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ily Priesthood RAW novel - Chapter 137
제 6 장 흑개의 음모
양소은을 내려치려다가 멈춘 악천이 여유롭게 앞으로 고개를 돌렸다.
“호오, 이제야 나설 모양…… 응?”
거짓말 하나 안 보태고 악천은 황도팔위로 불리는 고수가 된 이후로 이렇게 놀라 본 적이 없었다.
장건이 십여 장은 족히 넘는 거리를 단숨에 격하고 나타난 것이다. 아니, 축지법을 쓰는 것처럼 한 번에 그만큼을 줄이고 나타난 건 아니었다.
꼭 표현을 하자면 발 없는 귀신이 다가오듯 쓱 하고 가까워지는데, 그 느낌이 심히 괴이했다. 보이지 않는 배라도 타고 땅을 미끄러져 다가오는 그런 느낌이었다!
“헉!”
악천이 짧은 신음을 내뱉었다. 잠깐 당황한 사이에 장건이 바로 앞까지 다가와 있었다.
“…….”
악천은 놀란 채로 멈추어 있었다.
그러나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
장건은 뭔가 얼굴을 벌겋게 물들이고서는 바로 앞에서 쳐다보고 있을 뿐이었다.
정신을 차린 악천이 장건의 가슴팍에 발길질을 했다.
“뭐, 이런 미친놈이!”
퍼억!
장건은 얻어맞고 뒤로 한참을 나가떨어졌다. 거의 삼 장을 데굴데굴 굴렀다.
“뭐지……?”
때린 악천도 놀랐다.
“이걸 맞았어?”
때리긴 했지만 이렇게 쉽게 맞을 줄은 몰랐다. 그래서 때려 놓고도 어리둥절했다.
지켜보던 소림의 승려들과 양소은마저도 멍했다. 환호성은 순식간에 꺼지고 장내는 조용해졌다.
눈 깜짝할 사이에 일어난 일이었다.
번개처럼 달려갔다가 번개처럼 맞고 나가떨어진 건…….
“장 소협!”
덕분에 악천의 위협에서 벗어난 양소은이 장건에게 달려갔다.
양소은이 부축하자 장건이 가슴을 문지르면서 비틀거리고 일어났다.
“으윽…… 그래서 내가 무공 못 한다고 했는데…….”
원망하는 투가 역력했다.
“미, 미안. 괜찮아?”
“끙. 괜찮아요. 맞는 순간에 많이 충격을 흘렸으니까.”
양소은의 눈이 퀭해졌다.
‘그게 무공을 못 하는 거냐?’
맞고서 삼 장을 굴렀다. 보통 사람이었으면 가슴팍이 다 주저앉았을 터였다. 그런데 무공을 못 한다고 말하는 모습을 보니 뭐라고 말을 해 줘야 할지 헷갈리는 양소은이었다.
물론 장건이 말하는 무공과 양소은이 생각하는 무공의 의미는 많이 달랐다. 명확하게 말하자면 내공을 못 쓴다기보다는 공력을 일으키지 못한다는 뜻이었으니까.
하지만 생활에서의 무공이나 사람과 싸우는 무공이나 장건에게는 똑같은 무공이다. 그래서 장건 스스로는 그것을 구분하기가 쉽지 않은 일이었다.
“끙.”
장건이 겨우 버티고 섰다.
파라락.
갑자기 장건이 몸을 떨었다. 양소은은 장건을 부축하고 있다가 저도 모르게 손을 놓치고 뒤로 살짝 밀려났다.
뭔가 굉장한 떨림이었다!
장건의 몸 뒤로 흙먼지가 뿌옇게 밀려 나갔다.
옷에 묻은 흙을 털기 위해 한 행동인 모양이었다.
“…….”
양소은은 잠깐 할 말을 잃었다가 방금 본 건 그냥 잊기로 했다.
그냥 방금 왜 그랬는지를 물었다.
“그럴 거면 왜 달려 나왔어. 뭐 하러 나와서 얻어맞아. 큰일 날 뻔했잖아.”
“앞에 서긴 했는데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서…… 통할까, 안 통할까 고민이…… 그래서 그냥 금강권이라도 써야 할까 했는데 그것도 잘 안 되더라고요.”
“하아…… 바보같이.”
양소은도 기분은 나쁘지 않았다. 어쨌거나 자신을 위해 달려와 준 장건이었다.
하지만 장건은 스스로 답답했는지 양소은에게 물었다.
“어쩌죠?”
그런데 그때, 장건의 앞에 이상한 노인이 나타났다. 정말로 이상한 노인이었다.
흰 머리는 뒤로 대충 묶어서 봉두난발이나 다름이 없고 수염도 덥수룩한데 입은 옷은 심하게 낡아서 여기저기 구멍까지 났다.
그런데 그런 차림에 비해 사람은 너무 깨끗하다. 주름진 피부는 손으로 밀면 뽀드득 소리가 날 정도로 윤기가 나고, 구멍이 날 만큼 오래되고 해진 옷은 색이야 바랬을지언정 티 없이 하얗다.
그러니까 더 이상하다. 성격이 깔끔한 선비라면 옷은 물론이고 옷매무새와 머리카락, 수염마저 잘 정돈하였을 터다. 그런데 이 노인은 옷매무새도 엉망이고 머리칼과 수염도 십 년 넘게 다듬지 않은 것처럼 엉망인데, 옷과 피부만 깨끗한 것이다.
깔끔하려면 다 깔끔해야 정상이 아닌가?
이 추잡하고 모순적인 상황에 장건은 상당한 압박감을 느끼고 있었다. 그래서 노인이 불쑥 모습을 드러낸 순간부터 몸을 옴짝달싹하기 어려울 정도로 오그라들어 있었다.
그런데 그 노인이 손을 내밀었다. 손에는 호리병이 들려 있다.
“뭐예요?”
“뭘까?”
“제가 물어봤는데요?”
노인이 히죽 웃는데 이빨은 닦지 않았는지 누렇다.
‘으윽!’
가뜩이나 깔끔을 떠는 장건에겐 노인을 보는 것조차 큰 고역이다. 장건은 움츠러드는 손발에 억지로 힘을 주면서 노인을 보았다.
“보아하니 이대로는 영 뭔가 안 풀릴 것 같아서 말이다.”
노인이 호리병의 마개를 열었다. 알싸한 냄새가 풍겨 온다. 숨이 턱턱 막히는 느낌이 드는 것으로 보아 굉장히 독한 듯하다.
“……술?”
“그래. 듣자하니 네가 취공을 좀 한다면서? 혹시 이게 필요하지 않으냐?”
교묘한 언변으로 장건을 구슬리는 노인이다.
“네? 취공이요?”
이 뜬금없는 상황에 장건도 잠깐 당황스러웠다.
술이라면 지긋지긋하다. 술을 마시고 난 후에 숙취를 생각하면 지금도 머리가 깨질 것 같았다. 심지어 먹은 걸 쏟아 내는 어이없는 속 울렁거림은 참을 수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장건은 호리병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어쩌면 그것이 지금 상황에 도움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술을 마시면 온몸의 감각이 느슨해지면서 내공이 스스로 움직이게 된다. 지금 같은 상황에서 내공을 움직이게 하려면 술을 마시면 되지 않을까?
지난번 술을 마셨을 땐 기의 가닥을 쓰지 않았다. 그냥 절로 다른 무공들이 튀어나왔다. 지금처럼 기의 가닥이 아니면 꼼짝도 할 수 없는 그런 상황은 벗어날 수 있는 것이다.
장건은 호리병을 받아들었다.
숙취는 괴롭지만, 지금은 마음이 더 괴롭다. 방장 굉운과 원호가 따로 떨어져 무슨 일을 당하고 있는지도 모르는 상황.
소림의 제자로서 할 수 있는 일을 해야 하지 않겠는가!
장건은 심호흡을 한 번 크게 하고는 호리병의 주둥이에 입을 가져다 댔다.
뒤늦게 달려온 제갈영이 놀라서 외쳤다.
“뭐 하는 거예요? 도대체 할아버지 뭐 하는 사람인데…….”
뭐 하는 사람인데 우리 오빠에게 술을 먹이려는 거예요? 하고 물으려 했다.
한데 장건이 술을 마시면 무슨 일이 생기는지 곧 깨달았다.
“어?”
장건은 술을 마시면 깽판을 친다.
지금 상황에서 왜 그런 일을 바란단 말인가?
물론 심마 때문에 무공을 제대로 펼치지 못하는 상황에서 술이 도움이 될지도 모른다. 그러나 부작용으로 더 안 좋은 상황을 야기할 수도 있는 노릇이다.
“오라버니! 술 마시면 안 돼!”
노인이 갑자기 살기를 띠고 제갈영에게 달려들었다.
“어딜 건방진 꼬맹이가.”
“앗!”
백리연이 황급히 제갈영을 뒤로 당겼다. 자신이 앞에 서서 보호하는 태세를 취했다.
“무슨 짓이에요!”
노인은 대꾸도 없이 손을 썼다.
휘릭!
마치 손을 안으로 감았다가 밀어내듯이 일장을 쭉 뻗었는데 어딘가 모르게 느물거리는 느낌이 들었다.
개방의 토룡장(土龍掌)이다.
노인은 바로 개방의 장로 흑개였던 것이다.
본래 흑개도 이렇게까지 할 생각은 아니었다. 이러자고 모습을 감추고 들어온 게 아니다.
하지만 어쩔 수가 없었다.
마을 어귀에서 수천의 관병들을 본 순간 깨달았다.
‘놈들, 아주 작정하고 소림으로 왔어! 이번만큼은 소림이 무슨 발버둥을 쳐도 도저히 벗어나지 못할 게야.’
흑개는 냉정하게 사태를 판단했다.
그냥 소림에 죄과를 추궁하러 왔다면 이 정도의 무력은 필요하지 않다. 뭐니 뭐니 해도 이 상황은 무림 문파 간의 싸움이 아니다. 황궁이 개입된 관부의 공적 집행이다. 그에 반하는 집단행동을 한다는 건 반역에 준하는 죄목이다.
그러니까 정말 사심 없이 소림에, 소림의 몇몇 승려에게 죄를 물으러 왔다면 한 십여 명의 관리나 관병으로 충분하고도 남는다. 소림으로서도 반역자의 탈을 쓰면서까지 대항하기는 어려울 게 당연하지 않은가.
그럼에도 이만한 무력 집단이 동원되었다는 건, 단 하나의 의미로밖에 해석할 수밖에 없다.
제대로 눌러 버리겠다는 뜻이다.
이른바, 소림은 본보기가 되는 셈이다.
황궁은 이번 일을 기점으로 강호의 모든 문파에 대한 압박을 거행할 것이고, 그 첫 출발을 실수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최대한의 무력을 동원하였을 터다.
‘설마설마했더니 결국 이런 일이 벌어지는군.’
가만 내버려 두면 강호 무림은 차례차례 각개격파를 당하고 말 터였다. 어떻게든 막을 방도를 찾아봐야 한다.
강호 무림은 워낙 개인적인 성향이 강해서 정말 최악의 상황이 아니면 뭉치려 하지 않는다. 강호 무림의 역사상 몇 번이나 맹(盟)과 련(聯)이 생겼으나 늘 오래가지 못하고 지지부진한 것도 다 그러한 연유에서다.
심지어 서장의 마교가 사천을 다 넘어와서야 비로소 맹을 결성하고 맞설 준비를 했는데, 누가 맹주가 되느냐로 설전을 벌이다가 한 달을 허비했다는 어이없는 얘기도 전해지고 있다.
그러니까 흑개는 앉아서 가만히 당할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이대로라면 강호 무림 전체가 위험해진다.
뭉치기 싫어하는 강호 무림이 뭉치지 않으면 안 될 정도의 강한 위기의식을 느끼도록 만들 필요가 있다.
물론 흑개는 불세출의 영웅도 아니고 어떠한 사명을 지니고 있는 것도 아니다.
하나 생각해 보면 사실 지금이 관부의 방해할 가장 좋은 적기였다.
관부의 무림 탄압 첫 출발지인 소림에서 무난히 일이 끝나지 않도록 할 수 있다면? 소란이 커지도록 부추길 수 있다면?
이를테면 상상도 하지 못할 정도로 소림이 끔찍하게 박살이 난다든가…… 수백 명의 사상자가 나온다든가…… 하는 식으로 말이다.
그렇다면 강호 무림은 충분히 위협을 느끼고 대처할 준비를 갖추게 될 것이었다.
‘소림은 버려야 한다. 이미 늦었어.’
어차피 소림은 표류하는 배다.
‘소림에는 안됐지만 살 사람은 살아야지.’
강호 무림이 똘똘 뭉친다면 황궁도 어쩔 수가 없다. 오랜 세월 뿌리를 박아 온 강호 무림을 분쇄하자고 수십만의 군사를 일으키기도 어렵다.
결국 소림이 죽어야, 그것도 처참하게 죽어야 강호 무림이 살아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소림의 파멸이 역설적으로 강호 무림의 결속을 가져올 터였다.
소림도 그것을 알기에 지금도 섣불리 움직이지 못하고 있지 않은가. 속가제자인 거력철권이 저토록 심하게 당했는데도 말이다.
‘그러니까…….’
흑개는 한 가지 방법을 떠올렸다.
소림에는 괴물이 있다. 보통 사람이라면 쳐다보기도 어려운 도독부에도 행패를 부릴 정도로 주사를 부리는 괴물, 그것도 단순한 주사가 아니라 무당의 태극경이나 개방의 취팔선보 같은 고도의 무공을 사용하는 괴물.
그 괴물을 끌어낼 수 있다면…….
하여 지금의 결과가 바로 그 같은 상황이었다.
흑개의 입장에서야 잘되면 좋은 거고 안되면 할 수 없는 거다.
원래 음모란 그러하지 않은가. 잘되면 영웅이고, 안되면 욕먹는 것이고.
하지만 이렇게 좋은 기회가 올 줄은 그 역시도 생각지 못했던 일이었다.
‘자, 황도팔위는 내가 시간을 끌어 줄 터이니 넌 관병들을 상대로 마음껏 난동을 부려 주려무나. 천하의 무송도 석 잔을 못 마신다는 독주를 네 병이나 챙겨 왔느니라!’
흑개는 그런 생각을 하면서 방해꾼인 백리연을 몰아냈다.
“귀찮으니까 꺼져라!”
마음이 급한 흑개다. 최대한 일을 빨리 끝내야 한다.
‘저놈들 뭐 하나?’ 하면서 멍하니 쳐다보는 악천이 끼어들기 전에 말이다.
“하압!”
흑개는 장을 밀면서 시선을 백리연의 가슴에 두었다. 백리연이 깜짝 놀라서 움츠리며 저도 모르게 가슴을 감싸자 기다렸다는 듯 척견지(斥犬指)로 바꿔 목을 찔렀다.
“큭!”
정파에 속했으나 무공을 쓰는 방식은 남녀를 가리지 않고 더럽다는 평을 듣는 개방의 무공이었다. 실제로 당해 본 것은 처음이라 백리연도 꽤나 당혹스러웠다.
백리연이 척견지에 찔린 목을 감싸 쥐고 비틀거렸다. 혈도를 찍혔는지 다리에 힘이 쭉 풀려서 서 있기조차 힘들어졌다.
“쿨럭쿨럭!”
잠깐 멍해졌던 제갈영이 이를 악물었다. 경쟁자의 입장이었지만 그래도 순간이나마 자신을 보호하려 한 백리연이 당하자 감정이 울컥 치밀었다.
제갈영이 천리삼수를 뻗으면서 흑개를 공격했다.
“이 나쁜……!”
하나 개방에서 손꼽는 고수인 흑개가 어린 소녀의 장법에 당할 리 만무했다.
철썩!
따귀 한 방에 제갈영의 고개가 돌아갔다. 순식간에 뺨이 벌겋게 물들었다.
제갈영이 흑개를 쏘아보며 소리쳤다.
“나, 나를 때렸어? 후회하게 될 거야!”
“어딜 방해를 하려고? 후회? 대의를 위해서라면 네깟 년을 거꾸로 뒤집어서 엉덩이를 까고 백 대는 더 두들겨 때릴 수 있다. 시팔, 어떤 개 같은 놈들이 이 어르신에게 욕을 해 댄대도 내가 꿈쩍이나 할 것 같으냐?”
흑개는 온갖 폭언을 퍼부으면서 제갈영을 발로 차 버리려 했다.
소왕무와 대팔을 비롯한 속가제자 아이들이 놀라서 저마다 달려들었다. 소림의 나한들까지도 달려들 태세였다.
“무슨 짓이오!”
그러나 그보다도 빠르게 뭔가가 먼저 움직였다. 사람이 움직인 건 아니었다. 아무것도 움직이지 않았는데 움직였다고 생각할 따름인, 그것이 움직였다.
퍽!
흑개의 시야가 휙 하고 옆으로 뉘어졌다. 아니, 자신의 머리가 옆으로 기울어 있어 그렇게 보이고 있다.
“어? 뭐, 뭐가…….”
깜짝 놀란 흑개가 뒤로 물러서면서 양팔을 들어 방어 태세를 취했다. 하지만 아무도 없었다.
“어떤 놈이 날 건드린…….”
보이는 거라곤 독주를 다 마신 장건뿐이다.
가만 보니 장건이 뭔가 이상하다. 벌써 흐느적거린다.
딸꾹, 하고 딸꾹질도 한다.
“어? 설마 벌써?”
아무리 독주라도 취하는 데에는 시간이 필요한 법이다. 그런데 이건 빨라도 너무 빠르다. 그래서 흑개는 지금의 상황을 잘 이해할 수 없었다.
흑개는 매우 찜찜했다. 이렇게 빨리 취하는 사람은 본 적이 없었다.
이윽고 장건이 눈을 들어서 흑개를 보는데 눈동자가 반쯤 풀렸다. 얼굴도 발그스름하다.
장건이 반쯤 꼬인 혀로 말했다.
“누구한테…… 소늘 대?”
“뭐?”
흑개가 그렇게 되묻는 순간 허공에서 공력의 움직임이 느껴지더니 갑자기 눈앞에 별이 반짝였다.
투다다닥!
뭔가 정신없이 마구 쏟아진다. 뭔지는 몰라도 누가 자신을 두들겨 패고 있는 중인 건 확실하다! 하지만 반탄력에 의해 튕겨 나거나 하는 느낌은 전혀 없다!
‘장풍인가? 어떤 미친놈이 장풍을 이따위로!’
흑개는 그래도 나름대로 개방의 고수인 탓에 찰나에 한 모금의 호흡을 머금었다. 호흡이 있어야 단전의 기를 빠르게 순환시켜서 내공으로 몸을 보호할 수 있다.
하지만 단순히 얻어맞는 중이 아니라 공격에 상당한 공력이 실려 있어서 맞을 때마다 몸이 울렸다.
펑! 펑! 하고 머릿속에서 뭐가 터지는 듯한 굉음이 울릴 때마다 내공의 흐름이 뚝뚝 끊겼다.
내공이 일 갑자를 훨씬 넘어선 흑개다. 내공(內功)은 단전에 축적한 기를 뜻하기도 하지만 내적으로 수양과 공부를 쌓은 시간을 의미하기도 한다. 이렇게 허무하게 막무가내 공격에 쓰러질 게 아니었다.
흑개가 막 호신기공을 극대로 끌어 올리면서 보법을 밟고 몸을 피하려는 찰나.
쩡!
전혀 이해할 수 없는 맑고 청아한 파열음. 꼭 술을 마시다가 잔을 집어던져서 깨지는 그 비슷한 소리가 환청처럼 들려왔다.
“어, 어…… 어?”
호신기공을 다 끌어 올렸는데?
그런데 왜 아무 소용이 없지?
쿵.
흑개는 어느새 딱딱하고 차가운 바닥에 뺨을 맞대었다. 그야말로 눈 깜짝할 사이였다.
너무 빠른 시간이었기에 상황을 제대로 이해하지도 못했다. 흑개는 겨우 목만 움직여 앞을 보았다.
“겨우 맞혔네…… 자꾸 빗나가, 딸꾹.”
하고 이상한 소리를 내뱉는 장건이 저 앞에 서 있을 따름이었다. 거리도 댓 걸음은 더 떨어져 있었다.
누가 때렸는지 아직도 모르는 흑개다.
분위기상으로는 장건이 때린 게 분명한데 말이다.
‘이상…… 하네…… 어떤 놈이 날 팼지? 저놈인…… 가?’
가물어져 가는 정신으로 흑개는 끝까지 유추에 유추를 거듭했다.
소림의 정문에서 백리연의 추종자 백 명을 쓰러트린 사건과 도독부 사건 당시의 얘기를 들어 보았을 때 장건은 근접에서의 박투술에 능한 것으로 추정된다.
상대의 허점을 파악하고 내공을 집중해 일순에 날려 버리는 수법을 쓴다고 한다. 문각의 백보신권을 전수하였다지만 사실 누가 봐도 문각의 백보신권과는 거리가 있다.
어쨌거나 일설에는 오황과도 손속을 겨룰 정도였다니까 장건의 박투술이 상당한 경지인 것은 확실하다.
‘근데 저놈…… 멀리 있잖아. 저렇게 취해서 순식간에 날 패고 다시 뒤로 돌아갔다고? 내가 전혀 모르게? 그건 말이 안 되지.’
하지만 흑개가 미처 모른 것이 있었다.
장건이 백리연의 추종자들과 박투를 한 것은 분명히 몇 달 전이었다. 그리고 바로 얼마 전만 해도 도독부의 병사들과 쌍봉우사를 태극경과 박투로 쓰러트렸다.
그사이의 기간은 매우 짧다.
그래서 장건이 뭔가 달라졌을 거라고 생각하긴 어려운 게 확실하다. 게다가 이런 말도 안 되는 기괴한 수를 쓰는 건 더더욱 예측하지 못했을 테고 말이다.
하지만 그가 한 가지 놓친 게 있었다.
도독부의 병사들과 시비가 벌어졌을 때 장건이 단순히 술에 취했던 상태가 아니라는 점이었다.
오황은 장건에게 술을 먹이면서 분공산을 함께 썼던 것이다!
태극경에 취팔선보까지 자유로이 구사했는데 내공을 제대로 운용하지 못하도록 만드는 분공산을 썼을 거라고는 전혀 생각할 수도 없었던 것이다!
물론 예상을 했더라도 흑개가 그것마저 확실하게 알 방법은 없었다.
당시의 장건은 분공산 때문에 의도대로 내공을 운용하지 못하고 그저 내공이 움직이는 대로 내버려 둘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오래전에 홍오에게 배웠던, 술에 취했을 때 가장 유용한 취팔선보와 후량심공의 오의가 절로 배어나왔다.
그러니까 내공은 움직였지만 의도대로는 아니었고, 그러다 보니 기의 가닥을 마음대로 사용하지도 못했다.
그러나 지금의 장건은 그냥 술에 취한 상태일 뿐이다. 방금까지는 잡생각이 많아서 몸과 마음의 일치가 안 되었고 그 때문에 내공을 움직이지 못했을 따름이다.
하나 이제 술에 취해 잡생각은 사라지고 ‘비은’에 대해 초조하게 부담감을 느낄 필요도, 느낄 정신도 없게 되었다.
“……딸꾹! 그래, 뭐, 통하는 사람한테 쓰고 안 통하면 말지, 뭐!”
술에 취해서 오히려 생각이 더 편해졌다.
하수에겐 그냥 잘 통하는 기의 가닥을 쓰고, 고수에겐 안 되면 말고!
원호도 그러지 않았던가. 고수에겐 안 통할 거라고. 그건 굳이 고수가 아닌 하수에게까지 기의 가닥을 쓰지 않을 이유는 없다는 얘기도 되는 것이다!
그런 배경을 모르는 흑개에게 지금의 이 말도 안 되는 기괴한 상황은 전혀 이해가 되지 않을 수밖에.
‘이상하네…… 근데 왜 자꾸 졸리냐? 시팔…… 이대로 잠들면 안 되는데…… 좀 더 난동을 피워야…….’
가물어져 가는 그의 흐릿한 시야에 들어온 것은 씩씩대고 있는 한 소녀와 분노에 찬 미녀의 얼굴, 그리고 험상궂은 소림의 속가제자 아이들의 얼굴이었다.
“내가 후회하게 될 거랬지!”
그 말에 흑개는 온 힘을 다해서 몸을 일으켰다.
“이런…… 개 같은 꼬마 년이…….”
“이야아앗! 쓰러져라, 악적아!”
제갈영의 강력한 선풍각이 흑개의 턱에 적중하고, 흑개는 ‘켁.’ 하는 외마디 비명과 함께 누런 이빨 한 개를 날려 보내면서 옆으로 자빠져 버렸다.
다른 사람이 보기엔 그냥 혼자서 고개를 휙휙 돌리다가 넘어졌는데 제갈영이 마무리로 쓰러트린 것처럼 보였다.
그리고 그것이 악천이 본 장면이기도 했다.
“……뭐냐?”
무언가 이해할 수 없는 장면이었다.
갑자기 왜 다른 데서 싸움이 났을까?
근데 싸움이 난 건 난 거고 뭐가 어떻게 된 건가? 노인이 혼자서 두리번거리다가 작은 소녀에게 맞아서 나자빠진 이유는 무엇인가?
‘백보신권의 전승자 꼬마가 뭘 마시는 걸 보니…… 술인가?’
도독부이 사건 때 술을 마시고 그랬다더니 지금 그것과 관계가 있는 건가 싶다. 어쩐지 몸놀림에 비해서 바보같이 맞고 나가떨어졌다 했더니, 술을 마셔야 하는 모양이다.
‘개방 놈들. 이번 소림의 일이 끝나면 잡아서 족쳐 봐야겠군. 소림의 백보신권 전승자와 무슨 관련이 있는지.’
당연히 악천도 방금 쓰러진 노인이 개방의 흑개라는 건 알지 못했다. 그가 아는 한 세상에 저렇게 깔끔한 개방 거지는 없었다.
그러나 어쨌든 간에 지금 중요한 건 자신이 철저히 무시되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기분이 나쁘군. 본보기로 화살이라도 한 방 먹이라 할까?”
그렇게 중얼거리면서 악천이 행동을 하려 하는데, 갑자기 장건이란 녀석이 자신을 쳐다보았다. 옆에 있는 이들이 자신을 손가락질하며 뭐라고 마구 떠벌리고 있었다.
“흥.”
곧 장건이 자신을 향해 다가온다.
비틀비틀.
등에 붕대를 친친 감은 이상한 막대를 메고 다니는 것도 이상한데 비틀거리기까지 하니 우습게만 보인다.
그러나 도독부의 일을 알고 있으니 방심은 하지 않았다.
한 걸음, 두 걸음.
점점 가까워지는데 어느 순간 짜릿한 감각이 피부에 와 닿으며 그에게 경고를 날린다.
악천이 본능적으로 허리를 뒤로 젖혔다.
부아앙!
장력이 실린 게 분명한 바람이 그의 코끝을 스쳐 지나갔다. 덕분에 억지로 붙인 수염이 한쪽 떨어져 나갔다.
“이런!”
정신이 번쩍 들었다.
‘설마 이것이 백보신권?’
백 보 이내의 거리에서는 벗어날 수 없다는 백보신권!
운 좋게 한 번 피하기는 했으나 전혀 예측하지 못했다.
상대의 수를 알지 못했을 때에는 후속 공격을 대비해서 자리를 벗어나는 것이 상책이다.
악천은 다급하게 몸을 틀어 바닥에 납작 엎드렸다. 강호 무림에서는 바닥에 몸을 굴려 피하는 걸 수치스러운 나려타곤이라 부르듯 황궁에서 쓰이는 신법에도 그러한 종류가 있다.
합가경신(蛤嫁驚身)!
못생긴 두꺼비가 시집을 와서 사람인 신랑이 그것을 보고 놀라 달아나는 모양새, 라는 뜻으로 이름이 붙은 신법이다. 그러나 황궁 무공에서는 수치나 부끄러움이 아니다. 단지 움직임이 우스워서 그렇게 재미난 명칭이 붙었을 뿐이다.
악천은 신법의 명칭 그대로 몸을 답싹 붙였다가 두꺼비처럼 펄쩍 뛰어 이 장을 움직였다. 사람의 행동이라고는 보기 어려울 정도로 기괴하였으나 굉장히 빠르고 탄력적인 움직임이었다. 설사 화살을 쐈어도 맞히기 어려워 보일 정도였다.
악천이 펄쩍 뛰는 순간 모골이 송연하게도 장력 같은 것이 아슬아슬하게 스쳐 지나가며 그가 서 있던 자리를 박살 냈다.
퍼퍽! 하고 돌가루가 튀었다.
순식간에 거리를 벌린 악천은 겨우 숨을 고르면서 장력이 날아온 정면을 응시했다.
확 트인 시야에는 어느새 사 장 정도 거리를 두고 떨어져 있는 장건이 보일 뿐이다.
장건이 말했다.
“아저씨가 양 누이를 괴롭혔…… 어, 음…… 아저씨? 음…… 아저씬가?”
장건은 소리를 치려다가 말았다가 크게 말하려다가 말았다가 했다.
악천은 환관이었다. 남성의 구실을 못하는 그를 놀리는 듯한 기분이 들어서 더 짜증스러웠다.
“이놈이?”
혀가 꼬여 있는 걸 보니 확실히 술에 취한 모양이다.
“무슨 말을 하려는 거냐! 말을 하려면 똑바로 해!”
“화났어! 화나! 왜 자꾸 내…… 음음…… 을 괴롭히는 거야!”
“뭐? 음음이 뭐야!”
또 혀가 꼬였다. 장건이 뒷말을 이으려 했다.
“내…… 내…….”
장건은 고개를 갸웃갸웃거렸다.
악천은 짜증이 치밀어서 듣는 것조차 고역이었다. 그런데 음음이 뭔지 궁금하긴 했다.
혹시나 수작을 부리는 걸까 봐 바짝 긴장을 하고 장건을 노려보았다. 무슨 말을 하려는 건지.
“내…… 음…….”
장건이 한참 고민하다가 다소 자신 없는 투로 말했다.
“내 부인들?”
“…….”
지켜보던 모든 사람들이 한순간 현기증을 느꼈다. 수천 명이 긴장해서 숨죽이고 바라보고 있었는데 한다는 말이 ‘내 부인들?’이라니!
그것도 당당하게 ‘내 부인들을 건드려서 화났다!’도 아니고!
악천도 어이가 없었다.
“부인이라는 거냐, 아니라는 거냐!”
말투에 짜증이 묻어 나왔다.
어렸을 때 혼인하는 거야 아예 없는 일도 아니다. 그런데 부인이면 부인이지 ‘부인들?’ 하고 자신 없이 말하는 건 뭐란 말인가.
게다가 아무리 생각해 봐도 부인‘들’을 건드린 기억은 없다. 그가 상대한 건 건장한 체구의 중년인과 곤을 쓰는 방년의 소녀 둘뿐이다.
문득 악천은 멀리에서 사람들이 간호하고 있는 거력철권 곽산을 쳐다보고 말았다.
“…….”
욱하고 화가 치밀었다. 환관들 중에는 남색을 즐기는 이들이 있다. 사람들이 흔히 환관을 보면서 조롱할 때 그런 이유를 들기도 한다. 남자도 아니고 여자도 아니기 때문에 겪는 설움이다.
어쩐지 그것을 보란 듯 대놓고 ‘부인들’이라면서 비아냥대고 있는 것처럼 들렸다. 자신이 정체를 숨기고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참을 수 없이 화가 났다.
“이노옴! 눈치 하나는 빠른 것 같구나! 하나 네놈은 스스로 화를 자초한 것이다!”
악천이 공력을 한껏 끌어 올리고 시뻘겋게 핏발이 선 눈으로 장건을 향해 쇄도했다.
황도팔위는 온갖 영약으로 키워진 고수. 특히나 지근거리에서 박투를 특기로 하는 악천은 거리를 좁히는 신법에도 일가를 이루었다. 일 장의 거리라면 주먹을 내지르는 속도만큼 빠르게 좁힐 수 있다.
내공을 폭발시키듯 뿜어낸 악천은 눈 깜짝할 사이도 되지 않는 시간에 장건의 지척에 이르렀다.
그리고 그 순간에 허공에서 수차례의 먼지바람이 일었다.
콰콰쾅! 쾅!
악천이 양팔을 앞으로 교차해서 팔뚝으로 무언가의 공세를 막아 냈으나, 주춤거리면서 두어 걸음이나 밀려났다.
“큭!”
팔이 저릿저릿한데 옆구리에는 한 방 얻어맞기까지 했다.
“이게 무슨…….”
사람의 팔은 둘이다. 아무리 빨라도 둘 이상의 공격을 동시에 적중시킬 수는 없다. 삼심 개의 검영(劍影)을 만드는 쾌검수도 한 호흡에 삼십 번의 검을 뿌리는 것이지, 동시에 삼십 번을 찌를 수 있는 건 아니다.
그런데 네 번의 공격을 받았다.
분명히 동시였다.
‘이런 말도 안 되는 일이!’
욱씬거리면서 팔뚝이 아파 왔다. 충분히 내공을 끌어 올려서 둘렀는데도 상대 역시 내공을 집중한 모양이다.
게다가 악천의 등골을 서늘하게 만든 것은, 그가 장건의 움직임을 전혀 보지 못했다는 점이었다.
‘이렇게 빠르다고?’
악천은 간만에 긴장했다.
본래 원호는 장건에게 ‘너의 수법은 일정 수준 이상의 고수에게 통하지 않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황도팔위의 악천이라면 충분히 원호가 말한 일정 수준 이상이 되는 고수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원호는 거기에 한 가지 단서를 달았다.
‘건이 네가 쓰는 수법을 상대가 알게 된다면.’이라고 말이다. 심지어 그 수법을 알고 있으면 몸으로 받아서 흘려 낼 수도 있다고도 했다. 원호조차 무진과 곽모수에게 미리 언질을 듣고 있었기에 큰 낭패를 보지 않을 수 있었다.
강호에서 삼 푼의 힘을 숨기라고 말하는 건 그러한 이유다. 상대가 전혀 예측하지 못한 수는 언제든 최소한의 이득을 보장하는 법이다.
한데 악천은 아직 장건의 수법을 파악하지 못했다.
누구라도 마찬가지다. 아무런 움직임도 없이, 사람이라면 응당 있어야 할 최소한의 움직임도 없이 장풍을 쏘고 암경을 흘려보내는 일은 도저히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인 것이다.
거기다 설상가상으로 술까지 먹고 취공을 하는 중이다.
악천은 등 뒤로 식은땀을 흘렸다. 겉으로는 태연하나 속으로는 당혹함을 금치 못하고 있었다.
“네가…… 문각 선사의 백보신권을 잇는 전승자가 확실한 모양이구나.”
알면서도 말을 걸어 조금이라도 시간을 벌어 보려는 악천이었다.
장건은 완전한 인사불성까지는 아니었지만 술에 취해서 그 말에 홀랑 넘어갔다.
“배뽀…… 신껀? 딸꾹, 딸꾹! 으…… 이 아자씨 이상해.”
딸꾹질을 하면서 비틀거리는 장건이었다.
악천이 눈을 빛냈다.
무공의 흐름은 호흡과 맞닿아 있다. 호흡이 운기행공의 모태이며 근간이다. 호흡은 내기의 흐름을 관장하고 조장한다.
내공을 모아 끌어 올릴 때는 숨을 들이마시고, 내공을 펼칠 때는 숨을 내뱉는다. 숨을 멈추어 휴지(休止)하는 것은 튀어 나가려는 내공을 잠시간 억눌러 축적시켜서 더 큰 힘을 발휘하게 만든다.
그런 상황에서 딸꾹질을 한다는 건 호흡에 문제가 생기는 것이고 크나큰 빈틈을 노출하는 셈이다.
취공에 대해서는 잘 모르나, 그 같은 일반적인 상식마저도 거스르지는 않을 것이다.
악천이 발바닥의 용천혈에 기를 모았다가 뿜어내며 득달같이 달려들었다. 여전히 움직임을 보이지 않는 장건이지만, 악천은 허공에서 공력의 움직임을 느꼈다.
장건이 반응했다는 뜻이다.
‘벌써?’
어떻게 장력을 쏘는지 눈으로 포착하지는 못했으나 비틀거릴 때 뭔가 수작을 부리는 듯싶다.
그렇다고 애써 잡은 기회를 버릴 악천이 아니다.
‘백보신권의 수법이 생각보다 빠르고 강력하긴 하나 어차피 은밀한 수법인 이상 위력이 떨어지기 마련이다. 내공에 있어서는 내가 이 꼬마보다 배는 더 앞서 있다. 호신기공과 반탄지공으로 맞받아 내면 큰 내상은 입지 않을 게야!’
계산이 끝난 악천은 몸으로 장건의 공격을 그대로 받아 냈다. 강력한 내공을 바탕으로 펼쳐진 호신기공이 날아드는 기의 가닥과 맞부딪쳤다.
퍼퍼펑!
맞는 부위로 공력이 파고들었으나 곧 반탄력으로 튕겨 나갔다. 제아무리 황궁이래도 유서 깊은 문파의 고유한 내공심법을 따라갈 수는 없다. 대신 갖은 영약의 섭취로 내공만 근 삼 갑자에 이르는 악천이다. 대비를 못 했다면 모를까 벌써 대비를 한 상태다.
과연, 충격이 있었지만 버틸 만했다.
“놈!”
악천은 먼저 손을 뻗음으로써 공격을 시작했다. 손바닥을 쫙 펴서 장력을 한껏 품었다.
풍동천하장(風動天下掌)이다.
천하에 바람을 일으킨다는 거대한 뜻을 품은 장법이지만, 화려한 이름을 가진 무공이 늘 그러하듯 강호에서는 익히 알려진 삼류장법 중 하나였다.
황궁에 쓸 만한 장법이 없어서가 아니다. 악천이 노리는 바가 있기 때문이다.
본래 악천이 가장 자신 있어 하는 건 상대의 반응을 보고 대처하는 능력이다.
사람의 몸은 관절과 뼈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에 그 움직임에 한계가 있다. 사람이 뼈와 관절을 직접 움직일 수 없으니 근육을 쓴다. 근육이 당겨지면 팔이 굽혀지고 늘어지면 펴진다. 근육은 힘을 응축하고 전달하는 가장 중요한 구성이다.
몸의 어떤 부분이든 마찬가지다.
거기에다 단순히 근육을 움직이는 것에 그치지 않고 ‘힘을 싣는다.’라는 형태가 되면 조금 더 복잡해진다.
대부분의 무공 초식은 힘을 가장 효율적으로 발휘하는 데에 그 묘리가 있고, 가장 절제된 움직임으로 힘을 발생시킨다.
예를 들어 밀쳐 내는 동작이라면 팔을 당겼다가 멈춰서 정지력(停止力)으로 힘을 축적했다가 밀어내게 되는데, 손이 먼저 가느냐, 지지가 되는 다리와 무릎이 먼저 움직이느냐에 따라 힘이 실리는 정도가 다르게 된다. 다리가 먼저 움직이는 쪽이 훨씬 강한 힘이 실린다.
그것이 무공의 초식이라면, 그 동작을 보고 얼마나 힘이 실릴지를 예측할 수 있다. 손이 먼저 움직인다면 변초를 생각하고 있는 확률이 큰 것이고, 다리와 허리가 먼저 움직인다면 뒤 없이 일격필살의 형태가 될 확률이 커진다. 작은 동작만으로도 상대의 의도를 충분히 예상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안법을 배우는 이유도 실은 그러한 연유다.
일부가 아니라 상대의 몸 전체 움직임을 눈에 담는 수련을 함으로써 공격의 기미를 예측하려는 것이다.
물론 무리(武理)라는 것이 겨우 몇몇으로 단정 지을 만큼 단순하진 않다. 목숨을 걸고 싸워야 하는 상대에게 내 몸짓을 그대로 보여 주는 건 약점을 고스란히 노출하는 것이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수많은 형태의 방어적인 수법들이 생겨났다.
당장에 안법만 해도 시야를 넓히는 방법이 있고 상대를 혼란시키는 안법이 있다. 사람은 늘 목적으로 한 곳에 시선을 두기 마련인데, 일부러 초점을 모호하게 흩어 놓아 상대가 자신의 눈을 보고 공격의 위치를 가늠하지 못하게 만들기도 한다.
몸의 움직임도 마찬가지.
단순한 형태로 힘을 전달하면 상대에게 의도를 들키게 될 뿐이다.
하여 힘의 전달 방식에 따라 수많은 방법들이 파생되었다. 같은 선상에서 힘을 전달하거나 역방향으로 뒤틀어서 전달하는 방법, 예기치 못한 동작 중에 정지를 걸어서 상대가 방어의 때를 놓치게 만드는 법, 정지 상태에서 순방향 역방향으로 또 전환하는 방법 등.
그러나 최종적으로는 똑같다.
아무리 내공의 힘을 더해서 움직임을 줄이고 갑작스런 변화를 만들어 내도, 기본은 변하지 않는다. 팔꿈치와 무릎은 뒤로 꺾이지 않고 손바닥이나 손등이 팔뚝에 닿을 수는 없으며 뒤통수를 등에 닿게 할 수는 없으니 말이다.
일단 초식이 다 펼쳐진 후에는 수만의 변화를 펼칠 수 있을 터이나, 초식이 막 시작되는 지점. 그 지점에는 인체의 한계로 인해 동작이 명확한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거력철권 곽산의 공세를 완벽하게 봉쇄한 것도 악천이 그러한 점을 잘 파악하는 능력을 가졌기 때문이었다.
상대의 미세한 움직임도 놓치지 않고 공격을 예측한다. 예측한 공세를 봉쇄하는 동시에 접촉이 일어나는 순간 장심으로부터 내력을 쏟아 암경을 침투시킨다. 그러면 상대는 영문도 모르고 공격을 하다가 점차 내부가 망가지고 만다.
이것이 바로 악천이 자랑하는 수법이다. 동창 고수들 대부분이 암경을 사용하지만, 상대의 공세를 완벽할 정도로 예측하고 그로 인해 이득을 보는 수법은 악천이 가장 뛰어나다. 환우신장이라는 별호 아닌 별호도 그로 인해 얻었다.
그러니 지금 장건에게 풍동천하장이라는 평범한 일장을 날리는 것도 사실은 때려서 쓰러트리고자 함이 아니다.
일부러 평범한 일장을 날린 것은 장건이 반격을 해 오도록 유도하려는 셈이다. 반격을 재반격하여 자신의 수법 안으로 끌어들이려는 작정이다. 보통의 무인이라면 이 빈틈 많고 허술한 풍동천하장을 보곤 웬 떡이냐며 냉큼 반격을 해 올 터다.
거기에서부터 악천의 사냥이 시작되는 것이다.
하지만.
장건은 그냥 피했다.
조금의 미동도 없이.
그냥 원래 옆에 서 있었던 것처럼.
“으익!”
하는 기분 나쁜 소리를 내면서.
슉.
악천의 왼손이 장건의 오른쪽 어깨 바로 옆을 훑고 지나가며 바람 소리만 냈다.
“어?”
못 봤다.
어깨도 움직이지 않고 허리도, 다리도, 팔도 흔들리지 않았다. 나무토막을 고스란히 옆으로 당겨서 옮겨 놓은 것 같았다.
인체의 움직임을 고스란히 꿰고 있는 악천에게 그것은 신기루가 아니면 이해되기 힘든 일이었다.
장건이 스스로 움직인 건 맞는데, 사람의 움직임이 아니다.
‘이런 이상한 일이!’
악천이 당황함을 감추며 다시 공격을 감행했다. 어쨌거나 거리는 완벽히 좁혔다. 이런 지근거리에서는 암경을 제대로 운용하기 힘들다. 느릿한 암경보다 손발을 놀리는 것이 더 빠르다.
‘죽어라! 백보신권의 전승자 꼬마 놈!’
뻗었던 왼손은 조공으로 변환하여 장건의 어깨를 할퀴고, 오른손으로는 손가락을 모두 굽혀서 붙인 후 장심과 엄지손가락의 뿌리 아랫부분인 장저(掌底)로 관자놀이를 후려쳤다.
좌우에서 가운데로 치는 형국이라 도저히 양옆으로는 빠져나갈 수 없다.
게다가 몸을 굽혀 피할까 봐 왼발로 발목을 몰래 걷어차는 수를 더했다.
뒤로 물러날 경우를 대비해서 오른발의 뒤꿈치를 들고 발가락에 지긋이 힘을 주어 바닥을 누르고 있기까지 했다. 뒤로 물러나는 순간 튀어 나가 공격을 잇기 위함이다.
그야말로 환우신장답게 절묘한 한 수였다. 이제 장건은 막거나 혹은 뒤로 피해야 하는데, 어느 쪽이든 악천의 공세에서 벗어날 수가 없는 형국이었다.
가진 바 내공을 모두 돌려서 어느 하나 맞고서 무사할 수 없는 공격이다. 조공의 수법에 잡히면 어깨뼈가 으스러질 것이고, 장저에 맞으면 머리통이 터질 것이며 발목이 걸리면 관절이 나가고 뼈가 부러질 터다.
훅!
거센 바람 소리가 날카롭게 울렸다. 악천의 왼손 갈퀴가 장건의 어깨를 통과해 지나갔다. 허상을 스쳤다.
‘흥. 첫 공격은 피했다 이건가?’
장건의 어깨는 탈골된 듯 밑으로 축 쳐져 있었다. 그래서 조공이 빗나간 것이다.
‘응?’
놀랄 틈도 없이.
딱!
하는 소리가 났다.
악천의 두 번째 공격인 오른손 장저가 장건의 머리를 그냥 뚫고 지나가면서 동시에 난 소리다.
방금의 소리는 악천이 낸 소리가 아니다. 장저에 맞았다면 수박 터지는 퍽 소리가 났어야 했다.
뭔가 소리는 났는데 맞진 않았다는 것도 이상하다. 이번에도 악천은 잔상만 훑었을 뿐이다.
장건은 전혀 움직이지 않았다. 그 자리에서 꼼짝도 않았다.
‘그런데 왜 안 맞았지?’
도저히 피할 데가 없다.
하지만 맞지는 않았다.
금세 이유를 안 악천이 아연실색했다.
장건의 상체가 사라져 있었다.
‘으헉! 이놈 왜 이래!’
다리는 그대로인데 허리 위로 없었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뒤로 반 뚝 접혀 있었다.
공손하게 허리를 굽혀 인사를 하는 모양의 딱 반대로인 모양새였다.
펄렁 펄렁.
깃발이 바람에 날리듯 흐느적거리기까지 한다…… 거기다 이미 한쪽 어깨는 탈골이 되어서 더 거북하게 흔들리고 있었다…….
“크억!”
정말 기절초풍할 노릇이었다. 어찌나 놀랐는지 세 번째 공격은 제대로 하지도 못했다.
너무 놀라서 내공을 제대로 운용하지 못해 기혈이 역류했다. 심적 충격으로 내상을 입고 핏물이 목까지 치밀었다.
“이, 이게 무슨…….”
분명히 자신이 그렇게 만든 건 아니었다. 치매가 걸린 게 아닌 이상에야 자기가 해 놓고 기억도 못 할 리가 없지 않은가!
곧 사방에서 엄청난 비명 소리가 들려왔다. 지켜보는 이만 만 명이 넘으니 비명 소리와 신음 소리로 대웅전이 떠나갈 듯했다.
“꺄아아악!”
“으아악!”
“사람이 죽었어!”
“이건 너무하잖아!”
아이를 데리고 온 부모들은 아이들의 눈을 가리느라고 난리였다. 정작 자신의 공격은 하나도 성공하지 못했는데 갑자기 이게 웬 난리인가?
그런데 곧.
우득. 우득.
뼈 맞추는 소리가 나면서 장건의 탈골된 어깨가 다시 올라오고, 장건의 허리도 뒤에서부터 앞으로 서서히 세워진다.
악천은 이 기괴한 광경에 완전히 몸이 굳어 버렸다. 장건의 입에서 신음이, 등쪽 방향에서 흘러나오고 있었다.
“아야야.”
악천은 어찌할 바를 모르는데 장건은 태연하게 뒤통수를 만지면서, 머리를 세우면서, 인상까지 쓰고 있었다.
“이씨이…… 손잡이에 부디쳤네. 칼 메고 있는 거 깜빡했자나. 디통수에 혹 나따.”
“그, 그럼 그 딱 소리가…….”
허리를 뒤로 접었을 때 붕대로 감아 등에 메고 있던 딱딱한 그것에 머리가 부딪치는 소리였던 모양이다.
“…….”
“…….”
누군가 한 명이 갑자기 소리를 질렀다.
“와아아! 살아났다!”
지켜보던 사람들이 얼떨결에 같이 환호를 했다.
“소협이 살아나고 있어!”
“와아!”
하지만 이전에 이미 장건이 허리를 뒤집어서 오황을 놀라게 했던 걸 아는 소림의 제자들은 이마의 핏대를 누르면서 조용히 불호를 욀 뿐이다.
다행히도 사람들은 어린 소년이 금의위 무사의 손에서 죽을 뻔했다가 살아난 걸 더 크게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그네들의 입장에서도 이상하긴 이상한 일이다. 하늘을 날아다니고 바위도 부수는 힘으로 치고받고 싸우지만 멀쩡한 무림인이나, 허리가 뒤로 꺾여도 안 죽는 무림인이나 이상한 건 매한가지다.
물론 후자가 좀 더 이상하긴 하지만, 그래도 일단 환호는 하고 볼 일이었다.
“소림의 소년 제자가 저 악한의 손에서 살아나고 있어!”
“와아아아!”
사람들의 환호에 악천은 미칠 것 같았다.
‘내가 그런 게 아니야! 그리고 살아나고 있다는 건 도대체 무슨 말이냐!’
건드리지도 못했는데 이 무슨 억울한 오해이고 누명이란 말인가! 자기도 놀라서 내상까지 입었는데!
악천은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었다.
“끼요오오오옷!”
환관임을 굳이 드러내지 않으려고 변조했던 목소리조차 원래대로 돌아왔다. 악천은 내상이고 뭐고 미친 듯이 장을 뻗어 냈다.
장건이 고개를 아직 다 올리지 못해서 보지 못한 탓인지, 이번에는 피하지 못하는 모습이다.
퍼퍽, 퍼퍼퍽!
콩이 잔뜩 든 자루를 손바닥으로 두들기는 듯한 소리가 난다. 겉으로 보면 딱히 아파 보이지도 않을 것 같다.
그러나 실제로는 타격에 의한 공격이 아니라 장력으로 내부를 진탕시키는 공격이다.
장심이 닿을 때마다 음험한 경력이 파고들어서 기혈을 파괴하고 내장을 상처 입힌다. 곽산도 그렇게 쓰러졌다.
“윽!”
장건의 입에서 가벼운 신음이 흘러나왔다.
한 호흡에 벌써 수십 번의 장공이 쏟아졌다. 전신을 얻어맞은 장건이 주춤대면서 한 걸음씩 뒤로 밀려났다.
“죽어! 죽어!”
무시무시하게 장건을 몰아치던 악천은 장력으로 쏟아 내는 내공을 계속 유지하기가 쉽지 않아졌다.
‘젠장! 왜 이리 힘이 딸리지?’
퍼버벅! 퍽퍽!
그때까지도 장건은 거의 무기력할 정도로 얻어맞기만 하고 있었다.
지켜보는 이들이 안타까운 비명을 연신 질러 댄다.
“저런!”
“살아났다가 또 죽게 생겼어!”
“저걸 어째?”
“살렸다가 죽였다가, 나쁜 놈!”
자기가 하지도 않은 일에 욕을 먹는 악천이었다. 그러나 악천은 거기까지 신경 쓸 여력이 없었다.
이상하게 기운이 딸려서 공격이 벅차 죽을 지경이었다. 쏟아 낸 것보다 더 많은 내공을 쓴 느낌이다.
‘어이없게 내상을 입어서 그런가…… 에이잉! 어쨌거나 이 정도의 암경이 몸 안에 침투되었으면 네놈은 죽은 목숨이다!’
악천은 입안에 가득한 핏물을 삼키면서 회심의 절초를 준비했다.
몸을 한껏 웅크려서 장건의 반대 방향을 보는 자세였다가 몸을 비틀어 앞을 보면서 앞발을 크게 내디뎠다.
금황성 멸절진장(金皇城 滅絶眞掌)!
암경이 아니라 막대한 내력을 있는 그대로 퍼붓는 환우신장 악천의 성명절기.
그의 손이 뿌옇게 보일 지경이다.
‘망할.’
악천은 이를 악물었다.
아까 약간의 내상을 입은 데다가 내공이 이상하게 부족해서 제대로 기운을 끌어 올릴 수 없었다.
고작 오성 정도의 힘만 끌어 올렸을 뿐이다. 본래 힘의 반밖에 나지 않는다.
‘그래도 오성이면 지금으로는 충분하다!’
사람 하나 죽이는 데에는 모자람이 없다.
이윽고 악천이 번개처럼 장을 내뻗었다. 장건의 가슴에 악천의 쌍장이 가 닿았다.
“끄윽!”
장건이 거친 호흡을 내뱉었다.
두―웅!
장건이 아주 천천히 땅에서 떠오르고 흙먼지가 발끝을 따라 길게 솟아오른다. 그러더니 갑자기 빠르게 시간이 흘러가듯 장건이 폭발한 것처럼 튕겨 나갔다.
콰드드드―!
장건은 바닥을 긁으면서 순식간에 사오 장여를 날아가 버렸다.
“흐흐…… 흐하하! 어떠냐!”
악천은 입에서 피를 줄줄 흘리면서도 신나게 웃었다.
자신의 나이에 비해 삼분의 일이나 될까 말까 한 소년을 전심전력을 다해 쓰러트렸건만 전혀 부끄럽지 않았다.
마치 반드시 죽여야 할 악귀를 처단한 듯한 뿌듯함마저 들었다. 이상하게 손끝에 닿은 느낌이 별로 좋지 않았고 평소와 달리 기운이 완전히 빠져서 호흡도 가빠졌지만, 그래도 앓던 이를 빼낸 것처럼 개운했다.
장건은 가슴이 뭉개진 정도가 아니라 상체가 완전히 꺾여 버렸는지 허리가 뒤로 넘어가 있었다. 얼마나 강하게 장력을 뿜어냈는지 상체와 팔이 너덜거리면서 바람에 마구 펄럭대는 모습이다.
파라라락― 하고 깃발이 날리듯이.
마치 방금 전처럼…….
“흐…… 흐으…….”
악천은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한다.
게다가 사방팔방에 뿌렸어야 할 피 보라는커녕 장건이 마구 허우적거리면서 ‘어우, 이게 뭐야.’라고 중얼거리는 걸 듣는 순간.
악천은 내가 이제껏 뭘 하고 산 건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사람의, 인체의 움직임을 연구했는데 저런 광경은 처음이었다.
“이게…… 사는 건가.”
얼빠진 음성과 함께 반쯤 떨어져 나간 수염이 그의 인중에서 달랑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