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mn idol RAW novel - Chapter (200)
빌어먹을 아이돌 200화
* * *
한국 사회는 유행에 민감하다.
이건 미국에서 백 년 넘게 활동해 온 내 느낌이니, 아마 맞을 거다.
왜 그런지 생각을 해 봤는데, 인구는 적고 소셜 네트워크는 잘 되어 있어서인 것 같다.
사람은 어느 정도 규모가 되는 집단에 소속되어야지 심리적 안정감을 느낀다.
한데, 인구가 많으면 마이너 컬처의 규모도 커진다.
일례로 미국에서 가스펠을 공부할 때, 생각보다 가스펠 시장이 크다는 것에 놀랐었다.
가스펠 앨범도 잘만 만들면 플래티넘(100만 장)을 달성하는 게 어렵지 않았으니까.
하지만 케이팝 시장에서는 백만 장을 돌파한 앨범은 별로 없다.
나중에는 해외 팬들이 어마어마하게 달라붙어서 백만 장을 손쉽게 돌파하는 걸로 알지만, 일단 지금은 그렇다.
그게 다 인구 때문이다.
이런 상황이다 보니 한국은 주류의 의견을 마치 정답처럼 강요하는 문화가 있다.
메인스트림에 탑승하지 못하면 낙오자 취급을 받는 경향도 있고.
난 이런 현상이 좋고 나쁘고를 논할 자격이 없다.
하나의 세계에 제대로 붙어 있지도 못하는 부평초 같은 존재가 뭘 논하겠는가?
그러니 지금 중요한 건, 한국의 주류에 무엇이 배치되었냐는 것이다.
바로…….
우리다.
“이, 이게 말이 되나?”
이이온의 말에 어깨를 으쓱했다.
“유행이 됐으니까요.”
“넌 이걸 예상했어?”
가끔 보면 세달백일 멤버들은 날 과대평가하는 경향이 있다.
이런 걸 어떻게 예상하겠는가?
이런 건 노력한 예술가에게 드물게 찾아오는 지극히 즐거운 순간이다.
내가 창작한 콘텐츠가 내 예상보다 더욱 빛나서 세상에 수놓아지는 순간.
물론 2집 앨범의 음원을 유통하면서 평소보다 훨씬 잘될 거라는 믿음은 있었다.
우리의 앨범을 주제로 떠드는 사람들이 많지만, 실제 앨범 판매량은 이제 막 백만 장(유닛 앨범을 제외하고)을 돌파했으니까.
그러니 음원이 공개되면, 앨범을 사지 않은 이들도 클릭해 볼 걸 알았다.
앨범을 산 이들도 편안하게 스마트폰으로 듣고 싶을 거고.
그러나 이 정도인 줄은 몰랐다.
음원 사이트의 최상단부터 앨범 트랙 숫자만큼 우리의 이름이 새겨질 줄이야.
“이런 건 처음 봤어요…….”
최재성이 몽롱한 눈으로 음원 사이트를 쉬지 않고 캡처하는 걸 보고는 생각을 정리했다.
이건 일시적인 현상이다.
주간 차트로 이어지지 못할 거고, 당장 내일만 되면 몇몇 곡들이 낙오될 거다.
시간이 지날수록 실시간 차트에서 힘을 잃어 가는 곡들이 보이기도 하고.
이건 어쩔 수 없는 거다.
세달백일에서 최재성이 밸런스를 담당하는 것처럼, 앨범에서도 밸런스를 담당하는 트랙들이 필요하다.
모든 트랙을 베스트 셀링 트랙으로 만들겠다는 욕심은 앨범을 피로하게 만드는 주범이다.
곡은 좋지만, 통째로 돌리기 힘든 음반이 된다.
그런 음반들은 히트 곡은 남기지만, 앨범 단위로 긍정적인 평가를 받지 못하게 된다.
생각보다 이런 가수들이 세상에 굉장히 많다.
타고난 감각과 본능으로 곡을 쓰는 건 어렵지 않지만, 앨범 단위의 작업물은 본능으로 되는 게 아니니까.
하지만 이건 내가 가장 지양해야 하는 일이다.
나는 앨범의 모든 트랙이 심심하다는 평가를 받아도 상관없다.
많이 팔리기만 하면 된다.
그러니 곡 단위로 들으면 약간의 아쉬움이 남는 트랙들이 있고, 그것들은 순위에서 밀려날 것이다.
하지만 상관없다.
내가 최대호는 아니지만, 지금 라이언 엔터의 분위기가 어떨 지는 느낌이 온다.
아마 기가 죽었겠지.
하지만 우리의 푸시는 여기서 끝이 아니다.
오늘 자정에는 뮤직 비디오가 공개될 것이니까.
이번 뮤직 비디오는 지금까지 찍은 것들 중에 가장 마음에 든다.
그러니 세달백일의 음악 작업과 활동 방식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
그러나 내가 조금 걱정하는 건.
“……와우.”
“SNS에 캡처해서 올리면 좀 그럴까요?”
“그러지 않을까? 지금 믹스 웨이 팬들도 많이 노려보고 있을 텐데.”
“으음……. 그럼 공홈 메시지에만 올려야지.”
세달백일 멤버들의 반응이다.
그동안 세달백일 멤버들은 성공을 거둘 때마다 얼떨떨해했다.
컬러 쇼에 출연할 때도 컬러 쇼에 출연한다는 것의 의미에 대해서 잘 몰랐다.
1집 앨범인 TFD가 성공했을 때도, 그게 거장들과 공동 작곡을 했다는 게 밝혀졌을 때도, 미국에서도 팔리기 시작했을 때도.
정확히 우리가 어떤 성공을 거두고 있는 것인지를 실감하지 못했다.
당연하다면 당연한 일이었다.
세달백일은 익숙한 걸음을 내딛은 적이 없으니까.
그들이 알고 있고, 공부해 온 케이팝 아이돌 그룹과는 사뭇 다른 길로 걸어가고 있었으니까.
그래서 멤버들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게, 팬클럽 숫자와 뮤직비디오 조회수였다.
내 입장에서는 그게 그리 중요한 가 싶긴 하다.
난 팬클럽의 총 숫자보다는 내가 평생토록 발매할 음악을 사랑해줄 이들이 중요하다.
뮤직비디오 조회 수보다는 뮤직비디오를 보고 앨범을 사 줄 연관성이 중요하다.
하지만 멤버들은 그렇지 않았다.
그들이 팬클럽 숫자와 뮤직비디오의 조회 수에 집중하는 건, 이것만큼은 다른 아이돌과 직접적인 비교가 가능하기 때문이었다.
앨범 판매 수치야 팬 사인회나 해외 팬, 유통사의 집계에 따라서 많이 달라진다.
솔직히 말하자면 적절한 방식으로 사재기를 하는 곳들도 있고.
하지만 팬클럽 숫자를 돈 주고 사는 회사는 없고, 뮤직비디오 조회 수를 돈 주고 사지도 않는다.
즉, 이 두 가지 지표는 공정한 링에서 경쟁하는 결과이다.
그래서 멤버들이 세달백일의 성공을 볼 때 유독 이 두 가지에 집중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묘하게 이번엔 느낌이 다르다.
세달백일 멤버들이 ‘우리 성공을 했어’라는 확신을 가지고 있는 게 보인다.
대충 셀프 메이드 촬영이 중반쯤에 접어들서면서였던 것 같다.
내가 애플의 광고를 따 오고, HR 코퍼레이션이 영문 버전의 앨범 발매 계약서를 내밀 때쯤.
그때부터 그들의 마음에 약간의 변화가 있었다.
‘우리가 진짜로 성공했나?’에서 ‘우리는 진짜로 성공했다’로.
난 그게 싫지 않다.
구태환을 제외하면 세달백일 멤버들은 다들 애정에 대한 결핍이 있고, 성공에 대한 갈망이 있다.
친구들이 간절히 원하는 부분이 충족되는 건 항상 즐거운 일이다.
하지만 결핍이 충족되는 순간 동기를 잃어버리는 예술가들을 나는 너무나 오랫동안 목격해 왔다.
세달백일의 향상심은 나에게도 믿기지 않는 것이었다.
특히 내가 직접 고른 것도 아닌, 우연히 조우한 이들이니 더더욱.
한데 2집 앨범의 성공으로 그들의 마음이 변하면 어쩔지 걱정된다.
물론 난 다짐을 했었다.
세달백일이 나에게 실망을 주기 전까지는 지레짐작해서 실망하지 말자고.
지금까지 팀 활동을 하다 보면 나도 모르게 회귀를 하는 경우들이 있었다.
몇 가지 단서들이 쌓여서, ‘이들이 열망을 잃었다’라는 판단이 될 때.
연습 중에 물을 마시러 갔다가 회귀를 해 버린 적도 있었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면 그건 내 추측에 불과했다.
어쩌면 잠깐 그랬을 수도 있다.
잠깐을 열망을 잃어버렸지만, 곧 되찾아서 함께 달려 나갔을 수도 있다.
하지만 회귀가 거듭될수록 마모되는 회귀자의 인내심은 작은 것에도 손쉽게 끊어진다.
이번에는 그러지 않고 싶다.
않았으면 좋겠다.
이성적으로 생각하면, 세달백일과 함께하는 이번 생이 내 마지막 생이 아닐 확률이 더 높다.
지금까지 우리가 팔아치운 앨범이라고 해 봐야 300만장을 조금 넘는다.
2억 장이란 목표치의 1.5%밖에 안 되는 것이다.
그걸 불과 1년 만에 해낸 건 기쁘지만, 똑같은 행위를 20년을 더 해야지 목표에 도달할 수 있다.
그러나 시사이드 하이츠에서 각오했던 것처럼 난 이번 생의 끝까지 가고 싶다.
설령 40대가 되어서 결국 안 되는 거라는 걸 깨닫고 회귀하더라도 말이다.
그러니…….
이런 말은 꺼내면 안 된다.
“우리 내일 모레 믹스다운 음방인 거 알죠?”
“알지.”
“이제 엠쇼는 좀 편안하지 않아? 약간 고향 같은 느낌도 있고.”
“고향 맞죠. 커밍업 넥스트도 엠쇼 작품인데.”
“아, 맞다. 그렇지. 커밍업 넥스트하면 왠지 라이언 엔터 작품 같아.”
내가 꺼낸 서두에 멤버들의 신이 나서 이런저런 말들을 보태는 걸 듣다가 툭 입을 열었다.
“무대 구성을 좀 추가해 보면 어때요?”
“응?”
“본방에서 부를 곡은 이제 와서 바꾸기 좀 그렇지만, 사녹에서 부를 곡은 리테이크가 가능하니까.”
“어……. 사녹으로 찍을 곡의 퍼포먼스를 바꾸자는 거야?”
“네.”
내 말에 이이온의 눈빛이 살짝 흔들린다.
젠장.
그래, 나도 안다.
멤버들을 이런 시험에 들게 할 필요가 없다는 걸.
설령 여기서 멤버들이 내 제안을 거절하더라도, 그들의 열정이 사라졌다는 증거는 아니라는 걸.
하지만 회귀자의 감정 기복은 꼭 해서는 안 될 말들을 입에 담게 만든다.
빌어먹게도 말이다.
그리고 내 질문에 대한 멤버들의 대답은…….
“그건 좀 그렇지 않을까? 이틀밖에 안 남았는데.”
“맞아. 그러다가 실수하면 어떡해.”
“이번에 우리가 음방 보고 있는 사람이 엄청 많잖아. 안정적으로 잘해야지.”
‘NO’였다.
하지만 좀 이상한 건, 멤버들이 뭔가에 대한 감정을 숨기고 있다는 것 같았다.
난 눈치가 굉장히 빠르고 오랜 시간을 살아오며 쌓게된 경험이 있다.
하지만 상대가 뭘 숨기고 있는지 그 내용까지 알아내는 재주는 없다.
뭘 숨기고 있는 거지?
저들의 대답 뒤에는 어떤 감정선이 있는데?
그러다가 깨달았다.
그런 건 중요하지 않다는 걸.
평소의 세달백일이었다면 설령 거부를 하더라도 ‘왜 바꾸려고 하는지’를 물어봤을 건데…….
이번에는 없었다.
어쩌면 내가 없는 자리에서 멤버들끼리 이야기를 맞췄을 수도 있을 것 같다.
2집 활동이 끝나면 휴식을 취하거나, 비활동기를 길게 갖자는 식으로.
익숙한 일이다.
“그럼 뭐, 평소처럼 가죠.”
“평소처럼?”
“아니, 원래대로 가자고요.”
난 그렇게 말하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디 가?”
“현수 삼촌에게 전화 좀 하려고. 콜백 해 달라고 문자 와 있더라.”
“아아. 다녀와. 안부 전해 드리고.”
구태환에게 대충 고개를 끄덕여 주고는 연습실을 빠져나왔다.
* * *
한시온이 빠져나간 세달백일 연습실에서 멤버들이 눈을 깜빡였다.
“시온 형이 어딘지 평소랑 다르지 않았어요?”
“음. 그랬던 것 같네.”
“뭔가 우리한테 실망한 것 같기도 한데…….”
“기가 막힌 무대 아이디어가 있었는데 우리가 거절해서 그런가?”
“그럴 수 있지. 시온이가 퀄리티 욕심이 심한 편이니까.”
하지만 멤버들은 어쩔 수 없다는 듯이 어깨를 으쓱했다.
그들이 엠쇼 음악 방송에 출연하는 건 3월 3일까지, 이틀밖에 남지 않았다.
여기서 뭘 바꾸고 할 시간이 없다.
“그럼 연습을 해 볼까요?”
“비트 없이 해 보자.”
그렇게 세달백일 멤버들이 분주히 일어나서 안무를 연습하기 시작했다.
한시온은 없었지만, 대형상 한시온의 자리는 비워져 있는 것처럼.
* * *
최세희는 날카로운 눈으로 유투브를 훑어봤다.
어느덧 세달백일에 입덕한 지도 아주 오랜 시간이(1년도 안 됐다) 지났고, 이 팀의 패턴에 대해 파악했다.
음원을 발매하지 않고 2주 동안 앨범을 파는 것에는 좀 당황했지만, 한시온이 앨범 판매에 진심이니 그럴 수도 있다.
그리고 음원이 공개되는 순간, 느낌이 왔다.
음원 순위를 최대한 뻥튀기하기 위해서 지금 타이밍에 발매했구나, 라는 느낌이(아니다).
그렇다면…….
“자정에 기습 뮤비 공개 각이라는 거지.”
여타 아이돌과 상리를 달리하는 방식이지만, 세달백일이라면 분명 그럴 것이다.
최세희는 그런 생각을 하며 새로고침을 갈기다가 덜컥 멈춰 섰다.
“말도 안 돼…….”
새하얀 눈을 배경으로 꽃처럼 웃고 있는 한시온의 얼굴이 박힌 섬네일 때문이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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