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ily Priesthood RAW novel - Chapter 14
제 3 장 이유 없이 날아가나?
홍오와 장건은 방장실에서 방장 굉운을 만났다. 굉운의 옆에 한 명의 건장한 승려가 불장을 들고 있었는데, 성격이 까다로워 보이는 날카로운 얼굴이었다.
그 승려가 먼저 홍오를 보고 반장을 했다.
“나무아미타불. 계율원의 원호입니다.”
“오랜만이구나.”
홍오가 떨떠름한 얼굴로 함께 반장을 했다. 젊었을 적 하도 계율원에 불려 다녀서, 홍오에게는 계율원이라는 이름만 들어도 좋은 마음이 싹 사라진다.
방장 굉운이 홍오를 보고 물었다.
“그동안 아이는 진전이 좀 있었습니까?”
“진전이라……. 있다면 있고 없다면 없지. 그런데 계율원이라니, 무슨 일이 있는가?”
굉운은 특유의 미소를 지으며 화답했다.
“지금 경내에서는 속가제전(俗家祭典)이 한창인데, 모르고 계셨습니까?”
“알지.”
속가제전은 몇 년마다 한 번씩, 속가제자들 간에 실력을 뽐내는 일종의 비무 대회이다. 이 대회에서 우승한 제자는 정식으로 입적한 본산제자 중 한 명과 비무를 겨룰 수 있고, 상승 무공도 사사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된다.
그렇기에 속가제자들은 이 제전에 모든 것을 건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무엇보다 진산절기를 배울 수 있는 기회란 쉽게 얻을 수 있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더구나 본산제자와의 비무 역시 친분을 쌓는 데에 이만한 기회도 없다.
홍오가 흰 수염을 만지며 물었다.
“한데 속가제전과 계율원이 무슨 상관이냐, 이 말일세.”
원호가 나섰다.
“제가 말씀드리지요. 장건이란 아이도 이제 엄연한 속가제자이니 이번 제전에 참가해야 한단 말씀입니다.”
“엥? 하지만 건이는 이제 속가가 된 지 서너 달밖에 되지 않았는데?”
“비록 장문령에 의해 속가가 된 아이라 해도 예외는 없습니다. 그래서 제가 방장 사백께 말씀드렸습니다. 제전에 참가하지 못할 다른 이유라도 있습니까?”
“아니, 뭐……, 그런 건 없지만…….”
“원래 무공을 어느 정도 했던 아이라 하니, 기초는 되어 있을 거라 봅니다.”
“그런데 얘가 아직 박투술을 안 배웠거던?”
“예? 그럼 그간 무얼 배웠습니까?”
“보법만 배웠다.”
굉운이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어쨌든 차후에는 다른 제자들과도 어울려야 하니, 이번에는 경험만 쌓는 것으로 하지요. 어차피 그간 사숙님께 배운 성과도 보아야 하지 않습니까.”
“흠. 난 뭐 상관없는데…….”
홍오는 갑자기 우스워졌다.
‘건이 이 녀석의 보법을 보면 소림사가 뒤집어질지도 모르겠구나. 흘흘흘.’
홍오가 고개를 저었다.
“당장은 안 되겠고, 며칠 여유를 주게. 어차피 다른 녀석들하고는 하나 마나일 거야.”
“박투술을 안 배웠다면서요?”
“박투술을 안 배웠으니까 더 그렇지.”
장건을 때릴 수 있는 아이가 없을 테니까, 라는 말은 일부러 삼켜 버린 홍오였다.
홍오의 말뜻을 알아들은 굉운이 미소를 지으면서 상황을 정리했다.
“그럼 일주일 뒤, 제전에서 우승한 아이와 겨루는 것으로 하지요.”
“그래도 될까? 실력이야 내가 보증하네만.”
원호가 딱딱하게 굴었다.
“그냥은 안 됩니다. 만에 하나 장건이란 아이가 진다면 위계에 큰 문제가 생깁니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홍오 사백조께서 가르치는 아입니다. 그런 아이가 배운 시간이 적다하여 진다면 다른 제자들 사이에 파문이 클 겁니다.”
“뭐? 상대가 누구든 안 질 거라니까? 고작 애들 비무에 무슨 권위야?”
그러나 원호는 단호했다.
“번외로 하여 비공개로 우승자와 대결을 하도록 하겠습니다. 그 시합에서 이기는 아이가 본산제자와 다시 대결을 할 것입니다.”
“그게 무슨…….”
장건이 다른 제자들을 놀라게 하리라 생각하고 있던 홍오로서는 별로 내키지 않는 결정이었다.
홍오가 원호를 쳐다보자 굉운이 대신 말했다.
“생각해 보니 원호 사질의 말도 틀리지 않는 것 같습니다.”
“에잉!”
홍오에게 사사받은 아이를 다른 아이들과 똑같이 대할 수는 없다.
“뭐, 좋도록 하시게. 그럴 거면 왜 참가를 하라는 건지 모르겠지만.”
홍오가 투덜거렸다.
굉운이 장건을 돌아보며 부드러운 목소리로 물었다.
“괜찮겠느냐?”
장건은 그때까지 가만히 얘기를 듣고 있다가 되물었다.
“저도 소림의 속가제자이니 해야 한다면 해야죠. 그런데 속가제전이 뭔가요?”
“소림에서 하는 큰 행사 중의 하나로 중간 기수의 속가제자들끼리 그간 배운 무공으로 경합을 벌이는 자리란다.”
홍오가 간단히 설명했다.
“누가 더 센지 싸우는 게다. 니가 세냐, 내가 세냐. 쉽게 말하자면 그런 거지. 대신 규칙이 있으니 상대를 크게 다치게 하거나 목숨을 빼앗으면 안 된다. 그래서 무공을 겨루는 걸 비무라고 하지.”
장건이 눈을 휘둥그레 뜨며 물었다.
“비무를 하다 죽기도 해요?”
굉운이 대답했다.
“꼭 그런 건 아니지만, 실력이 부족하다 보면 멈춰야 할 때 멈추지 못해 간혹 불상사가 일어나기도 한단다. 그래서 비무를 할 때에는 승부보다도 늘 상대를 배려하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
장건은 드디어 올 게 왔구나, 하고 생각했다. 비무를 하다가 죽기도 한다니 가슴이 두근거렸다.
홍오가 장건의 표정을 보고 넌지시 물었다.
“겁나냐?”
장건이 고개를 흔들었다.
“아, 아뇨.”
“사내놈이 겁내긴……. 겁쟁이 같으니라고.”
장건 또래의 아이치고 겁쟁이란 말을 듣고 화가 나지 않을 아이는 없다. 아무리 산에서 다른 사람들과 교류 없이 오래 살아왔어도 겁쟁이란 말을 듣는 건 싫었다.
“겁 안 나요!”
“당연하지. 무인이 겁을 내면 쓰나. 무인은 자존심에 상처를 입는 것을 목숨을 잃는 것보다 더 두려워해야 하느니.”
홍오는 껄껄 웃었다. 굉운도 장건의 치기어린 외침에 미소를 머금었지만, 원호만 무뚝뚝한 표정 그대로다.
장건은 원호가 마치 처음 만났을 때의 굉목과 비슷하다고 생각했다. 아니, 사실 굉목은 그보다 더 무서웠었다.
그때를 생각하니 이제 집에 돌아갈 날도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이 피부로 느껴졌다.
‘죽지 않고 돌아갈 거야. 이제 얼마 남지도 않았잖아.’
사실 아직 무공이 크게 완성되지 않은 속가제자들끼리 무기 없이 권각으로만 대결한다면 장건이 생각하는 불상사는 그리 일어날 일이 없었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이 들으면 웃을 만한 말을 장건은 혼자서 진지하게 받아들이고, 새삼 다짐하고 있었던 것이다.
☆ ☆ ☆
장건과 홍오가 돌아가는 뒷모습을 원호와 원우가 보고 있었다. 원우는 속가들의 무공을 가르치는 교두다.
원호가 말했다.
“과거 홍오 사백조께서는 타 문파의 무공을 함부로 보고 배워 크게 치도곤을 당하실 뻔하였다. 비급을 보고 훔쳐 배운 것이 아니라 스스로 보고 깨쳤기에 변명의 여지는 있었으나, 만약 당시 소림에 힘이 없었다면 멸문지화를 당해도 별수 없는 일이었지.”
“저도 들었습니다.”
“원우 사제.”
“예, 사형.”
“사제도 강호를 직접 겪었으니 알겠지만 지금의 소림은 예전 같지 않다. 홍오 사백조 이후로 소림은 많은 견제를 받아왔고 이번에 큰 재정적 위기를 겪으면서 그것이 더욱 심해졌다.”
원우도 안다. 아직도 소림은 천하제일의 문파지만 소림을 이빨 빠진 호랑이로 부르는 이들이 많아지고 있다는 걸.
“이런 와중에 홍오 사백조의 진전을 이은 아이가 나온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그것도 타 문파의 절기를 몸에 익힌 아이가.”
타 문파의 무공을 익힌다는 것은 중대한 사건이다. 하다못해 수련을 훔쳐봤다는 이유로 사생결단을 내는 일도 강호에서는 다반사다.
원호의 눈빛이 깊어졌다.
“홍오 사백조께서는 소림을 위기에 빠뜨렸다. 사문의 존장이 강호에 큰 죄를 짓고 숨어 버린 탓에 나머지 사람들은 수 십 년간 죄인처럼 그 뒷감당을 해야 했다. 그것이 옳은 일이냐?”
원우가 찡그린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만일 그러한 일이 다시 한 번 벌어지게 된다면 소림은 일어서기 힘든 지경에 이르게 될 것이야.”
“소제도 그런 일은 결코 일어나서는 안 된다 생각합니다. 한낱 속가제자 아이 하나 때문에 소림을 위험에 빠뜨릴 수는 없는 노릇이지요.”
“후대에까지 선대의 은원을 남겨 후인들을 곤란케 하는 것은 문자배로 족하지 않은가.”
“사형의 말씀이 옳습니다.”
“모든 것은 이번 속가제전에서 밝혀지겠지. 그 아이가 정말 타 문파의 무공을 홍오 사백께 배웠다면 난 결코 좌시하지 않을 생각이다.”
“하지만 방장 사백께서 직접 허가한 일인데다, 홍오 사백조께서 말도 안 되는 소리로 강짜를 부린다면 쉽지 않을 것입니다.”
“흐음.”
“걱정 마십시오. 소제에게 생각이 있습니다. 제가 이번 속가제전의 판정관을 맡지 않았습니까.”
원우의 눈빛에 은은한 살기가 감돈다. 원우는 승려보다도 무인에 가까운 성격이다. 충직하나 성격이 불같고 소림에 대한 자부심이 누구보다도 높다.
“만일 아이가 타 문파의 무공을 사용하는 것이 밝혀진다면 홍오 사백조께서 개입하시기 전에 그 자리에서 손을 쓰도록 하겠습니다. 전 홍오 사백조도 마음에 들지 않습니다. 도대체 소림의 제자가 왜 소림의 무공을 버리고 타 문파의 무공을 배운단 말입니까!”
원우가 흥분을 가라앉히려는 듯 콧김을 뿜으며 반장을 했다.
“아무튼 사형께서는 염려하지 마십시오.”
원호가 고개를 끄덕거렸다.
“알겠네. 대신 그 뒷감당은 내가 맡도록 하지. 일단 일이 벌어진다면 홍오 사백조께서도 어쩔 수 없으실 거야.”
“다른 문파의 무공을 익히지 않아도, 그 파해법을 애써 찾으려 하지 않아도 소림의 무공은 천하제일입니다. 소제는 굳이 홍오 사백조의 맥(脈)을 이을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장건은 현재 홍오의 유일한 맥이다. 그 맥만 끊어진다면 소림은 잠시나마 안정을 되찾게 될 것이다.
홍오가 익힌 무공이 아깝기는 하나 우내십존과 강호 모두를 적으로 삼을 만한 가치는 없다.
타 문파의 무공이 없이도 소림은 늘 천하제일이었으니까.
원호는 원우를 찾아온 소기의 목적을 완전히 달성했음을 깨달았다.
‘아미타불. 승려 된 몸으로 타인을 해하라 사주를 하였으니 이 죄는 결코 용납 받지 못할 터. 하나 모든 업보는 내가 지고 갈 것이다. 이 하잘 것 없는 몸 하나 무간지옥에 던져서라도, 소림을 위해서라면 내 무슨 일이든 감내하리라.’
원호는 조그맣게 불호를 외웠다.
속가제전이 지나고 나면 곧 소림은 평안을 되찾게 될 것이었다.
☆ ☆ ☆
장건은 중간에 홍오와 헤어져 담백암으로 돌아왔다.
굉목은 속가제전에 장건이 나가게 되었다는 말을 듣자 살짝 놀란 빛을 띠더니 금세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한 얼굴로 돌아왔다.
“속가제자들이라면 누구나 참가하는 게 옳은 일이다. 그리 생소한 얘기도 아니구나.”
위로는 생각도 하지 않았지만, 한마디 조언이라도 해줄 줄 알았던 장건은 입을 삐죽 내밀었다.
“비무를 하다가 죽기도 한다던데요?”
굉목은 코웃음을 쳤다.
“너희 나이 대에서는 그럴 일이 없다. 기껏해야 몇 군데 부러지거나 하면 그게 다지. 그것도 아주 운이 없다면 모를까.”
계속 고개를 갸웃거리는 장건에게 굉목이 물었다.
“넌 그럼 사람을 때려서 죽일 수 있느냐? 그럴 만한 힘은 있고?”
“아뇨.”
“그럼 다른 아이들도 마찬가지지. 사람을 때려서 죽이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굉목의 말을 들으니 안심은 되지만, 그래도 아직 가슴은 두근두근하다. 무공이라고 제대로 배운 건 몇 달 되지도 않는데 다른 사람과 무공을 겨룬다니!
남을 다치게 하는 것도 싫지만 자기가 다치는 것도 싫었다. 홍오에게는 겁이 나지 않는다고 했지만, 비무라는 것을 처음 접하기에 미지의 것에 대한 두려움이 있긴 했다.
“흠.”
굉목이 보니 장건의 표정에 약간 근심이 어려 있었다.
굉목은 장건과 대련이라도 해줄까, 하다가 그만두기로 했다. 돕고 싶은 마음은 있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홍오의 영역이었다. 무림을 떠나겠다고 한 자신이 할 일은 아닌 것이다.
무엇보다 장건에게 그렇게 관심을 가지는 것이 스스로도 자꾸만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던 차다.
“너무 걱정하지 마라. 네가 그동안 보법을 왜 배웠느냐. 맞아서 아프다면 안 맞으면 되느니라.”
말은 쉽지, 안 맞기가 그리 쉬운가?
하지만 장건은 굉목의 말을 듣고 한결 기분이 나아졌다. 몇 달간 홍오의 돌팔매질(?)을 무수히 맞기도 했고 그걸 피하는 재주도 익혔다.
“헤헤. 정말 노사님 말씀처럼 안 맞으면 되겠네요.”
굉목은 대답하지 않았다.
‘네 녀석이라면 안 맞고도 남지.’
그동안 장건이 보인 몸놀림이라면, 장건을 건드릴 수 있을만한 아이는 같은 속가의 기수에서는 거의 없을 것이다.
☆ ☆ ☆
녹음이 푸르른 깊은 산중의 하루는 언제나 비슷하다. 오늘도 홍오는 장건을 앞에 두고 두 시진의 수업을 한다.
하지만 오늘은 다른 때와 좀 다르다.
“어제 들어서 알겠지만, 넌 피하는 법은 익혔지만 다른 사람을 제압하는 법은 배우지 않았다. 피하기만 해서는 승부에서 이길 수 없는 법. 해서 오늘부터는 그 방법을 가르칠까 한다.”
예전에 장건이 사람 때리는 것이 싫다고 말한 적이 있어서 ‘제압’이란 말을 썼는데, 다행히도 장건은 순순히 수긍했다.
“예.”
“소림의 무공은 곤법, 봉법, 장법 등 여러 가지가 있으나 가장 기초가 되는 것은 역시나 권각법(拳脚法)이다. 권각법을 알아야 비로소 다른 병기를 손에 쥐도록 하느니라.”
장건은 홍오의 말을 귀담아들었다. 당장 일주일 앞으로 대련이 다가와 있으니 하나라도 놓칠 수 없었다.
“다른 문파에도 권각법이 있고 모든 권각법의 무공이 다 다른 특징을 가지고 있다. 오늘 배울 소림의 권각법 역시 그러한 특징이 있다.”
장건은 새로운 무공을 배운다는 기대감에 눈을 초롱초롱 빛내고 있다. 학구열에 불타는 서생과 비슷한 눈이지만, 홍오는 이제 장건의 그런 눈빛을 신뢰할 수가 없었다.
“지금부터 가르칠 것은 금강권(金剛拳)이다. 금강권은 금강석(金剛石)과 같은 견고함과 단단함을 추구하는 무공이다. 투로가 비교적 간단하나 깊이가 있어 마냥 쉽게 생각해서는 안 되지.”
장건이 고개를 끄덕끄덕했다.
“금강권은 초식의 변화도 적고 쾌(快)를 추구하지도 않는다. 외려 태산처럼 굳건한 기상의 중(重)을 묘리로 삼는다. 그 말은 즉, 네 몸 전체가 태산이 되고 금강석이 되어야 한다는 말이다.”
“내가 태산이 되고 금강석이 된다…….”
홍오가 약간 떨어져서 금강권의 기수식을 취했다.
쿵.
홍오는 진각을 밟고 다리를 바위처럼 굳게 자리 잡았다. 홍오의 작은 몸집이 산과 같은 기세를 풍겼다.
“합!”
투로에 따라 한 발 한 발을 옮길 때마다, 내지르는 매 일권마다 기운을 쏟아서인지 강맹한 바람소리가 났다.
소림의 제자들이 이 홍오의 시연을 보았다면 감탄을 내질렀을 것이다. 홍오는 금강권의 단단함을 정확히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장건의 표정은 점점 일그러진다. 덜 익은 감을 씹은 듯 떨떠름한 얼굴이다.
장건은 홍오의 금강권을 보는 내내 속이 꽉 막힌 것처럼 불편함을 느끼고 있었다.
최소한의 움직임으로 생활을 하는 것이 익숙해진 장건이다. 그런데 홍오는 초식 하나하나에 힘을 쏟아 붓고 있었다. 그런 모습이 장건에게 편하게 보일 리 없다. 하다못해 왜 힘주어 땅을 밟는지도 이해가 안 된다.
장건은 괜히 몸이 쪼그라드는 느낌이었다. 그럼에도 홍오의 동작에서는 딱히 군더더기를 찾을 수가 없었다.
‘또 이러네.’
무량세나 다른 보법들은 어딘가 모르게 동작이 과한 데가 있었다. 그런 부분을 나름대로 제외하고 따라하다 보면 잘 되었는데, 금강권은 또 뭔가 다른 느낌이었다.
‘뭐 때문에 그럴까…….’
홍오가 금강권의 투로를 모두 보인 후 장건을 쳐다보았다. 어딘가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듯한 얼굴 표정.
“한 번 더 보여주어야 하느냐?”
장건이 고개를 끄덕였다. 궁금증을 풀려면 다시 보는 수밖에는 없을 것 같았다.
홍오는 ‘흠’ 하고 속으로 낮은 신음을 냈다.
‘마음에 안 드는 겐가?’
사실 홍오는 장건이 동작부터 익힐 수 있도록 내공의 운용을 하지 않았다. 보법과 다르게 권각법은 투로가 정확해야 우선적인 의미가 살아나기 마련이다. 즉 홍오가 보여준 금강권은 본래 금강권의 겉모습뿐이었다.
‘설마 그걸 알아본 건 아니겠지.’
홍오는 입맛을 쩝 다시며 금강권을 준비했다.
“첫 번째 투로인 붕산독립(崩山獨立)만 다시 보여줄 테니 잘 보거라.”
홍오는 허리를 펴며 내공을 끌어올렸다. 이번에야말로 제대로 된 금강권을 보여줄 참이다.
펄럭!
가볍게 내공을 끌어올린 것 같은데 발밑에서 바람이 일며 승복과 가사가 부풀었다.
홍오의 몸에서 이는 바람은 일반 무인으로서는 상상도 못할 경지를 드러낸 것이다.
홍오는 기수식에서 바로 첫 번째 투로로 연결했다. 한 걸음을 내딛어 진각을 밟고, 힘차게 쌍권을 뻗었다.
구―웅.
방금 전과는 다른 육중한 땅의 울림!
순간 장건은 봉우리가 무너져 산사태가 나는 게 아닌가 하고 걱정할 정도였다.
홍오는 이어 쌍권을 뻗었다 가슴으로 회수하며 다시 한 걸음을 내딛고 궁보의 자세를 취한다. 궁보의 자세에서 상체를 살짝 낮추고 위아래를 감싸는 모양으로 권을 내며 기합을 내지른다. 금강권 제일로의 마무리 투로다.
하압!
그 순간 천지가 둘로 갈라지며 쪼개지는 듯한 소리가 산봉우리를 울렸다. 소실산의 봉우리들이 저마다 부산하게 몸을 떠는 듯했다.
장건은 깜짝 놀라 뒤로 주저앉았다.
“우왓!”
사람이 지른 소리라고는 믿을 수 없었다.
심장이 마구 뛰었다.
일기가성(一氣呵成)이다.
일기가성은 기를 소리로 모으는 동시에 상대의 투지를 꺾어버리는 소림만의 기합법이다.
한데 홍오의 내공이 얼마나 깊은지 일기가성이 마치 사자후(獅子吼)처럼 울린 것이다.
장건이 일기가성에 대해 알았다면 ‘그냥 기를 모으면 되지 왜 힘들게 소리를 질러?’ 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홍오는 투로를 마치고 허리를 두드렸다. 방금 그렇게 우렁찬 목소리로 진각을 밟은 사람이라고는 생각하기 어려운 평범한 노인의 모습이다.
‘자. 이번엔 어떠냐.’
소림에서 가장 승려답지 못한 홍오다. 그는 장건이 놀라는 모습을 보고 괜히 기분이 좋아졌다.
“평범한 권각법이라 해도 사람에 따라 천차만별의 경지에 다다를 수 있다. 금강권은 극상승의 무공이라고는 할 수 없으나 극성에 다다르면 상승 무공에 못지않다.”
홍오는 장건이 자신의 금강권에서 무엇을 보았는지 궁금하다. 뭐든지 최소로 해버리는 장건이 역발산기개세(力拔山氣蓋世)의 이 금강권은 어떻게 소화할 것인가.
홍오의 생각처럼 장건은 완전히 기가 질려 있었다. 얼굴도 하얗게 변색되어 있다.
그것은 홍오의 무공이 너무 대단해서가 아니다.
‘앞으로 내가 저런 걸 배워야 돼?’
눈이 튀어나오도록 용을 써서 움직이고 힘껏 소리를 지르는 건 장건의 체질과는 전혀 상반된 것이었다. 하물며 그걸 자신이 해야 한다니!
그만큼 끔찍한 일은 장건에게 없는 것이다.
생각만 해도 현기증이 났다.
‘아……. 괜히 무공 배운다고 했잖아.’
후회가 되는 장건이다. 그래도 한다고 했으니 어쩔 수 없는 노릇이다.
“자. 해봐라. 내가 옆에서 봐주마.”
다소 지나친 면이 없잖아 있었지만, 홍오 스스로도 단언하건대 지금의 일권을 정면으로 받아낼 수 있는 이는 전 무림을 통틀어서도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장건은 쭈뼛거리며 마보를 서고 금강권의 기수식을 준비했다. 그러나 어딘가 모르게 몸이 거부해서 그대로 할 수가 없었다.
내공을 운용하지 않았을 때와 내공을 운용했을 때의 금강권은 천지차이였다.
장건은 영 내키지가 않았다.
일단은 머릿속으로 홍오의 투로를 그렸다. 간단한 동작이니 따라하는 데 어렵진 않은데, 문제는 과하게 힘을 발산한다는 것이다.
‘아우! 미치겠다.’
검성의 동작을 보았을 때에는 전혀 없던 불편함이 홍오에게서는 잔뜩 느껴졌다. 검성은 너무 자연스러워서 오히려 평범했다.
‘죽겠네.’
해보고는 있지만 역시나.
‘잘 안 돼.’
홍오의 동작을 따라할 수가 없다. 주먹을 뻗는 것도 평범 이하다. 완전히 움츠러든 동작이다.
장건이 끙끙대며 열심히 하려고는 했지만, 역근경의 실타래는 움직일 생각을 않고 몸은 무겁기만 하다.
홍오는 의문이 들었다.
‘이놈이 뭘 하는 게지? 보법은 잘하던 녀석이 권각법은 왜 이래? 금강권이 싫은가?’
보법을 배울 때에는 이유가 있었다. 장건이 돌멩이를 맞지 않기 위해 피하면서 절로 내공이 움직여 주었다.
그러나 지금은 아무것도 없는 상황이다. 알아서 내공이 움직일 리 없다.
홍오가 한마디 했다.
“뭐가 안 되느냐?”
장건은 한숨을 크게 내쉬고는 동작을 거두었다. 일부러 한숨을 내쉰 게 아니라 금강권의 동작조차도 몸에 맞지 않아 힘이 들었던 까닭이다.
장건이 물었다.
“중간에 꼭 소리를 질러야 하나요?”
“소림의 권각법은 일기가성으로 시작하여 일기가성으로 완성된다는 말이 있다. 일기가성으로 기운을 모으며 상대의 기선을 꺾는 데 그 효용이 있다.”
거기에서 넘어갔으면 좋을 것을. 장건은 그냥 넘어가지 않는다. 하기 싫은 일을 억지로 해야 하기 때문이다.
“꼭…… 그래야 하나요? 그건 쓸데없이 힘을 쓰는 거잖아요.”
“뭐? 쓸데없이?”
옛날 성격 그대로였다면 홍오는 벌써 장건을 발로 차서 절벽 아래로 떨어뜨려 버렸을 것이다.
그래도 나이가 들었다고 홍오는 많이 차분해졌다. 굉목을 만났을 때만 예전 성격이 돌아올 뿐이다.
홍오는 화를 내는 대신 쉬운 길을 찾아 설명했다.
“대결에 앞서 상대의 기를 꺾는 것은 상당히 중요한 일이다. 호랑이를 만나면 눈빛으로 먼저 제압하라는 말은 들어보았겠지?”
“네.”
장건이 고개를 끄덕했다.
“그래. 바로 그거다. 기세가 꺾이면 싸울 일도 없으니 네가 원하는 대로 되지 않겠느냐? 네가 무공을 잘 배우면 네게 덤벼들 이가 없듯이 말이다.”
말은 맞는 말이나 이번만큼은 장건도 수긍하지 못했다.
산사태를 일으킬 정도로 소리를 지르느니 차라리 그 힘으로 더 세게 주먹을 때리는 게 나아 보였다. 사람을 때리는 건 싫지만 쓸데없이 기운을 쓰는 건 더 싫다.
‘이걸 어떻게 해야 하지?’
홍오는 장건이 생각하는 모습을 보고 가만히 있었다. 보법을 보여주면 이리저리 생각하다가 알아서 체득한 녀석이다. 금강권을 어떻게 해석할지 여전히 궁금했다.
“내가 보여준 것을 네가 하기에는 어려우니, 네가 알아서 편히 해보거라.”
“네.”
“다만 모든 동작에는 의미가 있다. 소리를 지르는 것도 진각을 밟는 것도 모두 의미 없는 행동이 아니니라. 그것을 꼭 기억하도록 해라.”
장건은 고개를 끄덕했다.
홍오가 장건이 알아서 할 수 있도록 멀찌감치 자리를 비켜 주었다.
장건은 혼자 마당 한가운데 서서 머릿속으로 홍오의 동작을 그려 보았다. 처음 보여준 금강권은 군더더기는 없었으나 어딘가 불편했고, 두 번째 보여준 금강권은 멋지긴 하나 군더더기가 잔뜩 있어서 따라하려야 따라할 수가 없었다.
홍오의 금강권은 발력(發力)에 그 효용이 있었다. 그러나 기운을 최대한 아껴서 안으로 갈무리하는 장건에게 발력은 무리가 있는 것이었다.
장건은 금강권의 동작과 홍오가 한 말을 계속해서 되새겼다.
‘소리를 내고 땅을 세게 밟는 이유라…….’
무언가 이유가 있는 게 틀림없었다. 보법을 배울 때에도 그랬다.
혼원보(混元步)라는 보법을 배울 때에는 정말 고통스러울 정도로 힘들었다. 혼원보는 어지러움과 혼돈이 결국 하나의 질서로 통하는 도가(道家)의 이치를 담고 있다.
그랬기에 홍오가 혼원보를 펼치니 사방팔방에 홍오의 모습이 보이며 머리가 어지러워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장건이 그 혼원보가 서로 다른 각각의 원을 그리는 보법이었다는 걸 알게 되는 데에도 며칠이나 걸렸다.
결국 장건은 혼원보의 현란한 움직임은 여러 개의 원을 그리는 단순한 발놀림의 경로를 감추기 위한 것이라는 걸 알았다. 다른 면에서 보자면 단순히 원을 그리는 걸음으로 변화무쌍한 움직임을 만들어내고 있었던 것이다.
‘소리를 내고 땅을 차는 이유가 있겠지.’
무공을 익히는 데 있어서 홍오와 장건은 얼핏 닮아 있다. 둘 다 무공의 요체(要諦)를 빠르게 파악해내는 눈을 가지고 있다.
홍오는 천성적으로 타고난 데 비해 장건은 불편한 부분이 눈에 보이다 보니 후천적으로 그리 되었다는 점이 다르다.
또 무공을 펼치는 데 있어서 홍오는 그 무공이 가진 극의를 최대한으로 끌어내지만, 장건은 그것을 자신의 몸에 맞게 재가공한다는 차이도 있었다.
‘휴우. 보법을 할 때에는 그냥 돌멩이를 피하다 보면 잘 됐는데.’
장건은 홍오의 자세를 떠올리며 몇 번 주먹을 뻗는 시늉을 했다. 이리저리 몸도 틀어가며 금강권을 연구한다.
소리를 내는 이유와 땅을 힘껏 밟는 이유를 알지 못하면 금강권을 할 수 없을 것 같아서다.
장건은 발로 툭툭 바닥을 밟아보기도 하고, 조그맣게 ‘아’, ‘아아’ 소리를 내기도 하며 한참을 뭔가 궁리했다.
‘……아하!’
한참을 궁리하던 장건은 홍오가 말한 일기가성의 의미를 깨달았다.
‘소리를 내면 배에 힘이 들어가는구나.’
배에 힘이 들어가면 주먹을 쥔 손에도 힘이 더 생겨난다. 소리를 크게 지를수록 더 큰 힘이 생긴다.
‘단순한 이치였네.’
매일 좀 덜 움직이고 큰 효과를 볼 수 있는 움직임을 강구하고, 건신동공을 통해 전신의 세밀한 근육까지 느끼고 움직일 수 있는 장건이다 보니 금세 알아낸 것이다.
‘그럼 땅을 세게 밟는 건…….’
발로 툭툭 땅을 차보니 뭔가가 느껴진다. 땅을 찼을 때의 반발력으로 몸이 살짝 진동했다. 앞으로 한 걸음을 내딛으며 발에 힘을 주니, 반동이 더 심해진다. 온몸의 자잘한 근육들이 반동의 충격을 해소시키느라 분주히 떨어댔다.
‘어라?’
장건은 다시 걸음을 내딛으며 힘주어 땅을 차고는 몸 안을 관조했다.
발을 내딛는 순간 중심이 앞쪽으로 실린다. 땅을 힘껏 차면 그 쏠린 중심이 땅을 찬 충격으로 위로 튕겨오른다. 그러면서 중심이 잡혀 자세가 안정되는 것이다.
‘우와! 신기하다.’
적게 힘들이고 걷는 방법만 연구했지, 이런 이치는 생각해 본 적도 없었다.
‘그럼 여기에서 주먹을 뻗으면?’
다시 이리저리 생각해 보니 관련이 있다.
발을 내딛으면서 주먹을 뻗으면 중심이 훨씬 더 앞으로 쏠린다. 그때 땅을 차면 중심이 완전히 주먹 끝에 몰리게 된다.
중심이 주먹에 몰린다는 것은 전신의 힘이 한곳에 쏠린다는 뜻이다.
‘그러니까 결국은 주먹을 세게 치는 방법이었구나.’
일기가성이나 진각이나 어쨌든 공격에 힘을 싣기 위함이다.
갑자기 기분이 좋아졌다.
‘그럼 굳이 대사님처럼 힘들일 필요가 없잖아. 중심을 주먹으로 모으기만 하면 되는 거니까.’
장건은 한 번 심호흡을 하고 준비했다.
‘일단 연습을 한 번 해보고.’
장건이 궁보로 한 걸음을 내딛은 상태에서 주먹을 뻗은 붕산독립의 마지막 투로 자세를 취했다. 이미 주먹을 다 뻗은 상태의 동작이었다.
자연스럽게 역근경의 내공이 실타래를 풀었다. 부드럽고 웅후한 기운이 장건의 전신을 감싸고돌았다.
겉으로 보기에는 아무런 움직임도 없어 보였다. 아무런 행동도 하지 않은 상태에서 중심만 옮기는 연습을 한 것이다.
그러나 장건의 몸 안은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순간적으로 장건의 전신 근육이 뒤틀렸다.
‘악!’
온몸을 빨래 쥐어짜듯 비튼 듯했다. 어찌나 고통스러운지 눈앞이 순간 하얗게 되었다. 등줄기에서부터 머리끝까지 짜릿했다.
그리고 비틀린 근육들이 발끝에서부터 순차적으로 풀리기 시작했다. 눈 깜박하는 것보다 빠른 아주 짧은 순간에 뒤틀린 온몸의 근육이 되돌아오며 마지막으로 주먹에까지 이르렀다.
엄청난 탄성력에 역근경의 내공이 마치 회오리처럼 타고 오르며 힘을 더 보탰다.
주먹의 한 점에 장건의 신체 중심은 물론이고 전신 근육이 비틀렸다가 되돌아온 힘까지 단숨에 옮겨갔다.
그 순간 환청처럼 몸 안에서 ‘푸앙!’ 하고 뭔가 풀리는 듯한 소리가 들렸다.
“어!”
장건은 갑자기 앞으로 휙 하고 떠밀렸다.
“어어어!”
장건은 팔을 마구 휘청거리며 넘어지지 않으려 했지만 중심이 완전히 앞으로 쏠려 있어 어쩔 수가 없었다.
어이없게도 몇 걸음이나 앞으로 날아가 엎어진 장건이다. 누가 민 것도 아니고 그냥 혼자서 날아가 떨어진 것이다.
쿠당탕.
“아야야야.”
데구르르.
엎어진 것도 모자라서 두어 번을 데굴데굴 굴렀다. 마치 널브러진 개구리처럼 요란한 소리를 내며 나뒹군 것이다.
하필이면 때마침 다른 데를 보고 있던 홍오가 이상한 느낌에 돌아보니 장건은 이미 넘어진 후였다.
홍오의 눈이 퀭해졌다.
“……뭐냐. 금강권을 하랬더니 왜 자빠져 있어?”
“윽……. 아고고.”
장건은 온몸이 쑤셔 금방 일어날 수가 없었다. 온몸 어디도 쿡쿡 쑤시지 않는 데가 없었다.
“아우우.”
낑낑대며 겨우 일어나 앉았지만 옷은 흙투성이가 되었다. 장건은 그 와중에도 굉목을 떠올렸다.
“옷이 더러워졌잖아. 후우, 노사님께 혼나겠다. 이를 어쩐다?”
장건이 바닥에 앉은 채로 고개를 들어 홍오를 보았다.
홍오는 무슨 일이 있었는지 몰랐지만, 장건이 제대로 된 금강권을 한 것은 아니라는 걸 알았다.
“에헤헤.”
장건은 일어나면서 쑥스러운 듯 머리를 긁적거렸다.
‘넘어지지 않으려면 중심을 잡는 것도 중요하구나. 무조건 중심을 앞으로 한다고 다 되는 게 아니었어. 그런데 그 풍, 하는 바람소리는 뭐였지?’
☆ ☆ ☆
“끄응, 아이고 죽겠다.”
장건은 온몸이 쑤셔서 견딜 수가 없었다. 팔다리와 몸통을 완전히 비튼 것처럼 아파서 계속 눈물을 찔끔거렸다.
“그거 다시 하면 안 되겠다.”
금강권이라는 게 이렇게 힘든 줄 몰랐다. 사실 장건이 한 것은 금강권은 아니었다. 자세만 금강권의 초식이었을 뿐이다.
그러나 그것을 인식하지 못한 장건은 홍오가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이렇게 아픈 걸 하시다니. 계속 연습을 하다 보면 나아지는 건가?”
너무 끔찍하게 아파서 장건은 다시 할 생각도 들지 않았다.
“아우, 내일도 이거 시키시면 어떡하지?”
산을 내려가며 쉬고 또 쉬기를 몇 번이나 반복하다가 장건은 도저히 그냥 갈 수 없다고 판단했다.
“아야야.”
후들거리는 다리를 붙잡고 느릅나무 앞까지 간 장건은 겨우 한숨을 내쉬었다.
“운기를 할 수 있으면 좋을 텐데…….”
색다른 기가 풍성한 곳에 오니 마음은 편해졌다.
‘누워서 한숨 잘까?’
그랬다가는 너무 늦을 테고, 낮에 잔다는 것도 좋은 일은 아닌 것 같다.
“휴우. 일단 이 옷부터 빨아 말려야겠네.”
장건은 느릅나무 옆의 냇가에 가서 옷을 벗었다. 알몸이 되었지만 보는 사람도 없는 깊은 산중이라 별로 이상하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장건의 몸은 생각보다 하얗고 건강했다. 매일 하루 두 끼 물에 불린 잡곡을 먹은 것치고는 바싹 마른 몸이 아니었다. 우락부락한 근육이 아니라 오밀조밀하게 작은 근육들이 발달되어 있어 늘씬한 편이다.
장건은 헐렁한 승복을 벗고 아픔을 참아가며 흙을 지웠다.
빤 승복을 대충 짜고 나뭇가지에 대충 걸쳐 놓은 후에 알몸으로 느릅나무 아래 그늘에 누웠다.
살살 불어오는 바람이 몸을 휘감고 지나가 시원했다.
느릅나무 아래에 형형색색의 꽃들이 피어 있어 꽃향기도 솔솔 풍겨왔다.
절로 눈이 감겨왔다.
“아! 이러면 안 돼.”
장건은 벌떡 일어나서 고개를 마구 흔들었다. 왜 게으름을 피우냐는 굉목의 노호성이 바로 귓가에 들려오는 듯했다.
“차라리 건신동공이라도 하자.”
움직일 때마다 고통스러웠지만 장건은 꾹 참고 건신동공을 했다.
홍오의 돌멩이에 맞아 아팠을 때도 건신동공을 하다 보면 괜찮아졌었다.
느릿하게 팔을 뻗고 다리를 움직이자 내공이 움직인다. 독맥을 타고 오르고 임맥을 따라 몸 앞으로 내려오면서 소주천이 되고 있다.
장건은 점차 무아지경으로 빠져들었다.
처음에는 굉목의 행동을 따라하는 것도 힘들었는데 이젠 건신동공을 하면 즐겁다.
건신동공을 하고 나자 몸이 날아갈듯 개운해졌다. 쑤시고 아팠던 근육도 많이 좋아져서 한결 통증이 덜했다.
“아고.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됐어?”
하늘을 보니 해가 중천에서 훨씬 넘어가 있다. 건신동공을 하느라 미처 시간 가는 줄을 몰랐던 모양이다.
장건은 나뭇가지에 걸쳐 놓았던 옷을 집어 들었다. 아직 덜 말라서 물기가 똑똑 떨어졌다.
굉목이 했던 것처럼 탁탁 손으로 쳐서 물기를 빼야 했는데 아파서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모양이다.
“에이. 어쩌지?”
그렇다고 축축한 옷을 입을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잠시 생각하던 장건은 자신이 한 금강권을 떠올렸다.
“그렇게 하면 빨래도 잘 털 수 있을 텐데.”
하지만 너무 아파서 조금 겁이 난다.
“살짝, 최대한 살짝 하면 괜찮지 않을까? 다리에서부터 하지 않고 상체에서만 중심을 조절하면?”
장건은 왼손으로 승복을 붙들고 들어올렸다. 아까 했던 그 방법으로 힘을 모았다.
“이번에는 상체의 중심만 앞으로.”
하나 그것은 장건의 실수였다. 신체 근육은 조절할 수 있었지만, 거기에 따르는 내공은 조절을 할 수 없었다.
단전에서 풀려나온 내공이 몸을 돈다 싶더니 순식간에 몸이 장건의 제어에서 벗어났다.
지금 이 순간 내공은 장건을 돌보아주는 친구가 아니라 악당이었다.
“엇?”
장건의 몸이 뒤흔들렸다.
온몸의 근육이 비틀리며 쥐어 짜이는 듯한 고통!
“으악!”
장건은 그만두려 했다. 그런데 그나마도 되지 않았다. 이미 뒤틀렸던 근육들이 다시 돌아오면서 중심이 주체할 수 없이 흔들렸다.
엄청난 힘이 몸 안에서 휘몰아쳤다.
“으아아아!”
장건의 발이 공중에 뜨고 몸이 팽이처럼 돌았다. 누가 일부러 몸을 돌리는 것 같아서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쿠당탕탕!
장건은 손을 마구 휘젓다가 그만 오른손으로 옷을 건드리고 말았다.
그 순간.
쫙!
소름끼치는 소리가 나더니 옷이 갈기갈기 찢겨 나갔다.
누운 장건의 몸 위로 갈가리 찢긴 승복이 나풀거렸다. 나선형으로 찢겨나간 승복이 아주 작은 조각이 되어 바람에 날리는 꽃잎처럼 흩날리고 있었다.
장건은 바닥에 드러누운 채로 그 모습을 똑똑히 보았다. 잔인하게 찢겨나간 승복의 조각들이 장건의 몸 위로 하나둘 차곡차곡 떨어졌다.
“아!”
장건은 찢겨진 옷 조각이 날리는 모습에서 무엇을 본 것일까.
한참이나 멍한 얼굴로 누워 있던 장건이 불쑥 한마디 내뱉었다.
“난 이제 죽었다.”
☆ ☆ ☆
장건이 내려간 후 홍오는 마당을 둘러보았다.
왜 넘어졌는지는 보지 못했어도 그때 피부를 짜릿하게 만드는 기의 유동이 느껴졌었다.
‘흠. 내가 노망이 들어서 의심병이 생겼나.’
하나 그것이 절대 단순한 의심이 아니었다는 것은 곧 알 수 있었다.
장건이 서 있던 자리.
그곳에 조그마한 소용돌이가 그려져 있었다. 일부러 땅바닥에 그리려 해도 그릴 수 없을 만큼 완벽한 소용돌이의 흔적이었다.
“허!”
홍오는 장건을 지켜보지 못한 것이 후회되었다.
“허허허허!”
정말로 당황스러운 노릇이다.
홍오는 어이없는 얼굴로 중얼거렸다.
“붕산독립을 하라 했더니 발경(發勁)을 해?”
어떻게 금강권이 발경으로 이어질 수 있는 것일까?
게다가 힘을 감당하지 못해 혼자서 날아갔을 정도면 얼마나 강력한 발경을 한 것일까?
그야말로 무지막지한 발경이다.
발경은 몸 안의 힘을 밖으로 끌어내는 초절정의 수법이다.
크게는 내공을 사용하는 방법, 내공을 사용하지 않고 몸의 근육만으로 행하는 방법으로 나누기도 한다. 그 외에도 무림 유파(類派)마다 부르는 명칭도 다르고, 방식이나 형태에 따라 다양한 종류가 있지만 어쨌거나 상당한 수준에 올라야 가능한 수법임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간단한 정권 지르기조차 신체수련만으로 발경의 경지에 이르려면 수십 년의 세월이 걸린다.
스스로 무리(武理)를 깨닫지 않고는 어렵기 때문에 유능한 사부 밑에서 십 년은 수련해야 할 수 있다고 한다. 지금 속가제자들에게 권각법을 가르치는 교두인 원우조차 이십대 중반이 넘어서야 겨우 발경을 깨달았고, 사십대가 되면서 어느 정도 자유롭게 발경을 할 수 있게 되었다 한다.
홍오는 지금 그것을 장건이 했다고 말하고 있다.
“내 앞에 그 흔적이 있는데도 내 눈을 믿을 수가 없구먼…….”
워낙에 특이한 아이이니 발경을 한 것 자체는 그렇다 칠 수도 있다. 하지만 금강권을 가르쳤는데 거기서 어떻게 발경으로 이어질 수 있단 말인가.
“보법을 가르쳤더니 피하는 법을 익히고, 주먹질을 가르쳤더니 발경을 하고…….”
상식적으로 연결이 되지 않는 행동이다.
그러나 홍오는 흥미가 동해 한껏 웃어 버렸다.
“껄껄껄! 정말 희한한 놈일세. 속가제전이 네놈 때문에 한바탕 뒤집어지겠구나!”
무량무해를 가르쳐야 한다는 생각도 잠시 잊고 홍오는 장건의 생각으로 즐거워했다.
만일 장건이 온몸의 근육을 꼬았다가 푸는 식으로 발경을 했다는 걸 알았다면 홍오는 더 기가 막혔을 것이다.
온몸을 자연스럽게 틀어 그 힘을 직선 형태로 타점에 보내는 것이 보통의 외공 발경법인데, 장건은 거기에 내공까지 더해 나선형의 힘을 그대로 분출한 것이니 말이다.
☆ ☆ ☆
해가 어슴푸레하게 넘어가고 있었다.
굉목은 담백암에서 초조하게 장건을 기다렸다.
장건이 아직 돌아오지 않은 것이다.
“이놈이 대체 뭘 하느라 오지 않는 게야?”
그렇다고 홍오의 암자로 찾아갈 수도 없으니, 굉목은 그저 기다릴 뿐이다.
“흠…….”
해가 다 넘어가도록 돌아오지 않을 아이가 아니었다. 중간에 옆길로 새 열매를 따먹고 온다거나 해도 이렇게까지 늦을 이유가 없었다. 그것도 건신동공의 수련시간까지 빼먹으면서 말이다.
왠지 모르게 기분이 이상하다.
혼자서 건신동공을 하려 해도 이상하게 마음이 번잡스러워 할 수가 없었다.
“혹시나 건이에게 무슨 일이 생긴 건…….”
굉목은 애써 불길한 느낌을 떨치려 노력했다.
이 근처에 사나운 산짐승은 없지만, 혹여 하는 생각에 안절부절못했다.
하도 걱정이 되니 굉목은 장건을 이렇게 기다리고 걱정하는 자신의 모습이 부끄럽다거나 창피하다는 생각도 들지 않았다.
“아무래도 안 되겠구나. 사부님께 가봐야겠어.”
굉목은 옷매무새를 가다듬고 담백암을 나서려 했다.
때마침 그때 멀리서 산을 내려오는 장건의 모습이 보였다.
“얼씨구?”
굉목이 눈썹을 찡그렸다. 장건은 급하게 뛰어오는 것도 아니고 느긋하게 걸어오고 있었다.
그것이 굉목의 화를 돋우었다.
“저 녀석이!”
그런데 어딘가 이상하다.
장건은 헐렁한 승복 바지만 입고 있고 상체는 맨몸이다.
“저 녀석, 옷을 잃어버렸나?”
아니다. 옷을 잃어버려서 혼난다고 저렇게 늦게 올 만한 아이는 아니다.
게다가 늘 보던 딱딱한 발걸음이 아니라 보통 사람처럼 터벅터벅 걷고 있었다.
다른 사람이 그랬다면 신경 쓸 일이 아니었겠지만, 장건이 그런 걸음을 한다는 것은 천지가 뒤집어질 만한 일이었다.
‘무슨 일이 생기긴 했구나!’
굉목은 심장이 서늘해졌다.
장건은 굉목의 앞에 서서 고개를 꾸벅 숙였다. 다녀왔다는 인사일 텐데 ‘다녀왔습니다!’ 하는 활기찬 음성은 어디에서도 들리지 않는다.
굉목은 장건을 꾸짖어야겠다는 생각도 잊었다. 그래도 무사히 돌아왔다는 안도감과 함께, 도대체 무슨 일이 생겼기에 이런 모습으로 나타난 것인지 궁금할 따름이다.
“죄송해요…….”
장건은 굉목이 뭐가 죄송하냐고 묻기도 전에, 모기가 기어들어가는 듯한 작은 소리로 그 말만 하고는 암자 안으로 들어갔다.
“허어!”
굉목은 도저히 장건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물을 수가 없었다. 뒤쫓아 가서라도 다그치고 물어보고 해야 할 텐데 그럴 수가 없었다.
그러나 마냥 가만히 있을 수도 없는 노릇이다.
장건은 방 안으로 들어간 후, 굉목에게 들리지 않게 긴 한숨을 내쉬었다.
“후아, 살았다.”
언제 잔뜩 풀이 죽어 있었냐는 듯 장건은 입가에 미소를 머금었다.
“히힛.”
뭔가 일이 있는 듯 최대한 불쌍하고 심각한 얼굴로 돌아온다는 계획이 성공한 것이다.
“역시 노사님은 예전하고 다르셔. 전 같으면 다짜고짜 화를 내시면서 소리를 버럭 지르셨을…….”
그때 굉목의 엄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리 나오너라! 당장!”
“윽!”
장건은 울상을 지었다.
아무래도 계획이 들킨 모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