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ily Priesthood RAW novel - Chapter 35
제 6 장 중원 최강 변비
며칠이 더 지났는데도 장건은 아직 호흡곤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잠을 재우면 괜찮은데 깨우면 호흡곤란이 온다. 딱히 무슨 이유인지도 모르고 손을 쓸 방법도 없었다. 그렇다고 내내 잠만 재울 수도 없는 노릇이니 골치 아픈 상황이었다.
더구나 장건은 점혈법이 잘 통하지 않는다. 보통 사람보다 빨리 혈도가 풀려 버려서 수시로 점혈을 해야 했다. 그것은 보통 귀찮고 번거로운 일이 아니었다.
굉운도 혀를 내두르며 돌아가 버렸다.
오히려 원호가 와 있었다. 궁금해서인지 무슨 일인지는 모르나 원호가 장건을 보러 종종 오곤 했다.
굉목은 초췌한 얼굴로 원호를 쳐다보았다. 그렇다고 해서 원호에게 해답이 있을 리 없었다.
오히려 원호는 굉목보다 난감하다.
굉운이 원호에게 모든 걸 맡겨 버린 탓에 굉운 대신 매일 장건을 보러 와야 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원호가 장건의 상세에 대해 이유를 알 리도 없다.
‘당가로 보내 버리면 굳이 이런 고생은 할 필요도 없을 것을…….’
그러나 당장 장건을 보낼 수도 없는 노릇.
‘이렇게 고생시키느니 차라리 하루라도 빨리 독선 선배가 해결하게 하는 것이 아이를 위해서도 더 나을 텐데.’
굉목이 상념에 빠진 원호를 불렀다.
“이보시게. 내 말 들었나?”
“아, 죄송합니다.”
굉목이 인상을 썼다. 원호는 그조차도 마음에 들지 않는다.
‘소림의 일에 관여치 않겠다 하던 분이 왜 이 아이에게 이토록 정을 가진단 말인가.’
생각이야 어쨌든 원호는 표정을 드러내지 않았다.
“뭐라고 하셨는지요?”
“자네가 아는 중독 증상 중에 숨을 못 쉬는 증상이 있느냐 물었네.”
그러거나 말거나 무슨 상관인가. 독에 대한 저항이 얼마나 강한지 장건이 재채기를 할 정도면 옆에 있는 사람은 피를 토하고, 눈을 긁을 정도면 옆에 있는 사람은 앞을 못 볼 정도로 중독이 되는데.
그런 장건이 숨을 못 쉴 정도의 독이 발발했으면 막을 수 있는 방법이 없질 않겠느냔 말이다.
“그럴 수도 있겠지요.”
성의 없는 대답이었지만 굉목에게는 중요한 일이다.
“흐음.”
그때 잠들어 있던 장건이 깨어났다.
“으음…….”
잠이 덜 깬 흐릿한 눈으로 장건이 굉목과 원호를 올려다보았다. 원호가 손을 들어 장건의 혼혈을 짚으려 했다.
“가만있어 보게.”
굉목이 급히 원호를 제지했다.
“왜 그러십니까?”
“건이가 숨을 제대로 쉬고 있네.”
장건에게 모든 신경을 쏟고 있던 굉목은 장건이 깨어난 직후에도 호흡이 고른 것을 알아챘다.
장건이 하품을 하며 쑥스럽게 웃었다. 거무스름한 얼굴로 웃는 장건을 보니 굉목은 자기도 모르게 눈물이 쏟아질 것 같다.
“노사님…….”
“이제 좀 괜찮으냐?”
그 어떤 때보다 부드러운 굉목의 목소리였다. 원호가 듣고 다 놀랄 지경이었다.
장건은 ‘헤헤’ 하고 웃으며 대답했다.
“걱정 안 하셔도 돼요. 그게요…….”
“말하지 말고 조금만 기다리거라.”
굉목은 곧 장건의 맥문을 잡고 진기를 보내 독기를 몰아내려 했다.
장건의 단전에 자리 잡은 독정은 떼어낼 수 없지만 몸 안의 독기라도 몰아내 편하게 해주려는 셈이다.
원호는 속으로 혀를 찼다.
‘뭐하러 쓸데없는 짓을 해서 기운만 소진시킨단 말인가. 타인의 몸에서 독기를 몰아내는 것도 자신의 진원진기가 소모되는 것인데. 어차피 독정이 남아 있으니 곧 다시 독이 퍼질 것을.’
그러나 굉목은 그 어느 것에도 연연하지 않았다. 그저 장건이 편해지는 것만을 생각할 따름이다. 당연히 멀뚱히 서서 보고만 있는 원호가 곱게 보일 리 없다.
굉목이 원호를 빤히 쳐다보며 말했다.
“자넨 뭐하나?”
“예?”
“와서 좀 돕게.”
원호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굉목이 장건의 오른쪽 맥문을 맡고 원호는 왼쪽 맥문을 맡았다.
“독기를 몰아내면 또 다른 독이 발발하는데, 수위가 얼마나 높을지 모르니 위험할 수 있습니다.”
원호의 말에 굉목은 콧방귀도 뀌지 않았다.
“그냥 시키는 대로나 하게. 우리 건이도 이만큼 버티고 있는데 자네는 뭐 그리 말이 많은가? 이 정도 독도 못 견디겠다면 그동안 얼마나 수련을 게을리 했는지 알겠구만.”
원호는 마치 아랫사람 다루듯 하는 굉목의 말투에 기분이 좋지 않았다. 배분상으로야 분명 아래지만 실질적인 원자배의 수장으로 대우는 해줬으면 했다.
방장조차도 함부로 대하지 않는데 홍오와 굉목, 이 사제지간은 참으로 사람을 막 대한다.
사실 여기 와 있는 것도 상황을 보러 온 것이지, 자신의 진기를 소모해 가면서까지 아이를 편하게 해주려고 온 것은 아니지 않은가.
원호는 심기가 불편해졌다.
“저는 혹시나 하고 말씀드린 겁니다. 아무렴 무공수련을 게을리 하겠습니까. 그리고 다른 사람도 아닌 독선의 독이 아닙니까. 지금까지야 그만한 독성이 발발하지 않았지만 언제 더 강력한 독성이 발발할지 모른다는 말입니다. 저희를 중독시키지도 못한다면 독선이라 할 수 없지요.”
“소림 무공은 깊이가 얕지 않네. 한낱 독 따위에 당할 정도라면 수련을 게을리 한 게야.”
원호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말도 안 통하는 고집쟁이 노인 같으니. 그러니 산에서 혼자 수십 년을 살았겠지.’
원호는 아예 말을 않기로 했다.
장건에게서 뿜어져 나오던 독기는 한결 잠잠해져 있었다. 장건이 숨을 쉬지 못할 정도의 독성이 발발했으면 더 심해져야 할 텐데 그렇지 않았다. 원호도 약간의 공력을 끌어올려 독기를 버틸 수 있을 정도였다.
‘설마 독정의 독성이 다 발발했나? 이게 끝이라고?’
어쩐지 뒤끝이 개운치 않고 찝찝하다.
굉목이 진기를 장건의 몸에 넣어 독기를 몰아내다가 돌연 한탄했다.
“허어, 왜 독기가 피부로 배출되지 않지? 발끝으로 몰아 칼로 째서 빼내야 하나?”
원호가 말했다.
“승려가 함부로 피를 봐서야 쓰겠습니까. 차라리 자연스럽게 내보내는 게 낫지요.”
독기를 몰아 대장을 통해 내보내자는 뜻이다. 발끝을 째 독기를 빼내면 뒤처리도 만만치 않으니 귀찮아서 한 말인데, 굉목은 크게 반겼다.
“그거 좋은 생각이구먼. 그럼 그렇게 하세.”
굉목이 이렇게까지 나오는데 원호도 어쩔 수 없었다. 함께 진기를 넣어 장건의 몸 곳곳에 스며든 독기를 밀어냈다.
장건은 둘의 말을 이해하지 못해 가만히 누워 있기만 했다. 원래 할 말이 있었는데 굉목이 말을 하지 못하게 하는 바람에 할 수가 없었다.
진기가 몸 안을 돌고 있을 때에는 말을 하면 안 되었다. 그 정도는 장건도 느낌상 알고 있었다.
‘말해야 되는데……. 조금 있다가 해야 되겠다.’
장건은 사실 먹을 수 있는 독기가 밖으로 빠져 나가는 걸 알고 깜짝 놀랐다. 그래서 일부러 호흡을 멈추고 독기를 흡수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자꾸 굉목이 점혈을 해서 재우고, 독기를 흡수하려고 하면 또 재우는 바람에 오히려 제대로 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가만히 내버려두었으면 더 빨리 깨어날 수 있었을 터였다.
조금의 시간이 지나자 독기가 빠지면서 장건의 거무죽죽한 얼굴이 원래 혈색으로 서서히 돌아왔다.
이윽고 굉목과 원호가 손을 떼자 장건이 고통스럽게 신음소리를 냈다.
“으윽!”
독기가 대장으로 몰려 심한 배변감이 느껴진 탓이었다. 굉목과 원호가 진기로 몰아낸 독기가 몰린 것이다.
“노, 노사님. 저 갑자기 배가…….”
장건이 배를 부여잡고 주춤거리며 일어나 앉았다.
굉목이 반색하며 말했다.
“바로 소식이 왔구나. 잘 됐다.”
“네?”
“뒷간으로 가서 마음껏 변을 보거라. 그래야 독기가 쭉 빠지지.”
“네에에?”
장건이 눈을 휘둥그레 떴다.
“인석아. 왜 그렇게 놀라? 지금 변을 봐야 독기가 빠진다. 시간 끌면 다시 몸 안으로 퍼질게야.”
“그러니까…….”
이 아까운 독기를 왜 빼낸단 말인가!
장건은 조금이라도 더 흡수하려고 숨도 참았는데 왜 일부러 독기를 몰아낸단 말인가!
“으윽!”
하지만 대장에 잔뜩 몰린 독기가 자꾸만 배를 자극하고 있었다.
“잔말 말고 가자.”
굉목은 장건을 거의 들쳐 업다시피 하며 불당 뒤쪽의 해우소로 데려갔다.
원호가 엉거주춤 가만히 서 있자, 굉목이 짜증을 부리며 말했다.
“뭐해? 안 따라오고?”
뒷간까지 따라오게 된 원호의 표정은 한층 불쾌해졌다.
‘아직 미뤄놓은 계율원의 일만으로도 벅찬데 이 냄새나는 곳에서 내가 뭘 하고 있는 거냐. 괜히 어떻게 되나 보러 왔다가……. 끙.’
그런데 장건을 뒷간에 밀어 넣고 한참을 기다려도 조용하다.
간혹 끙끙거리는 소리는 들리는데 시원하게 변을 보는 소리는 나지 않는다.
누가 보면 우습다고 하겠지만 굉목과 원호는 공력까지 끌어올리고 있는 중이다. 독기가 한꺼번에 빠지면 밖에 있는 이도 영향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한데 그렇게 기다리고 또 기다려도 감감무소식이다.
“건아! 잘 안 되느냐?”
“네. 잘……. 끙!”
이상한 일이다. 온몸에 있는 독기가 잔뜩 대장으로 몰렸으니 설사하듯 시원하게 빠져야 정상이다.
한참을 기다리던 원호가 참지 못하고 문을 벌컥 열었다.
쪼그리고 앉아 있던 장건은 화들짝 놀랐다.
피부가 거무죽죽해지고 있었다. 기껏 독기를 몰아냈더니 배출을 하지 않는 바람에 다시 몸에 독이 퍼지고 있는 것이다.
어차피 독정 때문에 하루가 지나기 전에 다시 독성이 발발해 중독이 될 테지만 원호로서는 헛일을 한 셈이라 이가 갈렸다.
“이…… 이! 이놈! 왜 변을 보지 않는 거냐!”
“그게요…….”
장건이 울상을 지으며 말했다.
“변을 보면 독기가 빠진다고 해서, 그게 아깝다고 생각했더니……. 잘 안 돼요.”
“뭐?”
원호는 황당했다.
“독이 빠지면 좋은 것이지 왜 그게 아까워!”
장건은 주섬주섬 바지춤을 끌어올리며 대답했다.
“아까우니 아까운 거죠. 그냥 있으면 저절로 없어지는데요.”
사실 장건의 입장에서는 독정이 계속 독기를 뿜어주는지라 오히려 풀을 먹으러 갈 필요도 없고 편하다.
“허!”
기가 막힌 노릇이었다.
원호는 화가 나 장건의 수도혈(水道穴)을 두드렸다. 수도혈은 장의 활동과 관계가 있는 혈이다.
“으윽!”
장건의 표정에 고통이 곧바로 드러났다.
장건으로서도 일부러 그런 건 아니었다. 배가 아픈 건 아픈 건데 안 나오는걸 어쩌란 말인가.
원호가 수도혈을 건드려서 장이 뒤틀리며 이리 꿈틀, 저리 꿈틀거렸다. 그럼에도 속 시원히 내보낼 수가 없었다.
“으어어!”
장건은 울고 싶은 심정이었다.
원호는 계속해서 수도혈을 건드렸다.
“이놈! 싸라! 빨리 싸!”
“안 되는 걸 어떡해요!”
“닥치고 싸라니까!”
“우어! 저도 그러고 싶다니까요?”
“거짓말 하지 말고 싸라!”
“문 좀 닫고 나가세요!”
원호와 장건의 실랑이가 벌어지는 걸 보면서 굉목은 멍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장건이 한 말이 뇌리를 탁 하고 친 탓이다.
‘독초를 먹던 아이니 독기가 빠지는 게 아깝다고 생각했구나!’
장건이 왜 숨을 쉬지 못했는지, 제대로 변을 보지 못하는지 이제야 알 것 같았다.
홍오의 텃밭에 가서 독초를 집어먹은 아이다. 몸에 좋다고 그 무서운 독초들을 아무렇지 않게 먹고도 멀쩡했던 아이다.
독기를 ‘먹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는데 ‘먹은 것’을 내보내려니 아까운 것이다.
아깝다고 생각하니 몸이 그렇게 반응하여 제대로 숨도 못 쉬고, 변도 못 보고, 피부로 독기를 배출하지도 않게 된 것이다.
‘어떻게 이런 일이 다 있누.’
원호가 아무리 장건을 다그쳐도 소용없는 일이다. 원호는 장건의 체질을 모르고, 장건은 스스로 준비가 되기 전에는 결코 독기를 밖으로 내보내지 않을 테니까.
굉목은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어차피 독기를 내보내든 안 내보내든 그게 그리 중요한 일은 아니다. 당가의 천지원양공을 배우기 전까지는 계속해서 중독이 된 상태를 유지할 수밖에 없다.
원호의 호통은 점점 커져만 갔다.
“살다 살다 이렇게 지독한 변비에 걸린 놈은 처음 보는구나. 어떻게 혈을 자극하는데도 똥을 싸지 않는단 말이냐!”
“저 변비 아니라니까요오!”
장건과 원호의 실랑이는 굉목이 말려서야 겨우 끝났다. 그러나 원호는 여전히 이해할 수 없는 얼굴이었다.
다음날 원호는 변비에 좋다는 약재를 싸들고 왔다.
그러나 그 약이 아무런 효과도 보지 못했음은 두말할 필요도 없는 일이었다.
☆ ☆ ☆
굉목이 내내 장건과 붙어 있는 바람에 문원은 시기를 보다가 어느 날 밤 몰래 장건을 찾아왔다.
“할아버지?”
“쉿.”
장건이 조그맣게 물었다.
“왜 밤에 몰래 오세요?”
“아이구, 낮에는 바빠서 정신이 없었어. 그나저나 좀 어떠냐?”
사실 묻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계속 독성이 발발하고 있어서 장건의 상세는 나아졌는지 나빠졌는지 알 수 없었으나 공력만큼은 깊어지고 있었다.
‘나아지고 있군.’
문원은 확실히 단언할 수 있었다.
장건은 답답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기지개를 켰다.
“전 언제쯤 나갈 수 있을까요? 하루 종일 지루해 죽겠어요.”
“그러냐? 에헴. 그럼…….”
문원은 작은 목함을 열어 대환단을 꺼냈다.
“빨리 나가고 싶다니 내가 좀 도와주마.”
“이게 뭔데요?”
겉으로 보기에는 금박을 입힌 그냥 그런 누런 환단이었다.
“요게 만병통치약이다. 엄청 귀한 거야.”
장건은 대환단을 가만히 보다가 고개를 저었다.
“그럼 저 말고 제 친구들 가져다 주세요.”
“어허, 네 친구들은 다 약을 먹고 있어. 네가 먹어서 빨리 나아야 친구들을 보러 갈 거 아니냐.”
“하지만…….”
장건이 생각하다가 말했다.
“반만 먹고 반은 친구들 가져다 줘야겠네요.”
문원은 기겁을 했다.
“아이고, 그러면 안 된다. 이놈아, 몸에 좋다는 데 왜 자꾸 남을 주려고 그러니?”
“친구들한테 미안해서 그러죠.”
“양도 별로 안 많은데 그냥 혼자 먹어. 혼자 먹기도 모자란 거야. 내가 얼마나 힘들게 구해 왔는데.”
대환단은 전 중원을 통틀어서 사람이 만들 수 있는 몇 안 되는 무가지보(無價之寶)라 할 수 있다. 무인이 대환단을 복용하면 반갑자 이상의 내공 증진 효험을 볼 수 있다.
그러나 사실상 복용법은 간단하지 않다. 죽은 사람도 벌떡 일으킨다는 엄청난 기운을 지니고 있는 것이다.
그러다보니 대환단의 기운은 보통 사람이 감당할 수 없을 만큼 강해 자칫 내장이 녹아 버릴 수도 있었다. 이 정도면 사실 영약이라기보다는 독선의 독정에 비견될 정도의 독약에 가까울 정도다.
그래서 문원은 세심하게 주의를 기울여야 했다.
“잘 먹을게요. 근데 좀 행복하기도 하고 죄송하기도 하네요.”
“뭐가 말이냐?”
“절 신경 써 주시는 분들이 많으니 행복하구요, 제가 그만큼 잘 해드리지 못하는 것 같아서 좀 죄송하고요.”
“에그그, 네가 이걸 먹고 나으면 그게 고마운 거다. 신경 쓰지 말고 어여 먹어. 그리고, 이건 비밀인 거 알지? 내가 온 건 누구한테도 말하지 않는 거다.”
“예.”
장건은 코끝을 손가락으로 비비고서 대환단을 먹었다.
장건의 입 안으로 들어간 대환단은 이내 침과 섞여 부드러워졌다.
대환단의 양기는 온화하면서도 지극히 정순한 양기다. 타는 듯 뜨겁지도 않은데 삼지구엽초의 양기보다도 더 엄청난 기운을 가지고 있다.
“와!”
절로 탄성이 났다.
“쉿. 말을 하면 안 된다.”
장건이 입을 닫고 고개를 끄덕였다. 독기와 마찬가지로 말을 하는 순간 약효가 새 나가는 걸 느낀 것이다.
문원은 조용히 호흡을 고르고 공력을 끌어올렸다.
“약효가 퍼지도록 안마를 해주마.”
일단은 대환단의 기운이 퍼지도록 가볍게 추궁과혈을 한다. 혈맥을 부드럽게 풀어 대환단의 약효가 한곳에 뭉치지 않고 원활히 순환되게 한다.
꽤 긴 시간을 문원은 추궁과혈에 집중했다.
대환단의 기운이 독정의 기운을 어느 정도 억누르면서 장건은 한결 편해진 얼굴이었다. 독정 자체를 누를 수는 없으나 지금 대환단의 기운만으로도 일단의 독기는 가라앉힐 수 있었다.
독정에 내재된 우악스러운 기운은 대환단으로도 문원의 역근세수경 내공으로도 완전히 없애는 것은 불가능하다.
자연의 섭리조차 거스를 수 있다는 연(捐)급 무인 당사등의 독정이다.
장건이 원래 가지고 있던 역근경의 내공이나 뜯어먹은 삼지구엽초의 양기, 대환단과 문원의 내공을 모두 합쳐도 독정의 독기를 소멸시킬 수는 없었다.
문원은 장건을 일으켜 앉힌 후, 명문에 손을 대 자신의 내공을 불어 넣었다.
그리고는 장건의 몸 안에서 자신의 진기를 유통시켰다. 장건의 내공은 역근경을 기반으로 이루어졌지만 역근세수경은 역근경의 상위 내공심법이라 서로 반목하지 않는다.
역근세수경은 극양의 성질을 지니었으며 동시에 양기를 다스릴 수 있는 내공심법이다. 문원이 장건의 몸에 넣은 진기 역시 역근세수경의 내공이다.
“내가 지금 하는 행공법을 잘 기억해 뒀다가 수시로 하려무나. 그래야 빨리 낫는다.”
장건이 고개를 끄덕였다.
독기로 막힌 혈맥과 산재된 대환단의 기운을 하나로 모으며 문원은 장건의 내공을 역근세수경의 행공법에 따라 인도했다.
보통의 독이었다면 벌써 싹 몰아낼 수 있었을 텐데 지금 장건의 몸 안에 있는 독은 끈질기기가 아교보다도 더 하다. 혈맥과 골수에 짝 달라붙어 떨어질 생각을 않는다.
‘과연 독선의 명성은 허투가 아니로구나.’
다시 한 번 장건의 몸 상태를 보던 문원은 일반적인 방법으로는 독기를 내보낼 수 없다고 확실히 판단했다.
장건은 독초의 즙이나 광물독으로 중독된 것이 아니라 순수한 독기로 이루어진 독선의 공력에 중독되었다. 긴 세월 동안 독선이 수만 가지의 독물들에게서 뽑아내어 축적한 독의 정수들로 이루어진 것이 독정이니 말이다.
‘방장이 잘 보았군.’
대환단과 역근세수경의 힘을 빌어도 당장에 완전한 해독은 어렵다. 그래도 장건 자체가 독에 대한 저항력이 크기 때문에 역근세수경을 운기하기 시작하면 훨씬 빨리 나을 것이다.
한데, 문원은 어느 순간 자신의 진기가 갑자기 사라지는 것을 느끼고는 크게 놀랐다.
“아니, 이게 무슨!”
분명 착각을 하거나 실수를 한 것도 아닌데, 장건의 몸에 넣은 진기가 감쪽같이 사라진 것이다.
그야말로 기겁할 노릇이었다.
하지만 장건에게는 당연한 일이었다.
장건은 지금 완전한 긴축 체제로 들어가 있었다. 독기 하나라도 흘리지 않으려고 숨도 참고, 변도 참았다. 그렇게 몸이 뭐든지 흡수하는 상태에 들어가 있는데 문원의 내공이라고 별다르진 않았다.
장건은 일부러 그런 건 아니었지만 분명 남의 기운을 먹을 수 있는 요령을 알고 있었다.
문원의 눈이 가늘어졌다.
‘이런 고얀 녀석이 다 있나.’
문원은 자신의 진기가 왜 사라졌는지 알 수 있었다.
장건은 스스로 쓸 수 있는 기운을 모두 몸으로 받아들이고 있었던 것이다. 아마도 독을 중화시키기 위해서일 터다.
‘먹보도 이런 먹보는 정말 처음이다!’
그래도 밉다는 생각은 들지 않지만 말이다.
‘너 때문에 내 수명이 10년은 더 줄겠구나.’
문원은 혀를 끌끌 차며 다시 내공을 장건의 명문에 흘려 넣었다.
마치 내공을 전수하듯…….
보통 타인의 내공을 전수하게 되면 열 중 하나도 채 자신의 것으로 만들기가 어려운데, 장건은 꾸역꾸역 잘도 받아들이고 있었다.
그리고 끊임없이 내공을 주천시켜 자신의 내공을 강화하며 독기를 몰아낸다.
장건의 얼굴이 생기를 되찾아 갈수록 문원의 얼굴은 초췌해져만 갔다.
한참의 시간이 흘렀다.
문원도 적잖은 기운을 소모했기 때문에 오랜 시간을 운기조식하고 나서야 겨우 기운을 차릴 수 있었다.
족히 두어 시진은 지난 듯하다.
문원은 장건을 지켜보았다.
장건의 얼굴은 꽤나 평온해 보인다. 더 이상 호흡에서 독기가 흘러나오지도 않는다.
“에구구, 일단 독기가 잠잠해진 걸 보니 어느 정도는 이겨낸 모양이네.”
문원이 장건의 맥문을 잡고 상태를 점검해 보니 훨씬 나아졌다. 깨끗한 물에 피 한 방울을 떨군 것처럼 다시 독정이 독을 내뿜긴 하지만, 이 정도면 거의 환골탈태(換骨奪胎)한 것에 가까울 정도로 몸이 좋아져 있다. 대환단의 흡수가 제대로 이루어졌다는 의미다.
문원은 기분이 좋아졌다.
“어차피 얼마 살지도 못할 몸. 몸으로 보시를 했다 생각하면 그만이지. 하지만 얘야, 넌 아직 살날이 창창하니 꼭 나아서 훌륭한 무인이 되어야 한다.”
잠결일까?
곤히 잠든 장건이 문원의 말을 알아들은 것처럼 잠꼬대를 했다.
“음냐……. 전 상인이 되면 가난한 사람들도 돕고……, 음냐, 아픈 사람도 돕고…… 무공은 싫어요.”
문원은 똥 씹은 듯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에이, 은혜도 모르는 나쁜 놈. 그래 너 혼자 잘 먹고 잘 살아라.”
문원은 빗자루를 챙겨들고 냉큼 별실을 나가 버렸다. 화가 났다기보다는 다른 사람들의 이목을 피해야 하는 까닭이다.
“음냐음냐.”
피곤했던 장건은 세상모르고 깊게 잠이 들어 있을 따름이었다.
☆ ☆ ☆
거무죽죽.
푸르댕댕.
허여멀건.
장건의 얼굴색은 수시로 바뀌고 있었다.
독기를 흡수하는 속도가 빨라져서 독성의 발발이 더 활발히 일어나고 있는 까닭이었다. 즉, 독기를 흡수하고 독성이 발발하는 과정이 연속적으로 쉬지 않고 일어나는 중이다.
굉목은 이 같은 일을 한 번 본 적이 있었다. 장건이 한껏 독초를 먹고 왔을 때 보인 현상이다. 독초를 스스로 해독하면서 저런 얼굴을 보이곤 했다. 그래도 이렇게 빠르게 변한 적은 없었다.
어제까진 안 그러다가 갑자기 오늘 아침부터 이래서 원호를 부른 것이다.
원호가 물었다.
“아프진 않으냐?”
“당연히 아프죠.”
중독이 된 아이에게 아프지 않냐고 물으면 그게 더 이상한 셈이다. 독기가 머물고만 있어도 온몸이 쑤시고 고통스러울 터다.
원호는 머쓱한 얼굴로 물러났다.
거무죽죽.
푸르댕댕.
허여멀건.
그 사이에도 장건의 안색은 자주 바뀌고 있었다.
“왜 이런 겁니까?”
원호의 물음에 굉목이 타박했다.
“속세를 등지고 산 내가 어찌 알겠나. 그걸 알아보라고 자넬 부른 거 아닌가.”
굉목의 딱딱하고 거친 어조에 원호는 괜히 물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속세를 등지고 살긴……. 끙.’
처음엔 숨을 못 쉬어 꺽꺽대더니, 그 다음엔 변을 못 보고, 이제는 변검 놀이를 하니……. 이걸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 원호는 갈피를 잡을 수가 없었다.
‘어쩔 수가 없구나.’
소림에서 가장 독에 달통한 것은 역시나 홍오다. 그러나 홍오를 지독히도 싫어하는 원호에게 홍오를 부른다는 것은 껄끄러운 일이다.
그렇다고 굉자배의 사숙들에게 도움을 청하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었다. 굉자배를 그리 몰아 붙였는데 이제와 도와달라고 하기엔 자존심이 상한다. 소림을 위한 일도 아니고 겨우 아이 하나 때문에.
‘대체 왜 굉목 사백은 자꾸 나를 부르는 거야?’
귀찮아 죽을 지경이다. 그래도 일단은 무시할 수 없으니 따를 수밖에는 없다.
원호는 도움을 줄 만한 이가 누가 있는지 생각해 보았다. 이런 독에 관련한 일에는 경험과 견문이 높은 이가 더 유리하다.
‘장경각주 굉봉 사숙이라면 그래도 좀 나을 테지.’
굉봉은 책을 워낙 좋아해 소림에서 가장 박학다식하다는 평을 듣고 있다. 그러면서도 굳이 이런저런 일에 끼이려 하지 않아 굉자배 중 그나마 만나기 편한 편이다.
도움을 청해도 여기저기 떠벌리고 다닌다거나 할 만한 이도 아니다.
‘굉봉 사숙을 모셔올 수밖에.’
차라리 무공에 대한 거라면 좀 나을 텐데 독에 관련된, 그것도 이상한 상태를 보이고 있으니 어쩔 수 없는 노릇이었다.
장건은 원호가 왜 자기를 보고 그렇게 안달복달을 못하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냥 내버려두면 되는데 자꾸 변을 봐라, 어째라 저째라 하고 귀찮게 한다. 어제 불목하니 할아버지가 가져다 준 만병통치약과 운공법을 배웠더니 훨씬 더 나아졌는데 말이다.
굉목에게도 얘기를 해보았으나 굉목은 장건의 걱정에 여념이 없다. 다 자기 잘 되라고 돌보아 주는 것인데 거절하기도 어려웠다.
‘휴우.’
이제는 몸의 이상도 거의 없다.
처음엔 독초 천 포기쯤 뽑아 달여 만든 농축액을 먹은 것 같더니 이제는 그냥 그렇다.
‘그래도 당분간은 느릅나무에 가서 먹을 필요도 없겠다. 하아, 좋다.’
몸이 아픈 것도 독초를 먹었을 때와 비슷해서 그리 걱정이 되지 않았다.
그때보다 더 많은 양을 먹었으니 조금 더 아픈가보다 여겼다.
간혹 뭔가 야수처럼 팍 튀어나오는 독기도 있었지만 한대 때려주면-불목하니 할아버지가 알려준 운공법을 하면- 그냥 수그러든다.
‘빨리 친구들 보러 가고 싶은데.’
장건으로서도 독기가 쉬지 않고 계속 나오니 지겹고 귀찮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조금만 방심해도 숨과 피부에서 독기가 나오는 걸 느낄 수 있는지라 가면 안 된다는 걸 안다.
장건은 피독주를 만지작거리며 생각했다.
‘내가 당 씨 할아버지가 주신 구슬을 깨뜨리지 않았으면 이런 일도 없었을걸. 휴우.’
장건은 아직도 자신이 있는 불당 밖 소림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모르고 있었다.
☆ ☆ ☆
“아, 나는 독에 대해선 잘 모른다니까 그러네.”
“그래도 한 번만 봐주십시오. 부탁드립니다.”
“이 사람아! 이달 말일까지 이 경전을 탁본해서 매주림사(敏珠林寺)에 돌려보내야 한다니까 그러네.”
장경각주 굉봉의 나이는 굉자배에서 많은 편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꽤 나이가 들어 보였다.
무공 수련을 쉬지 않고 하다보면 나이보다 젊어 보이기 마련인데, 무공보다도 장경각에 있는 책 읽기를 좋아하다 보니 어쩔 수 없이 그리 보이게 되었다.
“대내외적으로 아직 비밀에 붙인 일입니다. 굉봉 사숙께서 마다하시면 외부인을 초청할 수밖에 없습니다.”
원호의 계속되는 부탁을 거절하지 못하고 굉봉은 노구를 일으켰다.
“에이, 장경각에 할 일이 없을 거 같아도 책 읽을 시간도 없이 바쁘구만. 이런 건 좀 알아서 하면 안 되나?”
투덜거리는 굉봉의 말에 원호는 자신도 할 일이 많다 대꾸하고 싶은 심정이었다.
☆ ☆ ☆
구부정한 허리를 두드리며 굉봉이 불당 안으로 들어왔다.
“독기가 가득하다더니만 별로 그런 것 같지도 않네 그려.”
원호는 그제야 자신이 처음 불당에 들어왔을 때보다 많이 독기가 사라져서 운신이 편해졌다는 걸 깨달았다.
“아마 건이란 아이의 몸에서 더 이상 독기가 흘러나오지 않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그래?”
굉봉이 내실 안을 이리저리 둘러보더니 장건에게 다가왔다.
“독선의 독에 당한 아이치고는 혈색이 제법……, 이상하구나?”
굉목이 지켜보는 가운데 원호가 물었다.
“안색이 이리 변하는 것이 무슨 까닭이라 생각하십니까?”
“글쎄……. 보통 얼굴이 거멓게 죽는 것은 독이 내장에 침투했기 때문이고 시퍼레지는 것은 독기가 피부에 바짝 올라왔기 때문일세. 허옇게 질리는 것은 독기가 해소되고 있을 때이지.”
“예?”
원호가 되물었다.
“하지만 이렇게 빠르게 색이 변하고 있는데, 계속 중독되었다가 해소되고 있다는 건 이상하지 않습니까?”
“아, 누가 뭐래나? 일반적으로 그러하다 이거지. 아직 맥도 안 잡아 봤는데 내가 그걸 어찌 아누.”
굉봉이 장건을 보며 물었다.
“안 그러냐, 아가야?”
장건은 할 말이 없어서 머리를 긁적거렸다.
“전 잘 모르겠어요.”
“네가 그걸 알면 독선을 따라가야지, 소림에 있으면 쓰겠냐. 어디 내가 좀 보자. 팔 내밀어 봐라.”
장건이 순순히 팔을 내밀자 굉봉이 자신이 소매를 걷으며 장건의 손목을 잡았다.
“어험.”
눈을 감고 조용히 장건을 진맥하던 굉봉은 한참이나 표정을 이리 바꾸고 저리 바꾸면서 장건의 손을 놓지 않았다.
거의 한식경이 흘러서야 굉봉이 손을 놓고 일어섰다.
그러더니 원호를 보며 되물었다.
“정말 독선이 ‘이거 한 번 해결해 봐라’ 하면서 이 아이를 중독시킨 거 맞아?”
독선이 그렇게 말한 건 아니지만, 어쨌든 원호는 그렇다고 대답했다.
굉봉이 고개를 갸웃했다.
“나야 서고나 지키는 중이니 독에 대해서는 잘 모르지만, 이런 걸 해결하라고 하면 나 같아도 난감하긴 하겠네.”
“으음. 굉봉 사숙께서도 짚이는 게 없다는 말씀이시군요.”
“이걸 가지고 뭘 짚고 자시고 할 게 있다고. 내가 볼 땐 그냥 해결 안 하고 가만 내버려두면 되겠는데.”
“네?”
굉목이 원호를 제치고 물었다.
“사제. 그게 무슨 말인가?”
장건도 눈을 똘망하게 뜨고 굉봉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이 아이는 지금 세 기운이 가적평형상태(假的平衡常態)에 있습니다.”
“가적평형이라니?”
“이 아이의 몸에 있는 것은 총 세 가지의 기운인데, 가장 큰 것은 독선이 연단했다는 그 독정이고, 두 번째 큰 것은 정종(正宗)의 단력(丹力)이며, 가장 작은 것은 이 아이가 본래 가진 내공입니다.”
“그러니까 그게 무슨 말이냐는 걸세. 정종의 단력은 또 뭐고?”
“정종의 단력이란 정도 문파에서 만들었거나 영험한 영물의 내단인 듯한 그런 약의 힘을 말하는 거지요.”
장건에게 먹인 대환단의 기운을 말하는 모양이었다. 그러나 그것을 아는 사람은 문원과 굉운뿐이다. 장건조차 만병통치약인 줄 안다.
굉봉이 말을 계속했다.
“아무튼 독정에서 독기가 흘러나오면 단력이 몸을 해치지 않는 한도 내에서 독기가 퍼지지 않게 균조(均調)하며, 또 흘러나온 독기는 아이의 내공에 의해 권형(權衡)하고, 단력과 아이의 내공은 서로 안좌(安坐)하니…….”
“균조나 권형이나 안좌나! 모두 같은 뜻이 아닌가!”
“좀 다르지요. 균조라는 것은 똑같이 고름이며, 권형은 균형을 유지하고 있음을 말하고, 안좌는 서로 편하게 공존한다는 뜻입니다만.”
“…….”
굉목이 잠시 생각하다가 물었다.
“그러니까 결국 건이의 몸에 있는 세 기운이 일정한 상태를 유지하고 있단 말인가?”
“꼭 그렇게 말할 수는 없지요.”
“그럼?”
“어디까지나 그것은 임시라서 가적(假的)이라 말씀드린 거지요.”
“임시라?”
“제가 계속 지켜보니 매 순간 기운의 우열이 가려지는 듯했습니다. 독정의 기운이 가장 왕성할 때가 얼굴이 검어질 때요, 그 기운을 제어하는 단력이 흥할 때는 얼굴이 퍼래지며, 본래 아이가 가진 기운이 번연하면 아이의 얼굴이 하얘집니다.”
“그러니까 자네 결론은 뭔가?”
굉봉은 이제까지 한 말을 한마디 말로 요약하려니 힘든 모양이었다. 눈을 감고 머리를 긁으며 시간을 보내다가 겨우 대답했다.
“큰 충격을 받지 않는 한 내버려두면 된다 말씀드릴 수 있겠습니다. 저는 독에 대해 잘 모르긴 합니다만, 과거 무림사를 보면 이런 상이한 기운들을 몸에 지니고도 강호를 호령하던 인물들이 꽤 있다 하였습니다.”
“그러니까…… 그냥 내버려두면 된다?”
“몸 안에 큰 변화가 없다면 말이지요.”
“허면 지금은 독정을 제어하기 위해서 당가의 천지원양공을 배우지 않아도 된다?”
“아까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굉목보다 나이가 들어 보이는 굉봉은 투덜거리다가 굉목이 인상을 쓰자 찔끔해서 말했다.
“얼굴이 허옇게 되는 것은 일반적으로 독기가 해소되는 과정이며 이 아이가 가진 기운이 번연할 때라고요. 그러니 얼마나 걸릴지는 몰라도 내버려두면 언젠가는 다 해소되겠지요.”
“아니, 그럼 언제가 될지도 모르는데 이런 얼굴로 살라고?”
“그거야 제가 어떻게 할 수 있는 게 아니지요.”
“흐음. 그럼 독정은?”
“본래 사람의 체질에 따라 약이 독이 될 수도 있는 것이요, 독이 약이 될 수도 있는 법입니다. 독정은 사실 독공을 배우는 무인들에게는 대환단이나 다름없는 영약이 아닙니까.”
“하지만 건이는 독공을 배운 적이 없고 더구나 독선의 독일세.”
“독선의 독이고 약이고 의방에서는 모두 같습니다. 동방학에서 몸에 열이 많은 이를 태양인과 태음인이라 구분하는데, 이들에게는 만병지약(萬病之藥)이라는 인삼이 독이 됩니다. 또 혼절하거나 몸의 차서 혈맥이 크게 굳은 이들에게는 독중독(毒中毒)이라는 토부자(土附子)를 적당히 쓰면 병이 금세 호전되기도 합니다.”
“끄응.”
굉봉의 기나긴 말을 굉목은 하나도 빼놓지 않고 되새겼다. 그러나 들을수록 갈피가 와 닿지 않았다.
원호가 물었다.
“사람에 따라 독이 독이 아닐 수도 있다면 건이에게는 약이란 말입니까?”
“약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지.”
“한 가지만 더 묻겠습니다. 그럼 현 상태로 굳이 당가의 힘을 빌릴 필요는 없다는 얘기입니까?”
“자꾸 당가, 당가 하는데, 독선이 이걸 해결하라 했으면 소림에서 해결할 방법은 없네만……, 지금으로서는 아이에게 큰 영향을 미치지 않을 것 같으니 그냥 둬도 된다는 얘길세. 아, 귀찮게 자꾸 똑같은 말을 하게 만드나 그래.”
굉목이 끼어들었다.
“아이가 중독이 되어서 저렇듯 낯빛이 요상한데도?”
“낯빛이 요상할 정도로 중독이 되었다면서 내장기관은 멀쩡하잖습니까?”
그러고 보니 그렇다.
“이것 참!”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는지 굉목은 참으로 희한하다. 그러나 혹여나 이것이 독선이 의도한 바일지도 모른다는 일말의 불안감은 있었다.
더구나 굉봉의 말이 무조건 옳다고 생각하기도 어려웠다.
때문에 장건에게 큰 일이 생기지 않는다면 다행이겠지만, 안도는 할 수 없는 것이 굉목의 마음 상태였다.
그러나 원호는 괜히 굉봉을 데려와 일이 난감하게 생겼다.
‘굉봉 사숙이 일단 저리 말했으니 당장 당가로 보내자 주장하기도 어렵게 생겼구나. 언젠가는 스스로 해독을 하게 될 거라니……. 이게 무슨 말도 안 되는 말인가.’
누가 뭐래도 독선의 행동은 지나쳤다.
소림의 본산에 와 한 아이를 중독시키고, 그것도 모자라 그 아이를 자신의 문하로 들이겠다고 하였으니.
만일 독선의 말에 따른다면 소림은 뭇 사람들의 놀림과 비아냥거림을 감수해야 할 정도로 자존심에 상처를 입게 되는 것이다.
자신의 집 문단속도 제대로 못한 바보 천치, 독선이 잘못했는데 따지지도 못하는 멍충이로 여겨질 것이다.
하지만 골칫덩어리인 장건이 계속 소림에 있게 되면 그 또한 큰일이다.
우선 제일 먼저 청성의 검이 찾아온다.
섬살야차라고 불리는 잔혹한 성정의 풍진이 소림에 오게 되는 일만은 막아야 한다. 그가 소림에 와 또 무슨 짓을 저지를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것을 막기 위해서는 소림도 상당한 희생을 감수해야 할 터다.
혹여나 생각 이상의 피바람이라도 불게 되면 소림이 어떻게 뒷수습을 해야 할지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운 좋게 청성일검 풍진의 문제를 해결하면 끝인가?
그렇지도 않다.
독선 당사등은 우내십존 전체가 홍오와 관계를 가졌고, 어떤 식으로든 원한을 품고 있다 언질을 주었다.
당장에 뜻을 이루지 못한 독선이 다시 소림을 찾아와 행패를 부릴 것은 자명한 일이다.
독선부터 풍진……, 그리고 우내십존의 다른 절대 고수들까지…….
그들을 차례로 맞이할 생각을 하면 원호는 등골이 다 오싹할 지경이었다.
이제 갓 재정적인 문제를 딛고 일어서는 소림이다. 우내십존과 문제가 생기면 그 피해를 몇십 년이 걸려야 다 복구할 수 있을지 아득하기만 하다.
생각할수록 갑갑하다.
‘안 된다. 이대로 건이를 소림에 둘 수는 없어! 소림을 위해서는 이 아이를 내보내야 한다.’
그래서 원호는 어떻게든 장건을 당가로 보내기 위해 머리를 굴렸다.
그는 원래 소심하고 마음 좁은 사람이 아니었다. 하지만 당장 굉봉의 말에 반박해야만 다가올 위기를 넘길 수 있었다.
원호는 생각 끝에 어떻게든 꼬투리를 잡고자 물었다.
“아이가 내장기관이 멀쩡하다 하셨지요?”
“그렇네만?”
“그 말은 틀렸습니다. 사숙님이 잘못 보신 것입니다.”
“내가?”
“예.”
원호는 스스로도 구차하다 생각했지만 일단 시작한 것, 끝까지 말꼬리를 붙들고 늘어지기로 했다.
원호가 장건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저 아이는 심각한 변비가 있습니다. 제가 수도혈을 짚고 변비에 좋다는 약을 가져다 먹였는데도 낫지 않았습니다. 그건 내장기관이 잘못 되었다는 증거가 아니겠습니까?”
그 말에 굉목과 굉봉이 원호를 빤히 쳐다보았다.
“변……비?”
“그렇습니다. 일반적으로는 절대 생각할 수 없는 지독한 변비입니다.”
“…….”
잠시 말이 없었다.
그리고 곧 굉봉이 인상을 쓰며 물었다.
“자네 지금 장난하나?”
☆ ☆ ☆
장건이 불당 안에 갇혀 있는 동안 소림에 불어왔던 거대한 독풍(毒風)이 서서히 걷혀가고 있었다.
무려 천오백 명이었다.
일반 불자들과 향객, 소림의 제자들을 모두 합해 천오백 명이 중독된 것이다.
소림 역사상 가장 큰 불상사이며 치욕적인 사건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환단과 소환단 등 값으로는 따질 수 없는 최고의 약재를 모두 풀어 빠르게 대처한 까닭에 한 사람의 사망자도 나오지 않은 것은 지극히 고무적인 일이기도 했다.
그러나 그것은 단지 미봉책일 뿐이었다. 한시라도 빨리 해약을 구하지 않으면 사망자가 생겨날 터였다.
이미 세간에는 소림의 흉사(凶事)에 대해 소문이 퍼지고 있었다. 아무리 입단속을 한다 해도 천 명이 넘는 피해자가 생긴 일이었다. 보는 눈과 듣는 귀마저 모두 막을 수는 없었다.
이유는 알 수 없으나 사천의 당씨 세가가 정면으로 소림에 도전장을 내밀었다는 소문이 떠돌았다. 강호의 호사가들은 당가와 소림이 언제쯤 충돌하게 될지 귀추를 주목하고 있었다.
특히나 나날이 쇠락해 가고 있던 소림이 어떤 행동을 취할지가 요주의 관심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