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mn Necromancer RAW novel - Chapter (152)
돈지랄 네크로맨서 (152)
여파
죽음의 땅을 취소시키자 되살아났던 새끼용들이 힘없이 무너졌다.
그건 빙룡 또한 마찬가지였다.
‘이게 다 시체지.’
죽으면서 나오는 아이템.
그것 말고 시체 그 자체만으로도 용족은 값어치가 있었다. 언데드로 써먹은 지 얼마 되지 않은 만큼, 아직 재활용은 충분히 가능했다.
‘일단, 피부터.’
혈수옥을 꺼냈다.
지금 잡은 몬스터 중 가장 귀한 시체는 바로 성룡이었다.
물론 정식 마녀도 귀한데.
‘시체가 없으니까.’
메르헨의 말에 따르면 아이템만 덩그러니 남긴 채 시신이 증발해 버렸단다. 그러니 성룡이라도 알뜰하게 써먹는 수밖에.
용족들 시체 앞에 서자 구슬이 웅웅 울렸다.
이전에 봤던 것처럼 시체들의 몸 위로 붉은 기운이 떠올랐다.
근데, 특이하게도 성룡만큼은 달랐다.
‘얜 푸른 기운이네?’
[처음으로 2단계 혈액을 발견하였습니다!] [선택지가 주어집니다.] [1. 1단계 혈액과 섞어 흡수한다.] [2. 2단계 혈액은 따로 구분하여 흡수한다.]2단계?
곧이어 김민우가 감을 잡은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 보니.
‘메르헨과 세드릭은 용의 권능이 1단계였었지.’
아이템의 등급이 나뉘는 것처럼.
혈액도 1단계와 2단계 등 그 급이 나뉘는 모양이었다.
‘그럼, 섞어서 흡수하면 1.5단계가 되는 건가?’
섞어 흡수하는 것과 구분하여 흡수하는 게 의미가 없다면, 굳이 이런 선택지가 나올 리 없었다.
그럼 당연히.
‘구분해서 흡수해야지.’
질 좋은 건 따로 구별해서 모으는 게 최고다. 혈수옥이 피를 빨아들이기 시작했다.
둥그런 구체 사이로 아래의 절반은 붉은 혈액이, 위 절반은 푸른 혈액이 흡수되기 시작했다.
‘2단계는 양이 좀 적네.’
성룡의 덩치가 크다지만 결국 개체 수로 보면 단 하나뿐이었다.
반면 1단계 용들은 그 숫자가 많았다.
수십 마리가 넘는 새끼용부터 시작해서 나름 덩치가 큰 빙룡까지.
물량에서 크게 차이가 나다 보니 모이는 피의 양도 차이가 날 수밖에 없었다.
바싹 말라비틀어지는 시체들.
“해체해.”
딸그락!
경례를 날린 해일이가 듀라한들과 함께 시체를 향해 다가갔다.
마치 개미들이 사체를 분해하는 것처럼.
소환수들 또한 착실하게 용의 가죽과 뼈를 분리하고 있었다.
“세드릭. 일로 와 봐.”
―불렀나.
“잠깐만.”
녀석에게 혈수옥을 가져다 댔다.
[1단계 혈액을 전부 받아들인 상태입니다!] [2단계 혈액을 받아들일 정도로 강력한 잠재력을 지닌 언데드입니다!] [2단계 용혈 예상 소비량: 25%] [현재 보유량: 10%] [강화할 혈액의 양이 부족합니다!]“아, 이런 구조네.”
―구조?
“성룡 잡고 피 얻었잖아. 이걸로 2단계 강화도 되는 것 같아. 물론 당장은 안 되고, 피를 좀 더 모아야 할 것 같긴 한데.”
―그걸 감안해도 혈수옥 그거, 정말 괜찮은 아이템인 것 같다. 이런 식으로 강화가 될 줄은 몰랐는데.
“피로는 강화 안 해 봤어?”
―해 보긴 했다. 로드가 내 육체를 구성할 때, 핏물에 뼈를 담근다든가 하는 방식으로 추가적인 정제 과정을 거치긴 했으니까. 근데, 결코 이 정도 효과는 아니었다.
“그래?”
―애초에 육체를 만들 때 혈액은 큰 고려 요소가 아니다. 나 같이 뼈로만 이루어진 언데드에겐 더더욱 그렇지.
김민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아마 데스 로드는 세드릭 육체를 만들어 줄 때 혈액을 크게 활용하진 않은 모양이었다.
하긴.
생각해 보면 그게 맞긴 했다.
세드릭이 무슨 블러드 골렘 같은 것도 아니고. 애초에 뼈로 이루어진 언데드인데 피를 뭐에 써먹는단 말인가.
반면 지금은 달랐다.
혈수옥이 생기며 피에 큰 값어치가 생겨난 상태였으니까.
용혈 강화 1단계를 통해 얻은 현신 능력만 해도 그랬다.
‘그거, 개사기지.’
힘민체 50% 증가.
뼈 날개도 생기고, 덩치도 커지고.
그것도 모자라 용혈참 같은 강력한 공격기도 쓸 수 있게 되었다.
유일한 단점은 유지 시간이 30분 정도라는 건데, 그걸 감안해도 지나칠 정도로 좋은 능력이었다.
아마 이전 주인이었던 데스 로드는 이런 거 못 해 준 모양이었다.
“드디어 데스 로드 그 양반 뛰어넘은 거 하나 생겼구만.”
―피에 관해서라면, 인정하지.
고개를 끄덕이는 세드릭.
그때.
대화를 듣던 메르헨이 훅 끼어들었다.
―아닌데? 민우가 로드보다 훨씬 대단한 거 많은데?
―응?
고개를 갸웃하는 세드릭.
김민우 또한 갸웃한 건 마찬가지였다. 어디 가서 부족하다고 생각한 적은 없지만, 로드에 비하면 아직 부족한 게 많은 건 사실이었다.
근데 대단한 게 훨씬 많다고?
세드릭을 바라본 그녀가 재빠르게 말했다.
―민우가 로드보다 더 검 잘 쓰잖아. 아니야, 맞아?
―맞긴 하다만…….
―민우는 또 업적 상점도 쓰잖아. 로드는 그런 거 하나도 없었고. 아니야, 맞아?
―그것도 맞긴 하다만…….
―결정적으로 민우는 인성부터가 됐잖아. 아니야, 맞아?
―어…….
―로드보다 착해, 안 착해?
―둘 다 만만찮은 것 같다만…….
―민우는 어떻게 생각해?
“인성은 내가 훨씬 낫지.”
김민우가 즉답했다.
다른 건 몰라도 인성에서 로드 그 양반과 비교하는 건 사절이었다.
아니, 아카데미에서 보니까 그 양반 인성이 아주 개판이더만.
생각해 보니 로드보다 나은 게 훨씬 많긴 하네.
근데 세드릭 저 자식은 저걸 고민해?
“넌 안 되겠다. 2단계 통제야.”
―그럼 나부터 강화해 주는 거지?
―아니, 좋은 주인은 객관적인 평가 또한 귀담아듣는 법이다. 솔직하다고 통제라니, 말이 되는가?
서로를 노려보는 두 군단장.
그제야 메르헨이 갑작스레 툭 끼어든 이유를 깨달았다.
아무래도 2단계 강화를 먼저 받고 싶었던 모양이다.
“지금은 피 부족해서 못 하고. 모이면 생각해 볼게. 일단 메르헨 플러스 1점.”
―와아! 나 기뻐!
곧이어 세드릭을 바라본 메르헨이 의기양양한 미소를 지은 채 손가락으로 승리의 V자를 그렸다. 뭔가 억울한 얼굴로 이쪽을 바라보는 세드릭.
그렇게 심판을 봐 준 뒤.
성룡과 마녀가 있던 곳에 놓인 아이템들을 바라보았다.
‘득템도 해야지.’
빙룡까지 합쳐 총 셋.
잡아내며 타이틀을 얻었다.
아까 봤던 메시지들을 떠올렸다.
[타이틀, ‘정식 마녀를 잡아낸’을…….] [타이틀, ‘성룡 사냥꾼’을…….]타이틀 외에 아이템도 있었다.
먼저 성룡.
그 근처엔 새하얀 꽃 한 송이와 자그마한 보석이 놓여 있었다.
[소르살론의 꽃을 입수합니다.]“오, 그 꽃이네.”
세드릭의 전우.
글레이프니르의 제작 재료 중 하나였다.
―이게 한 번에 나올 줄이야…… 주인은 운이 좋군.
“원래는 한 번에 안 나와?”
―그렇다. 성룡급 이상 개체를 잡다 보면 간혹가다 나오는 꽃이니까.
그럼 운 좋은 거 맞네.
이걸로 여섯 재료 중 하나를 구한 셈이었다.
거기에 보석은…….
[용의 보석을 획득합니다!] [용의 보석] [등급: 특수] [알 수 없는 운명의 힘으로 추가된 보석. 어떤 홈과 딱 맞아떨어질 것 같이 생겼다.]‘응?’
보석을 보니 바로 떠오르는 물품이 있었다.
목걸이를 꺼냈다.
[신비한 목걸이] [등급:??] [사악한 안배가 사라지고, 영웅의 기운이 깃들기 시작한 목걸이입니다.]대륙 구원(S+)를 진행할 수 있는 매개체. 여기엔 두 개의 홈이 있었다. 용을 닮은 홈에 가져다 대자 보석이 딱 맞게 끼워졌다.
‘원래는 빙룡과 견습 마녀였을 텐데.’
성룡과 정식 마녀가 게이트로 끌려오며, 목걸이의 홈에 들어가는 것도 둘의 것으로 바뀐 모양이었다. 달리 말하면 보상이 업그레이드된다는 소리다. 더 강한 몬스터의 재료를 사용할 테니까.
‘좋구만.’
김민우가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아쉽게도 스킬북이 드랍되진 않았지만, 그건 상관없었다.
‘매번 뜨는 게 아니니까.’
보스나 네임드를 잡으면 드랍 확률이 훨씬 높아지는 것이지, 애초에 100% 드랍되는 구조가 아니었다. 거기에 아직.
‘정식 마녀가 남았기도 했고.’
일단 그 전에 빙룡에게서 나온 물품도 함께 살폈다.
빙룡은 보석 대신 투구를 하나 떨궜다.
[아룡의 투구] [등급: 레전드] [제한: 600레벨 이상, 근접 직군.] [용의 뼈로 만들어진 투구이다.] [효과 1. 힘, 민첩, 체력 +100] [효과 2. 치명타 확률 10% 증가] [효과 3. 착용자의 육체에 차가운 기운이 깃든다. 받는 화염 계열 데미지 30% 감소] [효과 4. 빙 속성 저항력 20% 증가]‘괜찮네.’
빙룡 자체가 레벨이 높아서 그런지 고레벨 아이템이 떨어졌다.
보관해 뒀다가 차후 레벨 오르면 세드릭에게 주면 될 것 같았다.
인벤토리에 잘 모셔 뒀다.
시체 하나 남기지 못한 정식 마녀 또한, 그 대신 아이템들을 남겼다.
“오, 럭키.”
마녀의 마지막 자존심일까.
먼저 스킬북 한 권을 남겼고.
거기에 새하얀 실타래 더미와 보석이 함께 놓여 있었다.
[마녀의 보석을 입수…….] [동방 마녀회의 실타래를 입수…….]실타래는 총 네 개.
제작에 필요한 건 세 개니 오히려 하나가 남는 셈이다.
그건 나중에 활용하면 될 테고.
‘여섯 개 중에 두 개 모았군.’
남은 건 만 년 이상의 고룡 시체, 심연 군주의 혈맥, 발록의 피 500L, 미미르의 한숨 한 줌이었다.
딱 봐도 구하기 가장 어려워 보이는 건 바로 만년 이상의 고룡 시체였다. 지금 죽은 성룡이 고작 3천 살 좀 넘은 개체란다.
근데 1만 년 급?
“세드릭아. 지금 상태면 만 년 이상 나이 먹은 고룡 이길 수 있을 것 같아?”
―그 정도면 대마녀와 비슷한 수준일 거다. 이 정도 권능 해방으론 턱도 없다. 잘해야 시간 벌이 정도나 하겠지.
덤덤히 말하는 세드릭.
메르헨 또한 크게 반박하지 않았다.
하긴.
애초에 그녀가 반박했던 건 수뇌부들이 곧바로 찾아올지에 대한 부분이었지, 승패에 관한 부분이 아니긴 했다.
SSS급으로 바뀌었는데도 이런다?
‘어지간히 세긴 한가 보네.’
물론 고려해야 할 게 있기는 했다. 스킬 등급이 SSS로 오르긴 했지만, 그게 완벽한 잠재력 해제는 아니라는 것.
애초에 불굴의 문구도.
[이번 무대에서, 두 군단장의 잠재력이 일부 해방됩니다!]이런 식이었지 않았던가.
거기에 레벨이 오르거나, 장비가 바뀌지도 않았으니 스킬 등급이 오른 효과를 전부 활용하기도 어려울 테고.
“너, 이리스라고 했었나.”
“네! 마, 맞아요.”
이리스가 퍼뜩 답했다.
이미 메르헨에게 찍소리도 못 낸 채 죽어 나간 정식 마녀를 본 상황.
하물며 그 언데드의 주인인 자에게 거스른다는 건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메르헨이 지긋이 바라보고 있는 상황에선 더더욱.
김민우가 물었다.
“지금 정식 마녀하고 성룡이 죽었잖아. 빙룡도 그렇고.”
“……예.”
“마녀회하고 용군단 측에서 앞으로 어떻게 할 것 같아? 잘 생각해 봐.”
“이, 일단 죽은 건 머지않아 알려질 것 같긴 하거든요? 몸에 걸어 둔 생체 마법으로 차원을 넘어 연락이 갈 테니까요. 아마 용군단도 모종의 수단으로 알아낼 테고요.”
“그래서?”
“둘 다 조사단을 보내 경로 추적이 이어질 거예요. 불시착이 어떻게 됐는지는 모르겠는데, 급격히 경로가 꺾인 구조라면 추적에 시간이 좀 많이 걸릴 테고요.”
“그럼 그 조사단이라는 게 올 때까지 얼마나 걸릴 것 같아?”
“정확히는 알 수 없지만, 이곳 행성 기준의 시간으로 그래도 최소 한 달은 걸릴 거라 생각합니다.”
“조사단이 온다고 치자고. 그럼, 바로 덤빌까?”
“이런 경우가 드물지 않아요.”
“불시착하는 경우?”
“예. 또 불시착해서 죽어 나가는 경우요. 예를 들어, 하위 차원에 가려다 고위 차원의 행성에 불시착하는 경우가 그래요.”
“그럼 이번엔 반대겠네?”
“그, 그렇겠죠? 이런 최하위 차원보다 더 낮은 차원이 없으니…… 어쨌든 이건 변수고, 저희 마녀들은 변수에 진중한 편이에요.”
“안 덤빌 거다?”
“까마귀 학파란 걸 고려하면, 아마 선임 마녀 하나에 정식 마녀 둘 정도가 조사단으로 올 것 같은데…… 예. 그 정도론 안 덤빌 것 같아요.”
“선임 마녀는 뭐야?”
“견습, 정식, 선임, 숙련, 대마녀. 이렇게 계급이 나뉜다고 보시면 돼요. 용이 아룡, 성룡, 고룡 등으로 나뉘는 것처럼요.”
―잠깐만. 계급에 선임하고 숙련도 있었어?
“네, 네! 있어요. 제가 기억하기론 몇백 년 전에 생긴 것으로 알고 있어요.”
메르헨의 질문에 이리스가 경기를 일으키듯 황급히 대답했다.
“조사할 때 행성 안으로 들어와 줄 것 같아?”
“아뇨.”
이리스가 단호히 고개를 저은 채 말했다.
“경로 추적하다 보면 최하위 차원에서 죽었다는 걸 알게 될 텐데, 보통 이런 경우엔 그냥 ‘위험 지역’으로 구분하고 말거든요.”
“위험 지역?”
“네. 쉽게 말해…… 투자 대비 효율이 똥인 곳이니 그냥 쳐다도 안 보겠다는 거죠. 여기도 예전에 그랬던 곳이었어요. 오크 하나가 너무 설쳐 대서…….”
“무탁타?”
“맞아요. 그 오크요.”
이리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신기하네. 복수 같은 거 하러 올 줄 알았더니.”
“보통 해서 얻을 게 별로 없으니까요. 아마 본체는 안 오고, 패밀리어 정도만 행성 안으로 보내서 조사하는 정도로 끝날 것 같은데요. 다만…….”
슬쩍 메르헨을 바라본 이리스가 말했다.
“제가 들어보니…… 그, 이분이 아난케 님과 관련이 있으시다고……?”
―응. 맞아. 그 바보랑 싸운 적이 있거든. 옛날에.
“얼마나 관련이 있으신지는 잘 모르겠는데…… 어…… 그게 대마녀가 움직일 정도로 크다면, 여기 오래 있으시면 안 될 것 같은데요.”
“안 그래도 그럴 생각이야.”
오래 있다가 괜히 고룡이나 대마녀들이 찾아오면 답 없어진다.
특히 용과 마녀들은 군단장들에게 아주 많은 유감을 가지고 있는 상태가 아니던가.
조사하다 보면 위로 보고가 올라갈 테고, 재수 없으면 그런 존재들이 불쑥 튀어나올지도 몰랐다.
‘뭐, 그런 경우엔…….’
이리스를 빤히 바라보았다.
게이트 클리어하면 보통 강제로 밖에 나가게 된다. 그리고 마지막 남은 클리어 조건은…….
‘얘 잡는 거지.’
만약 그런 놈들 보인다?
처리하고 튀어야지 뭐.
애초에 이 마녀는 대륙 생명체 다 말살하고 점령하려 했던 악독한 존재 아니던가. 처리하는데 별다른 유감은 없었다.
다만 그게 아직은 아닐 뿐.
스킬북과 목걸이에 끼울 마녀의 보석을 얻은 채 이리스를 바라보았다.
“너, 일 하나 좀 해 줘야겠다.”
견습 마녀.
써먹을 곳이 참 많았다.
* * *
대륙을 지배한 마녀의 군세.
중앙을 제외한 동서남북의 요새엔 각자 사도들이 하나씩 배치되어 있었다. 서쪽을 지배하고 있는 3사도 리암.
그가 수정구 너머로 보이는 마녀 이리스의 모습에 공손히 고개를 숙였다.
“미천한 종, 저 리암이 위대한 마녀를 뵙습니다.”
―그래. 지금부터 내 명령을 똑똑히 들으렴. 요새를 싹 다 비우고, 모든 병력을 중앙으로 출정시켜.
“……예? 요새를 비우란 말씀입니까?”
―언제부터 너 따위가, 내 명령에 토를 달았지?
“죄, 죄송합니다. 죽을죄를…….”
―됐고. 그렇게 해. 다른 사도들에게도 마찬가지로 전해 뒀으니까.
“아, 알겠습니다. 분부하신 대로 따르겠습니다.”
리암이 공손히 고개 숙인 채 말했다. 그렇게 연락이 끊겼다.
‘뭐지?’
그가 고개를 갸웃했다.
과거 초창기 오크를 토벌했을 때.
그땐 마녀가 전 병력을 모아 직접 지휘를 맡았던 적이 있었다.
하지만 그 이후엔 달랐다.
이후론 대륙에 그들과 대적할 세력 자체가 없기에, 요새를 세워 병력을 분산시켜 뒀는데.
‘이번에도 마녀께서 친히 움직일 생각이신가?’
리암에게 생각나는 건 두 가지 경우뿐이었다.
무너진 북부 요새를 되찾기 위해 병력을 모으는 것.
그게 아니라면 또 하나는…….
‘빙룡과 직접 맞서는 경우.’
이런 큰 사건이 아니라면 병력을 전부 모이게 할 이유가 없었다.
어찌 됐든 마녀의 명령은 절대적이었다. 충성스러운 리암은 명령을 곧바로 따랐다.
요새에 병력 하나 남기지 않은 채 모든 병력이 중앙으로 출정했다.
사실 그래도 상관없었다.
겨울의 파편을 지키지 않는다 한들 그걸 부수는 것부터가 일이었다. 물론 오래도록 방치해 두면 문제가 생기겠지만, 마녀가 병력을 직접 이끈다면 적을 격퇴하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리진 않을 것이다.
거기에 만약, 빙룡과 대적할 생각이라면…….
‘요새를 지킬 필요가 없어지지.’
애초에 파편 지키려고 요새 세우고 관리한 거다.
근데 용과 대적한다면?
파편을 지킬 이유가 없다.
실제로 그럴 만한 동기도 있었다.
파편 덕에 수많은 시체를 얻었지만, 반대로 이제 얻을 시체들이 줄어들고 있는 상황 아니던가.
‘어쩌면 대전쟁이 벌어질지도 모르겠군.’
아마 다른 사도들도 병력 이끌고 출발했을 것이다. 그렇게, 며칠 내내 행군해서 대륙 중심부에 자리 잡은 마녀의 탑에 도착했을 때.
이미 그 앞엔 수많은 병력이 도열해 있었다.
1사도와 2사도의 병력이었다.
4사도 벨리타스가 없다 한들, 자신의 병력까지 합치면 무려 10만을 훌쩍 넘기는 대군세였다.
탑 꼭대기.
그걸 흐뭇한 얼굴로 지켜보던 김민우가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잘했어. 며칠 만에 성실하게 모았네.”
“최, 최선을 다했습니다.”
공손하게 말하는 이리스.
굳이 요새 여기저기 들쑤시면서 잡아낼 거 있나.
지금처럼 한곳에 죄다 집결시키면 경험치 복사인데.
메르헨을 바라보았다.
“빨리빨리 잡자. 가능하지?”
―응. 민우 말대로 할게.
메르헨의 손 위로 무시무시할 정도의 마나가 몰려들었다. 이번 무대에서 적용되는 SSS급 마법.
거기에 폭주로 인한 5중첩까지.
[메테오(SSS)가 중첩…….]하늘이, 돌연 어두워졌다.