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ily Priesthood RAW novel - Chapter 73
제 6 장 회자정리
팽탁과 양소은은 실로 오랜만에 각자의 도와 창을 들고 수련을 하고 있었다.
부우웅-!
팽탁의 벽력도는 빠르면서도 강맹했다. 도에 담긴 위력이 거세어서 어지간한 검으로 받아냈다가는 검이 동강날 것 같았다.
양소은도 여자지만 부친인 양지득의 영향을 받아 강맹한 공격을 위주로 했다. 창으로 찌를 때는 날렵하나 후려칠 때는 벽력도만큼이나 무겁다.
터텅!
팽탁의 도와 양소은의 묵창이 서로 부딪쳤다. 양소은이 힘에서 조금 밀렸다. 대신 여류 무인 특유의 부드러움으로 힘을 흘려내며 도가 회수되기도 전에 재차 공격을 가했다.
“이크크!”
피-잉!
팽탁의 뺨 옆으로 양소은의 창날이 스쳐 지나갔다.
“과연 양가장이 왜 창의 명가인지 알 수 있겠소. 이 정도면 모용 형이 반할 만하오.”
“이게 다 아버지 때문에…… 뭐, 뭐라구요?”
양소은은 창을 거두다가 깜짝 놀라서 창을 떨어뜨릴 뻔했다.
“이런, 모르셨소?”
“아니, 지금 도대체 무슨 말을 하는 거예요?”
“모용 형이 양 소저를 바라볼 때의 시선을 몰랐단 말이오? 허어. 나 같은 둔한 놈도 알겠던데, 막상 본인은 모르셨구려.”
팽탁이 훌쩍 물러나며 도를 내렸다.
“아무튼 잠시 쉽시다. 이러다간 정작 힘을 써야 할 때 지쳐 못 싸우겠소.”
“아니, 아니. 지금 얘기 좀 다시 해 봐요. 모용 소협이 뭐라고요?”
“정말 몰랐소? 허어, 이거 내가 괜한 소리를 했나?”
“괜한 소리나마나! 아는 대로 다 불어보라니까요!”
양소은은 창을 집어던질 듯 사납게 팽탁을 몰아 붙였다. 팽탁이 공터 옆에 있는 나무 그늘로 달아났다.
“난 더 모르오. 그냥 그러지 않은가 하고 추측했을 뿐이지. 어이쿠!”
창이 날아와 나무줄기에 박혔다.
“괜히 헛소문 내고 다녔다간 죽을 줄 알아요.”
“내가 무슨 헛소문을…… 아, 알았소. 그만하고 좀 쉬자니까!”
양소은은 꽤 충격을 받았는지 씩씩거리며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했다.
그런데 그때 한 무리의 사람들이 소림의 산문을 통과해 나오고 있었다.
“응? 뭐지?”
팽탁이 애써 관심을 돌리려다가 앞선 두 명의 얼굴을 보고는 적이 놀랐다.
“어허? 저기 검성의 제자와 철비각 종 대협이 아니오? 아직 비무 시간도 안 됐는데 왜 벌써 오지? 문 소협이야 그렇다치고 종 대협은 왜…….”
양소은도 그들을 보고는 의아해 했다.
“그러네요. 그 뒤에는 백리…… 아니, 저 예쁜 건 또 왜 오는 거야?”
둘의 뒤에는 백리연과 스무 명 남짓한 청년들까지 뒤따르고 있었다.
그들은 계단을 내려와 일주문을 거친 후, 팽탁과 양소은이 있는 길 옆 공터에까지 왔다.
문사명이 그늘에서 어리둥절해 하고 있는 팽탁과 양소은을 보고 정중히 포권했다.
“사용하시는 중이 아닌 듯하니 잠시 자리를 빌렸으면 합니다만.”
“아니 뭐…… 그러십시오.”
팽탁은 영문을 몰라 고개를 갸웃거렸다.
문사명과 종유가 공터의 가운데에 자리하자 나머지 사람들이 멀찍이 떨어져 섰다.
양소은이 청년들에게 둘러싸인 백리연에게로 다가갔다. 청년들이 경계의 눈초리로 양소은을 막자 양소은은 자리에 서서 백리연을 불렀다.
“이봐.”
백리연이 양소은을 보고는 고운 이마를 살짝 찌푸렸다.
“왜 그러시죠?”
“저 두 사람, 무슨 일이야?”
“그러는 댁은 왜 여기 계신데요?”
“나야 그냥 몸 좀 풀러 나왔지.”
백리연이 고개를 돌려버리자 양소은이 다시 불렀다.
“자기만 물어보고 모른 척하는 게 어디 있어? 저게 무슨 일이냐니깐?”
“우리가 그 정도로 친한 사이였던가요?”
“응. 말도 놓고 그런 사이 아니었나? 난 그렇게 기억하는데.”
청년들이 백리연의 불편한 심기를 보고 대신 말했다.
“이보시오. 백리 소저가 모른다지 않소. 더 귀찮게 하지 말고 저리 가시오.”
양소은이 발을 동동 굴렀다.
“모르긴? 정말 이러기야? 우리 법당에서 같이 목…….”
백리연은 화들짝 놀랐다.
“잠깐!”
“응? 이제 말을 할 마음이 생겼어?”
백리연이 눈을 지그시 감고 크게 숨을 내뱉었다.
“몰라.”
“뭘 모른다는 거야. 싸우는 걸 모른다는 거야, 아니면 우리 사이를 말하는 거야?”
백리연이 청년들에게 웃음으로 양해를 구했다.
“잠시 자리를 비켜주시겠어요?”
“아? 예, 당연히 그래야죠.”
청년들이 적잖이 떨어지자 백리연이 양소은에게 손짓했다. 양소은은 아예 백리연의 곁으로 가 털퍽 앉았다. 땀을 한창 흘리고 있어서 백리연은 손바닥으로 코를 살짝 막아야 했다.
백리연이 투명하고 맑은 눈동자를 최대한 크게 부릅뜨고 작은 목소리로 따졌다.
“왜 이러는 거야?”
“그냥 궁금해서 그러지.”
“나도 이유는 잘 몰라. 장 소협하고 대결하려고 먼저 싸운다는 것 같아.”
“호오!”
양소은은 단호한 표정으로 서 있는 문사명을 보고 감탄성을 냈다.
‘무슨 일이 벌어질 건지 벌써 알고 있었다는 거잖아? 대단한걸. 그런데도 남궁지의 청을 받아들였어.’
마치 이용당해도 상관없다는 듯, 문사명은 알고서도 참관인이 되기로 한 것이다.
양소은의 표정을 본 백리연이 의구심을 가졌다.
“너도 뭘 아는 거지?”
“으, 응?”
“대답해봐. 어떻게 문 대협이 장 소협과 싸우게 된다는 거지?”
양소은이 멋쩍게 머리를 긁었다.
“아아, 곤란한데. 난 거짓말을 잘 못하는 체질이라.”
“그러니까 거짓말하지 말고 말해봐.”
“까짓 거, 같이 알몸까지 본 사이니 말해주지. 어차피 이제와 더 숨길 것도 없고.”
백리연이 놀란 가슴을 부여잡고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다행히도 둘의 말을 들은 이는 없는 듯했다.
“그러니까 사실은…….”
문사명과 종유는 대여섯 걸음을 두고 떨어져 섰다.
문사명이 검집에서 검을 꺼내 들었다. 검신을 맨손으로 천천히 쓰다듬어 보았다. 오랜만에 잡는 검이어서 그런지 검의 차가운 느낌이 기분 좋게 느껴졌다.
종유가 물었다.
“그 검이 매란화미검인가?”
“그렇소.”
“영광이로군. 화산의 3대 보검을 상대로 하게 될 줄이야.”
모용전이 검극을 아래로 향한 채 대답했다.
“종 대협의 상대는 나지, 이 검이 아니오.”
“그렇다고 검의 덕을 보지 않는 건 아니지.”
“검은 그저 연장일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오. 지금은 친구라고 해도 좋겠소만.”
종유의 눈빛에 서늘한 기색이 스쳐갔다.
‘위험하군…….’
스승에게서 들었던 얘기를 앵무새처럼 되풀이하는 것이 아니다. 문사명의 표정은 이미 그것을 깨달았다는 표정이다. 검에 의존하는 경지를 벗어나 있다는 증거다.
‘하긴, 이미 검이 없어도 검결지로 검기를 냈을 정도였지. 이 싸움, 쉽지 않겠어.’
그래도 종유는 기에 눌리지 않았다. 그 역시 적잖은 경험을 쌓은 무인이었다. 대융삼마와 철가장주를 쓰러뜨린 후 제대로 된 무인을 만난 적은 거의 없었지만, 연륜은 무시할 수 없다.
문파의 비호를 받지 못해 무시당하고 업신여겨진 적이 셀 수도 없었다. 종유는 그때마다 자신의 힘으로 역경을 극복해 왔다.
‘그래도 나 종유가 곱게 자란 화초 같은 녀석에게 질 수야 있나.’
비록 장건에게 불의의 일격을 받고 쓰러지긴 했으나, 장건을 만나기 전까지 종유는 적수를 만난 적이 없었다.
하북에 있는 수천 수만의 무인들 중 열 손가락에 꼽힌다는 것은 결코 과장된 것이 아니다. 물론 중원 무림 전체에서 꼽는다면 백 위에나 겨우 들까 싶지만, 수십만 명 중 백 위라는 것도 실은 대단한 일이다.
종유가 서서히 공력을 끌어올렸다. 종유의 운기법은 독특해서, 서서히 시작하다가 순간적으로 폭발하듯 내공이 일주한다. 그때부터 상대는 숨 쉴 틈도 없는 종유의 공격을 막아야만 하는 것이다.
츠츳.
발밑의 흙이 먼지가 일듯 피어오른다.
“미리 말해두겠는데, 나는 대충이라는 게 없는 사람일세. 나중에 팔다리를 잃어 책임지라고 해도 못 하네.”
문사명도 기수식을 펼치며 종유의 공력에 대응했다.
“종 대협이야말로 온 힘을 다해야 할 겁니다. 기천 년을 이어온 화산의 무게에 짓눌리지 않으려면.”
종유가 발끈하며 대꾸했다.
“내가 어디서 귀동냥으로 무공을 배운 줄 아나? 문파의 정통성을 따지자면 나 역시 수천 년은 될 걸세!”
산속에서 기연을 얻어 무공을 익히긴 했지만, 안타깝게도 시조는 모른다. 사부도 없었다. 그것이 종유가 가진 최대의 약점이었다.
문사명이 싸늘하게 조소했다.
“정통성이라…… 명문 문파는 본래 위아래가 명확한 법이지요.”
“그렇구려! 내가 잘못했소이다. 문·선·배! 난 명문 화산의 제자인 문 선배가 이리도 말 많은 사람인 줄 오늘 처음 알았소.”
“화산을 무시한 죄. 스승님께는 용서받았는지 모르나 나는 마음이 넓지 못해서 말이오.”
“정말로 밴댕이 속이군. 그 나물에 그 밥이라고.”
“그 나물에 그 밥이나마 있으니 명문인 거요.”
마치 철천지원수라도 만난 양, 두 사람의 조롱이 이어졌다. 모르는 사람이 보면 왜 그러나 싶을 지경이었다.
쿵!
비아냥대던 중에 종유가 먼저 발을 굴렀다.
“혀만큼이나 실력도 잘 돌아가는지 볼까!”
“기다리던 바!”
종유가 쏜살처럼 앞으로 튀어나갔다. 한 번 진각에 대여섯 걸음의 거리가 단숨에 좁혀졌다.
무기와 맨손의 대결이니 거리를 좁혀서 몰아붙이는 것이 기본 상식이다. 코가 닿을 만큼 순식간에 거리를 좁힌 종유였고, 문사명은 그에 대항해 뒤로 뛰며 검을 뻗었다.
종유가 급히 몸을 뒤틀며 발을 땅에 박아 넣었다. 달려가던 중에 힘으로 멈춘 것이다.
팟!
아슬아슬하게 검기가 종유의 코앞을 스쳐갔다. 그냥 내달렸으면 뻗어진 검에 스스로 박치기를 할 뻔했다.
그 틈에 문사명이 검초를 전개했다.
문사명의 오른손에 들린 검이 연신 흔들리며 허공에 정교한 수를 놓는다. 검면에 새겨진 매화 문양이 화사하게 빛을 발했다.
공중에 매화꽃 서너 송이가 피어났다.
흐드러지게 핀 매화의 향기가 코를 찌른다. 매란화미검의 특성이다.
종유의 눈에 경계의 빛이 스쳐갔다. 매화꽃으로 화한 검기가 바람에 휘날리듯 종유를 향해 날아들었다.
“흐-읍!”
종유가 숨을 들이키며 발을 굴렀다.
검기를 피할 생각이 아니라 정면으로 뚫을 생각이다.
종유는 공중으로 도약하며 연신 발을 걷어찼다. 몸을 비틀면서 계속해 파괴력을 더했다.
한 번 호흡에 쉬지도 않고 열 번 이상을 걷어찼다.
섬뢰분연각이라는 명칭에 걸맞게 각영(脚影)이 어지럽게 생겨났다.
매화검법의 화형(花形) 검기와 섬뢰분연각의 각영은 모두가 실초다. 상대를 현혹시키는 허초가 없이 각각이 위력을 담고 있다.
꽝!
매화꽃 하나가 종유의 발차기에 부서졌다. 이어 두 개째, 세 개째의 꽃이 터져나갔다.
엄청난 강공에 문사명이 뒤로 조금씩 밀렸다. 매화의 검기를 모두 부숴버린 종유가 땅에 착지하자마자 다시 뛰어올랐다. 그리곤 또다시 발을 걷어찬다.
꽈꽝!
엄청난 공력이 담긴 발차기를 문사명이 검을 휘둘러 막아냈다. 발이 끌리며 뒤로 자꾸만 밀려난다. 먼지가 구름처럼 뿌옇게 피어올랐다.
종유가 옆으로 손을 짚고 돌다가 거꾸로 선 채 몸을 틀었다. 비선각(飛旋脚)을 응용한 수법으로 문사명의 사각에서 옆얼굴을 향해 날아들었다.
문사명이 허리를 뒤로 눕히며 피해내자 종유가 손등으로 땅을 쳤다. 하늘에서부터 수직으로 종유의 발이 떨어진다. 문사명이 한 다리로만 몸을 지탱하며 팽이처럼 몸을 돌려 발차기를 피해냈다.
파앙!
내리찍듯이 발을 휘두른 종유가 자연스럽게 일어섰다. 일어섬과 동시에 근거리에서 손을 휘둘렀다.
매의 발톱처럼 엄지와 검지, 중지를 세웠다. 잡히면 살점이 뜯기고 뼈가 으스러질 듯하다.
문사명이 뒤로 발을 빼며 상체를 앞으로 향해 장을 뻗었다. 응조수 형태의 조법에 장법으로 대응하는 것이다.
종유의 눈이 찌푸려졌다. 그대로 부딪치면 손가락이 으스러질 판이다. 종유가 손가락을 모두 펼쳐 장으로 맞섰다.
텅!
손바닥이 맞닿으며 장력이 폭발해 종유가 휘청거렸다. 두어 걸음을 뒤로 물러나 다시 자세를 잡았다.
그에 반해 문사명은 한 걸음도 물러나지 않았다. 발밑에 흙이 끌린 자국은 있으나 자세는 조금도 흐트러지지 않았다. 종유처럼 휘청대지도 않았다.
궁보의 자세로 앞발을 내딛은 채, 상체를 약간 숙여 앞으로 장을 뻗고 검극을 하늘로 하여 등 뒤에 대었다. 앞으로 완전히 힘이 쏠려 지독히도 단단해 보인다.
종유는 심호흡을 하며 들끓는 내기를 가다듬었다.
‘내 내공이 약간이나마 우위에 있지 않았다면 크게 내상을 입었겠다. 역시 만만히 볼 수가 없구나.’
종유의 공격이 다분히 유동적이고 임기응변에 가깝다면 문사명은 고지식하다. 동작 하나하나에 초식이 아닌 것이 없다. 틀로 찍어서 연습한 듯한 자세로 종유의 공격을 방어하고 공격한다.
상상도 못할 반복 수련에 의해 몸에 익은 자세다.
그러나 종유는 그것이 결코 우습지 않다.
문사명이 사용하는 초식은 수백 년 이상 전해진 화산의 무공이다. 달리 말하면, 틀린 점은 바로잡고 아쉬운 부분은 보완하여 수백 년 동안 이어진 무공이라는 뜻이다.
하나의 동작에도 가벼이 여길 수 없는 무게가 있다.
혼자서 비급을 보고 무공을 익힌 종유는 가질 수 없는 무엇이 문사명의 초식에 있었다.
종유는 이를 빠득 갈았다.
언뜻 자신이 계속해서 공격을 하고 문사명이 밀리는 듯하나, 방금 한 수로 공격의 맥이 끊겼다.
문사명이 검을 앞으로 하며 몸을 세웠다.
문사명의 표정도 그리 좋은 편은 아니었다.
‘이런 공격을…… 그리도 가볍게 격파했던가?’
장건은 종유를 상대로 길게 끌지 않았다. 종유는 두 번 제대로 공격을 했고 세 번째 공격을 하다가 나가떨어졌다.
특히나 문사명은 첫 검격으로 종유에게 아무런 상처도 입히지 못했다. 종유의 대처가 너무도 원활했다. 어지간한 공격이라면 절대 한 번에 맞고 쓰러질 이가 아니다.
‘어떻게 이 사람을 일권으로 쓰러뜨렸지?’
전에 장건에게 검을 뻗었을 때, 장건은 당황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이런 종유를 쓰러뜨렸으면서 왜 자신의 검엔 당황했을까?
‘이해할 수가 없군.’
문사명은 나직이 한숨을 내쉬었다.
문사명과 종유의 비무를 지켜보던 청년들이 자기도 모르게 감탄을 내뱉었다.
“엄청나다…….”
“잠깐 사이에 뭐가 뻥뻥 터지고 난리가 났는데, 둘 다 멀쩡하잖아?”
눈 깜짝할 사이에 몇 합을 주고받았다. 주변에는 온통 흙먼지가 뿌옇게 피어나 있었다.
“종 대협의 폭발력을 견뎌 내다니, 검성의 제자도 제법 하는걸.”
“자신 있다던 게 허언은 아닌 모양이네.”
종유는 공격으로 부족한 방어를 메우는 형국의 싸움을 한다. 공격력이 극대화되어 있어서 치고 피하며 싸우는 게 아니라 일단 계속 때린다.
그 틈을 뚫고 맥을 끊은 문사명의 한 수는 누가 봐도 고개를 끄덕이게 만드는 것이었다. 그것도 정면으로 맞서서 말이다.
“모름지기 비무란 저 정도는 되어야지.”
누군가의 혼잣말에 다른 이들이 부르르 몸을 떨었다.
아닌 게 아니라, 소림 정문에서 있었던 대사건이 떠오른 탓이었다.
한 방에 한 명.
뭘 어떻게 하는지도 모르게 날려 버리는 장건의 무공은 지극히 이질적이었다. 비록 직접 당한 처지이긴 하나 장건의 무공은 보는 맛도 없고 재미도 없었다.
팽탁과 양소은도 문사명과 종유의 대결을 보면서 절로 문사명과 장건을 비교하게 되었다.
‘보기만 해도 대단한데…… 저런 종 대협을 한 방에 날려버린 놈은 뭐야? 인간이야?’
‘문 소협의 실력이 뛰어나긴 하지만 아무래도 장건에게는 못 미치겠는걸.’
‘아무리 검성의 제자라 하더라도 철비각의 명성이 있지…… 쉽게 이기긴 힘들겠어.’
대부분의 이들이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생각처럼 문사명과 종유는 연신 일진일퇴의 공방으로 팽팽한 접전을 이루는 중이었다.
종유의 강맹한 발차기가 날아들면 문사명은 보법을 밟아 피하며 검을 찔러 넣는다. 종유는 몸이 반응하는 대로 문사명의 검을 피하고, 그러면서도 다시 반격을 가한다.
문사명의 검초는 날카롭지만 살을 내주고 뼈를 취하겠다는 식의 공격에는 쉽사리 대응하기가 어렵다. 문사명이 어쩔 수 없이 검을 거두면 다시 종유의 공격이 쉴 새 없이 이어지는 것이다.
그렇다고 종유의 공격이 문사명에게 먹히느냐 하면 그건 또 아니었다.
수백 년 이상의 세월동안 이어온 화산 무공은 어떠한 상황에서도 가장 적절한 대처를 보일 수 있었다. 문사명은 종유의 현란하고 무지막지한 공격을 흘려내고 비껴내며 빈틈을 정확히 짚어냈다.
때문에 종유는 자신의 특기인 연환 공격을 끝까지 잇지 못하고 중간에 멈추어야만 했다.
퍼펑!
거의 삼십여 초를 겨룬 연후에 문사명과 종유가 서로 물러섰다.
이대로라면 얼마를 더 싸우든 쉽게 승패를 정할 수 없게 될 터였다. 보는 사람이야 즐거울지 모르지만 둘에게는 낭패스러운 일이었다.
‘철비각이 왜 하북의 강자라 불리는지 이제 알겠구나.’
‘그 스승의 그 제자라더니…… 이런 젊은 녀석의 실력이 나와 백중지세일 줄이야.’
승부를 최대한 빨리 끝내고 장건이라는 목적을 향해 달려가야 하는 두 사람이었다. 그러나 뜻밖에도 쉽게 실력의 우위가 판가름 나지 않으니 곤란하다.
그그그그.
문사명이 다시 한 번 공력을 끌어 올렸다.
“이대로 가다간 날 새겠소. 승부를 냅시다!”
“좋지.”
지켜보는 이들이 하나같이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이번에야말로 정말 엄청난 광경을 볼 수 있게 될지도 몰랐다.
꽝!
문사명과 종유가 거의 동시에 땅을 박차고 서로에게 쇄도했다.
촤라라락.
문사명의 머리 위에서부터 어깨를 타고 사선 방향으로 매란화미검이 그어졌다. 종유가 뒤로 한 걸음 물러난다 싶더니 한 손으로 땅을 짚으며 훌쩍 뛰어올라 위에서부터 아래로 발을 찼다.
피하는 동작이 공격이 되는 절묘한 수법이다.
문사명은 팽이처럼 몸을 낮추고 이리저리 돌았다.
쿵쿵쿵.
벼락이 떨어지듯 공력이 깃든 종유의 발차기가 땅을 두드렸다. 문사명이 옆으로 몸을 옮기며 매화검의 절초를 연신 펼쳐냈다.
심후한 공력이 깃든 종유의 발차기를 정면으로 마주할 수 없는 것처럼, 종유도 보검을 맨손으로는 방어해낼 수 없다. 종유는 보법을 밞으며 뒤로 물러났다.
촤라락.
장건을 상대했을 때처럼 문사명의 검이 종유를 놓치지 않고 따라간다. 물러나는 속도가 나아가는 속도보다 느린 건 당연하다.
해서 종유는 왼쪽으로 크게 돌면서 뒷걸음질을 쳤다. 오른손잡이인 문사명이니 사각으로 돌면 아무래도 불편하기 마련이다.
한데도 검은 쉬이 떨어지지 않는다. 종유와 호흡을 맞추기라도 한 것처럼 그의 걸음을 따라 날아들고 있었다. 종유의 독문 보법을 알고 있는 것도 아닌데 미리 다음 걸음을 예측이라도 한 듯 따라온다.
두 사람이 큰 원을 그리며 쫓고 쫓기는 듯한 상황이었다. 종유는 수세에 몰린 입장이면서도 문사명의 공격 호흡을 세고 있었다.
‘하나, 둘…….’
호흡이 긴 고수는 한 호흡에 수십 번의 공격을 할 수 있다. 하지만 인간이라면 언젠가는 숨을 쉬어야 하고, 그 순간 호흡이 끊기기 마련. 문사명이 검을 계속 내지르면서 아주 찰나의 순간 숨을 들이켰다.
종유가 돌연 방향을 틀었다. 그러면서 번개처럼 몸을 숙였다가 뛰어 올랐다.
문사명이 아차 하는 순간 시야에서 종유가 사라졌다. 위에서부터 묵직한 파공음이 들려온다 싶자, 문사명은 하늘로 검을 향하며 옆으로 몸을 날렸다.
꽝!
문사명이 서 있던 자리에 한 뼘이나 땅이 패었다.
선기를 잡은 종유가 멈추지 않고 문사명의 검면을 걷어찼다. 보검이니 쉽게 부러지지는 않겠지만 여차하면 문사명은 검을 놓칠 수도 있었다.
문사명은 다급히 숨을 멈추며 검을 회수했다. 종유가 때를 놓치지 않고 문사명의 팔꿈치와 어깨, 그리고 허리를 연속으로 걷어찼다.
파팡!
공기 터지는 소리가 나며 아슬아슬하게 문사명이 종유의 발차기를 피해냈다. 종유의 발이 스쳐간 부분의 옷이 순식간에 너덜거렸다. 맞은 것도 아니고 스쳐갔을 뿐인데, 팔이 저릿해져서 마비가 된 듯하다.
검수(劍手)를 상대로 맨몸으로도 상대의 약점을 간파하는 종유의 능력은 가히 일절이다.
종유가 연신 문사명을 몰아쳤다.
“한악격렬(?惡激烈)!”
퇴법요결 중에서도 상승의 연격(連擊)이다.
문사명은 당황한 듯 갈 지(之)자를 그리며 이리저리 보법을 밟았다.
쾅쾅! 쿵쿵쿵!
연속 공격을 하고 있을 때 종유의 진각은 초상비처럼 가벼우나 그의 공격은 소림의 진각처럼 묵직했다.
문사명은 틈을 노리려 했으나 종유는 반격의 여지를 주지 않고 계속해서 발차기를 날렸다. 끊임없는 유(溜)결을 이용하여 호흡조차 멈춘 듯하다.
무려 이십여 초를 계속해서 두들기는 동안 종유의 공세는 한 점 흐트러짐이 없었다. 문사명이 피하는 동작이 조금씩 둔해지고 있었다.
쉼 없는 공격을 피해내다 보니 호흡을 제대로 가다듬을 수가 없어 숨이 가빠졌다.
퍼퍽!
검을 든 오른쪽 어깨와 팔뚝에 몇 번이나 공격이 가해졌다.
문사명의 이마에 식은땀이 흘렀다. 강렬한 충격에 팔이 움직이지 않는 것이다.
종유의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길어야 삼 초를 못 넘기겠군!’
호흡이 달려 크게 헐떡이는 순간 문사명은 치명적인 공격을 받게 될 것이다.
종유의 예상대로 문사명은 더 이상 보법을 밟으며 피하지 못하고 멈춰 섰다. 크게 숨을 몰아쉬며 할 수 없이 손바닥으로 종유의 공격을 막으려 했다.
‘지금이다!’
종유는 공격의 흐름을 잠시 끊었다. 크게 공력을 끌어올리며 공중으로 뛰어 올랐다. 문사명이 계속 비슷한 수준의 공격이 올 거라 예상했다면 이번 공격을 막을 수 없을 것이다.
팽팽히 활시위를 당기는 것처럼 종유의 무릎이 뒤로 굽혀지고 몸이 궁(弓)의 형태가 되더니, 한순간 종유의 발이 싸늘한 도(刀)처럼 반원을 그리며 떨어졌다.
섬뢰절지각(閃雷切肢脚)!
발이 아니라 예리한 도가 그어지는 듯했다. 이미 움직이지 않는 팔로는 섬뢰절지각을 막을 수 없다.
이 일격은 장건과의 비무를 위해 준비했던 비장의 한 수다.
예리한 참격(斬擊)이 공기의 칼날을 만들어 낸다. 마치 검기처럼 실제의 발 길이보다 더 길게 그어지기 때문에 뒤로도 피할 수 없고, 비틀린 사선의 궤적을 가져 옆으로도 피할 수 없다.
평범한 발차기로 생각하고 막으면 칼로 베인 것처럼 몸이 두 동강이 난다.
지금처럼 호흡이 달린 상황에서는 거의 죽음의 선고나 다름없는 최후의 절기다.
핑!
하늘과 땅을 잇는 경계가 둘로 쪼개지는 날카로운 파공음이 울렸다.
‘끝…….’
이라고 생각했던 종유의 눈이 부릅떠졌다.
‘이런!’
공중으로 떠오른 상태에서 보이는 지면의 모습이 어딘가 미묘하다. 그가 문사명을 몰아붙이며 발로 차 깨뜨린 지면과 발자국들이 기이한 도형을 그리고 있다.
‘구궁단보(九宮段步)! 당했다!’
운공은 반드시 앉아서 하는 자세만 있는 것이 아니다. 입식이라던가 움직이며 행하는 동공의 형태도 있다.
화산의 무공 중에는 특정한 형(形)을 그리면서 움직이는 보법이 있다. 그 중에서도 구궁단보는 동공의 일종으로, 급박한 상황에서도 펼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싸우면서도 힘을 오히려 비축한다.
그러나 그 특정한 진형을 그리며 상대를 끌어들이는 것, 그러면서도 수비를 하는 것이 쉬울 리 없다. 문사명의 무공에 대한 깊이가 얕지 않기에 가능한 일이다.
문사명의 힘들었던 표정에 갑자기 생기가 돋고 있었다.
지쳤을 거라 생각했던 문사명은 힘을 비축하고 있는 거나 다름이 없었다. 이를테면 종유는 그물에 스스로 몸을 던진 꼴이 되고 만 것이었다.
딱히 방심한 것도 아닌데 공격을 하다가 오히려 말려버린 느낌이다. 화산의 무공은 공격에서도 수비에서도 모두 균형을 이루고 있다.
‘크윽!’
하지만 이미 돌릴 길이 없었다.
문사명의 손에서 묘기를 부리듯 검이 이동했다. 오른쪽에서 왼손으로 검이 이동함과 동시에 오른손으로는 장력을 뿌렸다.
펑!
종유의 섬뢰절지각과 문사명의 낙영장(落英掌)이 맞부딪쳤다. 미리 힘을 비축하고 있던 문사명은 낙영장을 사용하며 같은 힘으로 매화검법까지 펼쳐냈다.
백여일홍(百如一紅)!
붉은 빛을 뿌리며 공간을 가로지르는 문사명의 검이 종유의 가슴으로 파고들었다.
이미 전력으로 섬뢰절지각을 펼치던 종유는 도저히 피할 여력이 없었다. 그저 급한 대로 몸을 비틀어 겨우 급소만 비껴내는 정도였다. 사실은 그것마저도 대단한 일이었으나, 이미 승부는 난 것이나 다름이 없었다.
쿠당탕!
종유가 뒤로 나뒹굴었다.
“큭!”
벌떡 일어선 종유가 어깨를 붙들고 비틀거렸다. 손가락 사이에서 진득한 피가 배어 흐른다.
이미 매화검의 검기가 파고들어 혈도 일부가 파열되고 망가졌다.
검기에 감싸인 보검으로 어깨를 찍혔으니, 내상을 입는 것도 모자라 보통의 상처보다 더디게 회복될 것이다.
족히 한 달은 치료에 전념해야 할 판이다.
‘끝났군.’
이제 장건과 싸우는 일은 글렀다.
“이럴 수가!”
둘의 비무를 지켜보던 이들은 경악했다.
하북의 강자 철비각 종유가 자신보다 한참이나 어린 문사명에게 패배하였다!
절대적인 승패란 있을 수 없다지만 문사명은 분명 실력으로 종유를 누른 것이다.
누가 뭐라 반론을 제기할 수도 없는 명확한 승부였다.
☆ ☆ ☆
“후.”
종유의 표정이 참담해졌다.
종유는 허탈한 표정으로 백리연을 바라보았다. 백리연은 왠지 모르게 조급한 표정이지만 그것이 결코 자기의 패배 때문은 아니란 걸 종유는 알고 있었다.
문사명이 천천히 걸어가 종유의 앞에 섰다.
“당신이 졌소.”
“그렇군. 내가 졌어.”
종유는 화가 난 표정은 아니었다. 그러나 눈가에서는 안타까움이 잔뜩 묻어나오고 있었다.
“화산의 절초를 견식할 수 있었으니 후회는 없네. 소저를 말릴 수 없게 되는 것이 안타까울 뿐.”
문사명이 왼손으로 옮긴 검을 거두었다. 검을 검집에 넣고 왼손으로 탈골된 오른쪽 어깨를 잡아 흔들었다.
우득.
문사명은 얼굴도 찡그리지 않고 뼈를 맞추었다. 운이 좋아 탈골되면서 힘이 분산된 것이지 아니었으면 어깨뼈가 박살날 수도 있었다.
‘난…… 아직 멀었는가…….’
완벽히 상대를 끌어들였고 확실히 빈틈을 보고 제대로 절기를 시전했는데 큰 부상을 입을 뻔했다.
장건이 이런 종유를 어떻게 그리도 쉽게 쓰러뜨릴 수 있었는지 자꾸만 의아해지는 것이다.
때문에 문사명은 이기긴 했어도 좋은 표정이 아니었다.
종유가 점혈을 해 피를 멈추게 하고는 문사명을 바라보았다.
“자네 실력은 잘 보았네. 과연 큰소리를 칠 만하군.”
문사명은 입을 꾹 다물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종유가 다시 물었다.
“한 가지만 묻지.”
“말하시오.”
“검성을 스승으로 둔 자네가 왜 나 같은 사람을 그렇게 신경 쓰는지 모르겠네.”
문사명이 잠시 머뭇거리다가 대답했다.
“나는 스승이 없으면 아무것도 아니라는 말이 너무 듣기 싫었소.”
“내가 그런 말을 했던가?”
문사명이 고개를 끄덕이자 종유가 그제야 알겠다는 듯 얕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랬군. 대단한 사부를 둔 것도 꽤나 골치 아픈 일이야. 언제까지고 사부의 그림자를 지고 살아야 하니.”
문사명은 언제까지고 검성 윤언강과 비교될 것이다. 그가 우내십존인 사부를 뛰어넘지 못하는 이상은 늘 그렇게 살아야만 한다. 죽는 날까지 검성의 제자 문사명이란 꼬리표를 달고 살아야 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종유는 사부도 없이 스스로 독학하여 이 자리에까지 올랐다. 화산의 누구누구, 검성의 제자 누구누구가 아니라 철비각 종유라는 이름을 강호에 알렸다.
그런 와중에 종유에게 사부가 어쩌고 하는 소리를 들으니 그것이 가슴에 맺혔다. 그래서 그를 자신의 실력으로 쓰러뜨리고 싶었다.
이 같은 사정을 눈치챈 종유가 씁쓸하게 웃었다.
“나는 자네가 부럽네.”
“…….”
“젊은 날, 운 좋게 한 가지 퇴법을 얻어 고수라는 소리를 듣게 되기까지…… 나는 수도 없이 혼자서만 싸워야 했네. 잘못된 길을 가도 바로잡아 줄 사부도…… 문파도 없었지. 주화입마의 고비를 수도 없이 넘기고, 시행착오를 거치며 혼자 모든 걸 해결해야 했었네. 늘 생각했지. 내게 사부가 있었다면…… 그랬다면 지금보다는 좀 더 나아지지 않았을까…… 하고.”
묵묵히 종유의 말을 듣고 있던 문사명이 입을 열었다.
“나도 하나 묻겠소.”
“말해보게.”
“당신이 생각하기에, 당신은 장 소협보다 강하오?”
“모르겠네.”
“그런데 왜 다시 싸우겠다고 한 거요?”
“잃고 싶지 않은 것이 있었으니까. 그리고 그럴만한 자신도 있었고.”
종유가 쓴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내저었다.
“하지만 숨겨 두었던 그 비장의 한 수가 자네에게 통하지 않은 걸 보니 그 애에게도 통하지 않았을 것 같네.”
문사명은 가슴이 답답해졌다.
종유는 자신의 한 수가 문사명에게 통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게 문사명이 장건보다 강하다는 뜻은 아니다.
문사명이 직접 종유를 상대해보니 그는 정말로 강했다. 결코 한 수에 패할 무인이 아니었다.
“한 수 잘 배웠네.”
내상 때문에 얼굴색이 약간 파리해진 종유가 정중히 포권을 했다. 문사명 역시 그에 포권으로 답했다.
종유는 곧 백리연의 앞으로 다가갔다.
“소저. 제가 약속을 못 지키게 되었군요.”
백리연은 복잡한 감정이 담긴 얼굴로 종유를 쳐다보았다.
종유가 애써 웃음을 지어 보였다.
“행복하시길…….”
종유는 힘차게 포권하며 마지막 인사를 하고는 남자답게 바로 몸을 돌려 버렸다.
백리연은 허전한 마음이 들어 그의 뒷모습을 계속해서 보고 있었다. 비록 그에게 큰마음은 없었지만 오랫동안 자신의 곁을 지켜준 사람이었다.
미련 없이 그대로 떠나버리는 그에게 미안하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안쓰럽기도 했다.
그러나 그를 잡을 수는 없었다. 자신의 마음에 충실하기 위해서는 그를 잡아서도 안 되었다.
백리연의 곁에 있던 청년들이 외쳤다.
“종 대협! 정말 떠나시는 겁니까!”
“아, 종 대협이…….”
“소저! 이대로 종 대협을 보내서는 안 됩니다!”
백리연의 귀에는 그런 청년들의 말이 하나도 들어오지 않았다.
왜인지 점점 멀어지는 종유의 뒷모습에 자꾸만 장건이 겹쳐 보일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