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ily Priesthood RAW novel - Chapter 155
제 8 장 장건의 첫 출근
강호가 다시 한 번 뒤집어졌다.
낙산대불의 대혈전.
사천 무림 대 천하제일인.
낙산대불의 현장은 완전히 초토화되어 있어서 그것만으로도 승부가 얼마나 치열했는지를 알 수 있었다.
승자는 누구인가? 사람들의 의견이 분분했다.
독선 당사등만 한 팔을 잃고 죽기 직전의 빈사 상태가 되어 발견되었을 뿐, 나머지 세 사람은 시체조차 찾을 수 없었다.
때문에 강호는 여전히 술렁거렸고, 검성의 광적(狂的)인 행보에 호사가들은 여러 이유를 들며 안줏거리로 삼았다.
하지만 여전히 밝혀진 것은 없었다. 매일 새로운 문파의 부상과 새로운 영웅담들이 오가는 속에서 우내십존의 활극(活劇)은 현실과는 약간 동떨어져 있을 수밖에 없는 것이었다.
그렇게 강호가 숨 가쁘게 돌아가고 있었고, 모두가 강호의 판도에 귀추를 주목하는 동안에도 정작 강호의 일에는 전혀 관심이 없는 이가 있었으니…….
바로 장건이었다.
☆ ☆ ☆
“으앗, 늦었다!”
오늘은 장건의 첫 출근 날이다.
장건에게는 단순히 누군가에게 무공을 가르치러 가는 정도의 의미만 있는 게 아니었다. 드디어 소림을 벗어나 새로운 세상으로 나아가고 있는 중이다.
떨리고 설레어서 밤에 잠을 못 이루다가 새벽녘에야 겨우 선잠이 들었다. 그러다 보니 먼 곳까지 가야 하는데도 평소보다 조금 더 늦게 깨 버렸다. 그나마도 소왕무가 깨워주지 않았으면 완전히 늦을 뻔했다.
장건이 헐레벌떡 옷을 챙겨 입고 밖으로 나오니 원호를 비롯해서 속가제자 아이들과 몇몇 승려들이 장건을 기다리고 있었다.
장건은 식은땀까지 흘렸다.
“죄송합니다.”
민망해서 고개를 꾸벅 숙였는데, 다들 웃고 있는 표정이다.
“인간적인 구석이 전혀 없는 건 아니었구나?”
“네?”
“아니다. 준비는 다 됐고?”
장건은 가벼운 행장을 소요매화검과 함께 등에 지었다.
“예. 필요한 건 대부분 그쪽에서 준다 해서 그냥 옷짐만 좀 챙겼어요. 어차피 저녁에 다시 올 거니까.”
말하고 나니 배웅받는 게 쑥스러워졌다.
“저녁에 오는데 왜들 나오셨어요.”
“그러게 말이다.”
다들 헛웃음을 지었다.
공양간의 동자승이 장건에게 주먹밥 꾸러미를 건네주었다. 산문에서부터 꼬박 반 시진이 걸린다니 신경 써준 모양이다. 실제로는 산문이 아니라 소림사에서부터 출발해야 하는데, 긴 계단과 산길을 내려가야 하고 굉목 등과 동행해야 하는 까닭에 넉넉히 한 시진은 생각해야 할 터였다.
“내일부터는 들러서 가져가시래요.”
“고맙습니다. 감사하다고 꼭 전해주세요.”
소왕무와 대팔을 비롯한 속가제자 아이들이 장건을 응원했다.
“힘내!”
“나중에 혹시 높은 사람 눈에 띄어서 출세하게 되면 우리 무시하면 안 된다?”
장건은 다시 쑥스러워졌다.
“아이 참, 오늘 저녁에 또 볼 건데 왜들 그래.”
“뭔가 대단하잖아. 중군도독부의 무공 교두님, 캬!”
원호가 끼어들었다.
“무림인이 관부와 얽힌다는 것도 그리 좋은 일은 아니니라. 그만들 하고. 그래, 사숙은 어디서 뵙기로 했느냐.”
“마을 관도 어귀에서요. 지금 내려가면 아마 나와 계실 것 같아요.”
“그럼 기다리시지 않게 빨리 출발하거라.”
“예!”
장건은 꾸벅 인사했다가 다시 허둥지둥 합장하며 인사를 고쳤다.
“다녀오겠습니다!”
“잘 갔다 와!”
모두가 이른 새벽부터 기운차게 장건을 배웅해주었다. 그중에는 ‘사고 치지 말고!’란 말은 물론이고 ‘절대 술은 입에도 대지 마라.’란 원호의 전음도 섞여 있었다.
장건은 자기도 모르게 얼굴이 빨개져서는 육성으로 대답했다.
“네, 네!”
☆ ☆ ☆
장건이 들뜬 마음을 안고 소림의 산문을 벗어나 마을 어귀에 도착했을 때에는 세 소녀들과 하연홍, 하분동, 그리고 구이남까지 모두 장건을 기다리고 있었다.
“늦어서 죄송합니다!”
장건이 헐레벌떡―실제로는 귀신처럼 미끄러지듯이― 기다리던 사람들에게 달려갔지만, 아무도 장건에게 늦었다고 타박하지 않았다.
“어, 왔어?”
라고 건성으로 인사하는데 눈길들은 죄다 다른 데 가 있다. 장건이 무슨 일인가 해서 보니 거대한 마차가 서 있었다.
말 네 필이 끄는 사두마차였다. 여섯 필의 말이 끄는 마차는 황제만이 탈 수 있으므로 네 필이면 보통 권세가 아니다.
마차는 보통 볼 수 있는 것보다 훨씬 커서 대여섯 명이 타도 남을 만큼 큰데 지붕은 멋들어진 기와가 얹어져 있고 마차의 창문과 붉은색 외벽에는 금박의 네모난 문양들이 새겨져 있다.
누가 보아도 보통 마차가 아니라는 걸 알 수 있는데, 마차를 끄는 말들도 마찬가지다. 하나같이 갈기에 윤기가 좔좔 흐르며 보통 말보다 덩치가 훨씬 큰 순수한 흑마(黑馬)였던 것이다!
보는 순간 압도당할 지경의 마차였다.
한데 희한하게도 단순히 화려하기만 하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마치 권위 속에 부(富)를 숨기고 있는 느낌이다. 일부러 드러내지는 않으나 누구라도 이 마차는 아무나 탈 수 없다는 걸 느끼게 해 준다.
“이게 뭐예요? 누가 타고 왔지?”
다들 인사도 안 하고 마차만 보고 있으니 이상해서 장건이 물었다.
마차의 옆에는 마차의 느낌과 달리 화려한 비단옷을 입은 중년의 남자가 서 있었는데, 장건을 보고 다가와 꾸벅 인사를 했다.
“아, 누가 타고 온 게 아니라 아버님께서 보내신 마차입니다.”
“……네에?”
장건은 오랜만에 듣는 아버지의 이름에 돌연 눈물이 핑 돌 뻔했다.
“근데 저는 마차 필요 없는데요.”
“그래도 중군도독부의 무공 교두로 가시는데 격식에 어울리는 마차를 준비하라고 하셔서 지부에서 급히 준비했습니다. 혹시 마음에…… 안 드십니까?”
“아뇨. 그게 아니라…….”
장건은 화려한 마차를 보니 차마 손발이 오글거려서 탈 수가 없었다. 그러나 그래도 부친이 생각해서 보낸 것인데 거절하기에도 애매했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은 달랐다.
나름대로 유복한 세가에서 자란 세 소녀들은 마차를 이리저리 뜯어보며 감탄을 금치 못하고 있었다.
“우와! 이것 좀 봐. 창문이 위쪽은 백엽창(百葉窓)이야. 이거 서역식이잖아?”
백엽창은 비늘살을 비스듬히 세워서 가로로 쭉 쌓아올린 형태의 창이다. 진법과 기문에 능한 제갈영은 마차의 구조를 훑어보고 있었다.
“네 개의 바퀴도 몇 개의 축으로 각각 돌아가게 되어 있네? 완전 최신식으로 만들었나 봐!”
백리연은 문을 열고 마차 안쪽을 보고 있었다.
“어쩜! 차양과 주렴에 달린 구슬이 전부 옥이야. 마차 내벽과 의자를 감싼 비단 자체도 굉장한 고급인데 하나하나 정교하게 금실로 수가 놓여 있어…….”
양소은은 다른 걸 보았다. 검은색과 붉은색을 섞어 칠한 마차 외관에는 나무를 깎아 만든 조각들부터 청동 부조, 금박 문양 등이 섬세하게 자리하고 있었다. 특히나 마차 옆쪽 아래에 새겨진 시구를 보고는 더 혀를 내둘렀다.
“세상에, 이 시는 두보의 시인데 글씨는 당금 최고 명필인 관흥의 글씨 아냐? 금 백 냥을 주어도 글씨 한 점을 얻기 힘들다는……. 이걸 마차에다가 새긴 거야?”
제갈영과 백리연이 흠칫하며 양소은을 돌아보았다.
의심의 눈초리였다.
양소은은 뺨을 붉히면서 화를 냈다.
“야! 여기 낙관이 새겨져 있어! 나도 이름 정도는 안다고!”
하연홍만 그냥 가만히 꿀 먹은 벙어리가 되어 지켜볼 뿐이었다. 지금 대충 들은 것만 쳐도 이 마차의 가격은 상상할 수도 없는 수준일 것 같았다. 여태까지는 아무리 장건이 고수라 하더라도 그리 멀게 느끼지 않았는데 지금만큼은 엄청난 벽이 가로막은 기분이었다.
본래 장건의 부친이 어마어마한 부자였던 사실은 알고 있었지만, 그냥 알고 있는 것과 눈으로 본 것과는 또 다른 것이다.
하지만 나머지 세 소녀들은 전혀 그런 어색함을 느끼지 못하고 여전히 신나서 떠드는 중이었다. 제갈영은 대놓고 ‘우리 오라버니, 거지 아니었네? 돈 많다. 와!’ 하고 신 나게 좋아하는데 하연홍은 그러지 못하고 있었다. 어쩔 수 없는 태생의 차이였다.
하분동은 풀 죽은 하연홍을 힐끗 쳐다보고는 속으로 낮은 침음성을 삼켰다. 불쌍하기도 하고 가련하기도 했다.
누구는 좋은 집안에서 태어나 모자란 것 없이 누리고 잘 살았는데, 하연홍은 자신이 그렇게 해주지 못한 데 대한 죄책감이 들었다.
하분동이 봇짐을 턱 하니 걸어 메고는 장건과 구이남에게 말했다.
“나는 걸어갈 테니, 너희들은 먼저 타고 가거라.”
장건과 구이남이 동시에 ‘예?’ 하고 되물었다. 특히나 구이남은 생전에 이런 마차를 처음 타 본다는 환상에 빠져 있어서 더 충격이 큰 얼굴이었다.
“아니, 형님? 지금 무슨 말씀이십니까? 왜 멀쩡한 마차를 두고 걸어간단 말씀이십니까?”
하분동은 냉막한 얼굴로 답했다.
“두 다리가 멀쩡한데 왜 사치를 부린단 말이냐.”
“사두마차예요, 형님. 이거 타고 관도를 달리면 어지간한 경공보다 더 빨라요. 게다가 보세요. 얼마나 넓고 편하게 생겼어요? 안에서 구르고 자면서 가도 되겠는데요.”
하분동이 인상을 썼다.
“그러니까 아우님만 타고 오라니까.”
갑자기 분위기가 어색해졌다. 장건이야 이미 익숙한 일이지만 다른 사람들에게야 그렇진 않을 것이다.
왜 갑자기 멀쩡하던 노인이 고집을 피우는지 알 수 없을 터.
사실 장건도 이 화려하기 짝이 없는 마차를 타고 싶지는 않았다. 하지만 하분동은 몸이 좋지 않으니 타고 가도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은 하고 있던 중이었다.
“그러지 마시고, 형님. 솔직히 제가 경공이 좀 부족합니다. 내일부터 열심히 할 테니 오늘만이라도 타게 해 주십쇼.”
구이남이 하분동을 보며 애원했다. 워낙 생김 자체는 근엄한 얼굴인데 말과 행동은 전혀 다른지라 네 소녀들은 희한한 느낌이었다.
운성방에서 나온 중년인이 말했다.
“출퇴근하신다지 않으셨습니까? 오늘만 타고 가시는 게 아니라 계속 타고 다니시면 됩니다.”
구이남은 저도 모르게 ‘헉!’ 소리를 냈다. 그에게는 경사에 가까운 호사다.
“형님!”
“저 말들을 어떻게 먹이면서 데리고 있겠느냐. 분에 넘치는 호의는 받지 않는 것이 옳다.”
중년인이 웃으면서 다시 말했다.
“마부가 이 시간에 매일같이 모시러 나올 것입니다.”
“형니임!”
거의 울상인 구이남을 내버려두곤 하분동이 팩 하고 옷자락을 떨쳤다. 하분동은 성큼 걸음을 옮겼다.
“먼저 간다.”
내공은 없지만 경공술이 어느 정도는 가능한지라 느린 걸음은 아니었다. 상단에서 나온 중년인도 난처한 듯 어쩔 줄 몰랐다.
장건 역시 이도 저도 못하고 어쩔 줄 모르긴 마찬가지였는데, 문득 시선이 하연홍에게 가 닿았다. 하연홍은 어딘가 불편한 표정으로 아까부터 입을 다문 채였던 것이다.
장건이 하연홍의 기분을 다 알 수는 없었지만 하분동이 이렇게 혼자 가 버리면 하연홍이 더 걱정할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떻게 하지?’
그때 갑자기 제갈영이 달려와서 장건의 소매를 붙들었다.
“오라버니! 우리 이거 타 보면 안 돼?”
“응?”
“영이, 이 마차 너무너무 타 보고 싶어어.”
백리연도 눈을 반짝반짝 빛내면서 함께 청했다.
“오늘만 같이 타고 출퇴근을 하면 안 될까요? 마차 때문이 아니더라도 장 소협이 일하는 곳을 가보고 싶어요.”
그러나 누가 봐도 마차를 타고 싶어 하는 간절한 표정이었다.
아직 장건이 아무 말도 하지 않았는데 양소은은 한술 더 떴다.
“마차는 내가 몰겠어!”
더 생각할 것도 없이 장건은 좋은 생각이다 싶어 기의 가닥으로 짝 하고 손뼉을 쳤다.
정말 기가 막힌 일이지 않은가!
어디서 짝 소리가 났는지 몰라 구이남은 어리둥절하고 있는데 장건이 큰 소리로 말했다.
“그래! 다 같이 타고 가면 되겠네요. 연홍이까지, 다! 오늘은 함께 타고 가요!”
타고 싶지 않은 장건 혼자만 약간의 희생을 감수하면 되니 말이다.
벌써 몇 걸음이나 앞서 가 있던 하분동의 걸음이 멈췄다.
장건은 하연홍을 돌아보았다. 하연홍이 얼떨떨한 얼굴로 ‘내가?’란 표정을 짓고 있었다. 하지만 싫어하는 표정은 아니었다. 오히려 기대하는 느낌이었다.
눈치 빠른 중년인이 싱긋 웃으며 허리를 굽히고는 장건에게 조그만 목소리로 귀엣말을 했다.
“역시나 여자는 마차에 약한 법이지요. 아버님께서 남자는 마차가 있기 전과 후로 가치가 달라진다 하셨습니다. 그래서 일부러 최고급 마차를 보내신 것이지요.”
“아하하…….”
장건은 뭐라고 말해야 할지 몰라 어색하게 웃었다.
중년인이 손을 들어 마차를 가리켰다.
“자! 그럼 어서들 타시지요.”
다들 마차에 뛰어들고 난리가 났다.
“와!”
“어머머, 이 의자 푹신한 거 좀 봐?”
“어허. 소저들 줄을 좀 서시오. 다 큰 처자들이…….”
“뭐예요?”
“아, 아니외다. 참 보기 좋아서 그랬소이다. 허허허.”
다들 난리가 났는데 하분동만 어색하게 멈춰 서서 돌아오지도 못하고 가만히 기다리고 있었다. 하연홍이 천천히 가서 하분동의 옷소매를 끌었다.
“타세요.”
“흠, 흠흠.”
하분동은 마지못하겠다는 듯 끌려왔다. 그 모습을 보고 장건은 몰래 흐뭇한 미소를 머금었다.
그렇게 첫 출근의 아침이 시작되었다.
☆ ☆ ☆
소실산을 마주 보고 있는 태실산.
등봉현의 관청에서부터 북쪽으로 한참을 가면 태실산의 명소인 숭양 서원을 지나 동북쪽의 봉우리로 향하게 된다.
그중 인적이 드문 관도의 끄트머리쯤에 하나의 허름한 장원이 있는데, 본래 버려진 곳이었다가 이번에 새로 단장을 했다.
중군도독부의 무인들이 장건에게 무공을 배우기 위해 사용하게 되는 곳이다.
장원의 이름을 쓴 편액도 새로 걸었다.
충무원(忠武院).
큰 연무장 하나와 그보다 조금 더 작은 연무장 두 개를 가졌다. 다섯 채의 숙소와 사무를 보게 될 본청, 식당 등도 함께 있는데, 이곳에서 사십 명의 중군도독부 소속 무인들과 집사 한 명이 거주하게 된다.
장건의 출근 첫날, 이미 며칠 전부터 와 있던 무인들이 장원 밖으로 나와 교두를 기다리고 있었다.
한데 이게 웬일인가?
당금의 강호에서 사실상 가장 화젯거리인 이에게 무공을 배운다니 들뜨거나 기대해야 하는 얼굴이건만, 사십 명의 무인들에게서는 전혀 그런 표정을 찾아보기 힘들었다.
그저 아침 일찍 일어난 탓에 피곤하고 졸린 얼굴로 여기저기 앉아서 꾸벅꾸벅 졸 뿐이었다. 바짝 든 군기 같은 건 찾아볼 수도 없었다.
본래 보통의 무림 문파에서 무공을 지도하러 나온다고 해봐야 딱히 기대할 일은 되지 못한다. 자파의 비전 무공은 당연히 가르쳐 주지 않는다. 어느 문파에서나 가장 기초적으로 가르치는 무공 정도를 알려줄 뿐이다. 심지어 개중에는 관부에서 직접 고용한 무공 교두보다 못한 경우도 있다.
하지만 유명 문파의 초청 교두라면 조금 다르다. 배울 만한 가치가 있는 게, 평범한 무공을 가르칠지언정 문파의 명예를 생각해서라도 절대 허술하게는 가르치지 않기 때문이다.
똑같은 초식이라도 거대 문파와 중소 문파의 해석은 깊이가 다르고, 당연히 가르치는 형태도 조금이나마 달라지는 것이다.
그러니 예를 들어 소림사에서 무공 교두가 나온다고 하면 지원자들이 수두룩하게 몰려든다. 그래야 정상이다.
하지만 이번엔 상황이 좀 달랐다.
애초에 목적 자체가 ‘무공 수련’이 아니다.
장건을 유배에 가깝게 처박아 두기 위한 장치에 불과했다. 그러니 괜히 열성적으로 배울 만한 무인들을 데려와 함께 처박아 둘 필요가 없었다. 열심히 가르치고 배워서 끈끈한 유대감이 생긴다거나 하는 등의 영향력이 생기는 것도 원치 않았다.
때문에 그야말로 대충 머릿수만 채워서 보낸 형국이었다.
무공을 배우기 위한 수련자들은 모여 있으나 정말로 무공을 배우기 위해서 모인 것이 아니었다. 적당히 시간이나 때우는 게으른 자들을 보내 전승자의 의욕까지 꺾어 버리면 더 좋을 것, 이라는 게 윗사람들의 뜻이었다.
모인 이들은 대체로 관원이 되기 전에 약간의 무술을 배웠다거나 한 정도이긴 했으나 아예 무공을 배우지 않은 자도 섞여 있었다. 겨우 문지기 정도나 하던 자도 있었고 순찰을 돌던 자, 옥을 지키던 자, 심지어는 식재료를 다듬던 자도 있었다. 강호 무림에 아예 관심이 없는 이들도 허다했다.
말이 무인이지 무인이라기보다는 그냥 평범한 관병 중에서 차출한 것이었고, 한마디로 말하자면 그냥 어중이떠중이 그 자체였다.
그러다 보니 자그마치 소림에서 무공 교두가 찾아온다 하는데도 제대로 된 기강을 기대하기는 힘들 수밖에…….
아침 해가 뜨고.
장원 정문의 옆 기둥에 기대 잠을 자고 있던 남자가 기지개를 켜며 말했다.
“후아암! 도대체 교두는 언제 오는 거야. 왜 이리 늦어?”
다른 남자들이 잠이 덜 깬 목소리로 대꾸했다.
“뭐, 늦게 오면 우리야 좋지.”
“그래 봐야 겨우 조금 차이야. 조금 더 잔다고 뭐 나아지겠냐?”
며칠 전부터 와 있던 탓에 그래도 서로 친해진 이들이 몇몇 보였다.
수염이 덥수룩하고 인상이 험상궂은 퉁퉁한 덩치의 남자가 침을 뱉으며 말했다.
“이런 니이미, 귀찮아 죽겠네. 잘 살고 있는 사람을 왜 이런 데 불러놓는 거야?”
옆에서 가느다란 인상의 남자가 킬킬거렸다.
“그러고 보니 노형은 홍등가 순시를 돌았다면서?”
“아, 말도 마. 하룻밤 대충 술 한잔 걸치고 쓰윽 돌면 주머니가 아주 그득해졌다고. 제기럴, 상납도 내가 제일 열심히 했을걸? 그런데 배은망덕한 놈들이 날 이런 데로 보내?”
“뭐, 인생 너무 낙담하지 마. 누가 알아? 여기서 한 수 제대로 배우고 가면 거기 파락호들 데리고 대형 노릇 좀 할 수 있을지.”
“한 수 좋아하네.”
험상궂은 덩치의 남자가 슬쩍 고개를 빼서 관도를 살펴보고는 약간 언성을 낮춰 말했다.
“상식적으로 생각을 해 봐라. 우리 같은 놈들 가르치겠다고 소림사의 속가제자가 온다는 게 말이 되냐? 여기 주먹질할 줄 아는 놈이나 있어?”
다른 남자들도 대화에 끼어들기 시작했다.
“그렇긴 하지. 날고 기는 애들도 잔뜩인데 하필 우리를 뽑아올 이유가 없지.”
약간 비리비리하게 생긴 서생 같은 남자가 말했다.
“난 솔직히 무공은커녕 창도 한 번 못 잡아 봤소. 현청에서 수납계에 있다 왔거든.”
“뭐야. 먹물 먹다 온 샌님도 있던 거야?”
다른 남자가 말했다.
“저는 관병에 지원해서 뽑힌 지 하루밖에 안 됐걸랑요? 근데 여기로 발령 났잖아요. 전 직급 순서도 잘 몰라요. 아저씬 직급이 뭐예요?”
“어이구, 갈수록 가관이네. 이거 진짜 온갖 잡졸들은 다 모아놨구만?”
개중에서 제법 각이 잡힌 젊은 청년이 말했다.
“거 잘들 모르시는 모양인데 우리 가르치러 오는 사람이 보통 사람이 아니라 하더이다.”
“뭐? 저 애송이가 지금 뭐라는 거냐?”
“내가 무림에 관심이 좀 있어서 아는데, 소림소마라고 들어봤수?”
대부분은 몰랐고 몇몇은 알았다.
“나도 생긴 건 모르는데 우내십존도 찜쪄먹는다는 고수라오. 그러니까 어떻게 보면 우리한테는 평생에 한 번 올까 말까 한 기회가 온 거요.”
남자들 몇은 그 말에 고개를 끄덕이기도 했지만 험상궂은 털보 남자는 그렇지 않았다.
“마, 핏덩이. 너는 머리가 장식이냐? 우내십존을 찜쪄먹는 고수면 사람들이 우내십일존이라 그러지, 우내십존이라 그러냐? 그리고 우내십존을 찜쪄먹는 고수가 뭐 할 일 있다고 이런 구석탱이에 와 교두질을 해. 저걸 봐라. 너는 저걸 보고도 가르치러 온다는 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냐?”
털보 남자가 가리킨 곳에는 백발이 성성한 노인이 있었다. 노인은 반쯤 꾸벅꾸벅 졸다가 고개를 들었다.
“내가 뭐? 나도 억울한 사람이야, 이놈들아. 나 내년에 퇴직인데 여기 가라고 해서 억지로 끌려왔어.”
노인은 황토색의 단색 무복 상의를 이상한 듯 매만졌다.
“얼어 뒈질. 내 평생에 가슴에 포(捕)자 쓰인 옷만 입고 살다가 이런 가당찮은 옷을 입게 될 줄 꿈에도 몰랐네.”
남자들은 왁 하고 웃었다.
황토색의 무복을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 만지던 노인이 문득 옆을 보았다.
키도 별로 크지 않고 피죽도 제대로 못 먹었는지 약간 마른 체구의 소년이 있었다.
노인이 혀를 찼다.
“쯧쯧. 넌 어디서 왔기에 피죽도 못 먹고 바짝 꼴아 있냐?”
바짝 마른 정도까지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못 먹은 티가 역력하니 안타까운 마음에 한 말이었다.
그래도 생긴 거에 비해 심성은 착한지 소년은 멋쩍게 웃었다.
“아, 그게요…….”
남자들이 소년을 보고 불쌍한 마음이 들었는지 한마디씩을 했다.
“그러고 보니 저기 어디야, 진강인가 어딘가에 가뭄이 들어서 다들 배를 곯는다던데 거기서 온 거 아냐?”
“거 참, 아무리 그래도 애들은 굶기지 말아야지. 먹일 건 먹이고 해야 할 거 아냐. 명색이 관원인데.”
소년이 웃으면서 대답했다.
“저 잘 먹는데요.”
“마, 거짓말 마. 네 얼굴에 다 쓰여 있다.”
“네? 정말요?”
소년이 놀란 표정을 지었는데 표정만 그렇고 몸은 하나도 움직이지 않는다. 어딘가 모르게 몸이 굳어 있어 이상해 보였다.
“쯧. 하도 못 먹어서 애가 뼈만 남았나 보네. 뭐가 이리 놀라는 게 엉성하냐.”
“하하…….”
남자들은 소년을 보면서 안타까운 마음도 가졌지만, 한편으로는 어이가 없었다.
자신들이 생각해도 진짜 이상하다. 솜털이 보송한 십 대 후반부터 육십 대까지, 나이는 물론이고 온갖 부서에서 다 모였다. 도대체 이런 목불인견의 어중이떠중이들을 모아 놓고 무얼 할 셈인가?
처음 소림소마를 아느냐고 물었던 젊은 청년조차 민망해진 얼굴이었다.
그때 누군가 소리쳤다.
“온다!”
남자들은 귀찮은 얼굴로 주섬주섬 엉덩이의 흙을 털면서 일어나다가 굳어 버린 듯 멈칫했다.
쿠구구구구구구.
지축을 울리는 말발굽 소리와 함께 네 마리의 거대한 흑마가 이끄는 마차가 관도를 달려오고 있었다.
한눈에도 매우 값비싸 보이는 마차였다. 이들이 평생 녹봉을 모아봐야 바퀴 하나나 살 수 있을까 말까 한 정도의.
남자들은 순식간에 기가 죽었다. 그래도 관원이라고 목에 힘주고 다닐 때도 있었는데 지금은 도저히 그런 배짱을 부릴 수가 없었다.
게다가 앞서 마차를 모는 젊은 여인네를 보고는 저도 모르게 입이 벌려졌다.
“워워!”
여인네는 마차의 본체보다 약간 낮은 마부석에서 앉지도 않고 선 채 힘차게 고삐를 틀어 당기는데, 땀으로 흠뻑 젖어 드러난 몸매가 일품이었다. 여자답지 않게 단단한 근육과 검게 탄 피부가 약간 아쉬웠으나 미모 또한 어디 빠지지 않았다.
남자들이 놀라서 수군거렸다.
“무, 무슨 마부가 저렇게 예뻐?”
“그러게……. 아니, 잠깐? 저런 여자가 마부라고?”
“비싼 기생집에 가도 저 정도의 여자는 보기 힘든데?”
남자들은 스스로 말하고 스스로 경악했다.
저런 미모와 힘(?)을 겸비한 여자를 한낱 마부로 쓰다니! 대체 소림사에서 온 무공 교두는 누구란 말인가!
누군가 또 의문을 제기했다.
“어? 이봐들? 뭔가 이상한데? 소림사에서 왔는데 어떻게 마부가 여자로…….”
“듣고 보니 그러네!”
남자들은 도무지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생각했던 것보다 더 대단한 사람일지도 모른다는 느낌이 들었다.
덜컹, 덜컹.
마차가 장원의 앞에 와서 섰다. 미모의 마부가 마차 위를 탕탕 쳤다.
“다 왔어요! 내려요!”
이윽고 마차의 문이 열렸다.
남자들은 바싹 긴장했다.
“와, 여기가 오라버니의 직장이구나?”
“어머, 많이들 마중 나오셨네?”
발랄한 목소리와 함께 소녀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갓 사춘기에 들어선 듯한 어린 소녀와 십 대 후반으로 보이는 소저 둘.
남자들은 입을 쩍 벌렸다. 그중에서도 한 명의 소저를 보고는 눈이 돌아가는 것 같았다.
미인도에나 나올 법한 소저.
피부는 백옥처럼 희고 입술은 앵두처럼 빨갛고 도톰하다. 미모는 그야말로 천하절색이며 깡마르지도 않았으면서 나올 곳은 풍성하고 들어갈 곳은 잘록하다. 어디 하나 마음에 들지 않는 곳이 없었다.
가늘게 눈웃음을 치는 걸 본 순간 심장이 입으로 튀어나올 것 같이 뛴다. 딴 거 안 보아도 좋으니 그냥 이대로 눈에 보이는 광경을 고정시켜서 평생 담아 두었으면 좋을 거라는 생각마저 든다.
나머지 소녀들 또한―마부까지 포함해서― 미색이 곱긴 하나 천하절색의 소저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소녀들이 다 내릴 때까지 남자들은 정신을 못 차리고 있었다. 그런 그들을 굵직한 목소리 하나가 일깨웠다.
“어흠!”
환상을 깨는 헛기침에 남자들이 약간의 짜증을 담고 쳐다보았다. 소녀들에 이어 근엄한 표정의 중년인이 마차를 나오고 있었다.
기품이 흐르고 눈빛이 강렬하여 한눈에 보기에도 대단한 무인인 것을 알 수 있었다. 무인이 아니었대도 한 성의 유명한 장수 정도는 되었을 법한 위엄이 돋보였다.
‘저분이 오라버니?’
‘설마…….’
중년인은 마차를 나와 섰다. 뒤이어 마차 안에서 깡마르고 신경질적인 인상의 노인이 걸어 나왔다. 보기만 해도 갑갑스러울 정도의 깐깐함이 느껴졌다.
남자들은 노인의 눈빛을 보고 흠칫 놀랐다. 살기등등한 눈빛이라고 해야 할까? 말로만 듣던 잘 벼려진 칼 같은 느낌의 눈빛이랄까? 게다가 나이답지 않게 벌어진 어깨를 보면 위압감마저 느껴지는 것이었다.
먼저 나온 중년인이 노인에게 공손히 허리를 굽혔다. 남자들은 얼떨결에 더불어 허리를 굽히고 함께 인사했다. 어쨌거나 저런 대단한 사람들이 줄줄 나오고 있으니 다리가 다 떨려서 서 있기도 힘들 지경이었다.
‘저 노인이 소림소마?’
‘소마라고 하기엔 좀…….’
한데 아직 끝나지 않은 모양이다.
중년인과 노인, 소녀들은 누군가를 기다리며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아직 안 왔나?”
“그냥 같이 타고 왔으면 좋았을걸.”
“간질 걸린 것처럼 안절부절못하는데 어떡해. 할 수 없지.”
그때 누군가 외쳤다.
“저 여기 와 있어요.”
소녀들이 먼저 그를 발견했다.
“앗, 오라버니!”
“벌써 왔네요?”
남자들은 알 수 없는 불길함에 등골이 서늘해졌다. 방금의 목소리는 남자들이 서 있는 중에서 흘러나왔기 때문이다.
자연스럽게 남자들이 좌우로 갈라졌다.
갈라지고 남은 곳에는 아까의 그 못 먹어서 마른 소년이 어딘가 모르게 불편한 자세로 딱딱하게 서 있었다.
꿀꺽.
누구라고 할 것도 없이 마른침을 삼켰다.
그러나 거기에서 더 황당한 일이 벌어졌다.
잔뜩 위엄 있게 남자들을 바라보던 중년인이 마른 소년을 보고 넙죽 허리를 굽혔던 것이다.
“오셨군요, 대형!”
소년이 대답했다.
“아, 네. 전 좀 전에 왔어요.”
남자들은 그대로 굳었다.
“…….”
“…….”
설상가상, 눈빛만으로 사람을 잡아먹을 것 같던 노인도 소년을 보고 살짝 고개를 끄덕이며 인사를 하는 것이었다.
“오셨소, 사형.”
“예, 사제님.”
남자들은 그 순간 어찌해야 할지 몰라 소년을 쳐다보았다.
소년은 사람들의 시선이 와 닿자 뺨이 발갛게 되며 어색하게 웃었다.
“미리 말씀드리려 했는데 미처 못 했어요. 안녕하세요. 제가 오늘 오기로 한 무공 교두예요.”
그때 소년이 자꾸만 시선을 좌측으로 돌린다. 그러다가 기어이 못 참겠다는 듯이 움직였는데, 그 동작이 신출귀몰했다. 남자들은 소년이 어떻게 움직였는지도 보지 못했다.
그런데 다음 순간에 보니 소년의 손에는 방금까지 장원 대문 옆에 유독 덩그라니 박혀 있던 말뚝 하나가 들려 있었다. 사람 다리만 한 길이의 말뚝인데 보수 공사를 하고 나서 뽑지 않고 내버려둔 것이었다.
“아하하……. 죄송해요. 제가 이런 걸 보면 못 참아서요.”
남자들은 눈을 꿈벅거렸다.
“저거…… 쓰러진 대문 기둥 세운다고 밧줄 잡아매던 거 아냐……. 머리까지 다 박혀 있던 건데…….”
거짓말이 아니었다. 소년이 들고 있는 말뚝은 뾰족한 부위부터 머리까지 흙이 묻어 있는 그대로였다.
“저걸…… 손으로 뽑아왔어?”
보고 있던 남자들은 소름이 쭉 끼쳤다.
그때 우연찮게도 누군가가 귀신에 홀린 것처럼 읊조렸다.
“소마(少魔)…….”
왜 소마귀라는 뜻의 별호가 붙었는지 모른다. 그러나 별호에 마(魔)가 붙은 건 이유가 있을 것이다.
수많은 미녀를 거느리고 다니며 천하의 대마두를 동생으로 데리고 다니는…… 그런 이야기들.
어디선가 들어본 것 같지 않은가?
마음에 안 들면 사람의 팔 하나쯤 그냥 쑥 뽑아 버리는.
바로 저 말뚝처럼.
‘흐어억!’
먼저 시작한 게 누구인지는 알 수 없었다.
시킨 것도 아닌데 남자들은 넙죽 엎드리기 시작했다. 완전히 머리를 땅에 붙이고 오체투지를 했다.
그리고 무슨 말을 해야 할까 망설이는 중에 한 명이 외쳤다.
“어서 오십시오!”
그러자 남자들 모두가 온 성심을 다해 함께 외쳤다.
“어서 오십시오―!”
잠깐 당황하던 소년이 합장하며 인사를 받았다.
“아…… 환영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뻘쭘해하는 소년의 머리카락이 저 혼자 손으로 긁는 것처럼 들썩였다.
남자들은 한참 동안이나 고개를 들지 못했고 소년은 머쓱하게 웃으면서 머리를 긁고 있을 따름이었다.
그리고 그것을 지켜보다가 배꼽이 빠질까 웃음을 참는 소녀들.
어색하게 선 노인과 뿌듯하게 가슴을 내밀고 선 중년인.
모두가 저마다의 기대와 생각을 품고 그렇게 첫날을 맞이하고 있었다.
봄.
누군가의 평범한 일상이 다른 누군가에게는 상상도 못 할 특이한 삶이듯이, 평범을 바랐던 소년이 자신만의 일상에서 벗어나 처음으로 자신 밖 세계의 평범과 마주치기 시작한 계절.
강호의 격동이나 무림의 위기 같은 건 전혀 생각할 수 없는, 열일곱 소년만의 세계가 펼쳐지는 계절.
온 세상에 만연한 따뜻한 햇빛.
어느새 나뭇가지에도 새싹이 돋아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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