라지며 폭포수같이 쏟아지고 있었다. 하나 실제로는 육모곤이 채 떨어지지도 않았는데 그 기운이 벌써 전신을 장막처럼 두르고 있는 것이다.
보극대삼락.
공격이 시작되는 순간 이미 방어가 끝나 있다는 신비한 전진파의 장법이 육모곤으로 펼쳐지고 있었다.
이대로라면 허리를 친대도 힘이 다 빠져 그냥 툭 건드리는 정도나 될 것 같다. 굉소의 이마에 대번에 식은땀이 배어났다.
어쩔 수가 없이 몸을 낮추며 선장을 위로 들어 막을 수밖에 없었다. 왜 굉충이 막을 수밖에 없었는가, 그 이유를 어렴풋하게나마 깨달은 굉소다.
그리고…….
선장은 여지없이 부러졌다. 육모곤은 처참하게 선장을 박살 내고 욱이며 부서트렸다. 급하게 철포삼과 호신기를 돌려 막아 보려 했으나 그것도 소용이 없었다.
굉소의 왼쪽 어깨에 육모곤이 파묻혔다.
“커헉!”
끔찍하게 뼈 부러지는 소리가 나고 굉소는 피를 한 사발이나 토하면서 무릎을 꿇었다.
털썩.
단 일격에 눈이 돌아가며 혼절했다.
소림에서도 고수 측에 속하는 두 승려를 모두 일 초식으로 쓰러트렸다.
그럼에도 아무런 감흥이 없는 표정으로 쓰러진 두 승려를 번갈아 보는 종암이다.
지나온 시간들의 회한이 뼈에 사무쳤다.
머지않은 곳에 보이는 전각이 바로 진산식이 봉행되고 있는 대웅전이다.
“이제…… 갚아 줄 시간이다.”
입술이 씰룩였다.
그의 입가에 스산한 미소가 감돌았다.
“사백님!”
나한들의 안타까운 비명 소리에 유장경이 손가락을 들어 앞을 가리켰다.
“제압하라.”
금의위 무사들이 망연자실한 나한들을 향해 오랏줄을 날렸다.
☆ ☆ ☆
삐이이이이이―익!
날카로운 휘파람 소리가 소림 경내에서 마구 울려 퍼졌다.
공양게를 끝내고 연단에 서서 막 이임사(離任辭)를 준비하던 굉운이 낮은 한숨을 내쉬었다.
내빈석에 있던 오황이 그 모습을 가만히 보고 있다가 나름대로 신경 써서 차려입었던 장포를 벗어 버렸다. 그러고는 굉운을 향해 전음을 날렸다.
[아무래도 내가 일을 잘못한 모양일세. 면목이 없구먼.]굉운이 파리한 안색에 담담한 미소를 담으면서 오황을 쳐다보았다.
[그 때문이 아닐 겁니다. 약조를 맺었음에도 불구하고 굳이 찾아온 것은 어차피 찾아올 생각이었기 때문이겠지요.]빠드득, 오황은 이를 갈았다. 이미 무력 충돌이 있음을 느꼈고 희미한 기운 중 익숙한 몇 개를 발견하기도 했다.
오황은 분을 참지 못하고 씩씩댔다.
다른 건 몰라도 속았다는 생각에 울분이 치밀었다. 성질대로라면 당장 뛰쳐나가서 싸우고 싶다. 하지만 지금은 소림의 백년지대행사 중이다. 차마 마음대로 행동할 수가 없었다.
[내 책임을 지지. 진산식이 끝날 때까지 놈들이 이곳 대웅전에 발도 못 붙이게 하겠네! 놈들이 뒤에서 낄낄대고 있는 걸 생각만 해도 복장이 터져!]마해 곽모수가 인상을 잔뜩 쓰고선 한마디를 내뱉었다.
“그만두게. 호미로 막을 것을 가래로 막게 될 게야.”
“뭐?”
오황이 곽모수를 보고 눈을 부라렸다.
“네놈이 지금 내 말을 엿들었냐?”
“엿듣지 않아도 자네가 할 행동이야 뻔하지.”
“흥, 그렇다면 내가 당장 나가서 밖의 놈들을 다 때려잡을 거라는 걸 예측했겠구먼?”
“그러니까 말리는 걸세. 저들은 우리가 전혀 예측하지 못할 타당한 이유를 들고 나타날 테니까.”
“크윽…….”
“우선은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 볼 수밖에 없네. 소림에 와서 함부로 실력 행사를 할 정당한 이유가 있는지를.”
“그게 왜 하필 지금이냐고!”
“저들의 입장에선 일을 도모하고자 한다면 지금이 가장 적기이지.”
오황은 발을 동동 굴렀다. 그러나 당장은 그가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곽모수의 말대로다.
소림사의 내원만 하더라도 미륵정인팔대호원진이라는 절진이 발동되고 있어 철옹성이나 다름없다. 한 명이 열 명을 능히 막아 낼 수 있는 곳이다. 그곳이라면 천하의 우내십존이라 하더라도 마음껏 힘을 쓰기 어렵다. 환야 허량도 그 안에서 달아나지 못하고 발각된 전력이 있을 정도다.
그러나 지금은 진산식을 위해서 거의 대부분의 승려들과 제자들이 외원으로 나온 상태였다. 기마대를 상대로 갑옷을 벗고 계곡에서 탁 트인 평야로 나온 셈이다.
심지어 일반인 수천 명까지 함께하고 있어서 신속한 대응이 어렵다. 총 만 명이 넘는 인원이 어우러져 있으니 격전이 벌어진다면 일반인들의 피해가 만만치 않을 것이고 소림은 이를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제대로 된 대처는커녕 반응만 굼떠진다.
관부와 금의위에서 내세우는 명분이 무엇인지 이쪽은 전혀 알지 못하는 와중에 혹시 모를 격전에 일반 참배객들마저 보호해야 하는 부담스러운 상황.
이런 상황에서 소림이 선택할 수 있는 방법이 몇이나 있겠는가.
“안 돼…….”
오황은 굉운이 원주 한 명을 불러 조용히 말을 이르는 것을 보며 저도 모르게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지금의 방장 굉운이라면 취할 행동이 너무나 뻔했던 것이다. 굉운은 참배객들을 방패로 삼을 만한 이가 아니었다. 따라서 자신이 직접 이번 일을 해결하려 할 터다.
곧 소림의 뭇 승려들이 대웅전의 입구와 담 쪽으로 퍼져서 참배객들을 호위하는 형태로 선다. 속가제자들까지도 말을 전달받고 함께 행동하고 있다.
진산식을 참관하던 많은 참배객들이 불안으로 웅성거렸다.
굉보가 내공을 실어 중후한 목소리로 외쳤다.
“장내에 계신 시주님들께 알립니다. 이임식의 행사를 잠시 멈추도록 하겠습니다. 무슨 연유인지 알아보는 동안 본사 제자들이 이곳에서 여러분들이 안전하도록 모실 것이니, 부디 양해를 부탁드립니다.”
뎅뎅뎅뎅.
몇 번의 종이 더 울리자, 굉운이 결단을 내린 듯 연단을 내려왔다.
그 뒤를 원호를 비롯한 수뇌 원주들과 오황, 곽모수…… 그리고 두어 명의 내빈이 뒤따랐다.
쭉 갈라진 사람들의 사이를 지나가는 굉운과 원주들을 보며 소왕무와 대팔이 걱정스러운 얼굴을 했다.
“야, 이거 보통 큰일이 생긴 게 아닌가 본데?”
“그러게. 진산식을 하다 말고 갑자기 내려가실 정도로 일이 생긴 거야?”
사람들 틈으로 무 자 배 승려가 급히 다가와 마당 한편에 서 있던 장건과 소왕무, 대팔을 비롯한 속가제자 아이들에게 말을 전했다.
“너희는 이곳을 벗어나지 말고 손님들을 지키도록 해라. 알겠느냐? 손님들의 안전이 최우선이지만 너무 위험하다 싶으면 너희들의 몸은 스스로 지키도록 해.”
급하게 말하고 이동하려는 무 자 배 승려에게 소왕무가 물었다.
“사형! 무슨 일이에요?”
무 자 배 승려가 목소리를 낮추고 대답해 주었다.
“관군이 쳐들어온 모양이다.”
“예에? 왜…….”
“쉿, 조용히 해. 시주분들의 귀에 들어가지 않도록 하고. 상황이 파악되는 대로 시주분들이 밖으로 피신할 수 있도록 할 예정이니까, 똑바로 잘 지키고 있어.”
“아, 알겠습니다.”
무 자 배 승려는 명령을 전달하기 위해 다시 바삐 움직였다.
소왕무가 장건을 보고 낮은 소리로 물었다.
“건이 너는 뭐 아는 거 없어?”
“나도 잘…….”
다른 사람들이 아무것도 알지 못하는 일을 장건이라고 알 수 있을 리 없었다.
궁금한 것도 궁금한 거지만 관부 때문이라고 하니 장건은 그게 또 자신 때문인지 걱정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염려스러운 얼굴이다.
대팔이 흥분해서 말했다.
“도독부 문제는 잘 해결됐다고 하지 않았어?”
“그러게.”
“우리가 뭔가 해야 하지 않냐?”
소왕무가 타박했다.
“뭐, 인마? 우리가 뭐라고 나서냐. 뭘 할 수 있다고. 우내십존이 두 분이나 계시는데 너랑 내가 가서 ‘괜히 힘쓰지 마세요. 우리가 할게요.’ 그럴까?”
“아니, 그게 아니라 무슨 일인지는 알아봐야 할 거 아냐.”
“그건 그러네. 아, 도대체 뭔 일이야.”
대팔은 걱정스러운 얼굴로 굉운들의 뒷모습을 지켜보다가 팔꿈치로 장건의 옆구리를 쿡 찔렀다. 당연히 장건이 찔릴 리 없다. 사소한 동작이었는데도 불구하고 대팔의 팔꿈치는 빈 공간만 휘저었다.
“왜?”
아무렇지 않게 묻는 장건을 보며 대팔이 입맛을 다셨다.
“가 보자.”
“뭐?”
“무슨 일인지는 알아야 뭐라도 어떻게 해 보든지 말든지 할 거 아냐. 소림의 제자로서 아무것도 안 하고 가만히 있는다는 게 말이나 되냐?”
“하지만 사형이 여기서 손님들을 지키라고…….”
“그냥 구경만 하고 오는 거야, 구경만. 넌 궁금하지 않아?”
“궁금은 하지…….”
“그럼 가자. 살짝 보고 오면 되잖아.”
소왕무가 어이가 없다는 얼굴로 말했다.
“인마, 보고 싶으면 너 혼자 다녀와. 왜 건이를 꼬셔?”
“야, 나 혼자 갔다가 무슨 일 생기면 어쩌라고. 건이가 있어야 안심이 되지. 안 그래?”
“그럼 안 가면 되지.”
“누가 너한테 가자 그랬냐?”
대팔이 장건을 보며 독촉했다.
“가자, 건아. 응?”
장건도 궁금하긴 했다. 만약 지금의 일이 또 자기 때문에 생긴 일이라면 도저히 자기 자신을 용납할 수 없을 것 같았다. 아무리 소림에서 감싸 주더라도 책임을 져야 할 일이 있는 법이다.
그러나 분명히 사형들에게서 받은 명령은 이곳에서 평범한 일반인인 손님들을 지키라는 것이었다. 함부로 행동하기에는 아무래도 뒤끝이 찜찜하다. 그렇다고 모른 체할 수도 없고…….
장건은 고민했다.
하지만 그렇게 오래 고민할 필요는 없었다.
굉운이 대웅전의 정문을 나선 지 얼마 안 되어서, 아니, 바로 직후라고 봐도 될 만큼 무방한 시간 뒤에 갑작스러운 소란이 벌어졌다.
“앗!”
“무슨 짓이냐!”
밖에서 고함과 함성 소리가 들려왔다.
대웅전 밖으로 방장과 일부 원주들이 나갔기 때문에 대웅전 안에서 기다리던 승려들은 크게 놀랐다.
“뭐야?”
“따라와라!”
일부 나한들이 대웅전을 달려 나갔다.
진산식을 위해 중원 각지에서 본산을 찾아온 속가의 성인 제자들도 가만히 두고만 보고 있지 않았다. 표두나 표사를 하고 있거나 지역에서 무관을 운영하는 이들이 대다수였다. 일부가 나한들을 따라 대웅전의 밖으로 뛰쳐나간다.
참배객들이 웅성거리며 소란이 생기자 나이 어린 속가제자들도 어찌해야 할 바를 모르고 당황했다. 무진이 달려와 어린 속가제자들을 이끌었다.
“너희는 시주분들을 최대한 대웅전 안쪽으로 모시거라! 무공을 익히지 않은 학승분들도 함께!”
그러나 대웅전의 크기는 한계가 있고 수천 명을 다 수용할 수는 없다. 당장에 노약자를 전각 안쪽으로 대피시키고 마당에서 보호하는 형태로 설 수밖에 없었다.
쿵쾅거리며 계속해서 박투 소리가 나더니 밖으로 뛰쳐나갔던 속가의 성인 제자들이 정문 안쪽으로 계속해서 밀렸다. 몇몇은 맞아서 나동그라지고 몇몇은 포박된 채 굴렀다. 진형도 유지하지 못하고 밀리면서 대웅전 문 안으로 완전히 밀렸다.
쿠당탕탕!
대웅전의 정문으로 가장 마지막 속가의 성인 제자가 쫓겨나듯 맞고 날아들었다.
그리고 그쪽으로 일단의 무사들이 쏟아지듯 들어왔다.
불쑥!
정문뿐이 아니었다. 담 위에서도 여지없이 무사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이…… 이런!”
“무슨 일이 벌어진 거냐!”
황제의 권위를 상징하는 누런 금색 비단옷에 몸 전체를 누비는 용의 자수. 그 위로 덧댄 시커먼 묵색 갑주. 한 손에는 오랏줄을 들고 다른 손에는 대도를 든 모습.
“그, 금의위!”
흔히 볼 수 없는 이들이었으나 누군가 용케도 그들을 알아보았다. 하지만 오히려 그것은 역효과를 불러 일으켰다.
그 누구도 집행권을 벗어날 수 없다는 공포의 상징 금의위. 고관대작들조차 금의위가 모습을 드러내면 만사를 다 포기한다는데 일반 민초들이야 어떠하겠는가.
대웅전의 정문으로 들어선 금의위 무사들은 삼백여 명에 불과했으나 사람들은 당황했다.
“꺄아아악!”
“무, 무슨 일이야!”
수천 참배객들이 금의위라는 한마디에 완전히 혼비백산하여 얼어붙었다. 북방의 찬 바람보다도 더한 한기가 대웅전을 휘감는다.
담 위에 올라가 있는 이천 관병들이 단궁을 들어 화살을 활시위에 메기자, 공포감은 더욱 극심해졌다. 오죽 겁에 질렸으면 남녀노소 가릴 것 없이 비명 소리조차 내지 못하고 오들오들 떨기만 했다.
비록 무공을 배운 승려들과 소림의 속가제자들이 앞에서 보호해 주고 있다고는 하나 나라의 권력에 대한 직접적인 공포는 쉬이 떨쳐 내기 어려운 것이었다.
더구나 실질적인 수뇌부들이 모두 굉운을 따라나섰기 때문에 누구 하나 제대로 나설 만한 이도 없었다.
“낭패로구나…….”
무진은 식은땀을 흘렸다.
싸우려고 해도 싸울 수가 없었다. 금의위의 무력이 강하다는 건 알고 있으나 소림의 전 제자들이 그에 당하지 못할 바는 아닌 것이다.
하나 난전이 펼쳐지면 소림을 찾아온 일반 참배객들의 안전을 보장하기가 어렵게 되는 건 물론이고, 금의위와 관부에 함부로 대항했다가 또 다른 죄를 덮어쓰게 된다면…… 그때야말로 소림은 끝장이 날 터다.
무진은 입술을 깨물었다. 나무아미타불, 하고 불호를 외워 봐도 마음이 진정되지 않았다.
무언가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미심쩍은 불안감이 자꾸만 심기를 어지럽히고 있었다. 지금의 이 상황에서 뭔가 더 탈이 날 여지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게 뭐지?’
무진은 최대한 호흡을 고르면서 천천히 사방을 돌아보았다. 정문과 담장까지 올라 있어 완벽하게 포위된 상황.
그런데…….
거기에 이상한 게 있었다.
담에 올라 단궁의 활시위를 메기고 있는 관병들.
그중에서 일부는 도저히 일반 관병이라고 생각되기 어려운 눈빛을 가지고 있었다.
꽤 먼 거리임에도 불구하고 무진은 확신할 수 있었다. 특히나 몇몇은 무진이 승패를 장담하는 것조차 어려워 보였다.
‘이건…… 이건 결코 단순한 위협이 아니다!’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무진은 현재 가장 걱정해야 할 것은 다름 아닌 누구인가를 깨달았다.
“방장 사백조님!”
무진이 경악하여 소리쳤다.
굉운을 비롯한 각대 원주들, 그리고 소림을 찾은 몇몇 명사들은 대웅전의 앞을 벗어나자마자 꼼짝달싹 하지 못하고 포위되어 있었다.
수백의 금의위와 수천의 관병들이 그들을 완벽하게 둘러싼 상황이었다. 다들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굉운은 원래 수천 명 참배객들의 안전을 위해서 일부러 앞서 나와 관병들을 맞이하려 했다.
그러나 그것이 오히려 화로 작용했다.
금의위와 관병들이 가타부타 말도 없이 굉운들을 둘러싸더니 돌연 병력 중 일부가 대웅전 안쪽으로 들어가 버린 것이다.
그들의 목표가 무엇인지는 명확하다.
결국 대웅전의 일만이 넘는 이들이 인질이 되어 버린 셈이다. 또, 반대로 그쪽의 입장에서는 굉운들이 인질이 된 것이나 다름없는 상태가 된 것일 터였다.
어차피 대웅전에서 기다리고 있었다고 해도 상황은 마찬가지였을지 모르나, 심리적으로 받는 압박은 더 클 수밖에 없었다.
섣불리 움직일 수도 없었다. 이미 둘러싸이기 이전부터 찌를 듯한 살기가 사방에서 쏟아지고 있었으니까.
그것은 마치 ‘움직이면 죽는다.’라는 일종의 경고와도 같았다. 문제는 그 경고를 보낸 이가 단순한 수준의 무인이 아니라는 것, 그리고 한두 명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심지어 그것은 거의 우내십존의 수준에 준하는 살기였다. 마구 뒤섞여서 교묘하게 숨겨진 수많은 살기 중에 적어도 넷 이상이 그러했다.
“이놈들이 협박을…….”
오죽하면 오황조차 섣불리 움직이지 못했다.
오황은 눈을 부라렸다.
“어디의 어떤 놈이냐.”
하나 포위를 하고 있는 수천 명 중에서 숨어서 살기를 쏟아 내는 자를 찾기란 쉽지 않았다. 어디쯤에 있는지는 알 수 있지만 찾아낸다고 해도 별다른 방법이 없는 것이다.
마해 곽모수도 인상을 잔뜩 찌푸렸다.
그만큼 위협을 받고 있는 상황.
그러나 곽모수는 끝까지 가만히 있진 않았다. 다들 살기에 집중하고 있을 때 곽모수는 방장 굉운의 얼굴이 새하얗게 질려 가는 것을 보았다. 몸 상태가 정상이 아니니 살기를 버텨 내지 못하는 것이다.
인상을 잔뜩 찌푸리고 있던 곽모수가 거무죽죽한 철필을 들어 올렸다. 소림의 진산식에 참관을 위해 온 만큼 최소한의 불상사가 일어나지 않도록 살필 의무가 있다. 만약 지금도 관부가 아니라 무림의 문파와 일이 생긴 것이었다면 그가 나서서 중재를 했을 터다.
펄럭!
도포자락을 휘날리며 뛰어오른 곽모수가 내려앉으면서 철필을 내리그었다.
퍽!
사람 팔뚝 길이의 철필이 땅에 박혔다.
“위아래로 통하여 꿰뚫을, 곤(?)!”
우르르르.
철필을 바닥에 꽂았는데 바닥이 아니라 허공이 위아래로 길게 갈라지며 공기가 울음을 토해 낸다.
일순간 쏟아지던 살기가 잠시나마 뒤흔들렸다. 곽모수는 철필을 뽑아 크게 허공을 휘저었다. 잔뜩 엉킨 실을 되감는 것처럼 두어 바퀴 원을 그리더니 옆으로 힘껏 철필을 털었다.
살기가 철필의 움직임을 따라 마구 휘감겼다가 순식간에 사방으로 흩어졌다.
살기의 흐름이 흐트러지면서 잠시나마 여유가 생겼다. 몇몇 내공이 부족한 원주는 탁한 숨을 토해 내기도 한다.
울컥.
압박을 받고 있다가 풀려난 굉운은 더 버티지 못하고 입에서 핏물을 게워 냈다. 공명검에 다친 상처가 터져서 황색 승복이 적색 가사보다도 더 붉게 물들었다.
“사백님!”
“사형!”
원주들이 굉운을 둘러싸고 급히 호법을 섰다. 굉운이 하얗게 질린 얼굴로 고개를 흔들었다.
“괜찮네.”
심지어 굉운은 나서서 한마디 하려던 곽모수조차도 말렸다. 곽모수가 나서는 것을 본 굉운이 소매를 저어 막은 것이다.
다행히도 더 이상 살기는 쏟아지지 않았다. 곽모수는 뒤로 한 걸음을 물러났다.
대신 종암과 유장경이 금의위 무사들을 제치고 모습을 드러냈다.
“과연 흐름을 장악하는 자, 불가해(不可解)의 해법을 지닌 천문서원의 마해답군. 오랜만이오.”
“그렇소. 오랜만이오.”
아무렇지 않게 말하는 모습이 얄미웠는지 오황이 폭발했다.
“이 더럽고 치사한 놈들, 이게 무슨 짓이냐! 살기를 뿌린 나머지 두 놈은 또 어디 있어!”
굉운이 조용히 오황을 불렀다.
“본사의 일입니다. 제가 얘기를 하지요. 잠시만…… 잠시만 물러서 주십시오.”
“하지만, 방장 대사!”
“제가 합니다.”
오황은 나서고 싶었으나 굉운의 이루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단호한 얼굴을 보고는 끙 소리를 내며 물러섰다.
굉운은 좌우의 부축을 받으면서 앞으로 걸어 나왔다. 금방이라도 쓰러질 듯한 모습인데 눈빛만은 조금도 죽지 않았다. 가만히 유장경에게 시선을 두는데 오히려 지극히 담담한 눈빛이 독하게 느껴졌다.
굉운은 길게 얘기하지 않았다.
“자, 본사를 찾으신 이유를 듣겠습니다.”
그 짧은 말에 얼마나 깊은 분노가 담겨 있었는지 유장경은 저도 모르게 흠칫하고 어깨를 떨었다.
합당한 이유를 대지 못하면 이 같은 짓을 저지른 대가를 치르게 만들겠다는 강렬한 의지가 느껴졌다.
“흥.”
코웃음을 친 유장경이 월도를 땅에 찍어 세우고는 품에서 붉은 수실이 달린 금패(金牌)를 꺼냈다.
“상천권명(上天眷命)!”
유장경의 한 마디에 굉운이 눈을 부릅떴다. 뒤쪽 승려들도 놀라서 입을 다물지 못했다.
“헉!”
하늘을 우러러 명을 받들라는 말, 그것은!
순간 모두가 무릎을 꿇었다.
소림의 승려와 내빈들은 물론이고 유장경을 제외한 금의위와 관병 수천 명이 동시에 몸을 숙였다.
구―웅!
수천 명이 하나처럼 무릎을 꿇는 소리에 거대한 울림이 일었다.
황명이다.
이유여하를 불문하고 상천권명의 금패가 나온 이상 황제를 보듯 해야 한다.
유장경이 큰 소리로 외쳤다.
“근래에 간사한 무리들이 기승을 부려 죄 없는 백성들이 큰 피해를 입고 관청에 달려와 목 놓아 읍을 하고 탄원을 하니, 관인들이 충심으로 하나같이 이를 고하여 법과 질서와 짐의 덕이 모두가 어지럽혀 있다 하였다. 이에 임시 순검부사(巡檢副使) 종암을 우첨도어사(右僉都禦史) 휘하 순안감찰어사로 임명하여 상세히 살피게 하니, 순안감찰어사 종암은 교지에 따라 황명을 받들어 어명으로 이를 행하도록 할 것이며, 시위상직군의 부장 유장경은 순안감찰어사 종암이 백성들의 억울함을 살필 수 있도록 진충갈력(盡忠竭力)으로 보좌하여야 할 것이다!”
우르르릉―
내공까지 실어 울린 목소리였다. 근처의 전각 지붕에 올린 기왓장들이 덜그럭거렸다. 가까이에 있던 관병들은 고통스러워 귀를 막고 주저앉기도 했다.
지금의 목소리는 바로 앞에 있는 대웅전에서도 똑똑히 들었을 것이다. 아니, 아직도 메아리가 들릴 정도로 소실산 전체가 웅웅거리고 울렸으니까 소림의 모든 암자와 전각에서 들을 수 있었을 터다. 물론 그런 목적으로 힘껏 외쳤을 거라는 건 주지의 사실이다.
당연히 오황은 유장경의 외침을 듣고 당황스런 표정을 지었다.
“어사? 포쾌가 아니고 어사? 순안감찰어사?”
종암이 순검부사가 아니라 포쾌였던 것은 확실하다. 그러나 포쾌에서 어사가 되는 건 보기 좋은 일이 아니다. 하여 임시 순검부사로 품계를 올렸다가 다시 순안감찰어사의 직위를 내린 것이다.
하물며 유장경은 종암의 보좌 역할이다. 세상에, 금의위의 부장이 보좌하는 어사라니!
그러나 정작 중요한 건 종암이 어사가 되었다는 게 아니었다.
상천권명은 간사한 무리를 철저히 가려내어 징벌하라는 내용이었다. 그러한 칙령을 들고 종암과 유장경이 소림으로 왔다.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겠는가.
소림사를 백성들을 괴롭히는 간사한 무리로 지목하고 있다는 뜻이다!
유장경이 상천권명의 금패를 갈무리하자 승려들과 내빈들은 분분히 몸을 일으켰다. 하나같이 당황을 금치 못하는 표정이었다.
“이, 이런…….”
“어이없는 일이…….”
모두가 창백한 얼굴이 되었다.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 수가 없다. 만일 저것이 도독부의 사건으로 말미암은 것이라면 이미 어제 오황이 해결하지 않았던가!
그것 말고도 또 무엇이 있기에 간사한 무리니 뭐니 하며 황명을 들먹인단 말인가?
이대로라면 소림의 승려들이 모두 관부로 줄줄이 붙들려 가 문초를 받을 판이다. 무슨 일인지 알지도 못한 채 말이다.
황명까지 들먹인 이상 벗어날 길이 없다. 누군가의 모함이든 아니든.
곧 취임해야 할 입장이었던 원호도 어이가 없었으나 함부로 나설 수가 없었다. 아직 굉운이 이임하지 않았으니 나서기가 어렵다.
하지만 말도 안 되는 얘기를 들은 이상 그런 원호도 분기탱천할 수밖에 없었다.
“대명천지에 터무니없는 이야기로 모함을 하다니! 이런 일이 용납될 것 같소이까!”
그러나 굉운은 침착했다. 기다리라고 원호에게 손짓한 후 한 자 한 자 또박또박 말을 내뱉는다.
“그렇다면 잘못 찾아오신 것 같습니다.”
담대하다고 해야 할까? 그 침착함에 유장경은 눈살을 찌푸릴 수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