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ily Priesthood RAW novel - Chapter 45
제 6 장 문각의 진전
원호는 대노했다.
“이런 귀한 걸 숨겨놓고 있었다니! 이것은 사문에 대한 배신입니다!”
원호의 앞 탁자 위에는 둥글게 말려진 두루마리가 하나 놓여 있었다.
장건이 자유롭게 되었다는 이야기를 들은 굉목이 내놓은 문각의 무공이다. 다른 곳도 아니고 문각의 사리탑에 그대로 들어 있었다.
“어떻게 태사조의 무공을 그 수많은 사람들이 오가는 사리탑에 방치해 놓을 수 있단 말입니까! 만약 그 중에 못된 마음을 먹은 자가 사리탑을 뒤져보기라도 했으면 어쩌려구요!”
굉운이 원호를 진정시켰다.
“누가 사리탑을 함부로 건드리겠는가. 괜찮네.”
원호는 쉽게 진정하지 못한다. 두루마리에는 손도 대지 못하고 부들부들 떤다.
“이것만, 이것만 소림에 이어졌던들 소림이 이 지경까지는…….”
그것만큼은 진심이었다.
장경각주인 굉봉이 하품을 했다.
“문각 태사조의 무공을 익혀도 그분처럼 고수가 되란 법이 없는데 왜 이리 호들갑을 떠나? 그런데 방장 사형, 그 변비 걸린 아이는 왜 안 오는 겁니까? 그냥 열어보면 안 되오?”
변비 걸린 아이란 말에 굉운은 웃고, 원호는 이를 갈았다.
굉운이 말했다.
“그 아이에게 꼭 보여주기로 했으니 조금만 기다리세. 곧 무진이 데려올 거네.”
계율원에 있는 것은 굉운과 굉봉, 그리고 원호뿐이다. 일단 문각의 무공을 확인하고 그 후 무공을 익힐 전인(傳人)을 구할 생각이었다. 대외적으로 공표할 필요는 전혀 없었다.
그래서 일부러 굉운은 굉봉을 데리고 직접 계율원으로 왔다.
곧 무진이 장건을 데리고 들어왔다.
“아미타불, 부르셨다고 들었습니다.”
“와서 이리 앉거라.”
자리에 앉자 굉봉이 장건을 보고 물었다.
“변비는 다 나았냐?”
“저 변비 아니에요.”
“그래.”
쓸데없는 말 몇 마디가 오가고, 굉운이 장건과 무진을 보며 말했다.
“너희 둘을 이 자리에 부른 것은 각각 다른 이유가 있기 때문이다.”
굉운이 두루마리를 들어 보였다.
“이것은 그간 실전된 줄만 알았던 문각 태사조의 무공이 담긴 권자(卷子)다.”
무진이 탄성을 냈다.
“아!”
무진은 그것이 얼마나 중한 것인지 안다. 무림인에게 한 권의 상승 무공비급은 목숨과도 바꿀 가치가 있다.
“무진아.”
“예.”
굉운의 부름에 무진은 떨리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너는 무자배의 맏이로서 마땅히 이것을 익혀야 할 것이다. 네가 아니면 익힐 이가 없으니, 십 년 폐관을 들어서라도 기필코 익혀야 한다.”
“아, 알겠습니다.”
굉운이 이어 장건을 보았다. 장건은 예의 똘망똘망한 눈빛으로 굉운의 시선을 마주했다.
“그리고 건아.”
“예, 방장 대사님.”
“굉목 사제에게 듣자하니 사람을 해하지 않는 무공을 알고 싶다 했다지.”
장건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런 무공이 정말 있나요?”
“있다고도, 없다고도 할 수 없으나 이것이 해답을 찾는 데에는 도움을 줄 것이다.”
굉봉이 끼어들었다.
“여기 있는 비급은 홍오 사백의 사부가 되시는 문각 사백조께서 남기신 거다. 문각 사백조께서는 천하오절이라 불리우실 정도로 대단한 무공을 소유하고 계셨으나, 상대를 크게 다치지 않게 하면서 물리는 것으로도 유명한 분이셨다.”
장건은 뛸 뜻이 기뻤다.
장건으로서는 오랜 숙원(?)을 해결할 수 있는 셈이었다.
“에그그, 이 바보 같은 녀석. 다치지 않고 물러서게 만드는 게 뭐 쉬운 일인 줄 아느냐?”
굉봉이 장건에게 핀잔을 준 후 다시 설명했다.
“문각 사백조께서는 백보신권(百步神拳)에 특히 능하셨는데, 사해에 악명을 떨치던 대마두는 물론이고 내로라하는 고수들이 문각 사백조의 백보신권에 모두 무릎을 꿇었다.”
무진이 물었다.
“하나 백보신권이라면 이미 본문에도 비결이 이어지고 있지 않습니까.”
“그것과 다르니까 하는 말이 아니겠느냐. 넌 본 적이 없을 테지만, 그분의 백보신권은 남들의 백보신권과 크게 달랐다. 더 강하고 위력적이었으나 극히 부드럽고 온화하였지. 여기 계신 방장 사형과 내가 추측컨대 이것은 분명 문각 사백조의 독문 백보신권이 틀림없을 거다.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백보신권과는 전혀 다른 것이라 봐야 한다.”
“독문…… 백보신권.”
장건이 잠시 생각하다 물었다.
“저……, 그런데 백보신권이 뭔가요?”
“백보신권은 백보 안에 있는 모든 사물을 칠 수 있는 권법이다. 장풍 같은 거라고 생각하면 더 쉽겠다만. 실제로 문각 사백조께서 손을 뻗으면 멀리서도 상대가 픽픽 쓰러지곤 했었다. 특히나 고수를 상대로는 더 강하셨지.”
장건은 풍진의 살기를 떠올렸다. 풍진은 아무것도 하지 않았는데 날이 선 살기가 날아와 몸을 베고 지나갔었다.
‘백보신권도 그와 비슷한 건가보네.’
굉봉이 곧 굉운에게서 두루마리를 건네받았다. 굉봉은 혹시 두루마리가 상하지 않을지 먼저 이리저리 살폈다.
보통의 비급처럼 책으로 묶여 있거나 두루마리를 엮은 형태인 권자본(卷子本)이 아니라 그저 한 장의 두루마리일 뿐이었다.
문각이 지닌 무공의 정수가 그 한 장에 담겨 있다고는 생각하기 어려웠으나, 근본이 백보신권이라면 전혀 불가능한 것도 아니다.
“자, 그럼 열어 보겠습니다.”
굉봉이 신중히 두루마리의 봉인을 뜯고 펼쳤다.
굉운은 물론이고 원호, 장건까지도 숨을 죽이며 그 모습을 지켜 보았다.
“허!”
두루마리를 펼친 굉봉이 가장 먼저 탄성을 냈다.
한데 굉봉은 탄성을 마치기도 전에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원호가 독촉했다.
“저희에게도 보여주셔야 하지 않습니까.”
“성질도 급하긴. 알았네.”
굉봉이 탁자 위에 두루마리를 펼쳐 놓았다.
잔뜩 기대감을 가지고 두루마리의 내용을 확인한 모두는 거의 동시에 실망한 표정을 짓고 말았다.
그것은 그림이었다.
정교하긴 하나 그리 대단하다고는 보기 어려운 그림이 그러져 있을 뿐이었다.
노승 한 명이 태양을 향해 일권을 내지르고 저 멀리에 마두가 부복하고 있는 모습이었다. 얼핏 노승의 시선이 마두를 향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노승이 마두를 제압하는 듯하나 주먹을 내지르는 방향은 전혀 달랐다.
게다가 먹물이 모자랐는지 마두의 모습은 거칠고 흐릿하다. 노승의 모습이 정교하게 묘사된 것에 비하면 굉장히 허술했다.
따로 설명을 하는 글도 없었다. 우측 상단에 쓰여진 다섯 글자가 두루마리에 써진 글의 전부였다.
거무불거유(居無不居有)
“유(有)에 있지 않고 무(無)에 있다.”
문각의 진전을 이어야 하는 무진은 난감하기 이를 데 없었고, 원호는 실망감을 여실히 드러냈다.
“이, 이것이 정말 문각 태사조의 비급이 맞습니까?”
굉목이 제대로 준 것인지 의심스럽다.
원호와 굉운이 굉봉을 보았다. 장경각주인 굉봉을 데려온 것은 혹시나 이런 일이 있을까 해서였으나, 굉봉도 아직 제대로 된 답을 내놓지는 못하고 있었다.
굉봉이 흰 수염을 만지작거리며 뚫어져라 두루마리를 보았다.
“문각 사백조의 필체는 맞는 것 같은데, 거무불거유란 글귀와 그림의 내용은 전혀 이해할 수가 없군요.”
“거무불거유라…….”
“채근담의 한 구절입니다만, 그런 뜻으로 쓰신 것은 아닐 테지요. 아무래도 우리가 모르는 구결 중의 일부인 것 같습니다. 다른 무공서를 찾아보면서 좀 더 연구를 해보아야겠습니다.”
굉운은 담담히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네.”
한데 유일하게 실망하지 않은 이가 있었다.
바로 장건이다.
장건은 만면 가득 화색을 띠고 감탄하고 있었다.
“우와아.”
원호는 자기도 모르게 장건의 그런 모습을 보고 인상을 쓰고 말았다.
‘설마……, 나도 보지 못하는 것을 이 아이가 본단 말인가?’
굉봉이 놀라서 물었다.
“넌 이게 무엇인지 알아보겠느냐?”
장건이 여전히 감탄하는 얼굴로 대답했다.
“그림이잖아요.”
“……그림이지. 그것 말고 다른 건?”
장건은 잠깐 생각하다가 말했다.
“여기 그림 속의 스님 동작이 정말 간결한 것 같아요. 제가 본 중에 가장요. 그림이라서 그런가?”
심지어는 풍진의 검초보다도 더 유려하다. 장건은 그 말을 하고 싶었지만, 굉봉이 실망한 어조로 말을 내뱉는 바람에 말을 멈추고 말았다.
“그게 백보신권의 동작이다. 그림 속에 있는 인물은 아마도 문각 사백조 본인이시겠지.”
원호는 ‘그럼 그렇지’하는 표정을 지었다. 소림 무공의 진수이기도 한 백보신권의 가치를 알아본 것은 놀라운 일이나, 역시 장건으로서도 거기까지가 한계이리라.
굉운이 곧 장건을 보며 말했다.
“네가 오늘 본 것은 오래전 입적하신 소림의 고승께서 남긴 것이다. 본래 속가 제자에게는 전하지 않는 것이기도 하지. 따라서 너는 이것이 무엇인지 모른다 해도 함부로 남에게 알려서는 안 된다.”
장건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면서도 시선은 그림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마치 그림 전체를 눈에 담아 두려는 듯 했다.
‘어차피 이것을 이해하고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이제 온전히 네게 달렸다.’
굉운은 굉목과의 약속을 지켰다. 일반적으로 무공 구결이든 비급이든 기본 무공이 아니라면 깨달음에 관한 것이다. 이 그림에 숨어 있는 깨달음을 찾아내는 건 다른 사람이 가르쳐 준다고 되는 일이 아닌 것이다.
“그럼 굉봉 사제가 이 그림을 가져가서 해석을 해보도록 하게. 또한 건이에게 말한 것처럼 오늘의 일은 당분간 누구에게도 발설하지 않도록.”
조금은 들뜬 표정의 장건을 제외하고 다른 이들은 대체로 실망한 표정으로 굉운에게 반장을 하고 계율원에서 물러났다.
하지만 장건은 다른 사람들이 왜 실망하고 있는지 조금도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다.
☆ ☆ ☆
장건은 계율원을 나와서 잠시 소림사의 경내를 배회했다. 머릿속에 그림에 대한 생각이 가득했다.
가상의 풍진과 그림 속의 노승이 대결을 한다.
풍진이 바람을 가르며 일검을 내지르고 노승은 주먹을 뻗는다. 어떻게 보면 허허롭기까지 한 평보(平步)의 자세로 가볍게 뻗는 주먹이었다.
풍진이 그냥 내리 그으면 노승은 끔찍하게도 반으로 쪼개질 것 같았다.
그러나 풍진은 마치 어딘가 걸린 것처럼 검을 긋지 못한다. 노승의 주먹에 실린 기운은 풍진의 검세를 뚫고 그대로 나아갔다.
풍진은 뒤로 성큼 물러나고 말았다.
풍진이 큰 치명상을 입은 것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풍진은 검을 들지 못한다.
싸울 의지를 잃은 것이다.
누가 이겼다고도 할 수 없지만 누가 진 것도 아니었다.
장건의 상상 속에서 펼쳐진 싸움은 그렇게 끝이 났다.
“정말 대단해.”
이것이야말로 장건이 원하던 그런 무공이었다.
하지만 장건은 곧 고개를 갸우뚱했다.
“어떻게 하면 그렇게 되지?”
풍진의 검초는 완벽하다. 장건이 가장 이상적이라고 생각할 만큼의 동선을 교교(皎皎)하게 그린다.
그림 속의 노승도 마찬가지다. 평범하게 보이는 동작에 전혀 결점이 없다. 흠도 없고 모자람도 없다. 그러면서도 지나치지 않는다.
다만 풍진의 검초는 너무 살벌하고 살기등등한 반면에 노승의 권법은 자애롭다. 자애로우면서도 풍진의 검에 결코 뒤지지 않았다. 아니, 애초에 이기려는 생각조차도 없는 듯 보인다.
“이상하다.”
그림 속의 노승이 마두가 아닌 하늘을 향해 권을 뻗고 있었던 것처럼, 풍진과의 대결에서도 마찬가지였다. 풍진은 치명적인 부위를 노리는데 비해 노승은 약점과는 전혀 상관없는 곳을 때렸다. 그리고 풍진을 물러서게 만들었다.
“백보신권이 원래 그런 건가.”
장건 스스로도 왜 그렇게 상상이 되는지 알 수가 없었다. 그냥 풍진이 검을 내리치는 장면에 그림 속의 노승을 가져다 두면 그렇게 되었다.
이내 장건은 혼자서 이렇게 끙끙대봐야 소용이 없다는 걸 깨달았다.
“난 백보신권을 모르니까 안 되겠어.”
장건은 걸음을 멈췄다. 어느새 내원 끄트머리에 있는 작은 정자에까지 와 있었다.
“노사님께 여쭤봐야겠다.”
장건은 종종 걸음으로 굉목의 병실을 향해 걸어갔다.
☆ ☆ ☆
굉목은 상세가 많이 좋아져서 일어나 걸을 정도가 되었다. 예전 같았으면 곧바로 자신의 암자로 돌아갔을 테지만 이번에는 왠지 더 눌러앉아 있다.
장건이 문각의 무공을 받아들였는지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문각의 무공이 어떤 것인지는 굉목도 모른다. 굉목은 권자를 받은 후 한 번도 열어보지 않았다.
“방장 사형이 건이를 불렀다 했는데 잘 되고 있는지 모르겠군.”
호랑이도 제 말하면 나타난다더니 장건이 문을 열고 들어왔다.
“노사님.”
굉목은 살짝 놀랐지만 태연한 표정으로 장건을 맞이했다.
“왔느냐.”
장건이 ‘에헤헤’ 웃으면서 다가왔다. 굉목은 장건의 표정을 보고 대뜸 장건이 뭔가 원하는 게 있다는 걸 알았다.
“이놈이? 사내답지 못하게 왜 그런 웃음소리를 내? 말하고 싶은 게 있으면 할 것이지.”
“어?”
장건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제가 뭐 물어보러 온 거 어떻게 아셨어요?”
“표정에 다 드러난다.”
“그런가…….”
8년을 같이 있었더니 모를래야 모를 수가 없다.
“그게 중요한 일이냐?”
“아뇨.”
장건이 머쓱하게 머리를 긁었다. 굉목은 머리 긁는 장건의 습관을 고쳐야 한다고 말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나마도 없으면 장건은 별로 사람 같지도 않아 보일 터였다.
가뜩이나 행동거지가 딱딱하고 어색하다보니 그나마 저런 모습을 보일 때나 사람 같다.
“아, 큰일이네. 원래 노사님께 뭘 여쭤보려 했는데요. 노사님이 눈치가 너무 빠르셔서 못 물어보겠어요.”
“내가 눈치가 빠른 거랑 무슨 상관이냐.”
“방장 대사님이 오늘 본 거 얘기하지 말라고 하셨거든요.”
문각이 남긴 권자인 모양이다.
“괜찮다. 그건 내가 방장 사형에게 준 거다. 정 뭐하면 자세한 내용은 말하지 않아도 된다.”
장건이 가득 미소를 머금고 웃었다. 어쩐지 면죄부라도 얻은 듯한 표정이었다.
장건이 물었다.
“백보신권에 대해서 좀 알려주세요.”
“백보신권?”
문각은 백보신권을 일절로 삼았다. 뭔가 했더니 권자에 그런 것이 있었나보다.
“백보신권은 권공이면서도 유독 내가공부가 엄청나게 필요한 무공이다.”
“멀리 있는 상대를 장풍처럼 때릴 수 있는 무공이라면서요?”
“장풍이라고 생각하면 틀리지 않지만, 네가 백보신권을 제대로 배우려면 그렇게 생각하면 안 된다. 나는 상대를 앞에 둔 것처럼 권법을 펼치는 것이나, 상대는 나를 건드릴 수도 없는 거리에서 내 권을 받아야 하는 것. 그게 백보신권이다.”
“아하. 거리.”
“그래. 백보신권은 거리에서 이득을 보는 수법이다. 같은 무공이라도 팔다리가 더 길면 유리하지 않겠느냐.”
“그렇군요. 거리…… 백보…….”
그렇게 읊조리던 장건의 표정이 이상해졌다. 노승의 동작에 반해 깜박 잊고 있던 게 생각났다.
“생각해 보니까 백보신권이나 장풍이나 내공을 밖으로 쏟아내는 거잖아요.”
“이상한 소리를 하는구나. 공력을 외부로 뻗어내지 않으면 어떻게 멀리 있는 상대를 때릴 수 있단 말이냐.”
“헉.”
장건의 안색이 급격히 나빠졌다.
장건이 금강권을 사용하기 싫어하는 이유 중의 하나가 바로 그것이었다. 몸의 근육이 꼬이는 것도 그렇고, 상대가 다칠까봐 두려운 것도 그렇지만, 내공이 빠져나가 순식간에 단전이 비어 버리는 게 싫다.
그때의 기분을 한 마디로 표현하자면 정말 아까워 죽을 지경이다, 라는 말이 딱 어울렸다. 아주 위급한 상황이 아니면 쓰지 않는 이유이기도 했다.
‘내가 어떻게 힘들게 기를 먹는데, 그걸 밖으로 버려? 하다못해 독공 수련을 하면서도 독기를 내뿜는 게 그렇게 아까울 수 없었는데.’
한참 운기조식을 하면 다시 단전은 차오르지만 그래도 기분이 찝찝한 것은 어쩔 수 없었다.
“하아…….”
장건은 갑자기 기운이 사라졌다.
굉목은 장건의 어깨가 축 처지는 것을 보고 살짝 안쓰러운 마음이 들었다.
공력을 뿜어내는 수법은 극히 어려운 것이다. 더구나 깊은 내공이 뒷받침되어 주지 않으면 사용할 수가 없다. 아무리 장건의 무위가 날로 발전한다 해서 부족한 내공까지 갑자기 불릴 수는 없었다.
“쯧쯧. 그래서 백보신권이 외가공부이면서도 내가공부가 크게 필요하다 하지 않았느냐. 네 내공으로는 지금 그것을 배우기에는 어림도 없다. 내공이 이 갑자는 넘어서야 겨우 십보신권이나마 할 수 있을 거다.”
장건의 고개가 점점 아래로 떨어져갔다.
굉목은 괜히 마음이 측은해진다. 풀이 죽으라고 이런 기회를 준 게 아니었는데, 괜한 짓을 했나 싶었다. 하지만 속마음과 다르게 언성은 높아졌다.
“이놈! 학문이든 무공이든 배울 게 남아 있으면 그것을 향해 정진하는 것이 사람의 도리이거늘, 당장 못한다고 포기하는 것이냐!”
모처럼 굉목의 호통을 들은 장건이 찔끔하며 고개를 들었다.
“죄송해요. 제가 너무 성급하게 생각했나 봐요.”
장건은 못한다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내공이 밖으로 나가는 게 본능적으로 싫을 뿐이다.
하지만 다른 방법이 있을지도 모른다. 그것을 더 알아보지도 않고 실망한 것은 분명 장건의 잘못이었다.
“알면 됐다. 하나씩 하나씩 배우고 알아간다고 생각하는 것이 제대로 된 정도를 가는 게다.”
장건이 고개를 들고 물었다.
“아, 그런데 이상한 게 있어요.”
“또 뭐냐?”
어차피 내공이 부족해 당장은 못한다고는 하나 그래도 그림 속 노승의 권법에 숨겨진 비밀이 너무나 궁금했다.
“백보신권은 상대의 정면을 보고 때리는 게 아닌가요? 아니다. 상대를 때리지 않는 거라고 물어봐야 되나?”
“그게 무슨 소리냐?”
“상대를 때리지 않는데 때리는 거예요.”
“…….”
굉목이 가만히 장건을 쳐다보았다. 장건의 눈은 진지해서 장난을 치는 것도 아니었다.
굉목은 인상을 쓴 채 말했다.
“나는 무공과 거리를 두고 살아 백보신권과 같은 상승 무공은 잘 모른다. 하지만 상대를 때리지 않으면서 때린다는 건 좀 이상하구나.”
“그래서 저도 이상하다고 생각했어요.”
생각하던 장건이 물었다.
“그럼 소림에서 가장 백보신권을 잘하는 분이 누구세요?”
“방장 사형도 백보신권은 할 줄 알긴 하나 일절로 삼지는 않았고…….”
굉목이 불쾌한 표정으로 말했다.
“소림에서 백보신권을 가장 잘하는 사람이 있다면 현재는 아마 사부일 거다.”
“아, 홍오 대사님이요?”
“그래.”
장건이 중얼거렸다.
“그럼 홍오 대사님께 가봐야겠구나…….”
굉목이 인상을 썼다.
“가서 백보신권을 배우는 건 좋다만 문각 사조의 무공에 대해서는 말하지 말거라.”
굉목의 사조라면 홍오에게는 사부인데 왜 말하지 말라는 것인지 장건은 의아했다. 하지만 굉목이 시키는 데에는 다 이유가 있을 터였다.
“예, 그럴게요.”
장건이 또 ‘헤헤’ 웃었다.
굉목은 인상을 더 썼다.
“알았으니 어서 가봐라.”
“역시 노사님은 제 마음을 잘 아신다니까요. 헤헤. 저녁에 또 올게요.”
장건은 인사를 하자마자 후다닥 병실을 나섰다.
그런 장건의 뒷모습을 보는 굉목의 찌푸린 표정은 어느샌가 풀어지고 있었다.
☆ ☆ ☆
“홍오 대사님이 어디 계시더라.”
장건은 병실을 나와 외원을 향했다. 풍진과 홍오는 주로 내원와 외원의 경계에 있는 커다란 나무 밑에서 자주 노닥거리곤 했다.
“맨날 풍진 도사님과 같이 계시더니, 오늘은 안 계시나.”
……라고 말하기가 무섭게 투닥대는 말소리가 들려온다.
“아, 이 망할 도사야! 왜 자꾸 날 졸졸 쫓아다니는 거야?”
“누가 널 쫓아다닌다고 그러냐. 누가 들으면 오해하겠다.”
외원에서 오는 돌담길에서 풍진과 홍오가 걸어오는 모습이 보인다.
“홍오 대사님.”
풍진과 홍오가 다투다 말고 장건을 본 순간, 이미 장건은 십여 장을 훌쩍 건너서 앞에 서 있었다.
풍진이 ‘허허’하고 웃었다. 언제 봐도 기이한 신법인데 빠르기까지 하다.
“뭔 일이기에 그리 호들갑을 떠느냐.”
장건이 꾸벅 합장을 하며 말했다.
“백보신권을 좀 보여주세요.”
“백보신권을?”
아닌 밤중에 홍두깨 같은 얘기라 홍오는 눈을 몇 번이나 깜박거렸다.
풍진이 묘한 표정을 지으며 홍오를 재촉했다.
“보여 달라면 보여줘. 가르쳐 달라는 것도 아닌데 뭐가 어렵냐. 애가 무공 좀 보고 싶다는 데 못 보여줄 건 또 뭐 있어?”
홍오가 떨떠름한 얼굴로 풍진을 쳐다보았다.
“이 도사 놈은 또 왜 이래?”
“흐흐흐.”
한 번 보면 배운다는 장건의 모습을 직접 구경하고 싶은 것이다.
“건이에게 보여주는 건 어렵지 않은데, 너한테는 못 보여주지.”
“그러지 말고 좀 보여줘! 그냥 옆에서 구경만 하겠다는 거잖냐.”
“남의 무공을 공짜로 구경하려는 못된 심보는 대체 어디서 배운 버릇이야?”
“난 이미 밑천이 떨어졌다. 저 녀석에게 보여줄 건 다 보여줬단 말이다.”
그러고 보니 장건은 풍진의 검을 복기까지 하고 있지 않았는가.
홍오는 고소한 얼굴로 답했다.
“흥. 그래도 그렇게는 못하겠다. 건아, 안으로 들어가자꾸나.”
홍오가 장건을 끌고 내원으로 갔다. 내원에는 외인이 들어올 수 없으니 풍진도 발을 동동 구를 수밖에 없었다.
“끄응. 소갈머리하고는.”
풍진은 투덜거리면서 외원으로 다시 돌아갔다.
홍오는 궁보의 자세에서 양팔을 천천히 휘저으며 다리를 낮추고 부보의 자세로 전환했다.
호흡을 고르며 천천히 단전에서부터 공력을 끌어올린다. 승복의 옷자락이 파닥거리며 흔들렸다. 이어 독립보에서 궁보로 발을 옮기고 중심을 앞선 왼발에 실었다. 원을 그리던 한 손은 가슴에 얹어 반장을 하는 모양새를 취하고 우권을 쏟아냈다.
팍!
홍오의 우권에서 뻗어 나온 권경이 사오 장 남짓한 거리에 있는 나무토막을 맞추었다. 나무토막이 산산이 부서지며 뒤쪽으로 흩어져 날아갔다.
홍오는 공력을 내리며 천천히 원래 자세로 돌아왔다.
“이게 백보신권의 기본 초식이다.”
홍오가 백보신권을 이렇게 느릿하게 펼칠 정도는 아니었다. 장건에게 보여주기 위해 동작을 천천히 한 것이다.
홍오는 기대감을 가지고 장건을 슬쩍 보았다. 무언가를 보면 자신의 방식대로 해석하는 아이라, 이번에는 어떻게 해석할지 궁금했다.
장건은 홍오의 시연을 보고 곰곰이 생각에 빠져 있었다.
“대사님. 혹시요, 때리지 않고 때리는 방법이 있나요?”
“글쎄다? 네가 뭘 말하는지 모르겠구나.”
“사람을 상대로 때리지 않는데 그 사람이 물러서는 거죠.”
“오호라. 네가 어디서 사부의 얘기를 듣고 온 모양이구나. 사부의 백보신권이 그러했지.”
장건은 속으로 ‘이크’ 했다.
‘홍오 대사님이 다 아신 거 아냐?’
하지만 홍오의 표정이 이상하다.
홍오는 말을 하다 말고 석상처럼 굳어 있었다.
뭔가 생각하려는 표정도 아니고 그냥 시간이 멈춘 듯 가만히 서 있는 것이었다.
“홍오 대사……님?”
“응?”
홍오가 무슨 일이냐는 듯한 얼굴로 장건에게 되물었다.
“무슨 얘기까지 했었지?”
장건이 오히려 당황했다.
“대사님의 사부님 얘기요.”
홍오가 괜히 하늘을 올려다본다.
“아, 그래. 사부님 얘기를 하고 있었지.”
그리곤 또 미동도 않고 멈춘다.
갑자기 눈가에 잔주름이 자르르 떨렸다.
“이상하구나. 나이가 들어서 갈 때가 되었나. 사부님 생각이 잘 나질 않아. 분명히 내게 뭐라고 했던 것 같은데. 그게 뭐였더라? 거…… 거…….”
장건은 금방이라도 ‘거무불거유요!’ 하고 외치고 싶어 입이 간질거렸다.
홍오는 한참을 끙끙대다가 손뼉을 쳤다.
“맞다! 거무불거유였다. 유에 있지 않고 무에 있다.”
“엑!”
장건은 눈을 휘둥그레 떴다. 홍오가 그 말을 알고 있을 거라고는 생각도 못한 것이다. 홍오가 그 말의 뜻을 알고 있다면 방장이나 굉봉이 굳이 애써 찾을 필요가 없는 일이었다.
“그래서 내가 사부님께 그리 말씀을 드렸지. 무엇이 무에 있고 유에는 없습니까.”
“그랬더니 사부님께서 뭐라 하셨나요.”
“모든 것이 그렇다고 하셨다. 그러니까…….”
홍오는 또다시 머리를 싸맸다.
일전에 굉운이 굉목에게 한 말은 확실히 맞는 것이었다. 오성이 극대화되는 고수가 과거의 일을 기억하지 못한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 일이었다.
홍오는 다음 말을 생각해내는 데 한참이나 걸렸다.
“그래그래. 그렇게 말하셨구나. 우리가 보는 것은 모든 것이 유에 있으나, 보지 못하는 모든 것이 무에 있다. 색(色)은 유에 있으나, 색을 탐하는 마음은 무에서 시작한다. 그렇다면 우리가 마땅히 지키고 보살펴야 할 것은 유가 아니라 무이다.”
장건도 그간 굉목에게 주워들은 게 있어 말은 이해하고 있었지만 의미는 어렵다. 그래도 노승의 무공을 깨치려면 열심히 생각을 해야 했다.
“그렇다면 무는 공(空)이 아닌가요?”
“오호, 네가 절밥을 오래 먹더니 굉목이보다 낫구나. 공은 아무것도 없는 허(虛)다. 하지만 무는 유가 있음에 존재하는 것이니, 존재한다는 자체로 공이 아니다. 공을 채우면 무가 되나 그렇다고 유가 되는 것은 아니지.”
“끄응, 어렵다.”
“원래 선문답이라는 게 그렇다. 그래서 내가 사부님께 그리 말했다. 제자는 아직 무를 모르니 공을 채워서 무를 알겠습니다, 하고. 뭐, 아직까지도 알지 못하긴 한다만.”
그게 바로 홍오가 강호행을 하며 그렇게 많은 것들을 섭렵한 까닭이었다.
버리고 비우기 위해 우선 채워야 한다, 그것은 홍오가 더 큰 깨달음을 얻기 위한 수행의 방법이었던 것이다. 그 와중에 갖은 사고를 친 것은 오로지 그의 성정 탓일 따름이었다.
홍오가 코웃음을 치며 화를 냈다.
“내 굉목이에게도 같은 얘기를 했고 그렇게 가르쳤거늘, 굉목이 이놈은 내가 자신을 골려 먹는 줄로만 여기고 내 말은 귓등으로도 듣지 않으니…….”
그리곤 갑자기 홍오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막 다음 말을 내뱉으려던 홍오가 눈을 찡그렸다.
“이상하구나. 오늘따라 머리가 지끈지끈한 것이.”
“괜찮으세요?”
장건의 걱정스러운 물음에 홍오가 고개를 저었다.
“아니다. 어디까지 얘기했었지?”
“굉목 노사님 얘기요.”
“굉목 얘기?”
“네.”
홍오는 영문을 모르겠다며 고개를 설레설레 내저었다.
“오랜만에 만났으니 좀 더 얘기를 하려 했건만 아무래도 안 되겠구나. 좀 쉬어야겠어.”
홍오의 나이는 벌써 아흔이 넘었다. 오성을 금제당한 상태에서 이만큼 산 것도 대단한 일이었다.
그러나 장건의 질문에 자꾸 과거를 기억하려 하면서 심력의 소모가 크다보니 지친 것이다.
홍오의 눈빛이 한순간에 기운을 잃는 것을 보며 장건은 깜짝 놀랐다.
“정말 괜찮으신 거예요?”
“괜찮다, 괜찮아.”
홍오는 손을 흔들면서 자신의 암자로 돌아가 버렸다.
장건은 홍오가 걱정되었지만 나이가 나이인지라 걱정한다고 될 문제가 아닌 듯싶었다.
“하아…….”
장건은 홍오에 대한 걱정을 잠시 접어두고 홍오가 시연한 백보신권을 생각하기로 했다.
“역시 대사님이 보여주신 건 노스님과 좀 다르구나.”
홍오의 백보신권은 교본과도 같은 정석적인 동작이었다. 흠잡을 데 없이 깔끔하긴 했으나 노승의 부드러운 권법과 달리 강맹함이 주가 되어 있었다.
굉봉은 노승의 자세 역시 백보신권이라고 했지만, 장건이 보기에는 어딘가 달랐다. 같은 자세지만 전연 느낌이 달라서 같은 무공이라고 할 수가 없었다.
장건은 연무장 바닥을 쓱쓱 발로 문지르고는 노승의 자세를 흉내내 보았다.
엉거주춤하면서도 편안한 자세로 서고 가볍게 주먹을 내지르는 동작. 그러면서도 붓으로 먹물을 찍어 단번에 일필휘지로 그린 듯한 자연스럽고 미려한 동작.
노승의 작은 움직임까지도 모두 머리에 새긴 터였지만 장건은 그것을 따라할 수가 없었다. 대충 따라하라면 누구라도 하겠지만 손가락 끝, 팔과 허리의 각도와 발목의 위치까지도 섬세하게 따라하고자 하면 되지 않는다.
몸의 전 근육을 미세하게 조절할 수 있는 장건임에도 불가능한 일이라는 게 놀랍기만 하다.
“어휴.”
장건은 다시 기본자세로 돌아왔다.
“기본이 백보신권이라고 하셨으니 백보신권의 자세로 다시 해볼까.”
한데 홍오의 백보신권 자세를 취한 순간 노승의 동작이 머리에 떠오르며 가슴이 꽉 막혀왔다.
울컥.
자연스럽게 흘러야 할 내기가 딱 멈추어 요동을 친다.
“컥!”
장건은 재빨리 동작을 풀었다. 동작을 취하는 것뿐인데 내상을 입을 뻔했다.
장건에게 동작은 단순한 동작이 아니다. 심생종기에 따라 물 흐르듯 움직여야 할 내공이 그러지 못한다는 건 이유가 있는 것이다.
“헉헉…….”
장건은 숨을 몰아쉬면서 자리에 주저앉았다. 식은땀이 송글송글 이마에 맺혔다.
“내가 뭘 잘못한 거지? 정말 그림일 뿐이라서 실제로는 안 되는 건가? 아니면 노사님 말씀처럼 내가 배울 때가 안 된 걸까?”
사실 장건처럼 그림의 동작을 따라한다는 건, 굉운도 생각해 보지 못한 일이었다. 마치 수수께끼처럼 그림과 글귀에 의미가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 것이 보통이다.
굉운이나 굉봉이 볼 때에는 노승의 동작은 백보신권을 나타내는 것, 그 이상의 의미가 없어 보였다.
백보신권으로 하늘을 보며 태양을 때리는 것과 마두가 부복하는 것 등이 어떠한 깨달음의 일부를 알리는 것이라 생각하고 있었다.
하나 굉운이나 굉봉이 놓친 부분이 있었다.
문각이 이 그림을 남겼을 때는 사손인 굉목이 젊었을 적이었다. 홍오가 아니라 굉목에게, 그것도 자신이 입적할 날이 머지않았다는 걸 알고 있는 상황에서 말로 설명하거나 할 여유가 없었다.
그래서 문각은 굉목을 위해 최대한 알아보기 쉽게 진전을 남겼다. 홍오를 용서한 후에 진전을 이으라 했지만, 홍오에게 지도를 받지 못할 것도 대비해야만 했다.
아끼는 사손에게 자신의 모든 것을 주고 싶었던 까닭에 문각은 깨달음을 이리저리 몇 번이나 꼬아 비유한 것이 아니라 직접적으로 그림을 그려 나타냈다.
20대였던 굉목이 그 그림을 보았다면 충분히 이해했을 만한 그런 내용이었다.
굉운이나 굉봉은 너무 어렵게 생각한 나머지 문각의 의도를 제대로 읽지 못한 것이었다. 따지고 보자면 오히려 장건이 제대로 된 길을 가는 중이다.
“에잇.”
장건은 다시 자리를 탈탈 털고 일어섰다.
오래도록 풍진의 검을 생각하고, 그 검을 막을 수 있는 방법을 찾아왔다. 그런 방법이 눈앞에 있는데 쉬고 있을 겨를이 없었다.
장건은 노승의 동작을 따라 이렇게도 해보고 저렇게도 해보면서 시간이 가는 줄 모르고 수련에 매진하기 시작했다.
☆ ☆ ☆
“씩씩.”
“씩씩씩.”
머리가 다 헝클어지고 산발이 된 데다, 옷은 여기저기 흙투성이에 찢기기까지 한 두 소녀가 서로를 노려보며 서 있었다.
당예와 제갈영은 얼굴을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험한 모습이었다.
“아하, 꼴좋구나. 그러게 누가 이 언니에게 함부로 대들라든?”
“얼씨구? 사돈 남 말하시네. 지는.”
제갈영이 코웃음을 치며 말을 덧붙였다.
“흥! 나이만 먹으면 뭐해? 나 같은 애한테도 지는데.”
“뭐라고?”
당예가 이를 갈았다.
빠득!
“좋아. 누가 이겼는지 건이에게 물어볼까?”
“당연히 내가 이긴…….”
둘은 고개를 돌려 건이가 있던 자리를 보았다. 하지만 그곳에는 건이 대신 뼈만 남은 노도사가 쪼그리고 앉아 있을 뿐이었다.
“어려운 일이구나. 내가 판가름하기도 어려워. 둘의 실력이 호각지세이니……. 클클.”
풍진이 나름 고심하며 내린 결론이었다.
이리 긁히고 저리 긁힌 당예의 얼굴이 절로 일그러졌다.
‘저 노인네는 정말 안 끼는 데가 없어!’
기운이 빠진 제갈영이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이게 뭐야! 우리 서방님 어디 갔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