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ily Priesthood RAW novel - Chapter 9
제 8 장 소림의 속가제자
장건은 방장실에 들어와 있었다.
그곳에서 방장과 더불어 홍오를 본 것은 그리 놀라운 일이 아니었다.
장건은 아는 체를 하려다가 홍오와 했던 말이 기억나 고개만 꾸벅했다. 홍오도 눈짓으로 장건에게 아는 체를 했다.
그러나 방장실의 분위기는 그리 좋은 편이 아니었다.
무엇보다도 굉목의 인상이 팍팍 구겨져 있었다. 굉목은 무슨 원수라도 대하듯 홍오를 보고, 홍오는 귀를 후비적거리며 굉목을 무시하고 있었다.
‘왜들 그러시지?’
굉목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사부님이셨습니까?”
“뭘 말이냐?”
“건이를 끌어들인 것 말입니다.”
장건은 고개를 갸웃했다.
‘날 끌어들여?’
홍오하고는 그저 얼굴 한 번 본 것뿐인데 끌어들이다니? 그보다 놀라운 건 홍오가 바로 굉목의 사부였다는 점이다.
홍오가 끙 하고 얼굴을 돌린다.
“다 네 업보가 아니냐. 못난 제자 놈이 사고를 쳤으니 스승인 내가 해결할 수밖에.”
“제가 무슨 업보를 지고 있단 말입니까!”
“소림의 무공을 무단으로 전수해 놓고 책임도 못 지겠다, 배 째라 그러니 내가 나설 수밖에.”
홍오가 불쑥 굉목의 앞에 얼굴을 디밀었다.
“나 때문에 제자를 받긴 싫고, 그렇다고 또 안 받을 수도 없는 상황이니 아주 환장하겠지?”
굉목의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해졌다.
“제게 죄가 있다면 죽어가는 아이를 구한 죄밖에 없습니다. 승려가 사람을 구한 것이 그리 큰 죄입니까?”
“아니지. 네 죄는 사람을 구해 놓고 나 몰라라 한 게 죄이니라.”
홍오가 계속해서 말했다.
“네 녀석이 아무리 소림과 멀어지고 싶어도 네놈은 소림의 제자다. 적어도 사적인 감정 때문에 사문에 해는 끼치지 말아야지.”
“제가 언제 해를 끼쳤다는 겁니까?”
굉목이 억울한 듯 항변했다. 그러나 홍오는 콧방귀만 뀌었다.
“검성 놈이 저 아이에게 화산으로 오라고 했댄다. 우리가 거두지 않으면 화산이 데려갈 거야.”
“네?”
굉목은 물론이고 방장인 굉운도 놀랐다. 굉목이 장건을 보고 물었다.
“사부님의 말씀이 사실이냐?”
장건이 윤언강이 했던 말을 떠올리며 대답했다.
“검성인지는 모르겠는데요. 화산으로 오면 윤언강을 찾으라고 하셨어요.”
“검성의 함자가 윤언강이니라.”
“아하. 그랬군요. 전 그냥 놀러오라는 줄 알았는데요.”
장건은 별로 대단할 것 없다는 표정이었다.
홍오가 ‘허허’ 하고 웃었다.
“천하의 검성을 길가의 돌멩이마냥 보는 녀석이 있었구나. 이것 참 검성이 한 방 먹었는걸?”
홍오는 기분이 좋은지 눈웃음을 짓고는 굉목의 앞에 사과를 내밀었다.
“쯧쯧, 미련한 놈. 봐라. 이게 그 검성 놈이 공양간에서 우리 귀여운 장건이를 만나고 깐 사과다. 한 수 보여주고 데려갈 셈이었나본데, 어림도 없다. 내가 두 눈 시퍼렇게 뜨고 있는 한은 절대로 그럴 수 없다.”
“검성이요?”
“그래. 그러니까 이 녀석은 소림을 빛내줄 보석이란 말이다.”
굉목이 눈을 가늘게 뜨고 홍오를 째려보았다.
“하지만 그건 사심이 아닙니까? 승려가 어찌 세속의 공명에 욕심을 부린단 말입니까.”
“소림사는 무림문파가 아니냐? 사람 사는 세상에 어찌 사심이 없을 수 있겠는고.”
아삭.
홍오는 사과를 한 입 크게 깨물며 말했다.
“에잉, 맛있긴 맛있구나. 그놈 실력이 더 늘었어. 그놈은 30년 동안 사과만 깎았나. 하여튼 굴러들어온 복덩어리를 내차서 검성 놈을 웃게 만들 수는 없다. 게다가 소림의 제자가 아니라 하더라도 멀쩡한 아이가 잘못되는 꼴을 두고 볼 수도 없고. 내가 네놈처럼 인정머리도 없는 줄 아냐?”
굉목이 마지막 발악처럼 말을 내뱉었다.
“오욕칠정을 끊고 번뇌에서 벗어나는 것이 중의 도(道)이거늘 어찌 정을 쌓으라 제자를 핍박하십니까?”
“부처께서도 성내고, 탐내고, 어리석은 삼독(三毒)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중생을 연민하여 구제에 나서셨느니. 칠정(七情)은 버려야 할 해악이나 인정(人情)은 사람의 본성이니라.”
굉목은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 홍오는 그런 굉목을 가만히 내버려두지 않았다.
“갈 날도 머지않았는데 덕이라도 쌓아야지. 네놈도 괴악하게 굴지 말고 받아들이거라.”
참다못한 굉목은 가사를 팩 떨치며 싸늘하게 말했다.
“그렇게는 못하겠습니다.”
“이놈이? 이것도 싫다. 저것도 싫다. 그럼 네놈이 방장을 하던가!”
방장 굉운이 머쓱하게 웃었다.
“허허.”
“내가 전생에 무슨 업을 쌓았길래 제자에게 이딴 소리나 듣고 있어야 하누.”
홍오의 질책어린 한탄에 굉목도 지지 않았다.
“전생이 아니라 사부님께서 현세에 쌓은 업만 해도 그 정도는 될 겝니다.”
“이놈, 아주 악담을 해라. 악담을. 네가 그러고도 불가의 제자냐?”
“그러게 왜 남의 말을 듣지 않으십니까. 사부님께서는 여전히 변한 게 없으십니다?”
“나야 부동심을 가지고 있으니 늘 여전하지. 안 그런 놈이 이상한 것이다.”
장건이 가만히 듣고 있으니 홍오의 말도 틀린 점이 없다. 그런데도 묘하게 억지 같은 느낌이 드는 것은 착각이었을까?
어쨌든 무림의 일을 잘 모르는 장건이었지만 사부와 제자 사이가 이처럼 좋지 않다는 건 분명 이상한 일이었다. 게다가 굉목이 오늘같이 말을 많이 하는 것은 처음 본다. 거의 1년치 할 말을 다하는 것 같았다.
보다 못한 굉운이 나서서 말렸다.
“사제지간에 이게 무슨 일이랍니까. 남들이 볼까 두렵습니다. 이제 그만들 하시지요.”
“끙!”
“흠!”
굉목과 홍오는 서로 고개를 돌려 버렸다.
굉운이 아이처럼 토라진 홍오를 물끄러미 바라보자 홍오가 벌컥 역정을 낸다.
“내가 뭘!”
굉운이 다소 부끄러운 표정으로 장건에게 말했다.
“너를 속가제자로 받아들여 무공을 가르치기로 했다. 삭발하여 중이 될 필요도 없단다. 여기 홍오 사숙께서 당분간 네 사부가 되어 주실 거다.”
굉목이 또 끼어들었다.
“사부님께서는 제자를 들일 수 있는 상황도 아니잖습니까. 사조님의 유명(遺命)을 어기실 작정입니까?”
홍오가 욱했다.
“그거야 제자를 받을 수 없단 말이지, 가르치는 것까지 하지 말란 소리는 아니었다!”
“가르치면 제자지, 제자 스승이 따로 있답니까?”
“이런 무식한 놈. 가르친다고 다 제자면, 남의 산 돌멩이는 다 스승이라고 불러야겠구나?”
타산지석이라, 홍오는 그 말을 빗댄 것이다. 그러나 다소 어거지였다.
“그게 무슨 억지입니까!”
굉운이 한숨을 쉬며 다시 둘을 말렸다.
“그만하십시오. 방장으로서의 명입니다.”
홍오와 굉목은 견원지간처럼 노려보다가 고개를 팩 돌렸다.
그런 광경들을 바로 눈앞에서 접하고 있던 장건은 마음이 편치 않았다.
‘조용히 3년만 버티면 집으로 돌아갈 수 있는데…….’
굉목과 홍오가 불구지천의 대적을 앞둔 것처럼 흉흉하다보니 장건이 싫다고 말을 할 수가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그러나 말을 해야 했다. 7년이나 배를 곯으며 참아온 건 소림의 제자가 되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장건은 눈치를 보다가 겨우 입을 열었다.
“전 무공을 배우고 싶지 않은데요.”
굉운과 굉목, 홍오가 동시에 장건을 보았다.
장건이 당황스러워하며 변명을 했다.
“저는 3년 있다가 집에 갈 거예요. 무공 같은 거 가르쳐 주시지 않아도 돼요.”
순식간에 분위기가 가라앉았다. 대부분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이다.
“허허허!”
홍오가 허탈하게 웃었다.
“검성 놈만 한 방 먹은 줄 알았더니 나도 한 방 먹었네 그려. 이놈아, 무공 같은 거라니. 소림의 속가제자는 아무나 되는 줄 아느냐?”
“전 가업을 이어 받아서 상인이 될 거거든요.”
“헐.”
굉운이 난처한 얼굴을 했다. 장건을 속가로 받아들이기로 한 건 장건이 소림의 무공을 배우고 있기 때문이다.
정확히 말하자면 소림의 무공이라고는 할 수 없으나, 소림에서 나간 것이니 아니라고 할 수도 없는 미묘한 상황이었다.
그런 말을 검성조차 대단하지 않게 생각하는, 무림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아이에게 설명을 한다는 것도 어려운 일이다.
굉운이 말했다.
“이미 네 부모님께서도 허락한 일이다.”
“예?”
홍오가 하도 다그쳐서 그 비싼 전서구(傳書鳩)까지 날렸다.
‘이러니 굉정 사제가 재정 걱정을 하느라 주름살이 느는게지.’
나지막이 한숨을 쉰 굉운이 장건에게 말했다.
“속가제자가 된다고 해서 상인을 못한다거나, 집에 못 간다거나 하진 않는단다. 다만 소림의 제자로서 기본적인 소양을 갖추는 시간이 필요할 뿐이지.”
장건은 다소 불만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장건의 표정을 본 굉운이 쩝 하고 입맛을 다셨다. 소림의 무공을 한 자락이라도 얻어 보려고, 소림의 이름을 걸어보려고 전 재산을 다 쏟아 붓는 사람도 부지기수였다.
‘이 아이에게는 그런 모든 것들이 다 부질없다는 뜻인가.’
무인이 아닌 보통 사람들에게는 그게 당연한 일인지도 몰랐다.
“3년이라. 그래. 그럼 3년 뒤에는 집에 보내주기로 약조하마. 그러면 되겠느냐?”
굉운의 말에 장건의 귀가 솔깃해졌다.
무공이라는 게 뭔지 잘 모르지만, 그게 일종의 ‘간소한 움직임’이라는 거라고 어렴풋이 생각하고 있는 장건이다.
‘지난번 홍오 대사님이 보여주신 것처럼 그런 걸음을 걷는 걸 배우는 거겠지?’
홍오가 보여준 움직임은 아직도 기억에 새록새록하다. 얼마나 빠르게 힘들이지 않고 움직이는지 경탄이 절로 나온다. 연습을 하긴 했지만 홍오처럼 걸을 수는 없었다.
그렇게 걸을 수 있다면 먼 거리를 가도 전혀 지치지 않을 것 같다.
‘대사님의 걸음을 배우면 집에 갈 때 마차를 안 타고 그렇게 가도 되겠다.’
몸을 쓰는 일이니 당분간은 힘도 들겠지만 다 배우고 나면 훨씬 편해질 수 있다.
‘3년 고생해서 30년 편하면 수지맞는 장사잖아. 집에 가면 아빠도 잘했다고 칭찬하실 거야. 그래서 내가 소림사의 제자가 되길 바라신 거겠지.’
장건은 마음을 정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할게요.”
그리고 한 마디를 더 붙였다.
“무공 배우는 거, 배 많이 고픈 건 아니죠?”
“허!”
홍오가 굉목을 째려보았다. 약점 하나 잡았다는 듯 마구 쏘아붙인다.
“얼마나 애를 굶겼으면 이런 말을 하냐? 그간 소림이 빈곤에 허덕댔다지만 애를 굶길 만큼은 아니었다.”
홍오는 장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얼굴에는 가련하다는 표정이 한껏 드러났다.
“걱정 마라. 내가 가르치는 동안에는 마음껏 먹여줄 테니. 에잉, 괴악한 놈.”
뒷말이 굉목을 향한 것임은 말할 필요도 없었다.
굉운도 반대하지 않았다.
“소림사가 절간이라 하나 아이를 굶길 만큼 야박하진 않으니 앞으로는 홍오 사숙님의 말씀대로 굶지 않게 해주마.”
아이 하나 배불리 먹인다고 굉정이 울상을 짓진 않을 것이다.
그러나 굉목은 발끈했다.
“지금 무슨 말들을 하는 겝니까! 설마하니 내가 건이를 굶겼다고 생각하시는 겁니까?”
장건은 굉목이 쩔쩔매는 걸 보면서 속으로 킥 하고 웃었다. 굉목이 어쩔 줄 몰라 하는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소림의 제자가 되는 게 나쁘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차피 배고프면 기 먹으면 되는데.’
장건은 그렇게 단순히 생각하고 있을 따름이다.
☆ ☆ ☆
굉목은 방장 굉운과 독대했다.
굉목은 불만어린 표정이 가득하고 굉운은 담담히 미소를 짓고 있었다.
“사제.”
“말씀하십시오.”
대꾸가 퉁명스럽다. 그래도 굉운은 웃을 뿐이다.
“오늘 일, 이해하기 힘들겠지만, 받아들이도록 권하고 싶네. 이것은 사형이 아니라 방장으로서의 권유일세.”
굉목이 특유의 꼬장꼬장한 목소리로 역정을 냈다.
“솔직히 이게 말이나 되는 얘깁니까? 사조의 유명을 거스르면서까지 사부님이 건이를 가르쳐야 할 이유가 무엇입니까.”
굉운은 곧바로 대답하지 않고 굉목의 기분이 가라앉을 때까지 잠시 기다렸다.
“근래에 홍오 사숙께서 심득(心得)을 얻으셨다 하네.”
굉목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그게 건이와 무슨 상관입니까?”
“홍오 사숙은 소림에 다시없을 기재셨지. 한 번 본 무공을 모두 자신의 것으로 만드실 수 있을 만큼.”
“알지요. 동시에 엄청난 무공광이기도 하셨구요. 그래서 강호행을 하는 동안 온갖 잡다한 무공을 다 익히지 않으셨습니까. 심지어 구파일방의 무공을 죄다 익혀서 무림공적으로 몰릴 뻔도 했지요.”
굉목이 얼굴을 더 딱딱하게 굳혔다.
“소림의 제자라는 이유만으로 다들 아무 말도 못한 겝니다. 타 문파의 제자였다면 용서가 되는 일이었겠습니까? 그런데도 정작 건이는 소림의 무공을 몇 수 익혔다고 해서 이 난리를 치고 있다니, 이게 무슨…….”
“나는 그 구파일방의 대다수 무공을 섭렵하신 사숙께서 심득을 얻으셨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네.”
굉목은 순간 온몸에 전율이 왔다. 두 눈을 부릅뜨고 굉운을 쏘아 보았다.
“사형……, 설마, 사형께서도……?”
“나는 무인이기 이전에 승려이네만, 동시에 소림을 지켜야 할 책무를 지고 있는 한 문파의 장문일세. 어느 것이 먼저냐고 묻는다면…….”
“그만하십시오!”
굉목은 ‘아미타불’ 하고 불호를 몇 번이나 외며 마음을 다스렸다.
방장으로서는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소림 방장이란, 소림뿐 아니라 강호 전체의 판도까지 염두에 두어야 하는 막중한 직무다.
실망스럽지만 이해 못하는 바는 아니었다.
조금은 힘이 없어진 목소리로 굉목이 물었다.
“다른 아이를…… 찾으면 안 되겠습니까? 하다못해 구결로라도 전수할 수 있지 않습니까.”
굉운이 천천히 대답했다.
“그 심득을 소림에 남기는 조건으로 장건이란 아이를 원하고 계시는 걸세. 얼마 전까지는 확신하지 못하셨는데, 검성께서 탐내시는 걸 보고 완전히 마음을 굳히신 것 같네.”
“…….”
한참이나 말이 없던 굉목이 초점 흐려진 눈으로 굉운을 보며 다시 물었다.
“그래……, 도대체 그 잘난 심득이 뭐길래 그러신답니까?”
“당신께서 스스로 명명하시기를 무량무해(無量武海)라고 하셨네.”
“무량무해…….”
굉목은 같은 말을 몇 번이나 읊조리며 눈을 감았다.
‘이렇게 다시 사부님과 관계를 맺게 되는 건가.’
괴짜인 홍오가 장건에게 무슨 짓을 할지 예상도 할 수 없지만, 만약 자신처럼 건이가 잘못된다면 어쩔 셈인지.
굉목은 자신이 홍오에게 당했던 아주 예전의 기억을 회상하며 불안함을 감추지 못했다.
☆ ☆ ☆
장도윤과 손 씨 부인은 마음이 들떠 탁자 위에 올린 보이차가 다 식을 때까지 마실 생각도 않았다. 유명한 차산지로 알려진 운남 난창에서 가져온 고가의 보이차(普햔茶)였지만, 지금 장도윤과 손 씨 부인에게는 그런 귀한 보이차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여보. 우리 건이가 정말 그 천하제일 소림사의 제자가 되는 건가요?”
손 씨 부인의 붕 떠 있는 말투에 장도윤 역시 한껏 상기된 얼굴로 말했다.
“그럼! 이제 우리 건이가 소림의 제자가 된다고! 소림의 천하제일 무술을 배운단 말이오.”
손 씨 부인은 기쁜 와중에도 염려스런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소첩이 들어보니 무술을 배우는 게 굉장히 힘들다던데……. 혹시 다치거나 하진 않을까요?”
“소림사의 무술을 배우는 데 조금 힘든 게 대수요? 건이가 잘 참고 견뎌내서 돌아오기만 한다면 우리 운성방도 이제 소림사의 비호를 받는 상단이 되는 거요. 진상 내에서의 입지도 크게 높아질 테고.”
운성방의 방주인 장도윤은 앞으로 쭉쭉 뻗어나갈 상단을 생각하며 몽롱한 눈을 했다.
“휴우. 저는 그저 하루라도 빨리 우리 건이의 건강한 모습을 보고 싶을 따름입니다.”
“무술을 배우니 건강할 것이고, 속가제자가 되면 언제든지 집으로 돌아올 수 있으니 그 무슨 걱정이란 말이오.”
“요즈음 소림사의 형편이 많이 어렵다고 다들 수군거립니다. 어떻게 어미 된 자가 그런 곳에 있는 자식 걱정을 않을 수 있단 말입니까.”
장도윤은 온갖 휘황찬란한 금실로 십장생(十長生)을 수놓은 비단 소매를 들어 가슴을 탕 하고 쳤다.
“그럴 줄 알고 내가 이번에 기별을 받으면서 소림사에 크게 시주를 했소. 소림사의 다른 대단한 속가제자들에게 견줄 바는 아니겠지만 소림사에서도 우리 건이를 무시하지는 못할 것이오.”
그제야 손 씨 부인의 얼굴이 펴졌다.
“잘하셨습니다. 소첩의 마음이 좀 놓이는 듯하군요. 이 모든 게 혜원사의 금오 대사님 덕분이니, 혜원사에도 시주를 아끼시면 아니 됩니다.”
“당연하지. 다른 사람도 아니고 하나뿐인 내 아들 건이를 위한 일인데 그깟 돈 몇 푼을 아낄 수 있나!”
장도윤은 가슴을 펴고 호방하게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손 씨 부인도 눈물까지 글썽거리면서 좋아했다.
그러다가 문득 손 씨 부인이 물었다.
“한데 우리 건이 팔자는 어찌되는 걸까요?”
“소림사의 덕이 높은 고승께서 이제 문제가 없다 판단하셨으니 제자로 들이는 게 아니겠소? 갑자기 왜 그런 말을 하시는 게요?”
“소첩의 짧은 소견으로는……, 최근 소림사의 형편이 어렵다 하던 것이 우리 건이 때문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 건이 팔자가 그렇다질 않습니까.”
장도윤은 손을 내저었다.
“에이, 말도 안 되는 소리요. 더구나 부인의 말이 맞다 해도 소림사의 형편은 벌써 좋아지는 중이니, 외려 잘된 것이 아니겠소?”
“그렇군요. 아아, 정말로 소첩은 한시름 덜었습니다.”
“껄껄.”
한참 웃던 장도윤이 갑자기 은근한 눈빛으로 손 씨 부인을 쳐다보았다.
“부인.”
“왜 그러십니까?”
“오늘따라 부인이 더욱 아름답구려. 어째 부인은 나이를 먹지도 않는 것 같소.”
장도윤이 슬며시 손을 뻗어 손 씨 부인의 손등을 덮자 손 씨 부인이 부끄러워하며 고개를 돌렸다.
마흔이 넘었는데도 손 씨 부인은 아직 한창 때의 처녀 같았다. 그 수줍은 얼굴이 장도윤을 타오르게 했다. 다른 건 몰라도 첩 한 명 들이지 않을 정도로 손 씨 부인을 아끼는 장도윤이다.
“아직, 낮이라 민망합니다.”
“허어, 우리는 부부이고, 우리 부부의 금실은 모르는 사람이 없는데 뭐 어떻소.”
“아이, 당신도 참.”
“이 참에 우리 둘째도 하나 낳아 봅시다.”
장도윤은 부끄러워하는 손 씨 부인의 손을 끌고 침상으로 갔다.
반짝이는 화려한 휘장이 스르륵 침상을 덮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