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ily Priesthood RAW novel - Chapter 33
제 4 장 어긋난 계획
계율원의 원주 집무실.
원호는 작은 집무실 안을 계속 오가며 안절부절못한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이상하군. 소식이 들려올 때가 됐는데.”
독선 당사등이 장건을 중독시켰다고 한 지 시간이 꽤 지났다. 벌써 땅거미가 슬슬 깔려오고 있다.
“이제까지 발견되지 않았을 리도 없고…….”
설사 누군가 발견하지 못했다 해도 독선의 실력이면 장건을 그냥 죽게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흐음.”
원호는 어쩐지 불안해졌다. 장건이란 아이는 늘 상식 밖의 행동으로 일을 그르치게 만드는 데에는 선수였다.
하지만 다른 사람도 아닌 독선이 끝났다고 했다. 그가 끝났다고 하면 끝난 것이다. 만에 하나라도 실패했다면 괜히 호언장담을 했을 리가 없다.
그렇다고 원호가 직접 찾아 나설 수도 없는 노릇이다. 그의 입장에서야 불가피한 일이었으나, 다른 이들이 보면 원호가 독선과 내통한 것으로 보일 터다.
먼저 나설 수도 없고, 그렇다고 소식도 들려오지 않으니 원호는 조금씩 속이 타고 있었다.
이제 장건이 소림을 불안케 하는 원흉(?)이며 그 원흉의 제거방법까지 안 이상, 원호는 한시라도 빨리 장건을 보내 버리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원호는 초조히 소식을 기다려야만 했다.
그러나 기다리는 그에게 들려온 것은 소림에 위험을 알리는 종소리였다.
뎅뎅 뎅뎅뎅.
소림의 관문 앞에서 시작된 종소리가 관문을 거치며 연이어 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호각소리까지 났다.
“무슨 일이지?”
원호는 급히 계도를 들고 계율원을 나섰다. 호각소리까지 2차 경고가 울리면 원주들은 대전으로 모여야 했다.
불안한 기분.
왜일까?
현 중원무림의 최강자 중 한 명인 독선이 호언장담하며 ‘끝났다’고 한 것이 지금처럼 의심스럽기는 처음이었다.
‘제발, 장건이란 아이와 관련된 일이 아니기를.’
그 아이를 당씨 세가로 보내기만 하면 더 이상 소림은 아무런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된다. 이번 한 번만 자존심을 굽히면 적어도 과거의 불행한 연은 끝낼 수 있다.
‘아미타불. 부처시여, 부디 소림을 돌보소서. 부디!’
원호는 간절하게 바라마지 않았다.
부처께서 원호의 소원을 들어줄지는 모르지만.
☆ ☆ ☆
독선 당사등은 아직 사천으로 돌아가지 않았다.
그는 소림의 산문을 벗어난 후 그리 멀리 떨어지지 않은 이천 지방의 작은 객잔에 머무르고 있었다.
조악한 나무틀로 만들어진 난간 안쪽의 탁자에서 바깥을 내다보며 차를 마신다. 그런 그의 모습은 평범한 촌로에 지나지 않았다.
맛 좋은 차도 아니었지만 당사등은 차 맛을 음미할 필요가 없었다. 그가 마시는 차는 단순한 찻물이 아니라 추억이었다.
평산객잔.
그는 아주 오래전, 그녀와 함께 이곳에 왔었다.
당사등은 몇 번이나 차를 우려내어 이제는 맹물이나 다름없어진 미지근한 찻잔을 다시 들었다.
“홍오야……. 너는 이제 대가를 치르게 될 게다. 소림의 기재는 본가의 제자가 될 테고, 너는 내 앞에 무릎 꿇고 과거를 사죄해야 할 게야.”
날이 참 추워졌다.
찻잔에서 김이 소르륵 피어오른다.
어딘가에는 벌써 첫눈이 내렸다고 한다.
눈이 내리는 것일까? 갑자기 안개가 낀 것일까?
당사등은 뿌옇게 흐려진 시야를 감추기 위해 눈을 감았다.
오랜 세월, 그가 간직해 온 슬픔과 분노, 그리고 잊지 못할 추억이 당사등의 노안에 자꾸만 작은 물기를 만들었다.
“연화…….”
그의 귓가에 아직도 들려오는 생생한 외침.
“아악! 냄새!”
당사등은 수십 년간 밤잠을 뒤척이게 했던 그 외침을 이제야 잊을 수 있을 거 같았다.
아직 섣불리 단정하기에는 이른 감이 있으나, 이미 그의 계획은 달성된 거나 다름없다는 것을 그는 확신하고 있었다.
남은 것은 소림에서 연락이 오기를 기다리는 일뿐이라고, 그는 믿어 의심치 않았다.
“내 평생 많은 사람들을 한 줌 독물로 만들어 왔으나 정작 내 오랜 숙원을 풀면서는 한 사람의 희생도 없이 일처리를 하였구나. 참으로 좋은 날이다. 허허허.”
당사등은 애써 눈물을 감추며 웃었다.
그의 예상과는 정반대의 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걸, 그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 ☆ ☆
소림의 중추인 방장실 뒤 대전.
기다란 타원형의 탁자를 두고 소림의 주요 인사들이 모두 모였다.
사태를 보고하는 승려들이 쉴 새 없이 대전을 드나든다.
“광장에서 세 명의 시주님들이 중독되어 쓰러져 있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제 1 연무장에서 수련 중이던 무자배 제자 이십 명이 단체로 중독되어 후송중입니다!”
“숭운 제 3 불당에서 속가 제자 십일 명이 좌선 중 쓰러진 채 발견되었습니다!”
“광성 불전에서 추가로 오십 분의 시주님들을 발견했습니다!”
서면으로 보고할 틈이 없다.
한 명이 나가면 다시 한 명이 들어와 보고할 정도로 상황이 급박하게 돌아가고 있었다.
굉운이 침음하며 백의전주 굉충에게 물었다.
“현재까지 보고된 중독된 사람이 몇인가?”
굉충은 보고되는 중독자 수를 급히 합산했다. 적는 것만도 정신이 없을 지경이다.
“에에, 일단 일반 시주들의 피해가 제일 큽니다. 그 수만도 오백이십일 명이고, 본문의 제자들 역시 이백삼십 명이 중독되었습니다.”
중독자 수를 들은 원주들의 표정은 침통하다.
지금까지 발견된 수가 그러하니, 앞으로 얼마나 더 많은 중독자가 발생할지 알 수 없는 노릇이었다.
잠시 숨 돌릴 틈도 없이 다시 전령이 달려왔다.
“모든 제자들이 환자를 옮기고 있으나 손이 부족합니다. 공력이 낮은 제자들은 독기 때문에 환자에게 접근할 수도 없습니다!”
“큰일이군.”
“하아.”
누가 내뱉은 것인지 알 수 없는 한숨이 여기저기서 흘러나온다. 곧 대전 안이 한숨소리로 가득해졌다.
천불전주 원당이 노기 가득한 목소리로 발언했다.
“흉수는 어찌 되었답니까!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잖습니까. 당장 제자들을 풀어 흉수를 잡아야 합니다!”
그러나 그의 발언은 무리가 있었다. 보통의 제자들은 독기 때문에 함부로 경내를 돌아다닐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흉수를 잡겠다고 돌아다니는 것은 더 큰 피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었다. 그렇다고 흉수를 잡지 않을 수도 없으니 소림은 말 그대로 사면초가에 처한 지경이다.
원주들이 방장 굉운을 보았다. 굉운은 그때까지 아무 말도 없이 숙고하고 있던 차라 지금쯤 그가 무언가 결론을 내줄 차례였다.
하나 굉운은 계속해서 침묵을 지킬 뿐이었다.
그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원주들은 궁금해졌다.
그때 긴 침묵을 참아내지 못하고 나한전주 굉소가 발언을 했다.
“이번 일에는 소림의 제자뿐 아니라 일반 불자들의 안위가 걸려 있소. 흉수를 잡는 것도 중요하나 총력을 다해 수습하지 못하면 소림은 회복할 수 없는 상처를 입게 될 것이오.”
소림 최고의 무력집단으로 손꼽히는 나한들의 수장 굉소다. 그의 발언은 묵직하다.
긴나라전주 원상이 이를 씹듯이 말을 내뱉었다.
“당장 통제불능의 상태인데 총력이 어디 있고 저력은 또 어디에 있단 말입니까! 게다가 흉수는 아직도 소림 경내를 활개 치며 돌아다니고 있습니다. 이 무슨 망신이란 말입니까. 소림 역사상 이런 일은 한 번도 없었을 겁니다.”
차라리 엄청난 무력을 가진 단체가 쳐들어왔다면 이 정도의 피해는 입지 않았을 터였다. 그러나 독이라는 방법은 너무나 치명적이었다.
지금까지 알려진 환자가 거의 천 명에 이른다. 환자들을 수송할 수 있는 인원도 독기를 이겨낼 수 있는 내공을 지닌 이들로 한정된 데다, 그 많은 사람들을 해독할 수 있는 약은 또 어디서 구한단 말인가.
당장에 공기 중을 떠도는 독기 때문에라도 소림의 제자가 아닌 외부 의원들의 도움을 받기조차 요원한 것이 현실이다.
“여기 데려왔습니다!”
원자배에서도 공력이 뛰어난 승려 한 명이 중독을 당한 무자배의 제자를 데리고 왔다.
대체 어떤 독에 당했기에 이리도 지독한지 확인하기 위해 미리 명령을 내려두었다.
그러나 나한전주 굉소는 데려온 무자배의 제자를 볼 생각도 않았다.
“당장 손을 써야 할 시급한 상황이오! 일반 시주들의 생명이 걸린 일이외다. 독을 확인하는 것은 여기 있는 모두가 해야 할 일은 아니오!”
문수각주 원전이 불만스러운 표정으로 대꾸했다.
“독을 확인해야 해독약을 찾든 할 게 아닙니까.”
“당장에 손이 모자라다지 않는가!”
굉소는 벌떡 자리에서 일어섰다. 더 이상 쓸데없는 질답 따위는 하고 싶지 않다는 얼굴이었다.
“팔대호원에 최소한의 인원만 두고 나머지 나한을 모두 투입하도록 하겠습니다.”
방장 굉운을 돌아보지는 않았으나 그에게 허락을 구하는 일임에는 확실했다. 그러나 굉운은 무슨 생각을 하는지 굉소의 말에 금세 대답하지 않았다.
“방장 사형!”
굉소의 외침에 고개를 든 굉운이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굉소 사제의 말이 맞네. 무공을 배우지 않은 일반 시주들을 우선적으로 구해내야 하네. 모두 그 일에 동참해 주시게.”
“흉수를 잡는 일은 어떡합니까? 흉수를 잡지 못하면 중독자는 계속해서 늘 것입니다.”
“당장에 사망자가 한 명도 없는 것으로 보아 일반 시주들에게 악의를 품고 있는 것은 아닐 듯하네. 그러니 내 말을 따르시게들. 흉수에 대한 처리는 내가 따로 준비를 해두겠네.”
원주들은 할 수 없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굉운의 말이 이어졌다.
“본문의 제자들 중 아주 위급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시주들의 안위를 최우선으로 하여야 하네. 중독된 상태를 보아 상중하로 나누어 상은 금강법당에, 중은 제사 법전에, 하는 연무청으로 옮기게.”
“알겠습니다.”
“그리고 나가기 전, 대환단과 소환단의 사용 허가를 요청하겠네.”
원주들도 그 말에는 잠시 움찔했다.
대환단은 소림의 보물이다. 소환단과 더불어 대환단까지 풀겠다는 것은 소림의 밑천을 다 드러내는 것이나 다름이 없었다.
원주들이 뭐라고 묻기도 전에 굉운이 벌떡 일어섰다.
“굉소 사제의 말대로 이번 일에는 소림의 운명이 걸려 있네. 모두들 이번 사태의 수습을 최우선적으로 여겨 주시게. 끌어낼 수 있는 모든 자원을 사용하여 단 한 명의 사망자도 내서는 아니 될 걸세! 어차피 공력이 낮은 제자들은 환자를 보살필 수도 없으니 그들을 모두 내려 보내 약재를 구해 오도록 하는 한편, 소환단과 대환단을 미량으로 섞어 현재 보유한 약재로 탕약을 짓게 하게.”
모두가 이번 사태에 대해 큰 심각성을 느끼고 있는 것은 마찬가지였다. 자칫 사망자가 대거 발생하게 된다면 소림은 그야말로 돌이킬 수 없는 나락으로 빠지게 될 터였다.
더구나 일반인들까지 관계된 이상 관(官)의 개입 역시 불가피할 것이다. 소림이 스스로 일을 해결하지 못한다면 관의 통제를 받아야 할 것이고, 무림 문파로써 자율성을 잃는 것이 얼마나 치명적인 일인지는 설명할 필요도 없는 일이었다.
원주들이 대전을 나갔음에도 원호는 남아 있었다.
넓은 대전에 원호와 굉운만이 있었다.
굉운이 원호를 보고 물었다.
“할 말이 있는가?”
원호는 심각하게 굳은 얼굴로 가만히 서 있었다.
굉운이 다시 물었다.
“할 말이 있으면 하게.”
원호는 몇 번이나 머뭇거렸다. 쉽게 내뱉을 수 없는 말이었다. 그럼에도 묻지 않을 수 없었다.
아무래도 방장의 태도가 수상한 까닭이다.
보통 이런 경우 흉수를 제일 먼저 찾아야 했다. 물론 독 때문에 제자들이 행동하기 어렵다 하나, 휘파람을 분다거나 호각을 불어서라도 흉수를 찾아낼 수는 있다.
그러나 마치 굉운은 흉수를 알고 있으니 굳이 찾을 필요가 없다는 식으로 행동하고 있지 않은가. 세상에 집에 도둑이 들었는데 도둑을 잡지 않고 돌아다니도록 내버려두는 집안이 어디 있단 말인가!
그래서 원호는 굉운이 무언가를 알고 있지 않은가 생각한 것이다.
‘만약 알고 있다면…….’
원호는 입을 열기가 두려웠다. 마른침을 꿀꺽 삼키며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지금 일어난 일에 대해서 혹시…….”
하나 원호는 말을 끝마칠 수 없었다.
굉운이 원호에게서 관심을 돌린 탓이었다. 그리고 촌각이 지나지 않아 원호 역시 그 이유를 알게 되었다.
“네 이놈! 네놈은 대체 뭐냐!”
“방장 대사님을 찾아 왔는데요, 방장실에 안 계시고 여기 계시다고 해서요. 정말 급한 일이에요!”
“이놈! 썩 물러나라!”
대전 밖에서 난데없는 고함소리가 들려왔다.
굉운이 자리에서 일어서는 동작도 없이 움직였다. 원호가 막 일어서는 순간 이미 굉운은 대전의 문 밖으로 나가고 있었다.
굉운의 신법도 놀라웠지만 평소에는 보이지 않았던 무위를 드러낼 만큼 밖의 상황도 심상치 않다는 뜻이었다. 원호도 급히 일어나 굉운을 따랐다.
대전 밖은 원호가 생각한 어떤 것과는 전혀 달랐다.
조그만 아이 한 명이 네 명의 나한승들에 둘러싸여 있는 모습이었다. 둘러싸고 있다고는 해도 거의 이 장여를 물러나 있는 상태였다. 아이에게 가까이 가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아이는 금방이라도 쓰러질 듯 비틀거리고 있었다. 그 연약한 아이를 둘러싼 나한승들의 얼굴은 지나치게 험악해서 마치 커다란 건달 넷이 이유도 없이 재미삼아 아이를 죽이려 드는 듯했다.
그러나 그들도 사실 장건의 일거수일투족에 극도로 경계하고 있었다. 장건이 조금만 발을 움직여도 바로 반응할 정도로 날카롭게 긴장하고 있다.
원호는 두 가지 이유에서 심장이 오그라드는 것 같았다.
첫째는 그 아이가 다름 아닌 장건이었다는 것이며, 둘째는 장건의 주위에 잘 보이지 않는 어르스름한 독무(毒霧)가 퍼져 있다는 것이었다.
어떤 이유이든 원호에게는 놀랍고도 경악할 만한 이유였다.
원호는 눈앞이 캄캄해졌다.
‘이, 이게 무슨!’
눈앞에서 보니 모든 일의 전말을 알 것 같다. 어째 흉수가 신출귀몰하다 싶었더니 바로 저 아이가 소림을 돌아다니며 독을 뿌리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니 흉수를 찾지 못할 만했다. 설마하니 소림의 속가 제자가 흉수라 생각하겠는가.
‘독선 당사등! 대체 어떻게 일을 처리했기에 저 아이가 소림을 활보하도록 한 거요! 소림을 강호에서 지워 버릴 거요? 죄도 없는 사람들을 모조리 죽이는 게 당신의 목적이었소? 처음부터 내게 거짓말을 한 거냔 말이오!’
원호는 아득해졌다.
무엇보다 침착한 굉운의 모습에서 그가 이번 사태를 어느 정도 예측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었다.
‘끝났구나…….’
장건은 방장을 찾느라 한참을 헤맸다. 소림의 내부 구조라는 것이 그리 녹록하지 않다. 외침을 막기 위해 주요 건물은 진법을 따라 지어졌다. 방장실을 둘러싼 형태로 자리한 팔대호원도 역시 그러하다.
게다가 방장이 방장실이 아닌 회의를 하는 대전에 와 있었던지라 장건은 더 헤맬 수밖에 없었다.
이제야 방장을 찾게 된 장건은 기쁘고도 급한 마음에 크게 외쳤다.
“방장 대사님! 큰일 났어요! 제 친구들과 무진 대사형이 다 쓰러졌어요!”
나한승이나 원호나, 심지어는 굉운까지도 그것은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속가 제자와 무자배들 뿐인가? 소림 전체가 난리가 났는데.
굉운이 말했다.
“내가 보기엔 네가 더 아파 보이는구나. 괜찮으냐?”
“전 괜찮아요. 하지만 친구들이……, 에……, 에…….”
장건이 재채기를 했다.
“엣취!”
그 순간 나한승 중 공력이 낮은 한 명이 ‘쿡!’ 하며 기침을 하려다가 억지로 참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금세 입가에서 한줄기 피가 흘러내렸다.
피를 토하려는 걸 억지로 참은 것이다.
“엣취! 엣취!”
장건이 연이어 기침을 하자 나한승들은 두어 걸음을 더 뒤로 물러났다.
“쿨럭!”
그중 두 명이 피를 토했다.
명색이 소림을 수호하는 나한승인데 평소라면 이럴 리가 없다. 공력이 높은 나한승들은 나한전주 굉소가 데리고 나갔기 때문이다. 굉운이야 스스로를 지킬 만하니 가장 약한 넷을 두었다.
그렇다 하더라도 나한승들조차 일부의 중독을 감당해내지 못하는 독이니 얼마나 지독하단 말인가.
굉운은 그것만으로도 소림에 왜 이런 일이 벌어졌는지 알 수 있었다. 아니, 이미 예측하고 있었던 사실이기도 했다.
꽤 먼 거리에 떨어져 있던 원호도 소매로 입을 가리며 물러났다. 독선이 왜 독선이라 불리는지 이 지독한 독만 봐도 알 수 있는 사실이다.
‘한데 왜 저 아이는 멀쩡하단 말인가!’
그때 장건이 머리를 긁었다. 머리카락 몇 개가 빠져 바람에 날렸다. 하나의 독성을 스스로 해소시키자 다른 독성이 발발한 것이다.
나한승들과 원호는 안색이 하얘졌다. 승려이니 머리카락이 빠질 일은 없지만 갑자기 두피가 간지러웠다. 공력을 최대한 끌어올려도 머리에서 개미들이 물어뜯는 듯한 고통이 느껴졌다.
나한승 중 한 명이 참지 못해 머리를 긁었다. 피부가 벗겨지며 손톱 끝에 피가 묻어 나왔다.
장건이 놀라서 소리쳤다.
“으악! 여기까지 번졌다!”
굉운이 원호에게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알겠는가?”
원호는 제정신이 아니었다. 어떻게 해야 할지 그것만 생각하는 것도 벅찬데 공력을 끌어올려 독기에도 대항해야 했다. 그러다 보니 굉운이 묻는 말의 의도를 생각할 수 없었다.
오히려 갑자기 물으니 놀랐다. 그리고 굉운의 표정이 여전히 편안한 데에 다시 한 번 놀랐다.
굉운이 말했다.
“적토연령초(赤土延齡草), 현호색(玄胡索), 독공목(毒空木)……. 입술이 바짝 마르고 토악질을 하니 백황 마고(白黃 ?퇉)……. 경련이 일어나니 마황미(麻黃黴), 그리고…….”
굉운이 고개를 갸웃했다.
“더 이상은 잘 모르겠군. 아는 독보다 모르는 독이 더 많아. 일부는 중원에 존재하는 독이 아닐세. 게다가 계속해서 독성이 바뀌는군.”
원호는 감탄을 내뱉을 뻔했다.
굉운은 그 짧은 사이에 장건에게서 풍겨 나오는 독기의 종류를 헤아리고 있었던 것이다.
“자네는 더 아는 게 없는가?”
원호는 입술을 깨물고 고개를 저었다.
‘겨우 한 배분의 차이인데 이만큼이나 대처하는 자세에 차이가 나다니. 이래서야 어찌 세대교체를 운운할 수 있겠나.’
굉운은 그저 담담히 원호를 바라보기만 했지만 원호는 굉운의 눈을 마주할 수 없었다.
속이 타는 듯하다. 갈증이 나며 입술이 바짝바짝 말라온다. 방장의 말에 따르면 백황 마고의 독성 때문일 테지만, 원호는 독성 때문에 입술이 타는 것이 아니다.
굉운이 독촉했다.
“앞으로 자넨 지금보다도 더 많은 일을 겪게 될 걸세. 그때에도 지금처럼 멍청하게 있을 텐가?”
“저는…….”
원호는 굉운을 쳐다보았다. 굉운의 눈빛을 다시 확인해 보았다.
알고 있다.
분명히 알고 있으면서 자신을 또 시험하려 한다.
원호는 분노했다.
“방장 사백!”
하나 굉운은 조금도 동요하지 않았다. 원호는 어금니를 꾹 깨물었다.
굉운은 왜인지 고개를 끄덕이더니 장건을 보고 말했다.
“친구들과 무자배의 아이들은 내가 알아서 할 테니, 넌 일단 어디에든 좀 가서 쉬는 것이 좋겠구나.”
장건은 기대하던 대답을 듣고 겨우 안도했다.
“제가 도울 일이 있으면 도울게요.”
원호는 하마터면 ‘네가 근처에 없는 것이 돕는 것이다!’ 라고 소리를 지를 뻔했다. 나한승들도 같은 생각인지 장건을 노려보았다.
딱히 웃을 만한 상황은 아니었으므로 굉운은 담담히 말했다.
“네 몸도 좋아 보이지 않으니 일단 쉬거라.”
숨을 쉴 때마다 치명적인 독기를 내뿜는 아이를 어디에 격리시켜야 할까?
굉운은 잠시 생각하다 나한승들에게 명령을 내렸다.
“건이를 방장실 옆의 방으로 데려다 주어라.”
가장 멀쩡한 나한승이 장건을 안내했다.
“멀찍이 떨어져서 따라오너라.”
장건은 방장에게 꾸벅 고개를 숙이며 합장을 하고는 물러나려다가 고개를 들었다.
“저…….”
“왜 그러느냐?”
장건이 어색하게 말했다.
“친구들이 아프니 이런 말 하면 안 된다는 거 아는데요.”
“말해 보거라.”
“저 너무 배가 고파서 죽을 것 같아요. 뭐라도 좀 먹으면 안 될까요?”
원호는 ‘허!’ 하고 소리를 냈다.
“친구들이 아프다면서 밥이 넘어가느냐!”
장건이 우물쭈물하며 대답했다.
“하지만 참을 수가 없어요. 이렇게 배가 고픈 적이 별로 없는데…….”
어지간하면 참겠는데 지금의 배고픔은 너무 심했다. 뱃가죽이 등에 짝 달라붙어 아까부터 요동을 치고 있었다. 정말로 뭐든 먹지 않으면 죽을 거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굉운이 나섰다.
“됐다. 아픈 사람을 간호하려면 멀쩡한 사람이 잘 먹어야 하는 법이니, 저녁 공양을 가져다 주도록 하마.”
장건의 얼굴이 환해졌다.
“감사합니다!”
원호는 질렸다.
무슨 이런 아이가 다 있는가. 생각하고 또 해도 미칠 노릇이었다.
독선 당사등이 실수인지 의도적이었는지는 모르나 이런 일을 저지른 이상, 수습은 불가능했다. 당문과 소림은 이제 등을 마주댈 일이 없을 것이다.
자존심 높은 당문에서 당사등을 내칠 리도 없고, 사과를 할 리도 없으니 아마 전면전이 벌어질지도 몰랐다.
‘씁쓸하구나.’
소림을 위한 일이라 생각했는데 결국은 소림에 해를 끼치고 말았다. 그에게는 오명을 쓰고 죽는 것보다 그게 더 힘든 일이었다.
어쨌든 자신은 독선에게 속은 것이다.
턱.
갑작스레 누군가 원호의 어깨를 짚었다. 원호가 소스라치게 놀라 고개를 돌려보니 굉운이다.
“좋은 일만 할 수도 없고, 좋은 사람만 될 수도 없네. 방장이란 스스로 소림의 제자들을 대신해 지옥으로 갈 수도 있어야 하네. 그리고…….”
원호는 마른침을 삼켰다.
굉운이 계속해서 말했다.
“그 과정에 설사 일이 잘못되었다 하더라도 물러날 자리는 없네. 최선을 다해 앞으로 나아가는 수밖에는.”
원호는 굉운의 입에서 나온 말을 믿을 수 없었다.
그의 말은 사면령과도 같은 것이다. 원호의 잘못을 묻지 않겠다는 의미다.
그러나 원호는 감동하지 않았다.
“사백…….”
굉운과는 가는 길이 다르다. 소림을 위한다는 목적은 같으나 서로 생각하는 바가 다르다.
원호는 오히려 이를 악물었다.
‘알고 있으면서 용납해 준다는 투로 말하지 마시오. 나도 소림을 위해 노력하고 있단 말이오. 이번에는 내가 틀렸다고 해도 다음에도 틀리리란 법은 없잖소.’
왜일까.
원호는 더욱 분노가 끓어올랐다. 자신을 속인 당사등과 자신을 감싸준 굉운 중에 오히려 굉운이 더 밉게 느껴졌다.
☆ ☆ ☆
장건은 작은 쪽방에 혼자 앉아 나한승이 가져다 준 밥과 나물 반찬을 먹고 있었다.
매일 산속에서 굉목과 생쌀, 생나물을 먹었던지라 처음에는 본산에서 먹는 찐 밥과 나물이 입에 맞지 않았다. 하지만 그것도 금방 익숙해져서 지금은 나름대로 맛있게 먹을 수 있었다.
허겁지겁 밥을 먹고 나니 친구들이 걱정되었다.
“괜찮을까? 많이 아파 보이던데.”
꼬르륵.
“아이고. 배야 좀 가만히 있어라. 너 왜 그러니?”
벌써 두 그릇이나 먹었는데도 배가 차지 않았다.
“노사님께 혼나겠다. 참아야지.”
장건은 목을 긁으면서 억지로 배고픔을 참으려 해보았지만 참을 수가 없었다. 할 수 없이 방 앞을 지키고 있는 나한승에게 밥을 더 부탁했다.
나한승은 본래 이런 일을 하는 승려가 아니다. 얼굴이 일그러졌지만 방장이 편의를 최대한 봐주라 한 까닭에 그는 다시 공양간으로 밥을 가지러 갔다.
다시 밥이 오고, 장건은 행복한 표정으로 밥을 먹기 시작했다.
문득, 당사등이 던져준 구슬이 무엇이었는지 궁금해졌다.
“음. 비싼 거라고 하셨는데 뭐였을까.”
깨졌다고는 하지만 거품처럼 만지자마자 사라졌기 때문에 장건은 그게 무엇이었는지 감을 잡을 수도 없었다.
“응?”
장건은 젓가락질을 멈추었다.
그때에는 신경 쓸 겨를이 없어 무심코 넘겼는데 이제와 생각해 보니 당사등이 구슬을 던질 때의 동작이 범상치 않았다. 작은 동작이었는데 지금 생각해도 머릿속에 각인이 되어 있을 정도로 뚜렷하게 인상이 남았다.
안법을 써서 한 번에 동작을 머리에 담았기 때문에 아주 작은 미세한 동작까지도 기억이 난다.
“와아…….”
극히 자연스럽고도 부드러운 동작인데 미증유의 힘이 숨어 있는 듯한 느낌이다. 마치 검성 윤언강이 사과를 깎을 때의 그 느낌과 비슷하다.
장건은 당사등의 모습을 되새기며 자기도 모르게 손동작을 따라해 보았다.
울컥.
토악질을 할 때 목에서 뭔가 솟구치는 것처럼 단전에서 무언가 불끈하며 치솟았다.
“어?”
장건이 놀랄 틈도 없이 손에서 젓가락이 튀어 나갔다.
파팍.
젓가락이 사라졌다 싶었는데 어느 샌가 벽에 박혀 있었다. 나무를 다듬어 곱게 옻칠을 한 젓가락이 딱딱한 흙벽에 그대로 박힌 것이다.
장건은 얼떨떨했다.
“내가 지금 뭘 한 거지?”
장건이 당씨 가문이 독과 암기의 쌍절(雙絶)로 유명하다는 사실을 알 리 없었다. 당사등은 독공으로 유명하지만 사실 독을 제대로 쓰기 위해서는 암기술도 익혀야 했다.
독은 그에 걸맞은 하독술과 함께 써야 그 효율이 몇 배나 증강되는데, 가장 편한 방법이 바로 암기에 독을 발라 사용하는 방법이었다.
지금이야 장풍으로도 독을 실어 보낼 수 있는 경지에 이른 독선이지만, 그 전에는 암기에 독을 발라 사용하곤 했다. 당사등의 암기술은 독공의 명성에 묻힌 것뿐이지 사실은 그의 일절로 꼽아도 결코 모자라지 않는 것이었다.
장건은 젓가락을 벽에서 뽑았다. 어찌나 깊게 박혔는지 뽑는 데에도 힘이 들었다.
금강권을 처음 했을 때처럼 신기하고도 무서웠다. 그런데 몸은 아프지 않고 오히려 개운했다. 근육이 꼬이거나 비틀리지도 않았다.
간지럽고 쑤시던 감각들이 그 한 번의 젓가락 던지기로 시원해졌다. 속이 확 풀린 느낌이다.
“희한하네.”
또 해보고 싶은데 애먼 벽에 구멍을 내놓았으니 조금 찜찜하다. 가뜩이나 결벽적인 증세가 있는데 구멍 두 개가 뚫려 있는 걸 보기가 쉽지 않다.
장건은 애써 구멍을 모른 체하며 밥알을 쥐었다. 익힌 쌀이라 구멍이 뚫리진 않겠지, 벽에 붙으면 먹을 수는 있겠지, 하고 생각해서다.
작고 물러서 쥐기도 힘든 밥알을 손가락으로 잡고 다시 한 번 손가락을 튕겼다.
툭.
이번에도 구멍이 났다. 아주 조그만 구멍이었다.
“으악.”
장건은 밥알 한 톨이 아까워서 인상을 썼다. 너무 깊이 박혀서 밥알을 빼낼 수도 없었다.
하지만 이번에도 속이 개운해졌다.
장건은 모르고 있었지만, 밥알에는 상당한 공력이 실려 있었다. 그것은 장건이 독성을 해독하면서 생긴 독소의 찌꺼기였다.
극독을 지닌 독성이 계속 흡수되면서 장건의 내공은 늘어나고 있는 상황이었고, 독정의 독성이 발발하는 시간이 더 빨라지고 있었다. 그러다보니 흡수할 수 없는 찌꺼기들이 급속도로 축적되는 중이었다.
그것들이 밖으로 배출되니 시원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마치 한 이 주일쯤 참은 변을 한 번에 내뿜는 기분이었다.
지금 장건은 거의 몸을 움직이지 않는 상태에서 미세하게 근육을 움직이고, 내공을 움직여 암기를 쏘아내고 있었다.
강호에서 내로라하는 고수나 되어야 장건의 미세한 움직임을 겨우 잡아낼 수 있을 정도였다.
장건은 신기하기만 했다.
밥알을 던지고 나니 간지러운 것도 덜해지고, 아픔도 줄었다. 아무리 무공을 모르는 장건이라 하더라도 몸이 나아지는데 모를 리가 없었다.
하지만 자꾸 벽에 구멍을 뚫을 수는 없었다.
“이러면 좀 나아질까?”
천천히 던진다면 벽에 구멍이 뚫리지 않을 것 같았다.
“한 번 해보지 뭐.”
장건은 벽에 구멍이 안 뚫리도록 최대한 조심스럽게 밥알을 던졌다.
그러다보니 자연 기운이 더 강해졌다.
장건도 던지고 나서야 ‘어? 뭔가 이상한데?’ 하고 생각했다. 그러나 정말 장건의 예상대로 밥알은 느릿하게 공중을 날아갔다. 밥알이 유유히 공중을 거니는 것 같았다. 너무 느려서 달려가 다시 손으로 잡아도 될 것 같았다.
당사등이 이 광경을 보았다면 기절을 했을지도 몰랐다.
암기술은 상대가 눈치채지 못하도록 은밀히, 그리고 가장 빠르게 던지는 것이 최고라 생각한다. 하지만 고수가 되면 빠른 것보다도 상대방이 피할 수 없는 암기를 던지게 된다. 그것이 암기술의 최고봉이며 지향해야 할 목표다.
당사등이 독정을 장건에게 던졌던 그 한 수에도 바로 그와 같은 묘리가 숨어 있었던 것이다.
비록 느리게 보이나 지금 장건의 한 수 역시 그와 같았다. 만약 눈앞에 상대가 있다면 절대 피하지 못하고 맞을 수밖에 없을 터였다.
묵직하게 날아가는 밥알 한 톨을 보며 장건은 고민했다.
“왠지…… 잡아야 할 거 같은데…….”
그래도 너무 느려서 벽에 부딪치면 뭉개질 것도 같았다.
그것이 장건의 오산이었다는 건, 잠시 후 드러났다.
툭.
밥알이 벽에 부딪쳤다고 생각한 순간이었다.
쩌억.
그 작은 점 하나에서부터 길게 금 하나가 이어졌다.
“어어? 어어어?”
장건이 ‘어어어’ 하고 있는 동안 벽 전체에 금이 갔다.
투툭, 투투툭.
벽은 고통을 호소하며 흙먼지를 내뱉더니 곧 와르르 무너져 버렸다.
장건이 있는 객실의 앞에서 호법을 서고 있던 나한승은 때 아닌 굉음과 무너지는 벽을 보고 놀라 소리쳤다.
“무슨 일이냐!”
우르르르.
무너진 벽의 잔해 뒤로 뻘쭘하게 장건이 서 있었다.
나한승은 괴한이라도 습격해 온 줄 알았다가 그런 기척이 없자 황당한 얼굴로 장건을 보았다.
“이, 이게 어떻게 된…….”
장건은 머리를 긁적이며 난처한 얼굴을 했다.
“전 이러려는 건 아니었는데.”
“허.”
장건은 정말 미안하다는 얼굴로 고개를 숙였다.
“죄송해요. 제가 욕심을 내서……, 에, 에…….”
나한승의 안색이 돌변했다.
“재, 재채기하지 마라!”
“에에에…….”
장건도 재채기를 참으려 했지만 먼지가 일어서 코와 목이 너무 간지러웠다. 나한승의 간절한 바람에도 불구하고 장건은 크게 재채기를 하고 말았다.
“엣취이―!”
유난히 길고 큰 재채기소리였다.
장건의 몸에 발발한 독성의 중독 증상이었다. 물론 장건에게는 재채기 정도였지만 근처에 있던 나한승에게는 달랐다.
“쿠억!”
나한승은 피를 토하며 엎어졌다.
방 안에 가득하던 독기가 벽이 무너지면서 한꺼번에 흘러나오기까지 한 데다, 장건의 몸에는 점점 더 효과가 강한 독성이 발발하고 있던 터였다.
나한승은 공력을 채 끌어올리지도 못하고 혼절했다. 엄청난 독 때문에 나한승의 피부에 자글자글한 핏방울이 맺혔다.
장건은 어쩌지도 못하고 망연자실 서 있었다.
굉음소리를 듣고 몇몇이 달려오긴 했지만 픽픽 쓰러졌고, 제대로 된 도움을 줄 만한 이가 달려온 것은 그로부터도 한참 후였다.
“할아버지!”
불목하니 노인, 문원이었다.
“도대체 네가 왜 여기 있는 거냐? 이 소란은 또 뭐고! 헙!”
자운당에서보다 더 심한 독기가 주변에 맴돌고 있었다. 문원은 급히 공력을 끌어올렸다.
장건은 울상을 지었다.
“저도 잘 모르겠어요.”
“아이고야. 정말 미치겠구나.”
문원은 뒤통수를 붙잡다가 쓰러진 이들을 보고 급히 응급조치를 해야 한다는 걸 깨달았다.
“일단 넌 좀 어디든 들어가 있어라.”
“네?”
“그러니까……, 에이, 모르겠다.”
문원은 급한 마음에 장건에게 금강지를 날렸다. 점혈을 해서 조용히 시켜놓고 다른 데로 데리고 갈 생각이었다.
피잉.
문원의 금강지는 어이없게도 장건을 맞추지 못했다. 장건이 거의 고개를 까딱하는 수준으로 피해 버렸기 때문이다.
문원이 어떤 사람인가! 당장 소림에서 손꼽을 수 있는 실력의 무인이다. 그런데 그의 금강지를 피하다니!
문원이 애원하는 투로 소리쳤다.
“이놈아! 그냥 가만히 있어!”
“싫어요! 왜 이상한 걸 던지고 그러세요? 맞으면 아프잖아요.”
“안 아파!”
장건과 실랑이를 하던 문원은 가슴을 쳤다.
“아구, 답답해. 저런 괴물 같은 놈을 어떻게 할 수도 없고.”
엄청난 독에 중독이 되고도 멀쩡하질 않나, 그 몸으로 문원의 금강지를 피하지 않나.
참으로 황당한 노릇이었다.
결국 장건은 문원의 손에 이끌려 방장실보다도 더 안쪽의 작은 불당에 갇히게 되었다.
☆ ☆ ☆
잠시 후 굉운을 찾아간 문원은 당황한 얼굴로 항변했다.
“나도 어찌된 일인지 모르겠구먼. 자운당에 데려다 둘 때까지만 해도 정신이 없던 아이였네. 설마하니 독선의 독에 당하고도 이렇게 돌아다닐 거라고 누가 생각할 수 있었겠나.”
가만히 듣고 있던 굉운이 말했다.
“그러니까 사숙조께서 손을 쓰기도 전에 건이가 자운당에서 스스로 나와 돌아다녔다는 거지요?”
“그렇지. 대환단을 얻어서 돌아가 보니 아이가 벌써 없어졌지 뭔가. 하지만 설마하니 방장에게 올 줄은 몰랐네. 아이를 허락 없이 자운당에 데려다 놓은 것은 내 잘못이나, 그렇다고 산중에 중독된 아이를 내버려둘 수도 없는 일이잖은가.”
“으음.”
문원은 굉운의 침음성을 듣고 입을 다물었다. 잠시 굉운의 말을 기다리던 문원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아무래도……, 쉽게 해결될 일이 아니겠지?”
굉운이 고개를 끄덕였다.
“당장 본산의 제자들만 피해를 입었다 하더라도 그냥 넘어갈 수 있는 일이 아닌데 일반 향객들의 피해까지 심대합니다. 이 일의 배후가 누구인지 밝혀지는 것은 시간문제이니…….”
문원이 작게 한숨을 쉬었다.
“당가와의 분쟁을 피할 수 없겠구먼.”
“그렇겠지요.”
“에휴. 독선이라고 이런 결과를 만들려고 한 건 아닐 터인데.”
독선 당사등에게는 전혀 일반인들을 다치게 하려는 의도가 없었다. 아니, 그로서는 최소한의 피해로 목적을 이루려는 생각밖에 없었다.
지금 소림에 일어난 일은 그로서도 꿈에도 생각지 못한 일이었다.
굉운이 말했다.
“의도가 어쨌든 간에 일반인들의 피해가 있는 이상, 관의 개입을 막을 수 없게 될 것입니다. 그렇다고 피해자인 소림이 먼저 물러설 수도 없지요. 이번 일은 전적으로 당가에 책임이 있으니까요.”
강호의 대 혈사(血事)가 벌어질지도 몰랐다. 자존심 강한 당씨 세가가 만일 나 몰라라 한다 해도, 독선이 혼자 벌인 일이라 하더라도, 관이 개입한다면 가문의 일로 번지고 만다. 그렇게 되면 결코 작은 일로는 끝나지 않는다.
문원이 물었다.
“독선이 왜 그랬을 것 같나?”
“아마도…….”
굉운이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말하지 않아도 문원 역시 굉운의 생각을 안다.
“홍오, 그놈 때문에 이젠 소림이 혈겁에 휘말리는구나. 그러게 사형은 왜 그런 놈을 진작에 내치지 않았단 말이냐!”
문원은 ‘아이고 아이고!’ 하며 곡이라고 하고 싶은 심정이었다. 어떻게 보면 자신도 이번 일에 일조를 한 까닭이다. 차라리 홍오에게 발견되도록 장건을 내버려두었다면 이렇게까지는 사태가 악화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문원은 방장실의 천장을 한 번 보더니 땅이 꺼져라 길게 한숨을 쉬었다.
그리고는 굉운에게 받은 대환단을 내놓았다.
굉운은 고개를 젓고 다시 대환단을 문원의 앞으로 밀었다. 문원이 떨떠름한 얼굴로 말했다.
“한 알의 대환단이라도 귀중한 때라는 걸 알고 있네. 소림에 있는 모든 약재를 풀기로 하지 않았나.”
굉운은 대답을 하지 않았다.
굉운의 무언에 대한 의미를 깨달은 문원은 대환단을 들고 조용히 방장실을 나갔다.
“아미타불…….”
작은 목소리로 불호를 읊조린 굉운이 말했다.
“홍오 사숙과 원호 사질을 불러오게.”
아무도 없던 방장실의 앞에 갑자기 인기척이 나며 대답이 들려왔다.
“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